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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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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통도사
靈鷲山 通度寺 | Tongd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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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9A26A><colcolor=#fff> 위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지산리 583)
설립 643년
창건자 자장율사
주지 현덕
등급 제15교구의 교구본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문화재 정보[ 펼치기 · 접기 ]
||<-2><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tablebordercolor=#f15a38> 경상남도 기념물 제289호 ||
양산 통도사
梁山 通度寺
<colbgcolor=#f15a38><colcolor=#fff> 소재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지산리 583)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수량 / 면적 53,578㎡
지정연도 2018년 1월 4일
소유·관리 통도사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유네스코 세계유산
<colbgcolor=#000>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Sansa, monastères bouddhistes de montagne en Corée
<colcolor=#fff> 국가·위치 <colbgcolor=#fff,#1f2023>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경상남도 양산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1562
등재연도 2018년
등재기준 (iii)[1]
}}} ||
파일:통도사 전경.jpg
파일:Screenshot.jpg
<colbgcolor=#B9A26A> 통도사 전경
1. 개요2. 역사3. 전각 및 문화재
3.1. 목판 목록3.2. 도난문화재
4. 통도사를 거쳐간 스님
4.1. 삼국시대4.2. 남북국시대4.3. 고려시대4.4. 조선시대4.5.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5. 산내 암자6. 말사
6.1. 양산6.2. 울산6.3. 창녕6.4. 밀양6.5. 의령 및 기타
7. 주요 행사 및 즐길 거리
7.1. 개산대재
8. 교통편9. 입장료10. 평산마을과 연계한 관광지화11. 사건사고12. 기타

[clearfix]

1. 개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한국의 삼보사찰 중 하나이자, 팔대총림 중 하나이다. 부처님진신사리(眞身舍利)가 안치된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어 불보(佛寶)사찰로도 불린다. 삼보사찰 중 나머지 두 군데는 해인사송광사이다.

통도사 주변 경관은 영축산과 사찰을 둘러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방문객에게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과 평온함을 제공한다.
2018년 6월 30일에는 전국 각지에 소재하는 산사들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특이한 것은 사찰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조선시대부터 보존된 전각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적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경상남도 기념물로만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계율종 중심 사찰이고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도사는 해인사,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 불교의 3대 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佛寶寺刹)로, 부처의 진신사리와 가사가 봉안되어 있다. 이 때문에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으며, 대신 뒤편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안치한 금강계단이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사찰 배치는 중로전과 상로전 등 여러 구역으로 구성된다. 상로전 중심부에 대웅전과 금강계단이 있으며, 이는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로전에는 관음전, 용화전, 대광명전 등이 있으며, 특히 용화전 내부에는 서유기 벽화가 남아 있어 독특한 불교미술의 사례로 손꼽힌다. 또한 용화전 앞 봉발탑(보물 제471호)은 발우(밥그릇)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 역사

2.1. 창건

파일:통도사 자장율사 진영 문화재청.jpg
파일:통도사 자장율사 친착가사.jpg
통도사를 처음 세운 자장율사 진영(초상화) 자장율사가 직접 입었었다는 가사
통도사가 있는 곳은 영축산(靈鷲山)이라는 산으로,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에 있는 영축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그로부터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 따르면 지금의 통도사 자리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 아홉 마리의 독룡이 살면서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한다. 삼국시대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율사가 연못에 있는 독룡들을 교화하여 날아가게 했고, 연못을 메운 후 그 위에 통도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가 독룡을 물리치고 통도사를 창건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중국 우타이산(五臺山)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이때 문수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문수보살은 자장율사에게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백과, 불두골(佛頭骨), 손가락뼈(指節), 염주, 경전 등을 주면서 "이것들은 내 스승 석가여래께서 친히 입으셨던 가사이고, 또 이 사리들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이며, 이 뼈는 석가모니의 머리와 손가락 뼈이다. 그대는 말세(末世)에 계율을 지키는 사문(沙門)이므로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노라. 그대의 나라 남쪽 축서산(鷲栖山: 영축산의 옛 이름) 기슭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는 신지(神池)가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독해(毒害)를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三災 : 물, 바람, 불의 재앙)를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 라고 말했다.[2]

자장율사는 그것을 들고 신라로 귀국하였고, 연못에 와서 독룡 아홉 마리에게 설법을 하니, 독룡 아홉 마리는 곧 교화되었다. 그 중 다섯 마리는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는 삼곡동(三谷洞)으로 날아갔는데, 오직 한 마리만이 남아서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자장율사는 그 용의 청을 들어 통도사에 남도록 했다고 한다. 독룡 아홉 마리가 살던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그 안에 중국에서 들고 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안치하였다. 그러나 연못 한 귀퉁이는 메우지 않고 남겨 두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구룡지로, 마지막 한 마리 남은 용이 있는 곳이라 한다.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통도사에서는 이 용을 모시는 가람각을 세워 두었다.

