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프로 스포츠 리그가 2개 리그의 협력체 형태로 구성된 리그. 복수의 리그가 상하로 분할되는 형태, 예를 들어 유럽 축구 등에서 보편적인 피라미드 구조나 미국 야구의 마이너 리그 등과 달리, 서로 서열이 없는 동등한 리그가 연합하여 형성하는 형태이다.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이 그 원조로, 형성 과정에서 리그가 합병하지 않고 각각의 주체가 병존하는 형태로 정착되었다. 한편 미국 스포츠에는 흔히 종목 단체의 하위 조직으로 컨퍼런스(conference)가 있는데, MLB와 마찬가지로 리그 합병을 거친 미식축구 내셔널 풋볼 리그(NFL)은 과거의 리그를 컨퍼런스로서 존속하고 있다. 양대 리그와 컨퍼런스 체제의 차이는 양대 리그가 별도의 법적 주체(legal entity)이고 컨퍼런스는 단일 주체의 내부 분리라는 차이가 있으나, 현대에 와서는 이름 외에 실질적인 차이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한편 미국의 다른 프로 리그 (NBA,[1] NHL,[2] MLS[3])도 컨퍼런스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이들은 리그 합병과 무관하게 지리적 분할(Division)의 명칭에 컨퍼런스를 붙인 것에 불과하다. 한편 일본프로야구(NPB)[4]는 원래 단일 리그로 시작하였으나 연맹이 터져버려 두 독립체가 되고 이를 어찌 연합하여 양대 리그가 된 묘한 케이스.
미국에서 컨퍼런스 형태로 리그를 분할하는 이유는 팀 숫자가 늘어나면 균일한 풀리그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넓어 현대에도 대륙횡단 원정을 가려면 하루가 꼬박 걸리는 일정을 감수해야 하고, 어차피 먼 곳보다는 가까운 팀들끼리 라이벌 의식이 있어 흥행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비교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팀들과의 경기를 늘리고 장거리 원정은 줄이려는 취지로 분할이 실시된다. 다만 발상 자체는 흥행성 때문으로, 1932년 NFL이 사상 최초로 우승을 정규리그 공동 1위팀의 플레이오프로 가리면서 아예 이를 정례화하기 위해 동서 디비전이 도입되었다. 디비전 위에 동서 양대 '컨퍼런스'를 얹어 양대 리그와 비슷한 모양새를 낸 것은 NBA가 1970년, NHL이 1973년[5]이다.
한편 여기서 의미가 확장되어 별다른 리그간 협업이 없어도 두 리그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체제를 양대 리그로 칭하기도 한다. 당장 양대 리그 성립 전 19세기의 미국 야구나 1910년대 이전의 초기 북미 아이스하키는 여러 경쟁 리그가 시즌 후 이벤트성으로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르는 체제였다.
2. 야구
2.1. 미국의 양대 리그(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1876년 내셔널 리그가 발족하고, 1901년 아메리칸 리그가 발족한다. 1903년 아메리칸 리그가 주장하는 '메이저 리그' 지위를 내셔널리그가 승인하여,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의 우승팀이 월드 시리즈를 하여 최종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양대 리그 체계가 만들어진다. 메이저 리그가 확대되면서 1969년에 두 리그가 각각 동ㆍ서지구로 분할되었으며, 1994년에는 다시 동ㆍ중ㆍ서 3개 지구 체제로 재편성되어 현재에 이른다.양 리그는 1903년 통합 행정 체제[6]를 만들었으나 어쨌든 별개의 법적 주체라는 점에서 다른 종목의 '컨퍼런스'와 차이가 있었다. 각 리그(구단주 집합)는 경기 규칙, 운영 등을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사례가 지명타자 제도이다. 야구 경기 규칙에는 지명타자 자체의 규칙은 정해두고 있지만 그 적용은 리그가 도입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아메리칸 리그가 1973년에 제도를 도입한 반면 내셔널 리그는 찬반이 팽팽하여 2022년에야 도입이 실현되었다. 다만 2000년 양 리그가 법적으로도 합병했기 때문에 현재는 구성 리그가 규칙 일부를 손댈 수 있는 단서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다른 종목의 컨퍼런스와 거의 동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1961년 창단한 LA 에인절스는 다른 리그라는 이유로 연고지를 공유하는 LA 다저스에 연고 침해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았으나,[7] 2004년에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워싱턴 내셔널스로 옮길 때는 리그가 다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보상을 해야 했다. 또한 2013년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내셔널 리그에서 아메리칸 리그로 이동하기도 했다.
마이너 리그에서는 AAA만 해도 월드시리즈와 비슷한 형식으로 (멕시칸리그를 제외한) 양대리그인 인터내셔널리그와 퍼시픽코스트리그의 챔피언이 격돌하는 Triple-A Baseball National Championship Game이 열린다. 게다가 수많은 여타 리그의 챔피언들이 붙는 시리즈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많은 편이다.[8]
2.2. 일본의 양대 리그(일본프로야구)
1949년 4월, 일본야구연맹의 초대 커미셔너로 취임한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郎)는 기자회견을 통해 프로야구를 6개 구단에서 8개 구단, 10개구단, 12개 구단으로 늘려서 미국을 모방하여 양대 리그를 만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급성장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원래 요미우리 신문의 사장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구단주였으나 2차대전 후 전범으로 공직추방 조치를 받아 직위를 내려놓고 있던 쇼리키는 요미우리의 라이벌이었던 마이니치 신문을 끌어들여 요미우리와 대립하는 라이벌 리그의 주축으로 삼으려 했다.[9] 그러나 기존의 구단들은 고생해서 야구의 인기를 늘려놓았는데, 다른 기업에서 무임승차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여서 구상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서 반발이 나오게 된다. 특히 쇼리키 구상의 핵심이면서도 일시적으로 쇼리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던 요미우리가 라이벌 마이니치에 가장 맹렬하게 반대했다. 역시 신문 라이벌인 주니치 드래곤즈도 반대파.
하지만 벳쇼 빼내기 사건으로 교진군과 척을 진 난카이 호크스가 찬성파로 돌아선데다 마이니치에 이어서 프로야구에 가입하려는 구단이 잇따랐고, 한신 타이거즈(당시 오사카 타이거즈)가 오사카 매스미디어의 주축[10]인 마이니치 측에 붙으려고 하면서 신구단 가맹 찬성파가 일시 우위에 섰다. 한신은 다시 거인-한신 전의 인기 등을 고려하여 반대파로 돌아서면서 찬성파와 반대파가 4:4. 이렇게 비등비등한 상황이 돼버리자 분열이 오히려 가속되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분열되었다.
- 신구단 반대파 4구단+4개 신구단의 센트럴 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 쇼치쿠 로빈스, 코쿠테츠 스왈로즈, 다이요 훼일즈, 한신 타이거스, 주니치 드래곤즈, 히로시마 카프, 니시닛폰 파이러츠
- 신구단 찬성파 4구단+3개 신구단의 퍼시픽 리그: 니시테츠 클리퍼스, 도큐 플라이어스, 다이에이 스타즈, 긴테쓰 펄스, 마이니치 오리온스, 한큐 브레이브스, 난카이 호크스
양 리그는 각각 '센트럴 야구연맹' '태평양 야구연맹'이라는 단체로 조직되어, 다시 두 리그를 총괄하는 '일본야구기구'가 생겼다.
일본은 CL(센트럴리그)에서 투수가 타격에 참가하며, PL(퍼시픽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1975년부터 도입하여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CL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PL의 약점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체적인 실력은 PL팀들이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있으며[11] PL 6개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지역밀착 전략 도입, 인터넷으로 전경기 생중계, 공동 마케팅 회사 설립 등)로 현재는 두 리그 인기의 격차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
일본은 CL과 PL 챔피언이 붙는 일본시리즈에서 전일본 챔피언을 가리며, 정규리그 우승팀 확정후 남은 경기의 김이 빠지는 걸 막기 위해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도입하였다. 이후 페넌트 레이스에서 1위를 못한 주니치 드래곤즈가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자 정규리그 우승팀에게 1승 어드밴티지+전 경기 홈경기라는 특권을 추가했다. 하지만 1위 어드밴티지 도입 후에도 정규리그 하위 팀이 상위 팀을 쓰러뜨리는 업셋은 종종 일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주로 전통적 강팀의 팬이 불만이 많고 하위에서 허우적댔던 팀의 팬은 수긍하는 편.
