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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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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한화 이글스/2019년 | 스토브리그 | 시범경기 | 3~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2019 시즌 주요인물 한용덕 감독 | 이성열 주장 | 박종훈 단장
구단 기본 정보 한화그룹 | 한화 이글스 | 한화 이글스/2군 | 빙그레 이글스
구단 역사 정보 구단 역사 | 1999년 한국시리즈 | 역대 트레이드 | 사건·사고 | 암흑기
구단 주요 정보 팀 컬러 | 선수단 | 스타 플레이어 | 등번호 | 유니폼 | 한화 이글스 갤러리 | 팀 응원가 | 선수 응원가 | 응원단장 | 육성응원 | 구단 공식 SNS
경기장 관련 정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 서산 야구장 | 대전 베이스볼드림파크
지역 연고 학교 북일고등학교 | 대전제일고등학교 | 공주고등학교 | 광천고등학교 | 대전고등학교 | 세광고등학교 | 청주고등학교 | 강원고등학교 | 원주고등학교
기타 정보 행복수비 | 나는 행복합니다 | 김고추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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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2. 연표
2.1. 리그의 2인자 (1987~1992)2.2. 1차 전성기 (1988~1992)2.3. 중간기 (1993~1998)2.4. 드디어 염원하던 한국시리즈 우승 (1999)2.5. 침체기 (2000~2004)2.6. 2차 전성기 (2005~2007)2.7. 암흑기 (2008~2017)
2.7.1. 김응용 감독 체제 (2013~2014)2.7.2. 김성근 감독 체제 (2015~2017.5.22)2.7.3.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 (2017.5.23~2017.10.3)
2.8. 다시 시작된 날갯짓 (2018~)
2.8.1. 한용덕 감독 체제 (2018)2.8.2. 한용덕 감독 체제 (2019)
3. 연도별 시즌 요약

1. 개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베이징 올림픽 야구 등으로 야구가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 이후 야구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화 이글스를 일명 꼴칰, 만년 하위팀, 사회인 야구팀 등으로 부르며 약체로 평가하고 있다. 심하게는 '아직 우승해본 적도 없다', '4강도 못 가봤다' 라며 한화를 창단 초부터 답이 없던 만년 하위권팀이라 비난하기까지 한다. 신규 야구팬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2008년부터 한화 성적이 급전직하했으니 이런 인식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우선 한화는 창단 첫 해에는 2할대 승률로 꼴찌(7위)를 했지만, 이후에 KBO 역대 감독 통산 승률 1위인 김영덕 감독의 지휘 하에 황금기를 맞이해 본 적이 있는 구단이기에 아예 전성기가 없는 팀은 절대로 아니다. 창단 후 1992년까지 무려 4번의 한국시리즈 티켓을 거머쥐었고, 그 중에서는 정규시즌 1위도 두 번이나 포함되어 있는 강호였다. 한국시리즈에서 다 지기는 했지만, 1989년은 제도의 헛점[1]이 있었다는 점도 있었고 단일리그제라 정규시즌 1위의 가치도 무시할 수는 없기에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빙그레 시절 이후에는 성적이 워낙 들쭉날쭉했다. 이글스는 원년 이후 2007년까지 최하위는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 대신 1992년 이후로 2007년까지 정규시즌 1위는 물론, 정규시즌 2위조차도 없었다.[2] 즉 1993년~2007년 사이에는 중위권 정도의 팀이었다는 것. 이 중에는 끈질긴 승부로 언더독의 기적을 연출한 1999년[3], 2006년[4]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화의 암흑기는 2008년부터 그 시작을 알렸다. 2007년까지 5할승률 +9, 22번의 시즌 중 12번 PS에 참가하고 6번 한국시리즈에 참가했던 괜찮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던 구단은 암흑의 10년동안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전술했듯이 2008년을 기점으로 야구팬들의 유입이 늘어남과 동시에 한화의 추락이 급격히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사회인 야구팀 등의 인식이 강하게 박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암흑기는 단순히 팀의 인식 뿐만 아니라 팀의 스탯도 좀먹었다. 팀 승률은 2017년 기준 47.4%까지 떨어졌다.[5][6]

2018년 암흑군주가 워낙 망가뜨려 놓은 팀이라 비밀번호 신기록이 유력시되었지만 암흑기 시절과 상당히 대비되는 끈끈한 경기력으로 11년만에 암흑기를 끊어냈다.

2. 연표

2.1. 리그의 2인자 (1987~1992)

2008년부터의 안습한 팀 성적 때문에 거의 잊혀지고 있는 사실이지만[7] 총 5회 준우승(1988, 1989, 1991, 1992, 2006년)으로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에 이어 세 번째로 준우승을 많이 한 팀이다. 콩라인 . 하지만 10회 준우승의 삼성과 6회 준우승의 두산은 각각 한국시리즈 우승도 8번, 5번씩이나 해 봤지만[8] 빙그레-한화 이글스는 뭐...[9] [10] 이러다 최다 준우승 자리도 두산에게 역전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승률도 가장 낮은 팀이다(1회 우승/6회 진출, 16.7%).

