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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2009 시즌 성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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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8 | 46 | 3 | 84 | 0.346 | 35.0 |
1. 개요
한화 이글스의 2009 시즌을 정리한 문서.2. 페넌트레이스
3. 4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09년/4월 문서 참고하십시오.4. 5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09년/5월 문서 참고하십시오.5. 6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09년/6월 문서 참고하십시오.6. 7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09년/7월 문서 참고하십시오.7. 8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09년/8월 문서 참고하십시오.8. 9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09년/9월 문서 참고하십시오.9. 총평
2009년의 한화의 감독인 김인식감독[1]이 WBC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WBC의 주축선수였던 김태균과 이범호, 류현진 또한 훌륭한 성적을 내고 돌아왔기에 많은 이들은 한화가 좋은 성적을 내줄 것을 기대했다. 리그 개막전도 SK에게 승리하면서 시작[2]한 만큼, 한화 팬들은 기분좋은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김태균이 주루 도중 포수와의 충돌로 인해 뇌진탕 증세를 보여 팀에서 이탈하면서 한화는 추락하기 시작한다. 4~6위를 왔다갔다했던 성적이 주전 타자들인 이범호와 김태완의 부상[3]까지 겹치면서 8위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8위까지 떨어져도 부진에서 금방 헤쳐나오면 다행이었으나 불안했던 선발진들이 노장들의 부진과 유원상과 김혁민의 늦은 성장까지 겹쳐 대 붕괴되었다. 그 여파로 중간계투진들의 피로 누적으로 인해 중간계투진까지 부진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구단이 택한 길은 노장 정리였다. 7월 8일부로 부활이 어렵다고 보여진 베테랑 최상덕, 윤재국, 빅토르 디아스를 방출시켰고, 정민철은 플레잉 코치 발령을 거쳐 그 해 9월에 은퇴했다. 게다가 1달만에 송진우도 1군 콜업이 100일 째에 이어지지 않자 스스로 은퇴했다.
그 이후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라는 말처럼 끝없는 추락을 해버리며 7위인 LG 트윈스와 압도적인 승차로 벌어지며 빙그레-한화 전체에서 2번째 꼴찌를 해버렸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김인식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발표했고, 결국 구단에서 재계약이 아닌 계약만료를 발표하며 새 감독을 찾게 되며 사실상 감독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즌이 끝난 후 4번과 5번을 치고 있던 김태균과 이범호는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마무리로 좋은 성적을 내줬던 브래드 토마스도 한신 타이거즈에서 입질중이라는 기사가 나오다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행,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 이적하였다.
이대로라면 롯데가 찍은 비밀번호를 한화가 찍어서 흑역사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한화의 2009년 최하위가 단순한 최하위가 아닌 심각한 문제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 때문에 3년동안 한화를 포스트시즌에 올리고 준우승까지 하게 한 김인식 감독이 그 업적을 말아먹고 대차게 까였다. [5] 팀의 미래를 포기하다시피하고 타 팀에서 방출된 노장들을 위주로 한 근시안적인 팀 운영 때문에 레전드들은 노쇠하여 죄다 은퇴했고, 반면 유망주들은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썩히다 줄창 뒤늦게 군대로 보내게 되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한화의 팀 운영에 대한 부작용이 쌓이다 한꺼번에 폭발한 해라서 2009년 한화의 최하위는 상당히 문제였다.
덕분에 여기서 한대화 감독이 말한 대사가 실현이 되어버렸다.
"이게 리빌딩이냐? 재창단이지!"
종합적으로 볼 때 한화 이글스의 2010 시즌은 암울해 보인다. 그나마 주축 3인방을 팔아먹은 넥센 히어로즈, 그리고 돈 질러도 안되는 L모 구단이랑 한 번 해볼만은 하지 않을까라고 한화 팬들은 스스로 자위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구단은 2010 시즌 개막을 앞두고 포스트시즌 입장권 구매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개드립을 쳐서 빈축을 샀다.
이 시즌은 이글스 역사상 최악의 시즌 중 하나로 1986시즌, 2016시즌, 2020시즌 등과 함께 반드시 꼽히며, 사실상 암흑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즌이기도 하다. 2009년 이후로 통산 승패마진이 마이너스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팀 타선은 평균 이상이었던 적이 단 한 해도 없으며, 투수진도 플루크가 터진 2018년을 제외하면 거의 매 시즌 최하위급 성적을 찍었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때에도 한화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던 토종 외야진은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빈약한 충청 팜과 신생팀 창단 여파가 있었고 가장 중요한 유창식조차도 쫄딱 망한 것은 불운으로 볼 수 있지만, 한화 프런트는 제대로 된 전력 보강은 커녕 있던 전력도 어이없이 타 팀에 빼앗기는 등 실책만을 거듭했기에 일말의 동정 여론조차도 없다.
10.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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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례대로라면 우승팀 감독인 김성근이 가는 것이 맞지만 김성근 측에서 완고하게 거부하면서 김인식이 가게 되었다.[2] 2020년 개막전에서 서폴드와 완봉승으로 문학에서 또 SK를 상대로 승리하기 전까지 개막전에서 10년간 9연패를 기록했다.[3] 김태완은 결국 이 때의 손목부상으로 2010년에도 더 나은 성적을 내는데 실패하고 만다.[4] 안영명, 유원상, 김혁민, 김태완, 양훈 등등.[5] WBC 공백 변명도 못하는게, 똑같이 김인식이 WBC 감독을 맡았던 2006년은 준우승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