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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 |
삼척 죽서루 三陟 竹西樓 | |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성내동 9-3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
수량/면적 | 1동 |
지정연도 | 2023년 12월 28일 |
제작시기 | 조선 시대 |
1. 개요
죽서루(竹西樓)는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성내동 죽서루길 37에 있는 누각으로 관동팔경중 하나다. 죽서루와 그 앞을 지나는 오십천(五十川)이 이루는 경관이 뛰어나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다.죽서루는 1963년 보물 제21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이라는 명칭으로 명승 제2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2023년 12월 28일, 밀양 영남루와 함께 국보로 승격되었다.[1]
2. 내용
건축연대는 미상이나, 고려 말 이승휴의 <동안거사문집>에 의하면 고려 원종 7년(1266)에 이승휴가 이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해 그 이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 태종 3년(1403)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각 동쪽의 죽상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인 죽죽선녀의 집을 따와 죽서루라 하였다고 전한다.삼척시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을 내려다보며 벼랑 위에 서 있는 죽서루는 자연 암반을 초석 삼아 높고 낮게 기둥을 세워서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라 여겨질 만큼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역사에 약간 관심이 있다면 송강 정철, 미수 허목 등 고려와 조선 통틀어 이름난 문인이나 정치인들이 여기에 들러 글솜씨를 과시하고 갔음을 알 수 있다. 미수 허목은 부사 시절 ‘第一溪亭’(제일계정) 현판과 중수기를 남겼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20세기 중반까지 지자체장 등으로 부임했다 하면 현판이나 중수기를 하나쯤 쓴 통에 기둥 들보마다 그것들이 다 걸려 있다.
3. 관람정보
관람시간은 09:00~18:00이다.[2] 관람료와 주차비는 무료이다.4. 여담
5. 외부 링크
- 삼척문화관광홈페이지: 죽서루
- 한국어 위키백과: 삼척 죽서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삼척 죽서루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삼척 죽서루
- 한국건축사: 삼척 죽서루
- 답사여행의 길잡이 3 - 동해·설악: 죽서루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죽서루
- 대한민국 여행사전: 죽서루
- 대한민국 구석구석: 삼척 죽서루
- 두산백과: 삼척 죽서루
6. 국보
삼척 죽서루는 고려 명종(1171∼1197)대에 활동하였던 김극기(金克己, 1148∼1209)가 죽서루의 풍경을 읊은 시 등을 통해 적어도 12C에는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서루(西樓)’로 불리다가 14C후반에 들어서 ‘죽서루(竹西樓)’라 불리기 시작했다. 또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죽서루단청기(竹西樓丹靑記)』(1472), *허목(許穆, 1595∼1682)의 『죽서루기(竹西樓記)』(1662) 등에서 ‘1403년 부사 김효손(金孝孫, 1373∼1429)이 옛터에 새로 창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가 조선전기에 재건된 이후 여러 차례 보수, 증축되었으나 관련 기록이 잘 남아있으며, 조선후기 증축된 이후 그 본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 허목은 ‘죽서루(竹西樓)라는 이름은 동쪽에 죽장사(竹欌寺)라는 절이 있어서 그 서편에 위치한 누각이다’라는 뜻으로 붙었다고 소개
삼척 죽서루는 1403년 정면 5칸(측면 2칸)의 규모로 중창된 누정이었으나, 1530년 남쪽 한 칸(측면 3칸)이 증축되었고, 1788년 북쪽 한 칸(측면 2칸)이 증축되면서 현재와 같은 팔작지붕 형태가 되었다. 이처럼 조선 초기의 중앙 5칸과 조선 중기 이후 확장된 좌ㆍ우측 1칸은 기둥 배열, 가구의 짜임, 천장과 바닥면의 처리, 공포 및 세부 의장 등에서 각 시기별 건축적 특징을 달리 보여주고 있다.
삼척 죽서루의 기둥은 절반 이상이 자연 암반 위에 올라서 있다. 22개의 기둥 중 자연 암반 위에 세워진 기둥이 13개이고, 9개는 자연석 초석을 두고 받쳤다. 증축한 남쪽 한 칸은 바닥에 마루를 깔지 않고, 자연의 암반을 그대로 둔 채 출입을 돕기 위해 가운데 한 칸 부분만 고르게 다듬은 돌을 깔았다. 내부는 벽과 창호가 없는 개방된 평면으로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어 보이는 연등천장과 우물정자 모양으로 마감된 우물천장으로 설치되어 있다. 마루는 우물정자 모양의 귀틀(나무틀)에 짧은 판재를 끼워서 바닥을 구성하는 우물마루로 되어 있는데, 바깥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
삼척 죽서루에는 조선 숙종(肅宗)과 정조(正祖)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유명한 시인과 명신들의 한시가 새겨진 현판이 많았으나, 1959년 태풍 사라의 영향으로 많이 유실되고 현재는 28점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죽서루의 절경을 표현한 정철의『관동별곡(關東別曲)』등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인, 묵객 등 다양한 계층이 죽서루를 소재로 수많은 시문, 가사 등을 남겼다. 죽서루의 정면에 걸린 '죽서루(竹西樓)'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은 1710년(숙종 36)에 삼척 부사로 왔던 이성조(李聖肇)의 글씨이다. 삼척 죽서루를 표현한 그림도 많이 남아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에 있는 죽서루의 그림이다. 이외에도 김홍도(金弘道, 1745∼), 강세황(姜世晃, 1713∼1791) 등도 그림을 남겼다.