2017년 기준으로 한화 다음으로 한국시리즈 승률이 좋지 않은 팀은 LG 트윈스다(총 2회 우승/4회 준우승, 승률 33.3%). 참고로 삼성의 한국시리즈 승률은 7회 우승/17회 진출, 즉 41.1%이다. 2000년대 들어와서 7회 우승을 했기에 승률이 이만큼 오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1985년 우승은 한국시리즈를 안 치른 통합 우승이어서 승률 계산에서 제외했다. 한화보다 준우승 횟수가 1회 많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승률은 5회 우승/11회 진출인 45.4%이며, 한국시리즈 준우승 1회의 넥센 히어로즈NC 다이노스가 있지만 이 경우는 한국시리즈 진출 경력이 한 번이므로 계산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가장 승률이 좋은 팀은 KIA 타이거즈로 11회 우승/11회 진출로 100%의 승률을 자랑한다.

해태(현 KIA)에 3번(1988년, 1989년, 1991년), 롯데삼성에게는 한 번씩 한국시리즈에서 패해서 준우승을 했다(vs롯데=1992년, vs삼성=2006년).

더구나 1989년, 1992년 시즌은 정규시즌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는데도 하위 팀(각각 2위 해태, 3위 롯데)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런 경우는 단일리그로 치른 25번의 시즌 중 단 네 번 일어났는데(1989 빙그레, 1992 빙그레, 2001 삼성, 2015 삼성), 그 중 두 번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해태 타이거즈에게 당한 일은 수십 년이 지나 누군가에게 복수하게 되는데...

2.2. 1차 전성기 (1988~1992)

1차 전성기는 빙그레 시절로 80년대 후반부터 화려한 투타 선수진으로 강팀으로 평가받았다.

당시에 해태 다음갈 정도의 에이스들[11]을 보유하고 있던 강팀이었으며, 88년부터 92년까지 5년간은 22422의 준수한 순위를 기록한 바 있다. 게다가 1989년과 1992년에는 앞서 언급했듯 정규 시즌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직행했다. [12]

그러나 이 시기엔 해태와 롯데에 밀려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지 못했다.

2.3. 중간기 (1993~1998)

그러나 1993년부터 타선 주축이었던 이강돈, 이정훈, 장종훈 등의 선수들이 슬럼프와 부상으로 무너져버리기 시작하며 타선이 난국을 겪었다.

그 시기 한화는 정민철, 구대성 등의 초일류급 투수들과 강석천, 이민호 등의 타자들로 겨우내 순위를 유지하는 형국이었다.[13] 1995년에는 장종훈이 반짝 부활하나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고 노쇠화하면서 장종훈의 시대도 그렇게 저물어갔다.

하지만 1996년 전설의 신인 드래프트로 신인 4인방(홍원기, 송지만, 이영우, 임수민) 외 기타 알짜 신인들을 발굴해내며 타선도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신인지명은 실로 안습 그 자체. 잘 된 게 1996년 신인 드래프트밖에 없다... 또한 1998년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뽑은 둘(부시, 치멜리스)은 부진하면서 제값을 못했다. 특히 부시... 숀 헤어처럼 입 털땐 언제고...

한편 1996년에는 구대성을 굴려서[14]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광탈했다. 그리고 계속 투수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1999년 외인 타자 둘의 대박으로 기적적으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재건에 성공하면서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팀의 이미지가 변하게 되는데, 1998년까지가 리그 탑급 투수진에 의존하는 경기를 했다면 1999년부터는 강력한 타선을 앞세운 뻥야구로 변화하게 된다.

2.4. 드디어 염원하던 한국시리즈 우승 (1999)

1999년에는 감독을 강병철에서 이희수로 교체하고, 기존의 촌스럽던 유니폼을 새로 바꾸고,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부터 뭔가 대박(로마이어, 데이비스)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지만[15] 드디어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한을 푸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만 해도 '세기말의 패자' 라는 칭호를 얻었다.

1993년 이후 한화는 투수진에 의존하는 경기를 했으며, 당시 한화에는 정민철, 구대성, 송진우라는 탑급 투수진이 있었다. 그러다가 1999년 외국인 선수를 잘 뽑은 덕에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탑급 투수진과 다이너마이트 타선 2기가 맞물린 게 바로 1999년 시즌, 우승이었다.[16]

사실 이 우승은 운도 어느 정도 작용했는데, 당시 드림-매직 리그로 나뉜 제도 덕을 봤다. 리그 성적으로 보면 한화는 4팀 중 최약체였고[17] 드림리그의 두산과 롯데는 더 만만한 한화와 맞붙기 위해 막판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댄 로마이어(홈런 수 45)와 제이 데이비스(30-30클럽)라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 듀오와 당대 최고급 거포 송지만(20-20클럽), 그리고 전성기만은 못해도 제 몫은 다한 장종훈(홈런 수 27)까지 이어지는 상위 타선과, 포텐터진 이영우, 임수민의 테이블 세터, 심지어 백재호, 강석천과 같이 쉬어갈 수 없는 하위 타선(강석천이 이영우, 임수민 포텐터지기 전엔 1번 붙밖이었는데 하위타선으로 내려온 것) , 그리고 송진우, 정민철, 이상목이라는 확실한 선발진과 철벽 마무리 구대성으로 이루어진 투수진까지 단기전이라면 충분히 사고 칠 수 있는 조합이었고,[18] 이를 바탕으로 플레이오프에서 전체 승률 1위 팀이었던 두산을 4전 전승으로 스윕하고 삼성과의 준결승에서 방전된 롯데를 4:1로 비교적 손쉽게 제압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가 존재하는 기존 방식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당시 드림-매직 리그 1, 2위 간 교차로 이루어진 플레이오프는 기존 제도의 5전 3선승제와 달리 한국시리즈와 같은 7전 4선승제로 한화는 이 플레이오프를 4승으로 스윕해 전력누수를 최소화한 반면 상대 팀 롯데는 그렇지 못했다. 애초에 그렇게 따지면 OB 베어스가 84년도에 우승했을지도 모르는 법.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 하지만 4위 팀의 우승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준플레이오프 제도가 실시된 1989년 이래로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은 단 2팀(3회) 뿐이란 사실이 증명한다. 그 사례는 정규 시즌 3위로 우승을 차지한 1992년 롯데와 2001년, 2015년 두산인데, 준플레이오프부터 어드밴티지가 없이 경기를 치뤄야 하는 4위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옛날로 거슬러 가면 예외는 있는데 1984년에 종합 승률 4위였음에도 삼성의 져주기 시전으로 후기 리그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를 차지한 롯데 자이언츠가 있다.

