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에 위치한 봉정사에 대한 내용은 봉정사(김포)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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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 |
<colbgcolor=#000>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Sansa, monastères bouddhistes de montagne en Corée | |
<colcolor=#fff> 국가·위치 | <colbgcolor=#fff,#1f2023>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경상북도 안동시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지정번호 | 1562 |
등재연도 | 2018년 |
등재기준 | (ⅲ)[1] |
▲ 봉정사 극락전
[clearfix]
1. 개요
한자 : 鳳停寺 / 로마자 : Bongjeongsa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에 위치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2018년 6월 30일에는 전국 각지에 소재하는 산사들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 상세
672년(신라 문무왕 12년), 혹은 682년(신라 신문왕 2년)에 창건됐다고 알려져 있으며 1728년에 쓰인 천등산봉정사기에는 의상과 능인이 고승들의 도를 닦을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봉정사를 창건했으며 안동에서 서쪽으로 30여리 떨어진 천등산(天燈山) 자락에 자리한다고 기록돼 있다. 봉정사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이곳의 지세(地勢)가 마치 봉황이 머무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지어졌다는 설, 하나는 의상이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날렸는데 그게 이곳에 떨어져 봉정사를 창건했다는 설이다.작고 아담한 절이지만, 산사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특히 한국에 오늘날 남아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고려시대 지어진 국보 제15호 극락전이 유명하며, 이 외에도 국보 제311호에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인정받는 극락전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극락전이 중심건물은 아니다. 절의 중심은 엄연히 대웅전이며, 봉정사 대웅전도 국보에 지정될 만큼 문화재로서 가치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건축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극락전보다 못할 것이 없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 외에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했던 '영산암' 등 딸린 암자도 있다. 영산암은 한국 정원 조경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1#2
2.1. 안동 봉정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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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5호 | |
안동 봉정사 극락전 安東 鳳停寺 極樂殿 | |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 (태장리)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
수량/면적 | 1동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고려 시대 후기 |
봉정사 극락전(2015년 촬영) |
봉정사 극락전의 내부. 건물의 구조가 잘 보인다. |
1980년대 대한뉴스에 방영 된 모습 |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 시대에 지어진 이후 지금까지 서 있는 건물이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목재를 층층이 쌓아 만든 구조가 명쾌하게 보이는 한국 건축의 구조미를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는다.
이전부터 오래되었으리란 추측은 있었으나 확실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1972년 10월부터 1975년 11월까지 해체 복원 공사를 한 바가 있는데 당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해방 후 우리 기술로 옛 건축물을 해체 복원하겠다고 나선 첫 건축물이 바로 이 극락전이었다.
그렇게 극락전 해체 보수 공사를 시작한지 2달이 지난 시점에 종도리에서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至正二十三年癸卯三月 日 改盖重修'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정(至正)은 원나라 혜종의 연호로 1363년(공민왕 12년)에 해당하며 보통 이런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한 후 대략 100∼150년이 지나야 크게 수리를 하기 때문에 극락전을 120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볼 근거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극락전은 1363년 이후에는 수리 기록이 없다가 1625년(인조 3년), 1809년(순조 9년)에 중수(重修)한 기록이 있어 이걸 보면 대략 100~150년에서 최대 200년 정도의 텀으로 수리한 것을 알 수 있다.
묵서명이 발견된 시점에서 건립년도가 확실하게 알려진 오래된 건물로 예산 수덕사 대웅전(1308년), 황주 성불사 응진전(1327년) 등이 있었는데 위의 사실을 보면 봉정사 극락전이 그 건물들보다 오래 됐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어서 이때부터 극락전은 일약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고건물로서의 라이벌로 1376년에 중수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있는데 중수 년도만 놓고 보면 봉정사 극락전이 더 앞서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봉정사 극락전을 가장 오래됐다고 본다.
