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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大同江 | Taedong River | |
발원지 | 북한 평안남도 녕원군 청남산맥 한태령 대한민국 평안남도 영원군(명목상) |
하구 | 남포시 |
유입 해역 | 황해 |
길이 | 450.3km |
유역 | · 평안도 · 황해도 평양시 · 남포시 |
유역 면적 | 20,247km2 |
수계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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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대표적인 강 중 하나로, 한반도에서 다섯 번째로 긴 강이다. 대동강은 북한의 수도 평양시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강이 한강이라면 북한을 대표하는 강은 대동강이라고 비유해도 될 정도다.
한반도 주요한 강들이 그렇듯이 여기도 태백산맥에 수원지를 두고 있다. 한반도 북부의 큰 강 중 국경의 압록강과 두만강과 달리 오로지 북한 단 한 나라만이 관리하는 강이기 때문에 수도를 지나간다는 이유를 포함해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북한 정부가 모든 강들 중에 가장 세밀하게 관리하고 눈여겨보는 강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 경제가 열악하여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의 군 명칭 중 하나인 대동군은 이 강에서 유래했으며, 강동군은 이 강의 동쪽에 있고 강서군은 이 강의 서쪽에 있다 하여 붙여졌다.
1.1. 지리
대동강의 수계도 |
유역면적은 20,247km2이고, 길이는 450.3km이다. 옛 이름은 패수(浿水)[3], 패강(浿江).
하중도로는 능라도, 양각도, 두로도, 곤유도, 두단도, 쑥섬 등이 있다. 특이하게도 도심에 가까운 능라도, 양각도에는 모두 경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두로도 인근 쑥섬에는 과학기술전당이 있다. 곤유도는 밤섬처럼 작은 섬이고 두단도는 여의도처럼 섬으로서의 정체성을 거의 상실했다.
상류유역에는 해발고도 2,000m 내외의 높은 산들이 있으나 유역의 대부분 지역은 낮은 산지이다. 상류유역의 북부·동부에는 청남정맥 및 청북정맥[4]과 백두대간 북부 능선이 이어져 있으며, 서부에는 청남정맥[5]이 있다.
2. 역사
2.1. 단군 조선 ~ 삼국시대
한민족의 시작은 요하강 유역으로 알려져 있다. 요하강 유역에서 시작한 한민족은 점차 동쪽과 남쪽으로 영향을 넓힌다. 최초의 국가인 조선[6]이 연나라에게 요하 지역을 뺏기자 조선은 대동강 유역의 현재 평양 일대로 중심지를 옮긴다. 또한 남쪽 진국에도 다수의 예맥족이 산 것으로 보인다.[7][8]남부에서 고대문명이 태동할만한 큰 강인 한강과 낙동강은 진이 차지했고 진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고전시대에 한민족 겨례에서 가장 발전했던 지역은 겨례가 태동했던 요하강 유역과 대동강 유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영역 중 요하강 유역은 철기 시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연나라의 침입을 받아 쇠퇴했으므로 고대시대 한민족 최대지역은 대동강 유역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대동강 유역은 고조선-연 전쟁 후 단군 조선과 위만 조선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당시 수도는 왕검성으로 왕검성은 현재 평양시에 위치해 있다.
위만 조선이 한나라와의 전쟁 끝에 한무제에게 정복당한 후에도 대동강은 한민족의 중심지였다, 삼한의 목지국이 한강 유역에서 마한의 수장국으로서 세를 떨치고 있었으나, 철기 문명인 위만 조선이 망할 때까지도 청동기 문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더러 한강 유역조차도 통일하지 못해 한강 유역에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난립하고 있었는데[9] 반하여 대동강 유역에는 한무제가 조선을 정복하고 그 지역 위에 세운 낙랑군이 존재했으며, 왕검성이 있던 자리에는 조선현이 세워져 낙랑의 수도[10]이자 중심지로 작용했다.
