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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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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2008년 상반기 시즌2.2. 08-09 시즌2.3. 09-10 시즌2.4. 해체2.5. 공포의 외인구단
3. 유니폼4. eSTRO의 역대 선수들5. 역대 팀 성적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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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2년 1월 창단되어 2010년 10월까지 존재했던 과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이자 게임전문 클럽.

모기업인 IEG는 에이클라 엔터테인먼트[1]의 자회사이자 게임전문매니지먼트사로, 대한민국이라는 특정 국가 내의 스타크래프트라는 특정 종목의 특정 정규리그만 다루는 것이 목적이 아닌 e스포츠를 포괄적으로 취급하여 선수와 인프라를 육성하기 위한 클럽 성격으로 운영했다. 단지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가 가장 규모가 컸기 때문에 가장 부각이 많이 되고 치중되는 면이 있었지만, 여러 종목을 모두 포섭하는 다종목의 e스포츠 '클럽'이었다.

처음 감독은 이지호, 마지막 감독은 김현진. 스폰서는 IEG[2]였다. 팀명은 AMD 드림팀 - 헥사트론 드림팀 - 이네이쳐 탑 - eSTRO 순으로 변했다.

스타크래프트 이외에 카운터 스트라이크[3]도 있었으나, 계약 만료 후 운영난에 허덕였기 때문에 연장 계약을 못 하고 2009년 초에 위메이드 폭스에게 넘겼다.[4] 그 밖에도 헥사트론 시절에는 워크래프트 3 팀을 운영했으며[5], 해체 직전까지는 스페셜 포스 팀도 운영하였다.[6]

2. 역사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팀리그, 위너스 리그, GSTL 등 여러 스타크래프트 팀 단위 리그들이 존재했었을 시에 군인팀이라는 특수성이 있던 공군 ACE를 제외하면 프로팀들 중 유일무이하게 프로리그, 팀리그, 위너스 리그 포스트시즌 진출 경험이 전혀 없는 팀이자 명실상부 스타계의 최약체팀. 창단 당시에는 상위권 선수들이나 거쳐갈 만한 연봉과 대우로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에게 있어선 꿈의 팀으로 통했건만, 이후 프로리그, 팀리그 우승은 고사하고 해체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8위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프로리그 통합 후인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이후 해체까지의 성적을 비밀번호 형식으로 나열해 보면 BX[7]A99BCAA으로 8888577, 6668587667, 5886899678보다 심각한 성적이다. 그나마 엘롯기는 팬들도 많고 인기라도 많지, 이 팀은...[8]

드림팀으로서의 이미지가 남아있던 프로리그, 팀리그 통합 이전 2004년까지의 성적을 살펴봐도 8팀이 참가할 수 있었던 2003년 프로리그에서는 KTF 에버컵 6위, 네오위즈 피망컵 8위, 모든 11개 팀이 참가한 SKY 프로리그 2004에서는 1라운드 9위, 10팀 중에서 5팀씩 둘로 나눠진 2라운드부터는 2라운드 머큐리리그 5위, 3라운드 새턴리그 4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팀리그에서는 총 5번의 대회 중에서 유일하게 본선 진출에 성공한 것이 2003년에 열린 라이프존 KPGA 팀리그였고, 나머지 대회들은 죄다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본선에 진출했던 이 대회에서도 토너먼트 방식이었기 때문에 1번 지고 바로 광탈해버렸으며, 두 번의 위너스 리그에서도 에이스 카드의 부재로 부진하면서 차례대로 11위와 9위[9]를 기록했다. 즉, 이 팀이 이미지를 넘어서 실제 성적으로 스타크래프트 팀들 중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 적은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또한 프로리그에서는 정규시즌에 매 대회마다 항상 하위권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해체되는 날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적도 전무하고,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에 우승을 하거나 좋은 성적을 올리고, 혹은 정규시즌에서 승률이 좋으면 와일드카드로 진출할 수 있었던 통합 챔피언전이나 그랜드 파이널도 진출한 적이 당연히 단 한 번도 없다.

이 팀이 해체된 스타크래프트 2 이후로 범위를 넓혀봐도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을 끝으로 해체된 STX SouL마저 12-13 프로리그 우승을 일궈내며 스타 1 시절 존재했던 12개 프로게임단 중 만년약체 공군을 제외하면 유일무이하게 프로리그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프로팀으로도 남게 되었으며, 과거 e스포츠 연맹 소속이었던 프로게임단들이 모두 GSTL에서 우승은 물론이고 최소 포스트시즌 진출은 해 봤으며, 연맹에서 협회로 옮겨 온 IMPrime, MVP, Afreeca Freecs도 모두 GSTL에서 결승 진출이나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8개 프로게임단으로 재편된 이후 창단된 진에어 그린윙스도 훗날 마지막 프로리그인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6에서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눈물이 난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처음에는 AMD 드림팀으로 기욤 패트리,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장진남, 장진수, 조정현 등 강한 스타급 선수들이 활동하는 말 그대로 드림팀이었다.[11] 게다가 2003년까지만 하더라도 주축 선수들이 50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었던 등 비기업 스폰팀이 대부분이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프로게이머들에게는 드림팀이라는 팀명 그대로 꿈의 팀이었고(심지어 이 때는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 최연성, 강민, 박정석 등도 비스폰팀과 스폰팀을 오가며 어렵게 생활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유일한 외국파 감독이었던 이지호[12] 감독의 지휘와 뛰어난 수완 아래 2002년부터 나름대로의 활약을 보이며[13] SKY 프로리그 2004 3Round에서는 새턴리그에서 초반에는 상위권으로 선전을 하다가 이후 뒷심 부족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아깝게 실패하였다. 이때 개인전에서는 테란김동진, 저그안석열김갑용 - 장진수 팀플 조합이 활약을 하였으며[14][15], 연습생을 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아마추어들도 줄을 설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이 당시 못해도 온게임넷 스타리그MBC GAME 스타리그 본선은 꾸준히 올라가는 에이스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던 소수 정예 멤버들을 너무 믿었던 이지호 감독이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지 않은 탓에 이 선수들만을 지나치게 바라보다가 세대교체신인 선수 발굴에 실패하여 아마추어 연습생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후술할 기나긴 침체기를 만들고 말았다는 거다. 사실 프로리그 및 팀리그 등이 개막했던 2003년 무렵에도 선수들 대우는 좋은데 성적은 신통찮은 팀이었고, 마치 2007년 경의 KTF 마냥 공무원 이미지가 강한 팀이기는 했다. 사실 당시의 주축 선수들이 네임밸류는 높지만 사실상 선수 생활의 끝물에 접어들고 있던 선수들임을 감안하면[16][17] 당연지사이기도 했다. 결국 2004년 말에 이 주축 선수들이 모두 은퇴한 뒤에 극심한 부진에 빠지게 되었고, 2005년에는 그나마의 에이스였던 김동진마저 부진에 빠지고, 안석열은 팬택으로 이적하는 등으로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에서 꼴찌[18]를 기록하는 바람에 후기리그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된다.[19][20][21]

