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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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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즌별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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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2008년 페넌트레이스 월별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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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2008 시즌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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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8 64 0 62 0.508 19.0

1. 개요2. 시즌 전3. 페넌트 레이스4. 3~4월5. 5월6. 6월7. 7월8. 8월9. 9~10월10. 총평
10.1. 투수10.2. 타자
11. 둘러보기 틀

1. 개요

한화 이글스의 2008 시즌을 정리한 문서.

2. 시즌 전

3. 페넌트 레이스

4. 3~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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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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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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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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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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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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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총평

2007년에 활약했던 3할 20홈런의 외야수 제이콥 크루즈와 11승 140이닝을 소화한 세드릭 바워스 대신 외야수 덕 클락선발투수 브래드 토마스를 데려오면서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즌 초 토마스와 클락이 동반 부진하였으며, 신경현, 고동진[1], 한상훈[2] 등 야수진도 김태균을 제외한 나머지는 영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브래드 토마스가 마무리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덕 클락이 전반기에 미친듯이 활약하면서 연쇄효과가 일어나 올림픽 브레이크이전 까지 한화는 두산보다 남은 경기 수가 적은 공동 2위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한화가 2006년의 아쉬움을 잊고 우승할 수 있었을거란 느낌이 팽배했었다.

하지만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한화는 4연패-류현진 1승을 무려 3번 반복하면서 승패마진을 왕창 까먹었고 가을야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화는 최후의 분투를 했지만, 삼성에게 단 1경기차로 밀려서 최종 성적 64승 62패, 5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참고로 그 후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2017년까지 이게 한화의 마지막 5할 시즌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끔찍한 한화의 암흑기의 전주곡이 될 줄은 그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반기만 하더라도 일부 한화팬들을 제외한 나머지 팬들은 4강에 갈거라 확신하였고, 2위에서 5위로 떨어지는 대참사를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한편, 2005~2007년 3년간의 가을야구를 보여준 김인식 감독은 이로 인해 감독자리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큰 위기에 처했다.

사실 2008 시즌은 김인식 감독이 한화시절에 보여준 야구의 장점이 극대화되었다가 단 순간에 단점으로 극대화된 시즌이라 볼 수 있다. 2005~2007년만 하더라도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의 기량이 전성기 시절만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고[3] 유승안감독 시절 키웠던 안영명, 윤규진, 김태균, 이범호의 기량이 절정에 다다렀으며, 류현진의 경우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선수진의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2008 시즌부터 시작된 암흑기의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타선이야 그나마 젊은 편이니 그렇다쳐도, 투수진은 위 셋에 최영필, 김해님, 문동환초고령 투수진[4]이었다. 나중을 대비해 선수들을 적절하게 키웠어야 했지만, 뒤를 이을 젊은 투수를 발굴하기도 전에 살인적인 혹사로 그나마 있던 투수들마저 아작을 내고야 말았다. 쉽게 말해 김해님[5], 문동환[6] 등 전력이탈이 비교적 큰 것에 비해 채운 것이 적었고, 육성의 요람이 되었어야 할 2군은 부상과 부진에 빠진 1군 선수들이 잠시 쉬다 오는 곳으로만 전락해버렸다. 육성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0이 되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가 쌓여버렸다. 그나마 +가 되주었던 이영우,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도 나이를 생각하면 언제 -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며, 이들의 성적도 노쇠화로 인해 점점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마이너스를 채워준건 최영필, 윤규진, 추승우, 마정길, 덕 클락, 김태완이었으나, 이들 중 마정길만 남고 나머지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거나 끝모를 부진에 빠져버렸다. 그동안 버텨왔던 전력들이 과부하가 걸렸을 때 메꿔줄 인력이 부족하여 결과적으로 팀의 성적은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말았다. 이는 어찌보면 있는 전력만 쥐어짜고 육성을 등한시한 팀이 자초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화 팬들, 선수들, 아니 구단은 이보다 더한 시즌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건 당시에는 꿈에도 못꿨을 것이다

여담으로 9월 3일 두산전에서 18회까지 가는 승부 끝에 0:1로 패배했는데, 한화의 가을야구는 2018년이 되어서야 올라갈 수 있었다.

