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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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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2 김창현 · 73 오윤 · 74 문찬종 · 78 홍원기 [[틀:키움 히어로즈 감독|
]]
· 88 이승호 · 89 박도현 · 90 박정음 · # 정찬헌
· # 김준완'''
2군
'''70 김동우 · 71 박준태 · 81 설종진 [[틀:고양 히어로즈 감독|
]] · 82 김태완
· 86 오주원 · # 장영석'''
잔류군
77 이병규 · 83 노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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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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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역대 한 경기 최다 출루 8회 출루

한화 이글스 등번호 46번
이창훈
(2004~2005)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김태완
(2006)
정민혁
(2007)
한화 이글스 등번호 10번
임수민
(2005~2006)
김태완
(2007~2010)
김용호
(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38번
김용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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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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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1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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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2014~2016)
이창열
(2017~2018)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0번
김하성
(2014~2015.4.10.)
김태완
(2017)
임병욱
(2018~2020)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0번
김웅빈
(2017)
김태완
(2018)
신재영
(2019)
질롱 코리아 등번호 10번
이용욱
(2018-19)
김태완
(2019-20)
허관회
(2022-23)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88번
심재학
(2009~2018)
김태완
(2019~2022)
송신영
(2023)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82번
이정호
(2020~2022)
김태완
(2023~)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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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4 키움 프로필_김태완.png
<colbgcolor=#570514><colcolor=#FFFFFF> 키움 히어로즈 No.82
김태완
金泰完 | Kim Taewan
출생 1984년 1월 27일 ([age(1984-01-27)]세)
서울특별시 양천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양목초 - 신월중 - 중앙고 - 성균관대
신체 189cm, 120kg, O형[1]
포지션 1루수, 좌익수, 우익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2년 2차 8라운드 (전체 60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6~2016)
넥센 히어로즈 (2017~2018)
지도자 고양 히어로즈 타격코치 (2019~)
질롱 코리아 코치 (2019/20)
병역 공익근무요원 (2010~2012)
등장곡 Wanna One - 《BOOMERANG (부메랑)
{{{-2 {{{#!folding [ 이전 등장곡 보기 ]
응원가 크라잉 넛 - 《귀신은 뭐하나》[가사] (201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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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키움 히어로즈 심볼.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
4.1. 타격4.2. 수비 및 주루4.3. 그 외
5. 연도별 주요 성적6. 여담
6.1. 만년 트레이드 떡밥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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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화 이글스-넥센 히어로즈 소속의 외야수. 現 고양 히어로즈의 타격 코치이자 전 ABL 질롱 코리아의 코치이다.

2. 선수 경력

김태완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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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김태완(1984)/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아마추어 시절 2010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 ||

3. 지도자 경력

3.1. 키움 히어로즈 시절

방출 이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후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진 모집 소식을 듣고 지원했고 여러 후보와 경합 결과 고양 히어로즈의 타격 코치로 선임됐다. 하지만, 김태완의 코치 선임에 대한 히어로즈 팬덤 여론은 그다지 좋지않다. 자타공인 유능한 코치인 허문회와 뒷방정치하다 내쳐지긴 했으나 실력은 있었던 심재학의 뒤를 이어야 하는 자리에 연수도 안받은 생초짜가 들어갔으니 여론이 좋을 리가 없다. 수석코치급 아닌이상 기천만원에 불가한 코치 연봉이 그리 아깝냐, 포스트시즌 배당금만 털어도 코치 연봉 충분히 나오겠다 같은 의견이 많다.

사실 히어로즈식 코치 선임이 잘 되면 꽤 괜찮은 방식이긴하다. KBO는 아직도 감독들이 자기 인맥으로 코치진을 꾸리는 방식이 대세다. 사단이 없는 감독은 구단에 직간접적으로 요구하거나 없는 인맥 쥐어짜서라도 사단을 만들려 한다. 하지만 1군 감독 목숨이 3년 내외인 KBO에서 이런 방식은 유능한 코치가 감독과 함께 구조조정 당하거나, 정치인 가신단처럼 감독 따라서 나가버리는 부작용을 야기했다.

