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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13 08:40:50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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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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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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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5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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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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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01~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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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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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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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1~2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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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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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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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51~3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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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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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201호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奉化 北枝里 磨崖如來坐像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산108-2번지
분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수량/면적 1구
지정연도 1980년 9월 16일
제작시기 신라시대
파일:국보201호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전경.jpg
<colbgcolor=#315288>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국보 제201호

[clearfix]

1. 개요

奉化 北枝里 磨崖如來坐像.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호골산 산자락 끝의 암반에 새겨진 불상(마애불)으로 7세기경 신라불상으로 여겨진다.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위치한 자리에는 본래 신라시대에 세워진 뒤로 조선 중후기까지 명맥을 이어왔던 지림사라는 사찰이 상당한 규모로 있었다고 전하는데,[1] 본 마애불상 바로 옆에는 원래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이 있었고[2] 석조반가상은 그 본래 크기가 약 4m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림사가 상당한 거찰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3] 본 마애불상은 지림사가 폐사된 이후 잊혀져 방치되고 있다가 1947년 주변 부지를 정리하던 중에 발견되었다고 한다.[4]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주변 바위에 명문과 같은 정보가 딱히 새겨진 것이 없어서 추정이긴 하지만, 발견된 지역이나 제작 기법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7세기 후반 경 신라의 불상으로 보인다. 만들어진지 오래 되었고 자연적인 침식으로 인해 여기저기 손상을 입은 부분이 많아서 불상의 보존상태는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이다.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1980년에 국보 제201호로 지정되었으며, 비바람에 의한 풍화를 막기 위해 1982년에 간단한 보호각을 세운 후로 현재까지 보호각 안에서 보존되고 있다.[5][6]

2. 내용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5m, 너비 4m의 커다란 암반에[7] 새겨진 높이 4.3m의 거대한 불상이다. 다만 조성된지 천 년도 이미 훌쩍 넘었으며 야외 노천암반에 새겨진지라 비바람에 노출되어왔기에 여기저기 깨지거나 마멸된 부분이 많아서 본 마애불상이 어떤 부처를 조각한 것인지는 알기가 힘들지만,[8]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상이 취한 자세, 얼굴의 형태, 광배의 장식과 주변의 화불들 등은 여전히 어느 정도 알아 볼 수는 있다.

파일:국보201호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전면.jpg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에서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특징은, 불상의 몸체가 화강암질 암반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서 조성되어 있는데 이것이 아주 도드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반이 되는 암반으로부터 가장 튀어나온 부분은 무려 1.7m나 된다고 하며, 이는 마치 부처가 바위 안에서 막 튀어나와 앉은 듯한 인상을 주거나[9] 기반 암반과는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석조 불상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만 (마치 에티오피아 랄리벨라 암굴교회들처럼) 기반 암반 자체를 파고들어가 깎아내어 가운데 불상을 새길 심만 남긴 뒤 이 심에 불상을 새긴 것인지, 아니면 암반으로부터 원래 옆으로 삐죽 나와있던 작은 바위를 본체로 삼아 불상을 새기고 주변을 다듬어서 이러한 효과를 주도록 디자인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10]

파일:국보201호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얼굴확대.jpg

본 마애불상의 얼굴은 비바람에 다소 마멸돼서 정확한 표정의 디테일은 알기는 어렵지만 둥글넓적한 얼굴형과 눈, 코, 입 등은 비교적 형태를 가늠할 수 있게 남아 있으며 어렴풋이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불상의 머리는 다소 크게 표현돼서 몸체와는 비례가 좀 맞지 않는다. 불상의 몸체는 그 크기에 맞게 위엄있게 표현되어 있으며 체구는 당당하다. 마멸되어 정확하게 판별하기는 어렵지만, 가슴팍에 올린 것으로 보이는 오른손은 여원인[11]수인을 취한 형체이며, 큼직한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손가락이 아래를 향하게 하여 전면을 향해 펼쳐서 시무외인[12]을 취하고 있다. 고대의 불상이 어느 부처를 표상한건지가 불명확할 때는 대체로 수인을 참조하여 특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감스럽게도 여원인과 시무외인의[13] 수인은 부처들마다 가리지 않고 두루 취하는 경우가 많은 흔한 수인인지라 본 마애불상의 정체를 밝히는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14]

