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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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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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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8 200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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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1984 1985 1986 1987
박종훈
OB 베어스 / 외야수
윤석환
OB 베어스 / 투수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건우
MBC 청룡 / 투수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외야수
1988 1989 1990 1991 1992
이용철
MBC 청룡 / 투수
박정현
태평양 돌핀스 / 투수
김동수
LG 트윈스 / 포수
조규제
쌍방울 레이더스 / 투수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 투수
1993 1994 1995 1996 1997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류지현
LG 트윈스 / 내야수
이동수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외야수
이병규
LG 트윈스 / 외야수
1998 1999 2000 2001 2002
김수경
현대 유니콘스 / 투수
홍성흔
두산 베어스 / 포수
이승호
SK 와이번스 / 투수
김태균
한화 이글스 / 내야수
조용준
현대 유니콘스 / 투수
2003 2004 2005 2006 2007
이동학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오재영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투수
류현진
한화 이글스 / 투수
임태훈
두산 베어스 / 투수
2008 2009 2010 2011 2012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이용찬
두산 베어스 / 투수
양의지
두산 베어스 / 포수
배영섭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2013 2014 2015 2016 2017
이재학
NC 다이노스 / 투수
박민우
NC 다이노스 / 내야수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신재영
넥센 히어로즈 / 투수
이정후
넥센 히어로즈 / 외야수
2018 2019 2020 2021 2022
강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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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
LG 트윈스 / 투수
소형준
kt wiz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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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 투수
정철원
두산 베어스 / 투수
2023
문동주
한화 이글스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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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KBO 리그 구원왕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8번
김석기
(1990)
조규제
(1991~1998.7.30.)
가내영
(1998.7.31.~1999)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1번
박정현
(1988~1998.7.30.)
<colbgcolor=#000f24> 조규제
(1998.7.31.~2000)
배힘찬
(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1번
박정현
(2000)
조규제
(2001)
정대현
(2002~2011)
SK 와이번스 등번호 18번
가내영
(2000~2001.5.30.)
조규제
(2002)
제춘모
(2003~2005)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1번
배힘찬
(2002)
조규제
(2003)
배힘찬
(2004)
KIA 타이거즈 등번호 24번
김경언
(2003)
조규제
(2004~2005)
장문석
(2006)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8번
류영수
(1996~2005)
조규제
(2006~2007)
팀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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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창단 조규제
(2008)
이광근
(2009~2011)
{{{#fff [[서울 히어로즈|서울]]/[[넥센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1번}}}
김응국
(2008)
조규제
(2009~2010)
최창호
(2012~2013)
KIA 타이거즈 등번호 76번
이광우
(2006~2009)
조규제
(2011~2013)
한혁수
(2014)
LG 트윈스 등번호 78번
이희성
(2012~2013)
조규제
(2014)
윤학길
(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8번
카도쿠라
(2013~2015)
조규제
(2016~2017)
오치아이
(2018~202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5번
류중일
(2000~2016)
조규제
(2018~2021)
손주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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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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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2003 야구선수권 대회
김재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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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1 조규제 · 17 조웅천 · 19 이강철
20 정민태 · 37 임창용 · 41 김진웅
47 이승호 · 51 조용준 · 55 김진우
포수 12 진갑용 · 44 조인성
내야수 1 장성호 · 3 박진만 · 5 정성훈 · 14 김민재
16 김종국 · 18 김동주 · 27 이승엽
외야수 7 이종범 · 33 박한이
35 이진영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김성한
투수·배터리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6 조범현
수비·주루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정진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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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제주고 조규제.jpg
조규제
曺圭帝 | Cho Kyu-Je
출생 1967년 10월 7일 ([age(1967-10-07)]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금광초 - 군산중 - 군산상고 - 연세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1년 1차 지명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8)
현대 유니콘스 (1998~2000)
SK 와이번스 (2001~2002)
현대 유니콘스 (2003)
KIA 타이거즈 (2004~2005)
지도자 현대 유니콘스 2군 투수코치 (2006~2007)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군 투수코치 (2008~2009)
넥센 히어로즈 2군 재활코치 (2010)
KIA 타이거즈 1군 불펜코치 (2011)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12)[1]
KIA 타이거즈 1군 불펜코치 (2012)[2]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코치 (2013)[3]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13)[4]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14)
삼성 라이온즈 잔류군 투수코치 (2016)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17~2019)
삼성 라이온즈 퓨처스·육성 투수코치 (2020~2021)
제주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2~)
프런트 KIA 타이거즈 전력분석원 (2015)
본관 창녕 조씨[5]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프런트 경력5. 연도별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의 마무리 투수이자 전 삼성 라이온즈 육성군 투수코치.