반면 히어로즈는 장정석 감독부터가 지도자 생활을 히어로즈 감독으로 시작해 자기 사단이 없고,[4] 코치들도 커넥션 있던 사람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아웃사이더들로 채워 넣고 있기 때문에 잘 하기만 한다면 박흥식 빼간 김시진, 손혁·김성갑·최상덕·정수성 싸그리 털어간 염경엽 같은 사례를 보지 않아도 된다. '어디까지나 잘 한다면.' 필리핀에서 관광가이드하다 선임 2년차에 넥센 주루를 일취월장시킨 조재영 코치처럼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소통을 해서 발전한다면 참 이상적이지만 못하면 허수아비, 공무원, 월급도둑들로 코치진이 가득차고 선수들이 사비털어 개인 코칭 받거나 유튜브를 뒤지게 된다.

김태완은 현역 시절 연구 많이하고 꼼꼼하게 기록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하지만 말년에 보여준 모습은 치밀한 분석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선수와 코치는 완전히 다른 위치인만큼 색안경만 끼고 바라볼 순 없겠지만 팬들의 우려가 마냥 근거없는 것이 아닌 만큼 정말 잘 해야 한다.

이런 우려의 평가처럼 2군에서 2군 타자들의 타격폼을 모두 본인의 현역시절처럼 괴상하게 바꾸는 기행을 선보이는 중이다. 2군에 좀 오래 있었다 싶은 어린 우타자들이 대부분 김태완의 현역시절 폼과 유사하게 배트는 세우면서 스탠스는 닫고 손목으로 치는 타격을 구사하고 있어 1군 라인업에 쓸만한 우타자가 전무해져 팬덤의 비판이 많다.

특히 2024시즌 종료 후 교육리그에서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그동안 2군 코치로만 활동했기 때문에 전현직 1군 타격코치 강병식오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받지 않았었던 비난을 한 번에 받게되었다.

교육리그 내내 우타 유망주들인 이승원박채울, 서유신 등 모두가 차별점없이 유사한 김태완식 타격법이 적용된 모습으로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승원의 경우 링크에서 볼 수 있듯 김태완 코치의 스윙이 매우 강하게 묻어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나마 시즌 후반 조정을 해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매번 나오는 흔하디 흔한 성적 나쁨=코치탓이라는 한국 야구팬들의 병폐에 가까운 아우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문제일 수도 있다. 히어로즈 구단은 과거부터 선수의 폼을 수정하는 것에 있어 신중히 임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원칙과 다르게 김태완 같이 현역 시절 독특한 타격폼을 가지고 있던 코치가 선수들의 타격폼을 자신의 것으로 대거 획일화시킨다면 이는 코치로서의 자격 미달일 수 있다.

키움 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이형종, 이원석이 은퇴하고 김태완 대신 2군 타격코치 하는게 더욱 나을 거 같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4.1. 타격

파일:external/www.mbcsportsplus.com/20161209180825_fqdiuhdh.jpg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에서 부쩍 찾아보기 힘들어진 오른손 빅뱃. 선천적인 재능을 어느 정도 요구하는 선구안도 잘 갖추고 있고, 팔다리가 길어 웬만큼 빠지는 공도 걷어올려 버린다. 야구 센스도 좋아서 본격적으로 1군에서 뛴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바로 자신만의 존과 스윙을 가져갔고, 갓 데뷔한 신인들을 가장 고생시키는 변화구 공략도 비교적 수월하게 해냈다. 타격 시 중심을 낮게 가져가면서 하체 힘을 최대한 이용하는데, 이것이 타고난 파워와 합쳐져 막강한 장타력을 보장한다. 빠르지 않은 배트 스피드를 신체조건과 특유의 분석으로 극복하는 타입인데,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슬라이더와 커브를 실밥을 보고 구별한다.고 한다. 비슷한 유형의 선수로 이진영이 있다.