특히 프로리그를 비롯한 팀 단위 리그 체제가 본격적으로 확립되고 여러 비스폰 게임단들이 기업팀으로 정식 창단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 시점이 하필 드림팀 시절 주축 선수들이 모두 은퇴한 후 이네이쳐가 전기리그 최하위를 기록해 후기리그에 참가하지 못한 이 시점이다. 그나마 비슷한 처지였던 Plus는 오영종이 스타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르까프로 정식 창단되는 원동력이 되고 여러 선수들을 발굴해 프로리그 우승까지 달성한 반면 이 당시 이네이쳐는 양대 개인리그에서도 단 한 명의 본선 진출자조차 배출하지 못했고, 팀이 주춤한 시기가 하필 스타판의 대격변이 극심했던 시기였던 점 또한 eSTRO가 타 팀을 따라가지 못하고 해체 직전까지 단 한 번도 암흑기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저조한 내력만을 보여줬던 팀임에도 불구하고 프로리그에서는 팬들에게 불행한 약체팀이라는 이미지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는데, 이유는 2005 전기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후기리그 출전이 불발된 이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전까지 의외로 최하위는 기록한 적이 없었던 데다 2007년부터 프로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군인팀 공군 ACE의 존재 때문.[22] 덕분에 2008 시즌에 딱 한 번 그 만년 꼴찌팀이던 공군 ACE보다도 처참한 성적을 거뒀을 때에도 당시 스타팬들에게 그 무기력함이 거의 부각되지 않았으며[23], 이후에도 공군 ACE보다 2년 먼저 해체될 때까지 항상 프로리그 순위 하위권을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팬들은 보다 부진한 성적을 냈던 공군 ACE에게 더 주목을 했지 그런 공군 ACE를 놔두고 eSTRO에게 동정표를 더 줬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개인리그 또한 팀 단위 리그 못지 않게 저조하다. 우승자는 물론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에 진출한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조정현, MSL에서는 당신은 골프왕 MSL에 진출한 김동진 이후 2006년까지는 16강 진출자 및 스타리거가 단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공군을 제외한 11개 구단 중 유일하게 해체 직전까지 단 한 명의 개인리그 우승/결승 진출자도 배출해 내지 못했으며[24], 스타리그는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2002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기록한 4위, MSL은 KPGA 시절 장진남이 2002년 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 리그에서 기록한 4위, 비공식/기타 대회까지 범위를 넓혀봐도 기욤 패트리가 2002년 1차 GhemTV 스타리그에서 준우승을 기록하거나 피터 네이트가 WCG 2005에서 동메달을 수상한 게 이 팀 소속 선수들이 개인리그에서 이뤄낸 최고 성적들이다.[25][26]

그러다가 2006년 겨울, 신XX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 본선에 진출하고 이 대회에서 16강 진출을 하게 됨으로써 오래간만에 겨우 16강 리거 및 개인리그 본선 진출자를 만들게 되었고, 이후 신XX는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4위까지 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MSL에서도 곰TV MSL 시즌4에서 본선에 진출하여 8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선수 본인의 어리석은 짓거리로 인해 다 빛이 바래 버렸다. 그 외에도 곰TV MSL 시즌3부터 신상호가 2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하며 MSL에서도 본선 진출자를 배출했고, 서기수 또한 늦게나마 BATOO 스타리그 08~09 16강 등 3연속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거나 김성대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에서 8강에 진출하기도 했지만[27], 모두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실 헥사트론이 스폰서로 있던 시절의 주요한 성과는 스타크래프트 팀이 아니라 워크래프트 3 팀이었던 '헥사트론 EX'가 훨씬 더 좋은 성과를 올렸다.[28] 이재박을 필두로 하여 2004년에 개최된 마지막 워3 팀 단위 대회인 hello apM WEG에서는 당시 최강팀이었던 GSK를 상대로 아쉽게 패해 준우승을 기록하고, 4차 프라임리그에서는 이재박이 당시 최강의 언데드 중 한 명이었던 강서우를 상대로 승리를 차지하며 우승을 달성한다.

2.1. 2008년 상반기 시즌

개인리그에서의 침체는 프로리그에까지도 악영향을 끼쳐서 양 쪽 모두에서의 부진은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는 개막전 경기부터 시작해서 초반에 2연승을 기록하며 웬일로 전시즌들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나 싶더니만 역시나 현실은 시궁창. 신XX가 부진을 겪으면서 팀 또한 해당 시즌 공군 ACE조차 하지 않은 14연패까지 하며 꼴찌 12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29][30]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지 못하면 은퇴하겠다고 한 이지호 감독은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지 못하며 시즌을 마쳐 갈 무렵이던 2008년 6월 24일, 결국 진짜로 감독직을 사임하였고, 후임으로는 당시 팀을 이끌던 김현진 코치가 감독 대행이 되어 잔여 기간 동안 팀을 이끌어갔고[31], 다음 시즌을 앞두고 감독으로 승격하였다.

이렇게 개막장스런 모습으로 해당 시즌을 마감한 eSTRO에게도 2가지의 수확이 있었는데, 하나는 개인전, 팀전을 막론하고 가장 잘 해줬던 신대근이라는 걸출한 신예 발굴, 또 하나는 부진했던 개인전과는 달리 뛰어난 성적을 보였던 팀플레이였다는 것이다.[32] 그 팀플레이의 중심도 신대근이었다. 또한 신대근은 그 시즌 신인상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다.

시즌 종료 이후 김민구가 은퇴하였다.

2.2. 08-09 시즌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에는 초반부터 강한 팀 상대로도 에이스 결정전까지 가며 7연속 에이스 결정전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 위너스 리그 08-09 당시였던 2월 23일, STX전 신대근의 5~7세트 3킬 이후[33] 이스트로의 눈물이란 제목으로 헌사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시즌 최후반 위메이드 폭스를 꺾으며 3연승을 기록, 순위도 11위에서 10위로 올랐다. 08-09 시즌 마지막 상대는 웅진 스타즈. 이기면 팀 창단 최초로 4연승을 찍을 수도 있었으나, 세트 스코어 0:3으로 떡실신 패배를 당했다. 결국 08-09 시즌 최종 성적은 21승 34패 승점 -17. 10위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eSTRO의 비밀번호에 10이라는 숫자가 새로 추가되었다.[34]

8월 6일,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얄궂은 일이 생겼다. 2009년 첫 출범한 스페셜 포스 프로리그 결승전에 진출한 eSTRO 스페셜 포스팀이 KT 매직엔스[35]를 3:2로 누르고 광안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김현진 감독은 나름대로 아픔을 씻었다고 인터뷰했지만[36], 현장에서 스포팀의 우승 광경을 보던 신XX신대근, 서기수의 마음은 아마 기쁘고도 씁쓸했을 것이다.[37] 아무튼 이로서 eSTRO도 팀 내에 주력으로 삼을 종목이 생겼다.[38] IEG 단장도 인터뷰를 통해서 화끈한 보상을 약속했다.

이보다 앞서서 8월 3일부터 시작된 경남-STX컵에서 첫날에는 위메이드 폭스를 3:3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고, 8월 5일 MBC GAME HERO와의 경기에서는 신인 신재욱이 놀랍게도 올킬을 하는 활약을 보이며 승리했다. 그리고 어려울 거라 예상되었던 웅진 스타즈와의 경기에서도 신상호의 좋은 활약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8월 12일KT 매직엔스에 패하며 연승 행진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래도 3연승을 하는 동안의 기세는 아주 좋았다.

시즌 종료 이후인 8월 30일, eSTRO 프런트는 前 KOR - 한빛 스타즈 소속의 저그 유저였던 신정민코치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선수 출신으로 풍부한 경험을 자랑했던 신정민이 저그 에이스인 신대근과 백업 카드인 김성대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기대가 컸다. 사실 이런 주 목적보다, 사람들은 신스트로에 신씨가 또 하나 늘었네 하며 즐거워했다. 이로서 팀 내의 신씨는 현직 선수들인 신상호, 신대근, 신재욱 등에 이어 코치 신분으로 영입된 신정민까지 모두 네 명이 됐었다.

2.3. 09-10 시즌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에서는 첫상대였던 kt 롤스터에게는 1:3로 졌지만, 바로 다음 경기에서 전 시즌 우승팀인 SKT T1을 3:1로 이기며 딱 5할이 되었다.

참고로, 나중에 비공식적인 정보를 통해 2008 시즌에 나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었던 테란 유저 남승현이 09-10 시즌 2라운드 도중이던 12월 9일, kt 롤스터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KT측 오피셜 홈페이지에 나오는 방 배정 목록에도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확정인 듯 했고, 실제로도 확정되었다.[39] 그리고 3주 뒤인 12월 30일에는 이호준도 하이트로 이적.

09-10 1라운드를 공동 5위로 마감했다. 아주 괜찮은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eSTRO의 11월 성적은 4승 2패라는 아주 좋은 성적이었다.

