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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30 03:58:58

자아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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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시기 자아비판을 하고 있는 사람[1]

1. 개요2. 기원3. 문제점4. 양심의 자유5. 정체와 목적
5.1. 사례
5.1.1. 대한민국5.1.2. 북한
6. 대중 매체 속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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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아비판(, Self-criticism)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비판하거나 비판하도록 강요받는 행위다.

2. 기원

자아비판이란 용어가 등장한 배경은 한창 혁명의 기운이 전 유럽을 휩쓸던 19세기 말 ~ 20세기 중반까지 혁명을 목표로 투쟁을 하던 운동가들이 스스로의 엄격한 도덕성을 다짐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자 방법론이다.

자아비판이란 대상자가 스스로 하는 행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비판하는 것이다. 혁명가라는 인간이 단지 세 치 혀를 통한 선동과 카리스마만으로 움직인다면 너무도 쉽게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말로만 정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자신의 언행이 일치하도록 뜨겁게 살아갈 수 있는지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아비판이라는 것은 애초에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단지 어떤 일을 끝내고 나서 같이 활동한 사람들끼리 총회 비슷하게 모여서 하던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서로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토론하며 무엇을 느꼈으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고, 앞으로 이런 지점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담담하게 토로하는 것이 바로 원래의 자아비판이다.[2]

원래 이렇게 순수한 의미에서 스스로 잘못을 성찰하고 더 발전하겠다는 의미에서 하던 자발적인 활동이며 동지들은 심판이 아닌 이해의 마음가짐으로 들어주고 개선을 위해 서로 조언을 나누는 건실한 활동이었는데 이게 전체주의적 권력 체계와 결합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냥 자기 입으로만 한다는 면에서만 '자아'일 뿐 실질적으로 강제에 위한 타율비판이나 다름없어졌다. 그것도 자아비판을 명목으로 다른 당원, 동지들을 걸고 넘어지는 정치싸움용 도구로 쓰이거나 당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강제로 시키는 일종의 처벌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타락하게 되었다.

3. 문제점

원래의 건실한 목적대로 자신의 행동을 회고, 반성하고 피드백을 받는 모임으로 끝난다면, 그리고 이를 양분 삼아 같은 일이 일어나도 다시금 반성과 피드백을 통해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매우 긍정적인 활동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압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행하는 스스로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자아'를 비난하는 자기세뇌로 변질되었고 이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변질된 자아비판이다. 이 문서의 상단 사진에서 나오는 자아비판 현장도 이러한 '처벌'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촬영한 것이다.

일본의 좌파 단체에서는 이러한 자아비판을 '총괄'이라고 불리는 사후토론 시간에 자주 하는데 총괄 도중 뭐가 잘못되어 막나가게 되면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문자 그대로의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 유명한 일본 연합적군이 이거 하다가 동지 여럿을 죽였다.

정권들이 막장으로 치달았을 때의 자아비판은 더 이상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특히 당)이 의무적으로 할 것을 강요했고 자아비판할 것이 없다고 하면 반동분자로 분류해버렸기 때문에 무조건 없는 트집이라도 만들어내야 했다. 심지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나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생트집을 잡거나 치부를 폭로하며 자아비판을 강요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다만 그럴 경우 동지를 매도하는 반동분자라고 역공이 들어올 수 있으니 평판이 안 좋거나 자기가 치부를 잘 아는 상대에게만 골라서 해야 했다.

이렇게 강제적이고 공개적인 자아비판은 이미 이전의 좋은 취지는 싸그리 다 사라지고 지도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4. 양심의 자유

가장 큰 문제는 자아비판이라는 행위는 양심의 자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걸 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뼈와 살이 분리되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개인의 신념의 자유, 즉 양심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언가 잘못을 했다 해도 당신의 속마음까지 법이 간섭할 권리는 없다. 게다가 이것이 법도 아니고 집단의 여론 같은 것을 기준으로 자아비판을 시키면 그냥 인간을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레프 트로츠키가 권력투쟁 말기에 자아비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으나 당 일각에서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의거하여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 그러므로 그냥 잘못한 것만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그냥 잘못한 것만 집어내고 말았다. 결국 트로츠키는 이오시프 스탈린한테 암살을 가장한 공개처형을 당했다.

5. 정체와 목적

개인의 신념과 자존감을 스스로 붕괴시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기 쉽게 만드는 것이 자아비판의 문제점이다. 타력에 의한 직접적인 강요가 아니라 분위기 조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력을 방조하는 것이므로 저항감이나 자각도 낮아진다.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의 자아비판 때문에 자아비판이 그냥 처벌 전의 요식행위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자아비판은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자아비판을 통제수단으로 쓰는 조직이나 사회의 말단 구성원은 필수적으로 거쳐간다고 보면 된다.

