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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7-10 10:09:17

하나의 중국

一个中国 / 一個中國 / One-China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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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중국) 측 사진. 왼쪽의 안경쓴 인물이 당시 외교부 부부장이자 중국 대표단 단장이었던 차오관화다. 그 오른쪽은 캐나다 대사이며 중국대표단의 부단장인 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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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대만) 측 사진. 오른쪽의 안경쓴 인물은 당시 외교부장 저우수카이(周書楷/周书楷;주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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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0월 UN 총회에서 중국으로서의 대표권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부여하는 UN총회 제2758호 결의안이 통과되는 순간. 중화민국에서 파견한 인원들은 더 이상 중국의 대표단으로 취급되지 않았기에 상임이사국 자리도 뺏기게 되었다.

1971년은 UN총회 투표였기 때문에, 안전보장이사회[1] 상임이사국 지위를 확보하던 중화민국이 거부권을 발동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소련은 이미 2758호가 통과 되자마자 '장제스의 대표단(Chiang Kai-shek's delegation)'[2]을 UN에서 축출하는 추가 UN총회 투표를 예고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미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고 판단했는지 중화민국 측이 실질적으로는 추방이지만, 형식상 자진탈퇴를 해버렸다. 하지만 형식적 탈퇴는 이후 중화민국, 즉 대만의 국제 외교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만다.[3]

1. 개요2. 변천사3. 원칙에 의해 중국 본토에 흡수되는 대상들4. 외국에 대한 적용
4.1. 남북한관계와 비교4.2. 미국
4.2.1. 미국 공화당 정부에서의 대만 승인 가능성4.2.2. 2019년, 미국대만의 주권 인정
4.3. 독일4.4. 기업과 산업, 창작물에 대한 적용
5. 중국감탄고토6. 관련 문서

1. 개요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성한 영토의 일부분이다. 조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성하는 것은 대만 동포를 포함한 전체 중국 인민의 신성한 책무이다.
台湾是中华人民共和国的神圣领土的一部分。完成统一祖国的大业是包括台湾同胞在内的全中国人民的神圣职责。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서문
중화민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을 확고히 주장하며 ‘두 개의 중국’과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에 반대한다.
1994년 7월, 행정원 대륙위원회의 '대만 해협 양안 관계 설명서'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이 주장하고 있는 원칙. 중국 대륙대만 섬, 홍콩, 마카오는 절대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고[4],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로지 하나라는 주장을 뜻한다.

마카오는 이미 청나라 시절에 포르투갈에 양도된 상태였다가 협상을 통해 반환받았으므로 이 도시는 실질적으로 중국의 실효지배가 미치는 영토이자 중국의 일부이다. 홍콩의 경우 발달한 민주주의 의식과 주민들의 반 중국 공산당 감정으로 하나의 중국 논리에 장애가 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2014년 들어서 비중이 커진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별다른 영향력이 없었으며 공산당의 처우에 반대해 홍콩 독립을 외치는 이는 소수이다. 소수민족들은 중화권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너무 없어서 고려 대상에 들어가기조차 힘들다. 그러므로 하나의 중국 관련 논제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역시 타이완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한국인들이 막연히 중국=중화인민공화국, 대만=중국과 따로 존재하는 다른 나라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하나의 중국을 중국 본토에서만 주장하는 걸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대만 측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있다. 대만도 스스로가 중국임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물론 대만측이 주장하는 중국은 중화민국이다.). 물론 대만 내에서는 이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만을 실효 지배하는 중화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중화민국은 몽골까지도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었으나 21세기 들어 몽골과 비공식 관계를 수립하게 되면서 지금은 사실상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2. 변천사

1918년 호법전쟁이 종결되고 남방의 정책 천춘쉬안과 서남군벌 탕지야오, 루룽팅 등이 베이징의 북양군벌와 정부 단일화를 위해 협상했던 것이다. 이것을 선후회의라고 한다.[5] 그러나 입장 차이로 인해 1920년에 사실상 결렬되었고 북방에서는 북양군벌 간의 안직전쟁이, 서남에서는 각 군벌들의 세력 확장 내전이 벌어졌다.

1920년 쑨원이 광동군벌 천중밍과 합작하여 2차 호법운동을 전개하다가 영풍함 사건으로 축출되었으나 1923년 양시민, 류전환 등의 군벌들과 합작하여 3차 광동정부를 수립하였고 1924년 1차 국공합작을 결정하였다. 쑨원은 염원인 북벌을 이룩하기 전에 죽었으나 1926년 중산함 사건으로 당의 대권을 장악한 장제스두 차례의 북벌로 중국 전역을 공식적으로는 통일한다. 하지만 사병들과 각 지방의 정치분회를 중심으로 지방의 권력을 장악한 군벌들이 견제하고 여기에 개조파, 서산회의파를 비롯한 반장 정치세력들이 개입하여 1929년 편견회의를 시작으로 군벌들의 반란이 계속 벌어져 중화민국은 여전히 내전 상태였다. 하지만 1930년 중원대전에서 장제스가 승리하면서 난징 국민정부의 우위가 확실해졌고 1931년 탕산 사건을 빌미로 시작된 1차 양광사변 역시 만주사변을 계기로 종식되면서 중국은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지방에 미치지는 못해도 난징을 중심으로 그런대로 통합되었으며 초공작전, 복건사변, 이류지전, 2차 양광사변을 거치면서 중앙정부의 힘이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었다. 이 와중에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중앙정부의 권위는 청나라 이후에 가장 강력한 수준에 도달했다.

문제는 중화민국의 대부분의 공업력과 경제 기반이 일본군에게 점령되면서 극심한 궁핍에 시달리게 되었고 숨죽이던 군벌들의 세력도 이 기회를 틈타서 다시 강화되며었다. 중일전재 종결 이후 1945년경 국공 양당의 연합정부 결성과 상호간의 정통성 대립을 둘러싸는 논쟁에서 직접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이 태동되었다. 이렇듯 하나의 중국 원칙은 수십 년동안 중국내 모든 정치세력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6][7]

현재는 대륙을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나 타이완으로 밀려난 중화민국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은 포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질적으론 양국간에 상당한 온도 차이가 있다. 중국은 자신들이 하나의 중국의 주체이며 대만은 그저 국민당 잔당세력이 이미 소멸한 중화민국을 참칭하는 지방정권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국내에서 이 관점에 반대하는 자를 처벌하며, 강대한 국력을 배경으로 국제사회에 중국과 대만 중에 양자택일하라는 식으로 초강경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야? '쟤'를 택한 나라들이 있어서 중국의 미수교국은 다른 강대국에 비해 많은 편이긴 하다.

