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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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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국가별 현황4. 게임 요금
4.1. 1975~1989년4.2. 1990년대4.3. 1990년대 중후반4.4. 2000년대4.5. 2010년대4.6. 2020년대
5. 대한민국의 오락실사
5.1. 입지5.2. 유행한 게임
5.2.1. 1975~1989년5.2.2. 1990년대 초반~후반5.2.3. 1990년대 후반~2000년대5.2.4. 2010년대5.2.5. 2020년대
5.3. 태동기5.4. 전성기5.5. 대중화5.6. 침체기
5.6.1. 기판 가격에 비해 낮은 수익으로 인한 적자5.6.2. PC방의 등장5.6.3. 스마트폰 게임의 대중화5.6.4. 불법 복제 기판5.6.5. 인터넷 다운로드5.6.6. 게임기의 보급5.6.7. 네트워크 인프라 패러다임5.6.8. 고수 위주 문화로 인한 텃세 심화
5.7. 바다이야기 사태5.8. 재편 및 중흥기5.9.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침체기5.10. 코로나 이후
6. 전망
6.1. 네트워크 규제
7. 문제점8. 홈케이드9. 오락실의 위치 정보
9.1. 기기 별 위치 정보
10. 관련 용어11. 관련 문서

1. 개요

오락실(, arcade)은 '오락에 필요한 시설이 되어 있는 방 또는 오락을 하는 방'을 뜻하는 말로, 본래는 전통적으로 당구카드, 마작 등의 실내 유희를 즐기기 위한 방을 뜻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로 '전자오락실'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어, 동전을 넣으면 할 수 있는 게임기[1]를 갖추어 놓고 수익을 얻는 장소 및 그 업종의 총칭이다.

2. 특징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들은 게임 시스템을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는 설정 장치[2]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3] 게임을 무한히 플레이 하는 문제점과 오랜 시간동안 게임을 플레이하는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제한시간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액션 게임들은 반드시 제한시간을 설정해놓는 경우가 많았다. 1라운드 보스 같은 경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전액션게임에도 제한시간은 있지만 이쪽은 게임 밸런스적인 문제도 있으니 예외다.

동전을 보통 오락기 위에다 쌓아 놓는데 이는 대기 코인이라고 하여 이 다음에 계속 플레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다만 전국, 전세계의 오락실 모두가 그러지는 않으며 점포에 따라 금지하는 곳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문화를 몰라서 버려진 동전인 줄 알고 집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자세한 것은 대기카드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성인 오락실을 제외하고는 청소년 출입이 가능하여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24시간 동안 들어올 수 있는건 아니고 청소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출입 할 수 있다. 단,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같이 청소년을 보호, 감독할 만한 사람들과 같이 있는다면 오후 10시가 넘어서도 출입할 수 있다[4]. 10시 이후에 청소년이 있다가 경찰에게 적발되면 해당 오락실은 영업 정지 처분을 받게 되므로 오락실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기 싫으면 10시 이후에는 돌아가도록 하자.[5]

문방구 게임기나 동네 오락실처럼 시내가 아닌 곳에서 게임을 하다보면, 책가방 메고 옆에 달라 붙어서 '그게 아닌데...'라거나 '제가 깨 드릴까요?'라는 멘트를 던지는 돈 없는 초딩들이 출몰하곤 했다. 대부분 양민이지만 가끔 그 중엔 정말로 고수도 있다.

커플들이 데이트 장소로 오락실을 찾게 되며 틀린그림찾기 5, 비시바시 시리즈 등 캐주얼 게임도 많아지고 있다. 분명 80년대와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그런 영역은 아니었지만, DDR을 비롯한 1차 리듬게임 붐의 시작으로 여성들도 오락실을 많이 찾아오게 된 것이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저가형 노래방의 구축이나 여성들도 "응? 이거 다른거네? 한번 해볼까?" 하면서 여성 게이머들의 수가 증가하는 데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매번 하는 것 말고 다른 것도 일단 한번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니.

아주 극초기에는 대학가에 주로 '지능계발' 등의 홍보문구를 걸고 만들어졌고 대학생들의 새로운 놀잇거리로 인식되어서 대학생 커플이라든지 여학생들끼리도 많이 찾았다. 심지어 연대앞보다 이대앞이 장사가 더 잘됐다는 얘기도 있었을 정도.# 이후 고등학교, 중학교, 국민학교 등으로 입지가 확장되면서 어린 아이들이 주로 방과후에 놀러가는 곳이 되었고, 출입을 감시하는 이가 없는 폐쇄공간이라는 특징 때문에 당구장과 함께 양아치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 되어, 격투게임을 하다가 시비가 붙어서 싸운다거나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등 우범지대화가 되자 초기와 달리 커플이나 여대생들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우범지대라는 인식 때문에 2000년대까지만 해도 중학교 부근에 있는 오락실의 경우에는 불시에 선생님이 들이닥쳐 '여기 00 중학교 학생들 다 나와'라고 한 후 이름을 적어 갔다. 그래서 똑똑한 학생들은 발품을 좀 팔아 다른 중학교 부근의 오락실에서 오락을 했다. 그래서 중학교 여러 개가 가까이있는 경우 인근 중학교들과 협의를 하여 해당 중학교 학생들까지 불러낸 후 타 학교에 통보하기도 했다.

이후 PC방을 비롯한 대안이 많아져 애들이 노는 곳이 바뀌었고, 오락실도 변두리 동네에도 있던곳이 번화가 등지로 옮겨지고 각종 규제가 생겨나며 이러한 풍경은 보기 드물게 되었다. 아예 없어진 건 아니고, 공갈을 하거나 난동을 일으킬 경우 오락실 직원들이 경찰에 신고해서 붙잡혀가게 되며,직원들이 없더라도 범죄예방을 위해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뛰어봤자 벼룩이다.

1985~1986년, 갑자기 위의 높으신 분의 컴퓨터 산업을 장려하라는 명령으로 한동안 오락기가 사라지고 모조리 대우전자의 MSX 컴퓨터로 교체되는 일이 있었다. 모조리까진 아니어도 이때 오락실에 MSX통이 한국의 오락실에 어느 정도 입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있었던 일은 보통의 오락기의 경우에는 왼쪽에 조이스틱이 있고 오른쪽에 버튼들이 있었다.[6][7] 그러나 컴퓨터의 경우에는 왼쪽의 스페이스 바가 오락기의 버튼 역할을 했고 오른쪽에 방향 키가 있으므로 키보드 조작에 익숙치 않았던 꽤 많은 아이들이 손을 엇갈려서 게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게임 이름을 오락실 주인 나름대로 현지화하기도 했다.

3. 국가별 현황

다르게 유기장(遊機場)이라고도 부르지만 유기장이라는 명칭은 손님보다 업계인들이 더 자주 쓴다.[8] 한국에서는 영어로 병기할 때 콩글리시로 Game room이라고 하는게 보통이지만(80~90년대에는 그랬다), 영어로는 아케이드(Arcade) 또는 어뮤즈먼트 센터(Amusement Center), 일본에서는 게센(ゲーセン, 게임센터의 줄임말)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게이머들이나 일반인들이 심심하면 들리는 곳으로 취급받지만 사실 비디오 게임산업을 일으킨 게임부터 아케이드 게임이었으며 1990년대까지도 게임기나 PC와는 차원이 다른 그래픽과 성능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두뇌계발 넉 자로 유혹했던 로망과 추억의 장소였지만 시대의 냉정한 변화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업소이기도 하다. 오락실에 대해 '양아치 집합소'라는 편견에 가까운 인식이 심어진 것도 이 때문. 호황일 때는 오락실의 존재는 영원할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으나 1998년부터 피시방의 대두로 급격히 그 수가 줄면서,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그 존재조차 의심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액션게임 고수들이 많이 찾았으나 2010년대부터 게임기 혹은 PC가 주력 플랫폼이 되어서 사라졌고[9], 그 전에 죽어버린 슈팅게임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지금은 눈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는 경지에 다다른 리듬게임 유저들, 화면 가득한 적탄의 도트와 도트 사이를 동체시력만으로 신들린 듯 피해다니는 뉴타입들, 그리고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간단한 게임을 하기 위해 라이트 유저들이 가끔 드나드는 장소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10]

일본 오락실이 한국과 비교하여 좋은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일본에서 오락실에 대한 인식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본 역시 1990년대까지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양아치 집합소'라는 인식 역시 일본이 원조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인기를 끌던 시절에는 학생이 게임에 중독되어 공부를 게을리 한다거나, 게임과 관련된 공갈, 협박 등의 청소년 범죄가 많이 발생했으며, 결국 경찰이 게임업계에게 반강제적으로 자숙 선언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일본 언론에서도 반 인베이더 캠페인을 벌였고 결국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유행이 지나면서 이후 10여년 동안 오락실에 대한 나쁜 인식이 자리잡혔다. 2010~20년대 현재도 게임 센터라고 하면 불량 학생들이나 가고[11], 거기서 일하는 알바 또한 알바 중에서도 밑바닥이라는 편견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한편 이 무렵 닌텐도에서는 게임&워치를 발매하면서 "어린이가 갈 만한 곳이 못 되는 게임센터에 드나들지 말고 우리 휴대용 게임기로 노세요"라고 권했고, 이후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서 손을 떼고 게임기 게임에 집중하면서 어린이를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게임회사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닌텐도의 이런 전략은 오락실에 대한 나쁜 인식을 역이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코나미에서는 '치르코 포르토'(Circo porto)라는 게임센터를, SNK에서는 점포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SNK 성지급인 네오지오 랜드같은 체인을 굴렸지만 코나미는 사업부진으로 인해 게임센터 직영부문만 철수, SNK는 구 SNK가 망하는 바람에 오락실 체인 사업을 싹 접었다.

2010년대 이후로는 일본 역시 오락실이 쇠퇴하고 있는 상태인데, 2014년 기준 일본의 오락실 산업 규모는 3990억엔으로 이는 2007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오락실 최신 게임들은 전용 기체, 대형 기체 위주의 게임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과거에 비해 과도한 유지비가 들며, 이 때문에 영세한 오락실은 최신 게임을 들여놓을 수도 없을 정도이다. 사실상 대형 도심 엔터테인먼트 시설과 동네 소규모 오락실로 양극화되거나 재편된 셈이다.[12] 일본의 오락실 상당수는 체인점 형태로 운영하고 있고, 일본의 오락실 관련 유명 체인점 브랜드로는 세가(세가클럽, GIGO), 타이토(타이토 스테이션), 레져랜드, 어도어즈, 스포츠랜드(약칭 스포란), 라운드원, 게오(웨어하우스), 타카라지마 등이 있다. 오락실 점포 하나의 규모도 상당하여, 어지간한 대도시의 오락실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다.[13] 그래서 한국 오락실에서는 2대 이상 들여놓기가 쉽지 않은 몇몇 비싼 게임들은 일본의 체인 오락실에서는 최소 2~3대, 보통 4~5대가 기본이다.

