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21:36:44

오희주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기상캐스터에 대한 내용은 오희주(기상캐스터)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오희주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ea002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KIA 타이거즈
역대 1차 지명 선수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김용만(2) 장진범
조종규
(4명)
강정남
김윤환
조도연
문희수
(7명)
김기철
김태업
선동열
신태순
이순철
최상주
허세환(1)
(10명)
강상진
김경호
김대현
김정수
김평호
백재우(1)
신동수
이건열
장채근
차동철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백인호
박철우
김만후
송영복(1)
조계현
한경수(1)
이광우
이강철
장호익
정회열
이호성
오희주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박재홍 이종범 최재영 김동호 김종국
(고졸)
김상훈
김상진
서재응(1)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오철민
(고졸)
김병현(1)
김원(1)
김준희(1)
최희섭(1)
(고졸)
강철민
김정진(1)
이현곤
정성훈
(고졸)
류찬
김성호 정원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김진우 고우석 김주형 곽정철 한기주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정영일(1)
오준형
전태현 정성철 심동섭(2) 한승혁(2)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박지훈(2) 손동욱(2) 차명진 이민우 김현준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유승철 한준수 김기훈 정해영 이의리
2022년 2023년 2024년
김도영 윤영철(2) 조대현(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연도 (1라운드 지명 선수)
}}}}}}}}}

오희주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2번}}}
이광우
(1989)
오희주
(1991~1992)
김훈
(1993~1996)
LG 트윈스 등번호 29번
김덕근
(1989~1992)
<colbgcolor=#000><colcolor=#fff> 오희주
(1993~1997)
정현택
(1998~2001.7.24.)
}}} ||
}}} ||
오희주
吳喜柱 | Oh Hee-Joo
출생 1968년 7월 2일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진흥고 - 한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1년 1차 지명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91~1992)
LG 트윈스 (1993~1997)
1. 개요2. 선수 경력3.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 소속 투수.

2. 선수 경력

1991년 해태의 1차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나, 별다른 활약 없이 1993년 1월 27일 LG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이후 1997년 은퇴하였다.

한양대 출신으로 해태에서 기대를 많이 한 선수로, 광주일고-인하대의 좌타거포 김기태와 고민하면서 스카우트 팀장이 직접 선택해 데려온 선수였다.

하지만, 당시 감독 김응용은 탐탁지 않아 했는데, 처음 감독에게 인사 온 신인이 빤짝이 옷에 염색과 파마를 하고 인사를 하길래 어디 유명한 가수신가?라고 한 마디하고는 해태에서 적응하기 힘들 거라고 여겼다.

코감독의 예상대로 선동열, 이강철, 조계현, 문희수, 김정수가 버티고 있던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실패하고[1] 2군을 전전하다가 결국 2년 있다 바로 트레이드되었다. 송유석이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술회하기를 만약 김기태가 해태, 오희주가 쌍방울을 갔다면 둘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이며 1차 지명 투수이기 때문에 쌍방울은 계속 기회를 주면서 어떻게든 오희주를 키워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LG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채 결국 은퇴했다. 사실 LG 입단 역시도 어거지로 들어온 것이었는데, 해태 타이거즈 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반골 기질이 강해서 선배들과 충돌하다 차라리 내가 야구를 그만두고 만다며 일방적으로 구단을 떠나고[2] 선배의 가구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것을 LG 스카우터 팀이 와서 5천만원의 현금으로 트레이드를 했으니 자기들하고 야구해보자고 설득을 해서 겨우 복귀한 것이었고, 이후 계약기간이 끝나자 미련없이 은퇴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희주의 프로데뷔 첫 승 상대가 바로 그가 처음 입단한 해태였다. 1995년 5월 13일 광주 해태전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프로 첫 승을 따냈다.#

은퇴 후 골프에 빠져 레슨프로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3. 관련 문서


[1] 신동수, 송유석, 강태원 등 불펜진도 두터웠다.[2] 그 무시무시한 군기의 해태 타이거즈 내에서 염색을 하거나, 락커처럼 장발로 머리를 기르고, 가죽자켓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임창용역시 해태에서 그런 반항기를 보이다가 선배 이순철에게 걸린뒤로 바로 고분고분해진 걸 보면, 오희주의 깡은 정말 대단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