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19-06-19 20:48:24

빨갱이


파일:Semi_protect1.png   로그인 후 편집 가능한 문서입니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문서는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명칭에 대한 문서입니다. 다른 뜻에 대한 내용에 대한 내용은 빨갱이(동음이의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언어 내용
한국어 빨갱이
영어 Reds, Commie(파생어 Charlie),
Pink[1], Pinko(주로 미국)
러시아어 партизан(partisan)
일본어 アカ
중국어 共匪(공페이)
독일어 Roten, Bolschewik
1. 개요
1.1. 대한민국에서
1.1.1. 유래1.1.2. 남용
1.2.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야, 이 빨갱이 새끼야!!!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 상하이 조, 야인시대 65화
너희들은 정신 개조를 해야 한다. 이의들 있는가? (수감자들: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할 게 없어 빨갱이 짓을 했나? 빨갱이가 뭔가? 부모도 형제도 없다고 난 들었다.
- 김두한, 야인시대 59회에서 감방에서 집단 린치를 가하려 했던 극좌 계열 수감자들을 때려눕힌 후 얼차려를 부여하며[2]
똑똑히 새기라우.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
- 박처원(김윤석), 영화 1987에서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상관에게 하극상을 가하며 한 대사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명칭으로 러시아의 '파르티잔'[3]에서 변형된 '빨치산'이 나중에 빨갱이로 변했다.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빨갱이" 라는 단어가 통용되기 시작한건 러시아의 "볼셰비키" 공산당이 러시아 차르정권을 무너뜨렸을 때 볼셰비키 공산주의자 스스로 자신들을 볼셰비키 즉 빨갱이라고 부른것에서 유래되었다.

사실 빨갱이라는 명칭은 공산주의자들 스스로가 붙인 명칭이다. 소련 공산당의 상징으로 사용한 깃발도 '적색', 소련 공산당원들이 부르는 노래 역시 '적기가'였다.[4] 소련 등 대부분의 공산주의국가에는 국기 자체가 낫과 망치 같은 상징이 그려져있는 붉은 바탕의 깃발있다. 그들이 테러 활동, 게릴라 활동 등으로 민간인을 잔혹무도한 학살과 고기방패로 내세우는 일도 잦아지면서 당시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증오와 반감으로 빨갱이라고 불렀다. 민간인 뿐만 아니라 이들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자유, 경제 및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우익 계열도 이에 반발하면서 민간인과 연대해 마찬가지로 불렀다.[5]

해외에서는 일반적으로 '공산당원' 또는 '극좌적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 '공산주의 국가의 국민들'을 뜻하는 놀림조가 매우 강한 속어로 쓰인다. 해외 커뮤니티에서 김정은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아보자. 근데 김정은 정권은 사실상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 중세 봉건국가 아니었나?[6]

1.1. 대한민국에서

대한한국 한정으로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의거하여 '휴전 상태인 대한민국의 주적'이자 '이북 5도를 불법 점령한 반(反) 국가단체의 일원' 또는 '그들의 사상을 공유하는 자' 또는 '그들에게 협조적인 자', '이북 정권에 굴종하는 자'를 경멸하여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한국에서의 빨갱이는 해외에서의 빨갱이보다 일본에서의 비국민에 근접한 어감을 가진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현대의 한국에서는 원래의 의미보다는 이하와 같은 의미로 더 잘 통용된다.

댓글을 읽다보면 북한 사투리를 쓰면서 김정은을 찬양하는 ‘김박’이라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음란한 말을 마구 내뱉기도 한다.

북한 관련 뉴스에서 보이는 댓글. 이 댓글은 다음 날 작성자의 의해 삭제되었다. 답글로 욕을 많이 먹자 삭제한 듯 그게 아니면 국정원에서 코렁탕을 쳐맥이려 순수 배달 오신것일수도
파일:FB877888-CD6B-4C1A-BB12-CA1CCED321F3.png

1.1.1. 유래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천,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과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 채만식, '도야지', 창비사 "문장" 27호, 1948년 10월.
빨갱이의 어원과 사용사례들

과거 반공주의의 산물. '공산주의자'로의 순화가 권고된다. 본래 공산주의자들을 비칭하는 말이었지만, 냉전 및 독재시대 때 정치적 반대자 및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고 사회에서 다방면으로 매장하는 소위 '낙인'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으나 요즘은 '종북'이라는 말로도 쓰이곤 한다. 반대로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비난할 때는 반동이라고 부른다. 위에 채만식의 말을 보듯이 빨갱이라는 단어는 1948년에 쓰였던 만큼 나름 역사가 깊은데, 이 단어가 쓰인 시점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다.

