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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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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프랑스의 공영방송인 프랑스 2가 발표한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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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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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1제국 초대 황제
나폴레옹 1세
Napoléon I
파일:나폴레옹1세.jpg
대관식 복장을 걸친 나폴레옹 1세 (1805년 프랑수아 제라르 그림)
출생 1769년 8월 15일
프랑스 왕국 아작시오
(現 프랑스 코르시카 코르스뒤쉬드주 아작시오)
사망 1821년 5월 5일 (향년 51세)
영국세인트헬레나 롱우드
재임기간 프랑스 통령정부 제1통령
1799년 11월 9일 ~ 1804년 5월 18일
재위기간 프랑스인의 황제[1]
1804년 5월 18일 ~ 1814년 4월 11일
이탈리아 국왕
1805년 3월 17일 ~ 1814년 4월 11일
프랑스인의 황제 (복위)
1815년 3월 20일 ~ 1815년 6월 22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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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a94><colcolor=#e8cd54> 가문 보나파르트 가문
이름 프랑스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éon Bonaparte
이탈리아어: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2]
Napoleone di Buonaparte
아버지 카를로 부오나파르테
어머니 레티치아 부오나파르테[3]
형제자매 조제프, 뤼시앵, 엘리자, 루이, 폴린, 카롤린, 제롬
배우자 조제핀 드 보아르네 (1796년 결혼 / 1810년 이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루도비카 (1810년 결혼)
자녀 나폴레옹 2세 포함 3남 3녀
학력 파리 왕립육군사관학교 (졸업)
종교 가톨릭 (이신론)
신체 170cm[4], 79kg[5], O형, 왼손잡이 }}}}}}}}}

1. 개요2. 이름3. 생애4. 평가5. 신체적 특징 및 사생활6. 나폴레옹의 26인 원수7. 기타8. 가족관계9. 대중매체10. 어록11. 관련 문서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Napoleon_statue_cherbourg.jpg
말 위에서 도시를 살펴보는 황제를 — 그 절대정신을 — 나는 보았다.

나폴레옹의 생애는 1천 년 내 가장 비범했다. 그는 분명 위대하고 특출한 인물로서 생애만큼이나 자질도 비범했다. 그는 확실히 내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대단했고, 우리 세대에 살았던, 아니 여러 세대 동안 살았던 인간 중 가장 놀라운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군인이자 황제.

이탈리아프랑스인[6]으로, 프랑스 왕국의 변두리였던 코르시카 섬에서 법률가(= 변호사)[7]의 자녀로 태어나 프랑스에서 최하위 군사학교인 브리엔 군사학교에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1789년 프랑스 혁명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통해 프랑스 혁명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후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통해서 프랑스 제1공화국의 통령으로 집권하였다.

이후 35살에 황제에 올라 혁명을 퇴보시켰지만, 동시에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서 프랑스 혁명을 통해 수립된 자유주의 이념을 유럽에 전파시켰다.[8] 이때 천재적인 군사적 재능[9]을 통해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어 당대 세계적 강대국들이 몰려 있던 유럽을 정복하고 프랑스 제1제국을 수립하였다. 그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했기에 그의 몰락과 빈 회의 이후 근대 유럽의 외교사는 어떻게 하면 이런 인물이 다시 유럽을 집어삼키는 걸 막는가를 기준으로 진행될 정도로 프랑스 이외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제2의 나폴레옹의 출현을 경계하였다.

그는 유럽이 18세기 시민 혁명 시대에서 19세기 제국주의적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풍미한 인물이었다. 지리적으로 프랑스와 큰 접점이 없는 한국에서도 그의 유명세 덕에, 설령 프랑스사나 프랑스의 인물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나폴레옹의 이름과 말을 탄 그의 화상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2. 이름

프랑스어 이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나파르트는 이름이 아니라 성씨이고, 나폴레옹이 이름이다.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전체 이름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으로 표기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다만 서적 등에서는 보나파르트로 적는다. 아마도 이름 + 성씨 구조의 서양식 작명을 몰라서 그랬거나 황제가 되면서 이름인 나폴레옹으로 불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유럽 군주의 명칭은 일반적으로 이름이 왕명이 되고 성씨는 왕조의 명칭이 되기 때문이다.[10] 황제가 되기 전에는 당대에 보나파르트라고 불렸다.

