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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7-20 14:30:16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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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유도.png   2019년 시즌에 대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19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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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한화 이글스/2019년 | 스토브리그 | 시범경기 | 3~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2019 시즌 주요인물 한용덕 감독 | 이성열 주장 | 박종훈 단장
구단 기본 정보 한화그룹 | 한화 이글스 | 한화 이글스/2군 | 빙그레 이글스
구단 역사 정보 구단 역사 | 1999년 한국시리즈 | 역대 트레이드 | 사건·사고 | 암흑기
구단 주요 정보 팀 컬러 | 선수단 | 스타 플레이어 | 등번호 | 유니폼 | 한화 이글스 갤러리 | 팀 응원가 | 선수 응원가 | 응원단장 | 육성응원 | 구단 공식 SNS
경기장 관련 정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 서산 야구장 | 대전 베이스볼드림파크
지역 연고 학교 북일고등학교 | 대전제일고등학교 | 공주고등학교 | 광천고등학교 | 대전고등학교 | 세광고등학교 | 청주고등학교 | 강원고등학교 | 원주고등학교
기타 정보 행복수비 | 나는 행복합니다 | 김고추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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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1]
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창단 1986년 3월 8일
법인 설립 1985년 3월 11일
팀명 변경 1993년 11월 1일
법인명 ㈜한화이글스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지분율[2] (주)한화(40%)[3] | 한화케미칼(주)(40%)[4]
(주)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10%)[5] | 김승연(10%)[6]
구단명 빙그레 이글스 (1986~1993)
한화 이글스 (1994~)
연고지 충청남도 대전시대전직할시대전광역시 (1986~)[7]
충청북도, 충청남도 (1986~1999)[8]
구단주 김승연
사장 박정규
단장 박종훈
감독 한용덕
홈 구장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1986~ / 13,000석)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1986~ / 10,500석)
2군 구장 서산 야구장
마스코트 파일:HanwhaEagles_Mascotlogo.png
마스코트
위니, 비니, 수리[9]
킷 스폰서 없음[10]
워드 마크 파일:HanwhaEagles_Brandlogo1.png
사이트 파일:HanwhaEagles_Brandsymbol1.pn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 파일:네이버 포스트 로고.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png
공식 어플 파일:external/www.34windsorst.com/AppStore-icon-HighRes.png | 파일:Google Play.png
최종 우승 (1회)
파일:mascot_bg10.gif
1999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2회)
단일 리그 1989년, 1992년
포스트시즌 진출 (13회)
한국시리즈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1999년, 2006년
플레이오프 1988년, 1991년, 1994년, 1999년, 2006년, 2007년
준플레이오프 1990년, 1996년, 2001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18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최고 승률 .653
1992년 126경기 81승 43패 2무
최저 승률 .290
1986년 108경기 31승 76패 1무
최다 승 81승
1992년 126경기 81승 43패 2무
최다 패 85패
2013년 128경기 42승 85패 1무
최다 관중 734,110명
2018년[11][12]
최소 관중 128,387명
2004년[13][14]
타자 FA 최고액 4년 84억원[15]
김태균
투수 FA 최고액 4년 84억원[16]
정우람
}}}||

1. 개요2. 구단 소개3. 역사4. 역대 BI
4.1. 색상 일람
5. 신인 드래프트6. 영구결번
6.1. No.35 영원한 홈런왕, 장종훈6.2. No.23 가장 완벽한 투수, 정민철6.3. No.21 송골매, 송진우
7. 이글스의 스타들8. 은퇴식9. 응원
9.1. 마스코트9.2. 구단 SNS
10. 인기와 팬덤
10.1. 유명인 팬
11. 여담12. 관련 기록
12.1. 역대 감독12.2. 역대 성적12.3. 역대 개인 성적(통산)12.4. 역대 개인 성적(단일시즌)12.5.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13. 지역 연고 학교14. 연관 단어15. 둘러보기

한화그룹 광고 - 한화 이글스편

1. 개요

불꽃 한화, 투혼 이글스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으로 연고지는 대전광역시를 비롯한 충청도이며, 홈구장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이다. 제2구장으로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사용 중이다. 2군은 서산 야구장을 사용하는 중 이다. 모기업은 한화그룹이다.

2. 구단 소개

1986년 빙그레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KBO의 제7구단으로 창단했다. 이글스라는 팀명은 일반 공모를 통해 지어졌다.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의 사망으로 인한 2세 승계 과정에서 차남 김호연의 몫으로 한화그룹의 식품 계열사 빙그레가 분할되어 빙그레 이글스는 구단명을 한화 이글스로 변경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참고로 빙그레 이글스는 창단 2년차에 탈꼴찌에 성공하고, 3년차에는 정규리그 2위, 4년차에는 정규리그 우승을 거둔 기록을 가지고 있다. 팀의 상징색은 주황(빙그레 이글스 시절)-빨강(팀명 변경인 1994년부터 2007년 시범경기까지)-주황(한화그룹 CI 변경 후)으로 바뀌어왔다.
파일:external/www.ggilbo.com/204309_148804_525.jpg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 3위에 뽑힌 한화 이글스 기사.
참고로 이 조사는 한화 이글스가 암흑기였던 2014년 조사이다.

연고지는 대전광역시이며 홈구장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이다. 이 구장은 원래 작은 편이었으나 2012년 시즌 후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외야 펜스를 뒤로 밀었다. 부연고지는 청주시이며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이 제2 홈구장이다. 2015년 시즌부터 강원도 춘천시의암야구장제3 홈구장으로 쓸 예정이었으나 프로야구를 치르기 위한 여건이 충분치 않아 결국 무산되었다. 제2홈구장인 청주구장은 워낙 작아서 투수들의 무덤[17]으로 악명이 높다. 일명 한국의 쿠어스 필드. 한화 이글스 2군 구장은 서산 야구장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1999년에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우승한 것이 유일하다. 대신 준우승을 5번 했다.

2015년 기준으로 팀 컬러는 일명 "마리한화"로 대표되는, 안 보려고 하는데도 막상 안 보기에도 뭐하고, 지고 있어도 왠지 이길 것 같고 이기고 있어도 왠지 질 것 같은 마약야구, 이겨도 뭔가 불안하게 이기는 야구가 팀 컬러가 되었다. 이 팀 컬러는 2018 시즌 한용덕 감독이 부임하면서 암흑기 동안 한화 팬임을 숨기던 팬들까지 다시 합세하게 만들 정도로 흥미를 이끌어내는 야구로 다시 한 번 변모하게 된다.

