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미
反西方 / Anti-Western sentiment[1], Westernophobia[2], Anti-Atlanticism, Anti-Westernism서방(西方) 진영에 대한 혐오, 반대를 의미한다. 옥시덴탈리즘과 연관이 조금 있지만 옥시덴탈리즘은 주로 문화와 역사 영역에서 쓰이는 반면 반서방은 현실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쓰인다는 차이점이 있다. 옥시덴탈리즘과는 달리 반서방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맥락에서는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들까지 동방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서방이란 서양 문화권 혹은 미국, 영국, 서유럽, 캐나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만을 가리키는 것보다는 정치외교적으로 제1세계에 위치해 있는 국가들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영어권[3], 서유럽/남유럽/북유럽 국가들[4], 중국과 북한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5], 러시아-벨라루스를 제외한 동유럽 내 국가들[6] 등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 수많은 국가를 가진 서방 세계의 패권주의적 행동 및 정책을 거부하는 사상이나 운동, 성향은 반서방 성향, 반서방주의라고 하며 이렇게 서방 세계 전체를 싫어하는 감정, 서방 세계에 대한 반감을 반서방 감정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반서방 국가의 예시로는 제2세계 국가들, 즉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 국가들이 있었으며 소련 붕괴 이후에는 러시아나 벨라루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7]
반서방의 거대한 축을 차지하는 또 다른 국가로는 중국이 있으며 역시 이념적 대립, 패권 행보로서 현재는 서방의 리더격 국가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과 심각한 알력 다툼을 하고 있다.
역사, 종교, 문화, 외교, 정치적 이유로 서방의 아젠다에 반감을 품고 대립하는 다양한 국가들이 남미, 중동에도 존재한다.
2. 상세
이스라엘을 서방에 포함시킬 경우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이 비판의 대상 혹은 적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꼭 이 세 나라가 아니라도 서방 전체를 대체로 싫어하는 경향이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대륙[8], 북한, 중국, 러시아에서 나타난다. 아르헨티나가 속해 있는 중남미는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문제로 인해 EU와 대립하고 있다.[9]제3세계의 강경 반서방 성향의 사람들은 좌우 가릴 것 없이 정치적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자유주의, 개인주의, 민주주의에 반감을 가진 경우도 많으며 서구의 개인주의 혹은 서구식 인권 개념이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파괴한다고 보기도 한다.[10]
이들은 중남미[11]와 일부 아프리카 지역[12]을 제외하면 종교적으로 개신교나 가톨릭에 적대적인 편이다. 그런 국가 중 이슬람 국가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
서방세계와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들 중 하나가 중국, 러시아이기 때문에 이들과 우호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는 경향인 친러, 친중 성향과 반서방 성향도 많이 겹치는 편이다. 많은 반서방 성향 국가들은 서방세계와 대립하고 있는데 마침 중국, 러시아 등도 서방세계와 대립하니까 이들과 손을 잡고 같이 서방세계를 견제하는 것이다.
반서방주의자들은 UN 등의 국제기구, 국제법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말이 국제기구, 국제법이지 사실상 서방국가의 주류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편향된 기구와 법률이라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UN 등의 국제기구가 자국 내 인권 침해, 국제법 위반을 문제삼으려 할 때, 자신들의 가치를 강요하려 든다며 반발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에서도 친중, 친러 성향을 띄는 사람 중에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한국은 친미, 친영 등 친서방 강세 인데다 반서방 성향 인사들이 한국의 주적이자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존재, 해방정국부터 6.25 전쟁 당시까지 공산주의자들의 만행 때문에 다른 식민지배 피해국들과 달리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공감받기 어려운 편이다. 비서구권 국가에서는 해외를 본받아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내 개혁파를 사대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3. 역사
현대인이 알고 있는 반서방은 19세기 초에 성립된 것으로, 전근대 중세 시대에 정교회, 이슬람 세력의 로마 가톨릭, 개신교 문화권에 대한 혐오·반대도 반서방으로 정의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론 19-20세기적 지정학적, 문화적 성향을 말한다.3.1. 유럽
3.1.1. 서유럽권
반서방주의는 고정관념과 달리 유럽에서 발생했다.비서구권에서는 서방의 가치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양 문화권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히 말해 미영프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서방의 근대 가치는 서양 문화권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이러한 근대식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반대하는 것은 아시아보다 미영프를 제외한 유럽의 타 지역에서 생겨나는 것이 당연지사다.
영국 내부에서만 정치적 영향을 끼쳤던 17세기 명예 혁명에 비해 보다 더 과격한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에서 발생하면서 당시 전근대 유럽을 주도하던 가톨릭 성직자들이 학살당하고 성당이 훼손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 당시 혁명가들은 '이성 숭배'[13]를 창시하여 당시 유럽인들을 경악시켰다. 나폴레옹 1세는 프랑스 제1제국을 건국하여 유럽을 정복하면서 자유주의를 전 유럽에 설파했는데 당시 대 프랑스 동맹의 구성원이었던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등은 이에 반발하여 빈 체제를 설립했지만 빈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고 프랑스에서 다시 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반발이 반서방주의의 시작이었다.
