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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 또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다. 프랑스는 러시아, 미국, 튀르키예, 이란, 중동과 함께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국가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로 카페를 개점한 사람이 바로 오스만 제국에서 온 아르메니아인으로 알려졌다.2. 상세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미 중세 시절에 프랑크 왕국과 교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로마 제국 출신이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이 프랑크 왕국에서 교역을 했었으며, 프랑스 내에는 중세 부유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도 무덤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다.중세 이후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자[1] 이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 내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프랑스에 이주 및 정착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인이 프랑스 파리 최초의 카페를 차린 것도 이러한 연유였다. 여담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의 서유럽 내 무역 기지는 네덜란드 내 암스테르담이었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인원은 외교 사절을 수행하는 소수의 인원에 불과하였다.
프랑스 내 아르메니아인 공동체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점은 근대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이후이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 내의 아르메니아인들 상당수가 오스만 제국 내 변방에 해당하는 레바논이나 시리아로 이동하였고 상당수는 다시 프랑스로 피난하였다. 이렇게 프랑스에 정착한 오스만 제국 출신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마르세유나 파리를 중심으로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이 당시 망명자들은 대부분 프랑스인들로 동화되었다.
러시아 혁명 전후로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아르메니아인 인구도 적지 않았는데 러시아 제국 상류층 중 아르메니아계가 적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로 극작가 아르투르 아다모프, 니나 베르베로바가 있다.
3. 문화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 본토보다는 해외 각지에 널리 퍼져 살기 때문에 프랑스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들은 자신의 출신 국가의 이런저런 문화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상술한 오스만 제국 출신 아르메니아인이 카페를 차린 것 이외에도 이란 사파비 제국에서 온 아르메니아인은 식물학 분야에서 활약하였으며, 이 외에도 러시아나 레반트 지역에서 온 아르메니아인들은 각자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 국가의 문화를 가져왔다.다른 한 편으로는 프랑스에 체류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은 타 지역 동포들에게 프랑스 문물을 전파할 때도 있었는데, 구소련 시절 아르메니아를 대표하는 명물이었던 아르메니아 브랜디의 기원은 프랑스에서 아르메니아 본토로 재이주한 아르메니아인 사업가가 1877년 차린 코냑 양조 공장이라고 한다.
3.1. 언어
대부분의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소련 해체 이전에 프랑스로 건너간 아르메니아인들은 프랑스인들로 동화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에 아르메니아에서 건너온 경우에는 아르메니아어를 대부분 사용한다.3.2. 종교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믿는다. 그리고 정교회[2], 동방 가톨릭(아르메니아 가톨릭)을 믿는 경우도 있다.3.3. 식문화
프랑스로 이민한 아르메니아인들은 레바논과 시리아에서처럼 음악인이나 배우 등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보통 이민자 입장에서 만만한 자영업이 요식업이다 보니 프랑스 내 중동식 레스토랑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상술된 것처럼 1672년 프랑스 내 최초의 카페를 차린 것도 아르메니아인들이었다.[3] 보통 이런 음식점들은 중동 레반트 지역 요리의 특수성 때문에[4] 같은 요리도 할랄 푸드로 만들면 아랍 요리, 코셔 푸드로 만들면 이스라엘 요리, 돼지고기로 만들면 아르메니아 요리가 되는 식이라서, 프랑스 내 아르메니아 식당들은 그냥 중동 음식을 프랑스인 입맛에 맞게 와인에 맞추어 나오는 편이다.4. 출신 인물
5. 관련 문서
6. 외부 링크
[1] 프랑스는 합스부르크 제국과 대치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상황에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로 친교 관계가 맺어졌던 것[2]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귀족이나 여타 상류층이 러시아 혁명 전후로 망명한 경우이다.[3] 파스칼(아르메니아 이름은 하루티얀)이라는 사람이 같은 아르메니아인 친구를 끌어들여 오스만식 카페를 차렸다.[4] 근세까지는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한 지역이었고 예루살렘은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모두에게 있어 성지이기 때문에 종교적 소수자들이 많다.[5] 어머니가 아르메니아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