3. 역사

4. 역대 BI

역대 한화 이글스 BI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binggrea.png 파일:Hanwha_Eagles_Logo_1994.png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1986~1993 1994~2006 2007~
}}}||

1993년을 끝으로 빙그레 이글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변경 되면서 기존의 엠블럼을 다듬은 로고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2006년, 한화그룹의 CI 변경과 함께 한화 이글스도 BI 변경 작업에 들어갔고 2007년 KBO 시범경기 직후 변경된 엠블럼을 발표했다.

파일:haoyo_logo.jpg
여담으로 Zhejiang Haoyu Industry & Trade Co.,Ltd라는 중국 측량기계 생산 회사에서 한화 이글스의 2번째로 사용했던 로고를 무단 도용해서 사용중이다. 이 회사는 2004년에 만들어진 회사이므로, 이 회사에서 무단 도용한 것이 맞다.

4.1. 색상 일람

5. 신인 드래프트

한화 이글스 역대 신인 드래프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화 이글스 역대 신인 드래프트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지명권 양도
85 민문식 | 이상군 | 전대영 | 황종선 - 임순태
86 곽영진 | 김상국 | 김수길 | 김현택 | 유해덕
윤홍식 | 이원일 | 이효봉 | 한연대 | 한희민
김연철 | 김정태 | 김종수
박재찬 | 박춘석 | 송영수 | 윤종오 | 이강호 | 이군노 | 이연수
이강돈 | 강정길
87 김대중 | 이중화 | 안성수 이동석 | 이정훈 | 정상진 | 이상철 | 이규황 | 곽경탁 조용호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88 송진우 | 장정순 | 조양근 김용민 | 곽동열 | 윤영환 | 오효근 | 김광윤 | 조상헌 | 정영진
89 진정필 | 황대연 | 강석천 김락기 | 이종호 | 박선일 | 성군철 | 손경호 | 김성재
90 김성한 | 지화동 진상봉 | 박상익
91 양용모 김인권 | 임주택 | 김기열 | 김석연
조은상 | 박승국 | 이재근 | 신현대 | 이경진
92 지연규 김재성 | 김홍집 | 김일혁 | 신일호 | 장명덕 | 서석기
93 구대성 허준 | 지화선 | 이민호 | 권오영 | 고기성 | 원현식 | 김성열
94 길배진 정진식 | 신진수 | 전형도 | 최호원
95 신재웅 최명진 | 정의성 | 염규빈 | 이재형 | 신정균 | 강인권
연도 1차 지명 고졸 우선 지명 2차 지명
96 홍원기 심광호 | 이상열 | 조성희 오중석 | 이영우 | 송지만 | 엄종수
김수연 | 김대헌 | 정영환 | 장재혁
김태형 | 조효상 | 임수민 | 서도원
이권철 | 조준혁 | 이덕영 | 박성진
김신완 | 유진호 | 이정선 | 주영대
하수성 | 천용호 | 양세규
97 이성갑 고상천 | 오주상 | 지승민 백재호 | 고영준 | 강대호 | 최웅연
김동율 | 김대원 | 노상진 | 서성환
김해님 | 장순재 | 김준태 | 이동욱
98 김민규 김재현 | 임광규 | 조현수 신경현 | 김장백 | 김기성 | 정주용
채상병 | 심재윤 | 김도윤 | 김기연
이용섭 | 마정길 | 박성창 | 최동연
99 박정진 문용민 황우구 | 윤근주 | 신민기 | 전경일
곽주섭 | 한상훈 | 고영민 | 정병현 양재만 | 조용수 | 강정원 | 이양기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00 조규수 이범호 | 전난수 | 권영근 | 고동진 | 조문기 | 조영민
허진석 | 김상엽 | 이창훈 | 방진호 | 조윤채 | 이상현
01 김태균 김백만 | 유영민 | 서창호 | 박정근 | 백승룡 | 이화준
최대곤 | 한정석 | 김현우 | 이규민 | 최준원 | 오승택
02 신주영 유혜정 | 정병희 | 정구연 | 임재청 | 송혁 | 최주녕
김경선 | 김태완 | 변정민 | 송광민 | 안영진 | 연경흠
03 안영명 장순천 | 윤규진 | 맹진국 | 최민준 | 박성덕
김동훈 | 양승아 | 박대원 | 정민혁
04 김창훈 송창식 | 최진행 | 박노민 | 정종민 | 김용국
05 윤근영 양훈 | 전현태 | 윤현민 | 김동영
06 유원상 류현진 | 양승진 | 정범모 | 신해수 | 장병탁 | 임기범 | 김성환
07 장필준 | 최진호 김혁민 | 최연오 | 김강 | 김경택 | 서정 | 손재윤 | 장동웅 | 경정수
08 박상규 윤기호 | 이희근 | 조성우 | 오선진 | 정대훈
09 김회성 구본범 | 허유강 | 장민제 | 박성호 | 황재규 | 김강석
연도 전면 드래프트
10 김용주 | 김재우 | 안승민 | 이상훈 | 이태양 | 김동빈 | 김경태 | 김경도 | 유재상 | 이성곤
11 유창식 | 강경학 | 나성용 | 이영기 | 김용호 | 박병우 | 임신호 | 오준혁 | 문재현 | 박건우
12 하주석 | 임기영 | 최우석 | 양성우 | 장철희 | 엄태용 | 김원석 | 김병근 | 공민호 | 윤승열
13 조지훈 | 김강래 | 한승택 | 이충호 | 조정원 | 장운호 | 권시훈 | 김종수 | 이석현 | 김승현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14 황영국 최영환 | 김민수 | 박준혁 | 박한길 | 조영우
정광운 | 이창열 | 서균 | 정우석 | 노태형
15 김범수 김민우 | 김정민 | 이도윤 | 임석현 | 박준범
신세진 | 주현상 | 윤보성 | 김정호 | 박윤철
16 김주현 김재영 | 이동훈 | 권용우 | 장진혁 | 염진우
김태연 | 김찬균 | 박상언 | 방윤준 | 강상원
17 김병현 김진영 | 김성훈 | 박상원 | 원혁재 | 여인태
김지훈 | 박진수 | 김기태 | 이주형 | 김명서
18 성시헌 이승관 | 박주홍 | 정은원 | 이원석 | 임지훈
이성원 | 김민기 | 양경민 | 정문근 | 김진욱
19 변우혁 노시환 | 유장혁 | 정이황 | 김이환 | 김현민
오동욱 | 김민석 | 조한민 | 허관회 | 박윤철
}}} ||

