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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9 22:29:53

프랑스 국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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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혹은 미테랑 도서관(Bibliothèque François Mitterrand)

1. 개요2. 역사3. 설명

1. 개요

프랑스국립도서관이자 국가대표도서관. 파리 13구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대한 도서관 단지를 지어서 1995년에 이사했다. 파리 지하철 14호선RER C선을 타고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 역(Bibliothèque François Mitterrand)에서 내리면 된다.

2. 역사

처음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설립된 건 1368년 샤를 5세에 의해 만들어진게 시초이다.[1] 이후 1692년 일반인들(이라 하지만 대부분 귀족, 성직자들)에게 개방되었고 1793년 당시 제헌의회의 결의안(이 즈음이 프랑스 혁명기)으로 세계 최초의 민간도서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7월 14일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이 재선에도 성공한 겸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국립도서관을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으로 탈바꿈시키겠다"며 선언하였고, 건축가 도미니트 피로에게 설계를 맡겼는데 이때 무려 12억 유로(1조 2,000여억원)에 달하는 돈을 투입하였다. 그 결과 7년간의 공사로 4개의 22층 건물들로 이루어진 프랑스 최대 규모의 국립도서관이 탄생되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전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도서관을 짓는다"는 야심찬 포부로 국립도서관을 건설하였고, 자신이 설계 도면들을 검토한 후 직접 디자인을 골랐다. 그는 나름의 건축덕후(?)로 파리를 상징하는 혁신적인 현대 건축물 중 상당수를 반대 의견에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는데, 이 도서관 말고도 라데팡스신개선문,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피라미드 등이 대표적이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이러한 자신의 건축에 대한 야망적인 정책을 "그랑 프로제"(grand project)라고 이름붙였다.

매주 국무회의마다 국립도서관 건설이 논의에 올라왔고, 미테랑 대통령은 49차례나 걸쳐 공사 현장을 방문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1995년 퇴임 직전에 책들이 다 옮겨지지도 않았는데도 "꼭 테이프 커팅을 하고 싶다"며 준공식을 열었을 정도로 도서관에 대한 미테랑의 사랑은 각별했다. 우연의 일치로 국립도서관이 개관한 직후 미테랑은 사망했고, 프랑스 정부는 도서관에 애정을 쏟은 미테랑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미테랑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별칭으로 붙였다.

3.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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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전부 다 도서관이다. 사방에 있는 4개의 빌딩 외관의 컨셉은 펼쳐진 을 세워놓은 것이라고 하며, 그 아래의 넓고 낮은 건물까지 포함된다. 그런데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저기 보이는 단지 말고도 2개가 더 있다. 위 사진의 건물은 미테랑 도서관이라고 불린다.

소장도서는 약 1,400만권, 전체 자료는 3,000만 건 정도 된다. 한국에는 왕오천축국전, 직지심체요절외규장각 약탈도서 등 한국 관련 중요 고문서가 다수 보관된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직지와 외규장각의 존재와 가치가 밝혀진 것은 박병선 박사의 연구 덕분이었다. 이 중에서 외규장각 도서는 김영삼 한국 대통령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영구대여 방식으로 한국에 반환되었다.
[1] 같은 해에 명나라가 건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