파칭코 왕국 일본답게, 파칭코장 부설로 오락실을 운영하는 경우가 꽤 많다. 파칭코장 건물 한채를 짓고 아랫층은 파칭코장, 윗층은 청소년 오락실 식으로.

일본 이외에도 오락실 체인은 존재하지만 그렇게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다. 한국은 세가펀잇이 그나마 알려진 오락실 체인이었다. 그러나 세가 어뮤즈먼트 사업부가 소극적으로 나서며 한국 세가펀잇은 지지부진해졌다. 그리고 2017년경부터 가족형 오락실을 표방하는 짱오락실이 한국 오락실 체인업계의 신흥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일정한 요금을 내면 정액제로 프리플레이 기기를 이용할수 있는 아이존팝이라는 정액제형 체인도 급부상중이다. 이외에도 대승인터컴[14]에서는 '우리동네 오락실'이라는 정액제 오락실 체인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동남아시아 및 (중국 본토를 제외한) 중화권에서는 버추어랜드라는 체인이 있어서 홍콩, 싱가포르, 싱가포르에 인접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 버추어랜드에서 운영하는 오락실들이 종종 있다.

영어권에서는 오로지 게임만을 위해 존재하는 한국식 오락실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형 위락시설과 연계된 형태, 즉 영화관, 볼링장, 호텔, 식당, 스포츠 베팅장 등에 딸려있는 경우가 많다.[15] 다른 것을 하다가 가볍게 몇 게임 하는 식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대체로 한국보다 요금이 비싸고 최신 기계도 잘 안 갖다놓지만 용도가 용도다보니 생명력이 더 길고 PC방등 외부 경쟁자에 대한 영향도 적게 받았다. 조용히 앉아서 하는 게임보다는 체감형 게임이 많은것도 이런 이유. 어린이들이 오락실에서 생일 파티를 열기도 하며, 초대받은 어린이들은 파티 호스트로부터 일정 수의 크레딧을 받고 파티가 끝날 때까지 원하는 게임을 하다가 집에 갈 수 있다. 부모들도 함께 참여하는 등 건전하기 짝이 없다.
80년대 헐리우드 영화들에서 묘사된 북미권의 오락실 풍경. 로보캅 2, 터미네이터 2의 장면들도 나온다.

또한 서양의 오락실 문화가 한국이나 일본 등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게임기(아케이드 기통) 앞에 의자가 없고 서서 플레이하게 되어 있다는 것. 게임기 케이스 또한 한국과 일본에서 쓰이는 것들과는 다르며 몇몇 게임들은 외관에 화려한 삽화가 같이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오락실(혹은 이를 구현한 세트장)에서 촬영한 분량을 척 봐도 알수 있는 차이점이다.

북한에도 있다. 북한에서는 오락실을 오락관이라 하며 평양에 있다. 주로 자체개발한 권총 사격, 지상 폭격, 어뢰 발사, 직승기 조작 같은 군사 게임과 펌프 잇 업을 벤치마킹한 발운동게임, 그리고 무려 대한민국에서는 MAME에서나 볼 수 있는 이얼 쿵후같은 아주 옛날 게임 등이 있다.

4. 게임 요금

한국 오락실의 큰 장점이자 단점은 게임요금이 지나치게 싸다는 것이다.

오락실 게임의 특성 상 실력이 좋을수록 시간당 오락실 요금의 단가는 저렴해지는데, 같은 시간을 게임하더라도 게임 실력이 없으면 코인 러쉬를 하게 되고 그러면 남들 한판 할 시간동안 수십 배에 달하는 돈을 게임 요금으로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64가지 게임처럼 시간제 요금을 적용하는 게임도 있었다.

요금 결제의 경우 매장마다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로 현금 결제 시스템이 대부분이었으나, 2019년 7월 1일부터 신용카드를 통해서도 요금 결제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간 아케이드 게임에는 동전 및 지폐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업자는 탄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하기 힘들었고, 이용자는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기에,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아케이드 게임 결제수단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었으며, 이에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사행 행위 및 편법적 영업행위 방지를 위해 결제수단 다양화 대상을 '전체이용가' 아케이드 게임에 한해 신용카드와 같은 결제수단을 쓸 수 있게 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코나미의 PASELI시스템 국내 도입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간 요금 상승 폭도 꽤 높았기 때문에, 이용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는 줄 알았으나 인천의 엔터파크, 부산의 게임D나 대구의 놀자 오락실 등에서 별도의 오락실용 선불카드에 충전해서 결제하는 방식을 사용[16]하고 있지만 신용, 체크, 교통카드로 직접 결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번거로우며 환불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단점이 있으며, 별다른 공지 없이 갑작스럽게 폐업[17]할 경우 충전한 돈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위험하다.[18]

4.1. 1975~1989년

1975년 당시 요금은 10원으로, 임금이나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201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오락실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시기인 1978~1979년,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초창기 요금은 20원이었고, 이후 1983년까지 서울, 부산, 대구의 도심지역에 있는 오락실의 1회 게임요금은 칼라, 흑백 가리지 않고 20원이었고, 중심가에서 벗어난 변두리 지역은 칼라, 흑백 할 것 없이 20원이었다.

전자오락실에서 요금을 100원에서 50원으로 인하한 계기는 1980년 9월 당시 서울 도봉구 대지극장 부근에 있던 한 오락실이 인하한 것이 최초였다. 이후 그 주변의 오락실들이 100원에서 50원으로 인하하였고,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칼라 모니터를 사용한 게임한 게임기는 100원을 받았으나 1983년부터 50원으로 인하되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을 인하한 최초의 오락실은 1990년대 후반까지 그 자리에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 현대백화점 미아점이 들어서게 되면서 철거되었다. 1984년부터 1990년 8월 31일까지, 도심지나 변두리 할 것 없이 1회 게임 요금은 50원으로 통일되었다. 당시 오락실들은 100원을 넣으면 50원짜리 2개로 환전해주는 기계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고, 이 당시에는 오락실이 성황이었고[19] 월급이나 물가가 2010년대에 비하면 쌌기 때문에 오락실 업주들이 손해를 보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돈으로 가족들을 먹여살리거나 집을 산 업주들도 많았다.

동네 문방구에서도 현재의 조그만 기기로 장사를 하던곳들도 많았는데 당시에는 갤러그문 패트롤이나 방구차 등의 인기를 끌고있는 게임들이 대세였고 게임 요금은 대부분 50원 이었고, 문방구 게임기는 30원,타이토와 세가의 건슈팅, 드라이브 체감게임은 100원을 유지했다. (타이토 : 오퍼레이션 울프, 오퍼레이션 선더볼트, 체이스 HQ, 세가 : 슈팅 마스터, 아웃런, 행온, 스페이스 해리어, 엔듀로 레이서)

4.2. 1990년대

서울 지역 오락실 업계 연합은 1990년 9월 1일을 기해 100원으로 함께 인상하였다. 100원만 들고가도 게임 2판을 할 수 있었던 현재의 6080세대들이 50원 요금을 유지하던 오락실로 몰려가기도 했다. 광주가 1989년 12월 인상을 단행한 이후 각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인상을 진행하여 1992년 이후에는 기본 100원 체계가 자리잡혔다. 1991년 하반기엔 전국의 오락실이 100원으로 일제히 인상 이후 추억의 50원 환전기는 대한민국에서 자취를 감췄다. 당시 큰 번화가나 유원지의 오락실들은 200원씩이나 받았으니 동네 오락실 유저들에게 부담이 되었다. 80년대생 이후에게는 오락실을 접한 시기가 100원 시대 이후였으므로 이러한 요금변화는 딱히 체감되지 않았다.

1994년 現 강남역 버거킹 자리에 입점해있던 원더파크 게임장은 당시로는 최대 규모의 오락실이었는데, 데이토나 USA등 다양한 체감게임을 도입하며 200원 이상의 가격으로 플레이하도록 했고, 1997년말 혹은 1998년초, 최초로 도입된 아케이드 리듬게임인 비트매니아의 경우 최초 게임 플레이 가격이 500원이었다. 당시 성인의 버스 요금이 35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 대비 비싼 금액임은 사실이며, 원더파크를 시작으로 게임마다 요금을 차별화하여 받는 매장이 늘기 시작했다.

지금은 폐업하였지만 과거 킹오파 성지로 이름을 날렸던 메가존의 경우 격투게임은 기본 200원으로 설정하였으며, 1998년 등장한 일부 리듬게임은 1크레딧에 1,000원을 받기도 하는 등 요금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었다.

4.3. 1990년대 중후반

일본의 경우 한 판에 50엔에서 200엔, 호주의 경우 평균 1 호주달러[20]인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지방의 동네 오락실의 일반 오락기는 100원, 대형 체감형 게임기는 500원, 철권이나 인기 대전액션게임은 2~300원으로 싼 편이었는데, 오락실 게임 요금이 물가 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락실의 수익이 떨어졌고, 한편 일부 업주들은 수익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게임 난이도를 최대한 높이거나[21] 중화권이나 세운상가산 불법 복제 기판을 쓰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래도 이용자가 끊이지 않았던 1980~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박리다매로 낮은 이용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원지나 대형 호텔, 휴양시설 등에서는 당시에 무려 300원을 받은 적이 있다. 덤으로 펌프 같은 체감게임은 유원지, 대형호텔, 일부 번화가 오락실의 경우 1000원이나 받았다. 보통은 다른 리듬게임들처럼 500원이었다.

4.4. 2000년대

2000년대 들어 PC방 혁명(+스타크래프트 붐), 온라인 게임(MMORPG 등), 게임 다운로드 등 대체 컨텐츠가 등장하면서 오락실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는 2000년대 중반의 아케이드 업계 고사로 이어졌다.

물론 한국 더 싸다는 주장은 오류가 있는 것이, 일본이나 중화권의 일부 오락실들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싼 경우도 있다.[22]

한국 오락실의 한판 당 과금은 1990년대 말 이후 15년이 넘도록 대형 게임기 기준 500원으로 동결되었지만, 2013년 코나미의 비트매니아 IIDX댄스 댄스 레볼루션이 오랫만에 정식도입을 재개하면서 처음으로 한판 당 1,000원 과금을 도입했다. 이어서 이전까지는 한판 당 500원이었던 유비트, 리플렉 비트, 사운드 볼텍스 등도 500원 모드와 1,000원 모드(보통 프리미어 모드 등의 명칭으로 됨)를 나누어 1,000원 모드에서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투입하는 등 사실상 과금 인상에 나섰다. 이후 DDR은 수익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리듬게임처럼 500원모드와 1,000원 모드를 나눠서 돌아가게 된다. 인천 월미도에선 갤러그 한판에 500원이었다.

21세기가 되면서 일본의 일부 지방을 중심으로, 최신 슈팅게임(도돈파치 대왕생)을 포함한 웬만한 캐비닛 게임은 50엔, 철권 6 등의 전용기기가 있는 비싼 캐비닛 게임은 100엔 정도로 맞춰지기도 했다. 게임센터에서 제공하는 충전식 카드를 사용하면 이보다 더 싸지는 경우도 있고, 번외로 문방구급 인테리어의 환경에서 고전 구슬게임기 같은 종류만 모아서 한 판당 10엔으로 제공하는 곳도 있으며, 쭈그려 하는 수준의 소형케이스 게임기에 메탈슬러그 시리즈를 1라이프만 제공하는 대신 10엔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곳도 있다. 한국 점주들한테 배워온 모양.