2004년말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가 경영부진 끝에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흡수합병될 당시에는 요미우리 구단주 와타나베 쓰네오 등의 몇몇 구단주 중심으로 11개팀, 혹은 1개를 더 줄여 단일리그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결국 선수회장 후루타 아쓰야 주축의 선수 파업 및 반대 여론, 그리고 신흥 인터넷 자본의 가담(라쿠텐과 라이브도어[12]의 치열한 경쟁 끝에 라쿠텐에 프랜차이즈가 주어졌다)을 통해 12구단 및 양대 리그 체제가 존속되었다. 다만 각각 별도의 단체로 있던 리그가 2008년 개편으로 NPB의 하부조직으로 명기되어, 현재는 메이저 리그와 같이 리그의 독립성은 사라진 상태이다.
2014년에는 일본프로야구 구단수를 16개로 확대하자는 떡밥이 투척되었다(일본프로야구 문서 참고). 그렇다면 양대리그가 각각 8개 구단으로 편성되므로, 각 리그가 1990~2012년의 한국프로야구(8구단) 규모가 된다.
2.3. 대한민국의 양대 리그(KBO 리그)
한국에서는 1999~2000년 두 시즌 동안 양대리그 제도를 채택하여 리그를 운영하였다. 하지만 양대리그간의 전력 불균형, 이로 인해 준플레이오프가 실시될 때 리그별 3위 팀들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가능성을 갖게 되는 문제, 정규시즌 순위의 가치 문제, 인터리그 비율 문제, 외환위기로 인한 쌍방울 해체 가능성, 기타 형평성 등 여러 현실적 난점에 부딪쳤는데, 대부분은 해결하지 못했고 끝내 2년만에 단일리그로 환원하며 양대리그 제도는 한국프로야구에서 다시 고려될 가능성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시즌 | 드림리그 | 매직리그 |
1999 | 현대 유니콘스(1) 두산 베어스(4) 해태 타이거즈(5) 롯데 자이언츠(8) | 삼성 라이온즈(2) LG 트윈스(3) 쌍방울 레이더스(6)[13] 한화 이글스(7) |
2000 | 두산 베어스(1) 삼성 라이온즈(3) 현대 유니콘스(5) 해태 타이거즈(7) | 롯데 자이언츠(2) 한화 이글스(4) LG 트윈스(6) SK 와이번스(신생)[14] |
첫해인 1999년에는 전년도인 1998년 승률 순위(포스트시즌 결과는 무시)에 따라 1·4·5·8위팀을 드림리그, 2·3·6·7위팀을 매직리그(ㄹ자 배치)로 묶었다. 동 리그 팀과는 20경기, 타 리그 팀과는 18경기가 편성되었다. 또한 4월 13일 시즌 중에 제도를 신설하여[15] 특정 리그 3위가 다른 리그 2위보다 승률이 높으면 3선2승제 준플레이오프를 갖는다. 이는 시즌 중 드림리그 3위인 현대 유니콘스가 매직리그 2위 한화 이글스보다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실제로 이뤄지는가 했으나 막판 한화의 10연승으로 무산되었다.
포스트시즌은 각 리그 상위 2개팀이 크로스 토너먼트(드림 1위 vs 매직 2위, 드림 2위 vs 매직 1위)로 7전4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한국시리즈 진출팀을 가렸다. 일단 포스트시즌만 진출하면 낮은 순위라고 해도 딱히 불리할 게 없는 일정 덕분에 매직리그 2위 & 리그 전체 승률 4위에도 불구하고 드림리그 1위 두산 베어스를 4연승으로 잡아낸 한화 이글스가 7경기를 꽉 채우며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를 찍은 롯데 자이언츠를 여유있게 기다린 뒤 우승할 수 있었다. 이 해 두산은 1989년에 전/후기에서 단일시즌으로 통합된 이후 가장 높은 시즌 승률을 기록하고도 한국시리즈에 참가조차 하지 못한 최초의 팀[16]이 되고 말았는데 단일리그 하에서는 승률 1위팀(=페넌트 레이스 우승팀)이 무조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므로 이변이 없는 이상 앞으로도 단 하나뿐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양대리그의 우승팀이 둘 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리그 2위간 최종 대결이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00년에도 양대리그 종합순위를 따져서 1·3·5·7위팀과 2·4·6위팀+신생팀 SK(Z자 배치)으로 나눴다. 1999년과 마찬가지로 전년도 포스트시즌 결과는 무시하고 순수 승률로만 순위를 매겨서 배치했다. 이에 따라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 대신 SK 와이번스가 매직리그에 참가하고, 롯데 자이언츠(드림→매직)와 삼성 라이온즈(매직→드림)가 서로 자리를 바꾸었으며 리그에 관계없이 팀당 19경기가 편성되었다.
작년에 우려되었던 리그 쏠림 현상이 실제로 이루어져 드림리그 3위팀 삼성이 매직리그 2위팀 롯데는 물론 1위팀 LG보다 승률이 높은 사태가 벌어졌고, 결국 크로스 토너먼트 전에 드림 3위 삼성과 매직 2위 롯데간의 3전2선승제 준플레이오프가 치러졌다. 이 과정에서 3경기분의 투수를 소모한 준PO 승자 삼성과 붙은 드림 1위 현대 유니콘스가 상대적으로 이득을 봐 플레이오프 4연승에 이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물론 2000년의 현대가 승률 7할에 육박하는 압도적 1위였던걸 감안하자면 단일리그 체제에서 받을 수 있었던 어드밴티지에 비할 바는 아니다.
MLB, NPB의 양대리그는 지명타자 제도의 유무라는 확연한 차이가 있던 데 비해 한국프로야구는 단일리그였던 것을 양대리그로 쪼개서 리그별로 규칙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리그 별 팀 개수가 4개에 불과 했고, 드림리그가 매직리그에 비해 지나치게 강했다. 1999년 매직리그 1위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승률은 0.562였고, 드림리그 2위팀인 롯데 자이언츠의 승률은 0.591였다. 2000년엔 더 심화돼서 매직리그 1위팀인 LG 트윈스의 승률은 0.515로 드림리그 3위인 삼성 라이온즈의 0.539보다도 낮았다. 결국 2001년부터 다시 단일리그로 전환되었다.
양대리그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이미 단일리그로 존재하는 리그를 굳이 두개로 쪼갠다고 흥행에 도움이 될 리가 없고 전력 불균형으로 인한 흥미 감소, 불평등 문제만 생길 것이며, 외국의 양대리그는 흥행을 위해서 쪼개진 게 아니라 본래 다른 리그로 존재하다 흥행을 위해 교류가 이뤄진 형태이므로 인위적인 리그 분할은 억지였다. 특히 양대리그 출범 시 장점으로 거론되었던 인터리그도 기형적이었는데 8개구단 체제를 나눠 놓았더니 자리그 경기수보다 인터리그 경기수가 더 많았다.
1999시즌에는 리그전 팀당 20경기, 인터리그 팀당 18경기였다. 문제는 한 팀이 상대해야 할 팀의 수가 당연히 자리그 팀보다 상대리그 팀이 한 팀 더 많기 때문에 계산해 보면 자리그 경기는 60경기(20×3=60), 인터리그는 72경기(18×4=72)로 인터리그 더 많았고, 2000시즌에는 아예 매치업당 19경기로 편성하면서 각각 57경기, 76경기가 되었다.
양대리그면 당연히 인터리그 경기보다 자리그 경기가 훨씬 많아야 할 텐데 별 차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인터리그 경기가 더 많았던 것이다. 2000년도엔 이름만 양대리그였지 사실상 단일리그와 똑같았기 때문에 양대리그로 나눈 의미가 전혀 없었다. 사실상 똑같은 조건에서 페넌트레이스를 치렀는데 승률 1위를 해도 KS 직행이 아니라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기에 포스트시즌은 승률 1위팀한테 크게 불리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17] 99년 승률 1위팀인 두산은 아예 한국시리즈에 가지도 못했고, 00년 현대도 그 높은 승률을 찍고 사실상 어드밴티지 없이 시작해야 했다.
참고로 2015년 이후를 기준으로 MLB에서 162경기 중 20경기, NPB에선 143경기 중 18경기를 인터리그로 치른다. 참고로 NPB도 원래는 경기수가 36경기로 훨씬 더 많았는데 센트럴리그 팀들이 자이언츠 떡고물 못 받아먹는다고 징징대는 바람에 경기수가 줄어들었다. 단순 역대 성적만 보면 자이언츠가 센트럴 리그 중 성적이 좋아서 리그 우승에 유리하였기에 센트럴 리그 타팀이 주장하는 성적이 좋지 않다는 걸 장악력으로 묵살할 수도 있었다.
2015년부터 한국프로야구 1군은 10구단 체제가 되는데 양대리그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는 데다 팀이 홀수로 나뉘어 일정을 짜기가 애매하게 되는 문제와, 선수 수급과 흥행을 보장할 만한 연고지 확보를 고려하면 통일이 된 후 추가로 구단이 창단 되지 않는 이상은 양대리그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 된다. 만약 한국프로야구가 혹시라도 이후 12구단 체제로 확대된다면 현재의 일본프로야구와 동일해지므로 양대리그를 재도입하자는 떡밥이 점화될 가능성이 있겠지만 2020년대 들어 저출산으로 인한 유소년층 인구 비율 감소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 예상됨에 따라 현행 10구단 체제에서 팀이 더 늘어나기는 힘들 전망이다.