8.15 광복 이후 미군은 조선에 주둔을 시작하는데 그때까지 약 한 달간의 기간 동안은 독립운동가 여운형이 주축이 된 건국준비위원회인민위원회가 일제로부터 치안권 및 행정권을 넘겨받아 행사하고 있었다. 미군이 주둔하여 무장해제를 하기 전까지 일본군과 경찰이 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군사적으로 이들과 대적하기는 어려운 상태에서 최선의 질서를 유지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일본군이 물러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 속에 숨죽이며 살아갔다.

그러나 미군이 진주하여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키고 일본군 및 일본인을 일본으로 송환한 후 국내 사정은 돌변했다. 미군이 조선총독부라는 사실상의 정부를 접수하여 행정권을 펼치게 되는데 미국이 한반도 남부를 점령한 것은 핍박받는 조선을 일본과 전후로 광복을 하였다.

당시 소련냉전 중인 미국에게 국익이란 한반도 남부와 일본의 오키나와 등을 접수하여 극동에 미치는 자국의 영향력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었고 효율적인 한반도 통치가 근본 목적이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조선이라는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미개한 식민지로 여겨졌던 나라의 독립운동보다 소련에 맞춰 우선순위가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소련의 붕괴가 증명했듯이 미국과 함께 정부 수립 초기에 게으른 분배보다 부지런한 성장을, 하나의 일률적인 것보단 다양한 자유를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수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은 잘알았지만, 한국의 속사정을 몰랐기에 부작용도 많았었다.

미군정은 자신들의 통치권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8][9]을 배제하고 기존 일제의 총독부 및 지방관청에 근무하던 공무원, 친일 경찰, 일본군 등을 요직에 그대로 기용하기에 이른다.[10] 미군정이 한국을 알지못해 채용한 30% 이상이 일제 하에서 일한 경력자들이었고, 행정 관료나 군대 등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을 알지 못하던 그들은 친일행위자들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앞장서며 익힌 행정경험을 권력행위의 말단을 구성하는 데 동원한 것이다. 식민지 시절 동족을 핍박하던 정의롭지 못한 권력의 앞잡이들이 해방된 나라의 권력으로 복귀하는 모습은 참혹한 장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군의 입장에서 독립운동가이건 친일파이건 그 구분은 필요치 않았다. 오로지 자신들에게 협조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물론 학력 및 영어 구사능력도 필요했다. 일제시대 일본군 경찰을 피해 국내와 해외를 떠돌아다니며 그 자신은 물론 그 자식들도 배우지 못하고 숨어 다녀야 했던 독립운동가들보다는 일제 밑에서 잘 배우고 똑똑하고 영어도 좀 할 줄 아는데다 강자의 명령에 잘 복종할 줄 아는 친일파들이야말로 그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인 및 친일파는 잘 교육받은 문화인이요, 조선인 및 독립운동가들은 교육받지 못한 미개한 사람들 정도로 여겨진 것이다.

친일파들의 강력한 구호는, 국제적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냉전체제에서 미국 주도의 자유진영이 경계하고 미군정이 싫어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라는 혐의를 반공주의로 퉁치고 나선 셈이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소련을 조국이라고 섬기는 사상', '민족을 부정하는 사상', '매국노들의 사상'이라고 강변하며 반공을 앞세워 미군정에 대한 협력을 정당화했다. 그들 친일 경력자들은 미군정의 보호 아래에서 친일 행적을 지우고 감출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자신의 죄과를 감추는 갑옷이었다.

애초에 빨갱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어에서 빨간색을 뜻하는 아카(あか)에서 왔다.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동반하여 번짐으로써 자연스레 공산주의의 상징색이 되었다. 특히 소련에서는 "붉은색(красная)"과 "아름다운(красивая)"이 같은 어원을 지닌 관계로 긍정적인 색이었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개요에 적힌 바와 같이 원래 공산주의자들의 상징이 적색이라서(적기가 등의 노래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에서도 그렇게 부른 것이다. 당시 친일파를 포함한 일본 경찰은 공산주의·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일종의 정치범수용소와 비슷한 곳에 넣고 사상 전향 교육을 시켰는데, 이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명부에 빨간 점을 찍어 놓고 아카들(빨갱이들)이라 불렀던 것.