2.5. 침체기 (2000~2004)

그러나 2000년부터 투수진이 망하면서 다시 주춤하게 되었고, 이후 몇 년 간 한화의 야구는 강타선에 뭔가 모자란 투수진이라는, 90년대와는 180도 다른 이미지가 된다. 일단 2000년에는 정민철의 일본 진출과 이상목의 부상으로 투수진이 망하면서 5위를 했고, 2001년에는 신인왕 김태균의 등장과 한용덕의 부활, 이상목의 복귀 등의 호재와 함께 유례없던 난전에 힘입어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두산에게 1승도 못거두면서 상위 시리즈 진출 실패했다.[19]

이광환 감독의 사임 이후 유승안 감독이 취임하면서 팀을 추스르던[20] 2003년에는 시즌 최후반에 연승가도를 달리며 SK와 막판까지 4위 경쟁을 했지만, 두산 베어스한테 고춧가루를 얻어맞고 4위 경쟁자 SK 와이번스에도 패하면서 5위로 아쉽게 시즌을 마치게 된다. 시즌 종료 직후 이 해 부진했던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송지만을 내주고 권준헌을 영입하는데, 이는 구단 역사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를 논할 때 한번씩 회자되는 트레이드이다. [21]

2004년에는 유승안 시프트를 처음으로 실현했으며 빙그레-한화 역사상 최악의 관중 흥행을 보였다.

2.6. 2차 전성기 (2005~2007)

그러다가 2005년, 김인식 감독을 영입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준우승 한 번을 비롯해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22] 2006년 한국시리즈엔 삼성과 함께 명승부를 펼치기도 하며 강팀으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는 한화팬들이 그야말로 날아다녔던 시기였다. 야갤에서 팀이 분리되기 이전, 롯데의 키보드 워리어들과 맞설 수 있는 건 칰키워 뿐이라는 말까지 있었고, 골수 대전팬들은 그야말로 자존감이 충만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2.7. 암흑기 (2008~2017)


강팀이었던 이글스의 이미지를 행복야구 같은 약팀의 이미지로 바꿔버린 시기.

단순히 행복야구 등의 약팀의 이미지로 바뀐 것이 아니라 팀의 통산 성적도 크게 좀먹었다. 2007년까지는 팀 성적이 5할에 +9승이었는데, 이 암흑기동안 LG 트윈스한테도 통산승률이 따라잡혔고[23], 대놓고 약팀 취급을 당하는 롯데 자이언츠하고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게 되었다. [24]

프랜차이즈 스타를 오랫동안 기용하는 팀 특성과 김인식 감독의 지나친 노장 선수 신뢰+그로 인한 혹사 등이 겹치면서 한화의 기둥뿌리는 썩어가고 있었다. 기존 선수들의 뒤를 이을 신인 선수 육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이후 송지만, 장종훈, 정민철, 문동환, 김민재, 송진우, 구대성 등등 팀을 지탱하던 주축 선수들이 차례차례 은퇴하거나 타 팀으로 이적하고[25] 그나마 젊은 피로 꼽히던 이범호[26], 김태균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27] 김인식+한대화로 이어지는 선수 혹사와 리틀 야구단식 투수 운용, 그리고 철밥통 코치진의 결과물로 보이는 현기증 나는 수비, 병맛 쩌는 중계플레이로 막장으로 변해갔다.

흔히 지금의 암흑기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직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28] 그 하락세는 2000년대부터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다. 8888577, 6668587667비밀번호를 작성하지는 않았기에 공론화가 되지 않았을 뿐 2000년에는 투수진의 약화로 전년도 우승팀이 전체 7위에 그쳤고 2001년에는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지만 끽해야 승률 4할이었다. 그렇게 2000년부터 2005년 김인식 감독 이전까지 승률 5할도 못 해봤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나 노장 선수의 비중이 너무 높았고 2군 구장도 없었던 상황에서 리빌딩, 신인 선수 육성은 어불성설이었다.[29][30] 2008년 당시 한화는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한 휴식기 전까지 56승 46패(여담으로 이 해에는 연장 무승부가 없었다) 승률 .549로 3위로 당시 2위였던 두산 베어스와는 승차없이 따라가고[31]있었지만, 베이징 올림픽 이후 무려 3주 동안 류현진 등판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전패했고(3승 12패), 그 뒤에 분전했지만 8승 16패로 승패마진을 제대로 까먹어서 64승 62패 승률 .508로 삼성에 1경기차인 5위로 마감한다. 이게 2018년 3위로 가을야구 하기까지 마지막 5할 승률이였다.