4.5. 2010년대

한국은 리듬게임의 경우 1크레딧 500원인 경우가 많지만 과금 비용의 인상으로 2크레딧 1000원[23]인 게임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발된 beatmania IIDX가 1000원이다. 유비트 소서 풀필은 500원의 라이트3과 1000원의 스탠다드5 모드가 있다. 200원~300원대를 유지하던 EZ2AC도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다 500원으로 인상되었다.

일본의 경우 2010년대 들어서는 도쿄권은 1크레딧 100엔으로 통일되었다. 인컴이 원활하지 않은 게임의 경우 100엔에 2크레딧을 제공하거나 인기작의 경우 정해진 시간대에 100엔 2크레딧 할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은 100엔에 1크레딧. 태고의 달인 등 체감형 게임의 경우 200엔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4.6. 2020년대

드물게 남아 있었던 영세한 100~300원짜리 오락실은 전멸했으며, 사실상 1게임당 최소 500원이 되어버렸다. 홍대, 건대 등 유동인구가 많은 청년층 위주 상권에 도심 속 테마파크와 같이 VR방 또는 다트장, 사격장, 인형뽑기방, 코인노래방과 융합된 형태로 남아있다. 심지어는 한번 하는데 1000원 이상인 기계들도 종종 보인다. 상호명도 거의 "아케이드" 내지는 "게임 센터", "엔터테인먼트 센터" 등으로 표기하여 오락실이라는 어필을 잘 안 한다.

이성 친구나, 몇 달 만에 군대에서 휴가 나온 동기 내지는 친구 만났을 때와 같이 특별한 상황에서 테마파크(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 이용하는 느낌으로 한두 판 맛보고 나가는 일회성 손님들이 대부분으로, 최고 번화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거의 다 망했다.

아케이드 게임기의 난이도가 꽤 어렵게 설정되어 있는 데다 10~15분 동안 두세 판 할 요금으로 PC방을 가면 최소 1시간 반~2시간은 할 수 있으니 색다른 경험을 한번 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오락으로써의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며, 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리듬게임 역시 새롭게 발매되는 게임이나 새로운 기체가 나온 게임의 과금 비용이 1판 당 최소 1000원, 심하면 1500원으로 고정되는 추세다. 이는 오락실의 침체와 더불어 새로운 게임, 신기체의 비용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발생한 일이다.

5. 대한민국의 오락실사

5.1. 입지

2022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청소년 오락실은 450여 개로 추산된다. 나무위키의 오락실 위치정보에 등록된 오락실은 400여 개다.
오락실의 위치 정보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0px;"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eee,#00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
서울
강남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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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경기
북부
인천
대전 세종 충남 충북 강원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광주 전남 전북 제주 여객선
||<-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eee,#000> 파일:세계 지도.svg 기타 국가 ||
미국 일본 중국 호주
}}} ||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경남권, 그리고 집중까진 아니지만 인구가 많은 편인 대경권에 오락실의 수가 집중되어 있다. 나머지 지역의 오락실의 수를 다 합쳐도 영남지방(경남권, 경북권) 하나 못 따라갈 정도다. 호남지방과 충청도는 각각 500만이 좀 넘는 정도인 데 반해 영남지방의 인구수는 1,300만 명을 육박하며, 서울, 경기도, 경상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인구를 다 합쳐도 영남지방 인구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어렵게나마 운영하던 중소도시의 오락실들이 폐업하는 사태가 속출하면서 이제 대도시의 번화가가 아닌 이상 오락실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어졌다.

2022년에 접어들면서는 대형마트 내부에서 소규모로 운영되던 오락실마저 사실상 완전히 뿌리뽑혔다.

5.2. 유행한 게임

한국 아케이드 게임 업계의 시대별 유행 작품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 일본에서 만든 게임들이다.

5.2.1. 1975~1989년

5.2.2. 1990년대 초반~후반

본격적인 4인용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오락실 최고의 황금기다.

5.2.3.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게임들의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당대에 인기를 끌었던 게임 중에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히트를 친 작품들이 많다. 즉, 일본 오락실에서 히트를 치면 그 기판을 불법으로든 합법으로든 수입해서 가동함으로써 수익을 올렸기 때문에 한국의 게임은 일본과 비슷한 라이프 사이클을 따라갔다. 한국의 아케이드 게임 개발사들 역시 이러한 풍조를 따라서 일본의 오락실 유행을 따라가기에 급급했고, 이러한 행태는 국산 아케이드 게임의 발전을 어느정도 저해했다.

5.2.4. 2010년대

2010년대 초반 유비트 시리즈의 흥행으로 국내 정발에 박차를 가한 비마니 시리즈 같은 체험형 리듬게임과, 2010년대 후반에 반짝 흥하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인형뽑기방으로 요약할 수 있다.

5.2.5. 2020년대


2020년대는 오락실의 전반적인 침체기가 시작되어 오락실에서 특히 유행하는 게임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HMD형 VR 기기가 큰 인기를 끌면서 VR 게임들이 잠깐 떠올랐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대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확대, 오큘러스 퀘스트 2 같은 저렴한 HMD VR기기의 보급으로 인하여 수많은 VR방이 문을 닫게 됐다.

아케이드 게임 제작사 역시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아 자사 게임을 PC와 게임기로 이식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여기서 철권 7이 스팀으로 넘어가서 대성공을 거둔 탓에 대부분의 격투 게임이 오락실에서 빠져나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레이싱 게임 역시 완간 미드나이트 MAXIMUM TUNE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 정발이 끊겼고,[27] 레이싱 아케이드 게임 제작사도 코로나로 인한 매출 타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기에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리듬 게임도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아 EZ2AC[28] 같이 아케이드 사업에서 철수하고 PC 시장으로 거처를 옮긴 경우도 있고, WACCA 시리즈처럼 서비스를 종료하거나 리플렉 비트 시리즈[29]와 같이 사실상 방치 상태에 놓인 경우도 생겼다. 그래도 리듬 게임은 탄탄한 마니아층을 통해 수익이 유지되는 구조이기에 다른 아케이드 게임보다 상황이 훨씬 좋은 편이다. 그렇기에 비트매니아 IIDX 시리즈, 사운드 볼텍스 시리즈와 같이 새로운 전용 기체를 출시하는 경우도 생겼다.

5.3. 태동기


1982년 MBC에서 방영한 당시 한국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관한 방송. 초반에 다뤄진 게임은 세가의 레이싱 게임 터보갤러그이다.


파일:external/www.hardcoregaming101.net/part1-46.jpg
경향신문이 취재한 1983년의 오락실 풍경. 갤러그가 늘어서있는 모습에서 당시 갤러그의 선풍적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저 기판은 모두 세운상가를 주축으로 유포된 불법 클론 기판들이다. 기사 내용은 당시 학부모들의 전형적인 시각처럼, 오락실을 유해하게 보는 논조였다.[30]

초창기에는 핀볼 게임기나 아타리에서 개발한 등의 게임이 다른 아날로그 싱글로케이션 게임과 함께 서비스되면서 시작했다. 영어 발음을 잘 모르는 오락실 주인 아저씨들이 게임 원제와 전혀 상관없이 게임 제목을 오락실 기계에 써붙이기도 하였다. 국내에서 몇몇 게임들이 원작과 다른 타이틀로 알려진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다가 1977년에 아타리 브레이크아웃(벽돌깨기) 게임이 들어오면서 오락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1978년에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도입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국적으로 오락실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하여 이미 1980년이 되면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의 경우는 종로, 명동, 서면, 남포동 같은 번화가 뿐만 아니라 학교 주변이나 주택가에도 오락실이 들어서게 되었고, 전주시에도 오락실이 급증했을 정도가 되었다. 다만 이 시기에 서울 기준으로는 1975년 이후로 에너지 절약 문제 및 청소년 생활지도 문제로 인하여 오락실 신규 개업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중인 오락실의 90~95% 이상이 무허가 오락실이었으며 이 시기에 사용된 기판들은 상당수가 세운상가나 청계상가 등지에서 만든 복제 기판이라는 흑역사가 있다. 이때에는 타 업종의 업소가 떠나고 난 자리에 들어오기도 하였는데, 삼천리연탄 대리점 떠난 자리에 들어가서 삼천리오락실, 삼성전자 대리점 떠난 자리에 들어가서 삼성오락실 등등이 있었다.(1982~1983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이후 전대미문의 히트를 기록한 갤러그를 비롯하여 너구리, 버블보블, 아타리 테트리스, 하이퍼 올림픽, 원더보이, 1942, 더블 드래곤등의 게임이 차츰차츰 늘어나면서 오락실의 최고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5.4. 전성기

일본과 라이프 사이클은 동일하면서도 플레이 요금이 매우 쌌기에[31], 대전액션게임 등의 오락실 플레이 빈도가 매우 높아[32] 개중엔 고수도 많이 생겨났고, PC통신 등등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배틀 팀(클랜, 길드같은 개념)이 생기고 교류가 활발해지게 되었다. 이에 '일본하고 붙으면 당연히 우리가 이긴다' 같은 생각을 많이들 했고 실제로도 그런 결과를 보여주었다. 대표적으로 KOF시리즈나 버추어 파이터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3TB의 걸친 시기, 철권 시리즈에서는 철권 TT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앞서 있다.

버추어 파이터의 경우 신의욱(aka 꼬마아키라)으로 대표되던 괴수들이 일본을 '가지고 논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 수준 차이가 심했는데 실제 플레이 영상을 뒤져보면 참 안쓰러워질 정도로 당하는 장면도 있었다. 특히 대회 이후에 신의욱은 인터뷰에서 일본의 플레이어 수준에 대해 일본 최고수=한국에 널려있는 동네 고수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대회 이전에도 인터뷰로 일본 플레이어의 수준은 낮다고 언급했지만 정작 본 영상에서 편집으로 삭제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렸던 세계대회에서 신의욱씨가 우승, 조학동(aka 이게라우)씨가 준우승을 석권하고 나서 일본에서 오락실 투어를 하게 된다. 결과는 일방적인 참혹한 도장깨기였고, 이런 결과를 본 세가는 두 번 다시 세계대회를 열지 않았으며 한국 선수들을 초청하지도 않았다.[33] 당시 일어났던 처참한 사건들은 자세히 보고 싶다면 버추어 파이터 3 문서에서 확인하자.

한국의 아케이드 게임은 기본적으로 최고 난이도로만 맞춰져서 유저들은 결국 실력이 높아지지 않고선 즐기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한국인 특유의 승부욕과 집중력으로 인해 생긴 폐해 아닌 폐해이기도 하다. 즐기기보단 이기기 위해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일본이라고 고수들이 죄다 순수하게 즐기는 인간만 있는건 절대로 아니지만. 이후에 안 그래도 입문이 어렵던 격겜 장르는 건드려보기도 힘들 정도로 진입장벽이 올라가서 유입이 극단적으로 줄어버린 걸 생각하면 안타까운 이야기.