10.1. 투수

선발진으로 보면 류현진, 송진우, 정민철,유원상에 땜빵으로 윤규진, 김혁민, 최영필 등이 들어갔다.

전년도에 불펜에서 활약했던 송진우는 기복이 심했지만 팀내 2선발로써 묵묵히 제 몫을 해주었다. 시즌 말미에는 무너진 팀의 불펜에서 호투를 하는 등 악전고투를 하였다. 07년의 방어율 2위[7], 팀내 다승 2위[8]였던 정민철이 제 몫을 해주길 바랬으나 송진우보다도 더 심한 기복의 피칭을 선보였고 정규이닝은 소화하였으나 평균자책점은 꼴찌였다.(6승 10패 5.23) 전년도 가을야구에서 호투를 보여준 유원상은 드디어 기회를 부여받아 선발로 시작했으나 끝없는 볼질로 한화 팬들의 뒷목을 부여잡게 만들었다. 단, 가을에 불펜으로 보직 이동한 뒤에는 방어율 0.17을 찍으며 이 사람이 정녕 볼질을 했던 그 사람이 맞는가싶을 정도로 잘 던져 가을전어라는 별명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전년도에 무리했던 안영명은 결국 망했어요가 됐고 부상에서 돌아온 최영필, 윤규진이 전반기에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그야말로 팔이 빠지도록 던졌다. 너무 많이 던진 결과 당연히 탈이 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한화의 불펜은 마정길과 선발에서 불펜으로 보직변경한 송진우, 유원상이 맡게 된다. 토마스는 4월에는 부진했지만 이후 날이 따뜻해지면서 상대 타자들을 구겨버리는 피칭을 보여주었고 세이브를 착착 적립시켜 나갔으나, 후반기에는 팀이 부진하여 세이브를 많이 올리지는 못하였다. 마정길은 알다시피 류현진 등판일이 유일한 휴식일일정도로 철저하게 굴려졌다.

10.2. 타자

김태균 혼자서 이끌던 타선이 덕 클락김태완, 추승우의 미칠듯한 버닝에 힘입어 불타오르게 되었다

추승우-한상훈-덕 클락-김태균-이범호-김태완-송광민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다이너마이트처럼 연신 뻥뻥 터뜨려주었다.[9] 하지만 덕 클락이 1루에서 주루를 하다 박정권과 충돌하여 박정권은 시즌 아웃되고 덕 클락 본인도 무릎에 큰 부상을 입은 것이 암흑기의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다. 더군다나 올림픽 브레이크기간동안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않고 선수단을 방치한 결과는 처참했다.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도화선이 되었던 추승우는 체력 및 클래스의 한계로 타율이 점점 내려가고 있었던데다가 클락은 무릎부상의 후유증으로 정확도와 파워가 눈에 띄게 감소하였고 그 결과 전반기에 22홈런을 때렸으나 후반기에는 단 1개의 홈런만 적립했다. 김태완 또한 유사한 양상을 보였으며, 이는 연쇄적으로 이어져 결국엔 다시 김태균 혼자서 이끄는 타선이 되었고 4월 초반이 다시 재림하게 되었다.[10] 2008 시즌 한화는 압도적인 타격으로 박살내는 팀이었는데 타선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지는 자명한 일.

11.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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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상으로 결국 공익[2] 초반 .030의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삼푼이라는 별명 획득[3] 단 정민철의 2005~2006 성적과 2007년도 성적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4] 08시즌 기준으로 송진우 44살, 구대성 40살, 문동환, 정민철 37살로 투수진 나이대가 제법 많았다. 게다가 지금보다 이 시절은 투수 수명이 더 짧았다는 것을 감안하면.....[5] 5선발 및 셋업 소화[6] 05, 06시즌의 에이스[7] 어느 약쟁이의 기록만 아니라면 1위이다.[8] ERA 2.90, 12승, 155이닝[9] 전반기만 해도 클락-김태균-이범호-김태완의 장타율이 심상치 않았고, 이 넷이서 도합 100홈런을 치는 거 아니냐는 무서운 소리까지 나왔었다. 스포츠 2.0 같은 매거진에서도 이 심상찮은 전개를 두고 클린업 쿼드러플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10] 이범호는 그나마 제 몫을 해주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