이탈리아어 이름은 나폴레오네 디부오나파르테(Napoleone di Buonaparte).[11] '나폴레오네'로 쓰든 프랑스어인 나폴레옹으로 쓰든 이름의 뜻은 '황야의 사자'이다. 그러나 그가 그의 이름을 코르시카 사투리로 발음하면 ‘라 파이유 오 네(La paille au nez. 코에 박힌 지푸라기)'로 들려 많은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름은 멋지지만, 성씨 부오나파르테(보나파르트)는 게르만족 롬바르드족의 성씨 보니파르트가 어원으로서 영어로 하면 Good Part(좋은 부분)라는 뜻이다.

프랑스 황제로서의 칭호는 나폴레옹 1세. 프랑스 제국의 황제위 요구자들 또한 '나폴레옹 ~세' 라는 명목상의 칭호를 대대로 쓰고 있다. 이탈리아 국왕으로서의 칭호는 나폴레오네 왕인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탈리아 왕국을 포함한 여러 이탈리아계 국가의 군주들 중 유일하게 이름이 나폴레오네였기 때문에, '나폴레오네 2세' 라는 이름의 군주가 배출되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탈리아에서의 칭호가 '나폴레오네 1세' 가 되는 일은 이탈리아의 군주제가 부활하지 않는 한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유럽에서 군주는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이 원칙이고 성까지 부르면 그 사람을 군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에, 그가 황제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성을 빼고 나폴레옹, 혹은 나폴레옹 1세로만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실제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나 영어, 프랑스어 위키백과의 표제어는 나폴레옹 또는 나폴레옹 1세로 되어 있다. 반면 나폴레옹을 적대하던 유럽 각국에서는 황제 즉위 뒤에도 그를 보나파르트라고 부르는 일이 많았으며, 황제 즉위 이전의 활동이나 생전 퇴위 등의 영향 때문인지 현대 시점에서도 성을 붙여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한문으로는 음차하여 나파륜(拿破崙)이라고 표기한다.[12] 한국에는 나폴레옹의 음차가 '나팔륜'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일반적으로 '破'는 한국어로 '파'라고 읽지 '팔'이라고 읽지는 않는다.

3.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생애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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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평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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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체적 특징 및 사생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신체적 특징 및 사생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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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폴레옹의 26인 원수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654><tablebgcolor=#002654>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2654><tablebgcolor=#002654> 파일:프랑스 제1제국 국장.svg||Maréchal ďEmpire
프랑스 제1제국 제국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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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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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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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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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록

"«Impossible» n'est pas français."[직역]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14]
내 키는 땅에서 재면 가장 작지만 하늘에서 재면 가장 크다.[15]
군대는 잘 먹어야 진격한다.[16]
신은 가장 강한 포병대가 있는 군의 편이다.
Dieu est du côté de la meilleure artillerie./ God is on the side that has the best artillery.
제식은 곧 전투력이다.
대군에는 병법은 필요없다.
Never interfere with your enemy while he is making a mistake. [17]
---
적이 실수를 하는 동안에는 적을 제지하지 말라. [18]
인간 최고의 도덕은 애국심이다.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내 손 안에 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
나는 내가 가는 모든 곳에 자유의 씨가 뿌려지길 원한다.[19]
사상의 선두에서 나아가면, 사상이 당신을 따르고 지지할 것이다. 사상을 뒤따라가면, 사상이 당신을 끌고 갈 것이다. 사상을 거슬러 가면, 사상이 당신을 전복시킬 것이다.
오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20]
La mort n'est rien, mais vivre vaincu et sans gloire, c'est mourir tous les jours.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승리하지 못한 삶을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뛰어난 두 명의 지휘를 받는 군대보다 어리석은 한 명의 지휘를 받는 군대가 낫다.[21]
La victoire appartient au plus persévérant.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
승리를 원한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이것이 통치다.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반대하는 모든 것들을 정복하는 능력을 가진 생명체이다.
독일은 몇 번을 패배하던 패배한 다음 날에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쓰러진들 혁명가들에게 프랑스를 넘겨주진 않을 것이다. 그들의 손에서 내가 프랑스를 구해내지 않았던가?"
대혁명은 끝났다. 내가 대혁명이다.
내가 종교를 갖는다면 태양을 택하겠다. 태양은 모든 것을 잉태하는 지상의 진정한 신이다.
"내 가족은 매춘부 가족이란 말인가!"[22]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단 하룻밤도 그대를 내 팔에 끌어안지 않은 적이 없소.
어떤 여인도 그대만큼 큰 헌신과 열정, 자상함으로 사랑하지 않았소.
공감과 사랑, 진정한 감정으로 묶인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오."[23]
"나의 치세는 내가 더는 강력하지 못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멈추는 날 끝날 것이다.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 뼘의 땅도 넘겨주지 않겠다. 왕좌에 앉을 운명을 타고난, 그대의 군주들은 큰 마음 먹고 스무 번 패해도 되고 언제나 수도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의 힘으로 출세한 군인이기 때문이다."[24]
"그대는 군인의 정신이 어떤지 전혀 모르오. 나는 전장에서 성장했소. 나 같은 사람은 백만 명의 목숨도 개의치 않소."
정복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잔인해야 한다. 내가 좀 더 잔인했더라면 세계를 정복했을 것이다.[25]
소설 같은 나의 생애여! 내가 죽으면 나에 대한 연민이 물결칠 것이다.[26]
"내가 권력을 찬탈했다고? 나는 그 누구에게서도 왕권을 뺏지 않았어. 나는 그저 시궁창에 버려진 왕관을 주워서,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 것뿐이야. 그리고 나는 그 왕관을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머리에 썼어. 나는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한 거야."[27]
"한 나라의 정부가 은행가의 돈에 의존하면, 정국도 정부 지도자가 아닌 은행가가 장악하기 마련이다. 돈주머니를 쥔 쪽이 아무래도 돈을 쓰는 쪽보다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돈에는 조국이 없다. 금융재벌은 무엇이 애국이고 고상함인지 따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이익을 얻는 것이다."