19세기 중엽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미국 남부는 아직도 전근대적 봉건주의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서방에 위치했던 영국, 프랑스, 미국 북부의 근대주의를 안 좋게 생각했고 그들을 기계적이고 자신들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14]
그들의 이런 사고는 파시즘, 나치즘, 스탈린주의, 기독교 근본주의로 계승되었고 그들의 이론은 영국, 미국, 프랑스 제국주의에 반발하던 라틴아메리카, 아시아[15], 아프리카, 스페인[16]에 전파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주도한 독일과 냉전을 주도한 소련이 둘 다 서방을 상징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에게 패배하자 한 때는 적이었던 독일이 미국, 영국, 프랑스의 동맹이 되었고 그 지역의 반서방주의자들 가운데 일부는 친서방을 내세우게 되었다. 다만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반발하는 강경파 일각에서는 서방적인 가치들을 모두 부정하며 복고주의•반동주의를 골자로 하는 제3의 위치에 가까운 스탠스를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친서방인 제1세계와 반서방인 제2세계의 대립은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일지에 대한 서양 국가들 사이 대립에서 비롯되었으며 대다수의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이유로 제3세계에 들어갔다. 그러니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 중 일부가 제1세계나 제2세계 진영에 편입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존 서방 국가들의 대립에 편승하는 꼴이 된다. 다만, 자국을 도와주었던 국가가 있으면 해당 국가의 진영으로 편입할 수 있는 게 국가의 외교다.
3.1.2. 동유럽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기 전까지 러시아 제국의 범슬라브주의자들은 반독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영국, 프랑스의 모더니즘을 혐오했고 그 국가의 주류 종교인 개신교, 로마 가톨릭이 기독교 전통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으며 동방 정교회 근본주의를 내세웠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천재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들 수 있다.그러나 이런 슬라브주의자들 중에서 정교회 근본주의 성향 인물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 상당수가 프랑스로 망명하였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소련의 반종교 정책 때문에 지하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다만 이런 사람들이 다 죽어나간 것은 아니었는데 스탈린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특히 교사들 중에서 이렇게 몰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도 한다.[17]
이런 슬라브주의 + 정교회 근본주의 성향이 소련 붕괴 직후에 금세 복권되었다는 것은 공산당에서 이들을 완전히 박멸하지는 않고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방치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독소전쟁 당시 스탈린이 정교회 탄압을 완화시켰던 것이나 독일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에 맞서 노브고로드 공국을 지킨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를 기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상술한 연유로 범슬라브주의와 정교회 근본주의는 러시아의 우경화 및 반서방주의 조장에 악용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민족 자결주의와 좌익 민족주의를 내세웠지만 이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제국주의를 반대한다는 면에서 반서방주의보다는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 성격이 강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레닌은 노동자 인구 비율이 적은 대신 빈농 인구가 많고 소수민족 인구가 넓게 분포한 당시 러시아 상황에 맞추어 "혁명의 주체"로 노동자 외에도 농민과 소수민족을 끌어들인 형태로 이론을 개량하였는데 당시 서구의 식민지 출신 지식인의 상당수가 레닌주의에 큰 호감을 느꼈다.
이들 식민지도 인구 상당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상황이었고 노동자 인구는 식민 지배국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었던만큼 레닌주의가 대안으로 느껴진 것이 당연했다. 레닌과 레프 트로츠키는 제국주의 열강을 비판했지만 레닌이 SF 영화를 좋아했다는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서구 문화 자체는 혐오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 변방 조지아 출신이자 신학교 출신으로 좀 더 보수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친서방적이라는 명목으로 숙청해 버리고 소련을 위시로 사회주의를 민족볼셰비즘으로 왜곡했으며 스탈린주의를 통해서 공산주의 진영의 반서방 감정을 더욱 공고히 했다.[18]
스탈린 사후에 소련 지배자들은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였지만 냉전에서 제1세계를 이기고 제3세계에 소련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20세기 초 민족볼세비스트들이 써먹던 반서방 수사를 확산시켰는데 이는 이란의 이슬람주의 사상가 알리 샤리아티, 아랍권의 바트당 및 동아시아의 마오주의[19]에 영향을 미쳤다.
21세기 초반 신냉전 과정에서 중국의 중화 패권주의자들도 일대일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서방주의를 선동하면서 20세기 중반에 소련에서 사용하던 수사를 재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3.1.3. 튀르키예
근세 대항해시대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화하고 이 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은이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은 오스만 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탈리아인 상인들과의 무역 과정에서 상당수의 은화가 오스만 제국으로 유입되고 이러한 은화 중에서는 악화가 많았다.그러나 서유럽과 다르게 산업 기반이 튼실하지 않았던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고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 농민들 사이에서는 유럽인 상인들 때문에 오스만 제국 경제가 엉망이 되어 간다는 공포감이 만연했다.
무슬림 농민들의 불안감은 이탈리아 상인들과 무역하던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들이 부를 축적하고 땅을 매입하면서 증폭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은 오스만 제국의 번국이던 맘루크 왕조의 해군을 격파하고 인도양 무역을 장악하고 홍해 무역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면서 오스만 제국 경제에 이중의 타격을 입혔다.
근대 러시아 제국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러시아-튀르크 전쟁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이 상당수의 영토를 상실한 것은 물론 범슬라브주의가 퍼지면서 오스만 제국 유럽 영토 내 슬라브계 민족들이 봉기하는 과정이 일어났다.
오스만 제국이 영토를 상실하는 과정에서 많은 무슬림들이 보복으로 살해당하는데 여기에 더해 근대 러시아 제국에서 학살, 추방당한 체르케스인 난민들이 오스만 제국으로 밀려들어오면서 오스만 제국의 반기독교 감정이 근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다.
범슬라브주의에 영향을 받은 범투란주의[20]가 대표적이었는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까지 튀르키예에서 인기가 있었던 인종주의 유사역사학이었고 반서방주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후 현대 튀르키예는 제1세계에 들었고 세속주의 독재정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범투란주의는 적어도 정치권에서만큼은 비주류로 밀려났으며 오히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완전히 서구권에 편입되었다. [21]
3.2. 아프리카
3.3. 라틴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는 16세기에 스페인, 포르투갈이 점령하면서 서구 문화를 직접 이식받은 지역이었지만 당시 카스타(Casta)에 따른 신분차별에 대한 크리올의 반발로 19세기 초부터 옥시덴탈리즘이 시작되었다.자세히 설명하자면 순혈주의가 강했던 근세 스페인에서는 페닌술라르, 즉 반도 출신 백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였는데 다시 말해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출생한 사람들은 백인이더라도 2등시민으로 차별을 당했다.