1991년 쌍방울 입단 동기로 시작해 1998년 박경완과 함께 현대로 이적했고[6], 박경완이 FA 자격으로 SK로 이적했을 때 박경완의 보상 선수로 잠시 머물던 현대에 다시 지명되는 등 박경완과 인연이 깊었다.

전성기 때는 전주특급[7], 쌍방울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전주 야구장에서도 볼수 있듯이, 엄청나게 짧은 구장에서도 선동열과 필적할만한 ERA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혹사 때문에 아쉬운 통산 성적을 남긴 선수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원래 오른손잡이었지만, 중3 때 장난삼아 왼손으로 피칭한 것이 140Km/h 가까운 속도를 내자 아예 좌완으로 전향했고, 군산상고 시절 전국구 좌완 에이스로 명성을 날리며 동대문을 평정하고 연세대에 진학했다.

1986년 4월 27일 경남고와의 제20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연장 11회 접전 끝에 극적인 역전승(2-1)을 거두고 팀에 우승을 안긴다.[8]

대학 시절에도 국가대표로 꾸준히 활약을 보였으며 170cm에 불과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140킬로 중반대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드문 유형의 좌완투수였다.[9][10] 우선 지명권을 가지고 있는 쌍방울로서는 연고지 전북 출신 조규제는 이미 찜해놓았고, 해태가 1차 지명자로 오희주[11]를 선택하며 2차 지명 최대어로 나온 김기태 역시 자동으로 획득한 상태였다. 다만 이때 조규제는 2차 1순위로 지명하면 절대로 입단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당당하게 1차 지명자로 고향팀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파일:/image/047/2006/12/21/1166668924.079474_punctum_287885_27[562793].jpg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입단 첫 해에 규정이닝을 채우며 1.64의 평균자책점에 9승[12] 27세이브를 기록하여 팀 동료 김기태를 제치고[13] 신인왕에 오른다. 쌍방울 레이더스 역사상 유일한 신인왕이 되었다.

참고로 조규제의 데뷔 시즌 WAR는 KBO 역대 신인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14] 특히 선동열의 프로 입단 후 6년간 아무도 선동열의 평균자책점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는데, 조규제는 모처럼 선동열과 평균자책점 경쟁을 하는 선수였다. (선동열 1.55, 조규제 1.64)[15]

시즌 후 한일 슈퍼게임에 참가했고, 1차전에서 5회 선발 박동희 다음으로 등판하여 2아웃까지는 잘 잡았지만 일본의 3/4번 타자인 아키야마 코지오치아이 히로미츠에게 연속타자 홈런[16]을 맞으면서 체면을 구겼다.[17] 이 일로 '국내용'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셈.[18]

입단 초 보직은 선발 투수였고, 빙그레 이글스와의 데뷔전에서 송진우를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그 후로 4연패를 했는데 경기에 나갈 수 있지만 긴 이닝을 던지기 어려울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진데다 당시 쌍방울의 구원진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김인식 감독의 지시로 짧은 이닝을 던지는 클로저로 전향했고, 이 후 김현욱[19]과 함께 쌍방울의 구원투수진[20]을 책임지다시피하며 매년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게 된다.

프로 2년째인 1992년에는 7승 7패 8세이브로 다소 부진했다. 2년차 징크스라고 불리우는 소포모어 징크스인줄 알았는데 선수 생활 내내 끊임없이 괴롭힌 목디스크가 원인이었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321000041800.jpg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607000033738.jpg
(출처 : 포토로) (출처 : 포토로)
현대 유니콘스 시절.[21]

그러던 1998년 7월[22] 현금 3억+박정현+가내영과 맞바뀌어 현대 유니콘스[23]로 이적했고, 현대에서 2(+1)개의 우승반지를 수집했다.

현대 이적 초기에는 선발투수로 뛰었다. 199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우타자만으로 타선을 구성한 천보성 감독의 LG 트윈스 및 상대 선발 투수였던 손혁에게 완패했다. 1999년 마무리 조 스트롱이 미국[24]으로 돌아가자 마무리로 전업했지만,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시 선발로 돌아왔다. [25]

2000년에는 좌완 신인 마일영[26]이 입단하고 고질적인 목부상으로[27] 9경기에만 출장하는 등 김동식스러운 모습을 선보이면서 원 포인트 릴리프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우승반지를 또 가져갔다.[28][29]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605201841974G.jpg
(출처 : 포토로)
SK 와이번스 시절.

