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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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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박상철
Park Sangcheol
파일:가수박상철.jpg
<colbgcolor=#283593> 출생 1969년[1] 3월 7일[2][조기입학] ([age(1969-03-07)]세)
강원도 삼척군
(現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본관 밀양 박씨
신체 173cm[4], 66kg, B형
데뷔 2000년 1집 앨범 '부메랑'
가족 아내 김점숙, 슬하 1남 2녀[5]
학력 삼척초등학교 (졸업)
삼척중학교 (졸업)
삼척고등학교 (졸업)
삼척대학교 (방송연예과 / 학사)
병역 육군 제9공수특전여단 병장 만기전역
종교 불교[6][7]
별명 무조건 아저씨
특기 인라인 스케이트, 바둑
SNS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논란 및 사건사고4. 주요 히트곡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트로트 가수.

2. 생애

가수가 되기 위한 상경과 실패 후 귀향, 그리고 다시 상경을 반복하여 스타로 성공한 인간승리 수준의 케이스로 힘든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고교 졸업 직후 19살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서울특별시에 상경한 후 미장이 일과 공장일 등을 하며 돈을 모았는데, 충무로에서 만난 작곡가에게 천만 원[8]을 주면 정식 가수로 데뷔시켜 주겠다는 유혹으로 사기를 당하고[9], 거의 거지꼴이 돼서 충무로 지역 내의 경비가 허술했던 건물이나 서울역, 구로역 같은 지하철역들에서 노숙을 하며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살다가, 우연히 만난 한 중년 노숙자의 말[10]에 감화되어 다시 새롭게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향 삼척시귀향해 돈을 벌어 가수의 꿈에 재도전하겠다는 목적으로, 미용 일을 배워 미용사가 되어 미용실을 열어 돈을 벌면서 꿈을 꾸던 중 1993년 강원도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하여 가수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라는 노래로 전체 1등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다시 가수의 길로 들어설 동기를 얻기 시작했다. 당시 미용실까지 유명해지면서, 그때부터 '노래하는 미용사라는 기믹을 밀기 위해서 일부러 머리를 길게 길러 장발 스타일을 유지하기 시작하였고, 정식 음반으로 데뷔를 한 30대 중반까지 장발을 유지하였다.[11][12]

그 후에 전국노래자랑에서 만난 인맥으로 기획사를 만나게 되어, 2000년 1집 부메랑으로 데뷔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 사정은 안 좋아 금호동 옥탑방에 월세를 살며 재연배우리포터 일을 부업으로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2001년에 발표한 '자옥아'가 2003년부터 히트를 치면서 먹고 살만해지고, '무조건'의 대히트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전국노래자랑이 탄생시킨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 이전에 미용사[13], 1993년 7월 25일 전국노래자랑 삼척시 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이후 가수로 데뷔했다. 이 날 부른 노래는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였다. 아울러서 같은 해 연말결선에도 같은 곡으로 나왔다.
전국노래자랑 삼척시 편에 출연한 박상철[14]
전국노래자랑 1993 연말결선에 출연한 박상철[15]

과거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TV는 사랑을 싣고 등 재연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었다.[16] 박상철 역시 '자옥아'로 방송 나올 때 서프라이즈 배우를 계속하던 시기라, 서프라이즈 배우가 본업이고 가수 겸업을 하는 걸로 오해받기도 했다. 두 사람 다 서프라이즈 재연배우 활동 이전 방송 활동은 많이 해 왔지만, 그 때는 워낙 무명들이라서 일반인들 대부분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링크. 나중에 2018년 1월 21일 자 800화 특집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카메오 출연하였다. MBN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 146회에도 출연했다.[17]

