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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2:13:52

제춘모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000000> 파일:kt wiz 엠블럼.svg kt wiz
2025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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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군
'''70 김태균 · 71 이강철 [[틀:kt wiz 감독|
]] · 72 김강 · 75 장재중
· 76 박기혁 · 78 김호 · 81 유한준 · 82 제춘모
· 84 최만호 · 87 전병두 · # 이종범 · # 박경수'''
2군
'''74 홍성용 · 77 김태한 [[틀:kt wiz 2군 감독|
]] · 79 이준수 · 80 박정환
· 86 김연훈'''
육성·재활군
85 이성열 · 88 곽정철 · 89 백진우 · 91 배우열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 입대 선수등록 선수육성선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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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춘모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SK 와이번스 등번호 1번
정대현
(2001)
제춘모
(2002)
송은범
(2003~2006)
SK 와이번스 등번호 18번
조규제
(2002)
<colbgcolor=#ff6600><colcolor=#fff> 제춘모
(2003~2005)
위재영
(2006~2007)
위재영
(2006~2007)
제춘모
(2008~2014)
이창욱
(2015)
SK 와이번스 / SSG 랜더스 등번호 89번
박규민
(2014)
제춘모
(2015~2021)
이원준
(2022)
kt wiz 등번호 82번
윤요섭
(2018~2021)
제춘모
(2022~)
현역
}}} ||
파일:제춘모2023.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kt wiz No.82
제춘모
諸春模 | Je Chun-mo
출생 1982년 4월 5일 ([age(1982-04-05)]세)
광주광역시
거주지 경기도 수원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유안초 - 광주동성중 - 광주동성고
신체 191cm, 91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2년 2차 1라운드 (전체 1번, SK)[1]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2~2014)
지도자 SK 와이번스 2군 불펜코치 (2015~2019)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20)
SSG 랜더스 2군 투수코치 (2021)
SSG 랜더스 1군 불펜코치 (2021)[2]
kt wiz 1군 불펜코치 (2022~2023)
kt wiz 1군 투수코치 (2024~)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6~2008)
본관 칠원 제씨[3]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SK 와이번스
2.2.1. 2012 시즌2.2.2. 2013 시즌2.2.3. 2014 시즌
3. 지도자 경력4. 여담5. 연도별 주요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SK 와이번스 소속의 투수. 現 kt wiz 1군 투수코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광주동성고 시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설까지 돌던 대형 유망주였다. 물론 진짜 진출하려는 의사보다는 몸값 올리기의 일환이었다는 게 당시 아마추어 야구팬들의 정론이긴 하지만.[4] 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5] SK 와이번스의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고2이던 2000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에서 박희수의 대전고에 6-8로 패했다.

고3이던 2001년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신용운 - 최형우의 전주고에 승리했다.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지역예선에서 당대 최강이었던 진흥고[6]를 이기고 동대문야구장행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1회전에서 2001년 청룡기 우승팀 덕수정보고를 만났고 수비진이 연속으로 실책을 범하며 3-6으로 완투패했다.

2.2. SK 와이번스

파일:external/www.sksports.net/2003041311344437983_1024.jpg

2002년 당시 강팀이 아니었던 SK 와이번스에 고졸 신인으로 들어와 9승 7패 평균자책점 4.68을 찍으며 혜성같이 등장했고, 2003 시즌에 10승 6패, 평균자책 4.89로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면서 윤길현, 채병용과 함께 SK의 주축 투수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나 2004년에 어깨부상으로 붙박이 선발진에서 광탈했다. 2005년에는 팔꿈치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2006년부터 2년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고 팀에 돌아왔으나 이미 구속은 130km/h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몰락했다. 오죽하면 네이버 관련 검색어에 제춘모 구속이 있을 정도. 게다가 2군에 있으면서 신인 유망주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루머까지 들리면서 팬들도 사실상 그를 향한 기대는 접어버린 상태였다.