낙랑이 쇠퇴하면서 대동강 유역이 역사의 중심지에서 잠시 벗어나기도 했다. 만주벌판에서는 부여, 압록강 유역에서는 고구려, 한강 유역에서는 백제가 낙동강 유역에서는 신라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구려가 낙랑과 부여를 정복하고 장수왕 시기에 평야가 좁고 식량생산량이 적은 압록강 유역의 국내성에서 대동강 유역의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겨례에서 가장 번영한 지역이란 위상을 되찾는다.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한강 유역도 고구려가 정복하고 점유하고 있었으나 남북국시대에 대신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계속 전장이 되었으므로 번영하지는 못했다. 이는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멸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2.2. 남북국시대 ~ 고려 시대
본래 전통적으로 발전한 지역이었던 대동강 유역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정복당한 때부터 였다. 당시 당나라는 고구려를 정복한 뒤에 대동강 유역의 인구 상당수를 다른 지역으로 이송했다. 고구려를 완벽하게 짓이기기 위해서 한 조치로 보이지만 덕분에 북방 유목민족이 너무 강해져서 당나라 ~ 송나라에 이은 한족의 수난시대가 시작된다. 당나라가 고구려의 영토를 북방 유목민족과 고구려 유민들에게 뺏기면서 대동강 유역 또한 다시 뱉어 냈지만 애초에 정복한 이후 관리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대동강 유역이 발해와 신라의 국경 지역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쇠퇴했다.사실상 남북시대에는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로 대동강 유역은 한반도에서는 비교적 꽤 규모가 되는 평야가 존재하는 지역이었음에도 버려졌다. 이 상태는 신라가 분열했다가 고려로 재통일되고 발해가 멸망해 발해유민이 고려로 귀순하는 과정에서 대동강 유역이 고려의 영토가 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고려가 건국되고 안정되자 고려의 시선은 다시 대동강 유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고려는 고구려를 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고구려의 수도가 대동강 유역의 평양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대동강 유역을 다시 중요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양은 서경이라 높여서 부르게 되었고 고려의 태조인 왕건은 서경을 중요시해야한다는 유지를 내린바 있으며 또한 서경은 제 2의 수도로서 존중받았다.
대동강 유역은 다시 번영하는 듯했으나, 고려가 안정화되면서 후방이 되어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 된 옛 신라의 가문들이 번성하면서 중앙 정치를 신라계가 잠식하기 시작했고, 고구려 계승의식이 신라 계승으로 교체되면서 다시 대동강 유역은 버려졌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이런 과정에서 실패했다. 신라 계승 의식도 원나라의 장기간의 지배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논리로 고구려가 포함되는 '삼한일통'의 논리가 중시되고는 했다. # 고구려를 중시하지 않았다면 공민왕도 개마고원을 자신의 영토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을 정도로 신라,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도 중요시되었다. 하지만 이미 원나라에 의해 대동강은 황폐해졌다.