통도사라는 절의 이름은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道)한다는 뜻에서 통도(通度)라 하였다. 신라시대에는 모든 승려들이 통도사 금강계단에 와서 계를 받았고,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다는 것은 곧 부처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통도사는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현대에도 통도사는 경상북도 김천시직지사 등과 함께 조계종 승려들이 계를 받는 곳 중 하나이다.

삼국유사』 「자장정률(慈藏定律)」의 기록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해서 불법을 배우고 귀국한 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었고, 선덕여왕은 자장율사에게 왕명을 내려 통도사를 창건하게 했다고 한다. 자장율사는 통도사를 창건하며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 금란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봉안하였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승려의 규범을 관장, 법식(法式)을 가르치는 등 불법을 널리 전하였다고 한다. 통도사는 이후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었고, 신라의 승단(僧團)을 체계화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창건 당시의 가람은 자장율사가 쌓은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몇 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2.2. 고려 시대

파일:통도사 국장생석표 문화재청.jpg
파일:통도사 상천리국장생석표 문화재청.jpg
통도사 국장생석표 상천리 국장생석표
通度寺孫仍川國長生一㘴段寺
所報尙書戶部乙丑五月日牒前
判皃如改立令是於爲了𡬦以立
大安元年乙丑十二月日記

통도사 솔래천에 있는 국장생 일좌는 절에서 보고한 바(에 따라), 상서호부가 을축년 5월일에 첩을 내려서 전의 판결대로 고쳐 세우라고 하였기에 세운다.
대안 원년 을축년(1085) 12월일에 기록한다.
통도사 국장생석표(보물 제 74호)
▨▨國長生一㘴叚寺
戶部乙丑五月日牒前
立▨是於爲了𡬦以立
▨▨乙丑十二月日記
⋯국장생 1좌는 절에서 호부에⋯, 을축년 5월일에 첩을 ⋯, 전의 ⋯ 세우라고, 이에 세운다. ⋯을축년 12월일에 기록한다.
상천리 국장생석표(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
1085년(선종 2년)에는 통도사의 경내임을 나타낸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세울 만큼 사세가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파일:통도사 삼층석탑 배례석 국립문화재연구소.jpg
삼층석탑 앞에 있는 배례석 복제품[3]
太康十一年乙丑二月 日造」
태강(太康) 11년 을축년(乙丑年 : 1085, 선종 2) 2월일에 만들었다.
통도사배례석(通度寺拜禮石)
또한 똑같은 연도인 1085년에 통도사 배례석이 만들어졌다. 통도사 배례석은 극락전 앞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의하면 1235년(고종 22년)에 상장군(上將軍) 김리생(金利生)과 시랑(侍郞) 유석(庾碩)이 고종의 명을 받아 낙동강 동쪽을 지휘하던 차에 절에 와서 계단의 석종을 들어내고 석함 속의 사리를 예경했다고 한다. 이때 돌함 속에 있는 유리통 하나가 금이 가서 유석이 마침 가지고 있던 수정통을 기부하여 거기에 사리를 보관했다고 하는데, 이 기록은 문헌상으로 볼 때 사리에 손을 댄 최초의 예로 보인다. 그 후, 1264년에는 원나라 사신들과 여러 사람들이 와서 그 돌함에 예배드렸으며, 사방의 운수승(雲水僧)들이 몰려와서 예참했다 한다.