19세기 초반 의학이 발달하여 신대륙 이민자들의 사망률이 감소하고 스페인 남부 지방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이민이 폭증했는데 이 과정에서 크리올 상류층들은 귀족 관료층인 자신들이 왜 스페인 남부에서 갓 이민 온 문맹 농민들보다 더 낮은 계급으로 취급받는다는데 불만을 느끼고 시몬 볼리바르의 봉기로 대표되는 반스페인 봉기를 일으켰다.
새로 독립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스페인에 대한 독립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메리카 원주민이 건설했던 아즈텍, 마야, 잉카 문명을 옹호하였다. 아즈텍 왕족 후손들이 계속 스페인인들과 혼혈되어 사실상 백인이 되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멕시코는 아즈텍의 식인, 인신공양 문화는 최대한 미화하거나 축소하며 설명하는 등 이들을 잔혹한 스페인에게 희생된 순백의 피해자로 미화하곤 했으며 20세기 말에 이들 문명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로 아즈텍, 마야가 자행했던 인신공양, 식인, 해골 유적들이 발견되면서 이들도 잔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이런 것들도 최대한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패권이 강화되었을 때 라틴아메리카 각국에는 포퓰리즘 독재 정권이 유지되었고 미국은 외교상 편의 목적으로 중남미의 부패한 독재국가들을 지원하였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속국화하려면 약소국이 민주국가인 경우보다 독재국가인 경우가 강대국 입장에서 훨씬 더 바람직한데 독재국가는 독재자만 매수하면 되지만 민주국가의 경우 한두명 매수하는 걸로 일이 쉽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22]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반발로 반미 감정이 퍼져나갔다.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우고 차베스 같은 반서방 인사들을 지지하고 라틴아메리카가 막장인 것은 스페인 다음으로 미국의 간섭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남미는 반서방 정서가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역사적으로 미국에게 당한 것이 많아 미국을 아니꼽게 보는 국민 감정에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반서방 감정이 상당히 과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쿠바 같은 강경 좌파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이상 정부차원에서는 미국, 서방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으며 2020년대의 2차 핑크 타이드 주류는 무조건적인 반서방이나 권위주의 좌파와는 거리가 멀다.[23]
3.4. 이슬람권
중동의 무슬림들은 타종교나 타종파에 배타적이고 그것들을 이단시했지만 이는 반서방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았는데 이슬람 교리 자체는 유럽과 무관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 당시 이슬람권에서는 "나폴레옹 침략군을 무찌르자" 같은 감정 대신 '미개한 줄로만 알았던 서구의 과학기술이 이슬람권을 압도한다는 충격'의 여파가 더 컸다.[24]19세기 초 이슬람 모더니즘 학자들은 서양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보다는 서구 문물을 배우자는 입장이었고 심지어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흡사한 형태, 즉 서구의 유물론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학자들이 출현하여 번역 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25]
20세기 초에 영국, 프랑스가 중동을 식민통치하고 직접 식민지가 되지 않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앵글로 페르시안 오일 컴패니가 이란 카자르 왕조를 비공식적으로 식민화하는 사례 등으로 중동 전역에 반서방 감정이 퍼졌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 지식인들 중 하산 알 반나의 사례처럼 블라디미르 레닌의 레닌주의에 경도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중동에 현대적인 의미의 반서방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아랍민족주의자들, 이슬람주의자들은 나치 독일, 스탈린 이후 소련이 퍼트리는 반유대주의, 반서방주의를 수용했다. 20세기 초에 나치 독일과 협력하고 20세기 중엽에는 이스라엘의 건국 및 중동전쟁의 대패 이후 큰 충격을 받은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제1세계를 반대하고 있다.
이때부터 아랍인, 이란인들은 본격적으로 자신을 서양과 다른 정체성이라고 분리하여 인식하기 시작했다. 즉 이 때부터 사이드 쿠틉 등의 이슬람주의 사상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심플하지만 논리적 비약이 있는 반서방=이슬람이라는 공식이 본격적으로 확립되었다.
냉전 이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반서방주의를 내세워 테러리즘을 정당화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반서방주의는 이슬람권 자체의 역량 강화보다는 아불 알라 마우두디가 파키스탄 정부의 학교 건설과 문맹 퇴치를 반대하는 거나 탈레반의 폭정 등 우민화 정책에 악용되었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이슬람의 발전은 바라지만 서구화는 반대한다.", "타락한 서구화와 여성 해방이 혼동되어선 안된다."는 슬로건으로 파키스탄 사람들을 선동함과 동시에 카슈미르 해방을 위한 성전을 주장하며 스스로 반정부주의자라고 직접 감옥에 수감되는 퍼포먼스까지 벌였는데 파키스탄 군부는 이런 반서방 포퓰리즘을 악용하여 학교나 발전소를 건설해야 하는 돈을 대부분 국방비에 몰빵하였다.[26]
파키스탄 국가 예산 절반 이상이 국방비로 할당되었는데 이렇게 들어간 국방비는 "방산비리는 생계형 비리"라는 논리 말마따나 대부분 다시 영국, 스위스 은행 등으로 빠져나간 것은 물론이다. 여성이 부르카를 쓰지 않고 대학에 다니는 것이 타락의 증거라고 주장하던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파키스탄 군부독재자들의 보은 아래서 뉴욕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뉴요커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신학은 그의 사후에도 탈레반의 사상으로 직접 계승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아랍권의 반서방주의가 항상 실패한 결과만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알제리 전쟁 당시 알제리는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프랑스로부터 독립이 가능했다. 이슬람권의 반서방주의의 문제는 이슬람권의 문맹 퇴치 등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서방주의 이데올로기가 이슬람주의 세력에게 악용된 것에 있었다.