중화민국 정부도 명목상으로 이 원칙을 견지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힘에서 밀리기 때문에 크게 내세우지는 않는다. 또한 국내에선 정당과 국민들마다 입장은 다르다. 그래서 이 원칙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이 원칙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당범람연맹의 경우 이 입장을 지지한다. 단, 중화인민공화국이 말하는 '중국'은 당연히 '중화인민공화국'이고, 대만의 범람연맹이 말하는 '중국'은 '중화민국'이라는 차이는 있다. 다만 오늘날에는 현실이 현실인지라 범람연맹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두 완고하게 중화민국에 의해 중국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양측이 동등한 입장에서 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범록연맹 쪽에서는 당연히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범록연맹의 핵심인 민주진보당도 현실을 고려해서 공식적으로는 대만 독립이나 하나의 중국 원칙 폐기를 주장하지는 않고, 중화민국의 독자적인 주권성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거의 원래대로 되돌아간 상태지만 2016년 총통 선거에서 당선된 민주진보당 소속의 차이잉원도 양안관계에선 현상유지에 가까운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00년대 초에는 대만에서 민주진보당 등 범록(泛綠) 진영의 위세가 과거에 비해 커지면서, 대만 독립론이 중요한 이슈로 급부상하게 되자 중국의 관심은 중화민국보다도 대만 독립론에 쏠리고 있다.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 이들이 중화민국에서 '중화'나 '중국' 색을 지우고 '대만' 색을 강화했다. 예를 들어 천수이볜 집권기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1.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에 기재된 '中華民國'을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으로, 'Republic of China'를 'Republic of China (Taiwan)'이라고 고쳤다.
  2. 국영기업인 중국석유(中國石油; Chinese Petroleum Corporation)는 대만중유(台灣中油; CPC Corporation, Taiwan)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중화우정(中華郵政; Chunghwa Post)은 대놓고 대만우정(臺灣郵政; Taiwan Post)으로 고쳤다. 중화민국 정부가 출자하는 중국강철(中國鋼鐵, China Steel)도 비슷하게 개명을 하려 하였으나 이미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고치기가 힘들어 결국 개명하지 못했다. 플래그 캐리어중화항공(中華航空, China Airlines)도 대만항공(臺灣航空, Taiwan Airlines)으로 개명당할 뻔했으나 무산되었다.
  3. 과거 국민당 집권기에 쓰였던 로마자 표기법들과 중국의 한어병음에 맞서서 통용병음을 제정했다.

임기 말에는 아예 헌법을 개정해 중화민국을 대만화하려고 했으나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포기할지언정 타이완 독립을 묵과하지는 않는다라는 사실상의 선전포고에 가까운 최후통첩을 보내 이를 백지화시켰다. 범록연맹에 더해서 대만 내의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세력의 강한 반발도 무시할 수 없었던것도 컸지만.

이후 국민당의 마잉주가 집권한 뒤 이 조치들의 거의 전부를 취소하고 원래대로 복구했다.
  1.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 등의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은 '中華民國'으로 되돌리되 영어판에서는 'Taiwan'을 삭제하지 않았다. 중국어권에서는 중화민국만 기재해도 중국 대륙과 혼동하지 않으므로 굳이 대만이라고 병기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삭제했지만, 중국어권 밖에서는 혼동하기 때문에 Taiwan의 병기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인정하여 이와 같이 조치한 것이다.
  2. 대만중유는 중국석유로 되돌리려 했으나 이미 교체 작업이 상당히 진척돼서 정체한 듯하다. 하지만 대만우정은 중화우정으로 원상 복구했다.[8]
  3. 통용병음을 폐지하고 한어병음을 공식적인 로마자 발음 표기 수단으로 지정하였다.

한편 중국의 시차가 어느 지역이든지 간에 중앙정부가 위치한 베이징 시간대인 UTC+8가 적용된 것도 하나의 중국 논리에서 온 것. 하지만 대만의 경우 대륙을 통치하던 시절 한 번도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간대를 설정한 적이 없으니 이 쪽은 오히려 너무 정확하게 따져 5개 씩이나 되는 표준시를 설정해 현실성이 없었다.[9] 하지만, 그 넓은 영토에서 베이징 시간대 하나만을 사용하는 중국의 조치는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10]

3. 원칙에 의해 중국 본토에 흡수되는 대상들

3.1. 대만: 양안관계

앞서 말했다시피 하나의 중국 원칙은 양측이 공통적으로 주창하며 특히 중국은 이 관점을 전세계에 요구한다. 그러므로 한국, 미국, 일본 등의 국가와 서방 국가에 대해 자국과 수교하려면 상대방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중국을 정통으로 인정하지만 대만과도 대표부를 설치해 비공식 관계를 이어가고있다. 물론 대만 역시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주장하지만 이건 중국 국민당친민당범람연맹의 입장이며, 민주진보당대만단결연맹범록연맹 쪽에서는 중화민국이라는 이름 자체를 버리고 대만민국대만 공화국으로 완전한 독립을 하자고 하고 있다.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을 하자는 것.

사실 민주진보당이 본격적으로 약진하게 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만 독립론은 그다지 힘을 받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와중이던 1978년 대만 총통에 오른 장징궈쌍중 승인이라는 카드를 꺼내는데, 한마디로 두 개의 중국 이론이었다. 즉 중국과 대만이 각각 대등한 중국 정부로서 공존하되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하여 통일을 계속 논의하자는 얘기였지만, 이미 국력으로나 국제적 위상으로나 대만을 압도하고 있는 중국은 이를 묵살하였다.

1992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 -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 간의 회담에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92공식'(九二共識. 1992 Concensus)라고 한다. 다만 양측의 해석은 조금 다른데, 대만의 경우 대륙(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중화민국) 양측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一個中國,各自表述" 줄여서 "一中各表")하기로 했다는 해석까지 덧붙인다.[11] 이 합의 이후 중국은 "대만이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주도의 통일을 인정했다"고, 대만은 "중화민국의 독자성을 인정했다"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세워 왔다. 그럼에도 양안관계의 궁극적 지향점이 통일이라는 점에 대해서 만큼은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나름대로 의의를 두어왔다.

하지만 그러다가 대만 본성인 출신으로 총통에 오른 리덩후이가 은근슬쩍 양국론을 꺼내면서 대만 독립 분위기를 고조시키고[12] 급기야 2000년에는 독립주의자인 천수이볜이 집권하면서 사실상 대만 독립론이 하나의 중국 원칙과 격렬하게 맞서는 양상이 되고야 만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대만 독립론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부수는 재앙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나마 하나의 중국 원칙을 놓고 기본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중국 국민당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물론 국민당 역시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이라는 대원칙을 천명하고 있다는게 공산당입장에서는 문제지만 말이다.