결국 신생팀 SK의 전력 보강을 위해 우승 팀에서 선수 2명을 현금트레이드로 영입이 가능하다는 지원책 덕분에, 2001년 초 조웅천[30]과 함께 현금 15억원[31]에 SK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났다는 예상과는 달리 노익장을 과시하며,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며 당시 약했던 SK의 투수진에서 쌍방울 시절의 후배 오상민[32]과 함께 전천후 좌완으로 활동하였다.[33]

SK 시절이던 2002년 8월 16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 1사 2루서 등판, 1⅔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프로 통산 150세이브(역대 세 번째)고지를 밟았다.[34]

하지만 2002년 시즌 후 FA 박경완[35]의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다시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2003년 한 시즌은 현대 유니폼을 입고 좌완 불펜으로 뛰며 쏠쏠하게 활약해줬고, 그 해 현대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3번째 우승반지를 획득했다. 2003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50120163707000.jpg
(출처 : 포토로)
KIA 타이거즈 시절.

그러나 원소속팀 현대를 비롯해[36] 우리 나이로 38살이 된 조규제를 원한 팀은 딱히 없었고 결국 KIA 타이거즈와 2년 총 4억 5000만원에 계약해 이적했다.[37] 그러나 KIA 시절에는 앞선 SK, 현대 시절과 다르게 노쇠화가 급격히 찾아오면서 별 활약을 하지 못했고, FA 계약이 만료된 2005 시즌 후 홍현우[38], 이강철[39] 등과 함께 KIA에서 방출당해 그대로 은퇴했다.[40] 그나마 고향팀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고향과 가까운 지역의 팀에서[41]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것이 나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3. 지도자 경력

3.1.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시절

파일:/image/109/2010/10/24/201010241035772093_1.jpg
은퇴 후 2006년부터 현대 유니콘스 2군에서 투수코치를 맡게 된 것을 시작으로 투수코치를 맡고 있다. 넥센 팬들에게도 KIA 팬들에게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으며[42], KIA로 이적할 당시 넥센 팬들이 많이 아쉬워했을 정도.

3.2. KIA 타이거즈 시절

2011년부터 스기모토 타다시의 뒤를 이어 2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이후 2012 시즌 중에 불펜코치로 보직이 바뀌었으며, 이강철 투수코치가 염경엽 신임 감독 취임에 따라 넥센 히어로즈의 수석코치로 이적하면서 2013 시즌부터는 KIA의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2013년 KIA의 방어율이 8위가 되면서 선동열, 김용달과 같이 까이고 있다. 결국 8월 17일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김용달, 정회열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10월 5일에는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이순철, 박철우, 김평호 코치와 더불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43]

당시 외야수로 입단해 변화구 대처와 수비에 어려움을 겪던 김윤동에게 투수 전향을 권유했다.[44]

3.3. LG 트윈스 시절

파일:/image/117/2014/01/03/201401031506392224_1_59_20140103150704.jpg
2013년 11월 12일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했다는 보도가 났다. 이에 대해 LG 트윈스 갤러리 등에서는 김기태 감독과의 친분으로 데리고 온 것인데 걱정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일단은 건강 문제로 1군에서 빠진 차명석 코치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한 영입인 모양. 그러나 2군 투수코치로 부임이 되었고[45] 팬들은 양상문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1군 투수코치인 강상수의 무능을 한탄하였다.[46]

그러나 인천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도중 2군 코치 개편의 일환으로[47] LG 트윈스에서 해임되었다, 여담으로 이 무렵 LG에서는 2군 투수코치로 윤학길을 영입했다.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에서 영화 파울볼을 다룰 때, 패널로 출연한 고양 원더스 선수 이지훈[48]이 원더스에 오기 전인 LG 2군 시절에 전라도 출신 투수코치가 동향인 광주나 전라도 출신 선수들만 편애했다고 말했는데, 당시 LG 1,2군 투수코치를 통틀어 전라도 출신은 조규제밖에 없었다.[49]

3.4. 삼성 라이온즈 시절

허나 1년만에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 보직은 3군 투수코치. 그 후 2017년 시즌 2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2018년부터 등번호가 류중일 감독이 삼성 감독 시절 사용하던 번호인 75번으로 바뀌었다.

2020년부터는 육성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2021 시즌 후 팀을 떠났다.

