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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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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대한민국·일본에서
3.1. 문제점
4. 주요 사례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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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포츠에서 둘 이상의 팀이 각자 팀의 선수를 교환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4대 스포츠라 불리는 NFL, NBA, MLB, NHL,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와 같이 드래프트 제도가 있는 리그에서 일반적으로 운용된다.

2. 상세

스포츠에서 팀과 소속 계약을 맺은 선수들은 그 기간 동안 다른 팀과 계약할 수 없다. 즉, 팀에서 선수에 대한 일종의 독점 활용권을 가진다는 개념이다. 소속 선수의 이적은 선수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사고 판다는 말과 같으며, 이러한 권리의 거래를 통해 팀은 돈 또는 다른 권리들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선수의 거래에 대해 각각의 스포츠 협회와 리그는 규칙을 정해놓고 있고, 팀들은 해당 규정을 준수해야만 선수의 거래가 가능하다. 이러한 선수 거래 양상은 리그에 보류조항이나 현금거래 제한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축구와 같이 현금 거래에 거의 제한이 없는 경우는 거래 사항에 몇가지 옵션을 넣을 수는 있겠지만 순수하게 이적료를 주고 받으며 선수를 이적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돈을 통한 선수의 거래가 자유롭기 때문에, 각 팀과 선수가 동의만 한다면 돈 많은 명문팀이 다른 팀의 선수들을 일방적으로 사가는 것도 가능하다.

반대로 보류조항이나 현금거래 제한이 있는 프로야구나 미국의 4대 스포츠 같은 경우는 선수가 프로 스포츠에 발을 들이는 동시에 선수의 소유권을 구단이 일정 기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수의 자율적인 입, 퇴단이 자유롭지 못하며, 팀들의 빈부 상황과 상관없이 신인 선수 선발권이 동등한 조건에 의해 주어진다. 또한 돈 많은 명문팀이 선수를 일방적으로 모으지 못하게끔 선수의 이적에 현금을 일정 수준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NBA의 경우는 직접 현금은 3백만 달러, MLB의 경우는 100만달러 내에서만 직접적인 현금거래가 가능하다. 때문에 이들 리그에서는 소속 선수의 이적 거래에 있어 직접 돈을 쓰는 대신 선수끼리 또는 드래프트 우선 선발권 같은 돈 이외의 다른 권리를 포함하여 교환하는 방법이 주류가 되었고. 이것이 트레이드이다.

물론, 축구 리그에서도 트레이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구단의 이해조건이 맞아떨어진다면 선수 교환도 가능하다. 문제는 구단들의 동의 외에도 선수들도 이적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 아래 미국 스포츠 시스템과의 차이점. 연봉협상 또한 이적하는 팀과 새로 해야 한다. 미국식 스포츠 리그에서는 선수에게 트레이드 거부권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구단끼리 동의하면 자유롭게 트레이드 할 수 있으며, 연봉은 전 구단에서 받은 연봉을 그대로 승계한다. 축구에서는 양쪽 선수들도 이적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이적료 주고 사오는 것보다 상당히 번거로우며,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축구에서 선수 교환이 일어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1] 참고로 축구에서는 선수를 교환하는 것은 트레이드라는 말보다는 스왑(swap)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며, 대표적으로 유명한 스왑 거래로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뛰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FC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사무엘 에투(+현금 4000만 유로)간의 트레이드가 있다.

메이저리그에는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를 메이저 등록일 기준으로 6년간 보유할 수 있는 서비스 타임이 있고, 해당 서비스 타임이 만료되면 FA 자격을 획득한다. 팀이 해당 선수를 잡을 마음이 없는 경우[2] 서비스타임 5년차 중간이나 6년차 트레이드 마감시한까지의 기간동안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리는 강팀에게 유망주들을 받고 파는 경우가 흔하다. 팀의 기둥이랄 수 있는 A~S급 선수들의 트레이드의 상당수는 이러한 서비스 타임 후반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폐쇄형 리그의 경우 트레이드 마감시한이 존재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메이저리그와 KBO 리그에서 7월 31일을 트레이드 마감시한으로 정하고 있다.