2021년 8월 10일 부터 2021년 10월 17일 까지 코로나 19로 수도권지역 거리두기 4단계로 무관중리그(KT, LG, SSG, 두산, 키움)과 유관중리그(KIA, NC, 한화, 롯데, 삼성)로 한시적으로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고착화된 상위권 팀과 하위권 팀의 양극화 때문에 아예 양대리그를 부활하라는 의견도 가끔 나오긴 한다. 현실성은 물론 없지만.
2.4. 대만의 양대 리그(대만 프로야구 리그)
CPBL | TML |
슝디 엘리펀츠 퉁이 라이온스 싱농 불스 중신 웨일스 | 타이베이 타이양 타이중 진캉 자난 루카 가오핑 레이공 |
2.5. 호주의 양대 리그(호주 야구 리그)
NSL | SWL |
시드니 블루삭스 브리즈번 밴디츠 캔버라 캐벌리 오클랜드 투아타라 | 퍼스 히트 애들레이드 자이언츠 멜버른 에이시스 질롱 코리아 |
2009년 발족 당시 6팀으로 출발해서 단일 리그로 진행되었으나, 2018년에 두 개의 팀이 추가로 창설되어 8팀 체제가 되면서 양대 리그제를 도입했다. 동쪽의 4팀(시드니 블루삭스, 브리즈번 밴디츠, 캔버라 캐벌리, 오클랜드 투아타라)은 노스이스트 디비전에, 서쪽의 4팀(퍼스 히트, 애들레이드 자이언츠, 멜버른 에이시스, 질롱 코리아)은 사우스웨스트 디비전에 소속되어 리그를 치른다. 2020-21 시즌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오클랜드와 질롱이 불참하면서 참가 팀 수가 6팀으로 줄어들자 일시적으로 단일 리그로 환원되었다가, 2022-23 시즌에 불참했던 두 팀이 참가하면서 다시 양대 리그로 진행된다.
경기 수는 팀당 40경기. 같은 디비전끼리는 24경기(8경기×3팀)를 치르고, 다른 디비전끼리는 16경기(4경기×4팀)를 치른다.
양대 리그제 도입 당시에는 각 리그 상위 2팀에게 종합 승률 순서대로 1번부터 4번까지 시드를 부여하고 리그 3위 팀 중 승률이 높은 1팀에게 5번 시드를 부여한 뒤, 1번부터 3번까지 3팀은 준플레이오프 직행, 4번 시드와 5번 시드 팀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서[21] 승리한 팀이 1번 시드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플레이오프 승리 팀이 챔피언십 시리즈를 치른다. 2022-23 시즌에서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폐지하여 각 리그 1위 팀이 맞은 편 리그 2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벌인 뒤 플레이오프 승리 팀이 챔피언십 시리즈를 치르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2023-24 시즌은 오클랜드와 질롱이 불참하여 다시 6개 팀 체제가 되면서 단일 리그로 환원되었다.
3. 한국의 프로 e스포츠 게임 리그
한국에서 프로 e스포츠의 양대리그의 개념은 한 게임을 다루는 최상위 두 리그이지만 이 둘을 총괄하는 단체가 없고, 한쪽에 참여해도 동년에 바로 다른 리그에 참여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국 프랜차이즈의 양대리그와는 다르다. 그리고 여기서는 더블이 가능하다.3.1. 스타크래프트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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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리그 |
3.1.1. 개인 리그
3.1.1.1.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리그 역사 | |||
스타크래프트 | 1999~2000 | KIGL | PKO |
2002~2011 | 온게임넷 스타리그 | MBC GAME 스타리그 | |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 2018~2019[22] | ASL | KSL |
2002년 이후 스타판에서 양대 리그라 하면 보통 온게임넷의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BC GAME의 MBC GAME 스타리그을 통칭한다.
이후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블리자드 공인 리마스터 개인리그인 ASL과 KSL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리고 프로리그에서도 위의 야구와 같은 개념의 양대 리그 방식을 사용한 기간이 있었다. 10개 게임단을 5팀씩 머큐리리그, 새턴리그로 나누어 진행한 SKY 프로리그 2004 2Round와 3Round.
원래 양대 리그는 OSL과 MSL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KIGL과 PKO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이들 리그가 쇠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OSL과 MSL이 양대리그 타이틀을 이어 받게 된다. KIGL과 PKO가 존재하던 시기에 OSL도 진행되었지만 그때는 메이저 대회의 위상을 갖추지는 못했었다. KGL을 포함해서 3대 리그라는 말도 쓰였다. 1999~2000년에는 KIGL, PKO, KGL이 대회 규모, 상금 규모를 종합해서 가장 큰 대회였다. 2001년 들어서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메이저로 올라섰고 2002년에 와서야 MBC GAME 스타리그가 시작되었다.[23]
IT버블 붕괴로 기존 양대 리그 및 수많은 대회들이 몰락하고 OSL을 중심으로 스타리그는 명맥만 이어갔으며, 게임TV(GhemTV)의 스타리그, iTV의 랭킹전이 거의 2003~2004년 경에 없어진 후 MSL이 OSL 급의 위상을 지니게 되면서 OSL과 MSL을 가리켜서 양대리그라는 용어가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OSL-MSL 양대리그 체제가 제대로 갖춰진 후, 스타리그는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그 뒤 스타크래프트 방송권 분쟁,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등의 이유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점차 하락하자 2011년 ABC마트 MSL을 끝으로 MBC GAME과 MSL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24] 스타크래프트의 양대 리그 체제는 막을 내렸다.
이어서 2012년 tving 스타리그 2012를 마지막으로 온게임넷에서도 스타1 리그가 막을 내렸고, 이후 대회는 스타크래프트 2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렇게 KeSPA 주관의 브루드 워 공식 리그가 모두 종료된 이후, 프로게이머 은퇴를 하고 개인 인터넷 방송을 통해 브루드 워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차츰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자체적으로 비공식전이 개최되며 소닉 스타리그 등이 한동안 열렸고, 2016년부터 아프리카TV에서 아프리카TV 스타리그를 출범하였고, 2017년부터는 SPOTV GAMES에서도 SSL 클래식을 출범하면서 얼추 양대리그 구색을 다시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SSL 클래식은 시즌 2를 내놓지 못한 채 일회성 대회로 끝나고 말았으며, 2018년에는 아예 SSL Series 자체의 폐지 수순에 들어가게 되었다.[25]
그러다 2018년 6월, 블리자드에서 직영으로 하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리그인 코리아 스타크래프트 리그(KSL)를 출범한다는 보도 자료를 내놓았다. 아프리카TV 스타리그와는 별개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이로써 2018년부터 다시금 양대리그 체제가 구색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2019년 HGC 폐지 및 개발팀 축소 논란과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비개발 인력 대거 감축 계획이 발표되며 개최가 불투명했지만 일단 시즌4까지는 예정대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2019년 KSL 시즌4를 끝으로 결국 KSL은 폐지되었고,[26] 현재는 ASL만이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은 KeSPA 주관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양대리그 모두에서 상위 커리어를 기록하였던 프로게이머 명단이다. 온게임넷은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부터 tving 스타리그 2012까지, MBC GAME은 MSL의 전신으로 인정받는 2002 KPGA 투어부터 ABC마트 MSL까지 기록하였다.
