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드래프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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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199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 신생팀 쌍방울의 특별지명으로 진행되었다.2. 1차 지명
1차 지명은 1989년 11월 6일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2명을 뽑았다. 이전 해와 비교하여 한 명이 더 줄어든 것으로, 다음 해에는 1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연고지가 겹치는 MBC와 OB는 11월 4일에 1차 지명을 확정지었다.※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 이상 되는 선수한테 부탁드립니다.
팀 | 1차 지명자 |
MBC 청룡 | 김동수(서울고-한양대, 포수) 이병훈(선린상고-고려대 외야수) |
OB 베어스 | 임형석(서울고-한양대, 내야수) 김경원(동대문상고, 투수) |
쌍방울 레이더스 | 박찬홍(군산상고-원광대, 투수)※ 최해식(군산상고-건국대, 포수) |
롯데 자이언츠 | 김도형(마산상고-경성대, 투수) 공필성(마산상고-경성대, 내야수) |
삼성 라이온즈 | 이태일(경주고-영남대, 투수) 최현준(대구고-한양대, 투수) |
태평양 돌핀스 | 최광천(인천고-원광대, 투수) 김경기(인천고-고려대 내야수) |
빙그레 이글스 | 김성한(북일고 투수) 지화동(북일고-동국대, 내야수) |
해태 타이거즈 | 정회열(광주일고-연세대, 포수) |
3. 쌍방울 특별지명
1989년 11월 신생팀 쌍방울은 2차 지명에 앞서 10명을 지명했다.- 투수 : 구대진(대전고-경남대), 김기완(동대문상고-한양대), 정윤원(동대문상고-한양대), 최태곤(동래고-동아대), 김석기(광주일고-연세대)
- 포수 : 공봉구(영흥고-영남대)
- 내야수 : 김경수(서울고-연세대), 김호(마산고-경성대)
- 외야수 : 장희현(대구고-한양대), 윤혁(배재고-고려대)
4. 2차 지명
2차 지명은 1989년 11월 29일 KBO 사무실에서 열렸다.※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 이상 되는 선수한테 부탁드립니다.
라운드 | 롯데 | MBC | OB | 삼성 | 태평양 | 빙그레 | 해태 | 쌍방울 |
1 | 손길호 (포철공고-성균관대, 내야수) | 최우석 (신일고-중앙대, 투수) | 서준룡 (광주상고-성균관대, 내야수) | 김우현 (광주상고-성균관대, 외야수) | 이용호 (서울고-건국대, 투수) | 진상봉 (마산상고-경성대-상무, 외야수) | (광주상고-연세대, 포수) | 정인조 (광주상고-건국대-상무, 투수) |
유충돌 (진흥고-성균관대, 내야수) | ||||||||
2 | 김종헌 (경주고-경성대, 외야수) | 구동환 (충암고-상무, 외야수) | 조정수 (광주일고-동국대, 투수) | 장길영 (경주고-계명대, 투수) | 강광회[1] (제물포고-건국대, 외야수) | 박상익 (중앙고-단국대-한국전력, 외야수) ※ | 패스 | 임기정 (전주고-고려대, 포수) |
3 | 전봉석 (마산상고-경성대, 포수) | 김선진 (광주일고-연세대, 내야수) | 김상진 (청강고, 투수)[2] | 주동욱 (제물포고, 투수) | 최용철 (인천고-연세대, 내야수) | 패스 | 패스 | 전성호 (오산고-중앙대, 투수) |
4 | 패스 | 김성재 (대구상고-영남대, 내야수) | 한형탁 (포철공고, 투수) | 박홍철 (신일고-중앙대, 내야수) | 김력 (경남상고-동아대, 투수) | 패스 | 패스 | 김종수 (대구상고-경남대, 투수) |
5 | 패스 | 박승암 (서울고-인하대, 투수) | 김만조 (마산상고, 투수) | 패스 | 조웅천 (순천상고, 투수)[3] | 패스 | 패스 | 김영운 (경북고-계명대, 내야수) |
6 | 패스 | 오정민 (신일고-성균관대, 투수) | 패스 | 패스 | 조영상 (인천고, 투수) | 패스 | 패스 | 소상필 (마산고-경성대, 외야수) ※ |
7 | 패스 | 김명환 (동산고-경희대, 투수) ※ | 패스 | 패스 | 정운영 (장충고-동국대, 내야수) ※ | 패스 | 패스 | 패스 |
8 | 패스 | 김종철 (군산상고, 투수)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9 | 패스 | 김성일 (서울고-한양대, 외야수)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10 | 패스 | 박종욱 (광주일고-동국대, 외야수) ※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5. 드래프트 평가
5.1. 선수별 총평
5.1.1.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츠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김도형 (마산상고-경성대 / 투수) | |
1차 | 공필성 (마산상고-경성대 / 내야수) | 성적은 평범했지만 투지를 보여준 선수로 팬들의 기억에 남았다. |
고졸연고 지명 1 | 김창기 (부산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2 | 이지환 (경남상고 / 내야수) | |