또한 원나라에 머물던 인도지공선사(指空禪師)[4]1326년 통도사에 와서 금강계단을 참배하여, 가사와 사리를 친견한 공덕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지공선사는 고려에 들어올 때 『문수사리무생계경(文殊師利無生戒經)』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와 동일한 경전으로 생각되는 『문수사리최상승무생계경(文殊師利最上乘無生經)』목판본이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362년 8월 15일 속리사(俗離寺)에 행차하여, 통도사(通度寺)에 소장되어 있던 부처의 뼈(佛骨)와 사리(設利) 및 가사(袈裟)를 가져와 구경하였다.
『고려사』
1362년에는 공민왕이 속리사에 행차하여 통도사 사리와 가사를 보았다.

1377년(우왕 3년)과 1379년(우왕 5년) 두 차례에 걸쳐 왜구의 습격을 받았다. 당시의 통도사 주지였던 월송(月松) 대사는 1377년에 왜구들이 통도사에 와서 사리를 가져가려 하자 그것을 가지고 도망쳤다가 다시 1379년 왜적이 사리를 침탈하려고 했을 때 사리를 가지고 통도사를 빠져나와 개성 송림사, 서울 흥천사, 금강산 등지로 옮겨 다녔다고 한다.

2.3. 조선 시대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왜구의 침탈은 여전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통도사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1592년임진왜란이 발발하며 불에 타 절이 한 차례 소실되었다. 또한 왜군이 통도사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치아사리를 약탈했으나 사명대사가 되찾아서 건봉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현재의 통도사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안 1603년(선조 36년)에 송운대사(松雲大師)가 재건하고 다시 1641년(인조 19년) 우운(友雲)스님이 중건한 것이다.
통도사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여한 인물들을 기록해놓은 《충렬록》이 있다. 스님이 말하기를, 매번 명절이 되면 누각 위에 여러 충렬들을 제사 지낸다고 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충현들은 백세의 풍범 / 壬丙諸賢百世風
높은 그 이름 우뚝이 산사에 걸렸네 / 高名磊落揭琳宮
산승들도 충절에 보답할 줄을 알아 / 山僧亦解酬忠節
한 몸이라 사시에 똑같이 제사하네 / 一體四時祭祀同
『무명자집』 시고 제4책
무명자 윤기(尹愭, 1741~1826) 18세기 선비이다. 이러한 윤기가 통도사에서 남긴 기록은 위와 같다. 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조선 후기 통도사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충렬들을 기리는 제사를 했다.

2.4. 일제강점기

1911년 일제는 사찰령을 통해 통도사를 30본산[5]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
1923년 서선수재구제회에 70원을 기부했다. 서선수재구제회란 서선지방(평안도, 황해도)에 일어난 수해를 복구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이때 기부한 스님으로는 김구하(구하 천보), 서해담 등이 있다.

2.5. 대한민국

한국전쟁 관련 영상
한국 전쟁 초반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을 때 동래에 있던 제31육군병원[6]이 부상병들로 만석이 되자 통도사에 제31육군병원 분원이 설치되었다. 육군병원이 된 통도사에 3천여 명의 부상병들이 보내졌고, 치료 도중 사망한 이들을 불교식으로 화장하는 연기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선지 전투적인 어조나 정전(협상 진행)을 아쉬워하는 낙서들이 곳곳에 있으며, 52년 4월까지 이용하며 묻었던 각종 의료도구들이 몇십년뒤에 발굴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러다 2021년 전쟁 중 통도사의 공적을 인정하여 사찰 중 최초로 국가현충시설로 지정이 되었다.
유네스코 등재 영상
통도사를 포함한 7개 주요 사찰이 2018년 6월 30일 기준으로 '한국의 전통 산사(山寺)'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되었다.

3. 전각 및 문화재

통도사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부속시설 성보박물관 산내 암자

한국 3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절의 규모가 크고 전각과 수장한 문화재가 많아 한국 불교 문화재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총 65동의 건물이 경내에 있으며, 소장한 문화재는 국보 1건, 보물 21건, 지방유형문화재 46건을 포함해 문화재 약 3만여 점을 소장하였다.