스타 1 양대 리그 역대 커리어 상위 순위 | |||||||||||
순위 | 이름 | 종족 | OSL | MSL | 총합 | ||||||
★ | ★ | ★ | ★ | ★ | ★ | ★ | ★ | ★ | |||
1위 | 이윤열 | T | 3 | 1 | 0 | 3 | 3 | 1 | 6 | 4 | 1 |
2위 | 이영호 | T | 3 | 1 | 2 | 3 | 1 | 1 | 6 | 2 | 3 |
3위 | 이제동 | Z | 3 | 1 | 0 | 2 | 3 | 3 | 5 | 4 | 3 |
4위 | 최연성 | T | 2 | 0 | 2 | 3 | 0 | 2 | 5 | 0 | 4 |
5위 | | Z | | | | | | | | | |
6위 | 임요환 | T | 2 | 4 | 1 | 1 | 0 | 1 | 3 | 4 | 2 |
7위 | 박성준 | Z | 3 | 2 | 0 | 0 | 0 | 0 | 3 | 2 | 0 |
8위 | 김택용 | P | 0 | 0 | 3 | 3 | 1 | 0 | 3 | 1 | 3 |
9위 | 강민 | P | 1 | 1 | 0 | 1 | 1 | 4 | 2 | 2 | 4 |
10위 | 허영무 | P | 2 | 0 | 0 | 0 | 2 | 1 | 2 | 2 | 1 |
스타 1 양대 리그 4강 진출 횟수 상위 순위 | ||||||||
순위 | 이름 | OSL | MSL | 총합 | ||||
★ | ★ | ★ | ★ | ★ | ★ | |||
1위 | 이제동 | 3 | 1 | 0 | 2 | 3 | 3 | 12 |
2위 | 이윤열 | 3 | 1 | 0 | 3 | 3 | 1 | 11 |
이영호 | 3 | 1 | 2 | 3 | 1 | 1 | ||
4위 | 홍진호 | 0 | 2 | 5 | 0 | 3 | 0 | 10 |
5위 | 최연성 | 2 | 0 | 2 | 3 | 0 | 2 | 9 |
임요환 | 2 | 4 | 1 | 1 | 0 | 1 | ||
7위 | 강민 | 1 | 1 | 0 | 1 | 1 | 4 | 8 |
송병구 | 1 | 3 | 2 | 0 | 1 | 1 | ||
조용호 | 0 | 2 | 0 | 1 | 1 | 4 | ||
10위 | - | | | | | | | 7 |
김택용 | 0 | 0 | 3 | 3 | 1 | 0 | ||
정명훈 | 1 | 4 | 1 | 0 | 0 | 1 |
스타 1 양대 리그 우승 경력자 | ||||||
이름 | OSL | MSL | ||||
★ | ★ | ★ | ★ | ★ | ★ | |
강민[29] | 1 | 1 | 0 | 1 | 1 | 4 |
| | | | | | |
이영호[31] | 3 | 1 | 2 | 3 | 1 | 1 |
이윤열[32] | 3 | 1 | 0 | 3 | 3 | 1 |
이제동[33] | 3 | 1 | 0 | 2 | 3 | 3 |
임요환[34] | 2 | 4 | 1 | 1 | 0 | 1 |
최연성[35] | 2 | 0 | 2 | 3 | 0 | 2 |
스타 1 양대 리그 준우승 경력자 | ||||||
이름 | OSL | MSL | ||||
★ | ★ | ★ | ★ | ★ | ★ | |
박용욱 | 1 | 0 | 1 | 0 | 1 | 1 |
박정석 | 1 | 1 | 2 | 0 | 2 | 0 |
송병구 | 1 | 3 | 2 | 0 | 1 | 1 |
조용호[36] | 0 | 2 | 0 | 1 | 1 | 4 |
홍진호[37] | 0 | 2 | 5 | 0 | 3 | 0 |
허영무 | 2 | 0 | 0 | 0 | 2 | 1 |
스타 1 양대 리그 4강 경력자 | ||||||
이름 | OSL | MSL | ||||
★ | ★ | ★ | ★ | ★ | ★ | |
김구현 | 0 | 0 | 1 | 0 | 1 | 2 |
김명운 | 0 | 0 | 1 | 0 | 1 | 2 |
김윤환 | 0 | 0 | 2 | 1 | 0 | 1 |
김정민 | 0 | 0 | 1 | 0 | 0 | 1 |
김택용 | 0 | 0 | 3 | 3 | 1 | 0 |
박태민 | 0 | 0 | 2 | 1 | 0 | 1 |
| | | | | | |
변은종 | 0 | 0 | 2 | 0 | 0 | 1 |
변형태 | 0 | 1 | 1 | 0 | 0 | 1 |
서지훈 | 1 | 0 | 1 | 0 | 0 | 2 |
신동원 | 0 | 0 | 1 | 1 | 0 | 1 |
윤용태 | 0 | 0 | 1 | 0 | 0 | 2 |
이병민 | 0 | 1 | 2 | 0 | 0 | 2 |
장진남 | 0 | 1 | 0 | 0 | 0 | 1 |
전상욱 | 0 | 0 | 1 | 0 | 0 | 1 |
전태규 | 0 | 1 | 0 | 0 | 0 | 1 |
정명훈 | 1 | 4 | 1 | 0 | 0 | 1 |
최인규 | 0 | 0 | 2 | 0 | 0 | 2 |
양대 리그 각 10회 이상 본선 진출 경력자 | |||
이름 | OSL | MSL | 합계 |
김택용 | 12 | 13 | 25 |
서지훈 | 10 | 12 | 22 |
송병구 | 17 | 10 | 27 |
이영호 | 13 | 11 | 24 |
이윤열[39] | 14 | 18 | 32 |
이재호[40] | 10 | 10 | 20 |
이제동 | 10 | 11 | 21 |
임요환 | 14 | 10 | 24 |
조용호 | 10 | 11 | 21 |
스타1 양대 리그 A매치 통산 전적 '합산 다승 상위 10인' | ||||
순위 | 이름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000000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1 | 이윤열 | 158전 95승 63패 (60.1%) | 213전 125승 88패 (58.7%) | 371전 220승 151패 (59.3%) |
2 | 임요환 | 177전 108승 69패 (61.0%) | 127전 73승 54패 (57.5%) | 304전 181승 123패 (59.5%) |
3 | 이영호 | 138전 92승 46패 (66.7%) | 119전 83승 36패 (69.7%) | 257전 175승 82패 (68.1%) |
4 | 이제동 | 108전 69승 39패 (63.9%) | 153전 99승 54패 (64.7%) | 261전 168승 93패 (64.4%) |
5 | 홍진호 | 181전 106승 75패 (58.6%) | 97전 55승 42패 (56.7%) | 278전 161승 117패 (57.9%) |
6 | 송병구 | 169전 100승 69패 (59.2%) | 107전 60승 47패 (56.1%) | 276전 160승 116패 (58.0%) |
7 | 김택용 | 101전 57승 44패 (56.4%) | 132전 88승 44패 (66.7%) | 233전 145승 88패 (62.2%) |
8 | 박성준 | 170전 98승 72패 (57.6%) | 94전 45승 49패 (47.9%) | 264전 143승 121패 (54.2%) |
9 | 조용호 | 119전 64승 55패 (53.8%) | 140전 78승 62패 (55.7%) | 259전 142승 117패 (54.8%) |
10 | 서지훈 | 131전 78승 53패 (59.5%) | 119전 60승 59패 (50.4%) | 250전 138승 112패 (55.2%) |
스타1 양대 리그 A매치 통산 전적 '합산 다승 상위 10인 테란 프로게이머' | ||||
순위 | 이름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000000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1 | 이윤열 | 158전 95승 63패 (60.1%) | 213전 125승 88패 (58.7%) | 371전 220승 151패 (59.3%) |
2 | 임요환 | 177전 108승 69패 (61.0%) | 127전 73승 54패 (57.5%) | 304전 181승 123패 (59.5%) |
3 | 이영호 | 138전 92승 46패 (66.7%) | 119전 83승 36패 (69.7%) | 257전 175승 82패 (68.1%) |
4 | 서지훈 | 131전 78승 53패 (59.5%) | 119전 60승 59패 (50.4%) | 250전 138승 112패 (55.2%) |
5 | 최연성 | 110전 64승 46패 (58.2%) | 117전 71승 46패 (60.7%) | 227전 135승 92패 (59.5%) |
6 | 전상욱 | 118전 67승 51패 (56.8%) | 85전 42승 43패 (49.4%) | 203전 109승 94패 (53.7%) |
7 | 정명훈 | 104전 70승 34패 (67.3%) | 60전 35승 25패 (58.3%) | 164전 105승 59패 (64.0%) |
8 | | | | |
9 | 염보성 | 102전 54승 48패 (52.9%) | 80전 46승 34패 (57.5%) | 182전 100승 82패 (54.9%) |
10 | 이병민 | 107전 62승 45패 (57.9%) | 79전 38승 41패 (48.1%) | 186전 100승 86패 (53.8%) |
스타1 양대 리그 A매치 통산 전적 '합산 다승 상위 10인 저그 프로게이머' | ||||
순위 | 이름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000000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1 | 이제동 | 108전 69승 39패 (63.9%) | 153전 99승 54패 (64.7%) | 261전 168승 93패 (64.4%) |
2 | 홍진호 | 181전 106승 75패 (58.6%) | 97전 55승 42패 (56.7%) | 278전 161승 117패 (57.9%) |
3 | 박성준 | 170전 98승 72패 (57.6%) | 94전 45승 49패 (47.9%) | 264전 143승 121패 (54.2%) |
4 | 조용호 | 119전 64승 55패 (53.8%) | 140전 78승 62패 (55.7%) | 259전 142승 117패 (54.8%) |
5 | | | | |
6 | 박태민 | 121전 65승 56패 (53.7%) | 94전 56승 38패 (59.6%) | 215전 121승 94패 (56.3%) |
7 | 김명운 | 49전 33승 16패 (67.3%) | 83전 46승 37패 (55.4%) | 132전 79승 53패 (59.8%) |
8 | 변은종 | 82전 39승 43패 (47.6%) | 72전 35승 37패 (48.6%) | 154전 74승 80패 (48.1%) |
9 | | | | |
10 | 강도경 | 62전 35승 27패 (56.5%) | 64전 37승 27패 (57.8%) | 126전 72승 54패 (57.1%) |