그 이듬해인 2009년에는 초반에 살짝 반짝했으나 무너진 선발진과 얇은 선수층, 주축 선수들의 부상 등의 요인들로 인해 연패를 밥 먹듯이 하며[32]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이 암흑기는 역설적으로 그간 전통 비인기팀이던 한화를 KBO의 흥행기관차 중 하나로 올려놓는 역할을 했는데, 맨날 꼴찌만 하면서 나는 행복합니다라거나 팬들의 보살 이미지가 정립되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영상이 매우 재밌어서라고도 한다

2.7.1. 김응용 감독 체제 (2013~2014)


성적을 위해 우승 청부사라는 별칭을 가진 감독을 데려왔으나 육성 기틀은 잡았어도 성적을 잡는데는 실패한 시기.

2012 시즌 후 대대적인 팀 강화를 위해 김응용을 감독으로, 김성한, 김종모, 이종범, 이대진 등 과거 해태 타이거즈 출신 코치들을 대거 영입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KBO 리그 개막 13연패 신기록을 세우면서 시작한 김응용의 2년은 김인식 감독의 뒤를 이어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투수진 혹사와 더욱 심각한 팀 운영으로 김성근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더 험난한 리빌딩의 여정만을 남겨둔 채 잃어버린 2년으로 남게 되었다. 참고로 2013년을 기준으로 LG 트윈스한테 통산 승률을 역전당했다.

2014년 10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하여 시즌 9위를 확정하면서, 한화는 3년 연속 꼴찌를 기록함와 동시에 KBO 역사상 최초의 7위 꼴찌, 마지막 8위 꼴찌, 최초의 9위 꼴찌에 이어 마지막 9위 꼴찌를 마크하는 대위업을 이루고야 말았다. 2011년을 빼면 2009년부터 꼴찌인 건 함정 결국 비밀번호가 한 자리 더 늘어났다 2014년 10월 13일, 시즌 마지막 홈경기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21점차로 지면서 시즌 평균자책점 6.35를 기록하여 삼미의 시즌 평균자책점 6.23 기록까지도 경신하고 말았다.[33]

2.7.2. 김성근 감독 체제 (2015~2017.5.22)


패배의식과 낮은 성적을 극복하기 위해 던졌던 승부수였으나 결국 팀의 미래 자체를 어둡게 만들어 버린 시기.

어찌 보면 한화 이글스 최악의 흑역사

김응용 감독은 2년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고, 5886899라는 비밀번호를 더 늘리기 싫었던 구단은 이글스 마당에 올라온 글과 한 팬의 한화 본사 앞 1인 시위보살팬이 아닌, 그리고 다음 아고라 청원에 서명한 팬들의 의지를 담아[34] 제10대 감독으로 야신 김성근 감독을 영입한다. 김성근 스타일은 일시적인 도핑에 가깝다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적어도 비밀번호는 한 번 끊어줄 필요성이 있고 당장 팀의 체질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감독은 김성근 감독뿐이라는 점에 구단과 팬들이 모두 동의한 것.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김성근마저 한화를 살리지 못하면 한화는 아예 구제불능인 팀이니 해체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할 말 다 하긴 했다.[35][36]

이어 김광수 수석코치, 박상열 투수코치, 아베 오사무 타격코치로 이루어진 일명 '김성근 사단'[37]을 영입하고 조경택 칰무원 배터리코치와 구단 레전드인 강석천, 송진우 코치, 김응용 前 감독을 따라 한화로 왔던 이종범, 김종모, 이선희 코치 등 9명의 코치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선수들이 신임하는 코치를 쫓아낸 롯데와는 여러모로 반대되는 행보 그리고 새로 영입한 코치들, 특히 일본인 코치들의 면면이 아주 화려하다. 특히 통산 165승에 빛나는 1980년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니시모토 다카시 투수 코치, 히로시마 카프의 1990년대 붉은 악마 타선의 일원이었던 쇼다 고조 타격코치[38] 등 일본프로야구에서도 레전드급 선수 출신의 코치들이 왔다.

김성근 감독은 취임식 때 선수단 전원에게 이발 및 면도 발언을 시작으로 강훈련을 예고했다. "한 가지 재밌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김태균은 내일부터 3루에서 반 죽을 것이다" 등의 발언은 덤. 이제부터는 살 빠진 김태균을 볼지도 모른다. 별명 문서에 김슬림, 김날씬, 김반죽 추가 그리고 1시간도 안 돼서 퍼진 한화 선수들 때문에 좌절했다 이후 야구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는 훈련 받느라 고생하는 한화 이글스 선수들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본격 칰키워 새디스트 각성 과거 편하게 훈련 받던 것과 대조하는 짤방이나 다시 김성근 감독에게 붙잡힌 정근우별명왕을 소재로 하는 짤방도 흥하는 중.

2014년 11월 10일자로 정승진 대표이사[39][40]가 물러나고 김승연 회장의 비서실장인 김충범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확실하게 밀어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봐도 될 정도.