2라운드 접어든 때에는 연승이 끊기고 라운드 첫 패배. 그래도 초반엔 6위권을 지키고 있었다. 사실 12월 12일세탁소와의 경기에서도 이겼으면 꿈에서도 그리던 팀 최초의 4연승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하필 이날도 패하고 말았었으니...

5할 본능으로 스갤 등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팀 전체의 승률도 그렇고, 소속 선수들도 유난히 승률이 5할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묘해서 붙여진 별명이 5할스트로(...). 물론 이건 08-09 시즌대의 이야기이고[40] 09-10 시즌 들어서는 6 ~ 70%의 승률을 자랑하는 에이스 박상우의 활약에 힘입어 간신히 5할 본능을 벗어나고 있는 중.[41]

1월 10일, CJ 엔투스, 위메이드 폭스 등에 이어 09-10 시즌 kt 롤스터의 결계를 뚫은 팀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 쪽은 논개작전 따위도 쓰지 않고 삼대떡으로 결계를 뚫는 위업을 달성했다!!![42]

1월 18일, 위메이드 폭스를 3:2로 꺾었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에이스인 박상우전태양에게 패배했지만, 박상우는 에이스 결정전에 출전, 1경기에서 본인이 당한 전략을 그대로 사용해 박성균에게 승리를 따냈다. 이날 승리로 1라운드 6승 5패/2라운드 5승 6패, 도합 11승 11패 5할 승률을 따낸다.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개막 첫날인 1월 24일, 신대근의 2킬[43]김성대조병세를 잡아내고 신XX김정우치즈러쉬로 잡아내어 09-10 시즌 CJ전 3연승을 기록한다. 특히, 이날 경기는 박상우가 무너졌음에도 승리를 따내서 더 의미가 크다. 한편, 1경기의 마재윤의 컨트롤은 예술이었다. 1월 24일 기준 12승 11패. 게다가 윗 자리에 앉아 있던 SKT T1이 다음 날 위너스 리그 첫 경기를 패배하는 바람에 공동 5위에 복귀했다!! 그리고 1월 27일, 공군 ACE을 꺾으며 1승을 추가해서 13승 11패로 단독 5위였다.

유명 팀의 그늘에서 암약하고 있는 많은 eSTRO 팬들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며칠 후 2월 로스터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eSTRO의 주장 서기수가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코치로 돌아서서 많은 팬들이 탄식하고 있다. 서기수의 공백을 메울 새 주장 자리는 당시 팀 내에서 경험이 제일 풍부했던 신XX가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4월 로스터에선 신XX말소되고 대신 박상우가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된 상태. 그런데 신희승의 실제 로스터 말소 사유는 사실... 그리고 서기수도 동년 5월, 코치직을 그만 두었다.

나중엔 포모스이런 글이 올라와 뭇 이스트로빠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1월 30일, 삼성 칸과의 경기에서는 위너스 리그 들어 흑스막에서 흑운장으로 돌아온 이성은에게 신재욱, 신희승, 김성대 등이 차례로 죽죽 발렸지만 박상우이성은, 차명환, 허영무 등을 차례로 잡아내어 동률까지 이끌어냈고, 삼성에서는 대장으로 송병구가 출전했다. 잘하면 역올킬은 물론 당시 박상우는 테프전 12연승 중이었는지라[44] 송병구전도 이기면 13연승을 할 수도 있었지만, 접전 끝에 패배하였고, 연승도 끊어졌다. 더불어서 또다시 이스트로는 4연승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박상우가 4 ~ 7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이 너무 좋았기에 비록 패배했지만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하마터면 0:4로 털릴 뻔한 걸 3:4까지 끌고 갔으니... 특히, 이날 6경기에서 박상우가 보여준 옵티컬 플레어 활용이야말로 이 경기의 최대 정점. 옵저버가 센터에 대여섯기가 둥둥 떠 있는데, 스파이더 마인을 밟는 드라군테란 본진에 홀로 외롭게 버려진 셔틀을 볼 수 있다. 이 경기까지 마친 결과 이스트로의 1월 성적은 5승 3패.

2월 2일, T1과의 경기에서는 정명훈에게 신대근, 박상우, 김성대, 신XX 순으로 패배. 25경기를 치르는 동안 3:0으로 이긴 적은 있어도 0:3으로 패한 적은 없었는데, 결국 올 시즌 첫 스윕패이자 팀 창단 후 첫 올킬패[45]를 기록한다. 13승 13패, 승점 +1. 박상우 하나로는 역시나 힘든 걸까?

2월 7일. 화승 OZ를 상대로 신XX 1킬[46], 박상우 2킬[47], 신대근 1킬[48] 등으로 4:2로 승리하면서 2연패에서 탈출했다.

그런데 사흘 뒤인 2월 10일, kt 롤스터에게 4:1로 패해서 14승 14패[49]에 6위. 어?!

KT전을 시작으로 이후로는 계속 패하며 5연패까지 했는데[50], 3월 14일, 웅진 스타즈를 상대로 김성대가 팀 역사 최초의 올킬을, 그것도 선봉올킬로 기록하며 연패 탈출은 물론 이번 시즌 위너스 리그 최종전 승리로 유종의 미를 거둔다. 이 올킬은 안타깝게도 이스트로의 처음이자 마지막 올킬이 되었다.

그리고 신XX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로스터에서 제외된 후에 치러진 프로리그 4라운드. 시작하자마자 2연패로 수렁에 빠지는가 했더니 4월 20일, STX SouL을 상대로 3:0 완승을 이끌어 내면서 순식간에 8위로 복귀했다.

그러나 4월 25일, CJ 엔투스에게 3:1로 패하면서 승패가 고만고만한 중하위권 박스에서 10위까지 떨어졌다가 공군 ACE - 하이트 스파키즈 - 삼성전자 칸 등에게 3연승하면서 다시 7위로 복귀했다.

참고로, 4라운드 중반에 유망주 강석이 하이트로 이적하였다.[51]

그러나 5라운드 들어 2010년 6월 2일에 있었던 공군 ACE 상대로 3:1 승리를 거둔 이후 4연패를 기록하며 9위 웅진 스타즈와 게임차가 점점 벌어지며 10위로 굳어져 가며 비밀번호가 또다시 추가될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2010년 7월 5일, 하이트 스파키즈를 상대로 승리하며 선전했지만, 2010년 7월 11일 웅진 스타즈와의 프로리그 마지막 경기이자 영원한 eSTRO의 마지막 공식전 경기[52]에서 2:3으로 패하며 최종 성적 23승 32패, 승점 -10으로 최종 성적 10위를 기록했다.

2.4. 해체

2010년 8월부터 모 팀이 구단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루머가 흘러나왔으며, 매각하지 못할 경우 팀을 해체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팬들 사이에서는 승부조작 가담자가 다수 나온 스파키즈가 아니냐는 추측이 우세했으나, 2010년 9월 17일에 언론을 통해서 eSTRO의 운영사인 IEG가 eSTRO의 운영을 포기한다는 공식적인 기사가 보도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2010년 8월 초에 숙소와 연습실의 임대 계약이 종료되었고, 소속 선수의 남아있던 개인리그 일정까지 모두 마무리되자 8월 말에 마지막 급여 지급과 함께 선수들과 계약을 종료하였다고 한다. 사실상 프로리그가 종료된 후부터 실질적인 게임단 운영은 전혀 안 하고 있던 상태. 부진한 팀 성적승부조작 등의 여파도 있었지만, IEG가 블리자드와의 중계권/저작권 분쟁으로 인해 장사가 안 되자 팀을 해체하고 e스포츠판에서 철수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53] eSTRO와 마찬가지로 이후 협회에서 발언권 얻으려고 창단했던 팀들인 스파키즈MBC GAME 또한 각각 승부조작 사건과 저작권 분쟁 등의 후유증으로 이후 차례차례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54]

이후 KeSPA(한국e스포츠협회)에 매각을 위탁하였으나, 별다른 경과는 없었다. 10-11 시즌 개막 전까지 매각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해체 후 소속 선수들은 드래프트를 통해서 타 팀으로 이적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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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팀 로고들을 전부 모아놓은 스갤의 자짤에도 eSTRO의 로고는 없다. 그래서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스갤의 분위기를 더 다운시키는 중. 결국 새 시즌 개막을 사흘 앞둔 2010년 10월 13일, eSTRO를 위탁운영하고 있는 KeSPA는 IEG의 운영포기 선언 후 두 달 동안의 유예기간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팀 해체를 결정하였다.