삼척 죽서루는 각종 기록을 통해 중창과 후첨된 건립연대가 명확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고, 조선 초기와 중기 이후의 건축 원형을 잘 유지하면서 건축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 건축사적으로 중요하며, 수많은 명사들의 시문과 그림이 많이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 또한 크다. 더불어 오십천과 어우러진 죽서루의 경관이 빼어난 점 등을 고려할 때 국보(國寶)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 허목은 ‘죽서루(竹西樓)라는 이름은 동쪽에 죽장사(竹欌寺)라는 절이 있어서 그 서편에 위치한 누각이다’라는 뜻으로 붙었다고 소개
삼척 죽서루는 1403년 정면 5칸(측면 2칸)의 규모로 중창된 누정이었으나, 1530년 남쪽 한 칸(측면 3칸)이 증축되었고, 1788년 북쪽 한 칸(측면 2칸)이 증축되면서 현재와 같은 팔작지붕 형태가 되었다. 이처럼 조선 초기의 중앙 5칸과 조선 중기 이후 확장된 좌ㆍ우측 1칸은 기둥 배열, 가구의 짜임, 천장과 바닥면의 처리, 공포 및 세부 의장 등에서 각 시기별 건축적 특징을 달리 보여주고 있다.
삼척 죽서루의 기둥은 절반 이상이 자연 암반 위에 올라서 있다. 22개의 기둥 중 자연 암반 위에 세워진 기둥이 13개이고, 9개는 자연석 초석을 두고 받쳤다. 증축한 남쪽 한 칸은 바닥에 마루를 깔지 않고, 자연의 암반을 그대로 둔 채 출입을 돕기 위해 가운데 한 칸 부분만 고르게 다듬은 돌을 깔았다. 내부는 벽과 창호가 없는 개방된 평면으로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어 보이는 연등천장과 우물정자 모양으로 마감된 우물천장으로 설치되어 있다. 마루는 우물정자 모양의 귀틀(나무틀)에 짧은 판재를 끼워서 바닥을 구성하는 우물마루로 되어 있는데, 바깥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
삼척 죽서루에는 조선 숙종(肅宗)과 정조(正祖)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유명한 시인과 명신들의 한시가 새겨진 현판이 많았으나, 1959년 태풍 사라의 영향으로 많이 유실되고 현재는 28점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죽서루의 절경을 표현한 정철의『관동별곡(關東別曲)』등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인, 묵객 등 다양한 계층이 죽서루를 소재로 수많은 시문, 가사 등을 남겼다. 죽서루의 정면에 걸린 '죽서루(竹西樓)'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은 1710년(숙종 36)에 삼척 부사로 왔던 이성조(李聖肇)의 글씨이다. 삼척 죽서루를 표현한 그림도 많이 남아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에 있는 죽서루의 그림이다. 이외에도 김홍도(金弘道, 1745∼), 강세황(姜世晃, 1713∼1791) 등도 그림을 남겼다.
삼척 죽서루는 각종 기록을 통해 중창과 후첨된 건립연대가 명확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고, 조선 초기와 중기 이후의 건축 원형을 잘 유지하면서 건축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 건축사적으로 중요하며, 수많은 명사들의 시문과 그림이 많이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 또한 크다. 더불어 오십천과 어우러진 죽서루의 경관이 빼어난 점 등을 고려할 때 국보(國寶)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 문화재청 홈페이지: 삼척 죽서루 (三陟 竹西樓)(보물 제213호일 때의 과거 설명)
이 건물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이며,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2칸이지만 원래 앞면이 5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도 천장의 구조로 보아 원래 다른 형태의 지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지만 재료 형태는 다른 양식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 또한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도 특이하다.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년(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주변 두타산의 푸른 숲,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있어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이며,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2칸이지만 원래 앞면이 5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도 천장의 구조로 보아 원래 다른 형태의 지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지만 재료 형태는 다른 양식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 또한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도 특이하다.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년(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주변 두타산의 푸른 숲,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있어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7. 명승 제28호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은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삼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십천에서 가장 절경지로 알려진 곳으로 죽서루에서 내려다보는 오십천 경관과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죽서루와 절벽부의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죽서루 누각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면 7칸, 북쪽 측면 2칸, 남쪽 측면 3칸의 특이한 형태의 누 건물이며 현재 보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오십천은 삼척시 도계읍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가는 동해안에서 가장 긴 감입곡류하천으로 오십천 협곡의 암벽들은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되어 오랜 기간 하천작용으로 퇴적 변형되어 현재의 다양한 석회암지대 지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십천이란 이름은 발원지에서부터 동해에 이르기까지 50여번 돌아 흐른다고 하여 붙은 것이라 전한다.
죽서루가 위치하는 곳은 오십천의 협곡이 끝나려 하는 부위로 오십천과 주변 협곡, 죽서루 절벽 배후의 카르스트 지형과 길게 늘어진 송림 등이 태백산지와 함께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죽서루 누각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면 7칸, 북쪽 측면 2칸, 남쪽 측면 3칸의 특이한 형태의 누 건물이며 현재 보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오십천은 삼척시 도계읍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가는 동해안에서 가장 긴 감입곡류하천으로 오십천 협곡의 암벽들은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되어 오랜 기간 하천작용으로 퇴적 변형되어 현재의 다양한 석회암지대 지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십천이란 이름은 발원지에서부터 동해에 이르기까지 50여번 돌아 흐른다고 하여 붙은 것이라 전한다.
죽서루가 위치하는 곳은 오십천의 협곡이 끝나려 하는 부위로 오십천과 주변 협곡, 죽서루 절벽 배후의 카르스트 지형과 길게 늘어진 송림 등이 태백산지와 함께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