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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1:59:55

북궁

파일:L20150821.010010720070001i2.jpg
<colbgcolor=#4a2d5b> 북궁 복원 상상도
경주 월성 북쪽에 있는 큰 팔작지붕 정전을 중심으로 한 주변 건물 몇 채가 북궁이다.[1]

1. 신라 왕조의 궁궐
1.1. 상세
2. 고려 왕조의 궁궐3. 중국 후한의 궁궐

1. 신라 왕조의 궁궐

한국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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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등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신라궁궐.

1.1. 상세

문헌기록은 없는데 유물로만 존재가 밝혀진 남궁과는 정반대로, 사서에는 북궁이라는 궁전이 있다는 게 몇 번 나오는데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 만들었는지, 관련 유물은 베일에 쌓여 있다. 당연히 이름을 봐선 서라벌, 특히 정궁인 경주 월성 기준으로 북쪽 어딘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도. 삼국통일 이후에만 언급되므로 문무대왕이 삼국통일 이후 동궁을 만들었듯이 북궁도 삼국통일 이후에 만들었을 수도 있겠으나 정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확정은 불가능하다.
7월에는 북궁(北宮)의 정원 가운데 먼저 두개의 별이 떨어지고 또 한 개의 별이 떨어져, 세 개의 별이 모두 땅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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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제2권 기이 제2 혜공왕}}}
겨울 12월 을사에, 임금이 북궁(北宮)에서 돌아가셨다. 시호를 진성(眞聖)이라 하고, 황산(黃山)에 장사 지냈다.

{{{#!wiki style="text-align:right"
삼국사기제11권 신라본기 제11 진성여왕}}}
조선 초기 인물 조위가 남긴 문집 매계집에서도 신라 북궁이 등장한다.

혜공왕이나 진성여왕이나 북궁 관련 기록이 경문왕계에만 나와서, 경문왕계의 거주지 혹은 경문왕가 자체를 북궁이라 한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즉, 궁(宮)이라고 거창하게 부르긴 해도 조선시대의 운현궁마냥 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던 잠저 정도일 거라는 추측. 위의 진성여왕도 897년 6월에 왕위를 효공왕에게 물려주고 북궁으로 옮겨가 살다가 같은 해 12월에 북궁에서 죽었다는 기사다.

참고로 경주시 성동동 전랑지(사적 제88호)도 월성 정북쪽이고 축구장 4배 넓이의 부지에 건물이 정연하게 배치되었던 흔적이 있어 뭔가 크고 중요한 신라시대 건물이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별궁 터일 거라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아직 전랑지 전체에 대한 발굴조사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어서[2] 위의 북궁과 관련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전랑지는 개발만 막고 그냥 공터로 남겨두고 있다.

다만 전랑지의 건물지 형태가 가운데 있는 작은 정사각형 건물 양쪽으로 큰 건물들이 배치되고 정사각형 남쪽과 북쪽이 길처럼 뚫려 있으며 담장이 정사각형 건물의 남쪽과 북쪽을 제외한곳에 둘러져 있는 구조였는데 이는 통로같은 행각들이 커다란 정전을 빙 둘러싸고 적어도 남쪽엔 문이 있는 통상적인 동북아시아 궁궐 형태와는 다른 형태라서 북궁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혹은 경주 시가지 북쪽 용강동(경주)에 있는 경주 용강동 원지 유적(사적 제419호)도 북궁의 후보 중 하나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 곳은 1998년~1999년까지 약 2,600여평을 조사한 결과 '제2 안압지'라고 불렸을 정도로 8~9세기에 조성된 규모가 큰 인공연못 정원 유적지이다. 비교대상이던 안압지(동궁과 월지) 역시 궁궐건축이니만큼 유사한 이 곳도 진성여왕대의 북궁이거나 적어도 별궁 유적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용강동 원지는 월성으로 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북궁이 아닐 수도 있다. 비록 신라와는 성향이 다른 조선의 경우이긴 하나 조선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서로 가까운 위치에 배치되었고 신라경주 월성에 동궁과 남궁이 딱 붙어있을 정도로 가까웠고 금성도 어느정도 서북쪽 가까운 곳에 위치했으리라 추정되는데 용강동 원지는 월성으로 부터 너무 멀다. 오히려 전랑지가 월성에 가깝다.

2. 고려 왕조의 궁궐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의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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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
만월대 / 개경 본궐 수창궁 북천동궁 수춘궁 연경궁 명복궁 양화궁 현덕궁 #s-2
승천부 강도 서경 동경
승천궐 고려궁지 / 강도 본궐 서궁 장락궁 대화궁 용덕궁 구제궁 좌우궁궐 조유궁
남경 동주 그 외 사찰 내 재궁
남경 별궁 태봉국 철원성 만월대 내 별궁 고려의 궁원 남궁 의종 대 별궁 삼소궁궐 흥왕사 안화사 }}}}}}}}}

고려 시대 본궐 북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궁궐.

고려사에선 최충헌 열전과 충혜왕 본기, 동국통감에선 충혜왕 때 등장한다. 최충헌 열전에선 최충헌, 최충수 형제가 당시 군주 명종을 폐위시키고 당시 태자였던 강종협박할 때 등장하는데 내원(內園) 북궁(北宮)에 있던 태자와 태자비를 강제로 나오게 해 유배시켰다고 한다.#

동국통감 충혜왕 조엔 충혜왕이 북궁에서 술을 먹거나, 북궁에 나와 참새를 잡거나 등 탱자탱자 놀 때 조금씩 등장한다.

내원서(內園署)라는 기관이 궁 내 여러 동산과 정원을 담당하는 관청이었으므로 북궁은 궁 내 유원지였고, 이는 유랑을 좋아하던 의종이 만든 궁궐로 추정된다.

3. 중국 후한의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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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이 복원도는 잘못된게 월성의 북문 바로 북쪽에는 현무대로가 시작되는 곳이 있었지 저렇게 궁전 하나가 붙어있는 체로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근거가 없다. 당장 하술할 북궁의 후보 전랑지와 용강동 원지 모두 월성과는 거리가 있다.[2] 경주에는 조사할 유적이 넘쳐나서 우선순위가 밀리는 중이다. 당장 2018년 현재도 전랑지보다 훨씬 주요한 유적인 정궁 월성, 시가지 한복판의 쪽샘지구 조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