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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00:21:45

최고 존재의 제전



1. 개요2. 역사3. 교리4. 몰락

1. 개요

파일:Le_peuple_français_reconnaît_l'être_suprême.jpg
La Fête de ĽÊtre Suprême

프랑스 혁명 시기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치하에서 벌어진, 가톨릭을 대체하려고 했던 이신론적 종교 행사. 1794년 6월 8일 튈르리 궁전에서 이루어진 종교행사다.

2. 역사

프랑스 혁명의 주도 세력은 가톨릭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주도 세력이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종교에 냉담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톨릭은 프랑스 혁명이 타도하고자 했던 구체제를 지탱하는 주요 세력이고 많이 부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전국 각지의 가톨릭 교회는 탄압받았다. 혁명정부미사 금지령을 내리고 수도원성당을 몰수해 국유화했으며, 혁명에 저항하는 신부들을 단두대로 보냈다.

하지만 프랑스의 백성들은 대부분 신실한 가톨릭 신자들이었고 가톨릭 교리에 따라 도덕, 윤리, 관습 등을 형성해왔다. 프랑스인에게 천년간 뿌리박힌 종교의 전통과 관념, 의식을 하루아침에 뿌리뽑기란 불가능했다. 또한 대다수 민중들을 위해 그 자리에 무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므로 혁명정부의 일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이성신(理性神)이다. 사실 이성숭배라는 것은 이미 전에도 있었고,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정부의 최고 자리에 등극하게 된 이후 기존의 이성숭배를 자기 마음에 들게 뜯어고친 것이 최고 존재의 제전이다. 최고 존재의 제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수단으로 탄압받고 처벌당했다.

이 비슷한 종교, 혹은 신앙에 대한 제의는 그리스 로마 시절부터 철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철학자들이 비슷한 식의 신앙을 제시했다. 로베스피에르나 다른 프랑스 혁명세력 등은 그것을 국가권력 주도하에, 규모 있는 국가에서 진짜로 국가적으로 실현한 최초의 인물들이다. 로베스피에르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발명하면 된다'는 볼테르의 말을 실천으로 옮기려고 했다.

3. 교리

로베스피에르의 종교관은 "법률을 합법화하는 절대자를 시민의 미덕으로 섬겨서 영혼의 불멸을 누리자"는, 자연종교에 가까운 사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절대자, 즉 보편적 입법자는 인간 이성과 동의어이다. 인간 이성은 합목적성을 띤 수단이기도 한데, 이성이 지향하는 목적은 (vertu)이다. 이 절대자를 섬기기 위한 일환으로, 시민은 주기적으로 모여 도시를 '재창조'하기 위한 일련의 시민 축제를 벌여야 한다. '최고 존재의 제전'은 바로 이 축제를 지칭한다.

의외로 서사, 알기 쉬운 인물 중심의 기복신앙 등등을 제외하고 보면 가톨릭과 상당히 유사하기도 하다. 표면적으로 종교는 사람들에게 착한 일 하라고 권하는 것이고, 가톨릭도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의 철학을 상당히 많이 흡수했기 때문에, 그것에 기반한 윤리학을 펼치는 프랑스 혁명세력의 사상과 아예 다를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이렇게 애매하게 가톨릭과 닮은 점으로 인해, 상퀼로트 계층은 로베스피에르가 주장하는 최고 존재 신앙에 적개심을 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유서깊은 주장이 단 한 번도 실현되지 않고 철학자들 사이에서만 나돌던 이유는 당연히 이 사상을 이해하기는 엄청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사상은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 인문학적 엘리트 교육을 열심히 받고 나서야 이해되는 것인데, 이해하고 나서도 현실성 없는 이론에 불과하다는 사람, 이것을 현실에 실현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사람으로 갈릴 정도다.

4. 몰락

상당수 파리 시민들이 이때 로베스피에르의 실물을 처음으로 봤는데, 로베스피에르는 이 제전에서 평소답지 않게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감격에 겨워 자신의 종교관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그러나 이 모습이 오히려 '공포정치가'로서의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던 로베스피에르와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던 데다가, 종교관 역시 가톨릭에 익숙했던 일반인에게는 난해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오히려 이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고 한다. 대놓고 야유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로베스피에르는 '이성의 신앙'에 대한 한 연극에서 마치 자신이 신인 것처럼 하늘이 열리며 정장을 입은 채 무대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로베스피에르가 초심을 잃었다'며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이 제전은 로베스피에르의 처형 이후 대중의 지지를 상실했고, 나폴레옹의 집권 이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현대 사학계에서는 Cult, 즉 사이비종교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