2008년 중국 국민당마잉주가 총통에 오르면서 중국과의 협력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 논의가 오가는 등의 나름대로 훈훈한 무드가 조성되고 되었고 2015년 11월 7일 전격적으로 열린 양안 정상회담에서 마잉주와 시진핑이 만나면서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에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해졌다. 왜냐하면 마잉주는 당시 국민당의 평당원일뿐이므로 그 동안 대륙 정권이 원한대로 당대당 영수회담이 아니라 사실상 대만 총통과 중국 주석간의 정상회담이 되어버렸기 때문으로 분단 60여 년만에 서로가 각기 다른 국가를 세웠음을 암묵적으로 묵인하였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센카쿠 열도를 놓고 일본과 영토 분쟁이 벌어질 때에도 하나의 중국을 주창한다. 홍콩인들과 대만인들이 오성홍기와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댜오위다오에 상륙했을 때 중국 공산당 당국이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검열삭제 해버렸다(...). 그래서 청천백일이 사라지고 빨간색 깃발만 덩그러니(...). 아예 하는 김에 별도 그리지

앞서 간략히 설명한 쌍중 승인 이론은 사실 장징궈가 집권하기 전에도 어느 정도 논의가 있었다. 중국 대륙 대표권과 타이완 지역 대표권은 서로 별개이므로 중국 정부로서 인정이 안된다면 타이완 지역의 주권 국가로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1971년 중화민국 정부가 국제연합에서 퇴출되기 직전 미국 역시 국제연합에 잔류하라고 설득했지만, 장제스 총통은 이것을 거절하였다. 결국 저우수카이 외교부장은 탈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그러나 탈퇴 직전에 중화민국 외교부 차장(차관) 양시쿤(楊西崑)이 장제스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기도 했었는데, 중화민국을 포기하고 중화대만공화국(中華台灣共和國, Chinese Republic of Taiwan)을 선포하자는 것이었다.[13]### 아마도 이는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국호와 정통 중국이라는 지위를 포기함과 동시에 UN 회원국 지위를 중화인민공화국에 승계시켜주는 굴욕을 감수하는 대신, 중화대만공화국이라는 신생 국가로서 UN에 잔류하는 형태를 취해 외교적 고립을 최소화시키자는 논지인 듯하다.

이는 민진당을 비롯한 범록연맹이 주장하는 대만 독립론과 비슷해보이긴 하지만, 문화적으로 중화권의 일원임을 표방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물론 당시 중화대만공화국을 선포했어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국가로 인정했을 가능성은 적다.[14] 하지만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은 UN 입성에 겨우 성공한 상태였다. 따라서 만약 미국 등의 서방 국가들은 중화민국이 중화대만공화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UN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도록 적극 지원했을 경우, 최소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조치를 말로만 규탄할 뿐 실질적으로는 묵인했을지도 모른다. 1991년 대한민국과 북한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진 않아도 상대방이 UN에 가입하는 걸 인정했던 것처럼. 아니면 중화대만공화국 선포 같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중화민국이 독립국으로서 회원국의 지위를 누리진 못해도, 미국의 지원으로 대만이 비독립국인데 특별히 회원 지위를 부여하는 예외를 따로 UN에서 인정[15]하도록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식으로 타협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16]

아무튼 당시 양시쿤은 대만 주재 미국 대사였던 월터 P. 매카너기(Walter Patrick McConaughy, Jr.)에게 본인의 중화대만공화국 구상과 이에 대한 장제스의 반응에 대해 알리면서 미국의 지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양시쿤이 매카너기에 했다는 말에 따르면 장제스가 처음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장제스의 아내인 쑹메이링이 반대하고 결국 아내에게 설득당한 장제스가 양시쿤의 제안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한 듯. 쑹메이링은 당시 단순한 영부인이 아니라 대만 정계에서 남편 장제스에 버금가는 실세였고 장제스도 그녀의 조언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마침 미국 또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질까봐 결국 이 방안을 지지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 일화는 미국과 대만의 기밀 사항이었으나 중화타이완공화국의 주장 자체는 당시에 많이 오갔던이야기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 민두기 교수의 논문에도 '중화타이완공화국'이 언급되기 때문. 참고로 레이전(雷震, 1897~1979) 같은 이는 1970년대에 이와 비슷하게 중화대만민주국(영문명 동일)으로 국호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대만 문제 전문가인 프랑스 정치학자 스테판 코르퀴프(Stéphane Corcuff, 중국명: 高格孚)는 2004년 중화대만민국으로 국호를 변경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UN에서 형식상 자기 발로 나가긴 했어도 사실상 축출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중화민국은 앞서 말한 쌍중 승인 이론에 따라 UN 재가입을 비롯한 국제단체 가입을 시도하고 있다. 논리상으론 맞는 소리지만 상임이사국을 확보한 중국 정부가 워낙 요지부동인지라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리덩후이 정권까지의 시기와, 마잉주 정권 이래로 중화민국 명의로 가입하는 것도 무조건 안된다고 버티고 천수이볜 정권에서 대만(Taiwan) 명의로 가입을 시도했을 때는 전쟁 운운할 정도.

현재 두 '중국' 중에 중화민국과 정식 수교한 국가들 중 일부는 대만과 중국을 각각 별도의 국가로 승인해놓고 있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따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 정부가 이에 완강히 반대하여 해당국과 단교를 하진 않고 있고, 이 조치를 강하게 비난하는 범람연맹 소속 인사도 많지 않다. 이것은 대한민국북한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가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외국이 남북한을 개별 국가로 승인하거나 더 나아가 동시 수교하는 것에 태클을 걸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자극받은 대만 정부도 탄성외교를 통해 중국을 승인한 정부와도 재수교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보였으나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한다는 사실에 빡쳐 단교를 선언해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17]

중국 정계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중국인들에게도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만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는 즉시 중국인들의 눈초리가 영 좋지 않다. 외국인이 중국인과 대화할 때 3대 금기사항[18] 중 하나다. 대한민국은 명목상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주진 않고 있으나 국민들이 외국인들이 남북한을 별개의 나라로 취급하는 것에는 그다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게 유별나게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각국 국민들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용납을 못하는 정치·외교적 이슈가 있기 마련이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독도일본 영토라는 표현이나 말을 들으면 발끈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중국 인민들에게는 대만[19]을 중국과 다른 나라로 취급하는 것에 발끈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대만인 중 '대만 독립'이나 '현상 유지'를 바라는 성향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중국 대륙[20]과 같은 나라로 취급하는 것에 발끈한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면서 정작 서우두 국제공항 3터미널에서 타이완 섬으로 가는 비행기들을 국내선 전용 T3-D 터미널이 아닌 국제선용인 T3-E 터미널[21]로 배정!한 것에 대해 이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베이징 공항 가보면 알겠지만 절대 '국제선'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국제선 및 홍콩, 마카오, 대만 노선'이라고 되어 있다. 중국 대륙에서 홍콩, 마카오, 타이완행 노선을 취급하는 공항은 전부 이런 식으로 홍콩/마카오/대만 및 국제선이라고 분류를 한다. 다싱 공항도 이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3.2. 홍콩마카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로 중국은 일국양제(같은 나라지만 다른 제도를 가진다는 뜻) 원칙을 내세우며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치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실질적 체감은 차이가 있어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홍콩에서 급증한 대륙인들이 홍콩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일도 많았고. 그래도 하나의 중국 원칙은 홍콩을 상대로는 크게 문제가 불거지진 않았다.[22] 적어도 2014년 중반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중앙정부가 직선제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중국 대륙 지지자를 홍콩 지도자로 내세우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홍콩 시민들은 2014년 홍콩 우산 시위를 통해 반발한 바 있으며, 반환 시 약속한 일국양제를 제대로 지키라는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 사실 일국양제 원칙에 대해 먼저 (훼손하여) 빌미를 제공한 것이 중국 대륙인 만큼[23] 중국으로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방어하는 동시에 홍콩의 일국양제 훼손 논란을 잠재우는 숙제가 남았으며,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홍콩의 열기가 중국 본토나 소수민족에게 확산되어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될 우려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중국 국민당 당적의 마잉주 총통마저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은 홍콩에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한편 역시 일국양제 하에 놓여 있는 마카오의 경우 옛 지배자인 포르투갈이 늦게까지 독재 국가였던 탓에,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이웃 홍콩과 달리 주민들이 중국의 통치에 강하게 반발하지 않는다. 물론 마카오인들의 시각에서도 중국 정부·공산당의 통치 방식이나 중국 대륙인들에 대한 반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반발 표출이 홍콩인들만큼 적극적이진 않다.

