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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colcolor=#23235A> | |||
출생 | 1857년 3월 22일 | ||
프랑스 오리야크 | |||
사망 | 1932년 5월 7일 (향년 75세) | ||
프랑스 파리 | |||
재임기간 | 제14대 대통령[1] | ||
1931년 6월 13일 ~ 1932년 5월 7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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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프랑스 재무장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 프랑스 제14대 대통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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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 두메르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대통령이다. 프랑스와 베트남, 라오스 일부에서는 그의 통치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신의 축복(Que Dieu te bénisse)'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주장한다.2. 생애
1897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총독으로 부임한 두메르는 강력한 동화 정책과 본국 중심의 식민지 정책을 단행하였다. 당시 적자였던 인도차이나 경영을 위해 예산을 높이 책정하고, 이를 조달하기 위해 인두세를 500%, 토지세를 150% 인상하고 각종 간접세를 신설하기 시작했다.두메르는 우선 술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였다. 모든 술 제조와 판매에 관한 권한을 프랑스 기업인 퐁텐에 부여하고, 마을마다 의무적 주류 소비량을 할당하였다. 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만드는 것은 금지되었고, 발각되면 감옥에 가거나 재산이 몰수되었다. 이 조치로 퐁텐은 자본금 350만 프랑을 투자하여 연간 200에서 300만 프랑의 이익을 거둘 수 있었고, 그에 비례하여 베트남의 술값은 1902년 5센트이던 것이 1906년에는 29센트로 4년 사이에 6배 가까이 폭등하였다. 베트남인들은 명절마다 집에서 담은 술로 축제를 벌이던 관습이 있었다. 따라서 총독부의 술 제조 금지령은 베트남 생활 문화의 핵심을 파괴한 행위였다.
이후 두메르는 소금을 전매하였고, 소금 값은 10년 만에 5배로 상승하였다. 거기에 아편마저 독점 판매하여 폴 두메르가 물러났을 때 인도차이나 총독부의 아편 수입은 취임할 때의 2배인 150만 프랑이었고, 아편 흡연자 역시 2배 이상으로 늘어 있었다. 게다가 아편 재배와 무역은 식민 당국이 지역유지와 기업들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확산시킨 것이기 때문에 아편전쟁의 여파를 보며 기존 성리학적 가치관에 따라 마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 극히 죄악시하던 베트남인들의 가치관에 큰 모욕감을 주었다. 두메르 이후의 총독부 역시 토지조사 이후 높아진 세금 + 소작료, 술 제조 금지, 소금, 담배, 인삼의 전매 등으로 마구 식민지인들을 쥐어짜게 된다.
적자였던 인도차이나의 예산을 흑자로 돌렸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전체 예산의 25%를 술, 아편, 소금의 전매로 조달했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폴 두메르의 가장 큰 악정은 베트남의 토지를 프랑스에서 이주해 오는 기업과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베트남 민중들의 생활 기반을 빼앗은 것이다. 이 결과 코친차이나의 토지 중 총 36만 헥타르가 프랑스인 이주자에게 불하되었다. 여기에 소수의 대지주가 동참하면서 토지 집중은 심화되었고, 전체 국민의 90%에 달했던 농민층의 양극화와 빈곤화를 초래하였다. 이런 악조건은 나중에 인도차이나 공산당이 결성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1931년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나 이듬해인 1932년 5월 7일 소련에서 온 파벨 고르굴로프(1895~1932)에게 암살당했다. 후임으로는 알베르 르브룅이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암살범인 고르굴로프는 체포되어, 암살한 이유를 심문받자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을 무시한 프랑스에 대한 복수라고 답변했으며, 재판을 받고 2달만인 1932년 9월 14일에 단두대 참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유언은 "Россия, моя страна!" ("러시아, 나의 조국!")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