스타1 양대 리그 A매치 통산 전적 '합산 다승 상위 10인 프로토스 프로게이머' | ||||
순위 | 이름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000000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1 | 송병구 | 169전 100승 69패 (59.2%) | 107전 60승 47패 (56.1%) | 276전 160승 116패 (58.0%) |
2 | 김택용 | 101전 57승 44패 (56.4%) | 132전 88승 44패 (66.7%) | 233전 145승 88패 (62.2%) |
3 | 강민 | 91전 53승 38패 (58.2%) | 123전 74승 49패 (60.2%) | 214전 127승 87패 (59.3%) |
4 | 박정석 | 149전 80승 69패 (53.7%) | 85전 42승 43패 (49.4%) | 234전 122승 112패 (52.1%) |
5 | 허영무 | 58전 36승 22패 (62.1%) | 94전 59승 35패 (62.8%) | 152전 95승 57패 (62.5%) |
6 | 박용욱 | 82전 45승 37패 (54.9%) | 76전 38승 38패 (50.0%) | 158전 83승 75패 (52.5%) |
7 | 김구현 | 40전 18승 22패 (45.0%) | 97전 56승 41패 (57.7%) | 137전 74승 63패 (54.0%) |
윤용태 | 39전 20승 19패 (51.3%) | 98전 54승 44패 (55.1%) | 137전 74승 63패 (54.0%) | |
9 | 전태규 | 62전 30승 32패 (48.4%) | 79전 38승 41패 (48.1%) | 141전 68승 73패 (48.2%) |
10 | 안기효 | 122전 59승 63패 (48.4%) | 13전 5승 8패 (38.5%) | 135전 64승 71패 (47.4%) |
스타크래프트 양대 리그 진행 시절 현역 프로게이머 사이에 온막이나 엠막이라는 전문 용어가 생길 정도로 양대 리그에서 모두 빼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45]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양대리그 각 10회 이상 본선 진출 선수는 상대적으로 올드 게이머로 구분되는 선수만 봐도 임요환, 이윤열, 조용호, 서지훈, 송병구 5명 뿐이며 이후 24강, 32강, 36강 등으로 개편되어 온게임넷 스타리그 및 MSL 본선 진출의 문이 넓어진 드래프트 세대 게이머들도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이재호까지 총 4명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또한 10회 이상씩 본선 진출을 하거나 우승 준우승 횟수가 비슷하다 해도 따지고 보면 언밸런스 한 경우도 많다. 이윤열을 예로 들면 OSL과 MSL 모두 3회 우승을 했으니 양대리그 커리어가 비슷해 보이지만 MSL 3회 우승을 한 이후에 OSL 첫번째 우승을 하였다. MSL 우승은 모두 커리어 전반기에 한 것이고 OSL 우승은 모두 커리어 후반에 했으며 이는 곧 이윤열은 원래는 MSL에 치우친 선수였으나 나중에는 OSL에 치우친 선수가 되었다는 말이다. 비슷하게도 최연성도 OSL 2회 우승, MSL 3회 우승을 해서 양대리그 커리어가 비슷해 보이지만 MSL 3회 우승을 한 이후에 OSL 첫번째 우승을 하였다, MSL 우승은 모두 커리어 전반기에 한 것이고 OSL 우승은 모두 그 이후에 하였다.
OSL 준우승 1회에 4강 2회, MSL 4강 2회를 기록한 이병민도 MSL 4강은 커리어 초기에 기록하였고, 3번의 OSL 4강 진출은 모두 MSL 4강 이후에 하였다. OSL 우승 2회에 MSL 준우승 2회, 3위 1회를 기록한 허영무도 MSL에서 준우승과 3위를 기록할 시기의 OSL 최고 성적은 8강 1회에 불과했으며, 본선 진출 횟수도 MSL이 우위이다. 즉 MSL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온막, MSL이 폐지된 후부터 온막에서 탈출한 특이한 케이스이다.
그만큼 양대리그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본선 진출 8회에 우승 1회, 4위 2회를 기록한 한동욱과 본선 진출 10회에 우승 1회, 4강 1회를 기록한 김준영은 MSL에서 본선에 진출한 경력이 단 한 번도 없고, 반면에 MSL 본선 진출 5회에 준우승 1회를 기록한 심소명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한 경력이 단 한 번도 없다.
4강을 여러번 갔던 선수들 중에서도 박경락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4회에 3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MSL에서는 단 한 번만 본선에 진출했으며 그나마 그 대회에서도 16강 광탈을 기록했으며 나도현도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2회에 2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MSL에서는 단 한 번만 본선에 진출하고 패자 2차 8강 광탈만을 기록했다. 박지호도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6회에 2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MSL에서는 3번 밖에 본선 진출을 하지 못하고 그마저도 16강 광탈만 기록했다. 반대로 한상봉은 MSL에서는 본선 진출 6회에 준우승 1회, 4강 1회를 기록했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5번에 대부분 16강, 36강 광탈만을 기록했다.
골든 마우스 수상자이자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고의 커리어(3회 우승, 2회 준우승)와 15회라는 본선 진출 기록을 보유한 박성준이 MSL에서는 본선 진출 8회 중에서 4강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70승 34패(67.3%)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고 승률 보유와 동시에 5번의 결승 진출에 1회 우승, 그리고 4회로 최다 준우승 기록을 임요환과 함께 1위로 기록한 정명훈도 MSL 최고 성적은 본선 진출 8회에 4강 한 번이 전부며 그마저도 대부분은 8강에 진출조차 거의 못했을 정도로 32강과 16강에서 광탈하였고,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5회에 우승 1회, 준우승 1회의 성적을 기록한 오영종도 MSL에서는 본선 진출 2회에 16강 1회, 32강 1회의 성적만 기록하였다. 프로토스로는 유일한 금배지 보유자이자 MSL 본선 진출 13회에 3회 우승, 1회 준우승의 김택용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12회에 4강 3번이 최고 성적이었다.
반대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준우승 3회로 임요환, 정명훈 다음으로 최다 준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 우승 1회와 4강 2회를 기록한 송병구지만 MSL에서는 본선 진출 10회를 기록하긴 했지만 준우승 1회와 4강 1회가 전부였고, 마찬가지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6회로 최다 결승 진출자이자 우승 2회, 준우승 4회, 3위 1회를 기록한 임요환은 MSL 본선 자체는 10회로 많이 올라갔으나 KPGA 시절 기록한 우승 1회와 3위 1회가 전부일 정도로 두 선수 모두 MSL 성적이 상대적으로 약세다. 또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본선 진출 13회에 우승 1회, 준우승 1회, 4강 2회를 기록한 박정석도 MSL에서는 준우승 2회를 기록했지만 본선 진출은 6회에 불과하였다. 반대로 MSL에서는 10연속으로 살아남아서 우승 1회, 준우승 1회, 3위 1회, 4위 2회를 기록하면서 꾸준히 4강권에 진출한 조용호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10회라는 많은 본선 진출 횟수에 비해 두 번의 준우승을 한 대회들을 제외하면 8강을 두 번 밖에 가지 못했을 정도로 대부분 16강 및 24강에서 광탈하였다. 그리고 MSL에서 본선 진출 12회에 우승 1회, 준우승 1회, 4강 4회를 기록한 강민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지만 본선 진출 횟수는 4회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온전히 듀얼을 뚫어서 본선에 진출한 건 단 2회에 불과하였다.
또한 양대리그 각각 10회 본선 진출을 기록한 이재호도 MSL에서는 4강 1번과 8강 3번을 진출한 것에 비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10회 중 36강 탈락만 무려 기록의 절반인 5회를 기록한데다가 8강에 진출한 것이 1번 밖에 안될 정도로 대부분 36강, 24강, 16강에서 광탈하였다. 그 외에 안기효도 현역 시절 개인리그 4강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에 총 10회나 진출하고 8강에도 세 번이나 진출한 반면에 MSL에서는 단 한 번도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했다. 반대로 고인규는 현역 시절 개인리그 4강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MSL에서는 8강에 한 번 진출하고 본선 진출 횟수도 9회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8강에 한 번 진출하긴 했지만 본선 진출 횟수는 단 4회에 불과하고 8강을 제외한 나머지 성적은 전부 24강, 36강 광탈이었다.