결정타는 원의 복속을 벗어나지 얼마되지 않아, 홍건적이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이 부분을 중심으로 공격을 한 사건이다. 아예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몰린 상황에서 대동강 바로 남쪽의 황주 이북은 청야 전술을 노려 고려군은 백성과 물자를 황주의 절령 이남으로 옮겨버렸다. # 그래서 고려 말은 이 지역은 쌀농사든 밀농사든 아무것도 생각하기 힘든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2.3. 조선 시대 ~ 대한제국
세종이 사민정책으로 북방에 힘을 실어 주었는데, 사민의 원인은 국경 안정화였다. 왜 국경 안정화로 사민 정책이 필요했냐면 오랜 전란으로 황폐한 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적을 막아 대동강을 비롯한 평안도 사람의 복지를 도모한 정책이기도 했다. # 참고로 청진[11]과 같은 함경도의 주요도시는 부산처럼 일제강점기에 성장한 곳이라 사민정책의 직접적 혜택도 없었다.인터넷 상으로는 북한을 대입해서[12] 무슨 이민족이 사는 곳마냥 노골적으로 차별했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그런 것으로 따지면 황해도보다 과거 합격이 적은 강원도도 차별받는 곳으로 묘사해야 한다. 이것은 근대에 정치인들이 조장한 영호남 지역갈등에 조선시대를 끌고오는 수준이나 평영남비를 두고 경상도에 대한 지역 비하를 하는 것과 같은 주장으로, 경제적, 역사적으로는 조선에서 아무곳도 차별받는 곳이 없었기에[13] 일찍이 태조 시대에부터 대동강도 '기자의 남긴 터'라는 식으로 높이 평가되기도 했다. #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높은 관직에 올라가지 못한 것을 두고 인터넷 상에 왜곡된 주장이 많은데, 경향분기라고 하여 18세기부터 영호남 출신도 그런 대우를 받기도 했고, 명문가라면 조준 같은 평양 출신도 정승 수준의 높은 직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지역 출신이라 그런게 아니고 벌열이라는 고관 대작의 가문이 전부 한양 출신이고, 특히 수도인 한양이나 전란의 피해가 적은 삼남을 제외하면 경기도나 강원도[14]까지도 전란으로 의도치 않게 저런 가문이 조선 초부터 드문 것이다. 삼남에서는 초창기에는 그나마 고관 대작이 있었던 이유가 이런 이유에서다. 오히려 한양 출신들에게 쫓겨난 쪽은 삼남 지방 출신으로, 남인과 호론이 갈려나가며 서울 공화국 같은 현상이 있던 것이다. 그래서 강원도보다 황해도가 이렇게 출세한 사람이 약간 더 많았다.
정말로 역사적으로 차별은 전혀 없었기에 1516년 중종 대에는 제사를 하는 강은 낙동강, 한강, 대동강,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흥 근처의 용흥강이었다. # 15세기에 쓰인 금오신화의 취유부벽정기에서도 대동강변의 부벽루가 주요 배경이고, 조선시대의 다른 소설에서도 연광정도 많이 다루어지고는 했다. # 특히 조선시대에도 인지도가 높은 평양부와의 관계를 떼어놓을 수 없는 강이라서, 평양과 관련된 이야기는 대동강을 직간접적으로 다룬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것이다. 평양성은 대동강을 바로 옆에 끼고 지어진 성이기 때문이다. 정도전도 삼봉집에서 부벽루에서 본 대동강의 경치를 아름답게 묘사하기도 하고, '우수·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와 같은 속담도 유명했다. 훗날 남한의 가수인 나훈아의 '평양 아줌마', 손인호의 '한 많은 대동강'에 나오는 대동강의 명소는 조선시대에 유명해진 것이다.
명나라와의 사대관계가 있던 시기에는 홍건적 등의 여파로 전란으로 황폐한 곳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청나라와의 사대관계로 더이상 전선이 아니게 되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8도 중 두 번째에 근접하게 인구가 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평안도도 쌀농사도 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교역으로 크게 성장한 곳이었다.
2.4. 일제강점기 ~ 해방 초
경술국치를 맞이하여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병탄당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이후, 평양은 식민지 조선에서 제 2의 도시로 취급되었다. 식민지 치하에서 남포와 신의주가 상업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에 평양은 서비스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덕분에 대동강 유역은 남포 - 평양의 경제권을 형성하게 된다. 이 경제권 덕분에 대동강 유역의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대한제국 인구가 고작 약 1800만 명[15][16]이었는데 해방 당시 북한지역인구만 1000만 명이고 그 중 상당수가 태백산맥 서쪽, 특히 평양 - 남포 - 사리원의 북부 평야권에 살고 있었으므로 대동강 유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제국도 이 인구를 기반으로 한반도 북부에 대한 병참기지화를 수행했는데, 그 병참기지화의 핵심이 중공업을 육성하는 것이었으므로 대동강 유역은 함흥-원산 선과 함께 한반도의 주요 공업지역으로 성장했다.일본 제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에는 만주 작전으로 밀고 들어오던 소련이 3.8선 분할로 대동강 유역을 점령했다. 소련은 공업이 발전한 함흥을 북한의 중심지로 하려다가 북한 정부의 설득을 듣고 평양으로 중심지로 선택했다. 소련군정은 자국의 전후복구를 위해 점령지의 공장을 약탈했고 상당수의 기계들이 소련으로 옮겨졌다. 대동강 유역 또한 소련군정기에 침체기를 맞이했다.