1972년에 복원 공사를 했지만 그 후 구조물의 뒤틀림과 처짐, 벽체 균열 현상 등이 나타나 2000년 2월 구조안전진단 조사를 한 후 2002년 10월부터 2003년 6월까지 보강 공사를 했다.
봉정사 극락전의 공포 |
2.1.1. 비판
1972년에 이뤄진 해체 수리 공사 전의 모습과 공사 후의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비판이 있다.
공사 전의 모습과 복원 후 지금의 모습을 보면 과연 같은 건물인지 의심이 갈 정도인데 특히 정면의 모습이 너무 달라졌다. 옛 사진 자료를 보면 현재의 복원은 조선시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들을 제거하고 좀 더 과거의 원형으로 되돌리는 걸 목표했다고 추측된다. 이에 대해 2013년에 주남철 전 고려대 명예교수는 봉정사 극락전에서 잘못 복원된 부분을 5가지 요소로 집약한 바 있다. 정면의 띠살창호와 전면 툇마루, 내부 우물마루, 동서쪽 측면의 창호와 바람을 막는 풍판, 단청이 그것인데, 이런 건물의 부분 요소들이 고려시대 원형인지, 후대 변형된 것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모두 제거해버려 원형을 더욱 알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풍판이나 정면 띠살창은 함께 맞물린 여러 부재들의 흔적이나 접합된 결구 상태 등으로 미뤄 12~13세기 절의 원형을 간직했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해체 복원을 강행한 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60년대 극락전의 본래 모습을 묻고 70년대 작위적으로 복원한 중국풍의 모습을 원형처럼 고착시켰다고 비판했다.관련 기사
게다가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이라고 해봐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강릉 임영관 삼문 등 몇 개밖에 없고 이 건물들조차 각자의 구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애당초 극락전의 원형이란 건 찾을 수 없는데 바뀐 부분이라는 것들도 언제 바뀐 것인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고 임의대로 고쳐 마치 중국 건축물 처럼 바뀌었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당시 복원 공사 실무를 맡았던 김동현 한국전통문화학교 건축학과 석좌교수는 해체 수리 공사 도중 옛 모습이 밝혀져 띠살창, 풍판 등은 고려시대 건축 요소가 아닌 것으로 조사돼 제거한 것이며, 당시 전문가도 별로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해결책이었으며 재복원을 하려면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거기다가 진한 화학안료로 단청을 새로 입혀버려서 오래된 느낌이 전혀 안 난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부석사 무량수전과 비교하면 처참할 정도이다.
옛 모습 사진들 |
2.1.2. 국보 제15호
봉정사(鳳停寺)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능인대사(能仁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극락전 중수상량문>등 발견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7세기 후반 능인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
2.1.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 안동 봉정사 극락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안동 봉정사 극락전
-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봉정사 극락전
- 한국건축사 : 봉정사 극락전
- 두산백과 : 안동 봉정사 극락전
2.2. 안동 봉정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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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311호 | |
안동 봉정사 대웅전 安東 鳳停寺 大雄殿 | |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태장리)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
수량/면적 | 1동 |
지정연도 | 2009년 6월 30일 |
제작시기 | 조선 시대 초기 |
<colbgcolor=#315288> 안동 봉정사 대웅전 |
유명세로는 극락전에 다소 못 미치지만, 봉정사 대웅전도 정말 중요한 건물이다.
봉정사 대웅전은 조선 시대 전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며,[2] 건물 내부에는 석가모니 본존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특히 대웅전에는 건설 당시의 단청이 아직도 남아 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당시 불교 건축물 장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봉정사 대웅전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6월 30일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국보 제31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2.2.1. 국보 제311호
봉정사(鳳停寺)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능인대사(能仁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극락전 중수상량문>등 발견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7세기 후반 능인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쪽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쪽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2.2.2. 외부 링크
3. 교통
3.1. 시내버스
봉정사(542024·540519) | |
급행 | |
읍면간선 |
2022년 안동 시내버스 개편으로 351번은 310번으로 변경되고 주말과 공휴일에만 운행하는 하회마을 ↔ 봉정사간 급행2번이 신설되었다.