양대 리그 4강 이상을 기록한 선수들 중에서도 변형태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8회에 준우승 1회, 4강 1회를 기록한 반면에 MSL에서는 본선 진출 6회에 4강 1회를 기록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16강, 32강에서 광탈하였다. 반대로 MSL에서는 본선 진출 10회에 준우승 1회, 4강 2회를 기록한 김구현은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6회에 4강 1회가 최고 성적이고 대부분 16강과 36강에서 광탈하였고, 마찬가지로 MSL에서는 본선 진출 12회에 4강 2회를 기록한 윤용태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단 2회에 4강 1회가 최고 성적이었다. 또한 MSL 본선 진출 9회에 준우승 1회, 4강 2회를 기록한 김명운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6회에 4강 1회가 최고 성적이고, 심지어 4강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8강에서 8전 전패를 기록할 정도였다.
다만 경력이 길어지고 리그의 역사가 쌓이다 보면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은 온게임넷 이윤열, 조용호, 강민은 MBC GAME에서 강하다는 말이 있었으나 저 선수들 경력이 쌓이다 보니 결국 비슷해지거나 차이가 적어졌다. 또한 스타판에서 올드라고 여겨지는 선수들도 다른 종목과 비교하면 신예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스타판에서 5년 활동이면 중견이고 10년 활동이면 노장을 넘어서 살아있는 전설 취급 받고 이런 사람이 몇명 없지만 스포츠 쪽에는 데뷔 10년인데도 신예로 분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스타판의 역사가 워낙 짧고 선수들의 경력이 워낙 짧아서 생긴 현상.
3.1.1.2. 스타크래프트 2
스타크래프트 2 리그 역사 | ||
2012~2013 | GSL | 온게임넷 스타리그 |
2015~2017 | GSL | SSL |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한동안 2010년에 출범한 곰TV(현재는 아프리카TV로 이전)의 GSL만이 존재하다가 2012년부터 스타 1 공식리그가 스타 2로 전환됨에 따라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GSL과 양대리그 체제를 이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스타 2로는 스타리그가 단 두 번밖에 치러지지 않았으며, 곧 2013년에 WCS 체제 통합이 이루어지고 온게임넷이 스타리그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자 2013 WCS Korea Season 2,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3을 끝으로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으며 다시 단일리그 체제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스타 2로 치러진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양대리그로서의 의미가 떨어지다 보니 취지가 애매해 사상 최초로 GSL과 SSL에서 모두 우승을 달성한 김도우를 스타 2 첫 양대리그 우승자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만, 온게임넷에서 스타 2로 두 번만 치른 스타리그의 우승자인 정윤종, 조성주가 훗날 모두 GSL과 SSL에서 각각 우승을 달성하면서 무언가가 미묘한 상황이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스타 2가 국내 발매부터 심의 문제로 인해 삐걱거리거나 스타크래프트 방송권 분쟁 및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으며, 리그의 흥행 문제나 스타 1 시절의 양대 방송사였던 MBC GAME이 폐국하고, 온게임넷도 스타 2 중계에서 철수하는 등 e스포츠계의 여러 내외적 상황으로 인해 국내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 자체가 격랑 속에 휘말렸던 것이 크다. 게다가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 2부터 자사가 직접적으로 e스포츠의 체계화를 시도하면서, 시즌이 연간시즌의 개념보다 "특정 버전간 시즌"의 개념을 우선 적용하게 되었고, 양대리그라고 해도 자유의 날개 버전 시즌 한정으로 제일 난국의 상황이 벌어졌던 것. 자유의 날개 버전으로 양대 리그의 시작은 HOT6 GSL Season 4가 기점인데, 엄밀히 말하면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2는, 문자 그대로 자유의 날개의 제일 끝물에 진행되었기에 정윤종이 여기서 우승하고 같은 해 GSL을 우승했다 해도 우승자의 지위가 김도우보다 높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스타 2에서의 양대리그는 오히려 군단의 심장 버전 후반부 시즌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체계화되고 안정화가 되었다는 점을 보면[46] 이 점에서 김도우의 양대리그 우승은 정윤종이나 조성주보다는 공신력이 부여되는 셈. 게다가 공허의 유산이 발매되면서 김도우는 단일 버전(군단의 심장)으로 양대리그를 제패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스타2 부문까지 폐지된 이후, 2014년까지 GSL 국내 단일 리그 체제가 이어지다가, 2015 시즌부터 SPOTV GAMES에서 WCS 스타2 개인리그인 Starcraft 2 StarLeague(현 SSL Series)를 출범하면서 양대리그 체제가 부활했고, 스타 2에서의 양대 리그는 한국 내 WCS 공인리그인 GSL과 Starcraft 2 StarLeague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SSL Series가 2017년을 끝으로 잠정 폐지되었고, 국내에서 양대 리그라 불릴만한 대회는 사라졌다. 2023년 11월 강민수까지 우승을 거둬 SSL 우승자 전원이 GSL 우승까지 기록하면서 이제 더 이상 양대 리그 우승자는 나올 수 없다.
이하 표는 스2 양대리그 체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프로게이머 명단이다. 온게임넷은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2, WCS 산하로 치러진 2013 WCS Korea Season 2,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3만 해당되며, 곰TV의 GSL은 TG삼보-인텔 GSL 오픈 시즌 1부터, SPOTV GAMES의 Starcraft 2 StarLeague는 NAVER Starcraft 2 StarLeague 2015 Season 1부터 측정했다.
스타 2 양대 리그 우승 경력자 | ||||||
이름 | GSL | OSL | SSL | |||
★ | ★ | ★ | ★ | ★ | ★ | |
김도우[47] | 1 | 1 | 0 | 0 | 1 | 0 |
이신형[48] | 3 | 1 | 0 | 0 | 1 | 0 |
김대엽[49] | 1 | 2 | 0 | 0 | 1 | 1 |
조성주[50] | 8 | 4 | 1 | 0 | 1 | 0 |
박령우[51] | 3 | 1 | 0 | 0 | 1 | 2 |
김준호[52] | 1 | 1 | 0 | 0 | 1 | 0 |
강민수[53] | 1 | 0 | 0 | 0 | 1 | 1 |
정윤종[54] | 1 | 0 | 1 | 1 | 0 | 0 |
스타 2 양대 리그 준우승 이상 경력자 | ||||||
이름 | GSL | OSL | SSL | |||
★ | ★ | ★ | ★ | ★ | ★ | |
박수호 | 1 | 0 | 0 | 1 | 0 | 0 |
한지원[55] | 0 | 2 | 0 | 0 | 0 | 1 |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곰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대 리그에서 모두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선수는 드문 편이다. 조성주, 박령우, 김준호, 강민수는 SSL 우승 년도와 GSL 우승 년도가 무려 3년 이상 차이난다. 조성주와 박령우는 3년(조성주 : SSL(2015)-GSL(2018~), 박령우 : SSL(2016), GSL(2019~)), 김준호와 강민수는 7년(김준호 : SSL(2015)-GSL(2022), 강민수(SSL(2016)-GSL(2013))의 공백이 있다. GSL 우승 전까지 해당 선수들은 결승조차 진출한 적이 없고, 특히 강민수의 경우 8강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다. 강민수의 우승을 마지막으로 양대리그 후보자들은 모두 양대리그 우승에 성공했다.[56]
여담으로, GSL에서만 6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GSL 최다 결승 진출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고, 스타 1, 스타 2를 모두 포함해 단일리그 최다 준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어윤수의 SSL 성적은 16강 두 번이 고작이다.[57] 양대 결승 진출자 중 유일하게 우승이 없는 한지원의 경우 양대리그 준우승 3회를 단 99일만에 달성한 진기록을 보유중이다(...).
3.1.2. 팀 단위 리그
스타크래프트 초창기에는 온게임넷에서 진행하는 프로리그와 MBC게임에서 진행하는 팀리그가 팀 단위 양대 리그로 존재했으며, 2005년 KeSPA에 의해 협회에서 주관하는 프로리그로 통합되었다. 여기서 생긴 논란은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 참조.위 개인리그 문단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온게임넷 프로리그와 MBC GAME 팀리그 방송사 팀단위 양대리그와는 별도로, 온게임넷 자체적으로 프로리그 내부에서 야구의 방식과 유사한 방식의 양대리그 시스템을 사용한 기간이 있었다. SKY 프로리그 2004 2Round와 SKY 프로리그 2004 3Round에서 10개 팀을 5팀씩 머큐리리그, 새턴리그 두 리그로 나누어 진행하였다.[58] 진행방식을 보면 조별리그 후 토너먼트 방식과 거의 같다.