3. 대한민국·일본에서

대한민국KBO 리그일본일본프로야구는 미국에 비해 트레이드 시장의 유동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KBO에서는 이름난 주전선수가 트레이드 되면 대서특필되고 주목을 받는다.[3] 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기업 문화가 한 직장에 충성하는 것을 요구하며, 팬들도 구단/선수의 성적과 별개로 정과 의리를 중시하고, 리그의 규모도 미국보다 작아 트레이드를 보냈다가 보낸 선수가 각성하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으며, 선수들이 구단 이적으로 생활 환경이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고향팀에서 오랫동안 뛰다가 별안간 다른 지역의 팀으로 이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로컬 보이는 "나는 고향팀에 충성을 다했는데 고향팀이 나를 버렸다"면서 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으로의 트레이드 통보 후 삼성 합류를 반 년이나 미뤘던 최동원, 그리고 현대로의 트레이드 결정 직후 아예 은퇴해 버린 강기웅이다. 양준혁도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자 제3의 팀으로의 재트레이드를 요구하는 한편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으로 맞대응하다가 전부 실패하자 은퇴까지 고려했는데 김응룡 감독의 설득 끝에 은퇴를 번복했다.

이처럼 과거 KBO가 MLB는 물론 NPB에 비해서도 트레이드에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애초에 KBO 출범과 흥행의 원동력 중 하나가 애향심을 바탕으로 한 지역연고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경남고, 경북고, 광주일고, 군산상고, 천안북일고 등 각 지역의 명문고를 중심으로 한 고교야구의 흥행은 1982년 출범한 KBO 흥행의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고, 지역연고가 있는 선수를 선점할 수 있는 1차지명 제도도 프로 초창기에는 훨씬 광범위하게 시행되었기 때문에, 해태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처럼 지역색이 강한 팀은 사실상 선수단 전원이 해당 지역 출신이었다. 그러다보니 트레이드가 비즈니스라기보다는 고향팀에서 내치는 불명예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고, 이 때문에 트레이드를 수용하느니 은퇴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이런 인식을 이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를 내치는 용도로 트레이드를 활용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선수협 사태에서 이런 식의 트레이드가 모두 벌어졌는데, 1차 선수협 사태에서는 롯데가 최동원을 삼성에 넘겨 주고 김시진을 받아오는, 올드 팬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행동을 했다. 2차 선수협 사태 당시에도 양준혁, 마해영, 김재현, 심정수, 강병규 등, 송진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선수협 주축 멤버들이 트레이드되거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특히 마해영과 심정수는 트레이드되어 간 구단에서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므로,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구단부터가 트레이드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셈이다.

이러한 인식은 1차지명 제도가 상당히 축소되고 프로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초창기에 비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방향으로 많이 바뀌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트레이드 = '나를 버린다'고 생각하는 현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트레이드로 특정 선수가 팀을 나갔더니 남은 선수들의 분위기가 가라앉는 사례도 아직 볼 수 있다.

2008년 히어로즈가 프로야구에 뛰어들면서 이장석, 조태룡 콤비가 벌이는 트레이드질의 경우는 팀의 재정을 위해 선수를 팔아넘기고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데려오는 메이저리그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마이애미 말린스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트레이드지만, 선수 공급의 풀이 워낙 좁은 국내에서는 이를 선수를 버리는 행위이자 선수 장사라 하여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4]

또한, 히어로즈의 경우 훗날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을 통해 창단 초인 2000년대 후반부터 이장석이 물러나기 직전인 2010년대 중반까지의 트레이드 과정에서 뒷돈을 챙긴 사례가 여러 차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평가가 더욱 안 좋다.

