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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4-03 00:04:17

동주


1. 인명
1.1. 실존 인물1.2. 가상 인물
2. 대한민국의 영화3. 국명
3.1. 견융 침략 이후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주나라를 지칭하는 말3.2. 전국시대의 국가
3.2.1. 역사3.2.2. 역대 군주

1. 인명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이름 중 하나이다.

주로 남자에게 많이 쓰이는 이름이지만 여성에게도 쓰인다.

1.1. 실존 인물

1.2. 가상 인물

2. 대한민국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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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명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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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견융 침략 이후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주나라를 지칭하는 말

주(周)나라가 이민족의 침략으로 수도인 호경이 공격을 받아 쇠락하자 기원전 771년 평왕 때 호경에서 동쪽의 낙읍[1]으로 천도하였다.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점이 되며 이때 중흥한 국가를 그 전과 구분할 때 쓰는 말이다. 견융 침략 전의 수도인 호경이 낙양보다 서쪽에 있었으므로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시기부터 천도 전까지의 주나라를 서주, 그 이후 전국시대까지 생존한 주나라를 동주라고 부르며[2] 보통 역사 연구에서 동주라고 하면 이 동주를 뜻한다.

이미 오랑캐에게 털리고 축소되어 세력이 미약하였지만 형식상이나마 춘추시대에는 천자라며 조공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국가의 수가 크게 줄어들어 통폐합되고, 주변 국가들이 상당한 강대국들이 되자 무시당하다가 고왕 때에 사실상 땅이 서쪽과 동쪽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3.2. 전국시대의 국가

3.2.1. 역사

전국시대에 이르러 주나라의 제31대 군주였던 고왕은 형인 사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했다.(기원전 441년) 그리고 다음해인 기원전 440년 동생 희게를 하남에 봉하여 서주 공국을 만들었는데 희게는 사후 환공의 시호를 받았으며, 시간이 흐른 기원전 367년, 서주 환공 희게의 손자인 서주 혜공 희조가 자신의 소자(少子)인 반(班)[3]을 공[4] 지역에 봉하고 제후로 삼았다. 동주 왕실을 받든 소자 희반이 부친인 서주 혜공의 호를 습용(襲用)하여 자신을 동주 혜공이라고 칭했다.[5]

이와 같이 원래의 수도인 성주(낙읍) 부근으로 지배 영역이 축소된 주 왕국의 영역은 서주 공국과 동주 공국으로 나뉘었으며, 직할령이 아예 없어진 주 왕실은 방계인 서주 공국에 얹혀 살게 되었다. 이 때문에 중국 전국시대의 시작을 고왕으로 보는 의견도 있는데 나름 일리 있는 지적이다. 물론 서주 공국과 동주 공국은 아예 왕칭을 하면서 주 왕실을 무시하던 전국 7웅과는 상당히 다른 입장이었기에 주 왕실을 예우했고, 주 왕실은 이 두 공실에 발언권이 있었으나, 문제는 안 그래도 약소국인 주 왕국이 둘로 쪼개진 데에 있었다.

한편 서주시대니 동주시대니 하는 이런 명칭들은 전한, 후한, 북송, 남송 등등처럼 전부 후대의 역사가들이 구분을 하기 위해 붙인 것일 뿐, 당대의 정식 국호는 어디까지나 '주'(周)였고, 다른 나라 그 누구도 서주나 동주로 부른 바 없었다. 그러나 서주 공국과 동주 공국은 정말로 국호가 '서주', '동주'였음이 특이사항이다.

서주 공국은 진(秦)나라의 명군인 소양왕의 공격을 받아 기원전 256년에 멸망했는데, 이는 주 난왕이 합종에 동조하여 반진 연합군에 서주 공국의 군대를 파병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 정치적 결정은 서주 공국의 군주가 한 것이 아니라 주 난왕이 주도적으로 한 것이었기에, 비록 실권과 통치는 서주 공국의 군주가 했으나 주 난왕의 정치적 영향력이 없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난왕을 비롯한 주 왕실 및 서주 공실의 희성 왕족들은 진나라로 압송되었고, 주나라 왕위 자체는 일단 그 단계에서 없어졌으나, 동주 공국은 비록 그 군주의 작위가 군(君)으로 강등되었을망정 7년은 더 버텼다. 그러나 결국 진(秦) 장양왕 원년(기원전 249년), 당시 진나라의 상방이었던 여불위의 공격을 받아, 기원전 249년에 멸망했다.

3.2.2. 역대 군주


[1] 낙양을 말함.[2] 이는 전한을 서한, 후한을 동한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애당초 이 두 나라도 장안에서 낙양으로 천도한거고.[3] 또는 근(根), 걸(傑)이라고도 한다.[4] 鞏, 현재의 허난성 궁이시[5] 남조 유송 시기의《사기집해》와 당나라 시기의《사기정의》는 모두 동주 혜공이 서주 혜공의 아들이라고 보지만,《한서》<고금인표>에서는 동주 혜공을 서주 위공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주훈초(周勋初)는《한비자찰기》에서 《여씨춘추》<선식람>과 《설원》<권모>에 나타난 서주 위공 사후 국가가 둘로 나뉘었다는 기록, 그리고《한비자》<난삼>과 《한비자》<내저설하> - 설오 -에 나타난 공자 근이 서주국을 분열시켰다는 기록을 근거로, 동주 혜공이 서주 위공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