1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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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a94><colcolor=#e8cd54>생애<colbgcolor=#fff,#1f2023>생애 · 정치 경력 · 신체적 특징 및 사생활
가족 아버지 샤를 보나파르트 · 배우자 조제핀 드 보아르네 · 마리 루이즈 · 아들 나폴레옹 2세
호세 1세 ·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 · 제롬 보나파르트 · 조카 나폴레옹 3세
평가 평가
사건사고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 나폴레옹 전쟁
기타 기타 · 프랑스 민법전 · 나폴레옹의 정리 · 나폴레옹 콤플렉스 · 병조림
관련 틀 프랑스인의 황제 · 위대한 프랑스인 · 이탈리아 국왕 · 라인동맹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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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주 칭호의 정식 명칭은 프랑스인의 황제(Empereur des Français)이다. 기존 왕정의 군주였던 '프랑스 국왕(Roi de France)'의 칭호는 국왕이 프랑스라는 나라를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시사했다. 반면 프랑스인의 황제는 명목상 프랑스인의 총의로 추대된 존재로서, 명목상 공화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봉건제도가 폐기되고 공화정에 기반한 국민국가가 탄생했으며 황제는 그것을 계승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이는 지극히 로마 제국스러운 칭호인데, 로마 제국 황제의 공식 명칭도 로마인의 황제(Imperator Romanorum, Βασιλεύς Ῥωμαίων)로 비록 군주제 국가가 되었어도 공화정의 전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2] 국립국어원 이탈리아어 표기법 기준. 단, uo는 ㅝ로 들릴 정도로 빠르게 겹쳐서 발음하기 때문에, '부오나파르테'가 아니라 '붜나파르테' 혹은 '보나파르테'처럼 들릴 수 있다.[3] 혼전 성씨는 라몰리노[4] 흔히 키가 작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당시 프랑스 남자의 평균 신장인 164cm보다 컸다. 155cm나 158cm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당시 대부분의 프랑스인들과 달리 귀족 출신이었으므로, 잘 먹고 자랐음을 감안하면 유전적으로는 작은 편임은 맞다.[5] 사망 당시 체중. 해당 자료에서 바지 사이즈를 고려하여 나폴레옹의 체중을 추정했는데 1800년에는 67kg였지만 1820년까지 체중이 계속 증가하여 90kg까지 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체중이 약 11kg 감소하여 사망 당시 79kg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6] 이탈리아 가문 출신으로, 그의 모어코르시카어였고 이탈리아어프랑스어는 성장기에 학교 등에서 배운 제2언어이다. 프랑스 변방에 위치한 코르시카는 나폴레옹이 태어날 즈음 프랑스에 병합되었으며, 이전까지는 프랑스와 관계 없는 이탈리아령 제노바 공화국 소속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탓에 그는 다중언어(multilingual) 화자이긴 했으나 의식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평생 프랑스어 철자법에 서툴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역설적이다. 머리가 특출났던 나폴레옹이 학창 시절 국어 성적이 안 좋았다는 이야기도 철자법 문제에서 나온 일화이다. 논술식 시험 답안지에서 철자법이 틀린 어휘들이 감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7]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아버지 샤를마리 보나파르트피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이후 코르시카 섬에서 법률가(= 변호사)로 활약했고, 훗날 프랑스로 전향하면서 귀족의 특허장을 얻게 된다.[8] 사상과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나폴레옹이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면서 그 스스로가 갖춘 사상과 철학인 법치주의, 능력주의, 시민 평등 사상을 온 유럽에 퍼트렸고, 이전보다 우수하고 공정한 행정 제도 개혁과 《나폴레옹 법전》 등 여러 업적을 남겨 세계사적으로 크나큰 획을 그었다. 