이로서 AMD 드림팀 - 헥사트론 드림팀 - 이네이쳐 탑 - eSTRO로 이어져 온 한 팀의 역사가 마감되었다. 창단 후 해체까지 끝내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함과 동시에 공군 ACE를 제외하면 어느 팀이나 한 번씩은 해 본 프로리그 우승/포스트시즌 진출, 개인리그 우승자/결승 진출자 배출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55]

이후 eSTRO 1~2군 소속의 선수들은 공군을 제외한 나머지 9구단의 의무 지명이 이뤄지면서 타 팀으로 드래프트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선수들의 거취소식은 해당 선수 목록 참고. 스타크래프트 팀 고별 기념촬영, 스페셜 포스 팀 고별 기념촬영.

2.5. 공포의 외인구단

그 역사로 인해 팬들에게 외인구단같은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했다. 솔직히 성적이 그리 좋은 팀이 아니어서 영 갈데가 없고 타 팀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한때는 잘 나갔지만 전성기가 지나간 선수들이 가는 곳이기도 했다. 초기 빅터 마틴, 기욤 패트리,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피터 네이트[56], 브라이언 프렌지올리[57] 등의 외국인 선수들로 시작하여 이기석[58], 김갑용 등의 원로 게이머가 있는가 하면, T1에서 방출되다시피하여 쫓겨나온 김현진이나 송호창과의 갈등으로 팬택에서 나온 이재항[59]서기수, 김철 시절의 KTF에서 이적해 온 이병민 등이 있었다. 어딘가 팀 구성원들이 주류에서 먼 이미지를 보였고, 실제 성적도 그리 좋지 못했다. 대부분이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은퇴했지만, 조용성의 은퇴식을 위해 중계진에게 마이크를 빌리고 춤을 춘 이지호 감독의 선수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했고, 스폰서를 잡는 능력이 뛰어나서 대부분 커뮤니티에서 안티는 없었다.[60][61][62]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한 가지가, 바로 이 eSTRO가 흔히 가난한 팀인 줄 안다는 것. 그러나 eSTRO의 창단 기업인 IEG는 국내/해외 e스포츠 중계권을 획득하고 있는 매니지먼트 업체이며, IEG의 모기업인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프로야구K리그의 중계권까지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 중계권 회사다.[63] 그러므로 이 팀은 절대로 가난하지 않다. 이 없던 건 이네이쳐 시절까지의 이야기고, 사실 전 감독인 이지호 감독은 그 당시에도 단 한 번도 선수들을 굶기거나 연봉 지급을 미뤄본 적이 없었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한데 대부분의 팀들은 스타 플레이어를 보유하거나, 소속 선수의 개인리그 우승이라든지, 높은 프로리그 성적을 기록하는 등의 결과물을 가지고 기업들과 접촉해 스폰서를 따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리온의 후원이 종료된 후 4Union이라는 비스폰 팀으로 활동하던 주훈 감독이 SKT T1으로의 정식 창단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임요환최연성, 박용욱 등의 스타플레이어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화승 오즈가 창단하는 과정도 결국 조정웅 감독이 오영종을 스타리그 우승자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어떻게든 오영종을 스타리그 우승 후에도 팀 선수로 데리고 있었으며, 팀 정식 창단과 같은 시기에 열린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이제동 등의 여러 유망주들도 떠오르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위메이드 폭스와 그 전신인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도 이윤열, 이병민이라는 스타 플레이어의 존재 덕분에 창단이 가능했고, 위메이드의 인수 또한 팬택이 자금난을 겪는 와중에도 이윤열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용호, 변은종 이적 후 약팀이었던 SouL도 여성 게이머인 서지수가 있었기에 STX네이밍 스폰서를 거쳐 정식 창단을 이끌어냈으며, 강민, 김정민, 박태민, 전상욱 등 주축 선수들의 이적이 잦았고 슈마일렉트론의 부도로 인해 비스폰 팀으로 활동하던 GO도 서지훈, 마재윤 등의 스타 플레이어가 끝까지 남아있지 않았다면 CJ 엔투스로의 창단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공군 ACE의 경우에도 임요환의 군입대 이슈가 없었다면 창단 자체가 불가능했으며, GO와 마찬가지로 박정석, 변길섭, 나도현 등 핵심 선수의 이적이 잦았던 한빛 스타즈를 인수한 웅진의 경우에도 김준영, 윤용태라는 핵심 선수가 있었기에 인수가 가능했다. 주축 선수들의 현금 트레이드로 연명하던 MBC GAME HERO박성준박지호라는 스타 플레이어가 존재했고 염보성, 김택용, 이재호 등의 유망주들도 떠오르고 있었기에 이고시스 POS를 거쳐 MBC GAME으로 정식 창단되었으며, 11팀 중 가장 마지막으로 스폰서를 얻은 하이트 스파키즈의 전신인 KOR도 전태규, 차재욱 등과 팀 역사상 유일한 개인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당시 엄청나게 떠올랐던 한동욱이라는 스타 플레이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지호 감독은 초창기 5인방이 모두 은퇴 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이렇다 할 스타 플레이어가 없었던 상황에서도 큰 규모가 아닐지라도 어떻게든 스폰서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성적 부진을 돈 없음과 결부해서 보는 것인지, 많은 스덕들은 eSTRO가 X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팀인 줄 알았다. 하지만 팀 해체 후 뿔뿔이 흩어진 전 eSTRO 소속 선수들의 인터뷰나 개인방송에서 푼 을 보면, 타 게임단보다는 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쪽도 스파키즈MBC GAME HERO 등과 마찬가지로 협회에서 발언권, 의결권을 얻으려 창단한 팀이었다는 한계가 있었으니깐...[64]

그나마 온게임넷 스파키즈와 MBC GAME HERO 등은 그래도 성적이라도 괜찮게 냈다지만, 이 팀은 애초에 성적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으니... 성적 따윈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는 이야기. 오죽하면 이 팀의 3군 연습생 출신이었던 임홍규가 훗날 개인방송에서 밝힌 사실에 따르면 감독이 숙소에 자기 친구들을 불러서 을 마신다든가, 연습 시간에 코치까지 선수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는 등 그야말로 개판 5분 전 수준으로 팀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니 성적이 잘 나올 리가...