알제리 독립전쟁은 이슬람주의자들의 간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성들이 독립 전쟁에 적극 참전하면서 권리를 보장받음과 동시에 독립 이후 알제리 정부가 근본주의 세력을 견제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아프가니스탄 수준의 최악의 혼란은 피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서양의 식민통치를 받은 적이 없었고 영국, 미국의 후원으로 성장했지만 국내에서 반서방을 선동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지 사우디 왕가의 권력과 우민화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이 있어서이고[27] 사우디 상류층들은 현재까지도 친서방적이다.
3.5. 남아시아
영국은 인도를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인도산 면직물을 저렴한 가격에 수출하면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영국의 산업혁명 과정에서 인도산 면은 산업혁명 시대 이후 인도에서 직접 가공되지 않고 영국으로 수출되었으며 다시 영국산 면직물이 인도에 수입되었고 이 과정에서 인도의 주 산업 중 하나인 면방직 공업은 붕괴하고 많은 소상인들이 다시 시골로 내려가서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굶어죽었다.영국의 성공적인 산업혁명은 인도가 식민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반대급부로 영국의 산업혁명의 결과 인도인들은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산업혁명 당시 인도인 직공들이 실직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인도 제국의 친영파 및 지주들은 더욱 부유해졌지만 소상공인들과 농민들 사이에서는 가뭄 때마다 영양 실조가 만연하였다. 1870년대 인도 서부 지방을 중심으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였지만 영국은 여기에 대해 일절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식량이 부족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고의로 식량을 수출시켰다.
단 한 차례의 기근의 여파로 인도에서는 2천만여 명에 달하는 인구가 사망하지만 영국에서는 미개한 인도인들이 위생 관념이 부족해서 죽었다는 식으로만 덮었다. 물론 기근은 한 차례로만 끝나지 않고 여러차례 진행되었다. 인도인들이 영국인들의 경제적 침탈로 겪는 압박감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거리가 사라졌다'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영국의 경제 침탈과 맞물려 서구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선교하자 인도의 힌두교도, 스리랑카의 불교도들 사이에서도 종교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뭄바이의 부유한 힌두교 상인들을 중심으로 힌두교를 베다 중심의 일신교 사상으로 재해석하고 힌디어 부흥 운동을 펼치는 아리아 사마지 운동이 일어났다. 스리랑카에서는 불교 승려가 파아나두라 대논쟁에서 기독교 선교사와 공개 토론을 벌여 압승을 거두면서 불교 부흥으로 이어졌다.
아리아 사마지 운동의 목표는 1차적으로는 기독교 선교 저지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리아 사마지 운동가들은 관공서에서 아랍 문자를 사용하는 대신 힌디 데바나가리 문자를 사용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28]
인도의 반서방 감정은 단순한 반서방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힌두교를 기독교와 이슬람으로부터 보호한다 즉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부터 인도 전통 종교를 수호한다는 민족주의로도 연결되었다.
오늘날 인도는 서구와의 심각한 악연에도 불구하고 반중 감정이 심해지면서 반서방 감정이 약화되고 힌두트바 같은 우파 근본주의 단체가 성장하는 추세다. 힌두교 근본주의는 기독교 선교사들을 대상으로도 폭행하지만 주 타깃은 인도의 무슬림들인데 인도에서 이슬람공포증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은 간디의 사회주의보다는 히틀러의 나치즘의 영향을 받았는데 20세기 중엽까지는 반서방주의를 지니고 있었지만 21세기 초부터는 서방, 이스라엘의 극우파와 협력하여 반이슬람을 선동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데오반드 운동으로 자마아티 이슬라미, 탈레반을 중심으로 반서방을 고수하고 있다.
3.6. 동아시아
동아시아에서 반서방주의는 청나라가 아편 전쟁에서 패배하여 서양 열강들이 청나라를 침범하면서 시작되었다.일본은 20세기 초까지는 서양 국가들을 모방해 탈아입구를 내세웠지만 대공황이 일본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영국, 미국과의 갈등으로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었는데 그 과정에서 귀축영미,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웠고 이런 수사는 한국에도 전파되어 주체사상, 환빠를 형성했다.
1945년 이후 일본에서는 반서방주의는 주류에서 밀려났지만 일부 넷 우익과 일본 극우파들은 일본은 서양에게 식민통치를 당하고 있다며 감성팔이식으로 반서방주의를 조장하고 일부는 나치즘을 추종하고 있다.
일본의 일부 좌익과 극좌들도 친공 성향과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 주일미군에 대한 반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를 위시로 한 서방국가들의 패권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 등으로 인하여 반미 성향을 비롯한 반서방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일본 극좌와 좌익들은 반서방주의의 연장선에서 같은 서방 국가로서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서방 우방국들과 외교, 안보 면에서 협력하는 자국 정부도 비난하는 것과 더불어 서방에 속하는 자국을 혐오하기까지 한다. 외교적이나 정치적인 관점을 제외하더라도 카를로스 곤 구속 사건과 SIE의 문제점의 배경 중 일본 직원과 서양 직원의 알력다툼이 심한 점이 반서방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조선에서는 위정척사파들이 서양에 대한 개항을 반대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으로 성리학 근본주의를 기초로 하는 반서방주의는 쇠퇴했고 1940년대 일본이 퍼트린 반서방주의의 영향으로 남한과 북한은 둘 다 또 다른 반서방주의를 지니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반서방주의가 주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주체사상은 김씨 부자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어용 사상으로 전락했고 남한에서는 주류가 아니지만 일부 환빠들이 대동아공영권과 범투란주의를 합쳐 동양인우월주의라는 인종주의를 창시하기도 했다.[29]
현재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반서방 국가들로는 중국과 북한이 있다.