통도사는 앞뒤 폭이 좁고 중앙이 집중된 형태이며, 오른쪽에는 영축산이 위치하였고 왼쪽에는 계곡이 바짝 붙어있어 사찰 부지의 폭이 좁다. 신라시대식 가람배치는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금당과 탑이 놓이는 게 정석이지만, 통도사는 산과 계곡 사이의 이런 좁고 긴 부지 때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북의 축을 유지하면서 동서로 길게 확장된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대웅전 및 금강계단을 정점으로 완만한 경사를 따라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으로 나뉜 상중하 방식이 특징인데, 창건 당시부터 이렇게 건립되었다고 한다. 하로전의 크기가 200척, 중로전의 크기가 160척, 상로전이 120척으로 들어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는데 공간적 긴장감을 증폭하여 부처의 진리에 닿고자 한다는 의미가 있다.

진입로마다 하로전은 일주문(一柱門), 중로전은 천왕문, 상로전은 불이문[7]을 두어 권역을 구분하고 있으며, 상로전은 그중에서도 가장 깊이가 깊다. 그 상로전에 대웅전이 위치한다. 참배객은 대웅전을 270도 회전한 뒤 금강계단 입구에 이르는 구조다.

3.1. 목판 목록

파일:통도사 경판 문화재청.jpg
통도사 경판
역사가 오래된 만큼 목판도 많다. 그러나 모든 목판이 통도사에서 만든 것은 아니고 주변 절에서 만든 목판도 많다. 이러한 이유는 주변 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 그런 건 아니다. 어찌 하였든 간행 연월일은 다 음력 기준이다.
- 참고문헌 : 전국사찰소장목판집(1987)

3.2. 도난문화재

4. 통도사를 거쳐간 스님

통도사에 머물렀거나 통도사와 인연이 있는 스님을 다루는 장이다.

4.1. 삼국시대

4.2. 남북국시대

4.3. 고려시대

4.4. 조선시대

통도사 환성 지안 관련 영상

4.5.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구하 천보 열반 50주기 추모 다례재 영상
벽안 법인 영상
노천 월하 영상
야부 초우 영상
명허 각성 다비식
무애당 무애 영결식

5. 산내 암자

통도사에는 암자가 열개가 넘게 있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통도사/산내 암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말사

통도사에 등록된 말사 중 일부를 다루는 장이다. 보기 편하기 위해 지역별로 분류하였고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였다.

6.1. 양산

6.2. 울산

6.3. 창녕

6.4. 밀양

6.5. 의령 및 기타

7. 주요 행사 및 즐길 거리

2022년 개산대재 홍보 영상 단오 용왕재

통도사는 큰 절인 만큼 행사의 규모도 굉장히 크고 볼거리도 많은 편이다. 위의 행사 중 날짜가 맞는다면 가볼 만하다.

7.1. 개산대재

파일:2023년 통도사 개산대재.jpg
파일:2023년 통도사 개산대재2.jpg
2023년 개산대재 포스터
개산은 산문이 열린 날이라는 뜻으로 사찰이 처음 세워진 날을 의미한다. 통도사에서는 매년 음력 9월 9일을 전후로 개산대재를 열고 있다. 개산대재를 여는 이유는 절을 처음 세운 스님의 뜻을 기리고 이어가기 위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미디어 아트쇼를 비롯하여 드론쇼도 열린다. 2023년에는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주요행사가 진행되었다.

10월 21일에는 야외에 거는 대형 불화인 괘불이 걸렸으며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들 앞에서 차를 올리는 부도헌다례를 했다. 밤에는 드론쇼도 하였다. 10월 22일에는 신라 자장율사가 실제 입었다는 가사가 공개되었다. 자장율사의 가사는 1년에 딱 하루 개산대재 때 대중에 공개된다.10월 23일에는 자장율사 영고재 및 개산대재 법요식이 진행되었다. 이외에도 통도사 안에 국화가 놓였으며 도자기전, 서예전 등이 진행되었다. 또한 10월 13일부터 22일까지는 밤에 미디어파사드가 진행되었다.

8. 교통편

행정구역상 양산이지만 양산시내에서는 의외로 가기 힘들다. 통도사행 버스로 11번, 12번, 12-1번이 있는데 12번, 12-1번은 구시가지쪽으로 가기에 양산역 일대에서 이 노선을 타려면 환승이 필요하고 11번 버스의 경우 배차가 30분을 넘어간다. 설령 어찌 버스를 탄다해도 통도사가 거의 양산 끄트머리라 아무리 빨리가도 한시간은 넘게 걸린다. 통도사가 양산에 있다고 정말 양산으로 와서 통도사를 가려고 하면 꽤나 고생할 수 있다.