-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 10팀/5팀 2리그. 1Round 최하위 Plus 탈락. 각 리그별 2회 풀리그 후 1, 2위는 4강 진출하여 토너먼트. 각 리그 최하위 팀은 10위 결정전으로 맞대결 후 패한 팀은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진출권을 놓고 2라운드 탈락팀인 Plus와 최종 진출전 진행.
-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 10팀/5팀 2리그. 2Round와 동일 방식. 최종 진출전 결과, 2Round 최하위 헥사트론 드림팀이 2라운드 탈락팀 Plus에 승리하여 Plus는 2라운드에 이어 다시 탈락.
위 두 번의 리그를 마지막으로 MBC GAME 팀리그와 통합되었다. 통합 후 첫 시즌인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부터는 11팀 풀리그 방식으로 회귀하였고 양대리그 방식은 이후 다시는 시도되지 않았다.
이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 감소와 KeSPA 소속팀이 연이어 해체하고, e스포츠 연맹이 출범하면서 2013년 현재 두 단체의 소속팀이 7팀으로 균형을 맞추게 되자, KeSPA와 연맹의 양대 팀단위 리그로 리그를 꾸려나가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KeSPA 소속 팀과 연맹 소속 팀들이 서로 대결하는 리그는 아직 없다. e스포츠 연맹이 프로리그 같은 팀단위 리그보다는 개인리그에 더 중시하다 보니...[59] 다만 해외 게임단인 EG-TL 연합[60]이 게스트 자격으로 프로리그에 참가하기는 했다.
그 뒤 연맹팀의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2014년 Prime, IM, MVP의 협회 가입에 이어 2015년 프로리그부터는 마지막 연맹 팀이었던 StarTale도 참전하면서[61] 연맹과 협회의 구분은 사라지게 되었다.
3.2. 그 외 국내 프로 e스포츠 게임 대회
3.2.1. 개인 리그
워크래프트 3는 온게임넷의 워3 프로리그와 MBC GAME의 워3 프라임리그를 양대리그 체제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온게임넷에서 2004년을 끝으로 워3 프로리그를 중단했고, 그나마 남아있던 프라임리그도 워3 프라임리그 맵 조작 사건으로 인해 2005년을 끝으로 공중분해되면서 사실상 국내에서의 워3 공식리그는 막을 내렸다.3.2.2. 팀 단위 리그
스타크래프트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팀 단위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가 출범할 때부터 라이엇 게임즈가 1지역 1리그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초창기의 프로리그와 팀리그와는 달리 양대리그 구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 인해 2016년부터 롤챔스 중계에 뛰어든 SPOTV GAMES에서 새로운 리그를 만들지 못하고 2016 코카-콜라 제로 LoL Champions Korea Summer부터 OGN과 중계권을 나눠먹게 되면서 NAVER 2015 LoL KeSPA Cup에서의 SPOTV GAMES의 롤 중계 퀄리티가 좋지 못했던 것을 지적하면서 중계 퀄리티를 우려함과 동시에 OGN이 일궈 온 리그를 공짜로 나눠먹는다며 팬들이 불만을 제기했다.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와는 달리 통합 리그/디비전 제도가 시행되지 않는 PLAYERUNKNOWN'S BATTLEGROUNDS는 각 e스포츠 방송사마다 리그를 시행하고 있는데, OGN의 PUBG Survival Series(PSS)와 아프리카TV의 AfreecaTV PUBG League(APL), SPOTV GAMES의 PUBG Warfare Masters(PWM)를 3대 리그 체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금세 펍지 코리아 리그 단일체제로 개편되었다.
3.3. FIFA e월드컵
콘솔로만 진행되며, 최신기술이 가능한 콘솔이 2개 있다보니 XBOX 대회와 PS4 대회로 나누어지고, 각 부문 우승자가 통합 결승전을 치르는 방식이다.4. 해외의 프로 e스포츠 게임 리그
리그 오브 레전드의 국내 사례에서 보듯, 해외 프로 e스포츠 대회는 대체로 그 게임의 개발/유통사의 주관 하에 단일 대회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아래는 특이 사례에 속한다.4.1. 대전 격투 게임 리그
대전 격투 게임계에서는 Capcom Pro Tour의 영향을 받아, 게임사에서 인정한 대회에서 진출 포인트를 얻어 최종 라운드 진출자를 결정한 뒤 최종 결선 대회를 치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즉 하위 개념의 공식 토너먼트 대회에서 승점을 얻은 후, 그 포인트를 합산해 상위권 선수들을 모아 최종 결선을 치르는 것. 다만 이러한 방식이 활성화될 때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으로 인해 오프라인 대회가 치러지기 힘들어지자 온라인 지역 예선을 치러 진출자를 가려낸 뒤 그랜드 파이널을 치르는 대회가 많아졌다. 이러나 저러나 예선-결선의 개념에선 벗어나지 못하는 셈.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EVO라고 불리는 격투 게임 대회가 별도로 존재한다. 이 대회는 원래 소규모 친목 대회 개념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단일 종목으로 진행하지 않으며, 대회 종목은 격투 게임 커뮤니티에서 호응을 얻는 종목을 선정하여 정식 채택되는 종목들의 참가자를 받아 진행한다. 대회 자체는 게임을 즐기는 누구든 대회 참가비 + 종목 참가비만 내면 참가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상금은 이러한 참가료를 모아 상위 성적을 낸 선수에게 비율을 매겨 지급하는 식이고, 게임 제작사에서도 상금을 스폰하는 경우가 있어 점점 규모가 늘어나 이제는 사실상 격투 게임계의 올림픽과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62]
이렇기 때문에 포인트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전 격투 게임 리그들도 EVO에서 상위 입상을 할 경우 다른 하위 토너먼트들과는 급이 다른 최종 진출 포인트를 지급[63]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중이다. 비유하자면 올림픽에서의 성과를 각 스포츠 종목별 리그에 적용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쪽이 편하며, 양대리그 체제와는 차이가 있다.
4.2. BEMANI PRO LEAGUE
일본의 BEMANI 시리즈로 개최되는 e스포츠 대회로, 시즌 2 사운드 볼텍스 종목에서부터 양대 리그 체제로 개최되기 시작했으며, 다른 종목들도 시즌 3까지 양대 리그로 진행되었으나, SUPERNOVA Tohoku가 갑작스럽게 활동 종료를 선언하면서 7팀 체제가 되어 다시 단일 리그 체제로 변경되었다.한국 e스포츠계의 양대리그 체제와는 달리 한 팀은 한쪽 리그에만 소속되고, 소속 리그 내 성적에 따라서 정해진 대진대로 인터리그전을 치르는 등 보다 전통적인 개념의 양대리그 체제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시즌 시작 전 무작위 추첨을 통해 리그가 배정되고, 다음 시즌에서 소속 리그가 바뀔수 있다는 점에서 대회 진행을 위한 체제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한편 무작위로 추첨이 진행되다 보니 첫 시행된 시즌 2 SDVX 종목에서의 인터리그전에서는 L리그가 R리그를 전체적으로 우세를 가지는 등의 모습을 가지기도 했다.