4. 오해
4.1. 반서방과 정치 성향, 그리고 반미
유독 한국에서는 정치학적으로 우파로 정의되는 단체도 반서방을 내세우는 단체라면 무조건 좌익으로 간주하며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반대로 제2세계를 비판하는 친서방 성향 좌파 단체를 우익으로 간주하는 등[30] 황당무계한 경우가 있다. 정치학계에서는 주로 사회경제적 위계질서와 평등에 대한 관점의 여부로 좌우파를 나누지 외교관으로 좌우파를 나누지 않는다. 위계질서가 필요하다거나 불가피하다고 보는 쪽이 일반적인 우파라면 그 반대가 좌파라고 볼 수 있다. 일부 좌익 진영에서 나타나는 반서방주의는 외교적 위계에 대한 반대에서 비롯된 것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좌파를 반서방주의로 싸잡아 일반화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편견에 가깝다. 당장 한국만 봐도 국회에 의석이 있는 주류 정치세력은 여야 할 거 없이 반서방, 반미는 아니며[31] 러시아 같이 오히려 보수 우익이 반서방이고 범좌파 세력들이 친서방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이슬람 극단주의 같은 종교 극단주의나 민족주의 세력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념 모두를 서방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반서방 스탠스를 취하기도 한다.
서방세계 전체를 싫어하는 것과 미국만 싫어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서방세계를 대표하고 서방세계를 사실상 이끌어가는 나라가 미국인 것은 사실이라 반미와 반서방이 많이 겹치는 편이기는 하지만 미국에만 반감을 가질 뿐 유럽에는 우호적일 수도 있으므로 모든 반미주의자가 반서방은 아니며 심지어 반서방적이지만 친미일 수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친미 중동 국가가 그런 복잡한 스탠스다.
무엇보다 서방에 대해 반대한다/지지한다 이런 이분법만으로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없으며 사안마다 판단을 다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집단/개인이 아니라면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성향을 나타낼 수만은 없다. 비판할 건 비판해도 협력하거나 받아들일 건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32]
5. 비판
5.1. 서방세계로서의 한국
제3세계나 개도국에서 한국이 지리적이고 역사 대부분의 시기에 '아시아/동양 국가'임에도 서방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예를 들면 K-POP에 대해서도 같은 동아시아 3국인 중국,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의 전통문화가 담겨 있다기보다는 지나치게 서양화되어 있다고 보는 식. 이에 이원복은 한국인이 글로벌믹스하기 때문에 서양 문화를 중국, 일본과 달리 원형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2020년대의 한국은 서방 세력권 국가 중 하나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민의식 등의 거의 모든 면에서 북미와 유럽의 거의 모든 이익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들과 교류하고 협력하여 G7 확대 논의의 대상국이 될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전통유산이 상당부분 소실되었기에 나라 자체가 전근대의 유산과 단절하고 새로 태어난 수준이니 당연히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전통 문화가 약할 수밖에 없다.
반서방은 그 뿌리부터 극우 반동주의와 연관되어 있고[33] 현대에도 정부 차원에서는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많은 비서방 국가는 독재가 아니더라도 권위주의나 부정부패,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 매우 열악한 소수자 권리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는데 물론 그곳에서도 여러 사회 운동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도 희박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인도처럼 외교정책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확대하는 것에는 비우호적인 경우도 많다. 인도는 우크라이나와만 연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얀마나 이란과도 연대하지 않고 있다.
2020년대 시점으로 반서방 국가로 분류되는 시리아, 이라크, 이란[34] 등의 중동 국가나 비록 정치적으로만 친서방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독재왕정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보다는 칠레, 우루과이 등 일부 중남미 국가나 유럽연합 소속인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이 경제적으로 다소 선진적이지 않더라도 완전한 민주주의 상태인 친서방 세력이 존재한다. 동유럽은 일부 국가를[35] 제외하면 반서방이지 않고 그 중남미에서도 2020년대 초반에 절정에 달한 제2차 핑크 타이드는 과거만큼 반서방적이지 않은데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도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로서 반서방주의 수사에 반대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서유럽과 북미 국가를 제외한 친서방세력 국가들에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만의 독자성을 강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들이 마치 서양 국가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인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으며 서양을 제외한 문화권의 사람들은 계속 왕정이나 독재 속에서 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정치체제이든 사회 문화적 측면이든 물론 원조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영향을 타국에 영향을 받아서 자신들의 기존 사회와 문화의 실정에 맞게 개혁하고 변화해서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케케묵은 서양권 국가들과 외교 관계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록 서양 백인 문화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타국을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36]
K-POP의 주제가 바로 저런 것들이다.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 북한이나 베트남, 역사적 격변이 많지 않아 왕과 신분제가 존재하는 등 전통적인 관습이 많이 남아있고 정치적 무관심이 심한 일본과 달리 한국(대만 포함)은 서구처럼 진보적 가치를 담아 일상, 사회 문제를 쉽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걸 익숙지 않아하고 비난하는 것은 단순한 국민적 감정을 넘어 외교적인 문제로 큰 파장을 불러 올 수 있는 문제이다.
5.2. 긍정적 오리엔탈리즘
아시아적 가치, 뉴에이지 문서를 보면 그들이 해석하는 동양이 실제 동양이 아닌 서양 내부의 반서방주의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동양인이 이를 전통적인 동양이라고 착각하고 있다.[37]반서방주의자들은 비서양에서도 19세기 이전에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이성주의를 주장하는 집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를 백안시하고 있고 전체주의, 집단주의, 불평등, 신앙주의를 동양의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인권 제국주의"드립을 치는 NL에게도 이런 성향이 있는데 그들은 미국 제국주의가 동양의 전통을 말살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며 놈 촘스키와 달리 미국 정부의 인권 드립의 위선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것이 서양적이라고 생각한다.
