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철도역에 대한 내용은 런던 워털루 역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지명
1.1. 벨기에의 도시
Waterloo / 워털루Waterloo | |
벨기에 동남부의 지명. 수도 브뤼셀에서 동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다.
'워털루'는 영어식 발음으로, 네덜란드어로는 '바터를로', 프랑스어로는 '와테를로' 정도가 된다. 한국에는 '워털루'로 알려졌다. 영국에 런던 워털루 역이 있어서 헷갈리기 쉽다.
여기에서 1815년에 나폴레옹 전쟁의 마지막 워털루 전투가 벌어졌다. 세계 각지에 동일 이름의 지명이 여러군데 존재하는데 호주나 캐나다 같은 영연방 국가들이다.
역사상의 배경 덕에 나름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그래봐야 주로 전쟁사에 관심있는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1.2. 캐나다의 도시
자세한 내용은 키치너-워털루 문서 참고하십시오.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도시.
2. 영화
2.1. 개요
워털루 전투를 소재로 한 소련, 영국, 이탈리아, 미국 합작 영화. 1970년에 개봉했다. 한국 개봉 당시 제목은 '워터루'였으나 OTT나 영화 사이트에는 나폴레옹으로 올라왔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역은 로드 스타이거, 아서 웰즐리 역은 크리스토퍼 플러머[1]가 연기했다. 이외의 배우들은 대부분 러시아의 공훈 배우들로, 실제 초상화와 싱크로율이 훌륭하다.
2.2. 상세
1967년 소련에서 대규모 전쟁 영화 《전쟁과 평화》[2]를 만들어 성공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 노하우를 살려 엄청난 물량과 당대 각국의 명배우들을 투입한 영화로, 현대 영화가 따라갈 수 없는 아날로그 시네마스코프 스펙터클 전쟁 대서사극이라 스케일과[3] 배우들의 연기력은 상당한 반면 영화로서의 재미 요소는 다소 떨어진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뭔가 어정쩡한 영화가 되었다는 평이었다.흥행도 썩 좋지 않아 '나폴레옹 영화는 성공 못한다'의 예시가 되는 바람에 나폴레옹 전기 영화는 2023년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무려 53년 동안 제작되지 못했다.[4]
그래도 고증은 좋은 편이라 실제 역사와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중요 포인트들은 다 살렸다. 일단 뚱뚱이 나폴레옹의 모습에 충격을 받을 수 있으나 그의 초상화들을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황제에 즉위한 뒤 살이 많이 찐 게 사실이다.[5] 다만 얼굴에 살이 너무 붙어서 좀 괴리감이 들긴 한다. 로드 스타이거는 리비아와 여러 나라 합작 영화 사막의 라이온[6]에서 베니토 무솔리니 역을 맡았는데 이쪽이 훨씬 닮았다.
전투씬은 영화가 호평받는 주요 이유다. 영국 기병대의 처절한 괴멸씬과 공중 부감으로 찍은 네의 기병 돌격, 영국 보병 방진간의 혈투, 영국군에게 포위당해 항복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피에르 캉브론이 "메르데!!!"(Merde!!!)[7]로 답하며 끝장나는 나폴레옹 친위대의 전멸 장면은 하이라이트. 다만 머스킷 소총 대신 볼트액션 소총이 등장하는 고증오류가 있다.
한국에는 1974년 1월 23일에 개봉하여 서울 관객 9만 6천여명을 기록했으며 1980년대 MBC에서 방영했다. 소련 영화인데도[8] 개봉하고 버젓이 지상파에서 방영할 수 있었던 것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나오고 미국과 합작이라는 점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수입이 많이 늦은 편[9]이라 방영 당시 월요일부터 광고를 넣을 만큼 MBC 주말의 명화의 야심작이었다. 더빙 성우는 나폴레옹은 양지운, 웰링턴은 박일이 연기했다.
2.3. 여담
사회생활 만렙이라는 짤방으로 유명해진 장면. 해당 장면에서 등장한 인물은 나폴레옹의 부관인 샤를 드 라 베두아예르다. 위 장면만 보면 꼭 아부쟁이처럼 느낄 수 있지만, 베두아예르는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탈출할 때 가장 먼저 합류한 인사였고 워털루에서 패전이 확실졌을 때는 전장에서 죽겠다는 나폴레옹을 질질 끌다시피 데려갔다. 즉 단순한 아부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온 충심에 가깝가도 봐야 한다.
나폴레옹의 인간미가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한데 자기 아들이 보고 싶다면서 아들의 초상화가 그려진 펜던트를 만지작 거린다.
3. ABBA의 음반과 노래
자세한 내용은 Waterloo 문서 참고하십시오.[1] 재미있게도 두 사람은 프랑코 제피렐리의 TV 영화 <나사렛 예수>에서 각각 본디오 빌라도와 헤롯 안티파스를 연기했하며 만난 적이 있다.[2] 기네스북에 엑스트라 최다 동원 영화라는 기록을 남긴 영화로, 무려 75만 명을 동원해 전쟁씬을 재현했다. 이는 전성기의 소련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이만한 규모의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는 것도 어렵고 CG의 발달로 다시는 이런 엑스트라 동원 영화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3] CG 따윈 없던 시절이라 엑스트라로 소련군 병사 12,000명과 카자크 기병대 2,000명을 동원해 찍었다고 한다.[4]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나폴레옹 전기 영화를 구상한 적도 있으나 요절하면서 불발되었다.[5] 살이 찌기 전엔 대놓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리들리 스콧의 나폴레옹 영화에는 조세핀과 싸우다 당신은 뚱뚱하다는 불만을 듣는 장면도 있다.[6] 할로윈 시리즈 제작자로도 유명한 무스타파 아카드가 연출을 맡았으며 제작자 중 하나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다.[7] 프랑스어로 '제기랄'.[8] 소련에서 촬영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토리오 데 시카가 연출한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가 15년이나 상영 금지당한 시절이 있었다.[9] 사실 이렇게 늦게 개봉하는 건 당시 흔했다. 타워링도 3년이나 지나서야 한국에 개봉했듯이. 주로 외화 수입가가 비싸다든가 여러 문제로 개봉이 늦어지는 일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