아래는 트레이드가 일어나는 조건으로, 과거 키움 히어로즈의 상황을 대입해 이해하기 쉽도록 서술하였다. 메이저리그 스몰마켓 팀들의 운영도 이런 경우가 많다.
  1. 고액연봉을 먹고 에이징커브를 눈앞에 둔 노장들을 우선 팔아넘긴다.
    : 이렇게 해야 팀의 페이롤도 낮출 수 있고, 베테랑 효과를 원하는 윈나우 성향 팀으로부터 잠재력 있는 젊은 유망주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2008년에는 이호준이 무릎 부상 이후 줄곧 부진하자 대체 1루수 자원을 찾던 SK에 이숭용을 팔아버리려[5] 한 적이 있었고, 송지만을 LG로 보내는 트레이드도 일어날 뻔했다. 좀 어거지로 예를 들자면 김병현KIA 타이거즈 이적을 들 수 있겠다.
  2. 연봉 조정 협상에서 선수들의 연봉을 최대한 짜게 먹인다.
    : 대표적으로 히어로즈 초창기에 최고참인 정민태, 전준호송지만[6]의 연봉이 엄청나게 후려쳐졌다.
  3. 대한민국 한정으로 FA는 보상금 제도가 있기 때문에 FA 거액 계약이 예상되는 선수는 FA 전 마지막 해에 연봉을 많이 먹이면서 나중에 연봉의 최대 3배를 타팀에서 보상금으로 받아먹는다.
    : 정성훈이 대표적이고, 이건 성공했다.
  4. 유망주들을 보호하여 기량이 검증될 때까지 키우고, 성장한 선수의 몸값이 상종가를 칠 때까지 기다렸다 팔아넘긴다.
    :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가 바로 강정호. 넥센 마켓에서 끝끝내 살아남아 2012 시즌 이후의 넥센의 전성기를 이끈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결국 2014~15 오프시즌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피츠버그 파이리츠포스팅 시스템으로 이적을 했다. 2015-16 오프 시즌에 박병호가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박병호도 또 하나의 성공 사례가 되었다.
  5. 선수를 팔더라도 대체 자원은 마련해두고 팔아넘긴다.
    : 2012 시즌 이후 넥센은 타자 부문은 대체 자원을 많이 확보해 둔 상태에서 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오히려 대체 자원으로 데려온 김민성이나 윤석민이 대박을 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두산 또한 잘 사용하는 방법으로, 후보나 보상 선수로 대체 자원을 마련한다.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하긴 하지만 트레이드가 없으면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들이 팀내에 본인의 자리가 없어서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자주 생긴다. 예를 들어, LG 트윈스의 좌타 외야수[7]들과 두산 베어스의 야수[8]들이 있다. LG 트윈스중앙대 포수 조윤준을 지명하였는데, 잉금님이 노익장을 떨치며 조윤준이 30대가 될 때까지 주전 자리를 유지한다면 조윤준의 선수생활은 어쩔 것인가?[9] 구단이 다른 팀으로 보내 줄 것도 아니고 주전으로 뛰지도 못하는데? 만약 박병호LG를 떠나지 않았다면 1군에서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트레이드가 선수들의 앞날에 새로운 계기가 되는 사례도 무지 많다. 대표적 성공 사례가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트레이드이자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10] 대상자인 서정환 전 KIA 감독이다. 서정환은 1982년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멤버로 합류했지만 후배 오대석과의 경쟁에서 밀려서 주전이 되지 못했다. 결국 백업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본인 스스로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1982년 12월 선수층이 얇았던 해태 타이거즈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대구·경북에서 줄곧 자라온 서정환에게 말투도 다르고 생활 환경도 낯선 광주에서의 생활은 모험의 시작이었지만 결국 이 모험이 대성공을 거뒀다. 서정환은 이적한 해태에서 주전 붙박이 내야수로 뛰고 무려 5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챙긴 뒤 1989년에 은퇴했다. 그리고 '우승 경험을 많이 한 대구 출신 선수'라는 이유로 삼성의 감독도 해봤고,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타이거즈에서 보냈기에 기아의 감독도 해봤다.

구단이 10개 구단으로 늘어나고 키움 히어로즈NC 다이노스처럼 트레이드를 주도하는 구단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실정이고, 2015 시즌 들어서는 신생팀 kt wiz가 트레이드의 주축이 되어 예전보다 트레이드 빈도가 높아지긴 했다. KBO 팬들 역시 트레이드를 통해 기회를 받은 선수가 주전으로 자리잡는 케이스가 많아지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현역 시절부터 친분을 이어왔던 선수 출신 단장들이 늘어나면서 트레이드 논의의 장이 훨씬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널리 알려진 오해는 KBO 단일리그라서 트레이드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분석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2010년대 중반 이후 단일리그인 KBO는 양대리그인 일본프로야구보다 트레이드가 빈번하다. 일본보다 2팀 적은 10팀으로 이루어진 단일리그인 KBO가 12팀으로 이루어진 양대리그인 NPB보다 트레이드가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만 봐도 단일리그, 양대리그 차이가 트레이드 빈도에 가장 큰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KBO 리그에서는 2015년 29명, 2016년 11명, 2017년 31명, 2018년 20명의 선수가 트레이드로 팀을 옮겼다. 자세한 내용은 KBO 리그/역대 트레이드/2010년대 참고. 반면 NPB는 2015년 5명, 2016년 11명, 2017년 9명, 2018년 21명의 선수가 트레이드로 팀을 옮겼다.[11] 자세한 내용은 NPB 홈페이지 트레이드 공시 참고.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센트럴 리그-퍼시픽 리그 간의 트레이드가 대부분이고, 동 리그간 트레이드는 드물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 17-18시즌 소프트뱅크의 야마시타 아야쓰구와 라쿠텐 니시다 데쓰로 간의 트레이드처럼 동리그간 트레이드도 있기는 하다. NPB는 양대리그라 타 리그 팀으로 보내면 부메랑 효과를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도 트레이드가 드문 이유는 역시 문화 차이다. 일본은 한 직장에 평생 몸담는 것을 선호하는 기업 문화가 있으며, 팬들 역시 마찬가지라 트레이드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