그런데 중화민국의 관점에서 홍콩과 마카오는 본래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지위가 어정쩡한 지역이 되어 버렸다. 중화민국 미수복지구에 홍콩과 마카오는 포함돼 있지 않다. 중화민국의 관점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없으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영국과 포르투갈로부터 홍콩과 마카오를 반환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성립되지 않다. 명목상 중화민국이 반환 받아 영토로 흡수된 땅이라고 해석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중화민국의 관점에서 홍콩 지구와 마카오 지구는 그 지위가 어정쩡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물론 이건 법리 해석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대만인들은 실질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지배하는 특별행정구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대만에 위치한 중화민국 정부에서 보는 홍콩과 마카오의 공식 입장은 "식민 지배 국가가 스스로 포기한 별도의 자유시", 즉 단치히 자유시와 같은 형태[24]의 반 독립국가이다. 왜냐하면 중화민국에 반환된 것도 아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 입장에서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니까 홍콩과 마카오는 영국포르투갈이 포기한 "자유시" 개념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제연맹UN 헌장에는 특정한 도시를 놓고 국경 분쟁을 빚는 나라들이 있는 경우, 얼마든지 자유시라는 이름의 도시국가를 만들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중화민국 정부는 이런 논리로 일종의 자유시로 보고 외교관계도 따로 잡고 있다. 단치히 자유시폴란드 제2공화국이 내정을 간섭한 것처럼, 홍콩마카오라는 '자유시'에 중국 공산당[25]이 내정을 간섭하고 있다는 논리로 보는 것이 대만의 논리이다.

4. 외국에 대한 적용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합법정부이며 타이완이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입장을 수용하고 있다. 다만 미국대만관계법 등을 통해 대만과의 교류를 완전히 끊지 않고 있으며, 일본 역시 대만 정치인과의 교류를 완전히 끊지 않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한중수교 때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한다고 명시했지만, 그와 별개로 타이완에 국가에 준하는 정치실체가 있는 것은 묵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하나, 아직까지는 세계가 암묵적으로 타이완에 소재한 중화민국을 국가에 준하는 존재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이 범록연맹이 바라는 '타이완 공화국'으로 인정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대다수 국가의 정부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인정하되, 현실적으로는 한 국가에 준하여 대우하는데, 이것이 중화민국이든 대만공화국이든 중국이 아닌 외국의 입장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중국이 계속 타이완을 국가로 부정하며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특별행정구를 강조하는 것에 반감을 느낀 민주진보당을 비롯한 대만 독립 세력과의 갈등도 있다. 홍콩 우산 시위 이후로 대만의 주권을 통일 이후에도 보장해주겠다는 일국양제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을지 국제적으로 시험대에 올라 그나마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는 중국 국민당조차도 곱지 않은 입장을 보이는 것이 당장의 상황이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역사적인 관계와 배경으로 보건대 하나의 중국의 강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양안 정부가 하나의 중국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중화민국이 타이완 공화국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중국에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경우, 장징궈가 주창한 두 개의 중국론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고는 하지만.

한편 중화민국이 그 정체성을 포기하고 대만 공화국으로 국가를 개편하기 어려운 것은 비단 중국의 무력 침공뿐만 아니라 중국이 타이완의 합법적 주인이라는 입장에 대해서 반박할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만 독립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중화민국으로서의 역사가 소멸될 경우 타이완은 완전한 미승인국이 되어버리며 그나마 있는 19개 수교국마저도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 고립을 더욱 더 심화시킬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2015년 11월 마잉주시진핑이 사실상 대만 총통 대 중국 국가주석간의 회담을 하면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의 세부적인 내용이 바뀔 여지가 커졌다. 그간 중국이 주장한 하나의 중국 원칙이 일국양제(하나의 중국 두 개의 체제)였다면, 앞으로는 대만이 주장해온 일국양부(하나의 중국 두 개의 정부)를 중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열린 것. 현실적으로 일국양제를 대만쪽에서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아예 대만 공화국을 주장하는 대만 독립주의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두 개의 정부가 대등하게 공존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형태로 양보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는 편이 낫기도 하다.

2016년 1월 당선된 차이잉원 대만 총통 당선자는, 무턱대고 대만 독립을 추구한 천수이볜과는 달리 현실을 인정하고 "하나의 중국"의 원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는 대만의 경제가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독립 논쟁으로 안 그래도 나쁜 경제를 더욱 더 나락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것로 보인다. 기사. 어차피 민진당이 집권해도 대만 독립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취하는 건 현실상 불가능하다. 중국의 군사력은 이미 대만을 압도하고 있는 데다가, 군사력을 제외하고서라도 중국이 대만에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은 널려 있으며, 위에서 언급했듯 많은 대만인들은 급진적으로 독립을 선언해 나타나는 혼란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국도 정말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 척졌을 때 생길 수 있는 파국도 싫다는 것이 대만인들의 정서다.

이런 식으로 역사에서도 '하나의 중국'의 틀을 지키려다 보니 현재 중국 영토 내에서 있던 모든 일들은 다 '중국인'의 역사이며 중국인은 민족이 같든 다르든 모두 '중국인'일 뿐이라는 견지를 내세우고 있다. 동북공정도 과거 고구려발해의 영토가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으므로 그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역사관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국가적 프로젝트이다. 다만 이 역사관에 반대하는 중국인들도 만만치 않으며 반대로 이 판도 바깥에서 한족들이 한 일은 중국인의 역사에서 제외시킨다. 그렇기에 두 중국은 한족 중심 국가인 싱가포르를 엄연한 외국으로 보는 것. 물론 여기는 역사를 볼 때 상당히 다른 면도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4.1. 남북한관계와 비교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 각각 역시 원칙상으로는 하나의 한국[26]/하나의 조선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현대 국제사회에선 둘 다 잘 안 통하고, 남북간 대결 외교가 치열했던 1960~70년대에는 한국 역시 다른 나라에 이 원칙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단교를 한 나라의 대표적인 예가 콩고 공화국, 칠레 등(물론 나중에 재수교했다.). 그러나 신생 비동맹 국가들이 잇달아 북한을 승인하고 우호국이던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등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이 원칙은 사실상 무너지고 말았다. 심지어는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해서 북한과 전쟁을 한 나라들의 반 이상이 북한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있다.