그 외에도 헥사트론~이네이쳐 탑 시절이었던 2004~2006년에 온게임넷 인터렉티브 오락 프로그램인 비비빅/후비고에 장진남, 장진수 형제가 출연하거나 퀴니[65]에서 광고한 젠가, 모노폴리, 인생게임[66] 보드게임 광고에 이 팀 소속의 신상호, 조용성, 정영주 등이 출연하는 등 선수들이 홍보에 불려가 연습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기량에 지장이 가는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AMD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의 헥사트론~이네이쳐 탑 시절이나 eSTRO 이후나 어쨌든 열악한 환경은 도찐개찐이었던 듯 하다.[67] 물론, 해체된 이제 와선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한때 동정표에 팬들도 많았으나, 14연패나 나중에 신상호 이야기 때문에 발전도 없는 팀이라고 점점 까였다. 그러나 신상호 이야기도 루머로 밝혀졌고 화승을 상대로 3:0으로 이겨 연패까지 끊었다. 08-09 4라운드 들어 상승세를 타고, 중반부에 3연승도 기록 중이었다.[68] 물론 플레이오프는 멀어 보이지만, 항상 무언가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지켜볼만한 팀이다. 어느샌가는 선수농사도 잘 해서 올 시즌보다는 내년, 내후년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었다. 예전에 비해 팬도 늘었다.[69]

이 팀의 굴욕적인 장점이라고 한다면 스타크래프트 리그에서는 성적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에 반해,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 엄청나게 강한 면모를 보인다는 점이다. 워크래프트 3, 스페셜 포스 프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도 그렇고 또 다른 예를 들면 프로 구단 간의 친목도모를 위한 축구대회에서 다득점과 다승을 휩쓸며 폭풍처럼 1위를 차지, e스포츠계의 정형돈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팀은 별명도 상당히 많은데, 경기를 하면 십중팔구는 에이스 결정전까지 가기 때문에 에결스트로, 팀원들의 약간 거칠어보이는 외모와 싸이월드에서의 거친 글과 팀원끼리 자주 때린다는 말 때문에 현피스트로, 또한 각종 현피의 이미지와 도토리 사기사건, 그리고 박상우노태우대통령과 닮아서[70] 비리스트로, 신씨가 유난히 많은 팀인데다가 그 신씨들이 다들 주전인지라 신스트로, 인터뷰에서 신XX와 신대근이 박상우가 남자를 좋아하여 잘 때 신대근을 괴롭힌다라고 고발하여 게이스트로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네이쳐 탑 시절에 프영호, 이제동, 신상문, 허영무, 유준희 등의 선수들이 아마추어 시절에 연습생으로 들어오려고 신청했던 적이 있는데 그걸 내치거나 김택용, 한상봉, 김윤환, 이성은, 윤용태를 지명할 기회가 있었던 2005년 하반기 드래프트에 불참한 기록도 있다. 결과론적이지만 지금 와서 그걸 생각하면 정말 억울할지도... # 이 일을 두고 스갤에선 프런트가 멍청하니 팀이 고생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당시 어느 게임단이던 수많은 연습생들이 몰리던 시절에서 당시의 저 선수들을 뽑아놓고는 언제 클 줄 알고 본좌급 선수로 성장해 달라며 마냥 기다려 줄 수 있겠는가? 물론 박상우, 신대근, 김성대, 신재욱 등 후기 주축 선수들이 APM이 높거나 전략성이 있어도 기본기가 제대로 잡혀있지 못했거나 최지성, 김도우, 주성욱, 원이삭, 백동준스타크래프트 2 전환 후 흥한 선수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선수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이스트로 프런트/코치들이 잘했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3. 유니폼

eSTRO/유니폼 참조.

4. eSTRO의 역대 선수들

파일:AMD시절의 기욤패트리.png

유독 이 팀 소속 선수들이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다가도 소리소문없이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윤열에게 인페스티드 테란 자폭 관광(일명 원기옥 관광)을 보여준 김원기로스트사가 MSL 2009 조지명식에서 육룡에게 도발적인 발언으로 유명해진 박문기, 그리고 임요환의 뒤를 이은 전략형 테란으로 활약했다가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당한 신XX 등.

링크를 일일이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묘하게 스타2에서 잘 풀린 케이스가 많다. 예외적으로 유병준의 경우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가 되었다.[71]

우선 은퇴한 선수들 중에도 GSL 오픈시즌 초대 우승자 김원기[72], 베타 시절을 풍미했던 서기수, 해외 대회에서 한동안 이름을 날렸던 이호준 등 네임드 선수들이 많다. 활약이 조금 적지만 최근 신재욱도 추가.

2013년 기준으로 이 팀 출신의 스타2 선수들이 군단의 심장에서 그대로 한 팀을 이루었다면 협회 연맹 불문하고 최강이었을 듯. 저그라인은 신대근, 김성대 밖에 보이지 않는 건 아쉽지만 백동준[73], 원이삭[74], 김도우[75], 주성욱[76]에 신재욱[77], 신상호까지 기용 가능한 토스라인은 그 물량과 스타일의 다양성 면에서 타팀과의 밸런스 붕괴를 일으켰을 것이다.[78] 테란에는 군단의 심장에서 완전히 부활한 최지성이 있었을 테고. 묘하게 이신형+신대근+각기 스타일 다른 4토스로 우승한 STX SouL이 오버랩되는건 기분 탓... 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멤버가 3명이나 겹친다. 스타1 커리어가 있었던 신대근과 김도우는 eSTRO 해체 당시 바로 STX SouL에 영입되었고, 2군 선수였던 백동준은 화승으로 갔으나 다시 화승의 해체 탓에 STX SouL에서 이들과 재회했다. 그리고 STX SouL도 STX의 운영 포기로 인해 비기업팀으로 잠시 활동했다가 결국 해체... 한마디로 각각 팀 해체만 3번 이상 겪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2014년에는 2014 HOT6 GSL Season 1에서 주성욱이, 2014 HOT6 GSL Season 2에서 김도우가 차례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팀 출신 프로토스 우승자는 무려 4명이 되었다. 원이삭이 군단의 심장 초기에 비해 폼을 많이 회복했고 해외팀에서 커리어가 꼬인 백동준 또한 삼성 갤럭시 칸에 입단하면서 이스트로 출신 토스들의 깡패질은 당분간 계속될 듯...[79]

5. 역대 팀 성적

5.1.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AMD 드림팀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3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6위/8팀 12 3 9 0 -14 진출실패
2003 neowiz Pmang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8위/8팀 7 1 6 1 -12 진출실패
헥사트론 드림팀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4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9위/11팀 10 3 7 0 -6 진출실패
2004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머큐리 5위/5팀 8 3 5 0 -3 진출실패
2004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새턴 4위/5팀 8 3 5 0 -4 진출실패
이네이쳐 탑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5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11위/11팀 10 1 9 1 -20 진출실패
2005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탈락
2006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10위/11팀 10 3 7 0 -11 진출실패
eSTRO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6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9위/11팀 10 4 6 0 -5 진출실패
2007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9위/12팀 22 9 13 1 -33 진출실패
2007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1위/12팀 22 6 16 1 -22 진출실패
2008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12위/12팀 22 4 18 1 -33 진출실패
2008-2009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10위/12팀 55 21 34 0 -17 진출실패
2009-2010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0위/12팀 55 23 32 0 -10 진출실패

5.2. MBC GAME 팀리그

AMD 드림팀
년도 리그 경기 세트승 세트패 벌점 승점 결과
2003 계몽사배 KPGA 팀리그 탈락
2003 라이프존 KPGA 팀리그 1 0 1 3 4 0 -1 공동 5위
2003 LG IBM MBC GAME 팀리그 탈락
헥사트론 드림팀
년도 리그 경기 세트승 세트패 벌점 승점 결과
2004 Tucson MBC GAME 팀리그 탈락
2004 MBC MOVIES MBC GAME 팀리그 탈락

5.3. 위너스 리그

eSTRO
년도 리그 리그 순위 경기 세트승 세트패 벌점 승점 포스트시즌
2008-2009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 11위/12팀 11 3 8 32 39 0 -7 진출실패
2009-2010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10위/12팀 11 4 7 29 35 0 -6 진출실패