그 외 위와 같은 친일파들은 한국민주당[11]을 결성하여 미군정을 등에 업고 하와이에서 귀국한 이승만에 협력했다.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승만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보호하고자, 친일파 처벌 단체 반민특위의 활동에 앞장섰던 민족주의 계열 중도파 독립운동가들을 국회 프락치사건으로 엮어 구속시켜 반민특위를 해산시키기까지에 이른다. 물론 이승만 본인은 뼛속까지 반일주의자로써, 반대파에게 친일몰이를 한 바 있으나, 정작 노덕술, 김창룡 같은 거물 친일파를 중용한 오점이 있다.

친일파를 처단하고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북한의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그들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이 엄청난 항일무장투쟁을 해서 자기 힘으로 조국을 해방한 것처럼 선전했다.[12] 그런데 정작 그들도 친일파 중에서도 악질인 놈들은 제외하고 자신들에 협력하는 놈들은 다 살려줬다.

북한의 권력자들은 친일행위자들이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이 된 사실을 자기네의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소재로 삼아,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주체사상사회민주주의로 포장하고 이에 반대되는 용어로는 제국주의파시즘을 설정했다. 그리고선 그들은 '남조선은 일제 식민지에서 미제 식민지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하며 '남조선에서는 미제, 그리고 리승만 괴뢰도당과 그를 잇는 보수정권의 파쇼 통치에 의해 대구 10.1 사건,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 광주 학살이 일어나는 등 무고한 인민들이 고통받았다'고 주장한다.[13] 이러한 도덕적 우월감은 그들 딴에는 미제와 친일파로부터 남조선 인민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해서 일으킨 6.25 전쟁도 정당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북한은 6.25 전쟁이 민족해방전쟁이자 조국통일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14]

또한, 이승만 정권 당시의 권력자들은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보도연맹을 조직하고 중도~좌파 계열 정치인들을 반강제적으로 가입시켰고,[15] 가입 숫자를 늘리기 위해[16] 가입자들에게 고무신과 같은 생필품을 나누어주었고 농사에 필요한 비료를 우선 배급해서 좌파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 주민들도 가입하도록 유도하고서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북한에 협력할 수 있다는 명분을 들어 이들을 모두 학살했다.

전쟁 중에는 김구의 독립통일정부 수립노선을 따랐던 전호극 소령을 여순사건에 연루되었다고 거짓 혐의를 덮어씌워 살해했고,# 친일파 청산과 평화통일을 신조로 삼던 최능진을 친북활동을 했다고 처형했으며, 이후에는 '평화통일, 영세중립국가, 사회민주주의식 개혁'의 꿈을 말하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제거한 진보당 사건이 있다.

이후의 군사독재 정권 때는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등이 있으며, 기타 묻히고 잊혀진 사건까지 포함한다면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정치권력 독점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처형하거나 학살하기 위한 명분으로도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이승만 정권 때는 제주 4.3 사건 과잉진압, 여순사건 과잉진압, 거창 양민 학살사건, 박정희 정권 때는 동백림 사건, 이수근 이중간첩 사건, 서창덕 납북어부 간첩 사건, 김복재 조총련 간첩 사건, 박춘환 납북어부 간첩 사건, 유럽 간첩단 사건, 민청학련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문인 간첩단 사건, 형제 간첩단 사건,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 정규용 납북어부 간첩 사건,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전두환 정권 때는 광주 학살, 부림사건,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깃발사건,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위와 같은 사건의 담당자들은 혐의가 옅거나 억울한 사람들을 고문해서 허위자백서에 사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고문 담당자들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근안정형근이 있다.[17]

과거 독재정권은 위와 같이 독재에 방해되는 사람들에게 행했던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공교육과 반공 영화반공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하고 북한이 겉으로만 채택하고 있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독재주의로 규정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상대 개념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반공교육의 영향을 받은 노년층들에게는 '나 때는 북한에 사람이 안 사는 줄 알았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하고, 박사모와 같은 극우단체의 주요 연령대가 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독재 정권을 반성해야 하는 이유로 인용되며,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반공교육의 폐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등 극우 독재 정권을 비판할 때 '친일독재'라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 당시 독재정권에 협력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출신 및 후손들이 대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무조건 '보수 = 친일반민족행위자' 공식을 들이대며 보수진영을 비난 내지는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부분은 고찰이 필요하다. 상기에 언급했던 김구, 최능진을 비롯한 김규식, 김병로, 김창숙, 장준하, 조만식은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반공주의를 주창한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공산주의가 독재 체제로 변질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18] 참된 의미로서의 반공주의자임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재산 자체는 인정하나 재산을 생산하는 수단을 공공의 소유물로 전환시키는것 뿐이다...