4. 여담
1999년 4월 21일, 당시 3박 4일로 방한 중이던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안동에 와 하회마을과 함께 봉정사에 방문했다. 여왕은 극락전 앞마당에 있는 돌무더기에 돌 하나를 얹고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방문 당시 방명록에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글도 남겼다. 이 인연으로 2022년 9월 8일 여왕이 사망하자 봉정사는 추모 영결식과 49재를 지냈으며 2023년에도 1주기 추모법회를 열었다.
2019년 5월 14일에는 방한 중이던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여왕의 방한 코스를 따라 안동에 와 하회마을과 봉정사에 들렀다. 왕자 역시 극락전 앞 돌무더기에 돌을 얹었고 방명록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산사에서 한국인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음을 느끼고 갑니다.'라고 썼다. 여왕과 왕자의 방명록 글, 여왕의 방한 당시 사진 자료 등이 현재 봉정사 대웅전 안에 전시돼있다.
2018년 5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권고 목록인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7개의 사찰 중 4개의 사찰만이 '등재 권고'를 받았으나 안동 봉정사는 당시 제외되었다. 제외 사유로는 역사적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았고, 특히 다른 4개 사찰에 비해 규모가 작아 제외되었다고 문화재청이 밝혔다.(링크) 하지만 봉정사가 가지는 가치가 크고, 특히 의상의 화엄종이 제창된 영주 부석사와 함께 중요한 역사적,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수덕사 대웅전을 포함하여 주심포 건축물의 특징을 가진 봉정사 극락전이 있으므로 문화재청에서 다시 등재 신청을 할 가능성이 크다.
문화재청의 노력과 설득을 거쳐 결국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한국의 산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봉정사를 주제로 한 가곡이 탄생했다. 봉정사에 대한 감흥을 담은 시에 작곡가 성용원이 노래를 붙여 소프라노 김지현이 불렀다. 봉정사
낙동강 휘감아 도는 천등산 기슭에
살포시 내려앉은 봉황을 찾아 나선다.
강파른 솔 숲길 따라 한걸음 오르니
고색창연한 만세루
허공에 달린 목어가 눈인사를 건넨다.
대웅전 팔작지붕 용마루
청기와 한 장 햇살에 반짝이고
천년의 신비 배흘림기둥에 서서
국화차 향기에 취하니 가슴에 꽃비가 내리네.
낙동강 휘감아 도는 하회마을을 지나
천등산 기슭에 내려앉은 봉황을 찾아 나선다.
강파른 솔 숲길 따라 한걸음 한걸음 오르니
가슴에 꽃비가 가슴에 꽃비가 가슴에 꽃비가 내린다.
(서영순 작시 봉정사)
살포시 내려앉은 봉황을 찾아 나선다.
강파른 솔 숲길 따라 한걸음 오르니
고색창연한 만세루
허공에 달린 목어가 눈인사를 건넨다.
대웅전 팔작지붕 용마루
청기와 한 장 햇살에 반짝이고
천년의 신비 배흘림기둥에 서서
국화차 향기에 취하니 가슴에 꽃비가 내리네.
낙동강 휘감아 도는 하회마을을 지나
천등산 기슭에 내려앉은 봉황을 찾아 나선다.
강파른 솔 숲길 따라 한걸음 한걸음 오르니
가슴에 꽃비가 가슴에 꽃비가 가슴에 꽃비가 내린다.
(서영순 작시 봉정사)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배경이 되는 절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영산암이 주 배경으로 나온다.
2024년 7월 초 며칠간 쏟아진 폭우로 7월 10일 극락전 뒤편 법면에서 토사가 유실돼 석축이 무너져 경북도와 안동시는 우장막을 설치해 쏟아져 내린 토사를 극락전 밖으로 퍼날라 추가 피해를 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