철권 시리즈의 경우 철권 TT 시절의 장익수 씨로 대표되던 시기가 유명하다. 전설이 된 것은 장익수 씨와 석동민 씨("요시오빠" 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졌다.)가 일본에 초청받아 벌인 대전. 석동민 씨는 화랑 등으로 부캐릭터를 고를 때 약 8패 가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최강이라고 불리웠던 장익수씨는 일본 원정에서 단 1패도 하지 않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일본 최고수 클래스와의 100전이 넘는 대전에서 단 1패도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일본 철권계는 버추어 파이터 시절처럼 대충격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후 세계대회에서도 한국이 1위~3위를 모조리 석권하면서 절대적으로 앞서나갔다. 이 이후 격차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한국이 앞서 있는 편. 이후에도 쿠단스, Nin, 홀맨, 무릎, 잡다캐릭 등 괴수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최근 세계대회 또한 한국이 석권했다.

5.5. 대중화

대전액션 게임의 뒤를 이어 오락실 업계를 점령한 장르는 리듬게임이었다. 일본 코나미에서 출시한 비트매니아댄스 댄스 레볼루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에 편승해서 펌프 잇 업, EZ2DJ이 등장하면서 국산 리듬게임 시장을 구축했다.

특히 댄스 댄스 레볼루션과 펌프 잇 업과 같은 댄스 리듬게임들은 다이어트 열풍에 힘입어서 '게임을 하면서 운동도 한다'라는 컨셉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리듬게임은 간단한 게임 방식과 독창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수록곡 등으로 기존에 오락실 게임을 즐기지 않던 이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오락실 역시 기존의 퇴폐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나 리듬게임을 중심으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소라는 긍정적 인식을 얻게 된다.

이 시절에는 특히 DDR방이나 펌프방처럼 리듬게임 기체만을 수십대 들여놓은 리듬게임 전용 오락실이 생기기도 하였다.[34]

하지만 리듬게임은 2002년 무렵부터 대중들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걸어갔다. 난이도는 한없이 높아졌고, 수록곡도 점점 리듬게임 매니아들에게만 지지를 받는 난해한 곡이 늘어났다. 리듬게임이 특정 매니아들만의 리그가 된 이후 오락실 업계는 새로운 주력 장르를 찾아야 했지만 대전 액션게임과 리듬게임의 뒤를 이어 오락실을 이끌어갈 장르는 탄생하지 않았다.

이 시기는 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게임, 온라인 게임이 발흥한 시기였다. 컴퓨터 성능의 발달로 인해 가정용 컴퓨터를 통해서도 전혀 손색없는 그래픽과 게임성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네트워크를 통해 타인과 동시에 게임을 즐긴다는 큰 메리트가 있었다.

게이머들은 오락실 대신 집이나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또한 이 무렵 발표된 일본산 가정용 게임기들은 그래픽이라는 면에서 오락실 게임과의 격차를 급격히 줄여가며 오락실의 메리트를 무력화시켰다.

5.6. 침체기

달도 차면 기울다는 말도 있듯이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오락실 업계는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2000년만해도 25,341개였던 오락실은 2001년 13,540개로 절반이나 줄었으며[35], 2002년에는 7,404개로 거기서 또 반쪽이 났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다.

5.6.1. 기판 가격에 비해 낮은 수익으로 인한 적자

5.6.2. PC방의 등장

청소년 유해시설이라는 눈총을 받아 지하나 뒷골목의 어둡고 불결한 장소에 주로 위치한 동네 오락실보다 피시방은 비교적 양지에 있고, 이전의 오락실들이 영세하여 인테리어나 서비스 시설 면에서 뒤처졌던 것에 비해 새롭게 개업한 피시방들은 훨씬 안락한 시설을 갖추었다. 예를 들어서 의자만 해도 오락실은 금속[36]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의자로 그나마 등받이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나 피시방에는 느긋하게 기댈 수 있는 편한 의자가 대부분이다.[37]

피시방의 주요 사업 도구인 컴퓨터는 가격도 저렴하고 게임 가격도 싼 데다 단순히 설치만 하면 되기 때문에 유지비가 적었지만 오락실의 사업 도구인 오락기는 덩치가 크고 유지비, 기판 가격이 비싸며 매출이 보장된 것이 아닌데 사용가격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결정적으로, 1980년대부터 오락실의 주 이용층은 초등학생~고등학생의 청소년들이었는데, 컴퓨터의 발전에 힘입어 피시방이 크게 보급되면서 이 청소년들의 관심게임들도 종래의 KOF나 철권 등 아케이드 게임에서 PC로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들로 넘어가버렸다. 1990년대 말까지만해도 피시방의 주력 컨텐츠는 스타크래프트같은 인기 멀티플레이 게임과 리니지를 위시한 MMO였던 만큼 전략시뮬 특유의 난도와 성인타겟 RPG에 대한 기호를 타서, 피시방 자체가 10대 후반이나 20~30대의, 비교적 고연령층의 공간이었는데 바람의 나라[38]를 필두로 1999년의 포트리스2, 2001년의 서바이벌 프로젝트, 2002년의 라그나로크카운터 스트라이크 1.5, 2003년의 테일즈위버, 카르마 온라인[39], 메이플스토리 등 저연령대에게도 충분히 어필이 가능한 온라인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며 미성년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피시방의 풍경을 이루게 된다.

자연히 아케이드 게임은 청소년들의 관심순위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물리적으로도 불량한 형들이 서식하기 좋은 으슥한 느낌에, 기껏해야 맞은편이나 옆자리 사람, 혹은 뒤에서 기다리거나 구경하는 사람과만 소통할 수 있는 환경보다는 하나의 방에 따닥따닥 붙어 앉아 같이 파티하듯 즐길 수 있는 피시방의 환경이 더 선호되었다. 무리지어 행동하길 좋아하고 또 아직 순수한 까닭에 '오늘 어디가서 뭐하고 놀지'를 공리주의적으로 결정하는 습성이 있는 청소년기 남학생들에게 둘, 많아야 네다섯만 동시에 즐기고 나머지는 구경하며 기다려야만 하는 오락실보다 열명 가까이도 동시에 놀 수 있는 피시방이 훨씬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택'으로 느껴졌을테니 오락실은 점점 외면받고 소수로 행동하길 좋아하는 불량학생들의 온거지가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2000년대 초반 기준으로 오락기 한판에 100원인데 반해, 피시방은 한 시간에 800~1000원[40]이니 지갑에 여유가 없는 학생들이 오락실 내지 문방구 앞 오락기에서 멀어지게 되고, 주이용자들이 손을 떼니 손님이 미어터져도 손해인 오락기주인들 입장에서는 치명타로 작용했다.

5.6.3. 스마트폰 게임의 대중화

위의 PC방이 2000년대 1차 충격을 줘서 사양산업을 만들었지만 2010년대에는 확인사살로 안드로이드와 iOS를 위시해 수많은 스마트폰(태블릿)에서 매우 다양하고 퀄리티 있는 게임들이 나왔고, 공간도, 자세의 제약도 없는지라 라이트 유저들은 이미 폰 게임이 대중화 된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종종 보였던 문방구 앞에 초등학생들을 노린 저가형 오락기들조차 최근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2020년에 들어서 모바일게임 시장이 캐릭터팔이와 과금유도로 떡칠된 양산형 게임들로 시장 자체가 비정상적인 구조를 가지면서 모바일쪽 유저중에서 게임성과 조작감을 중요시 하는 유저층 일부가 모바일로 이식된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 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 일종의 수렴진화 라고 말할 수 있을듯.

5.6.4. 불법 복제 기판

한국의 아케이드 업계는 불법복제기판으로 시작하였고 끝까지 이 늪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처음 오락실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고정해온 금액을 쉽게 올릴수 없었고 이 금액은 불법복제 기판으로 서비스한다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 요금을 유지하려면 불법기판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돼서 망할 수밖에 없는 사양산업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전 액션게임 역사에서 스파2 이후 KOF 94를 시작으로 한 KOF 올드 시리즈와 철권 TT의 천하 통일은 사실상 불법복제기판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케이드 시스템의 전체적인 보안까지 강화되어 불법복제판도 구하기 어렵게 되자 복제기판으로 잘 벌어 먹고살던 영세 오락실 업주들 태반이 이 시기에 장사를 접어버렸다. 물론 나오면 뚫리는 게 일이었던 SNK의 MVS 같은 시스템들은 여전히 불법 복제판이 만연하고 있었기 때문에(말기에 가면 아예 합본형 기판까지 돌고있었다.) 이것으로 연명하던 업주들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가동된 아케이드의 90프로 이상이 복제기판이다. 그나마 그중 10프로를 차지하는 정식 기판은 국내에서 만든 타이틀이거나 기판과 캐비넷이 하나라 기판만으로는 의미가 없어 반드시 전용 캐비넷이 필요한 슈팅을 포함한 체감게임이다. 일반 타이틀중 국내에 정식 유통된 기판은 5프로도 차지하지 못한다.[41]

결국 이를 계기로 마지막 플레이모어가 있던 시절까지도 국내에서는 아케이드를 공식 리테일한다는 시장은 조성하지 못한채로 아케이드 시장은 사라져갔다.[42]

5.6.5. 인터넷 다운로드

오락실에 있는 게임들은 MAME 등 에뮬레이터의 발전을 통해 어지간하면 인터넷 사이트에 거의 퍼져있다. 체감형 게임 정도만 예외. 하지만 그나마 체감형 게임마저도 프로그램은 인터넷에 올라와있다. 오락실 게임을 인터넷에서 계속 다운로드를 받는 바람에 굳이 돈쓰고 발품파는 오락실을 애용하지 않게 되고 있다.

게다가 요즘 띄엄띄엄 있는 오락실들도 고전 게임은 월광보합 같은 1000~2000게임 합본 에뮬레이터 기기로 돌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굳이 해당 게임만 탑재되어 있는 희귀한 오락실 가서 돈 주고 할 필요를 못 느낀다.

5.6.6. 게임기의 보급

패미컴이 대히트를 쳤던 요인 중 하나가 '오락실 게임을 가정에서도 즐긴다'였고 당시 인기 게임이었던 동키콩을 가정에서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큰 메리트였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오락실이 양아치 집합소라는 인식도 있었기에 가정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더욱 건전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80년대 당시에는 게임기의 성능이 아케이드 게임보다 뒤쳐졌기 때문에 다운이식이 될 수밖에 없었고 오락실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5세대 게임기가 발매되면서 게임기의 성능이 아케이드 게임의 성능과 맞먹게 되면서 완벽이식 작품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오락실의 쇠퇴로 이어졌다.