6. 기타


[1] 산하 채널로 SPOTV가 있으며, 훗날 SPOTV GAMES를 개국하였다.[2] 인터네셔널이스포츠그룹(International E-sports Group)의 약자.[3] Project_kr을 후원했다.[4] 위메이드 폭스 역시 재정난으로 2011년 초에 포기했으며, 이후 Project_kr은 StarTale, MVP 등 여러 팀의 스폰서를 받았다.[5] 이데 EX를 인수해서 헥사트론 EX로 활동했었다. 이재박, 김승엽 등이 속해 있었다. 이후 eSTRO로 바뀐 후에도 김동문이 이 팀에 속했었다.[6] 세미 프로팀인 e.sports-united을 지명하여 창단하였다.[7] 2005 후기리그 탈락[8] 물론 KBO 리그와 브루드워 판의 규모 차이도 있다.[9]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에서는 정확히는 공동 9위로, 똑같이 위너스 리그 약체 구단 중 하나인 위메이드 폭스와 순위가 같다.[10] 그래도 제2회 KeSPA Cup에서는 르까프 오즈와 함께 공동 3위를 차지한 적은 있다. 하지만 KeSPA Cup은 당시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과거의 팀리그, 이후에 생겨난 위너스 리그에 비해 비중과 위상과 화제성도 떨어진 통에 골수 스덕들도 이 대회를 잘 몰라서 이 부분조차도 팬들에게 덜 부각된다(...). 무엇보다 제2회 KeSPA Cup이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흑역사급 대회였던 것도 컸다.[11] 이후 이 기믹은 스1 말기에 만들어진 제8게임단에도 쓰이게 된다.[12] 초기에는 대니얼 리 명의로 활동하다가, 수소문 끝에 자신의 대한민국식 이름을 찾고 나서는 협회를 통해 정식으로 등록명을 바꿨다.[13] 다만 2002년은 프로리그와 팀리그가 존재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프로리그, 팀리그 참가는 2003년부터였고, 또한 이 시기엔 이미 소속 선수 대부분이 슬럼프에 빠진 무렵이라 프로리그와 팀리그에서 강호의 면모 같은 건 사실상 없었다.[14] 이 때는 각 리그별로 5개 팀이 소속돼 있었다.[15] 김갑용 - 장진수 조합은 프로리그 2004 3라운드에서 팀플 다승왕을 차지하였다.[16] 장진남, 장진수, 조정현, 베르트랑 등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2002년과 2003년 경에도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등의 톱급 선수들에게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게다가 네 선수 모두 2004년에 접어들면서 전부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렸다. 대표적으로 장진남은 스타리그에서 임요환, MSL에서 이윤열에게 패해 우승에 실패하는 등 임요환, 이윤열은 장브라더스의 대표 천적으로 활약했고, 베르트랑의 WCG 은메달, 스타리그 4강도 임요환, 조정현의 스타리그 4강, 왕중왕전 준우승도 홍진호에게 패해 막힌거다. 기욤 또한 라스트 1.07 특별전에서 임요환을 상대로 0:3 셧아웃을 당하면서 시대 최강자의 교체를 알렸다.[17] 또한 조정현 같은 경우에는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 기간에 뜻하지 않은 손가락 부상으로 인한 기량 저하, 장진남 - 장진수 형제는 당시 온게임넷에서 진행하던 각종 오락 프로그램 출연으로 인해 연습 부족으로 인한 기량 저하, 베르트랑은 해외 비자 문제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랜덤 종족 출전 강행으로 인한 감각 저하 등도 부진의 원인이었다.[18] 유일하게 1승을 기록한 경기도 처음으로 프로리그에 여성 선수를 출전시킨 SouL과의 경기였다. 이 팀 역시 이네이쳐 탑 다음으로 순위가 낮았다.[19] 당시에는 11개 팀밖에 없던 관계로(공군 에이스가 프로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한 때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때였다.) 2005년은 리그 최하위가 자동으로 차기 리그 진출이 불가하였으며, 그 전 해인 2004년 프로리그 당시에는 1라운드에 최하위를 한 팀이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고, 이후 2라운드에서는 각 리그 하위 2팀이 겨루어 패배하는 팀중에서 패배한 팀이 다시 1라운드 팀과 붙어서 이 경기에서 패한 팀이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되는 구조였다. 그 당시에 헥사트론 드림팀과 Plus(나중에 르까프 오즈로 개명했다가 2009년에 화승 오즈로 또 개명.)는 다음 리그 진출권을 놓고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는 당시 팬들에게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절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당시 머큐리리그 꼴찌팀 헥사트론이 붙은 새턴리그 꼴찌팀이 1라운드 준우승팀 SKT였다! 이 경기에서 헥사트론은 T1과의 경기에서 패하고, 이후 3라운드 진출전에서 헥사트론이 Plus를 상대로 3:2로 승리하며 차기리그 진출권을 보장받았다.[20] 반면에 팀리그에서는 Plus가 동시기에 개최된 투싼배 팀리그와 MBC MOVIES 팀리그 본선 무대에 진출하고 헥사트론 드림팀이 예선에서 탈락하는 반대 상황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진출한 팀리그 본선 무대에서도 Plus는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21]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이후 각 팀 감독과의 협의 끝에 그 해 최하위 팀이 다음 시즌에 나오지 못하는 규정은 다행히 삭제되었다.[22] 2006 전기리그 10/11위, 2006 후기리그 9/11위, 2007 전기리그 9/12위, 2007 후기리그 11/12위. 당시 이스트로보다 하위권에 있었던 팀은 STX(2006 전기), KTF, 팬택(2006 후기), 팬택, 한빛, 공군(2007 전기), 공군(2007 후기)이었다. 이 당시 KTF는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세대교체 실패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으며, 팬택과 한빛은 모기업이 재정난을 겪던 시기였다.[23] 사실 해당 시즌은 공군 ACE의 존립 여부 자체가 타당한지를 놓고 스타팬들부터 일반 대중들까지 갑론을박을 따지고 있었던 때인지라 공군 ACE가 eSTRO보다 프로리그 성적을 더 좋게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맹활약이 전혀 빛이 나지 않았던 시기였다.[24] 참고로 스타크래프트 2를 포함해 스타 1 시절부터 존재했던 공군, eSTRO를 제외한 10개 프로게임단이 배출한 우승자는 다음과 같다. 단, 그 팀 소속이기 전에 거둔 우승은 제외. SK텔레콤 T1: 최연성, 박용욱, 김택용, 정명훈, 정윤종, 이신형, 김도우, 박령우/kt 롤스터: 이윤열, 조용호, 이영호, 박찬수, 주성욱, 이승현/CJ 엔투스: 서지훈, 강민, 박태민, 마재윤, 김정우, 신동원, 김준호/삼성 갤럭시: 송병구, 허영무, 신노열, 강민수/STX SouL: 박성준, 김윤환, 백동준/웅진 스타즈: 김동수, 변길섭, 박정석, 김준영, 김민철/화승 오즈: 오영종, 이제동, 박지수/위메이드 폭스: 이윤열, 박성균/MBC GAME HERO: 박성준, 김택용/하이트 스파키즈: 한동욱.[25] 베르트랑 외에도 기욤 패트리, 장진남, 조정현 등이 개인리그에서 거둔 성적도 4강, 준우승, 우승으로 준수한 편이기는 한데, 문제는 이게 모두 이 팀이 창단되기 이전에 올린 성적이란 거다. 3위 1회의 김현진도 IS 시절에 올린 성적이고, 준우승 1회, 4위 4회의 이병민도 팬택과 KTF 시절에 올린 성적이고...[26] 참고로, 팀의 에이스라는 신희승의 커리어나 실력을 두고 다른 팀 에이스 플레이어와 수준 차이가 존재하며, 이것이 결국 이스트로의 성적이 부진하게 된 단초라는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27] 이 8강전 경기가 eSTRO 팀 전체의 마지막 공식전 경기이다. 그럭저럭 유종의 미를 거둔 셈.[28] 비슷한 예로 삼성전자 칸이 있었다. 이 당시에는 스타크래프트 팀이 송병구가 등장하기 전인데다가 환경 역시 이 팀처럼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29] 공군 ACE가 있던 시즌에 유일하게 꼴찌를 한 팀이다. 