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입력기에 대한 내용은 창힐수입법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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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倉頡 또는 蒼頡.한자의 전설적인 창제자. 창힐수입법의 '창힐'이 이 인물이다.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인 황제 헌원씨 시절의 좌사(左史)[1]로 눈이 4개 달렸는데, 새가 걸어간 발자국 모양을 본떠 처음으로 한자를 만들었다 한다.(다른 짐승 발자국이나 거북 등껍질을 보고 만들었다고도 한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실존인물로 보지 않고 한자는 갑골 문자부터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창힐의 전설이 생겨난 이유로는 진나라의 분서갱유를 드는 경우가 있다. 진나라는 역사서인 <진기> 외에 의학, 점서, 농업관계를 제외한 모든 서책을 태워버리며 유학자들을 학문적으로 혹독하게 탄압했다. 분서는 문자와 서법에 있어서 학문적으로 큰 타격을 주었고, 문자의 역사가 단절됨으로써 문자의 창생에 대하여 불가사의한 전설이 생겨났는데, 창힐은 그 전설 중 하나라는 이야기이다.(출처: <만화 중국서예사 상>/우오즈미 가즈아키 편저/시쿠라 아오이 그림/임경택 옮김/소와당/2009)
전설의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대략 전한 시대부터 창힐 전설이 시작되어 후대로 전해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전설의 성립 시기를 좀 더 일찍 올려잡아서 춘추전국시대로 보기도 한다.)
위에 보이는 초상화는 두 쌍의 눈이 서로 붙어있어 착시 효과처럼 보인다.
2. 대중매체에서
2.1. 맹꽁이 서당
맹꽁이 서당 학동들에겐 만악의 근원. 미치도록 저주(…)하다 못해 아예 그냥 평생까임권을 수여한 인물이다.'창힐 선생님은 왜 하필 한자를 만들어 저희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십니까'란 하소연을 하거나 백일장에서 '호반창힐(虎飯蒼頡: 호랑이 밥이나 될 창힐)' 같은 성어를 지어 저주하는 것들이 자주 나오는 레파토리이다. 심지어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장쇠가 염라대왕 역을 맡고 한 학동이 창힐 역할을 맡아서 창힐을 심판하고 창힐에게 '한자를 다시 싹 없애버리라'[2]는 판결을 내리는 연극놀이를 하기도 했다. 하도 학동들이 창힐 창힐 노래를 불러댄 덕분에 당시 세대에서는 맹꽁이 서당을 보고 창힐이란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도 많다.[3]
2.2. 치우천왕기의 등장인물
유망의 부하로 신시를 모방한 공상성을 쌓았다.치우천이 공상을 친다는 소식에 유망, 형천과 의논해서 그들을 막기 위한 각종 책략을 구사한다. 성벽의 높이를 높이고, 식량과 성벽을 쌓을 자재를 비축하고, 외부인을 색출하거나 쫓아내고, 근처 지대를 청야하고, 땅굴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위해 역으로 땅굴을 파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치우천의 계획이어서 그의 손 안에 놀아난 셈이 되었다. 역으로 땅굴을 판 이들은 치우천이 미리 침투시킨 툰툰의 부족과 울쿠타, 야쿠타 형제였다. 그리고 나머지 방어하기 위한 계획들은 치우천의 군대가 공상을 점령하자 오히려 그들이 공상을 방어하기 쉽게 만들어준 꼴이 되었다.
공상 함락 후 포로가 된다.
양역이 3천 사울아비를 몰고와서 공상을 방어하게 한다는 치우천의 말을 들은 유망의 양역과 3천 사울아비가 과연 공상을 지켜낼 수 있을지 보고 오라는 명령에 계속 공상에 남게 되고 그들이 수성에 성공하는 것을 보고 귀환한다.
2.3. 전생검신의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창힐(전생검신) 문서 참고하십시오.[1] 천자의 언행을 기록하던 사관.[2] 비록 맹꽁이 서당에서는 그저 코미디에 가깝게 묘사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 말은 근본이 없는 문장이 아니다. 청말민초 혼란상을 겪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오위안런을 비롯한 학자들은 한문을 철폐, (베이징 기반) 백화문을 표준화하고 이를 로마자로 표기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있었다. 루쉰은 심지어 "한자가 사라지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漢字不滅,中國必亡。)."라는 말을 할 정도. 비록 중국어는 여전히 한자를 이용해 표기를 하고 있지만, 20세기의 이러한 움직임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한어병음이라는 로마자를 활용한 표기법을 제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3] 그런데 학동들이 가을 추수일을 도와야 해서 서당에 못 온다는 거짓 편지를 쓸땐 창힐이 좋다고 한다(?!). 한자가 있음으로써 거짓 편지를 쓸 수 있기 때문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