4.3. League of Legends Championship of the Americas
2025년 League of Legends Championship Series, Latin America League, Circuit Brazilian League of Legends이 합병되면서 출범한 League of Legends Championship of the Americas에서는 기성 리그 방식의 양대 리그 형태가 도입되었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LTA North와 LTA South로 나뉘며, 스플릿 1 기간과 스플릿 3 기간 끄트머리에[64] 국제 대회에 나갈 팀을 선발할 LTA 플레이오프를 개최한다.5. 관련 문서
[1] 전신 BAA가 NBL, ABA를 흡수합병하면서 단일리그가 되었다.[2] NHL은 WHA라는 경쟁리그를 흡수합병하여 단일리그가 되었다.[3] 리그 합병 역사가 없다.[4]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5] 다만 플레이오프에서 컨퍼런스 챔피언 개념은 1981년.[6] 처음에는 전국 야구 위원회, 1920년에는 커미셔너 체제로 변경.[7] 다만 에인절스 명칭의 권리를 다저스 구단주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상표권은 매입해야 했다.[8] 참고로 미국은 TOP 유망주가 총출동하는 퓨처스게임과는 별도로 마이너리그 레벨별로 각자 올스타게임까지 펼친다. 한국처럼 2군 올스타전을 모두 감독 추천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팬들이 많이 참여하는 선발방식이다. 특히 AAA, AA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마이너에 옵션된 신분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은 조만간 빅리그 팀의 콜업을 받을 선수라고 보면 된다.[9] 쇼리키는 공직추방 문제로 발언 직후 NPB 커미셔너직을 내려놓았다. 공직추방이 해제되어 쇼리키가 요미우리 직무에 복귀한 것은 1951년.[10] 요미우리가 간사이 지역에 지사를 세우고 신문을 발행한 것은 1952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고 그 전에는 간사이에 대한 영향력이 전무했다. 도쿄에서조차 고작 1930년대에나 메이저가 되었다. 반대로 오사카 지역 언론인 마이니치와 아사히 신문은 이미 각각 1911년, 1888년에 도쿄에 진출했다. 그러나 마이니치는 찬성파에 간사이 지역 구단이 많았던 탓인지 도쿄에 창단했다.[11] 당장 일본시리즈를 살펴봐도 퍼시픽리그 쪽이 좀 더 우세한 편이며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인기의 센트럴, 실력의 퍼시픽'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12] 긴테쓰 인수전에서도 오릭스와 경쟁했다가 구단축소를 의도했던 야구계의 반감으로 실패했다.[13] 1999년 시즌이 끝난 뒤에 해체[14]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된 후 쌍방울의 선수단을 인수한 SK 와이번즈가 신생팀 자격으로 2000시즌부터 KBO 리그에 참가했다.[15] 이는 당시 드림리그 소속으로 1999 시즌 초반 전년도 하위팀이던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의 예상 밖 선전(물론 해태는 5월에 접어들며 투수력의 난조로 드림리그 최하위로 떨어진 이후 다시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으로 3위까지 처진 현대 유니콘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이 있었다. 그리고 KBO는 그 후로 22년 후 정지택 총재의 출신 그룹 산하의 구단인 두산 베어스 1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자 시즌 전에 정한 매뉴얼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면서까지 두산의 편의를 위해 시즌을 중단시키는 병크를 저지르고야 말았다.[16] 전/후기 시절까지 살펴보면 1984년 OB시절에도 종합승률 1위를 하고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는데 이게 그 유명한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상대로 롯데를 고른 져주기 게임 때문이다. 그 삼성은 이듬해에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스스로 한국시리즈 자체를 없애버려 '승률 1위가 한국시리즈에 참가하지 못한 사례'를 따지면 84, 85, 99 총 3번이다. 정확히 보자면 85년은 승률 1위가 참가 못한 게 아니라 승률 1위만 참가 가능한 상태인 것이다.[17] 8개 구단을 4개씩 나눴다면 자리그 구단과는 각 30경기씩으로 90경기+인터리그 구단과는 각 10경기씩으로 40경기로 한 팀당 총 130경기와 같은 식으로 자리그 경기 수가 인터리그보다는 확실히 많았다면 리그간 전력 불균형으로 쉽게 높은 승률을 기록할 수 있어 이런 방식의 포스트시즌이 적절했겠지만, 그냥 말만 양대리그인데 어드벤티지가 하나도 없었으니...[18] 1999년 해체.[19] 1999년 해체[20] 1998년 해체.[21] KBO 리그의 양대 리그 시절 준플레이오프와 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쪽은 둘 중 한 리그의 3위 팀 승률이 다른 리그의 2위 팀 승률보다 높은 경우 한해 치러지지만, 이쪽은 승률에 관계없이 무조건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른다는 점이다.[22] 2019년 시즌 4를 마지막으로 KSL은 폐지.[23] 정확히는 전신인 2002 KPGA 투어 1차 리그이 시작되었다.[24] 원래는 서바이버 토너먼트까지 모두 치른 2011 MSL 시즌 2가 마지막으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음악방송을 원하던 본사가 대회를 열지 못하게 하는 등 방해공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폐국 후 전직 해설진과 인력의 폭로로 드러났다.[25] 결국 SPOTV GAMES도 2020년을 끝으러 폐국되어 SPOTV가 되었다.[26] 흥행 최대카드인 이영호가 개인 사정으로 4시즌 내내 KSL에 참가하지 않은데다가, 스타팬과 스타 전프로들의 99%가 있는 아프리카 동시중계가 안 되다 보니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27]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28]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29] 스1 프로토스 유일한 양대리그 우승자.[30]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31] 양대리그 총합 결승전 진출 8회로 이윤열, 이제동에 이어 역대 3번째 최다 진출, 동시기 진행된 양대리그를 모두 우승한 경력이 있음.[32] MSL 결승전 최다 진출자(6회), 양대리그 총합 결승전 최다 진출자(10회). 동시기 진행된 양대리그를 모두 우승한 경력이 있음.[33] 양대리그 총합 결승전 진출 9회로 이윤열에 이어 역대 2번째 최다 진출. OSL에서 세 종족(테란, 저그, 프로토스)를 결승전에서 모두 꺾고 우승한 경력이 있으며, OSL 역대 최단 기간 3회 우승 기록. 또한 마모씨의 기록 말소로 인해 스1 저그 유일한 양대리그 우승자.[34] 스타리그 결승전 최다 진출자(6회)[35] MSL에서 세 종족(테란, 저그, 프로토스)를 결승전에서 모두 꺾고 우승한 경력이 있으며, 양대리그에서 모두 우승한 선수들 중 유일하게 준우승 경력이 없다.[36] 양대리그 준우승 이상 경력자 중 유일한 MSL 우승자이다.[37] 양대리그 준우승 이상 경력자 중 유일한 개인리그 무관 기록자이다.[38]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39] 최초 양대리그 10회 이상 진출자.[40] 10회 이상 진출자 중 유일하게 4강이 최고 성적이다. 또한 이들 중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했다.[41] 이 명단에 아쉽게 포함되지 못한 사람은 염보성과 최연성으로 두 선수 모두 MSL 본선 진출 횟수는 각각 11회와 10회를 기록했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기록이 9회로 딱 하나가 모자르다.[42]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43]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44]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45] 거기에 본좌급 혹은 준본좌급 이상으로 평가받은 선수들 중에서도 양대 방송사 성적과 진출 횟수가 모두 균등한 성적을 보인 선수는 이윤열, 최연성, 이제동, 이영호 밖에 없을 정도이다.[46] 즉, 조성주의 양대리그 지위가 애매하다는 것도 의미한다. 옥션 스타리그 2013은 WCS Korea의 한 세트 속에서 열린 단일 대회였기 때문에 블리자드의 표현대로 이때는 GSL과 스타리그 어느 쪽을 우승하던 상관 없던 상황이었다는 거다. 이후 군단의 심장 버전으로 SSL 우승, 공허의 유산 버전으로 GSL 7회 우승을 기록하면서 이견 없이 확실하게 양대리그 우승자로 자리매김했다.[47] 스타크래프트 2 첫번째 양대리그 우승자며 스타 1까지 포함시 두 번째 프로토스 양대 우승자다.[48] 두번째 양대리그 우승자[49] 세번째 양대리그 우승자[50] 네 번째 양대리그 우승자이며, 유일한 3개대회 우승자이자 현재까지 최다 횟수 우승자다.[51] 다섯 번째 양대리그 우승자[52] 여섯 번째 양대리그 우승자이자 프로토스 최후의 양대리그 우승자이다.[53] 일곱 번째 양대리그 우승자이자 스타2 마지막 양대리그 우승자이다.[54] 해당 표의 선수 중 유일하게 SSL 우승자가 아닌 GSL-OSL 양대리그 우승자이다. 순서는 김도우 다음으로 기록을 달성하였다.(김도우-정윤종-이신형...). 김도우가 2015년 6월 20일 2015 SSL Season 2 우승으로 최초, 정윤종이 2015년 6월 28일 2015 GSL Season 2로 8일 뒤에 두 번째로 달성하였다.[55] 홍진호와 함께 양대리그 결승을 모두 올랐음에도 우승을 못했다.[56] 이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의 ASL-KSL과 거의 비슷한 관계이다. 상대적으로 개최된 시기가 짧은(SSL, KSL) 쪽의 우승자들이 모두 개최된 기간이 긴 리그(GSL, ASL)에서도 모두 우승을 차지하였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양대리그 마지막 우승자가 배출된 해가 2023년이다.[57] SSL이 2015~2017로 기간이 짧다고 하지만, 어윤수의 두 번째 전성기인 2017년(GSL 준우승 2회,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 1회)에도 시즌 1때는 아예 예선 탈락, 시즌 2때는 챌린지 리그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리그가 폐지되었다(...).[58] 머큐리리그는 수요일 진행으로 수성의 이름을, 새턴리그는 토요일 진행으로 토성의 이름을 따왔다.[59] 이쪽도 GSTL이라는 팀 단위 리그를 열기는 했다.[60] Evil Geniuses와 Team Liquid의 연합.[61] 다만 IM은 리그 오브 레전드 팀에 집중하기 위해 스타크래프트 2 팀을 해체하였다.[62] 시범 종목의 개념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한 종목을 사이드 토너먼트라는 개념으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63] 초창기에는 아예 최종 진출권 자체를 지급했었다.[64] 스플릿 2 기간이 끝나면 열리는 Mid-Season Invitational은 컨퍼런스에서 각 한 팀 씩만 보내므로 통합 플레이오프를 진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