한국이나 북한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하나의 한국이나 하나의 조선 같은 스탠스를 강요할 처지는 되지 못한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한은 인구 빼고는 대부분의 지표에서 북한에 열세를 보였고,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정통성 주장도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만 지지했을 뿐[27], 공산권은 물론 1960년대부터 독립을 이룬 대다수의 제3세계 국가들도 남한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의 제3세계 국가들은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싸워 적어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전쟁의 폐허를 수습하여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건설했을 뿐더러, 소련을 일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펼치는 북한에 더 우호적이었다.

또한 물리적인 면적 문제도 크다. 중국과 대만은 면적이 크게 차이나는데, 오히려 북한은 남한보다 조금 더 넓은 수준이다. 남한 국력이 북한을 압도한다고 하더라도 면적 문제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물론 현재의 남한과 북한의 격차가 안드로메다급으로 벌어져 있긴 하지만, 중국과 대만의 넘사벽급 격차에 비하면 대한민국이 하나의 한국을 주장하기에는 북한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북한은 더더욱 하나의 조선을 주장할 처지가 못 되고. 게다가 중국은 세계에서 손꼽아주는 강대국으로서 대만이 자국의 영토이고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하나뿐이라는 입장을 다른 나라들이 공식 인정하도록 강제할 힘이 있다. 미국 같은 초강대국도 중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식 인정하고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28] 하지만 한국이나 북한은 외국에 그것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강대국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의 하나의 한국이나 북한의 하나의 조선 같은 원칙은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가 없다. 그냥 각자 국내법에서만 그 원칙이 인정될 뿐.

한편,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상황에서 반대로 한국은 중국과 적절한 외교를 유지하는 가운데근데 2016년에 하필 이 논란이 터져서 # 물론 아직 공식적으로 북한과 중국은 동맹관계이므로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최소한 김씨일가가 나라 운영만 건실하게 잘 했어도 저런 대접은 안 받았을 거다

4.2. 미국

4.2.1. 미국 공화당 정부에서의 대만 승인 가능성

조지 W. 부시 시절 논의된데 이어 트럼프 정부에서 미중간의 무역 전쟁, 대만에 해병대 주둔, 대만 승인 찬성론자의 요직 임명 등으로 인해 미국이 대만을 재승인 및 재수교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다면 5개의 눈과 합동으로 승인하고 수교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가능성은 매우 적다지만 만약 미국을 필두로 주요 열강들이 전격적으로 대만을 승인하고 정식 수교를 해버린다면 하나의 중국 원칙이 매우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중국 입장에서 미국 등의 주요 열강들을 대적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게 훨씬 많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앞서 언급한 하나의 중국, 두 개의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

2018년 8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 형식으로 차이잉원 중화민국 총통NASA를 방문했다. 대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차이잉원한테 초청장을 보냈기때문에 중국에서는 하나의 중국 위반, 시진핑도 가본 적 없는 NASA를 차이잉원한테 보여주다니!! 등등으로 방방 뛰고 있다. 그래서 2018년 8월 21일 전격적으로 엘살바도르중화민국과 단교시키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이로써 대만의 수교국이 17개국으로 하나 더 줄게 됐다. 그러나 정말 대놓고 도널드 트럼프가 차이잉원한테 NASA 초청장까지 써줄 정도라 조만간(2018년-2019년 경) 미국-대만 정상회담 하는거 아니냐는 설까지 돌고 있다. 이례적으로 엘살바도르의 대만 단교 비판하는 성명까지 냈다.#

그리고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대표적인 대만통이자 친대만파이다. 조지 W. 부시 임기 초반인 2001년 7월, 미군 항공기 하이난 불시착 사건으로 미중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자 당시 국무부 차관보이던 존 볼턴은 대만과의 재수교를 주장한 적도 있다. 9.11 테러가 터지면서 중국이 테러로 분노에 휩싸인 미국의 분위기가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급하게 저자세 외교로 전환했기 망정이지, 9.11 테러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정말 모른다. 그리고 지금 그 존 볼턴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사실상 미국 안보라인의 최전선에 서 있다.

2019년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과정에서, 미국 백악관이 표시한 세계지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분리해서 표시하는 일도 발생했다. 기사 대만 네티즌들은 "백악관도 불매운동 해봐라"며 조롱하고 있다.

4.2.2. 2019년, 미국대만의 주권 인정

2019년 6월 6일 미국 국방부에서 대만국민국가(National State)로 표기했다. 기사 2019년 미국 전략보고서에서 대만몽골, 뉴질랜드, 싱가포르와 함게 우방국가로 지정한 것이다. 이 사안의 특이점은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데이비드 리 대만 안보위원회 사무총장(한국의 NSC 상임위원에 해당)과 면담한 직후에 나왔다는 점이다. 즉 존 볼턴이 해당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월 30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이 졸업생들과 사진을 찍었는데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떡하니 노출시켰다.

외교를 공식 담당하는 국무부가 아닌 국방부의 지침이므로 당장 속단하기는 조금 곤란한데[29]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단발적인 움직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이 폐기하려 한다는 움직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당연하지만 이 발표에 대해 중국은 대단히 강도 높은 비난을 가했다. 보고서 발표 후 6월 2일 웨이펑허(魏凤和) 중국 국방부장은 “누군가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하려 한다면 중국 군대는 선택의 여지 없이 일전을 불사할 것이다.”라고 발언하였으며, 당일 새벽에는 SLBM 시험 발사를 단행했다.

이 조치에 대해 중국의 사드 보복 및 한한령으로 대한민국 내 혐중 감정이 엄청나게 늘어난 한국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과,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보수, 진보 정치성향을 떠나서 모두 환영하고 있다. 네이버 뉴스 다음 뉴스 네이트 뉴스 에펨코리아 웃긴대학 익스트림무비 와이고수 樂 SOCCER 티카페 개드립넷 클리앙 pgr21 엠엘비파크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루리웹 정치유머 게시판 루리웹 사회정치게시판

2019년 6월 26일 미합중국 국방부 랜달 슈라이버 차관보가 헤리티지 재단 관련 회의에 참석해 "대만을 '국가'라고 생각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주도로 시행된 6월 6일 사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발언이다. 기사

4.3. 독일

사실 이러한 정통성 다툼은 분단국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로, 동서독 분단 당시 서독의 외상이었던 발터 할슈타인(Walter Hallstein)은 이른바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Doktrin)을 내세워, 동독을 승인한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다. 다만 소련에 대해서는 이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련도 남한, 대만, 남베트남은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남한은 자신들이 망하기 직전에 와서야 인정) 서독은 국가로 계속 인정하고 있었다. 서독의 할슈타인 원칙은 1969년 빌리 브란트가 집권해 동방 정책(Ostpolitik)을 펼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고,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과 함께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반면 동독은 통일을 하면 서독보다 작은 자신들이 불리해지므로 통일을 거부하고 서독을 외국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이 시기 동독의 교과서나 공문서들을 보면 자국을 독일(Deutschland)이라고 부르지 않고 꼬박꼬박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이나 DDR로 적고, 서독을 버젓한 외국으로 취급했으므로 꼬박꼬박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이나 BRD라고 적었다.