대전팜은 북일고, 대전고, 공주고, 청주고, 세광고 정도밖에 없어서 숫적으로 크게 열세였으며 질적으로도 북일고를 제외하면 나머지 팜들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에 고졸우선지명과 연고지역 1차 지명 제도를 폐지하는데 앞장선 구단이며 결국 이 두 제도는 각각 1999년 지명과 2009년 드래프트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고졸우선지명과 1차지명이 폐지된 그 해에 한화의 팜 내부지역에서 그 해의 최대어가 배출되게 된다. 고졸우선지명의 경우에는 조규수, 마일영이 배출되었고 한화의 스카우트진들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화는 조규수를 택했다. 재미있는 건 이 조규수를 2010년에 두산에 트레이드 했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일영을 트레이드로 영입해서 결국 두 선수 모두 한화에 몸을 담아보거나 담고 있는 상황이 됐다. 1차지명의 경우에는 2010년에 연고 고교인 천안북일고에서 신정락이 배출되었는데(고교 졸업은 2006년) 2010년 신인지명부터 1차지명이 폐지되었기에 전체 1번으로 LG 트윈스가 신정락을 지명했고 한화는 1라운드 4번으로 북일고 투수 김용주를 지명하였다.

그 중에서도 북일고가 팜 내에 좋은 선수가 없다는 1차적인 이유에 한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라는 정치적인 이유까지 겹쳐 북일고 선수가 지명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상군, 김태균, 안영명, 유원상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히 픽한 북일고에서 배출해낸 주전급 선수가 그다지 없기에 반발도 많다.

이 때문에 빙그레 시절부터 북일파와 비북일파(대전고, 공주고, 세광고, 청주고(청주기공고) 등) 간의 갈등으로 팀이 되어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애초에 근거가 빈약하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1994년에 강병철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북일고 출신의 비중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이 외에 특징으로 한화의 스카우터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하드웨어에 집착하면서 떡대들을 우선적으로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떡대를 보고 픽한 양훈이 대표적. 그 외에도 항상 코너 포지션의 거포 유망주는 쌓아놓고 보는 편이기에 팀 내 거포는 거의 끊기는 법이 없다.[18] 최악이라는 2010년 시즌에도 최진행이 타자진에서 버티고 있었을 정도. 그 반대로 테이블 세터가 될 만한 타자는 픽 자체를 잘 안하기에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때문에 2013년 시즌 이후 정근우, 이용규를 FA로 영입할 때까지 한화는 늘 테이블 세터 부족에 시달렸다. 또한 은근히 포수 자원도 많이 쌓아놓는다. 정범모, 한승택, 이준수, 이희근, 박노민, 엄태용 등.

특이사항으로는 김인식 감독의 재임기간 동안 야수자원에 대한 픽, 특히 외야자원에 대한 픽을 대폭 줄이고 투수에 많은 카드를 사용했다. 2006년 드래프트에는 1차 포함 상위 6명 중 4지명 정범모를 제외하면 4명이 투수였으며 2007년은 1차 포함 상위 7명 중 4명을, 2008년에도 6명 중 4명, 2009년 지명 7명 중 5명이 투수 지명으로 매년 상위픽에 대부분을 투수에 사용했으며 야수자원도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 포수로 상위픽을 찍으면서 포수자원에 편중된 픽을 했다. 1차 지명인 박상규김회성, 그리고 2차 지명자인 오선진김강 전부 포함해 단 4명만이 김인식 감독 기간에 상위에서 제대로 픽한 야수자원이었다.[19] 이 이외의 자원은 신고선수나 영입선수로 때웠다.

이렇게 굉장히 투수에 치우친 지명을 몇 년간 이어간 결과 당연히 신인 야수에서 새롭게 나오는 자원이 증발해버렸으며 결국 야수 부족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2010년 시즌 중에 2군에서 몇 명의 야수가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자 경기에 나갈 야수가 부족한 처참한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또 큰 문제가 생겼는데 이렇게 장기간 투수를 집중적으로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키워낸 투수가 없다는 것. 그나마 허유강황재규같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투수는 재활의 신이라고 불리는 어떤 킬감독에 의해 재활해야 할 신세가 되었고, 그나마 이런 투수들도 몇 되지 않았다. 그나마 김혁민이나 유원상처럼 1군에서 털리면서 애증의 대상이 된 투수도 있지만 최진호윤기호, 구본범처럼 아주 2군에서 버로우를 해버린 케이스가 더 많았다. 게다가 야수진 쪽에서도 포수자원을 집중적으로 모았는데 애초에 포수는 단기간에 성장하지 않는 포지션인 데다가 그나마 타격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없으니...

결국 2010년 2지명 김재우와 4지명 이상훈을 지명하면서 그동안 픽이 없었던 중견 자원을 픽했으며 야수자원이 대폭 모자르게 되자 근 10년간 다른 팀에 비해 적게 픽하던 경향을 버리고 10명을 꽉 채워서 지명한 뒤에 모두 계약했다. 또한 야수자원의 픽도 상당히 많았는데 2011년에는 포수 나성용, 유격수 강경학, 1루수 김용호, 외야수 임신호오준혁에 투수로 픽했지만 이후 외야수로 키울 예정인 문재현까지 총 6명의 야수를 뽑으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신인 드래프트를 다시 채우고 있다.