인터넷으로 다운로드받을 수 없는 일부 오락실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BOX로 이식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스트리트 파이터 4철권 TT 2. 이렇기 때문에 굳이 오락실을 안가도 되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 시기 아케이드 게임 업계의 선두주자인 일본에서도 온라인 게임의 등장과 가정용 게임기의 성능 향상 등으로 인해 오락실은 침체에 빠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 아케이드 업계가 내놓은 대책이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아케이드 게임기였다. 게임센터에 통신망을 연결, 게임기에 네트워크 기능을 도입해서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는 이제까지의 오락실에는 없던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다만, 아직까지도 오락실로 가는 유저가 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이 게임기로 진출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 예시중 하나가 이니셜D 아케이드 스테이지 시리즈로 4 베이스인 익스트림 스테이지 이후 아케이드 부서에서 나올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못박아 버렸기에 어쩔수 없이 오락실로 간다고 한다. 완간 미드나이트 MAXIMUM TUNE 시리즈도 같은 사항. 스팀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성토하지만 과연 세가, 남코가 그걸 신경 써줄지 의문이다. 마이마이 시리즈[43], 사운드 볼텍스 시리즈[44], 유비트 시리즈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루브 코스터는 닌텐도 스위치와 스팀, 태고의 달인은 닌텐도 스위치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했기에 논외에 해당한다.
최근들어 세가의 게임인 이니셜D The Arcade가 pc버전을 공식으로 풀린 게 아니라 불법으로 풀렸다. 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올렸으니 가정용으로 풀리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5.6.7. 네트워크 인프라 패러다임

세가, 코나미, 타이토 등 일본의 대형 게임회사들은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네트워크 기반을 쌓아올리며 준비 작업을 했다. 그 결과 2003년 즈음에는 하나둘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작품을 내놓으면서 활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 이르러서는 세가를 다시 한번 오락실의 제왕으로 올려 놓은 작품인 삼국지대전, 오락실에서 아이돌을 키운다는 컨셉의 특이한 작품 남코아이돌 마스터 등 네트워크가 없다면 구현이 힘들었을 히트작이 쏟아져 나와 오락실이 다시 한 번 번영하게 되는 기반을 마련한다. 덤으로 이 덕분에 오락실에서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전략 시뮬, 육성 시뮬, FPS, MMORPG, 심지어 최근엔 AOS 장르의 게임도)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들은 가격이 무지하게 높아서, 비싼 것은 1억 원이 다다르는 것도 생겨났다. 그리고 이런 것의 경우 최소 4대 이상으로 들여놓는게 기본사양인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도 이런 게임들을 들여 놓을 공간이나 자금이 여의치 않았던 조그마한 동네 오락실들은 하나둘씩 퇴출되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한국에서는 오락실 기계에 통신망을 연결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고 그런 것을 시도할 만큼 규모가 큰 아케이드 게임 회사도 없었기 때문에 네트워크는 도입되지 않았다. 펌프의 개발사 안다미로가 아크쉐이드라는 건슈팅 게임을 통해 오락실 네트워크 서비스를 시도했다. 아크쉐이드는 한게임에서 서비스되던 온라인 버전과 아케이드 버전 사이에 연동까지 되는 최첨단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두 버전 모두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5.6.8. 고수 위주 문화로 인한 텃세 심화

대전액션게임 문서의 문제점에서도 설명되어 있지만 한때 오락실의 주요 인기 장르였던 대전액션게임에서는 초심자, 라이트 유저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가정용 게임이 점차 보급되면서 게임을 하기 위해 오락실에 나와야 할 필요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그나마 오락실에 남은 이들은 소위 "매니아" 계층이 다수이다 보니 자연스레 저난이도의 게임은 회전률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게임사들은 게임의 회전율을 높여서 오락실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서서히 게임의 난이도를 어렵게 만드는 방향을 택했고,[45] 그 결과 라이트 유저들이 하기조차 힘든 게임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일반인들이 오락실에 발길을 끊는 결과를 초래했고 오락실의 쇠퇴로 이어졌다. 거기에 한국은 특성상 대부분의 게임이 일본에서 수입되는 작품들이었고 한국산 게임은 거의 없었던 것도, 이런 일본의 분위기가 반영된 신작 라인업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게 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일본에서는 정반대로 특유의 하이스코어 문화가 쇠퇴를 조금이나마 지연시키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일본에선 오래 전 게임 여명기때부터「어뮤즈먼트 라이프」라는 잡지가 1983년 4월호에서부터「이 달의 하이스코어 고지판(今月のハイスコア告知板(全国版))」이란 코너에서 일본 전국의 5대 도시 내에 있는 5개 업소를 대상으로 스코어 집계를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46] 고유의 하이스코어 문화가 이뤄지고 있었으며, 이 문화는 가정용 게임기의 보급과 함께 점차 쇠퇴하던 오락실 업계에서 "전일기록에 도전한다"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오락실의 수요를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듯이 하이스코어 문화를 토대로 탄생한 스코어러들의 부심과 텃세[47]가 심해졌다. 이들이 부리는 행패 때문에 상기한 게임의 매니악화와 겹쳐 오락실에 오는 손님도 점차 줄어들었으며, 하이스코어 문화 역시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이런 이들의 텃세로 인해 신규 유입이 줄어들며 점차적으로 쇠퇴하다 2015년경 월간 아르카디아가 부정기 간행이란 명목으로 폐간되면서 하이스코어 문화는 존립위기[48]를 맞이했다. 그나마 월간 아르카디아로부터 하이스코어 집계에 관한 모든 사항을 인수인계받은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49]가 2016년에 출범하면서 아르카디아 집계를 계승하여 2022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이 역시 오락실 업계가 뭔가 살려보기 위해 하는 것이라기보단 아르카디아의 비정기 간행화(실질적 폐간) 이후 스코어러들의 수요로 인해서 집계가 재개된 것에 가까우며 하이스코어 집계의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하이스코어 집계를 지탱하는 주 수요층인 스코어러들은 대부분이 1980~90년대부터 하이스코어 활동을 해온 아재들이 대다수인데다 심지어 주요 스코어러들도 아재들이 대다수[50]라는 점과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가 보여주는 총체적인 무능, 특정 메이커에 대한 차별, 말도 안 되는 내로남불까지 고려하면 하이스코어 문화의 전망은 더욱 어두워지면 어두워졌지 나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51] 이는 2022년 기준 20대 극후반이고 스코어러로서의 경력이 10년이 되는 하마미가 하이스코어판에서 아기로 취급된다는 사실과 하마미의 10년의 사람은 20년, 20년의 사람은 30년이라는 식의 세계란 발언은 하이스코어판의 현실이 어떤지 잘 증명해준다. 자세한건 여기를 읽어보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엔 하이스코어 문화가 아예 없었기에[52] 일본에 비해선 문제가 덜했다는 시각도 있으나, 한국 오락실 또한 전성기 시절 신의욱, 장익수와 같은 고수들은 존재했으며 대전액션게임에서 수많은 유명 플레이어들을 배출했고 일부 몰지각한 유저들에 의해 체어샷,리얼철권으로 대표되는 문제를 앓았다.

5.7. 바다이야기 사태

점점 쇠퇴해가는 오락실 시장에서 업주들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이때 다수의 업주들은 청소년 게임장으로는 더이상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바다이야기황금성을 위시한 성인용 도박 게임장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이러한 게임기들은 높은 중독성, 그리고 현금 환전[53]이라는 유혹으로 인해 다수의 중독자들을 낳았고 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되었다. 이렇게 되자 경찰을 중심으로 성인 게임장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었다.

바다이야기 사태가 단순히 게임 업계 내부의 사건을 넘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은 정치권이 이 사건을 정치적 이슈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권의 유력 인사 중 한 명이 바다이야기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정치권은 바다이야기 문제로 시끄러워졌다. 이에 전담팀까지 만드는 장기 수사에 돌입하였다. 그 결과 정치권 유력 인사의 개입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바다이야기의 허가 과정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고 말았다. 게임기 상품권의 현금 환전에 대한 문제로 인해 펌프의 개발사 안다미로도 이 때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성인 오락실 업계는 쑥대밭이 되고 말았는데, 특히 청소년 오락실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성인 오락실로 업종 변경을 했던 업주들은 이 때 매우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바다이야기 게임기에 네트워크를 통해 당첨 내용을 조작하는 등의 기능이 탑재되어 있던 것 때문에 오락실 게임기에 네트워크를 지원하기가 까다로워졌다. 이 때문에 삼국지대전을 수입하고 보급하려던 세가 코리아가 매우 난감해져 버렸다.

이후 오락실 업계는 소수의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다시 흘러갔다. 일단 더이상은 많은 수의 유저들이 오락실을 그리 출입하지 않게 된 대신, 동네 오락실을 가던 과거 유저들이 동네 오락실이 없어지게 되자 시간을 들여 그 나름대로의 영업 노하우를 가지고 살아남은 유명한 규모가 있는 오락실을 찾아내 원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오락실들 중, 관리를 잘하여 타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입소문을 타게된 오락실들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어 전국 각지에서 방문을 하기 시작해 과거보다 매출이 늘어나는 가게도 나왔다. 이에 더 해서 과거에 오락실을 다녔던 게이머들이 성인이 되어 직접 매장을 차리기도 하고, 심지어 게이머들이 직접 부품을 공수해와서 오래된 기기를 유지보수하기도 한다.

5.8. 재편 및 중흥기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 한국 오락실 업계는 재편기를 맞아, 새롭게 문을 여는 오락실이 생겨났다. 이는 오락실 장르의 침체와 아케이드 게임 회사들의 몰락, 그리고 바다이야기 사태 등의 악재가 연달아 겹치면서 청소년 오락실이 너무 많이 망했고, 그러다보니 얼마 되지도 않는 오락실 게이머들의 수요보다도 오락실의 수가 턱없이 모자른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2008년 발매된 DJMAX TECHNIKA유비트 등의 신작 게임이 기존에 오락실 게임을 즐기지 않던 유저들의 발길을 오락실로 돌리고, 철권 시리즈 역시 MBC GAME의 철권 방송 등을 통해 부흥기를 맞으면서 청소년 오락실 업계의 상황은 2000년대 초중반보다는 매우 나아졌다.

오락실이 하나둘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오락실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옛 게임(ex 건슈팅)들은 중고가가 오르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된 게임들은 대개 폐기되었으며, 재활용이 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업주들이 사업을 변경하거나 접거나 했었고 그로 인해 공급이 부족해졌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동네 오락실들이 사실 상 아예 씨가 마르다 보니, 1크레딧=100원 이라는 공식이 스리슬쩍 무너지고 200원~300원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 것, 그리고 최신 체감형 아케이드 기기들의 가격이 1크레딧=500원으로 어느정도 가격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평균 수준이 정해지게 된 것을 유저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 등이 꽤 큰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원래는 이것도 비정상적으로 싼 것이다.

PC방처럼 공공장소에서 쓰는 코인PC를 들여 놓은 오락실도 몇 곳 있다.