본 마애불상이 입고 있는 옷도 전체적으로 마멸되어 그 형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양어깨에 의복을 걸치고 있으며 이는 왼팔을 전체적으로 덮고 쭉 이어져 내려와서 가부좌를 튼 양다리 및 무릎, 그리고 그 아래 대좌까지 늘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복의 디테일은 잘 안보이지만, 시무외인을 하고 있는 왼팔의 옷자락과 주름은 어느 정도 판명 가능하게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의복의 표현 방식은 신라 불상의 고식(古式) 양식이라고 한다.[15]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의 광배와 화불은 기반 암반에 새겨져 있다. 광배는 머리 뒤의 두광과 몸체 뒤의 신광이 모두 존재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두광은 절반 가량이 깨져서 두광의 좌측 부분은[16] 사라지고 없다. 남아 있는 두광의 우측에는 화불(化佛)로 추정되는 작은 부처 둘이 남아있다.[17] 또한 두광에는 연꽃 무늬 장식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본래의 두광은 화불 다섯과[18] 연꽃 무늬로 장식된 화려한 형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파일:국보201호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화불.jpg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우하단의 화불[19]
신광의 경우, 본 마애불상 좌우편의 상하로 화불이 둘씩 있어 총 넷이 있다. 이 역시도 안타깝지만 전체적으로 마멸된 정도가 심해 상세한 모습을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태다.[20] 그나마도 좌측 상단의 화불은 두광 부분과 함께 절반 이상이 깨져버려서, 대좌에 올라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다. 그래도 두광과 신광에 있는 화불들은 모두 연꽃 대좌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며 머리 뒤로 두광이 있는 모습이라는 것은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이외에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의 주변으로도 마애조각들이 존재하는데, 지림사 원통전 뒤편 암벽에는 불상 네 구와 탑 한 기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중 마애탑은 상당히 희귀한 사례로 경주 남산 탑곡 부처바위의 구층마애탑과 칠층마애탑[21], 경주 백률사 삼층마애탑, 2011년 발견된 신라시대 대구 마애암각군의 9층탑 부조등 극소수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22]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에 대해 전해지는 별다른 기록이 없어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고, 만들어진지 천 년도 훨씬 넘어 세월의 풍파 속에서 불상이 여기저기 많이 훼손되기는 했다. 다만 불상의 표현 기법은 여전히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기에, 이를 통해서 제작 시기를 대략적으로 추정한다. 불상의 얼굴이나 의복 표현 등으로 보아 7세기 전반기의 양식이 드러나지만, (비록 백제의 불상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보물 제45호인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에서 본 마애불상을 거쳐 보물 제221호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로 이어지는 흐름이 발견되고,[23] 불상의 얼굴 및 몸체에 드러나는 부드러운 조각력을 고려해보면 실제 제작시기는 대략 7세기 후반기로 추정하고 있다.[24]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비록 그 보존상태가 양호하진 않지만 7세기 중후반 신라 불상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영주와 봉화 일대의 불상을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0년 9월 16일에 국보 제201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201호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 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제221호)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1] 지금도 지림사가 있긴 하지만 이는 현대에 들어서(1949년경) 재건한 것이다. 본래의 지림사는 조선 중후기 경의 알 수 없는 시기에 폐사되었다고 전한다. 참조: 두산백과 - 지림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 지림사(봉화)[2]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은 1966년에 보호를 위해 경북대학교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1989년 보물 제997호로 지정되었다.[3] 본 마애불상과 석조반가상의 크기가 거대하며 이와 같이 큰 불상은 거찰에서나 모신다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본래의 지림사가 동네 평범한 작은 절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4]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5]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경북북부 - 북지리 마애불[6] 문서 상단의 사진과는 다르게 현재는 보호각에 축대도 올리고 기둥도 더 세워서 보호각을 더 크게 개축해놨으며 주변도 깔끔하게 정비되어있다.[7]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경북북부 - 북지리 마애불[8] 본 마애불상은 본래 감실 안의 본존불로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감실 혹은 전각이 있었을 것이지만(다만 돌벽으로 된 감실이었을지 아니면 현재의 보호각처럼 나무로 된 것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조선 중후기 지림사가 폐사된 이후 1947년 발견 전까지는 별다른 보호조치 없이 그대로 방치되어 왔다.[9]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경북북부 - 북지리 마애불[10] 문화재청은 전자의 관점을 취하여,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奉化 北枝里 磨崖如來坐像)[11] 與願印: 손바닥을 편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이 위를 향하도록 하여 밖으로 향하는 자세[12] 施無畏印: 손바닥을 펴고 밖으로 향하여 물건을 전하는 듯한 자세[13] 양손으로 두 수인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 시무외여원인이라고 합쳐서 부르거나 통인(通印)이라고 칭하기도 한다.[14] 참고문헌에 따라서는 항마촉지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조: 두산백과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1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16] 이하에서 말하는 좌우는 본 마애불상을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한다.[17] 참조: 미술대사전(용어편) - 화불[18] 참고문헌에 따라 일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조: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경북북부 - 북지리 마애불[19] 화불들 가운데 형태가 그나마 가장 잘 남아 있는 편이다.[20] 화불들의 얼굴은 심하게 마멸되어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21] 파일:attachment/황룡사/f0018015_4f90d019df93b.jpg[22]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경북북부 - 북지리 마애불[23]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24]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경북북부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