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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ode civil des Français[1] / Code Napoléon[2]로마법 대전의 개량판이자, 근대의 대륙법을 대표하는 법전이다.
1804년 프랑스 제1제국 시대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의 명으로 제정되고 시행되었으며, 2024년 현 시점까지 수정되어서 프랑스의 법전으로 기능하고 있다. 나폴레옹 법전이라고도 흔히 부른다.
근대의 영미법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미국 헌법[3]과 함께 근대에 큰 영향을 끼쳤던 법전이다.
나폴레옹 전쟁 등의 영향으로 유럽에 퍼져나갔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프랑스 주변국이나 프랑스에게 정복당한 국가에 남아있다.
2. 내용
민법, 상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이렇게 다섯 개의 법전으로 분류되며, 법 앞의 평등, 사유 재산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근현대 시민법의 시작을 알리고 대륙법의 기초가 되는 법전.나폴레옹은 자신의 민법전이 완벽하고 다른 설명이나 수정이 필요없을 것이라고 여겨 나폴레옹 법전의 주석서가 나왔을 때 대단히 침울해 했다고 하였다.
3. 비판
La majestueuse égalité des lois, qui interdit au riche comme au pauvre de coucher sous les ponts, de mendier dans les rues et de voler du pain.
The law, in its majestic equality, forbids the rich as well as the poor to sleep under bridges, to beg in the streets, and to steal bread.
법은 부자든 빈자든 모두 다리아래서 노숙하는 것을 금지했고, 길거리에서 동냥하는 것과 빵을 훔치는 것을 금지한다.
- 아나톨 프랑스, Le Lys Rouge [The Red Lily] (1894), ch. 1
The law, in its majestic equality, forbids the rich as well as the poor to sleep under bridges, to beg in the streets, and to steal bread.
법은 부자든 빈자든 모두 다리아래서 노숙하는 것을 금지했고, 길거리에서 동냥하는 것과 빵을 훔치는 것을 금지한다.
- 아나톨 프랑스, Le Lys Rouge [The Red Lily] (1894), ch. 1
근대 최초의 성문법전인 프랑스 민법전(Code Civil)은 분명히 "법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다."는 말로 대표되는 법치주의의 구현이며 획기적인 진보이지만 그저 형식적 법치주의에 머물렀고 형식적 법치주의는 절대적인 소유권보장과 계약자유의 원칙을 골자로하여 오히려 불평등과 불공정을 정당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1] Civil Code of the French[2] Napoleonic Code[3] 5월과 9월 사이 총 55명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전명 개정 과정에 참여했으나, 실제로 9월 17일에 제정한 인물들은 39명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에 의해서 1787년 9월 17일에 39명의 대표들이 헌법을 제정했고, 1788년 6월 21일에 비준되어 1789년 3월 4일부터 효력을 발휘되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에 의해서 1787년 9월 17일에 39명의 대표들이 헌법을 제정했고, 1788년 6월 21일에 비준되어 1789년 3월 4일부터 효력을 발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