FA 시장에서도 내부 FA인 김경언을 잡아두고 외부 FA인 권혁, 송은범?, 배영수를 영입하여 얇은 투수진 뎁스를 크게 보강하였다. 그리고 12월 5일 각각 롯데 자이언츠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셰인 유먼미치 탈보트를 영입하면서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는 모험보다는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를 영입하는 행보를 보였다.

시범경기에서 10전 2승 8패로 꼴찌를 하며 아직도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쌍방울 감독 시절에도 시범경기는 완전 망치고 정규시즌은 3위로 마무리 했던 경험이 있으니 기대감을 가져보자. 설마 김성근 감독에게 입칰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건가?

뚜껑을 열어 봤더니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였을 뿐. 우리가 시범경기를 꼴찌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지난 5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4월의 승률은 5할대를 확정하였다. 입칰효과입성큰효과의 대결은 일단 입성큰효과의 승리. 5월에는 7위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확실히 작년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8월 들어 김성근 감독의 무한혹사와 융통성없는 특타로 인해 선수들의 체력이 방전되고 연패횟수가 늘어남으로써 결국 6위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9월 11일 SK와의 경기로 여태까지 곪아왔던 혹사의 여파와 이해할 수 없는 투수운용으로 8위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끝까지 버텼으나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58868996으로 비밀번호는 연장되었다. 일단 그나마 다행인건 그 아래 팀이 4팀이나 있다. 그래봤자 한팀 빼고는 3경기 차도 안나잖아...

한편 시즌 중 유달리 웨이버 공시되어 팀에서 방출당하는 선수가 많이 나왔다. 65명 등록선수 명단을 아예 다 채우고 2015 시즌을 시작했기 때문인데, 많은 선수들의 기량과 플레이를 체크하기 위해 65명을 다 채운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016년 들어서 한화의 암흑기 시절보다 더 최악의 경기를 펼치고, 김성근도 여러 논란에 휘말리며 한화 이글스는 4월 현재 명실상부한 최악의 팀으로 진행중이다. 이 정도면. 정말 한화 이글스는 명장의 흑역사를 만드는 구단으로 사실상 확정이다. 물론 흑역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노장의 잘못이다.

남에게 퍼주는 혜자트레이드를 한다 특히 기아에겐 선물을 주고 쓰레기를 받아가는데 2015년 노수광, 오준혁, 김광수를 줬는데 김광수는 기아의 불펜 필승조가 되었고[41] 노수광, 오준혁은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차세대 리드오프로 기대를 받고있다. 게다가 유창식까지 주어서 기아는 보유구단이 되었다. 결국 한화시절 승부조작으로 핵이 터졌다 반면 한화로 간 임준섭은 부상으로 경기에 전혀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박성호는 육성선수로 전환되있다. 이종환만 가끔씩 대타로 간간히 비치는 중.

빙그레 첫해 이후 최소 경기 30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화, 빙그레 첫 해 이후 '최소경기 30패' 굴욕

2016년 6월 7일까지 12경기에서 11승 1패를 거두는등 반격을 시작하고 있다. 한때는 9위와 10게임 이상의 차이가 벌어져 영영 답이 없을 것만 같이 보였으나 기세를 몰아 상반기를 7위로 마무리 했다.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5위까지 게임차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기대할 수 있는 부분. 다만 같은 이유로 최하위권까지의 간격도 좁은 만큼 하반기의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결국 7월에 기아에게 1번 1승2패를 당한 것 외엔 모두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였다. 저 기록은 7월 초까지 7전 전패를 당했던 두산에게 얻어낸 2승 1패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전패를 당할 수도 있었으니 정말로 불행 중 다행.

8월 중반까지 기아와 함께 5할 승률을 유지하며 희망고문을 이어나갔으나 안영명의 어깨 수술로 인한 시즌 아웃[42], 배영수[43]안승민의 복귀 불발, 서캠프의 공인구 부적응으로 인한 부진,[44][45] 한화의 미래 김민우의 어깨 관절와순 손상, 권혁의 팔꿈치 통증으로 인한 이적 후 첫 1군 이탈 등 악재가 터지며 월 승률 5할이 붕괴되고 총 승률 5할에 10경기 이상이 남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기아는 5할을 찍다가 올라가고 LG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 9연승을 찍는 와중에 롯데가 아직 승부처가 아닌지 8월 후반에 완전히 무너지며 8월 내내 8위와 7위를 오고가고 있다

가을마다 김성근이 맡던 팀이 훈련으로 인한 체력 방전으로 부진했던 걸 생각해보면 30경기가 조금 남은 상황에서 20번 이상 이기길 기대하긴 어려울테니 올해도 포기하는 게 편할 듯. 특히 김민우의 부상은 전병두류현진이 겪은 어깨 부상인데다가 어깨 부상 후 재활 성공률은 10% 정도라 김성근을 모셔오자고 시위를 하던 팬덤 내부에서 조차 아름다운 이별 아니면 칰복절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단 어깨 부상 후 복귀하는 게 10% 남짓이지 그 후 지속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는 선수는 그 중에서 20%를 채 넘지 못한다. 게다가 김민우는 부상 여부를 감독이 계속 숨긴 채 불펜 투구로 쇼케이스를 여러 차례 했고 당장 한 곳에서 재활해도 충분치 않을 시간에 1군 경기가 있는 경기장과 2군 서산을 오가며 재활과 재활 중단을 반복하고 있어서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8월 후반기엔 본인이 수술 없는 재활을 선택하여 30m 롱토스를 하며 몸을 푸는 중이고 본인이 토미 존 수술과 무뤂 수술 등 여러 고비를 넘긴 덕에 긍정적으로 재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위에 쓴대로 어깨 부상은 복귀율이 처참하게 낮고 보통 어깨 부상은 어떻게 복귀한다 해도 2~3년은 제 기량이 안 나오는 게 보통이라...