5.3. 인권 탄압 옹호
반서방이 가장 큰 비판을 받는 이유. 반서방주의자들은 미국이 과거에 벌였던 악행이나 서양의 제국주의 등을 들며 자신들의 사상을 정당화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지지하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현재진행형으로 저지르는 더욱 심각한 만행에는 말을 하지 않거나 서방의 악마화라고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일대일로가 비판받는 것에 대해 반서방주의자들은 '서방 국가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중국과의 협력을 질투해서 일대일로를 악마화한다'고 한다. 허나 실상은 일대일로가 21세기에 19세기의 방식으로 타국을 착취하기 때문에 19세기보다 윤리의식이 크게 진일보한 현재의 시대상에 반하여 비판받는 것이다. 일대일로를 보면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식민화하기 위해 경부 철도를 놓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심지어 서방권의 주요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반면 반서방권 중에서는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드물고 대부분 국민의 기본권을 극심하게 탄압하는 독재 체제이다. 이들은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반서방권의 극심한 인권 탄압에 대해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38]5.4. 반서방을 위한 나치, 일본제국 물타기
흔히 대영제국을 두고 혐성국이라면서 나치와 일본제국이 아니었다면 최악의 악당은 영국이라면서 영국은 나치와 일본제국에게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려야만 한다고 말하거나, 혹은 영국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이미지 세탁이 된 것일 뿐 실제로는 나치와 일본제국보다도 더 사악하다고 부화뇌동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이는 독점자본주의 이론과 유대인 배후자본설에서나 나오는 폐기된 이론의 우려먹기성 음모론에 불과하다. 사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치와 일본제국이 전체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생각했을때, 오히려 상술한 이유로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된 서방권에서 반서방권을 향해 나치와 일본제국과 너희들이 다른 점이 무엇이 있냐고 역으로 질문하는 것이 가능하다.6. 대표적인 수사
친미 서방진영이 아닌 서양문화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옥시덴탈리즘 문서 참조.- 서방인들은 고어에 심취했고 그들의 행태는 제국주의, 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학살, 자본주의적 착취, 대서양 노예무역, 마녀사냥, 홀로코스트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반론 - 이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반서방 진영 국가의 패권주의나 폭력도 존재한다. 가령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던지. 그리고 반서방 국가들도 타국을 상대로 폭력을 많이 휘둘렀고, 제국주의적인 행동도 많이 했다. 소련만 봐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고 프라하의 봄 등 동유럽에서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또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신제국주의적 야욕을 보이고 있고 티베트 독립운동과 위구르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반서방주의자들에게 말하면 미국의 제국주의만 언급할 뿐 애써 외면하려 든다.
게다가 서방 국가들은 제국주의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범행위 등을 반성하는 세력이 존재하지만 반서방 세력은 그것도 없는 경우가 절대 다수다.
전체주의에 가까운 북한, 베네수엘라, 미얀마 등의 일부 반서방 국가들은 아예 자국민에 대한 폭정을 가하고 있다.
일부 반서방 세력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운운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일으킨 러시아를 옹호하고 우크라이나 측을 일방적으로 비방하기도 하는데, 물론 팔레스타인에서 인권유린을 일으키고 각종 전쟁범죄를 일으키며 팔레스타인을 침략하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 국가들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39] 그렇다고 해서 그게 우크라이나가 비난받아야 하는 근거가 될 순 없다. 물타기의 훌륭한 예시.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팔레스타인과 마찬가지로 침략받고 있는 피해자다. 같은 피해자인데 단지 서방의 지지를 받고 있고 서방과 밀접해지려 한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셈.
- 자연을 정복대상으로만 삼는 서양 때문에 환경파괴가 심각해졌고 지구를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반론 - 아무리 산업혁명을 먼저 일으킨 것도 서방이고 또 환경오염과 파괴가 지금처럼 전지구적으로 심각해진 것의 시초는 서방 국가들의 산업화이긴 해도 정작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로 위시되는 신흥국들의 탄소배출과 환경오염이 서방 선진국들보다 더 심해졌고 무엇보다 이들은 신흥국이란 타이틀 보호 아래 환경보호를 위한 의무나 감축에 소극적인 상태이다.
7. 종류
- 반미
- 반영
- 반프랑스
- 반독일 - 과거에 있던 파시즘 국가인 나치 독일은 유럽 전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적이 있으므로 이를 싫어하는 것은 반서방이 아니다.
- 반스페인
- 반포르투갈
- 반네덜란드
- 반벨기에
- 반이탈리아 - 과거에 있던 제국주의, 파시즘 국가인 이탈리아 왕국을 싫어하는 경우엔 반서방이 아니다.
- 반이스라엘 -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서양의 도움으로 건국되었으므로 서양 국가라는 인식이 있으며 이스라엘은 서방권으로 분류된다.[40]
- 반일 - 일본은 정치사회적으로 서방에 속하는 국가이므로, 일본을 싫어하면 반서방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민족감정으로 인해 일본은 싫어하면서 정작 다른 서방 국가들에 우호적인 경우엔 반서방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현대 일본이 아니라 과거에 군국주의 국가가 되어 침략전쟁으로 폭주하던 후기 일본 제국을 싫어할 경우에는 반서방이 아니라 반제국주의 및 반파시즘으로 분류된다.[41]
- 반한 - 한국 역시 일본, 대만, 싱가포르처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몇 안 되는 서방에 속하는 국가이다.[42]
- 반대만 - 대만은 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해도 일단은 서방권이다. 그러나 한국에 섬짱깨라는 멸칭이 있듯 반대만과 반서방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 반우크라이나 - 우크라이나에 아조우 대대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그러는 경우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소련 붕괴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 반기독교 - 제국주의 시대가 종식되며 열강들이 믿던 기독교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정착했다. 현재 기독교는 서양인들만의 종교가 아니라 세계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반기독교가 반서방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나 타종교권의 제2세계 및 제3세계에선 기독교가 서양 종교, 침략자들의 종교라는 인식이 많으며, 반서방 감정에 의해 반기독교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으므로 꼭 없는 것도 아니므로 좀 애매한 케이스가 되었다.