기본적으로 현재 세계의 근간이 된 근대 세계는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전 세계에 전파된 정치 혁명, 그리고 영국의 산업혁명이 야기한 경제구조의 대변혁이 어우러져 완성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독일오스트리아 등 그의 적국들의 근대화에도 나폴레옹의 영향력이 적잖게 작용했을 정도다.[9] 나폴레옹은 세계 역사상 최고의 군사 전략가 중 한 명으로 당대 프랑스 육군의 모든 부분을 전반적으로 선진화시켜 유럽을 제패하게 한 주역이었다. 이후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나폴레옹을 따라 군제를 개편한 만큼 사실상 전쟁사의 근대를 완성시킨 인물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10] 이는 군주만 그런 것이 아니라, 헝가리를 제외한 유럽 사람들은 모두 이름 + 성씨(가문명) 식으로 작명된다.[11] 레 미제라블을 보면, 왕당파인 질노르망 노인(마리우스 퐁메르시의 외조부)가 나폴레옹을 멸칭하는 조로 일부러 "부오나파르테"라고 부르는 묘사가 나온다.[12] 중국에서 음차한 표기이다. 拿破崙은 월어병음 기준으로 naa po leon. 이렇게 되면 표기와도 별로 차이나지 않는다.[직역] "불가능이란 단어는 프랑스어가 아니다."[14] 위의 직역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내 사전"은 사실 의역이다. 원래는 당시 자신의 라이벌 영국을 비꼬는 말이었다.[15] 사실 나폴레옹은 당시 프랑스 성인 남성의 평균 키인 164cm보다 큰 168.6cm였다. 이 발언으로 나폴레옹은 땅딸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막상 나폴레옹의 친아들인 나폴레옹 2세는 170대 후반~180대 초반으로 키가 컸다고 한다.[16] 그걸 잘 아는 사람이 러시아 원정을 떠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하다. 물론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 당시 보급의 중요성을 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병참장관에게 충분한 식량, 건초, 이를 나를 마차를 준비하라고 하였고 여기에 12,000 프랑의 상금까지 걸면서 최초로 병조림을 얻어 그 어떤 전역보다 방대한 보급체계가 갖춰졌으나 진짜 문제는 그걸로 택도 없었다는 것. 엄밀히 말하자면, 러시아 원정은 나폴레옹이 무리하게 전선을 늘려서 러시아를 공격하다가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참사가 일어난 것으로 보급 문제도 있지만 무리하게 전선을 늘린 게 가장 큰 패배의 원인.[17] 1805년 원문은 'When the enemy is making a false movement, we must take good care not to interrupt him.'[18]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어록남긴 사람이 있다.[19] 자신이 정복한 유럽 각국들의 봉건적인 제도들을 폐지하면서 한 발언으로 나폴레옹 최고의 이타적인 명언. 이것이 나폴레옹을 모범으로 삼은 후대의 독재자들과 나폴레옹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20]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 중 한 말로 유명하다.[21] 총재정부 시절 나폴레옹의 군사적 명성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 공화정부가 군부에 대한 나폴레옹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공동 사령관을 임명하여 하루 간격으로 번갈아 지휘하도록 지시한 일이 있었는데 이에 나폴레옹이 "차라리 내가 사령관을 그만두겠다"라고 반응하며 한 말이다. 결국 나폴레옹보다 나은 사령관을 찾을 자신이 없던 총재정부가 물러서야 했다. 이후 군사 부문에서 지휘 체계의 통일성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일본 제국군의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22] 카롤린 뮈라와 조아킴 뮈라 부부의 배신에 열받아 외친 말.[23]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죽음에 한 말.[24] 1813년 6월 26일 메테르니히에게 한 말.[25]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이후 한 말.[26]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한 말.[27]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회고록을 구술하며 했던 말. 참고로 영화 <워털루>와 <나폴레옹>에서도 똑같은 대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