트레이드 빈도는 야구 문화와 시스템 차이에 더 가깝다. NPB도 KBO도 대부분의 팀이 광고효과 등을 노리는 모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MLB처럼 리빌딩 시기가 오면 자리잡은 주전선수를 내주고 가능성 있는 유망주를 받아오는 식의 진정한 의미의 리빌딩이 없다. 물주인 모기업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 2군이 마이너처럼 레벨이 세밀하게 차별화 된 것도 아니면서 구단 마음대로 올렸다내렸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트레이드같이 선수를 자원으로 보고 조금이라도 자원을 덜 소모하고 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해 선수의 미래가치까지 계산해서 거래하는, 귀찮고 복잡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 정말 보강이 필요하면 모기업에 실탄 받아와서 FA로 사오면 되니까. KBO에선 팀이 선수 연봉을 감당 못해서 1선발을 팔아치워야 할 일도, 당장 로스터를 비워야 하는데 선수가 마이너거부권을 사용해서 버티는 경우도 없다. 당장 급한 불은 보통 KBO에서 트레이드 자원으로 여겨지는 B급 자원과 2군 유망주만 가지고도 충분한 것이다. 이것이 KBO에서는 트레이드가 잘 안 일어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다. 또한 이런 배경이 트레이드 되는 선수들이 버려진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KBO에서 단일리그라는 점이 전혀 영향없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주전급 선수들은 괜히 보냈다가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되어서 돌아오는 영향이 없지는 않다. 또, KBO팬은 MLB팬보다 트레이드 실패로 인한 비난이 큰 경향[12]이 있어서 상대방에게 유리한 트레이드는 가능한 피하게 되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초대형 트레이드 역시 이루어 지기 힘들다. 초창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트레이드를 '나를 버린다'로 인식하는 것도 사라지지는 않았으며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를 라이벌 팀에 트레이드 했다가 팬덤에서 들고 일어나는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KBO의 트레이드는 주전-주전 빅딜이나 유망주 패키지 받고 1선발 판매, FA앞둔 선수 반년렌탈 등의 미국식 트레이드보다는 유망주 내지는 B급 자원들끼리 소소하게 퍼즐을 맞춰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부메랑 효과 때문에라도 서로 크게 경쟁의식은 없는 상위권과 하위권 순위 팀간의 트레이드가 잦은편.