- 반러(?) - 러시아는 서양은 맞는데 서방은 아니고 오히려 반서방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 벨라루스, 세르비아 등도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으며 유럽에 반서방권이 있는 것은 아시아에 서방권이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그러나 반대로 환빠들이 러시아를 '황인종이 사는 시베리아를 식민화한 서양 국가'라고 인식하며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8. 관련 문서
- 귀축영미
- 옥시덴탈리즘
- 유럽중심주의
- 신냉전
- 반제국주의
- 반동주의
- 반자유주의
- 반자본주의
- 전통주의
- 천황제 파시즘
- 아시아적 가치
- 공산주의
- 변질된 유교적 전통
- 이슬람 근본주의
- 중화사상
- 일본 극우사관
- 박상후
- 이병한
- 전우용
- 종북주의
- 위정척사파
[1] 반서방 감정[2] 서방 혐오[3]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아일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4]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 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모나코, 안도라, 몰타, 키프로스. 단 스위스,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바티칸, 산마리노는 중립국이다.[5]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6]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체코, 폴란드, 크로아티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7]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체코, 폴란드, 크로아티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은 친미 국가로 갈아탔다.[8]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 서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들이 많지만 한편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이 영어권에 편입된 국가도 있고 미국, 영국, EU의 지원을 받는 곳도 있어서 반서방 국가들이 생각보다 적다. 굳이 여기서 반서방이라고 볼만한 곳을 찾자면 유럽 국가의 식민지배를 심하게 받았고 독립 이후로도 서방세계와의 교류가 별로 없으며 러시아, 중국 등과 친한 국가들이 반서방이라고 볼 수 있다.[9] EU가 포클랜드 문제에서 영국을 지지하기 때문이다.[10] 이런 경향은 특히 중동, 북아프리카 일대의 이슬람권에서 광범위하게 보인다.[11] 가톨릭, 오순절 계통 개신교[12] 성공회, 장로교 등[13] 이신론과 최고 존재의 제전 문서 참고.[14] 오스트리아 제국의 바흐 절대주의, 러시아 제국의 슬라브주의, 독일 제국의 독일 예외주의, 1차대전 이후 독일의 보수혁명운동 등이 대표적이다.[15] 20세기 초에 열강이 된 일제도 독일의 영향으로 반서방주의를 가지고 있었다.특히 일본의 해군력을 제한하기 시작한 워싱턴 회의와 대공황이후 반서방주의는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이는 귀축영미라는 태평양전쟁의 프로파간다로 나타났다.[16] 프랑스 혁명 여파로 자신들의 아메리카 식민지를 상실하고 미국 때문에 필리핀, 쿠바, 푸에르토리코를 상실한 사건 때문에 20세기 초에 반서방주의적인 파시즘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는 전통 가톨릭의 특징이기도 하다.[17] 혁명 이전 러시아는 문맹률이 높았고 글을 유창하게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은 대개 부유층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소련 시대 초창기 교사로 일하던 사람들 중에서는 과거의 특권층 출신들, 즉 옛날 귀족들이나 부르주아지 가문 출신들이 공산당을 피해 몰래 신분을 세탁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소련 시절에 과거에 향수를 지녔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18] 민족볼셰비즘은 1차대전 이후 독일, 러시아에서 발생되었는데 영국, 미국, 프랑스라는 서방 국가가 조장하는 근대주의, 자본주의에 반발해서 일어났다.[19] 마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서 바로 파생된 것이 아니라 레닌주의를 중국 실정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20] 범투란주의 주요 사상가 상당수는 러시아 제국 출신 볼가 타타르인 혹은 러시아 제국과 악연이 있던 크림 타타르인 출신이기도 했다.[21] 에르도안 집권 이후 서구권에 벗어날려는 경향이 있지만 대체로는 서구권으로 본다.[22] 비교하자면 2021년 미얀마 쿠데타를 중국이 비공식적으로 전폭 지원하면서 동시에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실리를 챙기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23] 당초에 남미에서 퍼진 감정은 굳이 말하자면 반미에 가깝기도 하고. 그마저도 미국의 패권주의 정책이 직접적으로 미친 곳이 남미였고 이에 피해를 본 세력이 주로 좌파 계열이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이들이 과거에 반미 감정을 가졌던 이유 자체가 냉전 시기의 미국의 극도의 반공주의 및 제국주의적 정책이 낳았던 결과물이었다. 미국의 태도가 적어도 냉전 시기보다는 유화적으로 바뀌니 이들의 태도 역시 비교적 유화적으로 변한 것 뿐이다. 물론 이들도 미국의 개입주의나 패권주의적 행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24] 여기에는 나폴레옹이 무찌른 맘루크들과 이집트 현지 아랍인들 사이의 이질감 및 갈등도 없지 않아 작용했다.[25] 대표적인 인물로 유물론적 사고방식을 번역, 도입, 소개하여 다른 이슬람 모더니즘 학자들로부터 불신자니 미친놈이니 욕을 먹었던 사이드 아흐마드 칸이 있다.[26] 건국 초반에는 파키스탄이 국가 예산이 부족하여 이런 문제가 정당화되었을지는 몰라도 문제는 이후 미국에서 페샤와르의 공군기지를 빌려쓰는 대가로 파키스탄의 상당한 액수의 원조금을 지불하면서 재정이 넉넉해진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었다는 점이다.[27] 추가로 빈살만은 탈미화를 추진하여 미국의 경제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28] 인도 제국은 명목상 무굴 제국을 계승한 제국이었고 무굴 제국과 마찬가지로 관공서에서 우르두어와 아랍 나스탈리크체 문자를 사용했다.