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000000> | kt wiz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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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김태균 · 71 이강철 [[틀:kt wiz 감독| ★ ]] · 72 김강 · 75 장재중 · 76 박기혁 · 78 김호 · 81 유한준 · 82 제춘모 · 84 최만호 · 87 전병두 · # 이종범 · # 박경수''' | |
2군 | |
'''74 홍성용 · 77 김태한 [[틀:kt wiz 2군 감독| ★ ]] · 79 이준수 · 80 박정환· 86 김연훈''' | |
육성·재활군 | |
85 이성열 · 88 곽정철 · 89 백진우 · 91 배우열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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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전병두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2010 |
두산 베어스 등번호 28번 | ||||
장성진 (1998~2002) | → | 전병두 (2003~2005. 7. 9.) | → | 조현근 (2006~2006. 7. 11.)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8번 | ||||
이원식 (1999~2004) | → | 전병두 (2005. 7. 10.~2008. 5. 4.) | → | 채종범 (2008. 5. 5.~2008) |
SK 와이번스 등번호 33번 | ||||
채종범 (2000~2008. 5. 4.) | → | <colbgcolor=#ff6600><colcolor=#fff> 전병두 (2008. 5. 5.~2008) | → | 안경현 (2009~2010) |
SK 와이번스 등번호 28번 | ||||
강승훈 (2008) | → | 전병두 (2009~2016) | → | 김성민 (2017~2017.5.17.) |
SK 와이번스 / SSG 랜더스 등번호 90번 | ||||
박민호 (2018) | → | 전병두 (2019~2021) | → | 세리자와 (2022) |
kt wiz 등번호 87번 | ||||
박승민 (2019~2022) | → | 전병두 (2023~) | → | 현역 |
A대표팀 참가 경력 |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kt wiz No.87 | |
전병두 全炳斗 | Jun Byeong-Doo | |
출생 | 1984년 10월 14일 ([age(1984-10-14)]세) |
부산광역시 | |
거주지 | 경기도 수원시 |
본관 | 천안 전씨 (天安 全氏)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중앙초등학교 (졸업) 부산중학교 (졸업) 부산고등학교 (졸업)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2003년 2차 1라운드 (전체 8번, 두산) |
소속팀 | 두산 베어스 (2003~2005) KIA 타이거즈 (2005~2008) SK 와이번스 (2008~2016) |
지도자 | SK 와이번스 루키팀 재활코치 (2019~2020) SSG 랜더스 루키팀 투수코치 (2021) kt wiz 2군 투수코치 (2023) kt wiz 1군 불펜코치 (2024~) |
프런트 | SK 와이번스 전력분석원 (2017~2018) SSG 랜더스 원정 전력분석원 (2022) |
병역 | 예술체육요원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등장곡 | AC/DC - 〈Hells Bells〉[1] 이한철 - 〈슈퍼스타〉[2] |
종교 |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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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병두는 인성이 최고였다. 자기 관리를 비롯해 존경받을 만한 선수다.
전병두의 재활을 도왔던 원장이 말한 전병두에 대한 생각 해당 기사
前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소속의 좌완 투수. 現 kt wiz/1군불펜코치.전병두의 재활을 도왔던 원장이 말한 전병두에 대한 생각 해당 기사
현역 시절 등번호는 28번[3]. SSG 팬덤에서는 이 등번호를 응용해 'RE28ECT'라고 부르는데, '경의, 존경, 존중'을 뜻하는 영어 단어 Respect 중 sp를 모양이 비슷한 28로 대체해서 넣은 것. 전병두의 은퇴를 앞두고 그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하기 위해 썼던 표현이다.[4]
2. 선수 경력
전병두의 선수 경력 | ||||
통합 선수 경력 : 전병두/선수 경력 | ||||
두산 시절 | KIA 시절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2014년 | 2015년 | 2016년 | ||
아마추어 시절 |
3. 프런트 경력
트레이 힐만 감독 체제로 출발하는 팀에서 전력분석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돌아온 마춘텔에서 등장했다. #2018년 10월 6일 사직 야구장에서 있었던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전력분석에 한창인 모습이 포착됐다.[5] 은퇴 후에도 여전히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듯.
2021 시즌 후 원정 전력분석원으로 다시 보직이 바뀌었다.