3.5. 제주고등학교 야구부 시절

이후 차기 행보를 고민하다 삼성에서 같이 코치를 했던 후배 박재현 감독이 있는 제주고등학교 투수코치로 부임하게 됐다. 이로써 지도자 커리어 최초로 아마추어 선수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제주고등학교의 투수코치 자리는 2021년 7월에 역시 삼성 출신인 조진호동원과학기술대학교 야구부로 옮긴 뒤 공석이었다고 하며 공고를 내도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재현 감독 역시 조규제에게 꼭 제주고의 코치로 와줬으면 좋겠다며 적극적으로 부탁했고, 야구 볼모지에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로 제주도로 향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자격증을 뒤늦게 취득한 관계로 지도자 등록은 2022년 9월에 가서야 했다.

4. 프런트 경력

김기태 신임 감독이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 취임하면서 2015년 KIA 타이거즈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1991 쌍방울 49
(2위)
142⅓ 9 7 27
(1위)
- 1.64
(2위)
70 5 61 133
(5위)
0.90
1992 30 54 7 7 8 - 3.17 48 5 26 65 1.33
1993 41
(5위)
88⅔ 1 4 23
(3위)
- 1.42 51 5 37 96 0.95
1994 44
(4위)
98⅓ 2 8 24
(4위)
- 2.39 69 5 43 93 1.09
1995 8 10⅔ 0 1 3 - 5.06 11 2 7 9 1.59
1996 48 59⅔ 5 5 20
(3위)
- 1.81 41 3 28 74 1.09
1997 52 77⅔ 4 6 28
(2위)
- 2.90 64 4 27 74 1.1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1998 쌍방울 / 현대 40 56 5 4 2 - 4.18 65 8 17 40 1.45
1999 현대 17 56 6 2 2 - 5.95 62 9 23 52 1.46
2000 9 4⅓ 0 0 0 3 2.08 2 0 2 4 0.9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1 SK 46 106⅓ 8 9 9 3 3.55 90 12 38 75 1.18
2002 46 78⅔ 6 8 6 3 4.23 81 13 37 64 1.3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3 현대 36 40 0 3 0 4 5.63 39 6 36 41 1.7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4 KIA 38 21 1 0 1 5 2.14 11 1 5 18 0.71
2005 4 1 0 0 0 0 36.00 5 2 3 0 7.00
KBO 통산
(15시즌)
508 894⅓ 54 64 153
(8위)
18 3.07 709 80 390 838 1.18