다만 위와 같은 인물들이 현대 대한민국 보수정당과 같은 성향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인 것이, 위와 같은 인물들은 민족주의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반면에,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현대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성향은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신보수주의에 더 가깝다. 애초에 김구, 김규식, 김병로, 김창숙, 그리고 최능진은 이승만과, 장준하는 박정희와 정치적으로 대립하였다.

영화 실미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두려울 땐 '빨갱이의 소행'이라 하기도 하였다.[19] 실제로 정부는 실미도 사건 때 실미도 요원들을 무장공비로 묘사하였고 5.18 민주화운동은 '빨갱이의 선동'이라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2000년 이후에는 북한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빨갱이란 단어가 계속 사용되고 있는데,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사용 범위가 확대(…)되기까지 하고 있다. 게다가 언급하는 과정에서 본래 의미도 퇴색되어 내 말 안들으면 누구든지 보내버릴 수 있는 마법의 말의 경지까지 올라가 버렸다. 과거에 빨갱이라는 단어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

2019년 3.1절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빨갱이라는 단어가 일제에서 유래된 친일 잔재라고 왜곡하기도 했다. 빨갱이 친일 잔재설 참조.

1.1.2. 남용

한마디로 원천봉쇄의 오류로 남용되는 마법의 단어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잘못된 극단적 매카시즘이 미국과 대한민국 유럽 등지에서 정말로 소련을 찬양하는 소뽕들이 자신들의 정치사상을 변호할때 매카시즘이라고 봉쇄하는 악영향을 낳았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보수 세력이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근거 없이 폄하할 때도 흔히 쓰이는 단어로 사실상 의미가 변경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표적인 예시가 종북몰이인데, 이것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인 '좌빨'도 '좌파갱이'를 의미한다. 요 근래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조작되었다고 말하는 노년층들과 박사모 회원들이 자신들과 뜻을 반대로 하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유명인들이나, 박근혜의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빨갱이', '종북세력'이라고 비방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적폐몰이라는 역습을 당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빨갱이는 그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것일 뿐이다. 이들은 빚 내고 안 갚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이에 대해 뭐라 그래도 빨갱이라 한다. 저들이 쓰는대로 쓰자면 그냥 진보 성향이거나 지도자에게 충성심이 없는 성향은 죄다 종북주의자, 빨갱이다. 심지어 친북인명사전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기들끼리도 의견 차가 나면 서로 빨갱이라고 칭한다. 심지어 박사모들은 삼성을 까도 빨갱이라 부른다.

어쩌다 어른 135화[20]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죽은 피해자의 유족들의 삶은 정말 비참했다고 한다. 늘 군인들이 따라다니며 감시해 제대로 된 직업을 못 구한데다 자식들은 빨갱이의 자식이란 이유로 심한 왕따를 당했다고 하는데 다른 아이들이 그 빨갱이의 자식이라 알려진 아이를 철사로 묶어놓고 돌을 던지거나 목에 철사를 감고 개처럼 끌고 다니는 등 괴롭힘의 수위가 단순한 애들 장난이라고 보기엔 너무 심각한 수준이었다.

홍준표는 '경상도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을 빨갱이라고 부른다'는 희대의 개소리를 남겨서 경상도 사람들을 모조리 욕 먹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대로 자유한국당을 엿 먹였다.