4. 지도자 경력
2021년부터는 루키군 투수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2022 시즌 종료 이후 kt wiz 2군 투수 코치로 이적했다.
2024 시즌부터는 승격되어 1군 불펜 코치로 활동중이다.
5. 피칭 스타일
주무기는 역시 묵직한 패스트볼. 최고 150km의 선발 등판시 평균 140km 초중반, 불펜 등판시 평균 140km 중후반에서 형성되는 묵직한 패스트볼을 자랑했으며, 변화구 중에서도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썼다. 110km 중반 정도에서 형성되는 낙차 큰 커브도 구사했다. 또한 구속 차이가 상당히 나는 체인지업도 구사했으며[6] 서클 체인지업도 구사했다.
6. 혹사
김성근이 혹사를 인정한 몇 되지 않는 투수이다. 그러나 팬들은 여전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폐급에 부상을 안고 있던 3류 투수가 김성근의 관리와 지도 하에 에이스급으로 떠올랐으며 부상은 전적으로 KIA 타이거즈에서부터 서정환 감독이 혹사시키고 관리를 못해줬기에 생겼다는 것이라 주장한다.[7] 팬들은 김성근이 경질당한 후 감독 대행을 맡았던 이만수가 시즌 막판 전병두를 당겨썼기 때문에 커리어가 망가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김성근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네이버 스포츠와 같은 포털 사이트에 전병두의 기사가 올라오면 이런 주장을 하는 댓글들이 줄곧 달렸다. 김성근이 한화 이글스에서 경질당하면서 KBO 리그를 사실상 떠난 이후에도 간간히 페이스북 야구 관련 페이지에서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는 지지자들이 종종 등판한다.김성근의 지지가 두터웠던 SK 와이번스 팬들 사이에서도 전병두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점점 김성근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다. 혹사의 결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SK 왕조를 이끌었던 투수들 중에 아직 건재한 선수들도 있었기 때문에 한화 부임 직후까지는 혹사 논란이 크지는 않았고 그저 안티들의 주장이라고 치부하곤 했다. 하지만 전병두 한 명의 재활 과정을 보면서 김성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은퇴 경기에서도 팔이 전혀 올라가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이후 김성근은 한화에서 같은 짓을 반복한다.
부상 경력이 있던 선수를 보직 파괴 후 혹사시켜 선수 생명에 치명타를 입힌 정황이 너무 명확해서 김성근의 열혈 지지자들도 어지간한 중증 아니면 쉴드를 안 쳐줬었다. 그러나 김성근이 SK를 거쳐 고양 원더스에서 지속적으로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시간이 흘러 잊혀지면서, 나무위키의 이 항목에서조차 혹사 피해자란 언급이 지워졌다 복구되기를 반복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지자들은 유망주 시절의 전병두가 가망도 능력도 의지도 없고 부상을 달고 살아 은퇴 직전인 폐급 투수였는데 야신 김성근 덕분에 몇 년 빛났을 뿐인 투수라는, 당시 창창한 나이였던 전병두를 가지고 록키 찍는 소리를 지껄였다...라는 것이 김성근 까들의 주장이지만 이러한 주장 또한 지지자들의 억지와 마찬가지로 실상과는 조금 다르다.