2011년 타자 기대주들이 터지지 않고 삽질하자 2012년 최대어 신일고 내야수 하주석을 1차에 지명했다.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 야수 1순위 지명. 팬들은 불안한 내야를 어떻게든 안정시켜주길 기대하고 있다[20]. 또한 최우석, 임기영 등 고교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한 선수들과 북일고 포수 엄태용을 영입함으로써 나름대로 쏠쏠한 드랩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편으로 신생팀 창단에 의해 피해를 보기도 했다. 북일고 출신의 에이스 윤형배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NC 다이노스의 우선 지명으로 인해 날아갔고[21] 1차지명 제도가 부활한 첫 해인 2013년 6월 발표된 10번째 구단 KT 위즈의 우선 지명 선수 두 명 중에서도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북일고 류희운이 예상을 깨고 포함되며 한화 이글스는 멘붕. 충청팜에서 1차로 지명할 만한 선수가 류희운 뿐이었기에 더 큰 손실이다. 대졸 선수를 지명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

게다가 2014년에도 KT 위즈가 우선지명으로 청주고 투수 주권을 지명하여 또 다시 연고지 최대어를 뺏겼다[22][23]. 그나마 북일고 김범수가 있어 2013년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2년 연속 연고지 탑급 유망주를 뺏겼으니 한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판. 2009년부터 팀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 연이은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한화가 온전히 1라운드 1픽을 행사한 적은 유창식 단 한 번 뿐이다.[24]

2016년에는 이례적으로 여태까지 갖고 있던 지역팜 안배, 포수 자원 수급, 즉전감 픽의 원칙을 좀 벗어난 점이 보인다. 그리고 항상 투수에게 강조하던 제구보다는 구위형 투수들을 뽑았고,[25] 외야수 자원을 확충했다. 특히 대졸에다가 유일하게 즉전감으로 비벼볼 만한 원혁재가 기대할 만하다.[26][27]

6. 영구결번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
파일:35장종훈.png 파일:23정민철1.jpg 파일:21송진우1.jpg
장종훈
(2005.09.15)
정민철
(2009.09.12)
송진우
(2009.09.23)

KBO 소속 구단 중 삼성 라이온즈[28]와 함께 가장 많은 수인 3개의 영구결번을 가지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확실히 챙겨주는 한화의 팀 컬러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영구 결번 지정된 순서대로 쓰면 아래 하위 문서의 순서와 같다.[29]

영구결번 지정순서대로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3루 측 상단 관중석에 기념되어 있다.[30]

2018 시즌에는 35번21번의 주인이 코치로 돌아오며 본인의 영구결번을 재사용 중이다.

6.1. No.35 영원한 홈런왕, 장종훈

파일:장종훈선수 장전드.png
No.35 한화 이글스
장종훈
(張鍾熏 / Jong-hoon Jang)
주요 기록
유일무이 유격수 홈런왕 (1990)
KBO리그 최초의 시즌 40홈런 타자 (1992)

6.2. No.23 가장 완벽한 투수, 정민철

파일:external/file.mk.co.kr/20110112aa001.jpg
No.23 한화 이글스
정민철
(鄭珉哲 / Min-Chul Jung)
주요 기록
최연소 100승 달성 (1999)[31]
다승, 탈삼진, 이닝, 평균자책점, WHIP, 완투, 완봉승 1위 (1992-1999)

전성기 시절 55번을 사용했지만 2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여 논란이 있었다. 은퇴 당시 프런트에서 영구 결번으로 55번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지만, 그 경우 후배에게 물려준 번호를 뺏는 셈이 되기 때문에 정민철 스스로 포기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정민철 기타 문단확인.

6.3. No.21 송골매, 송진우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209271104761006120.jpg
No.21 한화 이글스
송진우
(宋津宇 / Jin-woo Song)
주요 기록
유일무이 200승 투수 (2006)
유일무이 2,000탈삼진 투수 (2008)
유일무이 3,000이닝 투수 (2009)

7. 이글스의 스타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스타 플레이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은퇴식

은퇴식을 잘 열어주는 구단 중 하나이다. '의리와 신용'을 한화 그룹의 슬로건으로 삼은 김종희김승연의 철학 때문. 그래서인지 전 구단에서 3번째로 은퇴식이 많은 구단이다(1위는 LG 16회, 2위는 SK 13회)

영구결번 2명[35] 외에 구대성, 이영우까지 포함 2009~2010년 사이 무려 4명의 레전드가 은퇴식을 치렀다. 특히 송진우정민철의 은퇴식은 2주 간격을 두고 치러졌다. 가장 최근에 열린 은퇴식은 2014년 7월 18일 박찬호의 은퇴식이다.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역대 은퇴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름 활약 기간[36] 날짜 비고
이강돈 1985년 ~ 1997년 1997년 8월 31일 최초의 은퇴식
이상군 1985 ~ 1996년 1998 ~ 2001년 2001년 5월 31일
한용덕 1987년 ~ 2004년 2005년 4월 5일
장종훈 1986년 ~ 2005년 2005년 9월 15일 영구결번
정민철 1994년 ~ 2007년 2009년 9월 12일 영구결번
송진우 1989~2009년 2009년 9월 23일 영구결번
김민재 2006년 ~ 2009년 2010년 8월 6일 [37]
구대성 1993년 ~ 2000년, 2006~2010년 2010년 9월 3일
이영우 1996년 ~ 2010년 2010년 9월 18일
신경현 1998년 ~ 2013년 2013년 9월 14일
박찬호 2012년 2014년 7월 18일
}}}||

9. 응원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1 [[틀:한화 이글스 응원단장|{{{#FFFFFF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1px"
-1 {{{#050403 '''1대'''}}}
조지훈
(2001)
-1 {{{#050403 '''2대'''}}}
남성훈
(2002~2003)
-1 {{{#050403 '''3대'''}}}
원명호
(2004)
-1 {{{#050403 '''4대'''}}}
조성재
(2005)
-1 {{{#050403 '''5대'''}}}
홍창화
(2006~2007)
-1 {{{#050403 '''6대'''}}}
박홍구
(2008)
-1 {{{#050403 '''7대'''}}}
홍창화
(2009~)
-1 {{{#050403 }}}

-1 {{{#050403 }}}

-1 {{{#050403 }}}

}}}}}} ||

파일:2019시즌 한화 응원단.png
2019 시즌 한화 이글스 응원단
응원단장 홍창화
장내 아나운서 박준호
치어리더 김연정, 김유나, 도리스[38], 박재령, 박지민, 서유림, 이은지, 이하은

9.1. 마스코트

한화 이글스 마스코트
파일:위니.jpg 파일:비니.jpg 파일:수리.png
좌측부터 위니, 비니, 수리

9.2. 구단 SNS

10. 인기와 팬덤

파일:한화팬들.jpg
파일:대전팬들.jpg
파일:이글스팬들.jpg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팬들


광역연고 개념으로 보면 대전을 비롯한 충청권 전역이 한화 이글스의 연고 지역이다. 팬 밀집지를 들자면 대전제2 홈구장이 있는 청주, 한화 전통의 팜 북일고가 있는 천안, 2012년 최저연봉으로 한화에 입단한 MLB 124승 투수의 고향 공주, 그리고 한화 이글스 팜의 야구부가 있는 홍성군과 새로이 생겨난 세종시 등의 인구 밀집지를 들 수 있다. 잠실, 문학, 고척, 수원 원정경기를 매진시키는 것을 보면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경기도 등 수도권에도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39][40].