4.4. 기업과 산업, 창작물에 대한 적용

하나의 중국을 타국이나 외국의 회사들에게 강요한다.

2018년 5월 초순, 중국정부가 중국에 진출한 외국 항공사들이 타이완(臺灣), 홍콩, 마카오가 중국과 별개의 국가로 인식되게 만드는 표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中정부 "타이완 국가 표기 말라" 요청에 韓항공사들 수용 움직임 이게 말로만 요청이고 협조공문을 보낸거지, 지금까지 중국이 해왔던 것처럼 거부하면 온갖 꼬투리를 잡혀서 영업을 방해당할게 뻔하다. 사례 그리하여 수많은 항공사들이 그 압력에 굴했다고 한다. 중국, 대만, 홍콩 등을 아예 안 쓰고 '동아시아'라 쓴 후 지명만 쓰면 피해갈 수 있겠다만 반대로 대만 교통부는 이러한 항공사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것을 검토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e스포츠에서도 압력을 행사하여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대만 출신 프로게이머들은 대회에서도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아닌 차이니즈 타이페이로만 국기가 사용되는 등 많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태평양 섬나라 팔라우는 중국의 대만 단교 압박에 불구하고 거부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관광산업이 위기에 불구하고 대만과 관계 맺고 싶으며, 팔라우는 정치형태가 대만과 비슷하다는 발언을 하였다. 어차피 관광산업 외엔 딱히 수출할만한게 없다보니 굳이 자존심 굽혀가면서 중국과 수교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듯. 그보다 중국 대륙인들이 뭐하러 널린 수교국 놔두고 미수교국 팔라우 관광을 시작했는가부터 의문

심지어 키즈나 아이가 올린 영상 중에는 썸네일에 오성홍기청천백일만지홍기가 나란히 있다는 이유로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에어 뉴질랜드가 착륙허가 관련 서류에 대만을 단독으로 표기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한 때 착륙을 못하는 소동까지 벌었다.#

대한민국에서 보도되는 대만(중화민국) 관련 소식은 대개 홍콩신문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발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언론사들에 대한 주한중국대사관의 하나의 중국 압력으로 인해 언론사들이 타이베이, 가오슝 등 대만의 도시에 해외 지사를 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 언론들이 워싱턴 D.C, 도쿄, 베이징, 모스크바, 런던, 파리, 베를린, 홍콩 등에는 특파원을 보내지만 타이베이에는 왜 특파원이 없을까 싶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바로 중국 공산당의 압력 때문이다. 타이베이에 주재원을 보내지 못하게 공산당이 지속적으로 한국 언론사들 뒤에서 감시하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의 압력 때문에 대만 소식은 주로 SCMP를 통해 보도되는 것을 한국이 하루 이틀 있다가 보도하는 형식이다.

5. 중국감탄고토

2017년 12월 북한석유를 공급했다고 알려진 홍콩 선박 '라이트하우스 윈모어(Lighthouse Winmore) 호'에 대해 미국대북제재 위반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홍콩을 제재하려고 하자,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배는 중화민국 기업이 임차했으며 중국의 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개그를 선보여 큰 웃음을 주었다. 하나의 중국 논리대로라면 중화민국의 선박도 중화인민공화국의 것이라고 우격다짐을 시전하는 게 정상인데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소리를 자기네들 입으로 했기 때문. 참고로 말하자면, 대만 기업이 임차를 했든 안 했든 이 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인 홍콩 선박이라 중화인민공화국의 배 맞다. 그리고 하나의 중국 논리에 따르면 대만 기업도 중국 기업이다.

이 기사에 대해 여론은 온갖 개드립으로 신나게 까고 있다. 그 중에는 중국이 탈착식 국가라는 조롱도 있다. 기사 네이버판

2018년 중국 대륙에 체류하는 대만인들이 우체국을 통해 대만으로 우편물을 부칠 때 이런 대응법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는 글이 SNS에 돌고 있다(...).
파일:1652817fbcd51646.jpg
대만인: 대만으로 편지 부치고 싶다.
중국우정 직원: 이건 해외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대만인: 하나의 중국이라면서 이때만 외국 취급해 비싼 요금을 받아먹냐? 공안한테 찌르겠다.
중국우정 직원: 자...잠깐만! 잠시 윗사람이랑 얘기 좀 해보고 오겠다.

다만 이 드립은 유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래도 이런 우편물들은 대만의 중화우정으로 보내는 거라 이미 산정돼 있는 요금을 깎기는 어려울 것이니 중국 대륙의 관료를 잠시 골탕먹이는 재미 이상은 못 볼 듯. 그리고 대만행 우편물 요금체계는 내지행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일단 대만행과 똑같은 요금체계를 적용하는 외국은 없다. 무엇보다 중국우정은 '전국 동일 요금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근데 중국우정 창구 직원들도 말단 乙 신세인데 좀 불쌍하다 중화우정도 여기서는 마찬가진데 '국제우편'과 '대륙행 우편'을 구분한다. 즉 중국우정이나 중화우정이나 베이징과 타이베이의 우편물 교환을 국제우편으로 보지 않는다. 단 중화우정에서 홍콩, 마카오행은 대륙행 우편이 아닌 국제우편으로 처리한다.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다싱 국제공항 포함 모든 중국 공항에서는 타이완성, 홍콩 특별행정구, 마카오 특별행정구행을 국제선 터미널에 밀어넣는다.[30]

이것과 완벽히 정반대 사례로[31] 터키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사례가 있어서 중국이 명분이 되게 쫄린다. 2015년까지 터키북키프로스전면적으로 국내우편 취급이었고(우편요금이나 우편번호, 주소 체계도 똑같다!), 에르도안이 북키프로스의 통수를 치고(...) 국제우편으로 바꿨지만 터키 - 북키프로스 요금은 0단계 국제요금으로 별도 세팅되어 있다. 0단계라서 터키와 북키프로스 국내요금 시절보다 딱 2% 인상됐다. 사실상 에르도안이 북키프로스를 형식적으로 국제우편화 한것으로, 유럽연합이나 미국, 러시아에 잘 보이려 한 거다. 그런데 중국에서 대만으로 우편 보내는 요금은 중국 국내요금 대비 3배 차이난다.(...) 선전에서 이웃 도시 홍콩보다 저 멀리 있는 카슈가얼로 보내는 게 싸다는 소리. 그러니까 에르도안시진핑은 서로 반대로 한 거다.