따라서 외지인이 통도사를 가는 가장 무난한 방법은 노포동터미널에서 부산~통도사~언양 행 버스를 타거나 울산역이나 언양터미널에서 13번 버스를 타고 접근하는 것이다.

울산고속버스터미널/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올 경우 터미널에서 바로 가는 노선은 없고, 아래에 언급할 1723번817번이 인근 정류장에 정차한다. 언양읍내에도 정차하기 때문에 울산역이 아닌 다른 언양읍내에서 출발한다면 13번과 1723번 중 먼저 오는 것을 타면 된다.

부산광역시 부산종합버스터미널, 김해국제공항에서도 오는 방법이 있다. 단 이 버스는 통도사휴게소에서 하차하므로 좀 많이 걷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김해공항행 버스의 경우 2024년 4월부터 하루 4회 이외에는 중간정류장을 경유하지 않기에 이용이 난해해졌다.

예전에는 해운대에서도 한번에 통도사로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운행이 중지되었다. 2호선-수영역-3호선-덕천역-2호선-양산역-11,12번 루트로 가면 된다. 만약 기장 북부 권역에서 출발한다면 동해선 광역전철을 타고 태화강역으로 가서 1723번을 타고 가면 된다.

시간이 걸리지만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명륜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12번, 12-1번통도사신평버스터미널에 들려서 내려준다. 명륜역 기준 1500원이다. 환승도 가능해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대신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양산시청 등지에서 12번을 타고 통도사 가는데도 한 시간이 걸릴 판인데 명륜역에서 출발하면 최소 2시간은 넘게 잡아야 한다. 심야 시간대는 1시간 30분 만에 가긴하나 통도사가 문을 닫을 시간이라 큰 의미는 없다.

양산역에서는 11번이 신평터미널까지 운행한다. 그외 양산 12번을 타면 갈 수도 있다.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양산 버스 13이 이곳까지 운행한다. 1723번817번도 신평터미널에서 태화강역까지 간다.

신평터미널에서 통도사까지는 약 600m 남짓의 거리이므로 걸어가는 편이 경비를 아낄 수 있다.

자가용으로 올 경우 고속도로는 통도사하이패스IC로 진출입하는게 가장 빠르지만 이 쪽은 부산방향(남행) 진입과 서울방향(북행) 진출만 가능하다. 반대 방향으로 오갈 경우 통도사IC를 이용해야 한다.

주차장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매표소 바로 앞에 있는 무료 주차장과 통도사 경내에 있는 유료 주차장이 있다. 무료 주차장에 내릴 경우 약 20분 정도 더 걸어와야 한다. 대신 아래에 언급하듯이 무풍한송로라 하여 길 자체가 관광명소이다.

9. 입장료

관련법령 개정으로 2023년 5월 4일부터 무료화가 되었다.@. [9]경내 주차비는 경차는 1000원, 17인승 미만이면 2000원, 17인승 이상이면 3500원을 받는다. 외부에 주차하는 경우 주차비는 받지 않는다.

무료화 전에는 어른 1명 기준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었으며 설날과 추석과 같은 명절기간중에는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양산시민의 경우 무료화전에도 주소지가 나와있는 신분증을 지참하면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원래는 주차비까지 면제였는데 2020년 후반부터 통도사측에서 전면 유료화를 추진했고, 이후 양산시에 중재에 따라 차량진입시에만 주차비를 받는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10. 평산마을과 연계한 관광지화

일각에서는 평산마을과 연계한 관광지화도 추진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사저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을 정했는데, 이곳은 통도사에서 직선거리로는 1km도 떨어지지 않은 아주 가까운 곳이다. 다만 직선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통도사와 아예 수계가 다른 골짜기라, 통도사에서 가려면 후술하는 산책로를 통해 산을 하나 넘어가야 한다. 취임 이전에 살던 양산 매곡동 사저가 경호에 어려움이 있어 평산마을을 선택했다고 한다. #1 #2

실제 평산마을과 통도사 경내를 바로 잇는 약 500m 거리의 산책로[10]가 이미 존재하지만 2020년 기준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상태이며 현재는 잠금 장치가 되어있다. 추후 상황에 따라 정비 후 개방될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쉽지는 않다.