[29]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환빠 사이에서 백인은 인간이 아닌 개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이들의 사고는 동양인과 달리 짐승에 가깝다는 인종주의적 주장이 나돈 적이 있었다.[30] NL 등 좌파들 중에 이런 식으로 이분화하는 경우가 많다.[31] 외교적으로 보면 보수진영이 상대적으로 더 친미이긴 하지만 민주당계도 반미라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문화적 반미주의는 우익에서 더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보수단체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이나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관에게 "동성애 문화제국주의" 운운하며 그들과 협력하는 성소수자 단체들을 "사대주의"라고 부당하게 공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성향이 극단적으로 가면 극우 성향 반미, 반PC주의자가 되는데 일부는 친러가 되는 경우도 있다.[32] 애초에 이런 식으로 생각해버리면 후술할 놈 촘스키도 미국 국방부에서 그의 언어학적 업적을 토대로 기계번역의 가능성을 열어주어 미국의 안보나 정보분석에 매우 유용하게 이용될 것이라고 판단해 언어학 연구자금을 지원해주었고 그걸 받은 것을 놓고 그를 말로는 미국을 비판하면서 정작 행동으로는 미국의 국방력을 강화시키는 위선자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언어학자로써의 업적과 정치운동가로써의 업적을 동일시한다면 그거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 국가들에서나 저지를 인권 탄압 행위일 뿐이다.[33] 좌익 계열에서도 반서방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반제국주의에 대한 옹호로써 비교적 제3세계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에 저항하는 것이나 과거 서방, 특히 미국이 자행했던 반공주의 정책 및 사회주의에 대한 탄압에 대한 분노에 가깝지 서방 그 모습 자체를 혐오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마저도 탈냉전의 도래와 이전에 자신들을 옭아매던 식민제국의 해체 이후인 90년대 이후부턴 이런 반서방, 반미 기조는 기존의 자본주의 VS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대결이라는 명분이 사라지고 다극화된 세계로 질서가 재편되면서 정통성이 흔들리게 되자 이제는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외부의 적을 만드는 전형적인 방식으로서 반서방을 외치는 다른 의미의 권위주의로 변질되고 만다.[43] 주로 남미의 베네수엘라나 김일성 사후의 북한, 오르테가의 니카라과, 시리아 등등 정치적으로는 좌익이지만 사회 문화적, 제도적으로는 반동적 보수주의나 다름없는 동네로 전락한다. 이는 대부분의 반서방 국가들에게서(우루과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온건 성향의 경우는 대놓고 척지기 식 반미라기 보다는 할 말은 하자는 식의 소신주의에 가까운 편이다.) 21세기 이후로 나타나는 정치적 퇴행의 모습을 보여준다.[34] 이란은 반미 국가로 유명하다.[35] 유고전쟁에서 서방세력에서 군사적인 막대한 피해를 입은 세르비아와 러시아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벨라루스[36] # 물론 링크된 칼럼을 쓴 친정부 언론사도 그 국가의 국민들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그 국가의 국민들이 전부 친정부 성향이 아닌데 그런 칼럼을 썼다는 것은 국민적으로 분란을 가져올 수도 있고 타국에게 자신들의 국가의 이미지를 손상 시킬 수 있는 경솔한 행동인 것을 분명하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입장에서도 그 국가 전체가 반한이라고 디스하는 행위는 자제해야겠지만...[37] 예를 들면 피자 효과가 힌두교에 적용된 사례가 있는데 19세기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인도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 20세기 후반에 우파적인 힌두트바뿐만 아니라 좌파적인 인도인 뉴에이저에게도 영향을 미쳐 서양이 해석한 힌두교를 전통 힌두교로 잘못 알고 있다.[38] 적어도 미국, 유럽 등은 21세기에 중국처럼 소수민족을 수용소에 집어넣거나 국민 기본권 탄압을 크게 저지르지는 않는다.[39] 그렇다고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하여 서방이 겉으로는 묵인해줘도 속으로는 이스라엘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있는 것이다. 동맹으로 끌어드리려는 아랍권을 자극할 수 있고 쓸데없는 적을 만드는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하여 속으로 불편한 감정이 든 것이다.[40] 허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무조건 반서방이라기보단 이스라엘 정부의 이중잣대나 국제법 위반, 팔레스타인 탄압 등으로 싫어하는 경우에 가깝다. 사우디의 경우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이스라엘을 대외적으로 비판했지만 이란의 위협 등으로 인해 친미로 분류된다. 그 외에 아일랜드 역시 대러제재에 동참하는 등 친서방으로 분류되지만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이다.[41] 그러나 일본 제국에게는 비판적이면서 정작 당대 파시즘 동맹국이던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등은 옹호할 경우, 이는 상술한 역사적 이유로 일어나는 반일 감정에 불과하므로 반제국주의, 반파시즘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42] 간혹 서구권 국가와 일본에서 우익으로 분류되는 집단이 반한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으나, 이러한 사례는 대부분 일반적인 우파가 아니라 파시즘 세력 또는 강경 대안 우파, 반중, 반러, 반북, 반이슬람에 해당된다. 이들은 오히려 한국에 대해 친중 및 친러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반서방 국가로 간주하고 있으며 서구권 국가들의 상당수가 19세기 당시 식민제국이었던 관계로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 관련 과거사 문제에서 식민지배 피해국인 한국에 오히려 더 적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