다만 스윙이 퍼져나가는 경향이 있어 그간 속구에 약점을 보였는데[5] 장종훈 코치의 지도 아래 스윙폭을 꾸준히 줄이면서 점차 완전체로 거듭났다.

또한 선생님을 지망했던 선수답게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한 뒤에 경기에 나오며, 중학교 당시부터 상대 선수들에 대한 분석을 한 노트를 만들기 시작해서 이제는 몇 권씩 쌓여있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전력분석원과 항상 대화를 나누고 데이터를 얻어가면서 준비한다고 한다. 그 덕에 상대 투수가 공을 많이 던지도록 괴롭히는 타자가 되었다.

타격폼의 영향으로 빠른 공에 굉장히 약하다. 이 때문에 김응용 감독 시절부터 자신에게 맞는 타격폼을 계속 연구했지만 성적이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2016년 본인의 타격폼으로 돌아왔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만루상황에서 엄청 약하다. 만루에서의 통산 타율이 1할도 채 안되며. 2010년 시즌에는 수많은 만루 기회에서 안타를 하나도 못 쳤다. 다른 건 몰라도 만루 상황 같은 득점 찬스에서 지독하게 못 치는 점을 극복해야 차기 클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넥센 이적 이후에는 부진하다가도 한화 이글스만 만나면 갑자기 전성기급으로 잘 하고 있다. 덕분에 벤치나 2군에 처박아두다가도 한화전만 되면 바로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중.

4.2. 수비 및 주루

월등한 타격 능력에 비해 수비 능력은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 주로 지명타자나 1루수, 우익수로 출장하고 있으며, 고교나 대학재학 당시에는 1루수 혹은 3루수로 활동했었다. 특히 뻣뻣한 몸 때문인지 강습 타구와 플라이볼 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 김태균과 가장 대조되는 모습인데, 프로에 들어와서 1루-우익-지명을 왔다갔다한 후유증이 크다. 최진행의 수비와 같이 충분한 경험만이 대책.[6]

유리몸 이미지에 돌글러블라고 조롱당하며 느리다는 편견이 있지만 절대 느린 선수가 아니다. 2018년 캠프에서 7대7 이어달리기에서 준족 소리를 듣는 넥센 야수들 사이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했다.[7] 임병욱하고도 차이가 거의 안 날 정도.

그러나 주루 센스가 매우 부족하다. 주루센스만 따지면 김태균과 대등한 정도다. 20-20 드립을 펼치긴 했지만 20도루실패를 기록할 뻔했다.

4.3. 그 외

5. 연도별 주요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김태완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06 한화 4 4 .500 2 0 0 0 0 3 0 0 1 .500 .500 206.6
2007 64 94 .245 23 5 0 4 11 12 0 11 22 .324 .426 111.9
2008 124 383 .266 102 16 0 23
(3위)
44 73 0 61 78 .362 .488 133.3
2009 112 360 .289 104 17 2 23 62 68 1 83
(5위)
89 .419 .539 146.1
2010 116 370 .265 98 13 0 15 62 62 7 99
(1위)
99 .418
(4위)
.422 132.2
2011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12
2013 93 279 .229 64 13 0 3 24 23 1 40 78 .324 .308 76.4
2014 89 186 .258 48 8 0 7 26 39 0 27 51 .351 .414 88.2
2015 22 46 .239 11 2 0 0 5 3 0 4 16 .300 .283 49.6
2016 24 20 .350 7 1 1 0 3 0 0 4 8 .458 .500 152.9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17 넥센 46 90 .311 28 5 0 4 14 7 0 10 24 .380 .500 128.3
2018 29 74 .197 13 2 0 1 5 5 0 7 25 .273 .270 32.6
<rowcolor=#373A3C> KBO 통산
(11시즌)
720 1898 .263 500 82 3 80 256 295 9 346 491 .336 .375 114.5

6. 여담

6.1. 만년 트레이드 떡밥

2000년대 말에서 10년대 초반 한화의 유일무이한 유망주였으나, 꼬인 군번 + 포지션 문제 + 그럼에도 탐나는 타격 재능의 요소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트레이드 떡밥 케이스로서 한화 시절 지겹도록 트레이드 떡밥이 나왔던 선수였다.