20일 태평양 돌핀스식 도박성 선발자원 불펜 투입의 부작용이 제대로 폭발하며 LG에 패하여 5할 승률 불가가 확정되었다. 2003년부터 10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한 LG 트윈스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오랜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한 팀이라는 굴욕적인 기록까지 세우게 되버렸다. 거기에다 선수들 대부분이 사실상 선수 생활에 심각한 타격이 감에 따라, 위약금을 내서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호응을 얻고 있으며 심지어 구단을 해체하고 선수들 다른 데로 보내줘야 한다는 말까지 진지하게 거론되는 수준이다. 당장 네이버와 구글을 비롯한 공신력 있는 검색 엔진에서까지 '한화 이글스 해체'(...)가 자동완성으로 뜨고 있다.

심지어 2017년 까지 한화가 김성근을 감독직에 유임시킨다고 하니 이쯤되면 정말 선수들이 남아나지 않겠다. 다행히 외인 원투펀치가 영입되었고, 그나마 나아진 수비, 트레이드로 영입된 군필포수로 16년같은 막장스러운 상황은 없었으나, 햄스트링 부상이 유행(?)하며 선수들이 하나 둘 이탈하더니 삼성과의 벤치클리어링 후 패배로 스윕까지 헌납하며 '야구도 못하면서 연봉은 거품에 팬들은 어그로끌고 선수들은 사고치고 감독은 더럽게 플레이하는 구단' 수준까지 이미지가 나빠져버렸다.[46] 결국 21일 밤 김성근과 프런트의 해묵은 갈등이 2군 선수들의 특타훈련을 두고 제대로 폭발했고 23일 사실상의 경질로 김성근의 야구 커리어는 사실상 마감되었다.[47] 그리고 이 해는 일찌감치 PS 탈락을 확정지었다.

2.7.3.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 (2017.5.23~2017.10.3)


전임감독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버린 팀을 재건했던 시기

한화 구단은 2017년 남은 시즌을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한화, 남은 기간 이상군 대행 체제 이상군 감독 대행은 구단의 챌린지 2017 비전과 관련,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면서 팀을 빠른 시간 내 정상화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끝까지 진행한다고 한다. 성적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정상적인 운영은 맞다.[48][49]

9월 13일 삼성전 패배로 14경기를 앞두고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다.

2.8. 다시 시작된 날갯짓 (2018~)

2.8.1. 한용덕 감독 체제 (2018)

정말 행복합니다.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한화 새 사령탑, 한용덕 감독 선임 완료 2018년부터 시즌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결정되었다. 감독대행직 이후 한화 1군 스태프로는 5년 만에 복귀한다.

감독이 바뀌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고 현재 3위에 이어서 SK를 꺾어서 2등을하고 또 1위 두산을 노리고있다. 역시 김성근 전임 감독의 선발 운용과 비교되는 운영방식이다.선발에게 많은 이닝을 맡기는 효율적인 운영을 하는 감독이다. 아마 올해 반전이 일어날듯.

다만 7월부터 급작스레 부진에 빠지면서 위기가 찾아온 상태이다. 그래도 5할에 약간 못미치는 아슬아슬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어 큰 이변이 없는 한 가을야구는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1월 16일의 5886899678의 2018년 항목의 모습. 7월 3일 기준 불과 5달 반 전이다.
-당시 취소선 내용-
솔직히 5강 가면 진정한 야신이다
제발 부탁이니까 이기기라도 해라, 진짜.
이번에도 5강 못 들어가면 11자리 비밀번호인데, 이기기라도 하지...
잃어버린 한화의 가을야구를 찾습니다

결국 9월 28일 두산전에서 승리하면서 5강을 확정지었고 동시에 비밀번호도 끊어내는데 성공하였다.그리고 한용덕 감독은 진정한 야신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3위로 준플레이오프 에 진출했다. 그리고 한화는 11년 만에 5할 이상의 승률을 냈다.

2.8.2. 한용덕 감독 체제 (2019)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작년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길 잃은 팀이 되어버렸다.

시즌 초 이용규의 항명 파동부터 안맞는 투타조화로 인해 9위, 최하위 롯데 자이언츠와 1.5 게임차이다.