팀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기나긴 암흑기를 겪었지만 이전부터 한화 팬덤은 조용하지만 탄탄했다. 대전, 충청 전역을 위시해 충북 대다수 지역들이 한화의 지지기반 지역이다[41]. 그런데 특이한 점은 한화 팬덤은 잘 나갈때 보다도 오히려 암흑기 때 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늘 놀림의 대상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놀림들과 나는 행복합니다부처님 탈을 쓰고 목탁을 든 팬 짤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이런 개그 짤들로 한화 이글스를 알게 된,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비록 약팀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과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하면서도 늘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착한 팬덤이라는 이미지가 감동적으로 보인 덕분에 높은 인기를 구사하게 되었다는 점이 팬 증가의 이유로 흔히 지목된다.

이처럼 #나는_행복합니다, #오늘도_졌다, #보살, #부처, #해탈, #한화는_못말려 등등의 한화를 대표하는 어구나 단어들은 해시태그로 쓰기 좋다는 점이 SNS를 주로 하는 여성들한테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는지 여성 팬들의 유입이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검색 결과는 한화 이글스가 롯데 자이언츠, 기아 타이거즈에 비해서 월등히 많다. 이는 카프조시라고 불리는 히로시마의 여성 팬들과 암흑기에 유입된 점, 연고지와 관련이 없지만 팬이 된 점, 응원 방식에 재미를 느껴서 팬이 된 점 등등이 상당히 유사하다.

SNS를 잘 이용하지 않는 남성들 사이에서도 한화의 인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여성들이 착한 팬덤에 끌린 것과는 정 반대로 이쪽은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칰칼코마니, 핫도그녀 등등 개그 구단의 이미지에 끌린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에서는 한화팬이라는게 자학개그성 드립에 용이하기도 하고,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한화는 알기 때문에 이걸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며[42] 관심 끌기도 좋은 이유 덕분에 BJ, 스트리머, 유튜버, 페북스타, 트위터리안 등등 인터넷 유명인들 중에는 한화팬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더구나 김성근이 감독으로 오면서 노리타들의 유입이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근성있는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으며 성적도 예년에 비해 상승하여 이것이 호재로 작용해 2015년부터는 평균 시청률도 KBO 1위를 하는 등 점점 더 팬덤이 견고해지고 있다. 비록 2016년에 다시 성적이 하락했지만, 2017년에는 김성근을 경질하며 한화 팬덤의 암적 존재인 노리타들도 숙청해내는 등의 성과도 있었고, 새로이 주류를 차지한 팬들은 성적을 보고 이 팀을 응원한게 아니라서 그런지 여전히 충성스러운 팬심을 자랑한다. 2018년엔 큰 논란 없이 흥행하는 성과를 보이면서 대전구장은 연일 매진에 원정구장까지 수많은 팬들이 찾아가 구장을 매진시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43]

한화 이글스 말고 한화 팬덤 자체도 인터넷에서 인기가 많은데 앞서 말한 부처님 탈을 쓴 팬, 목탁을 치던 팬 외에도 핫도그녀, 해탈한 표정의 어린이 팬 등등의 짤들이 유행했다.

원래부터 골수 한화팬들 중에는 유입 팬들의 이런 면[44]을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서 그런 감정은 좀 누그러진 편.

이러한 한화의 인기를 부정하는 측에선 한화의 최다 관중 수(문서 상단의 프랜차이즈 기록 참고)가 타 팀보다 현저히 적은 것을 근거로 삼는데 이는 홈구장인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와 청주구장의 총 관중수를 합해도 23,500명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45] 그렇기 때문에 한화로썬 1년에 있는 대전 홈경기를 모두 매진 시켜도 936,000명 밖에 채우지 못 한다. 청주경기가 모두 매진 된다는 가정하에 합하면 겨우 100만명이 넘어가는 수준. 그런 상황에서 70만명을 초과해 최다 관중을 찍었는데도 한화가 비인기 구단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홈구장이 아닌 잠실, 문학 같은 대형구장에서 원정 경기가 열려도 한화팬들이 3루를 꽉 채우는 상황이 늘 연출된다.

여전히 80~90년대에 날렸던 아재 팬덤이 많은 기아, 롯데, 삼성과는 달리, 한화는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50대 이상의 직관이 줄어들고 20~40대가 다수를 차지하게 됨으로서 관람객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정확한 이유는 불명.[46]

인기가 많은 구단인 것과는 별개로, 한화 이글스/사건사고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악성 훌리건도 많았던 구단이다[47]. 구단 측에서 관람석 보안 관리를 빡세게 한 이후로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세대 교체에도 불구하고 일부 팬에게는 훌리건 문화가 세습되었는지[48] 관람석에서 몰지각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고 있다.

10.1. 유명인 팬

대체적으로 개그맨들이 많은 것이 특징(#)[49]. 한화 이글스 지역 연고 출신(충청남도, 충청북도, 대전광역시)인 경우도 있고(★), 가족 중 누군가 한화 혹은 계열사에서 일해 유입된 경우도 있다(☆).

11. 여담

12. 관련 기록

12.1. 역대 감독

한화 이글스 감독
역대 이름 재임기간 성적 비고
초대 배성서 1986~1987 216전 78승 133패 5무 승률 0.370 최초의 이글스 감독
2대 김영덕 1988~1993 726전 415승 294패 17무 승률 0.585 한국시리즈 총 4회 진출[62]
3대 강병철 1994~1998 568전 254승 298패 16무 승률 0.460
4대 이희수 1999~2000 265전 122승 136패 7무 승률 0.473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5대 이광환 2001~2002 266전 120승 137패 9무 승률 0.467
6대 유승안 2003~2004 266전 116승 139패 11무 승률 0.455 최초의 이글스 선수 출신 감독
7대 김인식 2005~2009 637전 308승 321패 8무 승률 0.490
8대 한대화 2010~2012 371전 147승 218패 6무 승률 0.403 최초의 충청도 태생 감독[63][64]
감독대행 한용덕 2012 28전 14승 13패 1무 승률 0.519 최초의 이글스 감독대행
9대 김응용 2013~2014 256전 91승 162패 3무 승률 0.360 역대 이글스 감독 최저 승률
10대 김성근 2015~2017.5.22 331전 152승 176패 3무 승률 0.463
감독대행 이상군 2017.5.23~2017.10.3 101전 43승 56패 2무 승률 0.434 역대 최장기 감독대행
11대 한용덕 2018~ 144전 77승 0무 67패 승률 0.535 최초의 한화 감독대행 출신 감독

역대 감독 목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KBO 리그에서 굵직한 기록을 세웠던 노장 축에 속하는 감독들(김영덕, 강병철, 이광환,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이 이글스를 거쳤던 적이 있다. 이 중 김영덕, 김인식, 김응용 감독의 마지막 1군 감독을 보낸 팀이기도 하다.