2010년대 중반 시점에서의 오락실은 한판 500원대의 리듬게임, 레이싱게임, 건슈팅게임 등의 체감형 게임들과 노래방을 주축으로 돌아갔다. 이전 세대의 스틱 게임기들은 거의 대부분 철권 중심으로, 그 외의 장르들은 대전액션게임 포함 구색만 맞춰둔 게 대부분이다.[54] 일단 MAME같은 고전 게임 에뮬레이터들이 너무 활성화 되어버렸고 어느정도 추가 금액만 지불하면 패드나 스틱으로 환경도 아케이드와 비슷하게 구현 할 수 있기 때문에,사실 상 MAME로 플레이가 불가능하거나 혼자 즐기는 것은 영 재미가 따라주지 않는 타입의 게임들 외에는 많은 게임들이 사라져 버렸다. 오락실의 황금기를 이끈 스틱 게임기의 시대를 겪은 이들에겐 꽤 씁쓸한 부분. 그리고 KAC 2012사운드 볼텍스 부스부문, KAC 2013유비트 소서리플렉 비트 콜레트 부문에서 한국인이 우승을 차지하고 2014년 6월 20일 기준으로 e-amusement 연결된 점포들중 beatmania IIDX단위인정 개전취득자 숫자가 4번째로 많은 오락실에 노량진 어뮤즈타운이 랭크인되는 등[55]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문제는 대학 주변 오락실의 경우 동전노래방이 생겨나면서[56] 수익이 많이 떨어졌고 굳이 대학 주변이 아니더라도 상황이 동전노래방이 근처에 생겼을 경우 경쟁에서 밀린다고 한다. 이는 플라스틱 부스로 나온 동전 노래방을 가동하는 오락실에 비해 일반 노래방처럼 석고보드등으로 분리한 동전 노래방이 영업하면서 노래하는 환경이 밀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2016년 들어서 인형 뽑기 등 크레인 게임만 들어가는 속칭 뽑기방의 신설이 전국적으로 가속화되었다. 이로 인해 여러 컨텐츠를 동시에 운영하는 일반적인 오락실의 수익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뽑기방은 대부분 직원 없이 CCTV와 원격 조정 만으로 저비용에 저면적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오락실은 없는 도시에도 뽑기방은 있을 정도며 동전노래방보다도 더욱 많이 퍼지는 중이다. 다만 인형 뽑기나 동전 노래방의 확대가 오락실에게 꼭 부정적이라고만 단정하기는 어려운게 매장 크기가 넉넉하여 여유가 있을 경우 뽑기나 오래방과 오락실을 겸하여 신설되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

한때 NESiCAxLive의 로케테스트가 진행되어서 한국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환경의 최신아케이드게임을 한 캐비닛에서 즐기고 있을 수가 있었으나 사실상 불발되고 한국에서의 NESiCA 네트워크는 소수입하된 그루브 코스터 아케이드를 위한 네트워크 용도로만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국산을 제외한 리듬게임은 BEMANI 시리즈일변도로 나가고 있으며 非BEMANI 게임의 입하는 태고의 달인 시리즈정도만 제외하면 입고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루브 코스터maimai 시리즈가 희귀입하로만 존재할 뿐이다.[57] 그나마 10여년 전 암흑기에 비하면 BEMANI 최신기종을 예전보다 접할 기회가 넓어졌다.

현재 국산 아케이드 게임은 펌프 잇 업 시리즈와 EZ2AC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고사한 상태며 오락실의 주요 콘텐츠가 거의 다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게임웹진 기사

그 외 일본 청소년 아케이드게임기 시장에서 나름대로 인기를 얻고 있는 아케이드 TCG나 네트워크형 체감게임들의 입하는 한국 내에서의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고 상술한대로 최소 4~8대는 들여놔야 하는 것들에 기체비가 비싼 것들이라 요원한 상황이다.[58]
그외에 틈새시장격으로 중국에서 제작된 소위 월광보합(영어로 Pandora's Box)이라 불리는 에뮬통이 입하되기 시작했는데, 원칙적으로는 에뮬레이션을 이용했다는점에서 불법이지만, 그나마라도 버블보블,스트라이커즈 1945 시리즈,아타리 테트리스처럼 대중적인 게임 빼면 열악했던 아케이드 레트로게임의 선택권이 늘어나고 있다. 그마저도 매니아들은 에뮬통 특유의 렉[59]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2017년부터 오락실의 부활에 대해 긍정적으로 분석한 기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기사들대로라면 지금까지의 서술과는 달리 의외로 오락실 문화가 부활할 가능성도 보인다. 특히 태고의 달인, 드럼매니아, 기타프릭스, 펌프 잇 업 등의 체감형 리듬게임이나, 완간 미드나이트, 이니셜D 등의 체감형 시뮬레이션 게임은 현실과도 같은 느낌을 선사하므로 부활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부활할 가능성이 높고, 구형의 스틱과 버튼으로 이뤄진 동키콩, 너구리, 버블보블 등의 게임들은 추억팔이로도 쓸수 있을것이다.[60] 실제로도 에뮬통으로나마 홈케이드를 구현한 부부 게이머들이 이러한 스틱 고전게임들을 아이들에게 시키는 광경도 보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2&aid=000318991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5&aid=0003786264

5.9.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침체기

2020년부터 유행한 코로나19의 여파는 오락실도 피해가지 못했다. 비록 노래방, PC방처럼 행정명령을 받지는 않았지만[61] 원체 업계의 입지가 작았던지라 충격은 다른 업계에 못지 않게 받고 있는데. 특히 행정명령을 받지않기 때문에 자영업 지원에서 빠져있는데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게 현실이고, 이 때문에 입지가 좋은 오락실마저 폐업을 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대형 게임센터들이 문을 닫고 코나미를 비롯한 게임 제작사들도 자사 아케이드 시리즈의 가정용 버전 수를 늘리고 아케이드의 역사 그 자체인 세가도 게임센터 사업을 접는 등 기존 아케이드 게임의 게임기, PC 발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실상 코로나 이전에도 호흡기만 달고 연명하는 수준이었던 오락실 업계에 대대적인 사망 선고가 떨어졌고, 실제로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 오락실도 수두룩했다.

5.10. 코로나 이후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는 등 세계가 일상을 되찾는 시점에서 오락실도 코로나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회복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의 아케이드 게임 업체의 경우 코로나의 후유증으로 인해 기존 게임 라인업을 줄이고 잘나가는 인기작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하거나, 특정 오락실 체인 독점으로 신작을 출시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인기작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한 사례로는 비마니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201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총 9개의 게임 모두를 최대한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2022년에는 시리즈 중 인기작인 beatmania IIDX, 사운드 볼텍스, DDR[62]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작품들도 리플렉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인기작에 비하면 업데이트 볼륨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오락실 체인 독점의 경우 주로 일본 프랜차이즈인 ROUND1에서 독점작을 많이 받고 있다. 비마니 시리즈의 경우 DANCE aROUND를 ROUND1 독점으로 출시했으며, 펌프 잇 업으로 유명한 안다미로크로노 서클을 ROUND1 독점으로 출시했다. 다만 이런 체인 독점의 경우 특정 작품을 독점한 체인점이 해외로 진출하지 않는 이상 타국에 있는 사람들은 그 게임을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대표적으로 ROUND1의 경우 미국을 제외한 해외에는 진출하지 않았으므로 한국에서 ROUND1 독점 게임을 하고 싶다면 일본으로 가거나 이들이 대한민국에 정식 진출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결국 리듬게임에 한정된 일이다. 격투게임, 슈팅게임 등은 PC스팀 등의 ESD의 발달로 오락실에서 빠져나온 지 오래고, 번화가에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오락실도 코로나 시기를 넘지 못하고 폐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오락실 하면 자동으로 레트로를 떠올릴 만큼, 추억 속에만 남은 죽은 장소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례로 예능 프로그램에 오락실이 등장할 경우, 오락실의 전성기였던 1980~2000년대의 레트로를 추억하는 내용이 나오거나 뽑기방 같은 형식의 오락실이 나오는 정도가 전부다.

사실, 2022년 현재 시점에서 오락실 몰락에 큰 역할을 했었던 PC방들 조차도 코로나 이후로 번화가의 메이저한 PC방 이외에는 급격히 몰락해가는 추세이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세대교체의 일환으로 봐야한다.

6. 전망

2008년 전후로 신설되기 시작한 오락실의 주된 특징을 찾아본다면, 과거와는 달리 대형화를 통해 한번에 여러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되거나 고가를 내더라도 확실하게 즐기고자 하는 유저층과 매니아층을 대상으로 아케이드 기기를 들여놓는 대신 고정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게임장은 대개 펀 잇 바이 세가엔터, 아이존 게임플렉스, 노리존[63] 등의 대형 체인점 위주로 설립되었다. 영화관 인근에 입점하며 체감형 게임으로 20대 이상의 유동인구를 잡으려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일본이나 북미 쪽 같이 "도심형 복합 어뮤즈먼트 센터"로의 변화를 어느정도 따라가고 있다고 봐야겠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확실한 자본과 지속적인 광고와 이벤트 등을 유지하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 여타 외국에서 규모가 있는 수준으로는 대형화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펀 잇 바이 세가나 엔터같은 전문 체인점이 더욱 활성화된다면 더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좀 어려워 보인다는 게 문제. 유동인구의 주머니를 털기 위한 진입장벽 낮고 화려한 게임의 개발과 도입, 세련된 오락실 운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닌텐도가 게임 인구 확대를 천명하며 폭넓은 사람들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개척하는 데에 성공했듯이 오락실도 일반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대중적인 시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 또한 PC방은 2000년대만 해도 오락실보다 훨씬 어두운 조명 등 폐쇄적인 환경이었으나 점차 개선되어 나쁜 이미지를 벗는 것에 성공했듯이 오락실도 과거 양아치 집합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영화관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한 업소들 위주로 그렇게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가족들도 부담없이 놀러올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도 Wii의 대히트와 고유가로 인해 절반에 가까운 대형 오락실이 폐쇄되는 등의 큰 위기를 맞이했다. 게다가 가정용 게임으로도 이제는 쉽고 간단하게 온라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아케이드 산업이 사양산업이기도 해서(한국과 일본 이외에는 아케이드 시장은 이미 죽었다고 봐도 된다.) 예전의 그 위용을 찾는 건 힘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게임기나 PC로는 아직 넘보지 못하는 체감형 게임은 아직도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중심으로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데드스톰 파이레츠다크 이스케이프 4D는 아케이드 게임이라기보다는 테마파크의 다크 라이드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을 주며, 이는 게임기 게임에서 느끼기 힘든 체험이기에 매력적이다. 문제는 이런 규모가 있는 아케이드 기기들의 가격은 정말 장난이 아니라서 본전을 뽑기 위한 기간도 참 오래 걸리는 게 당연한데 이걸 없애려면 오랜시간 찾을 때 마다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낮추어서 초보자도 즐겁게 즐기고 갈 수 있어야 하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그걸 버틸 체력(자금), 인력(서비스), 관리(기기의 고장 등) 여러가지가 받쳐줘야 한다.[64] 거기다가 지나치게 고가격 게임 위주로만 나오니 저가형 게임이 너무 많이 자취를 감추어서 규모가 적은 중소 아케이드 룸 같은 것이 성립될 여지도 없다.