과거에는 KBO 리그에만 있는 불문율로, 모기업의 후원을 받으니 모기업 간 라이벌 의식이 있는 구단과는 트레이드를 거의 하지 않 했다. 트레이드의 윈윈 효과보다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게 더 싫어서 벌어졌던 일이다. 실제로 과거 제과 라이벌이던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가 1982년 원년부터 타이거즈의 모기업이 해태제과에서 기아자동차로 바뀐 2001년까지 단 한 번도 트레이드를 단행하지 않았고 가전 라이벌 관계인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도 트윈스 창단 첫 해인 1990년부터 2012년까지 22년간이나 일절 선수 거래를 하지 않았다.[13] 또 재계 라이벌 관계인 삼성 라이온즈와 현대 유니콘스도 1996년 말 강기웅 트레이드 시도 이후 단 한 번도 직접적인 선수 거래를 추진한 적이 없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통신사 라이벌인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kt wiz는 서로 트레이드 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으며, 특히 kt가 가장 많이 트레이드 한 구단중 하나는 SK였다. 가전업체 라이벌인 LG와 삼성도 2012년 김태완손주인의 트레이드를 시작으로 불문율이 깨졌다. 때문에 사라진 불문율이지만, 예외적으로 2021년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를 인수한 뒤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이 불문율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부산 출신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규정에 따라 인천의 SSG 유니폼을 입자 일각에서 "1년만 SSG에서 뛰고 고향팀 롯데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냐"는[14] 의문이 생겼는데 류선규 SSG 단장이 "롯데는 신세계와 동종업계 라이벌 기업이다. 고로 롯데와의 트레이드는 절대 없다"고 못박았다. 따라서 2021년 현재는 SSG-롯데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상황인데, 추신수가 특별한 선수라서 그런건지[15] 앞으로도 두 구단간에 불문율을 적용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정말 여담으로, 트레이드 및 보상선수 등으로 타의로 팀을 옮기게 된 선수는 어지간해선 연봉을 올려주는 관례가 있다. 아무래도 타의에 의해 직장과 거처를 옮기게 되었으니 그에 대한 보상 내지는 위로금과, 기대하고 있으니 앞으로 잘해보자는 의미의 격려금조로, 그리고 집을 옮기게 되었으니 방 구하고 이사하는 비용으로 쓰라는 뜻으로 소폭 인상을 해주는 것이 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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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인 K리그의 경우 주전-주전간 1대1 트레이드는 물론 주전1-후보# 등 1대 다수 트레이드, 주전1-후보#+현금 등 현금 포함 트레이드도 흔한 편인데, 대표적으로 유공 코끼리와 포항 제철이 홍명보를 대상으로 1 VS 3 트레이드를 하기도 했고 완산 푸마는 황선홍 한 명을 무려 포항 제철 선수 8명과 바꾸는 1 VS 8 트레이드를 하기도 했다. 2021년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무려 5각 트레이드가 성사되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는 애초에 이적이 워낙 잦아서 이적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축구계의 문화가 영향을 끼친다.

3.1. 문제점

드래프트와 마찬가지로 선수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선수 커리어를 꼬이게 할 수 있다. 과거 KBO 리그에서는 해태-KIA로 트레이드되던 선수들이 이적을 거부했던 건 이유가 있었다. 해태-KIA는 똥군기에서 비롯된 인권 유린이 심각했던 팀이었기 때문. 해태 타이거즈/특징 문서 참조. 1986년 한대화는 OB 베어스에서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당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최초로 임의탈퇴 당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던 양준혁은 1998년에 해태로 트레이드 당하자, 은퇴를 시도했다. 2000년 3월, 손혁은 LG 트윈스에서 뛰던 중 해태로 트레이드 당하자 양쪽 구단에 은퇴 의사를 밝혔다. 그 후 해태가 KIA로 바뀐 후인 2002 시즌 중반 김성한 구타 사건이 터졌고, 이듬해 KIA로 트레이드된 최용호 또한 트레이드를 거부했다가 결국 합류했다.해태-KIA가 어떤 팀이었는지 궁금하다면 박충식과 박동희의 인터뷰를 읽어볼 것. 기아 타이거즈 시절에도 과거의 흔적이 있는 모양이다.

트레이드로 인해 불공평한 일정이 발생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선수층이 얇고 경기수가 적은 종목에서 더 도드라지는 문제점. 한 예로 V리그 2020-2021 시즌 중, 대한항공 점보스는 2020년 11월 11일에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신영석 센터를 상대했다. 그러다가 신영석이 한국전력 빅스톰으로 트레이드되면서, 15일에 있는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 신영석을 또 상대하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대한항공의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은 V리그의 트레이드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2021년 6월 3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선수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제는 트레이드를 발표하기 전에 선수와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 이어 임의탈퇴라는 용어도 임의해지로 변경되며, 공시 후 3년이 지나면 그 임의해지가 풀린다. 다만, 김연경과 같이 이전에 임의해지된 선수들은 적용되지 않는다.