6. 관련 문서


[1] ~4월 24일[2] 4월 25일~[3] ~8월 16일[4] 8월 17일~[5] 25세 규(圭) 희(喜) 기(基) 항렬. 아버지 조문환은 24세 환(煥) 항렬.[6] 실질적으로 박경완은 97 시즌 후에 트레이드가 된 상태였다.[7] 야구 게임인 마구마구에서는 컨디션 최상 그 이상 높은 100% 보조를 받는 능력치, 한 때 별명이다 보니 반영 된 듯으로 추측, 이사만루에서는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주에서 따온 '완산특급'이 스킬로 되어있다.[8] 경남고는 2023년 현재까지도 이상하리만큼 대통령배를 단 한 차례도 품에 안지 못하고 있다. 반면 청룡기 9회(청룡기 1위), 황금사자기 7회(8회의 신일고에 이어 황금사자기 2위), 봉황대기 2회 우승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9]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최고구속 145km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프로야구 전체를 통틀어 10명 남짓한 시절이었다.[10] 대학 시절에는 최고 146~147km까지 나왔다는 평이 있었으며, 당시 이 정도면 흔치 않은 최정상급 좌완 강속구투수였다. 90년도 즈음엔 최고구속 140Km만 넘으면 정통파 투수로 인정받던 시대였다.(평균 140이 아니다!) 당시 한국에서 최고구속 145Km를 넘는 좌완은 프로에서도 송진우와 가을까치 김정수 둘 뿐이었다.(물론 아마야구의 괴물 좌완 구대성이 일본과의 경기에서 152Km을 던져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11] 진흥고-한양대 출신의 우완투수. 광주일고-인하대 출신 내야수 김기태와 1차 지명을 두고 저울질 대상이 됐던 선수였는데 그 오희주는 해태와 LG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조규제와 김기태보다 못했으며 심지어 자기관리에 실패하며 결국 방출의 쓴 맛을 보고 만다. 입단 후 김응용 감독과 첫 대면에서 파마머리에 반짝이 옷을 입고와서 야구선수가 아니라 가수인줄 알았다고 했으니..어찌보면 해태 타이거즈1차 지명 중 가장 흑역사라 할 수 있다.[12] 선발승 2승 포함[13] 그래도 김기태 역시 입단 첫해부터 20개가 넘는 홈런을 날리며 장종훈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94년에는 이승엽보다 앞서 좌타자 최초의 홈런왕과 처음이자 마지막인 타격왕을 차지한다. 이 홈런왕에 대해서는 의미있는 홈런인데. 바로 방위병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성적을 낸 것이다.[14] 링크된 순위가 2015년 기준이지만 2020년에도 여전히 1위이며, 류현진급의 괴물투수가 나오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대단한 기록이다. 상위에 랭크된 대부분의 선수들은 투수보직, 관리가 지금보다 미흡했던 시절에 혹사를 당하면서 거둔 기록이며, 리그수준의 상승에 따라서 포지션을 떠나 신인이 괴물같은 활약을 보이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잠재력 있는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에 바로 입단하는 것이 당연시 된 요즘은 체력적인 문제로 신인이 1년 내내 1군에서 꾸준히 맹활약 하는 것이 쉽지 않다. 2017년 신인 관련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신인왕에 오른 이정후의 WAR이 3점대이며, 이듬해 신인왕인 2018년 강백호는 2점대이다.[15] 이후 2년 뒤 OB 베어스 신인 마무리 투수 김경원1.11선동열평균자책점 1위 경쟁을 한다.[16] 언급한 두명의 일본 타자들은 각각 홈런왕과 타격왕을 받아본 명구회 선수다.[17] 1차전 객원해설을 맡았던 장훈이 체구가 작은 걸 보니 구원투수인 거 같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18] 2006년 WBC가 열리기 전 까지만 해도 한국이 일본에게 이긴 횟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 과거로 돌아가면 원로 야구인들에게 아직도 회자 되는 개구리 번트와 극적인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으로 빛난 단 한 경기이고 20세기 초에 열린 2000 시드니 올림픽의 일본 야구팀, 2000년대에 들어 현재로 유명한 김경문호 이런 것들 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6, 2008, 2009 WBC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는 등 선전했지만 2015 프리미어 12에서의 도쿄 대첩(야구)를 끝으로 2021년 현재까지 한일전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19] 불펜 사상 첫 20승 투수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20] 투수난이 심각하여, 에이스 김원형과 2선발 김기덕도 가끔 구원진에 추가되었다.[21] 좌측 사진은 1999년 스프링캠프에서, 우측의 호투하는 사진은 현재 사라진 숭의야구장에서 호투하는 모습이다.[22] 모기업 쌍방울의 부도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이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던 시절이다. 이 시절 쌍방울은 구단을 살리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주력 선수들을 냅다 팔아치웠는데 1997년 시즌 후 박경완이 현대로 먼저 팔려갔고[50] 1998년 시즌 중 조규제를 현대로 보낸 뒤에는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기태와 불펜 에이스였던 김현욱까지 1998 시즌이 끝닌자마자 삼성에 내주게 된다.[23] 이 당시 국내는 IMF였는데 머니 파워중에서 가장 꿀리지 않는 팀이 현대, 두번째가 삼성 라이온즈였다.