2집 나오기 이전 시기까지 3년 가까이 살던 옥탑방 시기에, 자신을 아들처럼 챙겨주던 집주인 부부를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찾아 16년 만에 만나기도 하였다. 그를 아들처럼 생각한 데다가, 적극적이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던 그들[18][19]은, 당시 박상철에게 자신들을 '엄마 아빠'로 부르게 하고 챙겨주어, 평소 밑반찬이나 국을 자주 만들어 주었고, 심지어 종종 술상까지 차려주며 셋이 술을 같이 마시는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떡국을 자주 끓여줬는데, 상당히 맛있게 끓여서 박상철이 못 뵌 지 15년간 떡국만 보면 두 사람이 생각났다며, 그 떡국의 정을 잊지 못하여 찾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 걸핏하면 가정폭력을 일삼아 어머니가 가출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유년기 가정 환경이 나빴던 박상철에게는 제2의 부모와도 같던 분들이었던 것. 이때 박상철은 자신의 친부모와 달리 금슬이 좋은 이 부부에게서 난생 처음 가족의 정을 느꼈다고 한다.

2019년에는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했다.

2020년에는 tvN <노랫말싸미>에 출연했다.

2020년 5월 13일 채널A 시사교양 프로그램 행복한 아침 게스트로 출연했다.

최근 들어 목이 많이 손상된 상태로 흥이 나는 노래를 과도하게 부른 것인지 허스키 보이스를 넘어서 건조한 사막 또는 가뭄에 쩍쩍 갈라진 땅 느낌이 난다. 평소에 개사를 많이 해서 목에 부담을 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특유의 건방지거나 조금 날아가는 엇박자를 끌어오느라 목을 긁힌 것으로 보인다. 직접 흥을 부르는 행동 중 하나이니 감사하며 듣는 것이 좋다.

원래부터 가창력보다는 노래로 히트를 친 가수에 가까운데, 목이 많이 손상되어서 지금은 가창력이 많이 떨어진 편이다. 그래도 종종 노래를 부르려 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나오거나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나오기도 하는데 히트곡이 많았던 사람인지라 호응과 무대매너가 좋은 편이다.

2021년에 어머니의 묘소 정리를 위해 포크레인 면허를 취득한 걸로 알려져 있다.

2022년 여름에는 송해의 사망 이후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가 조문을 했다.

3. 논란 및 사건사고

2020년 8월 4일, 디스패치에서 정리한 가정사와 관련된 논란을 정리한 기사가 나왔다. #

가정사 관련 내용을 요약하자면, 1992년[20]에 첫 번째 부인 A씨와 결혼 → 1993년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 → 2000년 1집 부메랑으로 데뷔 →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자옥아, 무조건, 황진이 발매 → 2007년 13세 연하 B씨와 외도 → 2010년[21] 박상철 두 집 살림 시작 → 2011년 혼외자 C양 출산 → 2013년 한국 영화 전국노래자랑 실제 모델 → 2014년 박상철 A씨와 이혼, B씨와 사실혼 유지 → 2016년 박상철 B씨와 혼인신고+C양 호적 등재 순인데, 이 때문에 박상철은 한동안 이것과 관련하여 일종의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이런 것과 관련해서인지 그는 당시 녹화를 앞두고 있던 사랑의 콜센타 녹화도 불참을 선언했으며, 트롯 전국체전도 출연을 안 하기로 하는 등 방송 활동도 잠정 중단을 선언했고, 또한 이 무렵에 있었던 트로트 시상식이던 2020 트롯 어워즈도 불참했다.
[단독실화] 박상철과 그림자 여인 - 실화탐사대 (8월 29일 토 방송)
MBC 실화탐사대 2020년 8월 29일 방영분에서 이 논란을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전처 A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딸(이))가 혼인신고를 하며 살던 B씨가 폭로한 박상철과의 가정 폭력, 아동 학대 등에 대해 자신의 블로그에 '박상철은 좋은 아버지였다. A씨와 이혼 후에도 그 자식들한테는 너무나도 잘 해준 아버지였다. 하지만 B씨가 전처 자식들에게 잘 하려고 하는 것을 막았다'라고 이야기하며, 자기 생일 때에 박상철은 B씨가 (...중략...) 전처 자식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둥 이상한 이야기를 하면서 전처 자식을 챙기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오지 못했다고 하면서 박상철은 가정 폭력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동 학대를 저지를 사람으 아니라면서 B씨의 폭로에 반박을 했고, 이 내용은 2023년 <프리한 닥터>라는 프로그램에서 최근에 (11일 방송) 소개된 바 있다. #, 영상(9분부터)