3. 연도별 시즌 요약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한화 이글스 역대 시즌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1] 2위 팀은 PO 직후 5차전까지 가더라도 5일이나 쉴 수 있었다. 실제로 해태는 플레이오프를 스윕으로 끝내 무려 8일이나 쉬었다.[2] 2018년 현재까지도 없다.[3] 타 리그 3위인 현대에 승률로 밀려 준PO를 할 위기에 처했지만 10연승으로 현대를 승률로 역전해 위기를 모면했다.[4] 무명투수 지연규의 4이닝 무실점 경기[5] 야구가 원래 1등과 꼴찌의 승률 차이가 적어서 체감이 안 갈 수 있는데, 비교하자면 원년구단 주제에 정규시즌 우승 한 번 없다고 놀림받는 롯데 자이언츠의 통산 승률이 47.35%다. 2018년 비밀번호 신기록을 썼다면 롯데한테도 통산승률이 역전당할 뻔 했다.[6] 똑같이 약체 취급받는 LG 트윈스의 통산 승률은 48.4%. 사실 LG는 워낙 탈쥐 등으로 놀림을 받아서 그렇지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잠실 라이벌 두산에 우위를 점하던, 신바람 야구로 대표되는 강팀이었다.[7] 2008년 시즌에는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후반기에 불운이 겹친 건 사실이다. 문제는 2009년부터이다(...)[8] 삼성은 1985,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년, 두산은 1982, 1995, 2001, 2015, 2016년에 우승했다.[9] 1999년 딱 한번 우승했다.[10] 두산이 준우승한 년도는 2000, 2005, 2007, 2008, 2013, 2017, 2018년이다. 원조 콩을 뛰어 넘는 신흥 콩[11] 투수 부문에선 이상군, 한희민, 송진우, 한용덕 등. 타자 부문에선 장종훈, 이강돈, 이정훈, 강정길[12] 사실 가운데 4도 정규시즌에서는 3위였는데, 4위 삼성이 PO에서 숙적 해태를 꺾어서 한국시리즈까지 갔기 때문이다.[13] 그나마 저런 초일류급 투수들조차 없었더라면 이때가 1차 암흑기가 될 뻔했다. 당시 타선이 영 힘을 못 썼던지라...[14] 18승 3패 24세이브 1.88의 평균자책점으로 4관왕(평균자책점&다승&구원왕&승률), MVP,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15] 읽다 보면 알겠지만 시즌 초반만 해도 한화는 우승전력이라 평가받지 못했다.[16] 이듬해부터 한화의 투수진이 망하면서 팀의 야구 스타일은 투수진 중심에서 타선 중심으로 재편된다. 한화의 우승은 90년대의 투수진 중심 스타일과 2000년대의 타선 중심 스타일, 그 중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17] 하지만 시즌 후반의 성적은 가장 좋았다. 포스트시즌은 실제 전력보다 기세가 중요하다는 말이 실증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18] 쉽게 말하면 다수의 A급 선수들이 포진한, 두터운 선수층이 장점인 조합이라기 보다는 S급의 핵심 선수들 몇몇에 크게 의존하는 형태. 애당초 리그 운영도 송-정-이 세 투수에 구대성으로 확실히 3승 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3승 2패 전략이었다.[19] 사실 이땐 역대급 평준화시즌이였다. 이때 당시 한화는 피타고리안 승률은 8개구단 중 꼴찌였으며, 당시 꼴찌였던 롯데와의 격차도 겨우 2경기였다. 참고로 이해 한화 이글스가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 팀 중 최하의 승률이다. 또한 외인을 엄청나게 교체해대는 바람에 2002년부터 외인 교체 제한 규정이 생기는 단초를 제공했다.[20] 문동환 재활, 이범호의 레벨업 등 김인식 초창기 잘 나가던 한화의 기초는 유승안 감독 때 마련되었다. 반면 송창식 혹사 등의 그림자도 있어서 과대평가란 시각도 있다.[21] 원래 연봉문제로 송지만과 팀 사이가 험악했다고도 하고, 송지만의 선수협 활동으로 인해 구단의 눈 밖에 났다는 설이 있다.[22] 그러나 이 423 충무로 시기는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다. 이유는 후술.[23] 2013년에 역전당함[24] 2018년 종료 시점 기준으로 롯데 0.474, 한화 0.476.[25] 한화 자체가 2군팜 육성이나 선수단 관리의 질적 향상에 극히 인색한 구단이다. 2군 시설이 열악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당장 군입대 선수 훈련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한 게 2013년이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 기본적인 군입대 관련 선수 관리가 엉망진창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송광민.[26] 이후 1년만에 국내 복귀를 했지만 구단과의 마찰 등의 이유로 KIA로 가고 말았다.[27] 2012년 한화로 복귀했으나 혼자서 팀의 암흑기를 끝내기는 역부족이었다.[28] 사실 그 전부터 노장 선수들의 비중이 컸고 신인들의 성장이 더뎠기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긴 했다.[29] 특히 타 팀이 신인선수 지명 권리를 모두 행사할 때 한화는 2년 연속으로 4~5명의 선수만 뽑을 정도였다. 당연히 선수가 없을 수밖에...[30] 2000년 이후 한화가 김태균, 이범호, 류현진, 최진행을 제외하고 제대로 키워낸 선수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자. 그나마 쓸 만했던 유망주들은 혹사로 맛이 갔고 뭔가 해주는 선수들은 죄다 군 미필에 군필 선수들 중 기량이 성장한 선수가 있냐면 그것도...[31]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문가들 역시 한화의 4강은 거의 무난하다고 보는 편이었다. 4위권과 승차가 넉넉한 데다가 당시 한화는 잔여경기가 가장 적은 팀이었으니...