3. 개관
강 유역의 평균 강수량은 1,207.8mm로 비교적 많다.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면서 많아진다. 대동강 하류인 평안남도 남부 지방 등은 강수량이 적어서 진압농법[17]을 주로 시행하였다. 현재는 위성으로 보면 알 수 있다시피 그냥 관개를 한다.또한 유역에는 고조선, 낙랑군, 고구려의 연고지이고 특히 고구려 유적이 많이 산재한다.
24절기 중 두 번째 절기인 우수(양력 2월 19일)가 지나면 얼어붙었던 이 강의 물도 풀린다고 한다.
서해갑문을 통해 중류지역의 평양시, 순천시, 성천군까지 1천톤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게 되어있다.
전략적으로는 원산과 이을 경우 청천강-함흥과 더불어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지경선으로 많이 쓴다. 역사적으로 봐도 나당동맹 체결 당시 당나라와 신라가 합의한 자연경계가 대동강이었으며 6.25 전쟁 당시 북진할 때도, 38선부터 몇 개의 구획을 나눠 단계적으로 북진하였는데 그 라인 중 하나가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선이다. 해리 S. 트루먼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는 맥아더가 38선을 돌파하는 것을 그다지 바라지 않았으며, 돌파하더라도 이 라인을 지키고 중국과 소련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길 바랐으나 맥아더는 압록-두만강 라인까지 완벽히 밀길 원했으며 가능하다면 중공군과 전면전까지 해도 상관없다는 의도를 밝혔다. 중공군은 UN군의 급속 북진과 공군의 월경을 이유로 들어 한반도에 개입했다. 만일 통일 시점에서 이 선을 지켰다면 북한은 압도적인 국력차로 결국 흡수되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중국이 먹지 않았겠냐는 주장이 있다. 사실 북한 분할, 북중합방 문서에서 보듯 중국의 직접적인 북한 병합 시나리오는 중국이 남한 및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치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친중성향의 괴뢰국가 정도로 남아 완충지대로 존재하는걸 최선으로 여기는데 더욱이, 대동강-원산 라인 정도에서 휴전선이 그어졌을 때의 북한은 현실의 북한보다 생존하기 훨씬 더 어려우므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을 확률이 높고, 그로 인하여 중국의 괴뢰국화가 가속될 확률이 높아졌을 것이다.
과거에는 수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평양과 그 근교 일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와 생활 하수로 수질이 안 좋아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 자체는 있는 듯하나, 북한의 사정이 사정인 만큼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며 김정은이 직접 밝힌 내용이다.
4. 교량
<colbgcolor=#2a57a5> 대동강의 교량 | |||||
도로교 | 청류교 | 옥류교 | 능라교 | ||
대동교 | 양각교 | 충성의 다리 | |||
철교 | 대동강철교(양각철교) | 서해갑문 |
5. 여담
- 평안남도 대동군은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대한민국의 이북 5도 행정구역상으로는 평양시를 가운데 두고 그 교외지역을 관할하며 이름대로 대동강을 끼고 있으나, 북한 행정구역상 대동군은 평양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축소되어 대동강을 끼고 있지 않다.
- 봉이 김선달이 물장사를 한다며 사기를 친 물이 평양에 흐르는 대동강 물이다.
- 대동강 맥주는 북한 맥주 브랜드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최초의 조선중앙방송 광고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유튜브에 풀리면서 한때 유행을 탔었다.
- 12월 7일 공장에서 생산하는 대동강이라는 이름의 북한산 생리대가 있는데, 이 공장에서 해군 함정, 고속정도 생산한다.
- 북한 원 2차 시리즈 50원권의 모델이었다.
