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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304호 | |
여수 진남관 麗水 鎭南館 | |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동문로 11[1]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관아 |
수량/면적 | 1동 |
지정연도 | 2001년 4월 17일 |
제작시기 | 조선 선조 32년(15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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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라남도 여수시의 국보 문화재이며, 소재지는 전라남도 여수시 동문로 11이다. 1963년에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승격되었다.2. 상세
조선 수군 전라좌수영 본영 터에 위치한 건물이다. 본래 이 건물 터에는 전라좌수영의 진해루라는 누각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게 불타 없어졌다. 전쟁이 끝난 후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시언[2]이 75칸의 객사를 세웠는데 이 건물이 진남관이다. 이 건물은 객사로서 만들어진 탓에 다른 객사들과 마찬가지로 해당 건물 중앙부에 조선 역대 왕들의 궐패를 봉안하고 매월 정기적으로 궁궐을 향해 참배를 했으며 전라좌수영을 방문하는 사신들이 머무는 숙소로도 활용되기도 했다.1716년(숙종 42) 화재로 한번 불탔다가 1718년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다시 건립하였으며 그 이후 1910년(순종 4)부터 50여년간 여수공립보통학교, 여수중학교, 야간상업중학원 등 여러 학교의 교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총 75칸, 건물 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서는 국내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건물 자체는 충무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충무공이 머물렀던 전라좌수영 자리에 있는 건물이기에 여수시는 충무공과 관련해서 홍보하고 있다.
도성 밖, 가장 거대한 건축물, 전라좌수영 객사 「진남관」의 100년 전 흑백사진
3. 기타
- 건물이 워낙 크고 웅장하다보니 전라좌수영의 지휘 본부 건물로 사용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한다. 실제로는 객사[설명]로 쓰였다.
- 석인상이라는 독특한 유물이 존재한다. 설화에 따르면 이순신이 한창 거북선을 건조할 때 왜군의 눈을 속이기 위해 총 7개를 제작해 배치하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딱 하나 남아있다.
- 정문 위치에 있는 누각은 망해루(望海樓)이며, 일제강점기 때 헐렸다가 해방 이후 복원되었다.
4. 해체보수
건물의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문화재청으로부터 105억원을 지원받고 여수시에서 45억원을 부담하여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전면 해체해 보수 공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헌데 해체하던 중 진남관의 동쪽에서 옛 건물지와 보도의 흔적이 발굴되면서 그것들까지 마저 발굴 및 조사한다면 준공 완료 시점이 2023년 이후까지 미뤄질 수도 있게 되었다. 결국 공사 일정은 2024년까지로 연기되었다.#공사 동안에는 진남관 일대가 간이 시설물로 덧씌워져 일반 관람은 불가하며, 여수시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단체 관광객에 한해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에 잠시 개방되어 관람할 수 있다.
5. 외부 링크
6. 국보 제304호
여수 진남관은 1598년(선조 31) 전라좌수영 객사로 건립한 건물로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의 역사성과 1718년(숙종 44) 전라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중창한 당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건물규모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이다.
진남관의 평면은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는데 동·서측 각각 2번째 협칸의 전면 내진주를 이주(移柱)하여 내진주 앞쪽에 고주(高柱)로 처리하였다. 이 고주는 곧바로 종보를 받치고 있고 대량은 맞보로 고주에 결구하여 그 위에 퇴보를 걸었다.
전후면의 내진주와 외진주 사이에는 간단한 형태의 퇴량을 결구하였고 측면 어칸에는 2개의 충량을 두어 그 머리는 내부 대량위로 빠져나와 용두로 마감되었다.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위에 짜여진 포작은 외부로는 출목 첨차가 있는 2출목의 다포계 수법을 보이고, 내부에서는 출목첨차를 생략하고 살미로만 중첩되게 짜서 익공계 포작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출목에 사용된 첨차에는 화려한 연봉 등의 장식을 가미하였고 특히 정면 어칸 기둥과 우주에는 용머리 장식의 익초공을 사용하였다.
각 주칸에는 1구씩의 화려한 화반을 배열하여 건물의 입면공간을 살려주고 있으며, 내·외부 및 각 부재에는 당시의 단청문양도 대부분 잘 남아 있다.
또한 건물 내부공간을 크게 하기 위하여 건물 양측의 기둥인 고주(高柱)를 뒤로 옮기는 수법을 사용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살리고,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건물의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 건물의 양측면에는 2개의 충량(측면보)을 걸어 매우 안정된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등 18세기초에 건립된 건물이지만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여수 진남관은 2014년 제6차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에서 해체보수하기로 결정되어 현재 보수 중에 있다.
진남관의 평면은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는데 동·서측 각각 2번째 협칸의 전면 내진주를 이주(移柱)하여 내진주 앞쪽에 고주(高柱)로 처리하였다. 이 고주는 곧바로 종보를 받치고 있고 대량은 맞보로 고주에 결구하여 그 위에 퇴보를 걸었다.
전후면의 내진주와 외진주 사이에는 간단한 형태의 퇴량을 결구하였고 측면 어칸에는 2개의 충량을 두어 그 머리는 내부 대량위로 빠져나와 용두로 마감되었다.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위에 짜여진 포작은 외부로는 출목 첨차가 있는 2출목의 다포계 수법을 보이고, 내부에서는 출목첨차를 생략하고 살미로만 중첩되게 짜서 익공계 포작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출목에 사용된 첨차에는 화려한 연봉 등의 장식을 가미하였고 특히 정면 어칸 기둥과 우주에는 용머리 장식의 익초공을 사용하였다.
각 주칸에는 1구씩의 화려한 화반을 배열하여 건물의 입면공간을 살려주고 있으며, 내·외부 및 각 부재에는 당시의 단청문양도 대부분 잘 남아 있다.
또한 건물 내부공간을 크게 하기 위하여 건물 양측의 기둥인 고주(高柱)를 뒤로 옮기는 수법을 사용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살리고,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건물의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 건물의 양측면에는 2개의 충량(측면보)을 걸어 매우 안정된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등 18세기초에 건립된 건물이지만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여수 진남관은 2014년 제6차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에서 해체보수하기로 결정되어 현재 보수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