일본은 이미 세가 클럽, 타이토 스테이션 등의 대형 게임센터 체인점 위주로 오락실 업계가 재편된 상황이었지만, 2008년부터는 일본 내에서도 단순히 아케이드 게임만을 가동하는 곳이 아닌 복합 레저 시설을 표방하는 체인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라운드원, SPO-CHA에리어 등이 있다. 이런 곳은 일반적인 오락실과 함께 운동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데, 일정액을 내면 시설에 있는 모든 운동기구를 사용할 수 있고 거의 전문 운동시설 수준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 유명 체인점들에 스포츠와 관련된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하지만 후발기업들이 이런 카드를 꺼내든 탓에 세가클럽이나 타이토스테이션처럼 목표를 거대 게임센터로 잡았던 선행주자들은 죽을 맛이라고.

아케이드 게임이 테마파크 놀이기구처럼 변하는 동안 테마파크는 반대로 아케이드처럼 변했다. 한 예로 디즈니 캘리포니아 어드벤처에 있는 토이 스토리 미드웨이 마니아!는 건슈팅 게임 같은 구성의 다크 라이드이다.[65] 이렇게 아케이드 게임이 다른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경우도 있다.

6.1. 네트워크 규제

본래 게임의 네트워크 서비스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약이 없었지만, 오락실을 말 그대로 개박살 지경으로 몰아넣어버린 바다이야기 때문에 게임기의 네트워크 연결을 금지하는 규제가 생겨버려 아케이드 게임의 네트워크 연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당초 네트워크 연결을 하려던 게임들이 네트워크 기능이 되지 않는 반쪽짜리 게임으로 돌아가는 실태를 보이고 있었다. 이 당시의 대표적인 피해 개발사는 다름아닌 세가로, 버추어 파이터4를 비롯하여 일본에서도 강력하게 밀어주고 있었던 삼국지대전과 같은 네트워크 대응 타이틀들을 서비스하려 했으나 모두 포기했던 상태.

그런 채로 몇년이 흐르다가 업계인들의 수많은 질타와 요구로 인해 정부에서도 어느정도 규제 완화에 들어갔고, 때마침 DJMAX TECHNIKA의 발매까지 겹쳐서 빠른 속도로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했다. DJMAX TECHNIKA의 경우 발매시기에 때마침 규제가 풀리는 추세였기에 별 무리 없이 네트워크 서비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테크니카조차도 심의 때문에 발매가 연기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당시의 규제 완화는 긍정적인 상태로 이어져오는 데 성공하여 반다이남코게임즈의 철권 6가 2008년 6월말에 철권넷의 로케테스트를 실행했으며, 이 후 철권넷이 정상 가동에 들어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랭킹을 볼 수 있고 아이템을 살 수 있다! 이후 코나미의 비마니 시리즈 중 e-amusement 대응 서비스가 한국으로도 확대된다는 것이 확정되면서 시범 타이틀로 유비트드럼매니아 V5가 테스트용 타이틀로서 소량 수입되기 시작하여 이후 리플렉 비트도 정식발매되며 꾸준히 서비스 중인 상황.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네트워크 대응 아케이드 게임을 제일 먼저 도입하려고 했던 세가만이 물먹고 사업을 접어 버렸고, 협력사인 TOFF가 삼국지대전3의 네트워크를 드디어 실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니셜D의 당시 최신버전인 6가 네트워크를 달고 정식 발매했다.

바다이야기 파동 전에 성인용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배출하는 게임기의 관리를 위해(기계를 개조해 도박용으로 쓰지 않게) 영업을 감시하는 기계를 만들고 있었는데 바다이야기 파동으로 성인용 게임의 상품배출 자체가 불법이 되어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이 기계의 도입을 추진했었다. 게다가 성인용 기계에 장착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계에 장착을 시도, 더 나아가 아예 오락실 자체를 정부에서 관리&관할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의도가 뭔지 알 수 없다. 또한 게등위는 상품을 배출하는 게임기(인형뽑기, UFO캐쳐 등) 자체를 법으로 금지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2013년 말 게임위의 역할을 게임문화재단의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가 넘겨받으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게등위 출범 이후로 아케이드 게임의 심의가 매우 복잡해졌다. 기계 외장을 좀 바꾼 것뿐인데도 새로 심의를 받아야 하며, 같은 방식이나 비슷한 방식의 게임도 아케이드로 나오면 이상하게 심의를 잘 안 내 준다고 한다. 게등위가 출범한 계기가 바다이야기인 것을 고려하면 엄격한 거야 당연한 거겠지만 2008년 10월에 심의를 신청한 게임은 하나를 제외하고 전부 심의가 안 나오는 등 논란이 많았다. 게임문화재단으로 심의 권한을 이양된 이후에도 게임위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행정을 보여주고 있다. 관련 내용은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 문서 참조.

7. 문제점

8. 홈케이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홈케이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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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락실의 위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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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된 오락실의 위치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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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오락실을 개업할 때에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청소년게임제공업'으로 인가를 받으며,[68] 정부 3.0을 통해 모든 인가된 청소년게임제공업소가 공개되어 있다.[69] 청소년게임제공업으로 인가된 업소는 2020년 3분기 기준 6658곳이다. 여기에는 동전노래방과 인형뽑기방, 일부 성인오락실[70]이 포함되어 있다.

근방 지역의 오락실 위치와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리듬게이ㅁ'[71][72] 이라는 앱이 있다.[73]

유비트가 있는 오락실만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으로는 '유비트 루트'(국내 정보) '유비트 루트 JP'(일본)가 있다. 안드로이드용으로 나온 RGTools라는 앱에서는 리듬게임에 한해서 게임별 위치를 제공한다. 유비트 플러스도 일본에 국한되긴 하나 유비트가 설치된 오락실을 보여준다.

구미권 오락실 정보는 zenius -I- vanisher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9.1. 기기 별 위치 정보