이른바 KBO에서 자신만의 일가를 이뤘다고 하는 대감독 3명(이광환, 김응룡, 김성근)이 거쳐갔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것은 이광환 감독밖에 없고[65] 김응룡, 김성근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모두 실패하였다.

특히 이런 감독 특성은 한화 이글스 팬덤이 혹사에 다른 팬덤 이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는데, 김영덕 감독의 중무리 야구, 최동원염종석 등 롯데 시절 혹사로 유명한 강병철 감독[66]을 빙그레 시절 이미 경험했다. 게다가 쓰는 선수만 쓰는 김인식 감독,[67] 해태 타이거즈 시절 습관을 전혀 버리지 못한 김응룡 감독 등 혹사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감독을 계속해서 경험했다. 여기에 2015년 김성근 감독의 희대의 혹사를 만났으니, 팬덤이 폭발한 것은 사실 당연한 것.

그 길고 길었던 암흑기가 한화로 돌아온 한용덕 감독의 첫 해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바로 깨졌다.

12.2. 역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86 7위/7팀[68] 7위 빙그레 이글스 108317610.290
1987 6위/7팀[69] 6위 108475740.454
1988 2위/7팀[70] 준우승 108624510.579
1989 1위/7팀 준우승 120714630.604
1990 3위/7팀 3위 120685020.575
1991 2위/8팀 준우승 126724950.591
1992 1위/8팀 준우승 126814320.651
1993 5위/8팀 5위 126616140.500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94 3위/8팀 3위 한화 이글스 126655920.524
1995 6위/8팀 6위 126557100.437
1996 3위/8팀 4위 126705510.560
1997 7위/8팀 7위 126517320.413
1998 7위/8팀 7위 126556650.455
1999 매직 2[71]/4팀 우승 132725820.554
2000 매직 3위/4팀 3위[72] 133507850.391
2001 4위/8위 4위 133616840.473
2002 7위/8팀 7위 133596950.461
2003 5위/8팀 5위 133636550.492
2004 7위/8팀 7위 133537460.417
2005 4위/8팀 4위 126646110.512
2006 3위/8팀 준우승 126675720.540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경기수 승률
2007 3위/8팀 3위 126675720.540
2008 5위/8팀 5위 126646200.508[73]
2009 8위/8팀 8위 133468430.346
2010 8위/8팀 8위 133498220.368
2011 6위/8팀 6위 133597220.450
2012 8위/8팀 8위 133537730.408
2013 9위/9팀 9위 128428510.331
2014 9위/9팀 9위 128497720.389
2015 6위/10팀 6위 144687600.476
2016 7위/10팀 7위[74] 144667530.468
2017 8위/10팀 8위 144618120.430
2018 3위/10팀 [75] 3위 144776700.535
KBO 통산 31시즌 V1 4093 1918 2094 80 0.478

빙그레 이글스 시절에는 리그에서 손 꼽히는 강팀이었지만, 한화 이글스로 팀 명을 바꾼 이후에는 모 팀에 가려서 그렇지 S급 스타가 많은 것에 비해 강하지 않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일례로, 한화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정규시즌 승률 1위, 2위를 기록한 적이 없다. 게다가,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한 야구 붐이 일어난 이후인 2008년부터 급속도로 팀 전력의 막장화가 이어졌었고, 암흑기 시절 롯데, LG 뺨치는 KBO 역사에 남을 암흑기를 보냈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 유입된 야구팬들에게는 KBO의 대표적인 약체 팀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2017년 역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LG 트윈스만이 가지고 있던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에 타이 기록을 세운 후 2018년에 드디어 11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11년만에 맞이하는 포스트시즌에서 코치진들의 경험부족 및 선수들의 긴장감 등이 겹치면서 넥센 히어로즈에게 1승 3패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내어주며 포스트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12.3. 역대 개인 성적(통산)

한화 이글스 투수
부분 이름 기록 빙그레-한화 소속 기간
등판경기 박정진 691경기 1999~2018
선발등판 송진우 377경기 1989~2009
완투 송진우 64완투 1989~2009
완봉 정민철 20완봉 1992~1999, 2002~2009
승리 송진우 210승 1989~2009
패전 송진우 153패 1989~2009
세이브 구대성 214세이브 1993~2000, 2006~2010
홀드 박정진 96홀드 1999~2018
이닝 송진우 3003이닝 1989~2009
탈삼진 송진우 2048개 1989~2009
피안타 송진우 2718개 1989~2009
피홈런 송진우 272개 1989~2009
볼넷 송진우 1155개 1989~2009
사구 한용덕 119개 1987~2004
한화 이글스 타자
부분 이름 기록 빙그레-한화 소속 기간
출장경기 김태균 1820경기 2001~2009, 2012~현재
타석 김태균 7471타석 2001~2009, 2012~현재
타수 장종훈 6292타수 1986~2005
타율 김태균 0.325 2001~2009, 2012~현재
출루율 김태균 0.427 2001~2009, 2012~현재
장타율 제이 데이비스 0.533 1999~2002, 2004~2006
안타 김태균 2029안타 2001~2009, 2012~현재
2루타 김태균 367개 2001~2009, 2012~현재
3루타 이강돈 38개 1985~1997
홈런 장종훈 340개 1986~2005
타점 김태균 1267타점 2001~2009, 2012~현재
득점 장종훈 1043득점 1986~2005
도루 강석천 192도루 1989~2003
볼넷 김태균 1057개 2001~2009, 2012~현재
사구 장종훈 131개 1986~2005
삼진 장종훈 1354개 1996~2005

12.4. 역대 개인 성적(단일시즌)