유명한 일화는 당시 SK 와이번스 감독인 김성근이 김태완을 계속해서 탐내면서 트레이드를 요청한 것. 카더라에 따르면 김태완 ↔ 박재상 + 송은범이었다고. 당연히 2008 시즌에 홈런 3위로 승승장구할 때라 한화는 거절.[10]

사실 프로 초창기에는 한화가 김태완을 붙들어 둘 이유가 있었는데, 그 까닭은 김태균이 FA를 코 앞에 두고 있었고, FA가 되면 해외로 진출할 것이 거의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 김태균이 있는 동안에는 김태완을 지명타자로 쓰다가, 김태균이 떠나면 김태완에게 1루를 맡긴다는, 한화로서는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그러나 김태균이 단 두 시즌만에 한화로 복귀해버리고 김태완이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승선하지 못하게 되면서 모든 계획이 꼬이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자 한화가 김태완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는데 그것은 바로 포지션 문제 때문. 김태완의 수비력은 그야말로 눈이 썩을 수준으로 1루수 내지 지명타자가 아닌 다른 포지션은 소화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한화의 1루는 다들 알다시피 김태균이 차지하고 있고 김태균은 선수생활 내내 전업 수비수로 뛰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던터라 김태균을 지명타자로 돌리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김태완을 전업 지명타자로 돌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는데... 문제는 한화에는 수비가 안 되는 나이많은 우타자들이 너무 많았다. 2013년에는 최진행이, 2014년에는 이용규가 부상으로 지명타자만 소화가 가능하게 되는 등 지명타자 자리가 당체 비지 않으면서, 김태완은 그나마 가능한 지명타자 자리마저 뺏겨버리게 된다.

결국 김태완의 타격 자질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남는 자리가 아예 없어 선발 출장이 불가능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 무렵 우타거포가 모자랐던 다른 팀들, 아니 다른 팀 팬들은 김태완을 매우 탐내게 되었다.

그로 인해 2010년대 초중반 당시 각종 야구 게시판에서 김태완 트레이드 가능성을 논하는 일이 그야말로 밥 먹듯이 일어났었다. 물론 한화 팬들은 입에 거품을 물며 욕을 했지만, 잊혀질 만하면 또 누군가가 들고 나오고, 잊혀질 만하면 또 나오고, 그야말로 엔들리스 에이트 수준이었다. 한화 사정이야 워낙 뻔하기 때문에, 대부분 거론되었던 김태완의 트레이드 맞상대는 투수. 물론 한화 팬 중에서도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김태완을 팔아 투수를 데려와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제법 존재했었다. 하지만 상대팀 팬이 김태완의 트레이드 맞상대로 걸맞다는 투수의 실명을 거론하는 순간, 토론과 논쟁은 순간 사라지고 오직 남게 되었던 건 키배 뿐. 왜냐면 김태완의 실질적인 트레이드 가치는 한화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낮았기 때문. 이미지와 달리 김태완은 어느덧 유망주라 보기에는 다소 민망한 나이가 되어 있었다. 대졸 출신인데다가 공익 근무까지 마쳤기 때문에 그가 소집해제 후 복귀했을 때 나이가 한국나이로 서른이었던 것.