4. 주요 사례

5. 관련 문서



[1] 가끔 트레이드가 일어나긴 하지만, 축구에선 실질적으로 트레이드라 할지라도 별개의 이적으로 포장해 준다. 가령, 구단이 공식 발표를 할 때, 'A구단의 B선수를 우리 팀의 C선수+€20M와 트레이드했다.'가 아니라 'A구단의 B선수를 €30M에 영입했다.','A구단이 우리 팀의 C선수를 €10M에 영입해갔다,'라고 따로 발표한다.[2] 팀이 리빌딩 중이라 고액의 FA선수가 필요 없다거나 해당 선수를 잡을 계약을 제시할 수 없는 재정이 빈약한 스몰마켓팀일 경우.[3] 2014년 7월 28일 LG VS 롯데와의 경기 6회초 전준우 타석 때 민훈기 기자가 밝히기로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도 같은 소속 리그끼리는 트레이드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4] 솔직히 외국인 선수 외에는 신인 드래프트신고선수 외의 선수 영입 방법이 딱히 없는게 현실이다. 일본은 독립리그가 잘 구성되어 있어서 독립리그를 뛰다가 추후 지명이나 계약으로 입단하는 경우가 있어서 한국보다는 나은 사정이고 미국 같은 경우에는 마이너리그가 레벨별로 되어 있어서 선수 공급풀이 매우 좋은 편이다.[5] 그래도 이숭용은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도시가 인천이었고 스스로도 태평양과 현대가 인천에 있던 시절 선수 생활이 즐거웠다고 한 적이 있고, 태평양 말기와 현대의 초기를 기억하는 올드 인천팬 중에는 이숭용의 영입을 적극 찬성한 이들도 있었다.[6] 2005시즌 끝나고 FA가 됐는데 4년 28억원 계약이었고 2년간은 받았지만 나머지 2년치 연봉은 못 받았다.[7] 대표적인 예가 황선일, 이병규, 양영동.[8] 2009년 고교 졸업자 신인인 고교 5대 유격수 중 안치홍, 오지환, 김상수, 이학주는 모두 프로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거나 앞날이 촉망받는 메이저리그 최고 유망주로 대접받았다. 나머지 한 명인 허경민은 경찰청 입대 전까지 두산 베어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2013 시즌에 주전급 내야수로 연착륙했다. 그리고 2015년 후반기에 3할4푼대 타격을 선보였음에도 2016시즌 주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주전경쟁을 하는 박건우나 그런 박건우와 주전경쟁을 펼치는 국해성,이우성,김재환도 있다. 포수자원들도 치열하게 1군 경쟁중인 타격 좋은 좌타포수인 박세혁이 있으며, 한화로 이적해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한 최재훈이 있다.[9] 결국 조윤준은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만 30세가 되던 2019년 초 유니폼을 벗고 말았다.[10] 선수 간 맞교환 1호는 정영기-차동열 간 트레이드[11] 일본 프로야구는 공식적으로는 FA로 인한 인적보상도 트레이드로 분류하지만, 일본내에서도 일반적으로는 FA보상선수와 트레이드 이적을 구분하며 본 문서의 설명대상과도 안 맞으므로 제외. 참고로 NPB팀들은 FA보상선수보다 보상금을 선호하기 때문에 보상선수를 포함해도, 2015년 0명, 2016년 2명, 2017년 2명, 2018년 3명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12] 대표적으로 2010년대 초반 LG트윈스가 대표적으로 서건창, 박병호가 원래 LG출신이였는데 이들이 당시 넥센 히어로즈에서 각성한 사례가 있고 2010년대 이전에도 트윈스에서 나오자마자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가 많아서 탈쥐효과라는 명칭까지 만들어졌다.[13]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 시절에는 삼성과 이런저런 선수 교환 사례가 꽤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해창이선희.[14]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규정에 따라 지명을 받은 팀에서 무조건 1년 이상 뛰어야 한다. 또 추신수는 본인이 나고 자란 고향 부산에 대한 애착과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고향팀 롯데에 대한 애정을 은연 중에 여러 번 드러낸 바 있다.[15] 왜냐면 류선규 단장은 추신수 이적설이 처음나온 SK시절에도 "SK에 오자마자 그렇게 얘기하면, 1년 뛰고 떠날 선수가 돼 버리는 것 아닌가. 모양새가 아니다."고 트레이드 불가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SSG 때도 "계약 과정에서 1년 후 트레이드를 거론하는 건 추신수 본인에게나, 팀 조직력에나 매우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트레이드 불가 이유를 밝혔고, 여기에 모기업이 신세계로 바뀌어서 동종업계 라이벌이라 더욱 보낼수 없다는 뉘앙스였지 업계라이벌이 트레이드 불가의 주된 이유였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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