한화 이글스 투수
부분 이름 기록 시즌
등판경기 권혁 78경기 2015
선발등판 이상군 30경기 1986
송진우 1996
2002
정민철 1997
류현진 2007
다나 이블랜드 2013
미치 탈보트 2015
완투 이상군 24완투 1987
완봉 이상군 4완봉 1986
한희민 1988
한용덕 1991
정민철 1994
1996
1997
승리 송진우 19승 1992
패전 장명부 18패 1986
세이브 구대성 37세이브 2006
홀드 박정진 16홀드 2011
이닝 이상군 246.2이닝 1987
탈삼진 류현진 210개 2012
피안타 이상군 233개 1987
피홈런 안영명 34개 2009
볼넷 세드릭 바워스 104개 2007
사구 김인권 19개 1991
한화 이글스 타자
부분 이름 기록 시즌
타율 김태균 0.365 2014
출루율 김태균 0.476 2016
장타율 윌린 로사리오 0.661 2017
타석 김태균 652타석 2016
타수 정근우 575타수 2016
안타 김태균 193안타 2016
2루타 제러드 호잉 47개 2018
3루타 이정훈 12개 1991
홈런 댄 로마이어 45개 1999
타점 김태균 136타점 2016
득점 정근우 121득점 2016
도루 김수연 42도루 2001
볼넷 김태균 108개 2016
사구 송지만 19개 1998
삼진 이성열 143개 2018

12.5.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 88PO: 3승
90준PO: 2패
91PO: 3승 1패
06KS: 1승 1무 4패
07준PO: 2승 1패
준PO 1승 1패, PO 2승,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9승 1무 8패
KIA 타이거즈 88KS: 2승 4패
89KS: 1승 4패
91KS: 4패
94준PO: 2승
06준PO: 2승 1패
준PO 2승, KS 3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7승 13패
롯데 자이언츠 92KS: 1승 4패
99KS: 4승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5승 5패
현대 유니콘스 94PO: 3패
96준PO: 2패
06PO: 3승 1패
준PO 1패, PO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6패
두산 베어스 99PO: 4승
01준PO: 2패
05PO: 3패
07PO: 3패
준PO 1패, PO 1승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8패
SK 와이번스 05준PO: 3승 2패 준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2패
키움 히어로즈 18준PO: 1승 3패 준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1승 3패