적어도 트레이드 시점에서 KIA는 전병두를 포텐을 터트릴 가망이 없는 유망주로 봤던 것이 맞다. 전병두의 사례로 본 유망주의 트레이드 가치라는 기사를 보면, 이미 전병두를 '제대로 된 백업 포수자원도 받아오기 힘든,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유망주 카드'로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KBO 리그에서 평자책 4점대의 군필 좌완 파이어볼러면 어느 팀이든 시즌 구상시 차기 2~3선발 후보이며,[8] 안그래도 투수가 부족한 KBO리그에서 이 정도 선수를 트레이드 카드로 쓸 경우 상대팀의 톱타자라든가 상위픽 유망주+@ 패키지 등등 시쳇말로 '기둥뿌리를 뽑아서 받아올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다. 그럼에도 KIA가 전병두를 트레이드하는 대가로 백업선수를 사오는데 그친걸 보면 이미 KIA의 프런트는 기대를 접었다고 보는게 맞다. 정말 KIA가 전병두를 4점대의 군면제를 받은 어린 좌완 파이어볼러로 봤다면 채종범, 이성우 등 나이많은 1.5군이 아니라, 당시 재능이 만개하지 않은 김강민 같은 선수들도 충분히 받아올 수 있었던 수준이며, 당시 포수자원이 넉넉했던 SK[9]에게 이성우가 아니라 정상호, 이재원 둘 중 하나를 받아왔어도 이상하지 않을 카드다. 즉 장사 당시 KIA 프런트의 전병두에 대한 평가는 기대치가 바닥으로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빨리 팔아야하는 유망주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봐야 옳다.[10]
또한 트레이드 직전 전병두의 성적은 2006년 선발 15번 등판에 5승 8패 4.25, 2007년 제구력 난조로 선발진에서 밀려 불펜으로 옮겨간 뒤 총 9경기 등판 이후 팔꿈치 부상으로 5월을 넘기지 못하고 2군행, 2008년은 4경기 1승 3패에 트레이드 직전 3경기에서 총 6이닝에 8개의 볼넷을 주고 4월말 2군으로 내려간 상황이어서 KIA의 전병두에 대한 기대치가 바닥을 찍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김성근 만나기 전의 전병두에 대해서는 사실 지지자들과 까들이 전부 자기들 좋은 쪽으로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김성근 이전의 전병두가 어떤 선수였냐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전술된 여러가지 정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시피 "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폐급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느팀 1군에서도 확실하게 주전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선수 또한 아니었다."로 대답해야 맞다. 쉽게 말해서, 유망주에서 슬슬 노망주로 넘어가고 있는 단계였다고 보면 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할 정세영의 뭐니볼 TV에 출연했을때 전병두 본인이 직접 "(김성근 감독이) 저한테는 이러한(=확고한 1군 주전) 자리를 잡게끔 만들어주신 분이고"라고 언급한 바 있다. 상술했듯 좋은 유망주였지만 포텐셜을 완벽히 폭발시키지는 못하고 있던 당시 전병두를 지도하여 전병두의 재능을 만개시킨 것은 김성근이 맞다.
위 서술에서 기아가 전병두를 팔아서 고작 이성우, 채종범 같은 백업 포수, 외야수를 받아왔으니 전병두는 당시 터질 기미가 안 보이는 노망주로 전락하고 있었다는 서술을 해놨는데, SK로 트레이드되기 직전 시점의 전병두는 KIA가 무려 다니엘 리오스를 팔아가며 데려온 선수였고 그 기대치에 온전히 걸맞은 활약은 아니지만 그래도 KIA에 입단하자마자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150km/h의 강속구를 뿌리며 근 3년간 4점대 초반 정도 성적을 기록하고 이 와중에 병역특례까지 따낸, 부상이 발목을 잡을 뿐 포텐은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있던 24세 투수였다. 당시만 해도 고졸 픽이 대세긴 했지만 지금처럼 대졸 픽이 뽑을 선수가 정말 없을 때 그나마 뽑아가는 즉전 픽 취급받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24세는 더더욱 어린 나이였다. 이런 투수를 시즌 초 부진+부상 경력만 보고 고작 백업 포수를 얻겠다고 버린 당시 KIA가 어이없었던 거지, KIA가 그렇게 버렸다는 이유로 당시 전병두가 폐급 노망주, 혹은 그렇게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었다고 보는 건 틀린 소리다.
부상 이후 꾸준히 복귀 소식이 들려왔었다. 팬들은 비시즌마다 그의 재활 소식을 기다려왔으며, 2016년에는 2군 캠프도 참가하면서 옛 기량을 찾지는 못해도 1군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팬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복귀는 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었고, 대신 은퇴 경기를 치러서 한 타자를 아웃시키고 내려가는 걸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길었던 재활 끝에 공식적으로는 1군 복귀를 하고 은퇴하게 된 셈.
같이 혹사당한 투수들로 채병용, 고효준, 정우람 등이 있는데, 채병용은 강병철-조범현 감독 시절에도 혹사를 당했고 정우람은 역대급 유연성에 커리어 중간중간 안식년이 있어(2007, 2009) 부상이 없었고, 고효준은 수술대에 오르긴 했으나 전병두만큼 치명적이진 않아 군복무 후 복귀했기에 부각이 덜 된다.