또한 그 이전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은 국부천대 이전의 중화민국이 가졌던 권리을 계승하겠다고 주장하며 국채 등의 의무들은 대만 측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그러면서도 중화인민공화국은 단 한번도 자신들이 중화민국의 국체를 계승한 후신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한국의 사례도 있는데 함남 신포의 경수로 건설장에 남한 근로자들이 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남북은 우편물 교환을 하지 않지만 거기서 일하는 남한 근로자들과 남한 사이의 우편물 교환은 예외적으로 가능했다. 정보통신부도 이 우편물을 국제우편물로 간주했고 국제 요금을 받았다.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는 대만이 마치 독립국인 듯 나오기 때문에 중국 대륙판에서는 대만이 "봉래도"(蓬莱岛)라는 이름으로 나온다.[32] 반대로 중국을 "중국"이라고 하면 "봉래도"(대만)이 독립국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었는지 "중국"이라 하지 않고 "중원"(中原)이라고 지었고 일본은 "동이"(东夷)(...)라고 지었으나 조선은 "조선"(朝鲜) 그대로 남겨두어 아예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고 지역이라는 개념으로 바꿔넣었다.[33] 그럼 귀화의 서약은 뭘로 개명된 거지? 이삿짐 센터 호출권?

하츠 오브 아이언에서 대만이 일본에게 점령된 상태로 나와서 중국에서 심의가 거부되었다. 그 당시 역사에 부합하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티벳이 독립, 만주국, 관동 조차지, 화북 동쪽 등을 다 문제 삼을 것이다

중국 대륙판 언사이클로피디아에 하나의 중국을 어긴 문서들이 작성되어 중국 정부로부터 차단되었다.

중국 대륙에서 내놓은 여러 가지 노래를 재생하는 교육용 장난감에서 "대만은 중국의 큰 섬이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와 이에 열받은 대만인이 장난감을 부숴버린 일이 있었다. 기사

애니매니악스에서 전세계 각 나라 이름들을 노래로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타이완티베트를 따로 부른다. 1분 17초부터. 다만 지도에서는 연보라색으로 통일되어있다. 이 사례를 등재하는 이유는 웬일이게도 해당 영상이 중국 동영상 사이트들에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지도상에서는 분단되어 있지만 노래로는 Korea로 합쳐서 부른다. 지도상에 소련이 살아있다.