하다 못해 주축 선수들이 대거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하이트 스파키즈조차도 09-10 시즌에 공군에 앞선 11위를 했고, 이재호의 트레이드 이후 선수층이 붕괴되어 2군급 0승 클럽 선수들까지 마구잡이로 써야 했던 MBC GAME HERO도 10-11 시즌에 공군에 앞선 9위를 했으며, 해체된 팀의 선수들로 이루어진 극도로 얇은 선수층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심각한 전력난에 시달렸던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 당시의 제8게임단조차도 공군에 앞선 7위를 했다. 게다가 제8게임단은 바로 다음 시즌에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는 성과를 거두기까지 했다.[30] 이후 다행히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에 공군이 18연패를 하면서 이스트로의 기록을 본인들이 갈아치우면서 이스트로는 그런 부끄러운 타이틀은 공군에게 넘겨줬다. 한편 이후 공군은 바로 다음 시즌에도 두자릿수 연패를 하면서 전 시즌의 재림이 되는가 싶었지만, 다행히 16연패에서 끝나면서 바로 전 시즌의 연패에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31] 정작 사임 이틀 전에는 본인들의 연패를 시작하게 만들어줬던 MBC GAME HERO를 꺾고 14연패에서 탈출했고, 또한 이지호 본인이 사임한 바로 다음 날에는 KTF 매직엔스를 꺾고 2연승을 기록했다.[32] 그러나 그 팀플레이는 해당 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지가 되면서 부질없게 되었다.[33] 이날 신대근은 7세트 승리 이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34] 당시 eSTRO보다 하위권에 내려앉은 두 팀은 팀 내 분위기가 최악이었던 위메이드 폭스와 군인팀이자 만년 승점자판기 공군 ACE였다.[35] 대회 초반에는 세미프로팀 RePute였으나, 도중에 KT 매직엔스로 인수되었다.[36] 공교롭게도 제노스카이 사건 또한 광안리에서 있었다.[37] 후에 신상호승부조작 사건 이후 출연한 스타 뒷담화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했는데, 스포팀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수들끼리 언젠가는 우리도 광안리 무대에 서보자는 약속을 했었단다. 이 이후 불과 1년만에 팀이 해체되어 선수들도 타 팀으로 흩어지고, 09-10 시즌 결승전이 마지막 광안리 결승전이 된 것을 생각하면 매우 씁쓸한 이야기다. 그나마 eSTRO 해체 후 김성대가 KT 소속으로 10-11 시즌 우승을 경험했으며, 신대근, 백동준이 스타 2 전환 후 12-13 시즌 STX 소속으로 우승, 신재욱이 웅진 소속으로 준우승하였다.[38] 그러나 스페셜 포스 팀도 그 이후로는 번번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다.[39]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이후 승리가 전혀 없던 남승현은 KT로 이적한 뒤로도 프로리그고 개인리그고 여전히 1승도 거두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까지 연패를 끊지 못한 채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나마 박카스 스타리그 2010 36강에 진출하기는 했다.[40] 근데 이 때 박상우신대근 등의 전적을 확인해 보면 정말 절묘하다.[41] 그래도 2010년 1월 5일 기준 9승 10패 승점+1 로 아직 5할 근처에 있었다.[42] 이영호가 4세트에 나와서 삼대떡이 나온 것도 아니다. 당시 테테전 22연승이었던 이영호박상우에게 테테전에서 떡실신.[43] 마재윤, 진영화.[44] 단, 이 12연승이 죄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만 기록한 것들이라는 게 함정이다.[45] 지난 위너스 리그 때도 올킬승을 기록한 적은 없었어도 최소한 올킬패를 당한 적은 없었는데, 이 경기를 통하여 본인들도 첫 올킬패를 기록했다.[46] vs 구성훈.[47] vs 박준오, 김태균[48] vs 이제동[49] 승점 0.[50] 특히 3월 8일 엠겜전에서 이번 시즌 두 번째 올킬패를 당했다.[51] 당시 하이트는 핵심 저그였던 박명수, 문성진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그나마 괜찮은 선수가 김상욱 밖에 남지 않아 저그 카드가 더 필요하던 상황이었다. 그마저도 강석만으로는 모자라 막판에는 갓 데뷔한 한지원까지 투입했다.[52] 개인리그까지 포함하면 한 달 뒤에 가진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에서 김성대의 8강전 경기(vs 이제동)가 마지막이다. 이는 같은 시기에 해체된 하이트 스파키즈(8강전 신상문 vs 이영호)도 마찬가지.[53] 이후 IEG는 해외에 e스포츠 중계권 판매 사업 등을 하다가 온게임넷의 방송 포화와 종목 다양화를 노리고 SPOTV를 통해 프로리그를 방영하다가 SPOTV GAMES를 개국한다.[54] 하이트 스파키즈는 온게임넷의 모기업 온미디어CJ그룹에 인수되면서 동시에 게임단도 eSTRO와 같은 시기에 해체된 뒤 CJ 엔투스로 흡수합병되었으며, 그로부터 1년 후에는 MBC GAME HERO가 모기업 MBC 플러스게임 방송포기하고 음악 방송으로 전환되면서 해체되었다.[55] 그나마 스페셜 포스 팀은 우승 1회를 기록했지만 같은 시기 해체된 하이트 스파키즈(CJ 엔투스가 인수)와는 달리 다른 팀이 인수하지 않았으며, 프로리그에서 빈 자리는 세미프로 팀 1팀으로 채웠다.[56] 호주 출신의 프로토스 게이머이자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기준 프로리그 및 공식전에서 마지막으로 승리한 외국인 선수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7주차 이네이쳐 탑 vs KOR 3세트에서 KOR의 차재욱과의 알 포인트 경기에서 승리하였으며 WCG 2005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외국인 선수의 승리는 없었다가, 스타크래프트 2로 완전히 전환한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에서 EG-TL의 마르커스 이클로프(Evil Geniuses 소속)가 STX SouL의 김도우를 상대로 승리하여 2748일만에 기록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김도우 역시 eSTRO 출신.[57] 다른 외국인 선수에 비해 활약은 현저하게 떨어지지만 그래도 프로리그에서 오영종, 홍진호를 차례대로 꺾은 전력이 있다.[58] 이기석이 '그' 쌈장 이기석 맞다. 한때 2004~2005년 무렵 1세대 원로 게이머들이 군제대 직후 활동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는데, 그때 이야기이다. 대부분 kt 롤스터에 몸을 담았었는데, 대표적으로 이기석, 최진우, 신주영, 이후에도 김동수 등이 복귀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모두 떨어진 기량을 상승시키지 못하고 은퇴. 직후, 이기석은 방출되어 이스트로에서 잠시 몸을 담갔다.[59] 다만 이재항은 이후 팬택으로 복귀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하였다.[60] 사실 팀 배경을 생각하면 이지호 감독은 정말 대단한 수완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어린 시절 입양되어 한국에 연고가 없는 상태였고, 한국으로는 성인이 되어 돌아온 초기에는 한국어에도 서툴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인맥이나 도움을 구할 변변찮은 지인도 없는 상황이었고, 타 팀이 스타플레이어의 활약을 통해 기업의 후원이나 정식 창단을 이끌어낸 반면 이지호 감독은 초창기 5인방 은퇴 후 이렇다 할 스타급 선수가 없었음에도 어떻게든지 크고 작은 기업과 꾸준한 계약을 맺어 오며 팀을 운영해 왔던 것.[61] 대표적인 경우가 이네이쳐 탑 시절이다. AMD와 계약이 끊긴 뒤, 이들은 헥사트론이라는 PC방 프랜차이즈와 계약을 맺었고, 계약 만료 후에는 이네이쳐라는 PC방 브랜드와의 계약을 이어간다. 