사실 팬들뿐만 아니라 구단 입장에서도 사실상 활용할 수 있는 트레이드 카드는 김태완이 유일무이한 상황이었는데, 남들이 보기에 그 가치가 그렇게 높지는 않더라...의 상황이었으니 이렇게 된 거 김태완을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한화 구단은 게시판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트레이드는커녕 김태완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는데 그것이 바로 포지션 전향. 김태완이 소집해제 이후 복귀한 2013년에는 본격적으로 외야수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 좋은 의미로 역대급 수비를 보여주며 대실패했고, 수비에 대한 정신적인 부담과 많아진 나이 탓에 부상까지 겹치며 타격까지 폭망. 돌이켜보면 사실상 이 시즌, 즉 괜스레 김태완의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가 대실패한 2013 시즌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김태완을 트레이드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으나 결국 당시 구단과 코치진의 괜한 미련으로 허무하게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 되었다.

그러다 2014, 15, 16 시즌 3년 동안 잊혀진 사림이 되는데, 이 기간 동안 감독이 된 김성근의 코칭에 대한 불만과 부상이 겹치며 성적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 결국 제대로 타석에 서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운동선수로서 전성기 마지막 무렵인 30대 초반 3년을 허무하게 날리며 트레이드 가치는 제로가 되어버렸다.

마침내 참다못한 김태완이 구단에 직접 방출을 요구하여 2016년 시즌 뒤 웨이버공시되었다. 어쨌건 애증이 뒤엉킨 한화를 떠나게 되어 17, 18시즌을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게 되었고 그 오랜 동안의 김태완 트레이드 떡밥 논의도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김태완의 나이는 만 33세로 실패한 유망주가 되어 있었고, 결국 특별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넥센 시절을 끝으로 은퇴하게 된다.

7. 관련 문서


[1] 네이버 프로필 기준[2] 한화 시절에는 김태균과 포지션이 겹쳐서 설 자리가 마땅치 않자, 결국 김응용 감독의 지시로 우익수로 뛰었다. 하지만 우익수로서의 수비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는데, 평범한 플라이 아웃을 3루타로 만들어주는 수준으로 1루수가 주 포지션임을 반증했다. 넥센으로 팀을 옮긴 이후에는 지명타자, 1루수로 자주 출장했고, 넥센 입장에서는 박병호의 역할을 대신 수행해줄 우타거포 1루수로 평가했지만 2018시즌에 박병호가 복귀하며 실제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가사] 넥~센의 김태완 안타를 친다 김! 태! 완! 넥~센의 김태완 홈런을 친다 김! 태! 완! 넥~! 센! 김! 태! 완![4] 히어로즈의 구조 덕분이다. 감독들이 필사적으로 자기 사단 꾸리는건 모기업 입김이 들어간 프런트, 지역주의와 밀착해 박혀 있는 고인물들과 사내 정치를 해야하기 때문인데 히어로즈는 모기업도 없고, 고인물 될 만한 고참들은 창단 직후부터 전부 팔았다.[5] 이건 김태완의 잘못이라기보단 당시 타격코치 우경하의 무능. 훈련은 나 몰라라 하면서 가끔 술 심부름까지 시켰다고.[6] 그런데 이를 너무 나무랄 수가 없는 것이 고교시절 김태완의 원 포지션은 3루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키가 커지는 바람에 유연성이 떨어져 3루수에서 1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루수로 포지션을 옮겨도 뻣뻣한 몸은 어찌할 수 없었다고.[7] 서건창, 김혜성보다 빠르다...[8] LG 트윈스 시절 박병호, 정의윤이나 김진욱 감독 부재 시 노경은이 이런 유형. 굉장히 예민하고 흔들리기 쉬워 편한 환경과 마음을 가다듬어줄 사람이 있으면 실력 이상을 뽑아내지만 아닐 경우에는 심적 부담을 못 이기고 무너졌다.[9] 당연히 본인이 때려부신 건 아니고 외야에서 찍고 있던 카메라에 홈런볼이 직격한 것.[10] 하지만 이듬해인 2009년 당시 트레이드 상대로 점쳐졌던 박재상은 0.295, 15홈런, 81타점, 33도루로 리그 최고의 2번 타자로 활약했고, 송은범 역시 12승을 찍으며 SK의 토종 우완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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