1.2. 대중매체에서

서울대학교 학생이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해 문제를 풀던 중 빨치산과 혼동한 일이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잘 쓰이지 않는 데다, 첫 단어가 유사해서 두 단어가 연관이 있는 것 아닌지 착각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진 건 사실이다. 그래도 반공 교육을 받은 나이대를 중심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인재인 서울대학교 학생의 역사 인식이 이 정도냐는 한탄도 나왔다. 본인도 말을 내뱉은 직후 실수했음을 깨닫긴 했지만…

사실 빨치산이란 음차가 나올 적에도 남한도 표기법이 북한의 문화어와 비슷했다. 그래서 이런 음차가 나온 것.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남한도 비슷하게 소비에트를 "소비에뜨"(북한은 "쏘베뜨"), 스탈린을 "스딸린"(북한은 "쓰딸린")이라 표기한 기록이 있다. 지금 러시아어 표기법대로라면 "파르치산"이 맞는 표기다. 참고로 북한은 "빨찌산"이라고 한다.

홍세화의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젊을 적 프랑스 공산당에 적을 두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신좌파적[21]인 태도로 돌아선 대학교수를 두고 '루주(프랑스어로 빨간색)에서 루주-베르(빨간색-녹색)'로 돌아섰다고 하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도 공산주의자를 빨간색에 비유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또 2013년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핀란드인 따루가 나와 이야기하기를 사민당의 할로넨 대통령이 집권하자 자신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빨갱이(communist) 라고 비난했다고 한다.요약글

홍세화나 따루의 예를 보면 어딜 가나 빨갱이 드립은 유효한 듯. 사실 이것의 원조는 윗동네가 아니라 소련이었기에, 냉전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빨갱이 드립을 칠 수 있다.

야인시대심영은 극장에서 공산당을 선전하던 도중 김무옥이 "야, 이 빨갱이 자식들아, 이것은 수류탄이여. 죽지 않으려면 까불지들 말드라고!" 라고 소리치며 수류탄을 던져 생명을 위협받고 백병원에서 상하이 조에게 "야이 빨갱이 새끼야!"라는 비난을 들으며 고자가 된 거시기를 내리찍혔다. 아울러 야인시대 82회에서 좌익의 앞잡이들이 죽창을 들고 경찰관 관사의 관리인을 끌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앞잡이 한 명이 그에게 "잔말 말고 따라와, 이 빨갱이 새끼야!"라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다.[22]