그러나 당연히 다른 대기업 스폰팀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고, eSTRO로 창단되기 전까지 고비가 많았다. eSTRO 창단 직전까지, 용산에 숙소를 차리고 있었는데, 이지호 감독의 여러 노력이 빛을 발해서였는지 용산에 입주한 여러 중소기업들이 선수들의 팀복에 로고를 박는 형태로 네이밍 스폰서를 하고 싶다며 줄을 선 적도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대부분 카메라에 광고가 잘 나타나도록 의상의 팔 부분에 로고를 박는데, 너무 많은 회사들의 요청을 해와서 로고를 박을 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고...[62] 선수들과 특별한 트러블이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 점, 당시 몇몇 감독들은 팀 선수의 개인 리그 우승 상금을 떼갔다거나 군기를 잡았다는 등의 뒷소문이 흉흉했고, 실제로 은퇴 후 여러 선수들의 개인방송에서도 사실로 밝혀진 경우도 있는 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가 나가고 eSTRO로 창단된 후의 선수들조차 돈을 못받았네, 밥을 제대로 못먹네, 타 팀에 비해 환경이 좋지 못했다는 말까지 나왔다는 걸 보면 더더욱. 굳이 거론하자면, 조정현 선수와 헤어짐이 깔끔하지 않았다는 점 정도. 조정현 선수가 은퇴를 이지호 감독과 상의 없이 결정하면서 마찰을 빚었던 모양이다.[63] 수익구조가 KBO, KBL, KOVO 등 프로연맹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중계권 판매 대행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판매한 중계권을 다른 방송사들과 협상을 벌여 그 수익의 일부를 가진다. 스포츠 뉴스 등에서 자료화면으로 활용할 때도 방송사 측이 에이클라에 일정 금액을 따로 지불해야 한다.[64] eSTRO의 스폰서였던 IEG는 프로 스포츠 중계권 업체인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 산하 그룹인데, SPOTVSPOTV GAMES 등과 운영한 곳이 이 IEG다. 실제로 유니폼에도 SPOTV 로고가 새겨진 적이 있다.[65] 투니버스, 온게임넷 등을 운영했던 온미디어(현 CJ ENM) 계열의 만화 및 퀴즈 채널이었다. 2007년 폐국.[66] 3개 모두 해즈브로에서 발매하고 있는 보드게임이다.[67] 이는 탄트라, 팡야, 아발론 온라인 등 자사에서 서비스하는 게임 홍보에 소속 선수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던 한빛 스타즈위메이드 폭스에서도 드러났던 문제점이다.[68] 08-09 시즌 들어 암울한 약체팀이라는 이미지에서 비록 하위권이지만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으로 이미지가 바뀐 이유중 하나는 각 라운드, 혹은 매 주차마다 간간히 3연승을 찍어준다는 점이다. 이전엔 eSTRO로 창단 이후 한 번도 3연승을 찍어본 적이 없었다.[69] 언젠가부턴 늘었으나 예전엔 프로리그 경기중에도 팀 파이팅을 외쳐주는 팬이 거의 없었다. 사실 이 팀의 팬들은 초창기 AMD 드림팀 시절 소속 선수들의 스타일리쉬한 경기를 통해 형성된 경우가 많았다.[70] 원래는 당예서와 닮았다고 당예서테란이였지만, BATOO 스타리그 08~09 36강 1차전에서 MB토스라고 불리는 박대경과 붙으면서 노태우테란이라는 별명이 굳어져버렸다. 참고로 2차전 상대였던 박성준뽀글이저그라는 별명을 얻었다.[71] 그리고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겠지만 롤판 최정상급 미드라이너 중 한 명이다.[72] 다만, 행적상 안티도 많다. 자세한 건 아래의 항목 참조.[73] 2014년 들어서 부침 탓에 폼이 많이 떨어졌으나, SouL 시절(2013년 말)에는 김유진과 함께 토스 투탑이었다.[74] 이쪽은 연습생(준프로게이머) 출신. 군단의 심장에서 저그전이 무너졌지만 테란전, 토스전에서는 여전히 강자 중 한 명이다.[75] 자날 시절의 종변 성공자가 김준호라면, 군심 시절의 종변 성공의 대표 주자는 김도우이다. 군단의 심장으로 전환된 프로리그 12-13 시즌 4R부터 타종족전 전승, 고승률, 포스트시즌 맹활약 등의 센세이션을 일으키더니, 그 기세를 몰아 GSL에도 모습을 드러내어 결국은 우승까지 거머쥐었다.[76] 역시 프로리그의 강자, 게다가 정규시즌 그 백동준에게 3연승을 달렸을 정도로 동족전이 정말 강하다. 동족전 승률도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2014 시즌에 들어서 포스트시즌 올킬 달성에 GSL 우승까지 거두었다.[77] 웅진 3토스의 하나로, 2013년 말에 갑작스레 은퇴했으나, 전략성이 뛰어나며 큰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 스타2에서도 마무리 신으로 불린다. 팀의 정규시즌 우승 역시 자기 손으로 확정지었다.[78] 아주 대략적으로 말하면 백동준, 김도우, 주성욱 등 정파와 원이삭, 신재욱, 신상호 등 사파가 구분된다. 게다가 세부적인 스타일이나 각기 강점을 보이는 종족전도 꽤나 다르다.[79] 백동준, 주성욱, 김도우에 패해 3연준. 대신 원이삭은 기막히게 잘 잡는다.[80]SKT T1 테란 프로게이머와는 동명이인이다. 그리고 이쪽은 종족이 저그.[81] 고국에 돌아간 후 팀리퀴드를 만들었다![82] 은퇴 이후 임홍규의 '빌런 최강자전'에 나와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참고로 우승은 아마추어 게이머인 김수식. 임홍규도 eSTRO 시절에 연습생 생활을 했으니 결국은 팀 동료 관계이다.[83] eSTRO 시절에는 정식 데뷔를 하지 않은 연습생(준프로게이머) 신분이었다. 해체 직전에 열린 드래프트에 참가하기는 했으나 지명되지는 못했다.[84] 공군 ACE로 가려 했으나 실패했는지 박지수가 은퇴한 날에 같이 은퇴했다. 종족은 프로토스로 2군에만 있었고 1군 공식기록은 없었던 선수.[85] pk의 플레이 스타일 상 실제 에땁을 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86] 중도 은퇴, ari로 교체[87] Lavega-Gaming소속시절 본래 아이디 풀네임 "arigato(아리가또)"를 줄여 사용한 것.[88] 전직 K3리그에서 선수로 뛰던 게이머도 소속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이지호 前 감독이 짜 놓은 하루 일과엔 축구를 무조건 한두시간 뛰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 잘 할 수밖에...[89] 실제로 eSTRO 해체 이후 다른 기업팀으로 이적한 김성대, 신대근, 김도우, 박상우, 신재욱 같은 선수들은 프로리그에서 이적 직후 주전급 실력을 다시 내기까지 적지않은 시간이 걸렸다.[90] 같은 시기에 해체되어 CJ 엔투스에 합병된 하이트 스파키즈 출신 선수들도 CJ에 일부 선수들만 합류했고 2군급 0승 클럽 선수들은 대부분 CJ에 합류하지 못한 채 쓸쓸히 은퇴했으며, 한지원 등 스타 2 전환과 같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케이스도 있는 등 한동안 새로운 팀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을 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91] 흔히 자기 군생활이 제일 빡셌다고 하는 군필자들과 일맥상통한 이야기이다.[92] 특히 주진철과 차재욱은 프로리그 다승왕까지 했을 만큼 팀리그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고, 한웅렬은 비공식 리그로 격하되었지만 GhemTV 스타리그 우승 1회, 4강 1회 및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까지 가 본 선수이다.[93] 다만 박명수는 드래프트 도입 이전에 데뷔했다.[94] 사실 기욤 패트리도 개인리그 성적은 우승 1회, 4강 1회로 명예의 전당 선수치고는 커리어가 부족하나, 양대리그 체제 이전 블리자드에서 주최했던 래더 토너먼트 우승 경력 및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인 우승자, 최초의 로얄로더, 최후의 랜덤 우승자라는 상징성 덕분에 헌액되었다.[95] 다만 신희승은 승부조작이 아닌 단순 불법 베팅이라는 설도 있다. 여러가지 밝혀진 사실로 보아 매우 신빙성이 높은 설.[96] 그것도 1명은 아예 주장 원종서였다. 나머지 1명은 2군 소속이었다가 일찌감치 은퇴했던 정진현. 이렇게 주전이 절반 이상(김창희, 문성진, 박명수. 박찬수도 연루자 중 하나였으나, 당시에는 kt로 이적한 뒤였다.)이 승부조작으로 날아간 것 때문에 이경민이 그나마 확실한 카드가 되기 전까지 신상문만 홀로 개고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