이처럼 좋지 않은 사생활이 알려져 도덕성이 좋지 못한 연예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상황이지만, 2022년 6월 13일 가요무대에 복귀한 것을 시작으로 가요무대에 종종 출연하고 있고, 이어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홍천군 편에도 초대가수로 출연하게 되면서 지상파를 포함한 TV 방송과 각종 행사에 복귀했다. 이런 박상철에 대해서 뻔뻔하다며 비난하는 반응도 있는 반면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이 꽃길만 걷기를 바란다며 위로해주는 반응도 있는 등 반응은 대체적으로 제각각이다.

4. 주요 히트곡

5. 여담



[1] 실화탐사대에서 나온 외도 상대의 말에 의하면 박상철과 처음 만났을 당시 박상철의 나이가 40살이었다는 말로 봐서 1968년에 태어났거나 음력으로 출생신고되어 1968년생들과 학교를 다닌 조기입학(음력으로 1월 19일생이다.)이라는 설도 있는 듯 하다. 전국노래자랑에 참가자로 출연 당시 자막에 26세로 표기된 걸 보면 실제로는 69년생인데 출생신고가 1년 빠르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일단 198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1968년생과 같이 지내고 있다.[2] 음력 1월 19일. 만약에 1968년에 태어난 것이 맞다면 2월 17일이 된다.[조기입학] [4] 코미디빅리그에서 황제성, 양세찬과 같이 나온 데서 황제성보다는 크고 양세찬과는 비슷하게 나왔고, 이와 별개로 173cm인 박구윤과 같이 선 걸 보면 키가 서로 똑같다.[5] 다만, 후술할 가정사 논란 문단을 보면 이것도 지금은 이렇지 않은 듯 하다.[6] 참조. 이 뿐만 아니라 2009년 3월 당시 불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내게 불교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라 입을 연 적이 있으며, 실화탐사대 취재 당시 왼쪽 손목에 염주를 착용하고 있던 것이 포착되었다.[7] 정치인 주호영 못지않게 굉장히 독실한 불자로 알려져 있다. 원래 강원도 영동 자체가 경상도, 제주특별자치도와 더불어서 전국에서 불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지역인데, 특히 삼척은 본디부터 불자가 강원도 지역에서 강릉시와 더불어 상당히 많은 편이며, 개중에서도 독실한 불자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경상북도 경주시와 더불어 불교세가 초강세인 이유는 강원도 지역에서 삼척이 경상도와 가깝기도 하거니와 신라의 최북단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세가 상당히 강한 것이다.[8] 1987년과 1988년 사이의 일로, 당시 천만 원이면, 지방에 작지 않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9] 물론 아무것도 안 해준 건 아니고, 당대 히트곡들을 부르게 해서 메들리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내줬다고 한다. 그러나 1,000만 원을 제작비로 썼다기엔 지나치게 부족한 퀄리티이기도 한 데다가 자기 곡을 준 게 아니니 누가 봐도 사기였다.[10] "나는 사업이 망해 빚도 있고 늙어 다시 돌아갈 수 없으나, 자네가 빚이 있나 뭐가 있나? 자네는 젊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했다고 한다.[11] 1집이 큰 인기를 못 얻어 가수 활동만으로는 수입이 적어 재연배우리포터 일을 시작하게 되자 그때 돼서야 다시 잘랐다.[12] 2005년에 발매된 무조건의 앨범 표지를 보면 그때부터 자른 걸 알 수 있다. 근데 그때가 서프라이즈 재연배우했을 때였다. 장윤정과 같은 에피소드에서 연기한 적도 있다.[13]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을 차렸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후 미용사는 그만뒀지만, 현재까지도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은 존재한다. 또한 이발은 잘 못 했다고 한다.[14] 물론 이때는 초대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박상철 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15] 14분 19초부터 나온다.