6. 관련 문서


[1] 안보리 결의는 총회에서 뒤집을 수 있다. 즉, 총회 의결이 안보리보다 세다.[2] 중화민국의 지위가 박탈된 뒤 아직 후속 조치가 정해지지 않았던 시점에서 중화민국 외교관들을 이렇게 지칭했다. UN총회 제2758호 결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중화민국의 존재를 부정하였기 때문에 기존에 UN에 있던 중화민국 외교관들을 임시로 장제스 1인의 대표단으로 지칭한 것이다. 중화민국과 장제스로서는 이런 굴욕적인 상황에서 억지로 UN에 남아 자국에 어떤 지위를 인정해 주십사 구걸하느니 그냥 명예롭게 떠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중화민국이 겪고 있는 엄청난 외교적 고립을 감안한다면, 당시 얼마 간의 굴욕을 감수하고 신생국 지위로서든 기타 특별한 지위를 인정 받아서라도 UN에 어떻게든 남아 있을 수 있게 외교전을 벌이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당시로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겨우 UN에 입성한 상황이라 중화민국이 미국과 협의하여 UN 내 중화민국의 특수 지위를 인정하도록 움직일 여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실제 당시 중화민국 내부, 그리고 중화민국과 미국의 외교 라인 사이에서 오고 간 중화대만공화국(본문에서 후술함) 선포 같은 방안이 논의된 것을 보면 이 가능성이 없었던 건 아닌데, 결국 그냥 UN에서 나가는 결정을 내려 오늘날 중화민국이 심한 외교적 고립을 겪고 있다.[3] 중국의 대표권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기는 것은 이미 미국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여기고 있었지만 중화민국을 유엔에서 축출하는 것에 대해서 미국은 중국 측에 분명한 반대입장을 타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2758호의 투표 결과가 너무 큰 표차가 났기에 소련이 중화민국의 UN 완전 축출 투표를 밀어 붙였을 경우, 가결될 가능성이 컸다. 아예 쫓겨나는 모양새가 되면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이 결의를 이유로 대만을 바로 침공할 수도 있고...하여튼 결국 여러가지 이유로 2758호 가결 1주일 후 대만은 형식적인 탈퇴를 선택하게 된다.[4] 강경한 중화민국 정통론자라면 여기에 몽골 등도 추가된다. 다만 중화민국 정부는 1946년 중-소우호동맹조약을 통해 외몽골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다만 1953년 소련의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및 후속조치에 반발해 단교 및 조약의 파기를 선언하면서 다시 외몽골을 자국 영토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후 1990년대가 되면서 회복대상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실효통치하는 영토로 한정지었고 이후 2012년 최종적으로 외몽골의 독립을 승인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중화민국은 청나라으로부터 통치권을 이양받은 국가이다. 당연히 청나라의 고유영토를 포기하는 문제에 있어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5] 1925년 선후회의와는 별개.[6]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였다. 2차 국공내전 초기 본거지인 옌안까지 뺏길 정도였던 공산당은 자신들이 점령한 만주와 국민당이 우세한 본토의 동서분할을 제안했으나 전쟁에서 이기고 있던 중국 국민당은 거부하였다. 반대로 전세가 뒤집혀서 중국 공산당이 만주와 화북을 휩쓸자, 이번에는 국민당 쪽에서 양쯔강을 경계로한 남북분할을 제안했으나 전쟁에서 이기고 있던 중국공산당에선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7] 연성자치론은 하나의 중국에 들어가는가를 따지기 상당히 애매한 개념인데 량치차오같이 강력한 중앙정부가 생성되기 이전까지의 임시론적론 개념도 있는가하면 아예 각 성이 떨어져서 공화국을 건립해야한다는 극단적인 해체론도 존재한다.[8] 원래 중화우정에서 발행하는 우표에는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라고 찍혀 있었다. 대만우정이 되면서 臺灣 TAIWAN이라 바뀌게 되었다. 중화우정으로 되돌아가면서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 (TAIWAN)이 되었다. 영어표기는 결국 정-반-합.[9] 사실 물리적으로는 부적절한 시간대이지만 인접 국가와의 교류를 위해 편의상 표준시를 통일하는 경우가 유럽 대륙 국가에 많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과거 중화민국이 중국 본토를 통치할 때 5개의 표준시를 썼던 건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아 실용성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10] 그래서 티베트 자치구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공식 표준시를 쓰면 너무 불편해서 비공식 시간대를 쓸 정도. 과거 중화민국의 사례와 반대 의미로 실용성이 떨어진다. 사실 영토가 큰 다른 나라의 사례로 비추어 봤을 때 중국은 2~3개 정도의 표준시를 설정하는 게 실용적이다.[11] 이 부분에서 대륙과 대만 양측의 입장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압도적인 파워를 지닌 대륙 측은 그냥 "대만도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다"라고만 설명함으로써 "대만 측이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의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소속임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암묵적, 의도적 곡해를 하기 위해 一中各表 같은 군더더기를 추가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대만 측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부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 "대륙 측이 하나의 중국=중화민국 소속임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의도적 곡해조차 할 힘이 없다(...). 이 상황에서 대만 측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대만 스스로가 중화민국 국호를 내세우는 걸 대륙 측이 양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만은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중화민국의 존재가 부정되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자신들이 중화민국을 지탱해 나갈 여지를 만드는 게 급선무이다. 그래서 一中各表라는 토를 달아서 중화민국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 대만 독립을 꿈꾸는 범록연맹 측에서 이 노력을 한심하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러니까 대륙과 대만은 향후 상대방이 하나의 중국에 관해 뭔가 이견을 제기할 경우 대륙은 "니들 스스로가 대만이 하나의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고 했잖아?"라고 반박하고 대만은 "니들이 우리가 중화민국 국호를 쓰는 걸 양해했잖아?"라고 반박하기 위해 각자 함정 카드를 숨기고 있는 셈이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대만 측 설명이 맞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대륙 측이 대만 내부에서 중화민국 국호를 쓰는 건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 무대로 나오면 바로 흔적을 없애 버리려고 온갖 압력을 행사하지만.[12] 물론 리덩후이가 대놓고 대만 독립을 논한 건 아니었고, 단지 중화민국이라는 국가가 독립된 주권을 갖고 있음을 천명한 수준에 불과했으며 이는 국민당의 기본적인 노선과 일맥상통했다. 다만 그 동안에 국민당이 주창해온 것은 어디까지나 대륙 통일이었을 뿐 중화민국이 직접적으로 독립된 국가라는 점을 명시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깨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다.[13] 여기서 '중화'와 'Chinese'는 중동의 '아랍 공화국'들처럼 문화적 개념을 나타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오늘날 대만이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쓰는 이름인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의 '중화' 및 'Chinese'와 유사성이 있다.[14] 과거 청나라의 일부였던 몽골의 독립을 인정한 예가 있긴 하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수십 년 동안 영유권을 주장해 온 대만에 대해서는 몽골처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긴 힘들었을 듯하다.[15] 실제로 많은 현재 국제 기구에서 중화민국이 중화 타이베이나 기타 대체 명칭으로 가입하고 있다.[16] 마침 소련이 미국과 힘겨루기 끝에 결국 자국의 구성국들 중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특별히 추가로 UN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었다. 이미 비독립국을 회원으로 가맹시킨 전례가 있으니, 당시 중화민국이 어떻게든 UN에 남으려고 하고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더라면 독립국 취급은 못 받아도 UN 회원으로서 지위를 인정하는 타협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장제스가 UN을 박차고 나가기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UN에 남아 있겠다고 시간을 끌고 버티면서 외교적 교섭을 했으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다.[17] 사실 탄성외교를 유지한다고 해도, G2로 뛰어오른 중국의 국력을 감안해볼 때 과연 대만과 수교하려는 나라가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미국조차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서 대만과 단교해버렸는데.[18] 나머지 둘은 소수민족 분리주의 독립 지지와 공산당 반대. 마오쩌둥 비판은 별 문제 없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개인차가 있긴 하니 적당히 삼갈 필요가 있다.[19] 중화민국이 됐든 (민진당의 희망사항인) '대만 공화국'이 됐든[20] 중화인민공화국이 됐든, (대륙을 탈환한) 중화민국이 됐든[21] T3-D보다 게이트가 몇개 더 많고, 홍콩 행정자치구, 마카오 행정자치구행도 T3-E 터미널에 배정되어있다. 다만, 이 둘은 과거에 각각 영국/포르투갈 영토였다.[22] 다만 홍콩 내에서는 홍콩 독립론자나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사람들, 혹은 중국은 좋아하나 중국 공산당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상황이기는 했다. 물론 일국양제라 그런 주장을 해도 대륙에서처럼 코렁탕을 먹는 건 아니었지만...[23] 비단 이번 직선제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직선제 문제는 간선제에서 바뀐 것이므로 일국양제를 이전보다 특별히 더 어겼다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조삼모사(?)에 가깝고(물론 기존의 간선제 역시 홍콩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가 있는 만큼 일국양제에 어긋날 소지는 있지만.), 그 이전부터 2003년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 시도인 기본법 제23조 사건이나 2012년 국민교육 과목 필수지정 시도 등 일국양제와 관련한 논란이 이전부터 여러 차례 있어 왔다. 직선제 문제는 이렇게 쌓인 불만의 기폭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24] 단치히 자유시같은 경우는 국제연맹에서 1920년 독립을 시켰지만, 실질적으로는 폴란드 제2공화국이 내정에 상당한 간섭을 행사했다. 예를 들어 단치히 자유시의 항구와 세관은 폴란드 제2공화국에서 운영했고 폴란드 제2공화국은 폴란드군단치히(폴란드명 그단스크)에 주둔시켰다. 그러나 1934년 단치히 자유시 선거에서 나치 독일에 병합을 주장하는 단치히 나치당이 압승하여 삐걱거리더니, 이걸 본 아돌프 히틀러단치히 회랑을 내놓으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며 단치히를 먹어 치운 것. 그리고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폴란드 인민 공화국 영토인 그단스크로 완전히 편입되었다.[25] 중화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체를 부정'할 지언정, 중국 공산당이라는 정당이 지배하고 있다는 '실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국가를 참칭하는 집단이 있다는 논리.[26]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조항이 있어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을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 영토 중 일부인 이북 지역을 불법적으로 점거중인 반국가단체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간첩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의 내용도 적국의 간첩을 처벌하는 내용이 아니라 반국가단체의 간첩을 처벌하는 내용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식입장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이 점거해 헌법상의 미수복지역에 대한 행정력 행사를 대한민국이 할 수 없음에도 불과하고 존재하는 미수복지역을 관할하는 대한민국 정부 산하의 관공서이자 행정청인 이북5도위원회의 존재이다.[27] 1948년 12월에 결의된 UN 총회 제195호 결의안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의 승인을 받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주장도 1991년 남북한의 동시 UN 가입으로 인해 사실상 효력이 실효된 상태이다...다만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이 규정에 따라 한일기본조약 제3조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 총회의 결정 제195호(III)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확인한다."는 조약을 체결한 바가 있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해 주고 있다.[28] 다만 미국은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의 안보를 간접적으로 책임져주고는 있다.[29] 사실 중화인민공화국 단독 수교 국가도 거의 대부분, 형식적으로만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로 볼 뿐 실질적으로는 별개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차이잉원은 대국민 연설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그냥 '중국'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때가 많은데(이전 정권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한 적 없다. 반드시 뒤에 '대륙'을 붙였다).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승인함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30] 홍콩, 마카오는 반환 전에 진짜 외국이었고, 대만 역시 중국과는 별도의 여권을 사용하므로 전산처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하는 수 없이 국제선으로 취급하나, 표기는 국제선과 따로 한다.[31] 중공과 터키는 처리 방법이 반대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면으로는 유사 사례로 볼 수도 있겠지만. 중공은 대만을 명목상 자국, 사실상 외국, 터키는 북키프로스를 명목상 외국, 사실상 자국으로 보았으니.[32] 蓬莱(봉래)는 대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33] 애초에 중국에서는 한반도 지역 자체를 "차오시엔"(朝鲜)이라 하니 수정할 필요는 없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