한때 팀의 대형 유망주이자 여성팬을 몰고 다니는 미남 선수로 SK 프런트에서도 제대하자마자 전광판의 홍보 영상에 등장시키는 등 잘생긴 선수로 띄워주면서 팔아먹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당시 드라마 꽃보다 남자 주제가가 흐르는 가운데 전광판에 뜬 문구는 '춘모와 떠나는 맛있는 소풍!'. 부상 등으로 스타가 될 기회를 놓친 심수창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다

2.2.1. 2012 시즌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2070101000056500004691.jpg

5월 12일, 박종훈과 함께 1군에 콜업되었다. 2군에서 나름대로 활약이 좋았고, 투수가 부족한 상황인데다 실제로 제춘모나 올려라 하는 이야기도 나왔었지만.

구속이 오르지 않음에도 방출되지 않고 2군에 남아 있는 것은 이유가 있는 법. 그런데 5월 17일, 7년 만에 1군 문학 LG전 선발로 예고되었다! 상대 투수는 정재복이고, 게다가 지상파 방송 중계까지 잡혔다. SK 팬과 LG 팬들도 서로 역레발을 떨었는데, 이 경기에서 7이닝 109투구수 3피안타 1피홈런 3볼넷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호투를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타선이 정재복에게 6⅔이닝 노히트로 압살당하며 스코어 1:0으로 패하는 바람에 2,552일만의 1군 선발 등판 경기에서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이후 5월 27일 삼성전에서도 ⅔이닝 동안 볼넷 하나만 주고 무실점으로 막으며 홀드를 챙기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가 싶었으나, 4일 뒤인 5월 31일 넥센전에 선발 등판해 38투구수 4안타 1피홈런 1볼넷으로 4실점하면서 1이닝만에 조기 강판당했다. 하지만 계투로 올라와 사흘밖에 쉬지 못한 상황에서 선발로 나갔던 점, 무엇보다 그 전날(30일) 있었던 이만수 감독의 인터뷰 기사[7]가 경기 후 언론을 타면서, 패전에 대한 비난은 모두 이만수에게로 향했다.

부상의 여파인지, 밑천이 바닥난 것인지, 7월 1일 LG전에서 김광현의 어깨 통증으로 인한 자진강판 후 올라와서 3회와 4회를 틀어막으며 잘 버티는가 싶더니, 5회 2사 후 박용택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면서 패전투수가 되었고 7월 8일 한화전에서는 8회 최진행에게 투런을 맞고 내려간 엄정욱을 대신해 올라와 김태균의 백투백홈런 겸 통산 200홈런 달성의 도우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초점은 SK의 7연패에 맞춰져 모든 비난이 이만수에게 향하였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 지.

결국 8경기 18⅓이닝 3패 1홀드 ERA 5.40 20피안타 10사사구 6탈삼진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시즌을 마쳤다.

2.2.2. 2013 시즌

단 한 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7월 28일 2군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다가 부상을 입고 강판된 후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후 그나마 방출은 면하고 재계약에 성공했다.

2.2.3. 2014 시즌

스프링캠프 참가에는 성공했으나 시즌에 들어와서는 9월 7일 두산전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그나마도 실점하며 평균자책 27.00을 찍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은퇴하지 않고 1군 무대에 한 번 더 도전해 보려는 듯.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SK의 코치 제안을 수락하면서 결국 32세라는 상당히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3.1.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파일:external/www.sksports.net/20161012184636_1.jpg

은퇴 후 친정팀 SK 와이번스 2군 불펜코치로 새롭게 출발하였으며, 2군 투수코치인 조웅천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2015년 8월 21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원클럽맨으로서 해당 구단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남길 가치가 충분한 사례. 이후 9월 20일자로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김무관 등과 같이 파견되었다.

2군에 다녀온 투수들이 인터뷰를 할 때 보면 거의 항상 언급이 되고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 하마평은 좋은 듯. 제 2의 이상군이 될지, 정명원이 될 지는 본인의 코칭 능력에 달렸다.

2016년 5월 4일 경기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둔 문승원의 시상자 역할로 깜짝 등장했다. 문승원은 제춘모를 보자마자 울었다. 시즌 전 오키나와 1군 캠프에 합류하지 못하고 2군 캠프로 떨어진 문승원을 잘 다독여 주었다고 한다. 제춘모가 젊은 선수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두에게 알려준 순간.문승원-제춘모 코치, 눈물로 통한 사연

전병두의 재활을 돕기도 하였으며, 유튜브에 전병두와 찍은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SK 이적 후 구단의 지시로 투수 전향을 하게 된 강지광의 마음을 다잡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2021년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약 20년간 있었던 SK-SSG 구단을 떠났다.