자아비판은 명칭만 다를 뿐이며 종교 및 심지어 평범한 회사에서도 자주 써먹는다. 회사에서는 자기반성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통해 업무에서 실수를 하거나 태도가 나태한 사람들에게 자아비판을 하게 만든다. 뭐하러 이딴 짓을 다 하나 싶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아비판을 해 본 사람도 많다. 중고등학교에서 주최하고 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수련회에 다녀온 사람은 전부 다 자아비판을 해 본 셈인데 수련회 과정에 반드시 들어있는 촛불 켜놓고 자아성찰 하기가 바로 자아비판의 소프트 버전이라고 봐도 된다.

5.1. 사례

5.1.1. 대한민국

반공주의를 내세우던 군부독재 시절의 대한민국은 당연히 북한의 '자아비판'을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했지만 실상은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독재정권 시절에 알게 모르게 성행했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만큼 북한처럼 대놓고 인민재판하듯이 정부가 주관하지는 않았고 '자아비판'이란 단어를 쓴 것도 아니지만 민간에서는 알게 모르게 아주 흡사한 것들을 실시했으며 오락실 간 학생들을 잡아서 "깡패될려고 오락실갔냐"며 후드려패고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비판한 후 반성문을 낭독하게 했던 흑역사가 있다.

2008년에 지방의 일선 학교들에서 성소수자들과 심지어 그들의 부모들을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자아비판대에 올려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하였는데 당시 인터뷰에 참가한 어떤 선생은 "잘못된 걸 바로잡아 주는데 왜 너희들이 간섭하냐?"는 태도를 보였다.

체벌의 일환으로 이용됐던 게 자아비판이다.

정다금 사망 사건의 주요 용의자 4인방도 금정여자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자아비판을 강요했고 마음에 안 들면 싸대기10분의 1형을 강요하였다.

5.1.2. 북한

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자기 마음을 당 규율에 억지로 끼워 맞추도록 강요하기로 악명이 높다. 김일성 통치 시기, 8월 종파사건과 관련하여 갑산계와 소련계 일파들을 대거 숙청하는 데 이 방법을 썼으며 집단농장, 탄광 같은 곳에서도 자기반성을 위해 많이 사용했는데 실상은 개인을 비하해 당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심리적 탄압에 지나지 않는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 포로들도 사상교육의 일환으로 자아비판을 강요당했다. 이런 관습을 통해 외부의 비판과 압박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가치관을 가지도록 교육받는다고 한다.#[3]

참고로 북한은 자아비판에서 더 나아간 상호비판마저 존재한다.

6. 대중 매체 속 묘사

중국 영화 <패왕별희>에서 서로를 매국노라느니 더러운 부르주아의 앞잡이라느니 하면서 비난하는 장면이 있으며 위화의 소설 같이 문화대혁명을 다루는 대부분의 중국 대중매체에서 자아비판은 더 이상 스스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에 의해 부과되는 일종의 임무이자 주위 사람을 고발하고 음해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특히 가족이나 이웃 간에 남아있던 모든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그려진다.[4]

야인시대에서 심영김두한의 협박으로 전향서를 쓰고 나서 을 배신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지만 전위대장 정진영은 고백한 것을 자아비판으로 처리하고[5] 상부에 보고하여 그를 월북시켰다. 대조적으로 그 김두한다른 작품에서 자신의 친일행적을 자아비판하고 목숨을 건지라는 권유를 뿌리치며 군중 앞에서 비장하게 자결한다

옴부즈맨 프로그램도 방송국 차원에서의 자아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2회 중에서 숙박검열을 진행하던 중 외도를 하다가 걸린 주민에게 인민반장이 자아비판을 해 보라고 한다.
[1] 사진의 주인공은 마오쩌둥 시절 중국 임업부 부부장(차관에 해당), 흑룡강성 성장(도지사에 해당) 등을 지낸 리판우라는 사람이다. 참고로 리판우의 딸은 중국공산당 창당 원로인 둥비우의 아들과 결혼했는데 둥비우는 중국공산당 창당 대회(1차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한 열댓 명 남짓한 대표 중 한 명이었다. 둥비우는 마오쩌둥을 제외하면 중국공산당 1차 대회 참석자 중 문혁 때까지 살아남아 공산당을 탈당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머지는 그 전에 사망하거나 공산당을 탈당했다.[2] 지금은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라면 자기반성, 동료평가라는 말을 좀 더 일반적으로 쓴다.[3]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잘못에 대한 비판에 사회와 환경에 초점을 맞추는 좌익의 가치관과 상반되는 부분이다.[4] 일부에서는 중국 특유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겪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5] 김두한과 비슷히 정진영도 심영의 어머니를 보고 마음이 약해져 살려주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