[16] 이건 장윤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워낙 당시 인기가 높았던 관계로, 장윤정의 '어머나'가 처음 히트 치던 시점에 "서프라이즈 배우가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라고 생각한 시청자들이 많았다.[17] 이때 당시 본인의 나이보다 5살 더 많게(자막 상 세는 나이로 나와 당시 박상철의 나이는 48살이었는데 재연극에서는 53살로) 나왔으며, 가수 지망생이라며 소개될 때 부르는 노래나 차 안에서 재생한 노래들 또한 각각 노래방과 황진이였다.[18] 집주인 부부 중 부인의 경우는 당시 방송분에서도 박상철뿐만 아니라, 생전 처음 만난 김용만에게도 '용만아'라고 반말로 부르는 등 상당히 적극적이고 살가운 성격임을 보여주었다. 당시 77세였는데, 그녀는 심지어 60대에 큰 병으로 3년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병력을 밝힌 이유는, 사실 박상철이 그 동안 한 번도 안 찾은 게 아니라 과거에 직접 두 번이나 집에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못 만났었고 그 이후 동네 재건축[28]으로 이사 가서 찾을 수 없어 방송에 의뢰한 거였는데, 이 얘기를 하며 박상철이 '어머니 당시에 왜 계속 집에 안 계셨냐'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박상철이 처음 장발로 들어왔을 때를 회상하며 "깡패 새끼인 줄 알고 놀랐다"거나 "노래 연습한다고 시끄럽게 해싸서 고만하라 했다"라는 등 약간 투박한 말투를 썼지만, "(머리는 그래도) 알고보니 양반처럼 점잖았던 아이였다"거나 시끄럽다고는 했으나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니 막지 못해 그가 연습할 때 "화장실에 숨었다"라고 하는 등 정이 많고 따뜻한 품성을 가졌음을 보여줬다. 사실 만나자마자도 박상철을 바로 끌어안고 '니 얼마나 고생했나', '니 잘 돼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라며 엉엉 울었다.[19] 남편의 경우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과거 회상에서 나온 내용으로는 집주인으로의 갑질은 커녕, 박상철이 불편함을 호소하면 바로바로 해결해 주려고 나서는 등 역시 부인처럼 인간미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옥탑방인 박상철의 집 화장실에 수압 부족으로 수도가 잘 안 나오자마자 잘 나오게 모터펌프를 바로 설치해 주었고, '항상 상철이 잘 되라고 기도했다'라고 말할 만큼 선하신 분이었다.[20] 당시는 미용실 원장이었다.[21] 더욱이 이 해는 청주시에서 차털이범도 때려눕혀 경찰로부터 표창장까지 받던 등 이미지가 더 좋아졌던 시기다.[22] 이로 인해 1박 2일의 공식 사고 수습곡이 되었다.[23] 무려 32년만에 나온 신곡이라고 한다.[24] 불후의 명곡 <<전국노래자랑>> 편에서 언급된 바에 의하면 전국노래자랑 뿐만 아니라 노래방, 축제 때마다 가장 많이 부르는 곡이라고 한다.[25] 공동인터뷰도 진행한 적이 있고, 이창용의 사망 소식을 듣고 조문을 가서 유가족들을 위로하기까지 했다.[26] 당시 칸 모하마드 아사드주만과 친해진 후 가수 데뷔를 위해 곡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가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와 공장이나 건설회사 노동자로 생활할 당시 겪었던 일을 알게 되다 보니 화합을 도모하는 것과 관련된 소재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비빔밥이 떠올라 그에 맞게 곡을 썼다.[27] 다만 2000년대 초중반에는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었으며 2004년에는 상반기에만 3번 나오고 하반기에는 1번도 안 나왔으며 2005년에는 상반기에는 안 나오고 하반기인 7월부터 조금씩 출연했고 울산 남구, 횡성군 편에 출연한 것 외에는 출연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고 2006년에는 동해시, 의왕시, 부산 중구, 함양군, 청주시, 부여군, 사천시 편과 연말결선에만 나온 것만 알려졌을 정도다.



[28] 그 동네 전체에 대형 아파트촌이 들어섰는데, 옥탑방 집 건물이 있던 땅에는 대형교회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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