3.2. kt wiz

2022 시즌에 kt wiz 1군 불펜코치로 합류했다.

소형준의 투구폼 교정에 도움을 주었다는 일화가 알려졌다. 원래는 그냥 캐치볼을 하다가 장기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아서 키킹 동작 등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을 뿐인데, 소형준이 경기에서 제춘모가 알려준 동작을 직접 해본다거나 자신의 몸에 더 잘 맞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2023년에도 박영현 등 젊은 투수들을 잘 케어하고 있는데, 박영현이 트위치 스트리머이자 QWER의 멤버인 쵸단의 시구지도를 하려 오자 귀신같이 각 잡고 감상했다. #

2024년부터는 1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4월 현재 불펜들이 올라오는 족족 점수를 지키지 못하고 불을 지르는 경우가 많아져서 여론이 상당히 험악해졌다.

7월 현재는 불펜은 잘하는데 선발이 불을 질러서[8] 더 욕먹고 있다. 특히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5경기 60실점 중 선발투수 실점이 34실점이고 쿠에바스, 벤자민, 고영표, 엄상백 4선발 모두 가리지 않고 뚜드려 맞았기 때문에 제춘모의 투수코치로서의 능력에 의문을 갖는 팬들이 많아졌다.

후반기에는 기어코 선발투수들의 밸런스를 전부 망가뜨려놨다. 선발이 5무원을 하는 경기가 드물 정도. 특히 외인 원투펀치는 완전히 맛탱이가 가버렸다.

하지만 와일드카드에서는 신들린 투수운영을 보여줬다.

4. 여담

4.1. 마이 춘모 텔레비전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2 SK 30 146 9 7 0 0 4.68 154 18 51 11 93 1.40
2003 35 127 10 6 0 5 4.89 125 17 59 5 82 1.45
2004 18 67⅓ 4 4 0 0 5.88 76 6 46 7 35 1.81
2005 2 6⅓ 0 1 0 0 8.53 9 1 1 1 2 1.58
2006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07
2008
2009 2 0 0 0 0 0 1 0 1 0 0
2010 2 3⅓ 0 0 0 0 0.00 0 0 3 0 4 0.90
2011 1군 기록 없음
2012 8 18⅓ 0 3 0 1 5.40 20 4 9 1 6 1.58
2013 1군 기록 없음
2014 1 0 0 0 0 27.00 2 0 0 1 0 6.00
KBO 통산
(8시즌)
98 368⅔ 23 21 0 6 5.08 387 46 170 26 222 1.51

6. 관련 문서


[1] 신생 창단 팀 2차 1라운드 우선 지명권 3장 중 SK가 가장 먼저 호명한 선수였다. 그 다음에 부른 선수는 윤길현. 3번으로 지명한 박창근은 2004 시즌 후 방출되었다.[2] 코로나 자가격리에 들어간 조웅천 코치 대신 이대진 코치가 메인투수코치로 이동하면서 임시로 맡게 되었다.[3] 진사공파(進士公派) 21세 모(模) 항렬. 아버지 제해철(諸海哲, 1956. 2. 27.~)은 20세 해(海) 항렬.[4]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만이 아닌 대학 진학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쪽에 더 설득력이 있다.[5] 1982년생이지만 학창시절 1년을 유급하는 바람에 2002년 신인으로 지명됐다. 다만 2001년 신인으로 입단한 1982년생과는 친구로 지낸다.[6] 김진우 - 손주인 - 김경선 등 투타 전력이 탄탄해 2000년 봉황대기 우승, 2001년 대통령배 우승, 2001년 청룡기 준우승, 2001년 전국체전 금메달을 차지했다.[7] "작년에 2군에서 가슴과 어깨쪽 근육이 찢어진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프다고 해서 선발 로테이션을 어떻게 돌릴지 고민이다" 즉 선수의 부상을 알았으면서도 선발로 내보낸 것. 거기다 '모양이다'라며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을 했지만, 그 '작년' SK의 2군 감독은 다름아닌 이만수 본인이었다. 본의 아니게 2군 감독 시절 선수에는 별 관심 없었음을 인증해버린 셈.[8] 최대 10실점이 있다. 2015년 이후 개인실점기록 갱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