그럼에도 전병두는 김성근을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꼽았다.
사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는 전병두가 여러 해 간 김성근 아래에서 90이닝을 던지는 등 과부하가 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누가 봐도 몸과 어깨를 완전히 꺾어 던지는 듯 한 투구폼은 이를테면 부상이 적은 양현종 같은 투수의 물 흐르듯 하는 투구폼와 비교하면 부상당하기 쉽고 과격한 측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타고난 신체적 내구성 역시 넉넉한 투수와는 거리가 있었다. 현재도 구창모나 이의리 등의 좌완 투수들이 재활을 오가며 많이 던지지 못하고 있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3 | 두산 | 6 | 2 | 0 | 0 | 0 | 0 | - | 0.00 | 2 | 0 | 1 | 0 | 0 | 0 | 1.50 |
2004 | 35 | 81⅔ | 0 | 4 | 0 | 1 | 0.000 | 5.51 | 86 | 11 | 59 | 50 | 56 | 50 | 1.71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5 | KIA | 49 | 57 | 3 | 2 | 5 | 2 | 0.600 | 3.00 | 37 | 5 | 39 | 55 | 20 | 19 | 1.28 |
2006 | 44 | 101⅓ | 5 | 8 | 0 | 1 | 0.385 | 4.35 | 89 | 8 | 60 | 94 | 51 | 49 | 1.42 | |
2007 | 9 | 28 | 3 | 2 | 0 | 0 | 0.600 | 4.18 | 23 | 3 | 16 | 9 | 15 | 13 | 1.32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8 | KIA / SK | 10 | 33 | 2 | 4 | 0 | 0 | 0.333 | 4.64 | 27 | 4 | 26 | 29 | 21 | 17 | 1.58 |
2009 | SK | 49 | 133⅓ | 8 | 4 | 8 | 1 | 0.667 | 3.11 (2위) | 114 | 13 | 50 | 136 (5위) | 50 | 46 | 1.22 (3위) |
2010 | 27 | 67⅔ | 5 | 2 | 0 | 1 | 0.714 | 3.06 | 55 | 2 | 28 | 52 | 27 | 23 | 1.20 | |
2011 | 51 | 92⅓ | 3 | 3 | 3 | 8 | 0.500 | 3.80 | 67 | 8 | 67 | 87 | 44 | 39 | 1.33 | |
2012 | 1군 기록 없음 | |||||||||||||||
2013 | ||||||||||||||||
2014 | ||||||||||||||||
2015 | ||||||||||||||||
2016 | 1 | ⅓ | 0 | 0 | 0 | 0 | - | 0.00 | 0 | 0 | 0 | 0 | 0 | 0 | 0.00 | |
KBO 통산 (10시즌) | 281 | 596⅔ | 29 | 29 | 16 | 14 | 0.500 | 3.86 | 500 | 54 | 346 | 512 | 284 | 256 | 1.37 |
8. 여담
- 별명은 핵탄두, 뱅두, 카스왕.[11]
- 성격이 순하고 상당히 소심하여,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 할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조심조심 얘기하는 모습을 보여줘 팬들 사이에서는 최정과 함께[12] 인터뷰에 부적당한 선수로 자주 지목됐다. 전병두 본인도 소심한 성격을 고치고 싶었는지 '나쁜 남자'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지만 행동은 정반대인 데다가, 인터뷰 시 항상 모범답안적인 답안[13]을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인터뷰할 때 조그만 소리로 조심조심 얘기해서 그렇지, 말주변은 생각보다 좋았다.[14] 이후 와이번스 유튜브에 가끔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전력분석원이 된 이후로도 여전히 말을 못한다. 심지어 카메라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카메라 울렁증도 심한 편.
- 다만 노경은의 말에 의하면 의외로 오기가 있는 성격인듯 하다. 크게 부진한 날에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할 때 자신은 밥 먹을 자격이 없다고 밥을 안 먹었다고 한다.
- 어찌된 일인지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두 자리 수 승수, 두 자리 수 세이브, 두 자리 수 홀드 중 하나라도 기록한 해가 단 한 차례도 없다. 두산-KIA 시절에는 본인이 완성이 안 된 반면, SK 이적 후에는 전천후로 투입되었기 때문에 그런 지도 모를 일.