[32] 두 자릿수 연패가 무려 두 번(12연패, 10연패)이나 있었다.[33] 사실 2014년은 역대급 투병타신 연도이다. 순위로 보면 투수 조련사라는 김성근이 부임한 2015년에도 똑같은 9위를 기록 중이다. 그 밑의 팀이 신생팀이었던 kt wiz였던 만큼 사실상 꼴찌.[34] 김성근 감독을 싫어하는 국내 구단의 분위기에 편승해 그냥 내부승진을 통해 새 감독을 정하려 했으나, 1인 시위 등의 소식을 접한 회장의 압박회장 : 뭘 잘했다고 내부 승진이야?으로 인해 김성근 감독을 영입했다는 소문도 있다. 농담이 아닌게 실제 기자들의 증언도 이와 일치했다. 특히나 김승연 회장 성격상 이런 말이 자기귀에 다이렉트로 들어간 상황이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할까?[35] 여담으로 이 당시 김성근 감독이 대전에 내려가서 감독면접을 봤니 이상훈코치가 대전 집을 알아보고 있니 하는 소문이 돌았지만 다 사실무근이였다. 애초에 김성근 감독과 같은 레벨이라면 사장이 감독을 찾아가는게 보통인 크보 상황일 뿐더러, 사장은 애초에 대전에 있지도 않았다.[36] 이보다는 더 큰 문제가 있는데, 애초에 김성근 감독은 팬들이 원하는 감독이였고 감독 선임에 팬의 입김이 작용한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의 사례이다. 그런데 만약 이 감독체제에서 성과가 없다면 그 후에 한화이글스의 운영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당시 옐로우카드에서도 논의되었다. 물론 15년과 2016년 관중동원이나 구단 굿즈판매량을 보면 양측 모두 아주 행복한 상황이지만.[37] 다만 감독 본인은 사단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실제로 코치진에서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코치고 상당수였고.[38] 다만 쇼다 코치는 2009 시즌에 SK 와이번스의 코치로 있었다.[39] 사실 정승진과 김성근은 나름 불편한 관계. 2012년에 한화는 차기 감독으로 김성근을 영입하려고 했었으나 한화 프런트가 김성근과의 약속을 깨고 결국 영입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는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실제 보도된 내용. 그 당시 프런트의 수장이 정승진이었으니... 애초에 이번에 한화팬들이 김성근 감독밖에 없다고 주장했을 때에도 저 2년 전 일 때문에 김성근이 한화로 오는 건 힘들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많았다.[40] 약속을 깼다는 부분이 한대화를 경질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을 안지켰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막장전력을 맡기 싫었던 김성근이 트집을 잡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 이때 김성근이 부임했더라면 메이저리거 류현진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41] 다만 김광수는 한화에 있을때 정말 못했다. 그래서 팬들도 김광수 자체는 아깝지 않다는 평가였다.[42] 어깨 웃자람뼈를 깎는 수술을 받았다. 윤규진이 작년 후반기에 받은 수술과 유사하다. 결국 이 수술 후 150km 초반의 강속구는 더 이상 던질 수 없게 되었고, 17시즌 후반기에야 붙박이 선발이 된 뒤 공 끝의 변화가 심한 투심을 주 구종으로 하는 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피칭 스타일을 바꾸어야 했다.[43] 2군에서 130km 초반의 공을 겨우 던지다가 이제서야구속을 140km 중반까지 끌어올린 덕분에 8월 초 1군에 콜업되어 선발진의 부담을 줄여주나 싶었으나 감독이 '그냥 잠깐 보려고' 부른 것으로 밝혀졌다. 덤으로 같이 올라온 김범수도 다시 2군행. 특투?[44] 1군 엔트리에 이름을 걸고 2군에 잠시 내려가 계형철 코치의 지도를 받았으나 올라온 뒤로도 베팅볼만 뿌리며 거하게 캠프 파이어를 저지른 뒤 진짜로 서산에 캠프를 차려버렸다.[45] 2군 경기에서도 1.2이닝만에 머리로 향하는 사구로 퇴장을 당하며 미치 탈보트마에스트리에 이어 감독에게 '장점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실패한 투수로 단단히 찍힌 것으로 보인다.[46] 실제로 김성근이 부임한 뒤의 SK는 나머지 7개구단 팬들과 감독들에게 물어뜯기고 뜯기를 반복하다 경질 뒤 겨우 해소되었으나, 적어도 SK는 야구라도 잘했다. 한화는 성적도 못내면서 9개구단의 안티구단이 되어버렸고, 쉬이 가라앉지 않을 예정이라...물론 이는 김성근 이전에도 비밀번호를 찍는 와중에 설레발떨며 타팀을 공격하던 칰키워들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47] 나이도 나이지만, 프론트와의 갈등, 혹사 논란 등 야신 이미지에 가려진 단점들이 다 드러난 동시에 어쨌든 포스트시즌엔 진출하지도 못했으므로 더 이상 프로야구 팀의 감독을 맡기는 힘들 것이다.[48] 다만 이건 투수 운용에 한정된 이야기. 진루타 순위가 리그 최상위에 희생플라이가 리그 최하위인 팀을 가지고 계속 희생번트를 하고, 2군 선수를 올리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좌우놀이 등 비판받을만한 요소는 충분하다.[49] 물론 투수운용만 봐도 그 사람보다야 훨씬 미래를 위한 운영임은 확실하다. 다만 이 행보를 과연 리빌딩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중. 그리고 시즌 막바지 인터뷰에서 리빌딩 보다는 성적에 신경을 썼으나,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어쩔 수 없이 신인들을 기용하며 나머지 경기들을 리빌딩 기조의 운영으로 선회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