- 나훈아의 곡인 '대동강 편지'도 이 대동강에서 따왔다.
- 내일은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이 경연에서 부른 '한 많은 대동강' 노래가 중장년 층에게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였다.영상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남북관계 안정화나 통일 후 북한(또는 구 북한 지역)의 경제 성장을 '대동강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이를 제목으로 한 책도 있다.- 폭우에 약한 강이기도 하다. 2007년 여름에는 폭우가 내려서 대동강이 범람하였고, 이때문에 2차 남북정상회담이 8월말 개최에서 10월 초로 넘어가버렸다. 보도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2020년 당시에는 북한이 3중고를 겪었다고 하였다. 사실 대동강 유역보다는 동해안과 평양-원산 이남의 피해가 심했다. 통일 이후에 어떻게든 손봐야 할지도 모른다.
- 평양냉면 육수에 사용되는 물은 대동강 물로만 사용한다.
- 숭어가 많이 잡혀 대동강 숭엇국이 유명하다.
[1]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한강, 대동강 순이며 북한에서는 3번째로 길고 순수 북한의 강 중에서는 가장 길다. 압록강, 두만강은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니 북한만의 강이 아니기 때문이다.[2] 산맥 기준 낭림산맥.[3] 낙랑군 후기, 고구려 시기의 명칭.[4] 산맥 기준 낭림산맥.[5] 산맥 기준 묘향산맥.[6] 한반도 남부의 최초국가인 진은 정보가 없어서 한민족의 근본을 조선으로 본다. 진은 삼한의 모태가 된 나라로 적어도 우거왕이 위만에게 쫓겨서 남쪽으로 내려올 때 이미 존재한 나라다. 이 진나라가 왜 삼한으로 갈렸는지도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7] 역사 속에서 고조선에서 정치싸움으로 밀려난 세력이 진나라/삼한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8] 다만 한반도가 진국 시기에는 아직 완전히 예맥화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9] 삼한의 정치를 고대 그리스의 도시 연합체제와 비슷하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10] 정확히는 낙랑토성이 수도였다. 왕검성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사실 왕검성과 완전히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11] 부령군 관할의 조그만 어촌이었다.[12] 개성시/역사 문서에서도 이런 인식이 드러난다. 이것 때문에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역사왜곡에 대응하는 것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중국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함경도나 강원도의 과즐이라는 한과를 두고 '어디가서 저렇게 한과 만들었다가는 뺨맞는다'라는 네티즌마저 있었을 정도다.[13] 함경도는 용비어천가에서 함경도 북부의 지명까지 많이 등장하고, 특히 백두산이 영산으로 취급되었다. 제주도의 한라산도 바다 밖의 명산, 바람을 막아주는 진산이라는 식의 인식은 있었다. 압록강도 조선시대에도 강희맹 같은 사람이 시를 지은 배경이기도 하다. 조선의 8개의 제전도 2개가 대동강을 낀 도시였던 평양부 일대에 있다.[14] 관향이 삼남 이북인 사람은 많았아도 이런 사람들은 한양에서 주로 활동했다. 홍경래의 난의 경우도 평안도가 높은 경제력으로 지방 치고는 과거에 합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타난 것이지, 다른 곳은 과거에 합격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 시대는 한양 출신이 아니면 개성, 수원, 강원, 삼남 출신도 출세하지 못하던 때다.[15] 대한제국의 행정체계문제로 인구집계가 정확하지 않다. 1910년 기준으로 1300만 명에서 1700만 명이었을 것으로 파악한다.[16] 한국사를 격하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한제국 인구가 500만 명에서 800만 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1918년 3.1운동 당시 조선 인구가 약 2000만 명이었고 해방된 1945년 당시 조선인구가 약 3000만 명이므로 조선의 출산율과 사망율 그리고 해외이주를 고려했을 때, 500만 명에서 800만 명이었으면 해방 후 3000만 명이라는 인구는 나올 수가 없다.[17] 봄철에 땅을 밟아서 수분을 유지하는 농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