한현동의 만화 신 구미호에서, 이북 지역에 위치한 인간과 요괴의 공존 구역 천각궁에서 단역으로 등장한 인민군복 멧돼지 요괴는 "동물로 각색된 빨갱이" 를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만화가 이충호가 자신의 만화인 제 0시 : 대통령을 죽여라에서 '빨갱이는 친일파, 또는 총칼로 정권을 잡은 쿠데타 세력이나, 정권 유지를 위해 자국 국민을 학살한 자를 비판하는 상식적인 사람을 이르는 말.'이란 공지를 올렸다가 큰 논란을 일으킨 바가 있다.
[1] 1950년 '핑크 레이디(Pink Lady)' 사건을 고려하면 그 이전부터 쓰인 단어로 추정된다. 핑크 레이디 사건은 1950년 상원 선거에 배우였던 헬렌 G. 더글라스가 출마했는데 경쟁 후보였던 리처드 닉슨(미국의 37대 대통령)이 그녀가 공산주의와 연관이 되어 있다며 비방한 사건을 말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 닉슨은 더글라스를 가리키며 '속옷까지 다 빨갛다(pink right down to her underwear)'라는 성희롱적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고 다녔다.[2] 실은 심영이 극좌 계열 수감자들을 매수하여 집단 린치를 가하려 했었던 것이다. 이후 심영은 한 순간에 습격을 당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3] 정식 정규부대가 아닌 무장한 부대를 뜻한다. 이들은 주로 침략군, 정복군, 점령군, 식민주의자 등을 상대로 방어 및 공격을 수행한다. 즉, 게릴라전이나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유격대를 말한다. 같은 성향을 지닌 조직을 살펴보자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우리 나라의 의병 등이 있다.[4] 영국 노동당의 당가로 쓰이고 있지만 영국과 소련의 뿌리 자체는 다르다.[5] 공산주의자들은 대체로 폭력 혁명이나, 유혈 투쟁을 선호하는 호전적인 속성이 강하다. 다만 사회 하층민의 혁명적 사상이 공산주의인 만큼 힘없는 자들의 저항, 항거와 맞물리던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공산주의 이론을 창시한 칼 마르크스가 잘 사는 지주의 자식이었던건 함정이다[6] 여담으로 중국어(대만)로는 홍색 분자라고 부른다. 대만이잖아.[7] 주체사상파와 같이 북한 정권을 찬양하거나, 내심 북한 정권을 무시하고 경멸하면서도 그들에게 약점이 잡히거나, 커넥션이 있어서 그들에 굴종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8] 자본가와 노동자에 따라 수익을 공평하게 배분한다는 사회주의가 가지는 특성이 국민보다 공산당원이 먼저가 되었지만, 세도정치기에 이어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당시 권력자들에게 핍박받고 수탈당하던 시민들에게는 그보다 좋은 사상이 있을 수가 없었고, 당시 누구보다 시민을 생각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시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는 김두봉, 김무정, 김원봉, 박헌영, 백남운, 이동휘, 이현상, 조동호, 허헌, 홍명희를, 사회민주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는 김약수, 안창호, 여운형, 장건상, 조봉암, 조소앙을 들 수 있다.[9] 대한민국에서는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북한이 겉으로는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라고 지칭하고 있어서 그 사상들을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용어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민주주의의 반댓말은 독재권위주의이고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대립되는 단어이다.[10]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종원, 김창룡, 노덕술, 민복기, 백선엽, 송요찬, 원용덕, 유재흥, 이형근, 정일권, 채병덕이 있다.#[11] 여기에서 한국민주당이 현대의 민주당계 정당과 같은 성향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인 것이, 한국민주당이 민주당계 정당의 시초라고는 하지만, 이는 정당의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부분이 크고, 사실상 현 민주당계의 직접적 전신으로는 1990년대 창당한 민주당이나 새정치국민회의를 많이 꼽는다. 거기에 더불어민주당이나 민주평화당의 정치 성향은 좌파에서 중도우파를 이루는 반면에, 한국민주당은 이승만자유당과 다를 바 없는 극우반공 성향의 정당이었다.[12] 그들이 소련 공산당의 지원을 받거나 중국 공산당과 손잡고 항일무장투쟁을 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 행적이 다소 왜곡되거나 과장되었다. 자세한 것은 김일성/생애 문서 참고.[13] 북한은 이뿐만이 아니라 최근 촛불집회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체제 선전에 쓰고 있다.[14] 2013년 6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김정일노무현에게 남쪽의 자주성이 결여되어서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다고 거듭 비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주 이념은 지금까지도 북한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남아있다. 반면 남한의 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되어 살고 있다는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독재의 빛과 어둠이 공존했던 1980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체사상파가 탄생한 배경에는 바로 이 민족주의적 열등감이 놓여 있었다.[15] 좌익진영에 있으면서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은 사상을 바꿀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었고, 그것은 자신이 공산주의를 철회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거의 강제적으로 가입시켰다 봐도 무방하다.[16] 보도연맹 가입자가 많으면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지역이나 집단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17] 이근안은 자기 고문 대상자가 처음부터 '용의자'가 아니라 '범인'이라고 단정 짓고 범인이라는 사실을 실토하고 자백하도록 하는데 온 힘을 다했고, 정형근은 '용의자'를 죽지 않을 만큼 고문하는데 달인이었던 관계로 수사기관에서 사랑받은 인물이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는데 용의자범인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용의자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범인은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사람이다.[18] 모든 사람의 수익이 똑같다는 것이 공산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일을 많이 하나 적게 하나, 잘하든 못하든 그에 따르는 이익이 똑같기 때문에 국민들의 생산성과 생산의욕이 감소하여 한 나라의 경제가 침체될 수 있다. 결국 국민들을 일하게 만드는 강력한 중앙 권력을 필요로 하게 되고, 독재를 하지 않는 이상 국가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19] 참고로 유감스럽지만, 이런 '정치적 포장'은 빨갱이란 단어가 생기기 한참 전에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바깥의 적과 내통한 반역자'로 몰려 고통받거나 죽은 사례가 꽤 된다. 물론 정말로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지만, 안 저지른 사람도 있음을 잊지 말자.[20] 당시 강사는 심용환이다.[21] 젊은 시절에는 계급투쟁을 근간으로 삼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나이가 들면서 환경운동 등 넓은 의미의 진보운동에 관심을 갖는 신좌파가 되었다는 뜻.[22] 엑스트라의 실수인데 빨갱이(=극좌)들은 그들 입장에서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좌익의 반대세력=우익)을 끌고 갔으므로 그가 빨갱이가 될 순 없다. 그 NG가 그대로 방송을 타고 나갔으니 시청자들은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반동노무 새끼라고 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