13. 지역 연고 학교


14. 연관 단어

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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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의 엠블럼도 사용한다.
[2] 총 합계 300,000주[3] 120,000주[4] 120,000주[5] 30,000주[6] 30,000주[7] 1989년 대전직할시로 승격. 그 뒤, 1995년에 대전광역시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8]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는 연고지 제도가 광역 연고지에서 도시 연고지로 개편되며 표기에서 제외된 것일 뿐 1차 지명권이 박탈되거나 한 건 아니다. 대전엔 1차지명 고교가 1곳이지만 충청남북도에 각각 2곳씩 두고 있다.(충남 - 공주고등학교, 천안북일고등학교, 홍성광천고등학교 / 충북 - 청주고등학교, 세광고등학교) 강원도 영서 지역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1차지명을 할 권한만 갖고 있을 뿐 지역 연고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9] 남성형 마스코트인 위니와 여성형 마스코트인 비니가 있고, 이 둘의 자식이란 설정의 수리가 추가되었다. 기타 항목 참조.[10] 2016년부터 기존 킷 스폰서였던 미즈노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킷 스폰서 없이 운영한다. 그리고 2017년 6월 10일 밀리터리 유니폼에 마제스틱 로고가 있었으나, 밀리터리 유니폼만 위탁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에도 메인 킷 스폰서는 없이 운영.[11]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12] 경기 당 평균 10,196명[13]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14] 경기 당 평균 1,916명[15] 2016-2019년, 계약금 20억, 연봉 16억[16] 2016-2019년, 계약금 36억원, 연봉 12억[17] 916 대첩 당시에는 정규 이닝만으로도 홈런이 무려 7개나 나왔다.[18] 한상훈도 대학교 시절 학교 4번 타자였다.[19] 하위에서 픽한 자원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상위지명에 이 선수들까지 전부 다 합쳐도 6~7명 수준이며 그나마 1군에서 뭔가를 보여준 선수는 없다.[20] 칰갤에선 한화의 마지막 잎새라며 하잎새라는 눈물 겨운 별명을 데뷔 전부터 획득. 물론 못하면 얄짤없이 까인다.[21] 이후 2018년 정범모와 트레이드로 한화에 오긴 했다.[22] 참고로 주권은 조선족 출신으로 귀화 1세대라 자동으로 병역이 면제된다. 보통 한국인 남성들은 20세 이후에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므로 주권은 군 면제로 인해 2년이라는 시간을 벌게 된다.[23] 롯데 또한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심재민, 홍성무를 KT에 빼앗겼다. 이민호의 경우 당시 전면드래프트였으니 딱히 연고지 유망주를 뺏겼다고 보긴 힘들다.[24] 하주석의 경우 NC의 노성호, 이민호 우선 지명 후 행사한 픽이었다.[25] 1차 드랲으로 뽑힌 김병현은 지역팜에다가 제구형인지도 두루뭉술한게 좀 예외로 보인다[26] 솔직히 그렇게 대어는 아니지만 이용규를 빼면 공수를 두루 갖춘 외야수가 없는 한화로서는 쓸법하다[27]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 팀을 나와 군복무를 해결하며 재활한 김진영 같은 경우에는 현장에선 좀 지켜봐야 한다는 듯하다[28] 2017년 이승엽의 은퇴로 동률을 이룸[29] 구대성의 15번은 당시 형편없던 프런트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의지가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은퇴식 당일,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인터뷰한 영상이 그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관련기사도 있다.[30] 기존의 영구결번은 우측 외야에 큼지막하게 있었으나 구장 리모델링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크기가 상당히 줄어들었다.[31] 27세 3개월 2일, 그 후 NPB로 진출[32] 투타 모두 포함한 최고령 기록[33] 은퇴경기는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34] 그 후 한국인 선수 노히트노런이 없다.[35] 장종훈의 경우는 2005년에 은퇴식이 거행되었으니 제외.[36] 현역으로 이글스에서 뛰었던 연도만 기록.[37] 사실 김민재의 커리어를 보면 한화는 선수 말년에 온 곳이지, 전성기를 보낸 구단이 아니다. 오히려 전성기를 보낸 구단은 롯데 자이언츠. 1992년 우승 당시 박정태와 키스톤을 이룰만큼, 롯데의 주축 선수였다. 최동원과 더불어 한화가 타팀 선수들에게도 얼마가 관대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38] 프랑스 출신의 KBO 리그 구단 중 유일한 외국인 치어리더이다.[39] 지리적으로도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이니만큼 수도권 지역에서도 팬층이 형성되는 요건은 충분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호남 상경민들과 영남 상경민들에게 가려져서 그럴뿐, 수도권에는 충청에서 올라온 상경민들과 그들의 자녀들도 상당히 많다.[40] 인천의 경우,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지인 중 충청권 출신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실제로 문학에서 KIA팬 다음으로 원정 응원석을 많이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한화팬이다.[41] 지금도 한화가 주말 경기를 하고 나면 장항선 열차와 당진영덕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등의 휴게소에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42]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한화팬이라는 글을 쓰면, 격려, 위로의 말부터 나는 행복합니다, 최강한화 등 같은 한화팬들이 덧글을 달아주는 등의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롯데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팀들은 이런 반응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엠팍, 야갤과 같은 야구 전문 커뮤니티를 제외한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야구 팬들 중 한화팬을 제일 많이 볼 수 있다.[43] 2018년에는 팀 최고 관중 기록을 갈아치운 덕에 감독님 덕에 인기 많아졌네 하는 노리타들의 헛소리들도 퇴치 되었다. 여러모로 한화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2018년이었다.[44] 지나칠 정도로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고,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응원하는 등의 행동. 한화 이글스 갤러리같은 강성 팬덤에서는 야알못 얼빠년들이 한화에는 하나도 관심없으면서 인스타에 지들 보살 이미지 만들려고 한화팬인 척 해서 꼴보기 싫다는 식의 글들도 자주 올라왔었다. 물론 이런 글들은 바로 욕먹고 삭제되기 마련이었지만.[45]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는 24,000석으로 대전과 청주를 합한 수보다 많다.[46] 굳이 추론하자면 우승 기록이 단 한번밖에 없다는 한탄, 오랜 암흑기로 인한 불만, 영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점잖은 충청의 지역 성향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여 대전아재들이 야구에 대한 관심을 접어버리고 포기하면 편해로 바뀐것일지도 모른다.[47] 대전이라는 도시 자체가 문화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나마 즐길거리가 있는 야구에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정작 우승은 단 한 번 밖에 못한데다가 암흑기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 훌리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48] 앞에서도 언급했듯 야구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대전의 부실한 문화적 환경 + 비수도권 광역 도시 연고 구단들중에서 가장 우승 횟수가 적고 전력도 약했던 한화의 부진이 원인이다.[49] 개그맨 중에서 충청도 출신 비율이 높다. 관련기사[50] 정확히 말하면 원년 OB 베어스 팬이었는데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새로 자리잡은 빙그레 이글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51] 마침 스페셜 DJ로 나온 날이 같은 팀을 응원하는 최재훈이 게스트로 나오는 수요일이었다.[52] 당시 강인과 함께 야구장에 찾았는데 인터뷰에서 백현이 강인 덕분에 야구와 한화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53] 2018년 준플레이오프는 99한화 우승을 이끈 이희수 전 감독, 구대성이 시구를 하였다.[54] 힙합 그룹 M.I.B의 리더 출신,당시 쓰던 예명은 '오직'[55] 빙그레 전성기에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렸다. 1991-1992년이 가장 강했으며 주요 타자로 1번 중견수 이정훈과 3번 1루수 장종훈이 있다. 이정훈은 2년 연속 타격왕(.348 .36)이었으며 장종훈은 3년 연속 홈런+타점 2관왕(35 41홈런 114 119타점)에 올랐다. 1992년에 팀 144개 홈런으로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56]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에서 답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자 일분 야구팬들이 한화를 팀같은 똥이라 한 것에 비롯해 생긴 별명.[57] 파일:attachment/한화이글스/삼국전투기.jpg[58] 실제로 SK가 아닌 다른 팀의 팬인데도 SK 시절 갓동님을 디스하는 야구팬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 사람은 SK 와이번스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것이다.[59] 당시 이글스 파크의 분위기는 흡사 가을야구 진출권을 두고 대결중인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경기중계를 맡은 MBC 방송 카메라가 관중석에서 여성팬들이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며 응원을 하던 모습을 캡쳐한 장면은 정말이지 전율이 흐르고도 남았다.[60] 다만 현해탄 건너의 어느 인기구단과 같은 1회 우승팀과 비교하면 따끈따끈한 편인데 그쪽은 거의 30년을 넘겼다면 여긴 이제 막 20년을 바라보고 있다.[61] 우천취소 보충전인 다음날 31일 경기에서 한화가 롯데에게 지는 바람에 단독1위는 1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62] 88년, 89년, 91년, 92년[63] 대전광역시 출신이지만 이글스에서 뛴 경력은 없다. 다만 OB 베어스가 대전을 연고로 하고 있던 시절 베어스 선수였다.[64] 한대화 이전의 감독들의 출신지는 모두 충청지역과 무관하다. 배성서는 평안도 출신, 김영덕은 재일교포, 강병철이희수는 부산 출신, 이광환은 대구 출신, 유승안김인식은 서울 출신이다.[65] 그마저도 최하위인 롯데와 고작 2게임차였다.[66] 한화 시기에도 이러한 특성은 바뀌지 않았다. 투수 운용에서 구대성을 과하게 혹사시켜 18승 3패 24세이브의 기록을 세우게 해 구원 투수이면서 다승왕과 구원왕을 독식하는 있어서는 안 될 기록을 세웠다.[67]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고 실제로 한화 이글스 시절 2차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나, 이런 특성은 팀의 노령화와 특정 투수의 혹사로 이어졌다. 당시 혹사당한 선수로는 양훈, 황재규, 허유강 등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68] 전기 7위, 후기 6위[69] 전기 6위, 후기 공동 5위.[70] 전기 2위, 후기 3위[71] 전체 4위[72] 전체 7위[73] 2017년까지의 마지막 5할 이상 성적[74] 1996시즌 이후 21시즌만에 순위에서 삼성을 이겼다. (정규시즌 성적만 놓고 봤을 때)[75] 11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한 해[76] 한화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 한화 이글스 2군 유스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77] 광천고가 위치한 홍성군에는 한화 이글스와 지자체가 합작하여 지은 정규 규격 야구장이 하나 있다. 실제 광천고 학생들이 그곳에서 훈련을 진행하기도 한다.[78] 구 청주고 야구부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해체된 이후 창단되었던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야구부는 다시 청주고등학교로 이관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79] 2년 전까지만 해도 이걸로 전화번호를 만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