- 꽤 잘생긴 외모로 얼빠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도 "전병두는 왜 인기가 있지?" 라고 물었을 정도. 순하게 생긴 외모, 어눌한 행동과 말투로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타입이라고. 팀 동료인 나주환은 "저것이 다 설정이다."라고 드립을 쳤지만 얼빠들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듯했다.[15]
- 은퇴 당시 페이스북에 수원북중 3학년 선수 2명(2019년 당시 강릉고 3학년인 오세현과 홍종표)이 조롱성 댓글을 달았던 사실이 2018년 10월에 뒤늦게 알려졌다. SK 팬덤, 특히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두고 보자는 반응이 대다수. 그 중 홍종표가 2019년 3월 24일 문학구장에서 있었던 SK야구 꿈나무 장학금 전달 행사에서 고교부 우수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고 구단은 성적 순으로 결정한 것이어서 SNS 건을 미처 확인을 하지 못했다고 뒤늦게 사과했다.[16] 그리고 이들 중 홍종표는 2020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로 KIA 타이거즈에 지명받게 되었다.[17]
- 은퇴 전 후배 이재원이 방송인터뷰에서 여동생이 있다면 시집보내고 싶은 야구선수로 꼽은 적이 있다. 당시 전병두는 재활 중이라 1군경기를 보는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잊혀져 있던 시절이었음에도 꼽은 것. 인성이 가장 좋고 착해서 아끼는 친여동생이 있다 해도 시집을 보내도 아깝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무튼 이보다 세월이 많이 흘러 2019년 1월 12일 일반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9. 관련 문서
[1] 트레버 호프만의 등장곡으로 2011년부터 썼다.[2] 은퇴 경기 당일에는 〈Hells Bells〉 대신 이 곡과 함께 등장했다.[3] 단, KIA에서 SK로 트레이드된 2008 시즌은 제외.[4] 원조는 데릭 지터의 은퇴 때 나이키가 만든 캐치프레이즈인 RE2PECT.[5] 이 때 전병두의 옆에는 이대수가 동행한 모습이 보였는데, 이로 보아 이대수도 곧 은퇴할 확률이 높아 보였고 10월 13일 은퇴를 선언했다.[6] 세 손가락으로만 공을 잡는 변형 체인지업. 일반 체인지업 그립으로 공을 잡았더니 속도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김성근 감독의 지적으로, 속도를 좀 더 낮춘 변형 체인지업을 던졌다.[7] 서정환의 전병두 혹사에 관련한 부분은 사실이다. 전병두는 이때부터 인대가 아주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는데, 그 상태로 김성근을 만나고 나서 겪은 엄청난 혹사를 몸이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8] 단 트레이드 당시 전병두는 4경기 1승 3패 방어율 8.25로 4점대의 선발후보와는 거리가 있었다.[9] 주전 박경완, 백업 정상호, 이재원, 2군 이성우[10] 애초에 전병두가 KIA에 올때 내줬던 선수가 누군지 생각하면 너무나도 손해보는 장사.[11] 2011년 시즌 초반 불가사의한 운빨로 카스포인트를 두둑히 챙기며 선두권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많았던 탓에 생긴 별명. 물론 초반 이후엔 급격히 떨어졌다.[12] 최정은 인터뷰 할 때 버벅거리기로 유명했는데, 어느 정도냐면 2010시즌 스프링캠프 때 본인의 인터뷰에선 심지어는 기도할 때조차도 말을 더듬는다고 밝혔을 정도였고, 그로 인해 유명 선수 중에서 백치의 대명사로 여겨졌다.[13] 좋게 말하면 모범 답안적, 안 좋게 말하면 항상 똑같다.[14] 이 기사를 참조할 것. 전병두의 말빨이 생각보다 상당히 좋다는 것을 보여준다.[15] 얼빠들도 얼빠들이지만, 나주환의 성격은 정근우의 마이너 버전인지라 신뢰도가 높지 않다.[16] 홍종표는 2019년 청룡기 결승전 직후 "모두 내 잘못이다.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자숙하겠다."라고 밝혔지만 "절대 전병두 선배님을 지칭한 게 아닌데......"라고 하는 등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풍겼고 팬들은 여전히 그를 따가운 시선으로 대하고 있다.[17]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