10. 관련 용어

11. 관련 문서



[1] 주로 전자 오락 게임기가 많지만 아닌 것도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핀볼을 비롯한 아날로그 게임기가 그 예다.[2] 일명 '서비스 모드(Service Mode)'. 과거에는 게임 설정을 서비스 모드를 경유하지 않고 기판에 내장된 딥스위치만으로 조작해야 했지만, 소프트웨어 내에서 서비스 모드를 지원하는 게임이 늘어나면서 90년대 이후 순수 딥스위치 조작 방식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3] 최소한 한국에서 대부분의 아케이드 게임들은 게임 플레이 시간을 최고로 빠르게 설정을 하고 게임 난이도 밸런스도 최고 어렵게 설정을 하고 이런저런 설정들을 이용해서 무한 반복되는 게임 코인 회전율 속도를 최고로 빠르게 설정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다만 일부 업주의 실수로 보통, 약간 어려움 단위(8레벨제로 치면 4~6정도)의 난이도로 설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참고로 쉬움 단위의 난이도로 설정된 아케이드 게임은 거의 없었다.)[4]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6조 제2호 가목.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은 게임산업진흥법에 의하여 만 18세 미만이거나 고등학교 재학 중인 사람을 말한다(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0호). 만 18세인데 고등학교를 자퇴했거나 이미 졸업한 상태라면 10시 이후로도 혼자 있는게 가능하며 이때에는 졸업장이나 제적증명서와 함께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5] 일본에서는 오후 6시 이후부터는 16세 미만 청소년 출입을 제한하고, 오후 10시 이후부터는 18세 미만 청소년 출입을 제한한다. 한국처럼 다음날 오전 9시에 제한이 풀린다.[6] 최고 6개다.[7]가라테의 경우에는 양쪽에 조이스틱만 있었다.[8] 오락실 업계 업주들의 협회는 대한유기장협회라는 이름으로 나와있다.[9] 특히 철권 7 FR의 스팀 발매가 치명적이었다.[10] 정확히는 그만큼 오락실 수가 줄었고 그에 따라 해당 게임을 멀리 찾아가서라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11] 물론 구석으로 끌고가 삥을 뜯는 그런건 당연히 없지만[12] 한국도 바다이야기 사태를 겪고 나서 2000년대 말 2차 BEMANI 르네상스(유비트 시리즈 정발)가 시작된 이래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13] 이 중 웨어하우스의 경우 주차장까지 구비해 놓았다.[14] 스티커 사진 기기 제조회사[15] 일본에도 이런 형식으로 연계된 스타일의 대형 게임센터가 있다. 대표적으로 삿포로에 위치한 GEO디노스는 2층 규모의 대형 게임센터와 영화관, 볼링장이 같이 입주되어 있다.[16] 이런 경우 PC방 등처럼 일정 금액 충전 시 추가 금액을 더 넣어주기 때문에 단골 손님을 만들기 쉽다.[17] 대구, 부산, 인천이 나름대로 큰 동네기는 하지만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그 서울에 있는 오락실도 자꾸 폐업하는 마당이니 가능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18] 피시방에 돈을 충전해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폐업해서 돈을 그냥 날린 사례가 있다. 그날 쓸 만큼만 선불로 쓰면 괜찮지만 충전해 두면 그런 점이 안 좋고, 이는 오락실도 마찬가지다. 업종은 다르지만 코로나를 핑계로 갑자기 폐업한 세차장의 사례가 있다.[19] 당시에는 주 6일제였기 때문에 오락 즐길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청소년 인구가 2010년대 후반의 두 배에 달했으며, 청년층 인구비율도 높았던 시절이었다.[20] 2018-02-16 기준 약 848원.[21] 딥스위치 조작 및 서비스 모드를 통해 난이도를 살인적으로 올리는 방법, 예컨대 8레벨제 세팅이면 8레벨로 고정하는 등의 수법이다. 다만 양심이 있던 일부 점포는 레벨 6~7로 해두기도 했다.[22] 일본은 전 지역 균일가가 아니라 지역별로 요금에 차이가 있어서, 100엔 2크레딧 정책을 시행하는 곳의 경우 IIDX와 DDR은 한국보다 싸다. IIDX의 경우 국내판 기체 스펙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한국유저가 더 비싸게 플레이하고 있는 셈이다.[23] 즉 1000원 단위로만 투입이 가능한 것.[24] 훗날 KOF시리즈의 아테나와 켄슈의 원조.[25] 의 클론으로 한국에서는 오트론전자가 개발한 것(?), 축구, 탁구, 스쿼시, 사격1, 사격2[26] 훗날 KOF시리즈의 랄프와 클라크의 원조.[27] 그나마 라이벌 게임이였던 이니셜D 아케이드 시리즈도 Zero 버전을 끝으로 나오지 못 했다. 이유는 이니셜D THE ARCADE 문서를 참고.[28] 다만 이쪽은 총판과의 갈등이 더 컸다.[29] 이쪽도 코로나의 영향이라기엔 이미 몇 년 전부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30] 업주들도 오락실이라는 단어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의식했는지 '컴퓨터 지능개발실', '지능계발' 이름의 간판이 많았다. 물론 간판뿐이고 실제로 지능개발실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31] 매우 오랜 기간 동안 한 판에 100원 정도로 정착되어 있었다. 이것도 예전에는 50원이었다.[32] 예를들어 당시 한국과 일본의 오락실 문화 차이에 대한 증언 중 하나로 "한번 붙어보고 자기보다 고수다 싶으면 일본인들은 물러나서 구경하고, 한국인들은 이길때까지 도전한다"는 말이 있었다. 한번 도전하는데 드는 요금이 10배 차이니 그럴만도 하다.[33] 당시 대회를 시작하기전 버파유저들은 신의욱, 조학동의 우승다툼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으며 더구나 대회가 시작되기 직전 서로 '결승에서 만나자' 라고 공언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사살.[34] 2010년대 이후 비슷한것으로 사당 모펀 같은걸 생각해 보면 된다.[35] 관련 기사[36] 특유의 동그란 의자.[37] 사실 이는 시간에 비례해 요금을 받기 때문에 한명이 오래 있어도 손해가 없는 피시방과는 달리 오락실은 1회 플레이 단위로 요금을 받았기 때문에 손님이 쓸데없이 오래 있는 것은 방해됐으므로 발전의 방향이 달라졌던 것이 이유일 것이다.[38] 바람의 나라는 1996년에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인터페이스가 개선되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건 1998년 초중반이며, 특정레벨 도달 전까지 무료로 서비스하는 정책, 게임잡지에 일정시간 이용쿠폰을 동봉하는 정책 등으로 2000년 전후의 저연령 아이들에게도 크게 어필한다.[39] 출시는 2002년 12월 18일[40] 물론 초창기의 피시방 요금(1998년 기준)은 1500~2000원으로 꽤 비싼 편이었으나, 피씨방이 전국적으로 확장되면서 1000원대로 차츰 낮아지기 시작했다. 피시방이 몰리는 신도시 상업지구의 경우 피시방끼리 가격경쟁이 붙어서 시간당 500원을 받는 가게를 찾는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당시 대도시보다 지대가 싸고 주로 미성년 학생을 둔 가구가 밀집한 위성신도시들에는 자연히 이들을 목표로 하는 피시방 창업도 성행해서, 새 피시방이 분기나 반기에 하나씩 생기다보니 점주들끼리 담합하기도 쉽지가 않아 가격경쟁이 심했다. 피씨방끼리 치킨게임을 하는 경우 소위 유료게임에 대한 추가지불도 받지 않는 곳도 종종 등장했다.[41] 애초에 국내에 기판을 정식으로 리테일한 게임회사는 없었다. 5프로의 정식 기판도 개인업자를 통해 흘러들어온 물건들이다. 일반적으로 아케이드 게임의 정식유통은 리테일러로부터 구입하는 것으로 성립하는데 국내는 리테일 대상외였다[42] 우리가 오락실에서 흔하게 보는 크라운 캐비넷마저도 세가의 초기 시티캐비넷 사이드 셋업타입을 중국에서 복제한 것을 다시 국내에서 복제한 복제에 복제를 거듭한 기체이다. 그도 그럴게 당시 일본내 블래스트 시티 설치가 한대당 60만엔정도였다.[43] 마이마이 뿐만 아니라 게키츄마이 전반에 해당된다.[44] 아케이드 프로그램 기반의 공식 PC버전이 나왔다.[45] 특히 슈팅 게임이 이런 현상이 가장 심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슈팅 게임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46] 이 집계는 일부 도시내의 특정 오락실의 하이스코어만 대상으로 한 집계이기에 온전한 전국 단위의 집계는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일본 전국을 대상으로 한 집계는 「마이크로컴퓨터 BASIC 매거진」 1984년 1월호에 수록된 부록지인 「마이크로컴퓨터 슈퍼 스프트 매거진」에 집계 내역이 실린 게 최초다.[47] 이른바 패턴 숨기기로 대표되는데, 고생해서 딴 전일이 갈릴 것을 우려한 스코어러들에 의해서 스코어를 불리는 방법과 진행 패턴 등의 공략 정보가 은폐되기도 했다. 자기는 기껏 고생해서 발견하고 전일을 땄는데, 아케이드 게임 특성상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만든 패턴을 알기만 하면 손쉽게 시도할 수 있다보니 이런 "노력 도둑질"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 자기가 아는 사람들한테만 공유하고 어지간하면 공개하지 않는식으로 은폐하였다. 오죽하면 "패턴 공개를 막기 위해 오락실에서 자기가 게임할 때 천막을 덮어 다른 사람이 구경하지 못하도록 했다"라는 진위여부 불명의 루머가 사실인 마냥 돌아다닌 적도 있다. 우메하라가 이러한 스코어러들을 비판했다는 스레가 세워지자 패턴 은폐로 대표되는 스코어러들의 행태에 질린 사람들이 몰려와서 스코어러들을 비난한 바 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하이스코어 문화에 있어서도 절대로 도움이 안 되는 행위이며, 2000년대 초중반대를 전후로 하이스코어 문화가 점차적으로 쇠퇴해버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48] 아무리 높은 고득점을 내본들 이걸 집계해서 발표해주는 단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49] 이 조직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건 월간 아르카디아의 집계를 계승했다는 정통성이 있기 때문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런 정통성이 없었다면 잘쳐줘봐야 과거에 나카노 류조가 운영하던 집계사이트 규모 정도가 한계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하협 자체가 게메스트, 아르카디아에서 남긴 유산으로 먹고 사는 조직이다.[50] 당장 유세미만 해도 2021년 기준 40대 중후반이고 유세미보다 나이가 많은 나이토, 오사다 선인도 2022년 기준 50을 코앞에 두고 있다. Clover-TAC도 2004년 시점에서 23세였으니 2022년 기준 40대 초반대며, WTN도 2022년 기준이으로 50 중후반대로 거진 60을 바라보고 있다.(#, A) DBS는 40이 되자마자 아예 하이스코어러 활동에서 은퇴했다. 주요 스코어러들조차도 늙어가고 있는 판국에 다른 스코어러들은 말할것도 없다.[51] 2010년대 이후 오락실로 출시되는 신작 타이틀의 숫자조차 눈에 띄게 줄어든 판국에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는 오락실에서 가동하는 신작 타이틀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서 집계할 생각은 하지 못할망정 exA-Arcadia를 차별하는 한심한 작태나 보이고 있으며, 이외에도 '連なし'부문에 대하여 되도않는 억지를 부리면서 해석을 변경하는 찌질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 그나마 일관성이나마 있으면 모를까 캐리어 에어윙의 '連なし' 부문에선 조작기기에 대한 개조를 금지한 주제에 심슨 가족의 '連なし'부문에선 동시입력 버튼의 사용을 허용하는 이중잣대를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둘 다 1996년 4월 이전에 발매된 오락실 게임이다.[52] 2010년대 들어서 자체 하이스코어 집계를 하는 점포가 생기기는 하였으나, 많은 한계로 인해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지는 못 하고 있다.[53] 게임장 내에서는 상품권만 지급하지만, 상품권을 바로 옆에 있는 환전소에서 현금으로 바꿔주는 식으로 단속을 피했다.[54] 2D 대전액션이라면 KOF 시리즈 네오지오기판작, 슈팅은 사이쿄 계열, 퍼즐은 아타리 테트리스나 퍼즐버블 무인판. 액션은 메탈슬러그 시리즈, 버블보블 시리즈, 스포츠는 테크모 월드컵 98 등.[55] 저 집계표에서 개전취득자수 상위에 랭크된 일본외 점포는 어뮤즈가 유일했다.[56] 대부분의 동전노래방의 영업 인가는 노래연습장업이 아닌 청소년게임제공업으로 취급한다.[57] 츄니즘은 입하되지 않는것이 아니라 입하되는것이 불가능했었다. 마이마이시리즈나 그루브 코스터 시리즈는 해외판이 정발되었으나, 츄니즘은 세가에서 내수용으로만 출시했으며, 네트워크가 필수로 요구되는 특성상 직수입도 불가능했다. 이 문제는 해외판인 츄니즘 슈퍼스타가 나오면서 해소되었다.[58] 아케이드 TCG만해도 스마트폰이 활성화된 한국의 경우 모바일 게임 플랫폼의 비슷한 (소셜) TCG게임들이 이쪽의 대체제로 충분히 기능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59] 대체로 CPU 클럭수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일부 최적화가 덜된 게임들은 내장 CPU가 소화하지 못해서 느려진다.[60] 당장 동키콩이 1981년에 출시되었다.[61] 이마저도 2021년에는 행정명령을 받아 새벽 영업을 제한받은 적이 있다.[62] 사실 DDR도 기존 팬들에게 만족스러울 정도의 퀄리티를 보이고 있지 못하다.[63] 이 체인점의 광주 쪽 체인점에서 타가디스코에 관련된 사고가 2012년 4월 28일 발생해서 비단 문제의 점포뿐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노리존 브랜드에 대한 타격이 컸었다. 그리고 홈페이지가 있었는데 어느날 없어졌다.[64] 앞서 언급한 데드스톰 파이레츠나 다크 이스케이프 4D만 해도 1회 플레이 요금이 비쌈에도 불구하고 난이도가 너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65] 출처: 게임 디자인 레벨업 가이드 p.28(스콧 로저스 저)[66] KOF 시리즈가 일명 사각배열과 나이키 배열 차이 때문에 대회에도 차질이 있을 정도였다. 둘 다 능숙하게 하는 유저는 극소수다.[67] 게임 화면 비율이 절반밖에 보이지 않거나 정밀하게 안 맞아서 2P/4P플레이어 체력게이지만 출력되는 PGM 기판 삼국전기 시리즈, 게임 화면 비율이 정밀하게 안 맞아서 2P/3P/4P플레이어 체력게이지만 출력되는 CPS 시리즈 게임.[68] 다만 일부 대형 업소는 복합유통게임제공업 혹은 유원시설업으로 신고한 곳도 있다.(유원시설업으로 인가된 곳은 대부분 다른 업종-복합유통게임제공업 혹은 청소년게임제공업으로도 인가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정말 드물게 일반게임제공업(전체이용가)으로 인가를 받은 곳도 있긴 하다.[69] 사이트 개편으로 주소가 바뀌었다. 세부 항목의 링크가 걸리지 않아 '문화 → 게임 → 청소년게임제공업 혹은 복합유통게임제공업' 경로로 찾아야 하며, 유원시설업으로 등록된 일부 오락실은 '문화 → 관광 → 유원시설업(기타)' 경로로 찾아야 한다.[70] 가동하는 게임이 전체이용가로 인가된 게임이면 이 항목으로 신고할 수 있으며 규제나 행정감독 등 여러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청소년게임제공업으로 인가한 것으로 보인다.[71] iOS, 안드로이드 버전 배포중. '아!내가리게이다'와 반대로 iOS에서는 오락실 편집/복원이 가능하지만 안드로이드 버전은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의 구조적 보안결함 때문이라고 한다.[72] 오락실 추가 및 삭제는 관리자 확인 후 적용된다고 한다.[73] 신생앱이라서 그런지 아직 등록된 오락실 수는 좀 적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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