이렇게 하려면 평산마을 일대가 봉하마을처럼 관광지화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다. 무엇보다 봉하마을에 비해 평산마을은 관광 콘텐츠가 딱히 나올 것이 없는데다 평산마을은 문재인의 고향도 아니기 때문이다.[11] 게다가 노무현과는 달리 문재인은 외부에 본인을 드러내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성향은 아닌데다가, 과거 봉하마을에 귀향한 노무현이 편히 쉬지도 못하고 일정 시간마다 사저 밖에서 관광객들을 맞이한 것을 지켜본 터라 여러가지로 부담감이 크다.

거기에 통도사 측도 평산마을 경계지점에 설치되어있는 시설물의 추가적인 개량을 해야한다. 그나마 입장료는 2023년경에 폐지되었지만 주차비는 여전히 받고 있기 때문에 이를 징수할 인력도 투입 해야한다. 물론 통도사 측이 전면 무료화를 선언하면 후문 설치까지는 필요없겠지만, 한때 주차비까지 무료였던 양산시민에 대해서도 주차비를 받고 있는 터라 현실성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시설을 만들어 놔도 통도사 본당과는 대략 2km 정도 거리라 상당히 멀어 추가적인 교통편 투입이 불가피 하다. 통도사 측이 본당까지 셔틀버스를 굴리거나 양산시가 기존 통도사터미널~평산마을간 마을버스를 통도사터미널~평산마을~통도사본당~통도사터미널식으로 통도사 일대를 한바퀴 순환하는 형태로 노선을 변경하는 방안이 있다.

즉 통도사 입장에서는 평산마을과 연계된 관광지가 되면 괜한 추가비용만 더 내야될 판이라 이득이 별로 없다. 양산시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러면 양산시가 무료입장을 확대하라는 요구를 강하게 할 수도 있어 쉽사리 선택 할 수 없다.

11. 사건사고

신천지의 역사 왜곡
통도사 승용차 돌진 사고

12. 기타

통도사에 있는 화장시설 설비를 사용한 사례[19]

[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강원도 평창군 소재의 월정사에도 같은 전설이 있다. 월정사 역시 진신사리를 모신 중 하나이다.[3] 원본은 성보박물관에 있다.[4] 나옹화상·무학대사와 함께 당대의 3화상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고승이다.[5] 참고로 1924년 화엄사가 본산으로 승격되며 이후에는 31본산이 되었다.[6] 병원이라곤 하지만 온천장 일대에 수백 동의 군용 천막을 설치하고 부상병들을 수용한 수준이었다.[7] 다만 이 불이문은 중로전 권역에 속한다.[8] 이후 경상도 울산 운흥사는 운흥사로 표기한다[9] 아예 법령자체가 개정된거라 통도사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찰들이 입장료를 폐지했다.[10] 다만 아래에도 나오지만 여기서 통도사 본당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11] 참고로 문재인의 고향은 거제시다.[12] 자동차로 진입하는 길은 이 숲길을 생략한다. 애초 자동차가 진입하지 못하게 아예 경계석을 세워놨다.[13] "삼소"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독실한 불자이다. 현재는 통도사에서 훈련하던 시절 인연을 맺은 은사스님이 후에 발령받아 주지스님으로 부임중인 반송동 원오사를 재적사찰로 두고 정기적으로 신도 학생 장학금을 수여한다. 원오사는 통도사의 말사이다.[14] 물론 통도사에 하루종일 머무른 것은 아니고 오후엔 시내로 내려가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15] 롯데 구단이 통도사 측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식비, 세탁비 등 해서 한달에 약 500만원씩 부담했다고 한다.[16] 입소 당시 130kg대였고 최종 목표는 110kg대였다. 근육을 유지하면서 감량해야 했기 때문에 거의 두 달 가까운 긴 기간동안 천천히 감량한 것이다.[17] 집사부일체에 사부로 출연 당시도 여기서 멤버들과 처음 만나서 좋은 기억이 있다고 회고했다.[18] 애초 통도사 다비장은 재가불자들에게도 제한적으로 개방되어 있던 곳이었다. 실제로 2010년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출신 노동자가 이곳에서 다비되었다.#[19] 대부분은 나무나 숯 등 천연재료를 사용하지만, 일반 공설 화장시설에서 쓰는 설비를 그대로 설치한 사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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