[24] 대신 스트롱은 41세의 나이로 2000년 당시 가장 늦은 메이저리그 최고령 신인으로 데뷔를 했다.[25] 4월 말 이후에는 김수경이 기용되었으나 역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쳐 정명원이 다시 마무리로 돌아왔다.[26] 마일영은 원래 쌍방울 레이더스가 지명했지만 돈이 없어 5억원에 지명권을 양도했다. 이후 KBO는 신인 지명권을 현금으로 양도하는 일을 금지 시켰다.[27] 현역 시절의 피칭 영상을 보면 피칭을 하기 전에 유독 목 근육을 요란스럽게 푸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 목부상으로 인해 병역면제를 받았다.[28] 전 년도를 끝으로 OB에서 데려온 김익재가 방출되며, 현대의 당해년도 좌완은 김홍집마일영 두 명 뿐이었고, 나머지는 죄다 우완 투수들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김홍집은 조규제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서 거의 기회를 받지 못 했다.[29] 사실 현대 유니콘스에서 선발 10승을 기록한 좌완투수는 오재영장원삼 둘 뿐이다. 마일영은 중간계투에서 얻은 것이 반이다.[30] 전년도 신설된 초대 홀드왕에 등극했고, 현대왕조의 허리를 지탱하는 리즈시절이었다.[31] 모기업의 재정지원이 컸던 초창기와 달리 2000년부터의 현대는 모기업인 하이닉스와 같이 자금난으로 망해가고 있었다.[32] 여담으로 박명환야구TV에 오상민이 출연했을 당시 현역시절 롤모델로 삼았던 선수이자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조규제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둘 다 군산상고 선후배 사이고 얼굴도 조금 닮은 편이다.[33] 2001년 전천후로 46경기에서 106⅓이닝을 던졌고 2002년에는 46경기에서 78⅔이닝을 던졌다.[34] 그의 역대 최소경기 100 세이브는 조용준에 의해 깨졌다. 단, 조용준의 통산 세이브는 116개에 그쳤다.[35] 쌍방울에서도 배터리를 맞췄고, 이후 현대에서도 배터리를 맞추며 두 번의 우승도 같이 해본 후배였다. 공교롭게도 조규제와 박경완 둘 다 쌍방울의 자금난으로 인해 현대 유니콘스에 현금 트레이드됐다는 공통점도 있다.[36] 물론 현대 유니콘스는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서 FA를 다 놓치고 있었다. 전년도인 2002년에도 주전포수 박경완을 놓쳐서 신인 강귀태이택근으로 주전포수를 시킬 구상을 하고 있었으니...그리고 2003년에는 FA 시장에서 이숭용 한 명만 붙잡고 조규제와 박종호를 놓쳤고, 이듬해에는 박진만심정수까지 못 잡으며 선수진이 붕괴한다.[37] 한편 현대는 조규제가 FA로 이적하자 보상 선수 대신 보상금만 받았다.[38] 특히, 홍현우의 경우 LG 트윈스에서 먹튀 행각을 벌이다가 고향 팀으로 트레이드 왔다. 그러나 거기에 딸려서 온 이용규 선수가 큰 대박을 터트렸다[39] 200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거대한 삽질을 하며, 노쇠화가 진행 중이였다.[40] 이렇게 된 것은 2005년 창단 첫 최하위를 기록한 KIA가 감독을 서정환으로 교체함과 동시에 리빌딩을 시도하며 선수단을 대거 정리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40살에 접어든 조규제는 자리가 없었다.[41] 넓게 보면 인연이 아주 없던 팀은 아니었다. 조규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만 해도 해태는 광주·전남·전북을 아우르던 호남 유일의 프로야구팀이었기에 만약 고교 졸업 직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면 해태 선수가 될 가능성이 컸다. 아울러 조규제가 KIA로 들어갔을 때는 전북지역 고교에 대한 지명권이 KIA로 환원된 시점이었다.[42] 본인과 마찬가지로 좌완인 심동섭에게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끊임없는 잔소리[43] 더군다나, 이들은 모두 타어강을 경험하며, 기아 팬들에게 뭇매를 맞던 시기였었다. 다행히, 이순철 수석코치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며 박철우 코치는 두산 베어스에서 타격코치를 하며 아들인 박세혁의 타격을 봐주며 부자가 한 팀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김평호 코치는 NC 다이노스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주루 코치를 맡고 있다.[44] 그렇게 전향을 권유 받은 제자는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다. 그러나 거듭된 연투로 치명적인 어깨 부상을 입고 끝이 안 보이는 재활을 겪다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실상 은퇴하였다.[45] 대신에 강상수가 1군 투수코치, 2군 투수코치인 박석진이 1군 불펜코치를 맡았다.[46] 결국, 2019년 시즌은 KIA 타이거즈로 갔지만, 거기서도 투수진들이 부진하고 있다.[47] 김기태 전 감독의 색채를 지우기 위해서 일어난 코치진 정리였다. 이 시기에 해임된 이홍범, 계형철 코치는 김기태 감독과는 쌍방울 시절에 인연이 있었고, 김선진, 박준태, 김인호 코치는 모두 김기태 감독의 광주일고 선배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갈려나간 2군에서 살아남은 김기태의 인맥이라 할 수 있는 코치는 신경식 타격코치밖에 없다.[48] 포지션은 투수이며 배명고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를 마치고 2014년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했으나 시즌 중 방출 통보를 받고 고양 원더스에서 훈련했다.[49] 근데, 엄밀히 말하면 전라도 지역은 예로부터 팜이 좋아서 지명 받는 선수들이 꽤나 있었다. 허나, 그 조규제는 발굴하는 능력이 좋은데 선수 편애라기 보다는 선수 자질이 먼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