2차 1RD 1번 1 | 손길호 (포철공고-성균관대 / 내야수) | |
2차 1RD 1번 2 | 유충돌 (진흥고-성균관대 / 내야수) | |
2차 2RD 1번 | 김종헌 (경주고-경성대 / 외야수) | 백업으로 주로 활약했지만 수비력이 좋았다. |
2차 3RD 1번 | 전봉석 (마산상고-경성대 / 포수) | |
2차 4RD 1번 | 패스 | |
2차 5RD 1번 | 패스 | |
2차 6RD 1번 | 패스 | |
2차 7RD 1번 | 패스 | |
2차 8RD 1번 | 패스 | |
2차 9RD 1번 | 패스 | |
2차 10RD 1번 | 패스 |
5.1.2. MBC 청룡
MBC 청룡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김동수 (서울고-한양대 / 포수) | KBO 역사상 최고의 포수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 되는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90년대 LG의 두 번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FA로 삼성에 이적한 뒤에는 슬럼프를 겪기 시작했고, SK에 트레이드된 후에도 슬럼프는 이어졌다. 박경완의 영입으로 SK에서 방출된 뒤 현대에 입단한 후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해 현대의 2000년대 초의 전성기와 최후를 모두 지킨 후 선수단을 인계받은 히어로즈에서 말년을 보낸 뒤 은퇴했다. 2024년 현재는 모교인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지내고 있다. |
1차 | 이병훈 (선린상고-고려대 / 외야수) | |
고졸연고 지명 1 | 이헌상 (광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2 | 김성준 (경동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3 | 이재원 (서울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4 | 조필현 (서울고 / 외야수) | |
2차 1RD 2번 | 최우석 (신일고-중앙대 / 투수) | |
2차 2RD 2번 | 구동환 (충암고-상무 / 외야수) | |
2차 3RD 2번 | 김선진 (광주일고-연세대 / 내야수) |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쳐서 한국시리즈 사상 첫 끝내기 홈런을 쳤고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
2차 4RD 2번 | 김성재 (대구상고-영남대 / 내야수) | |
2차 5RD 2번 | 박승암 (서울고-인하대 / 투수) | |
2차 6RD 2번 | 오정민 (신일고-성균관대 / 투수) | |
2차 7RD 2번 | 김명환 (동산고-경희대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8RD 2번 | 김종철 (군산상고 / 투수) | |
2차 9RD 2번 | 김성일 (서울고-인하대 / 외야수) | |
2차 10RD 2번 | 박종욱 (광주일고-동국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5.1.3. OB 베어스
OB 베어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임형석 (서울고-한양대 / 내야수) | 1992년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다. |
1차 | 김경원 (동대문상고 / 투수) | 1990년대 초 OB의 암흑기를 끝내도록 해준 투수. 지명은 1990년 지명회의 때 이뤄졌으나 선수 본인이 집안 사정으로 중앙대학교를 중퇴하는 바람에 당초 계획보다 1년 빠른 1993년에 OB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첫 해부터 무려 1.1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고 마무리 투수로 전향한 후에는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빠르게 마감했다. |
고졸연고 지명 1 | 최치용 (배명고 / 포수) | |
고졸연고 지명 2 | 최원식 (동대문상고 / 내야수) | |
고졸연고 지명 3 | 손병희 (동대문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4 | 최진우 (배명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5 | 권영구 (동대문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6 | 노석기 (경기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7 | 박동일 (경동고 / 내야수) | |
고졸연고 지명 8 | 최덕현 (경기상고 / 포수) | |
2차 1RD 3번 | 서준룡 (광주상고-성균관대 / 내야수) | |
2차 2RD 3번 | 조정수 (광주일고-동국대 / 투수) | |
2차 3RD 3번 | 김상진 (청강고 / 투수) | |
2차 4RD 3번 | 한형탁 (포철공고 / 투수) | |
2차 5RD 3번 | 김만조 (마산상고 / 투수) | |
2차 6RD 3번 | 패스 | |
2차 7RD 3번 | 패스 | |
2차 8RD 3번 | 패스 | |
2차 9RD 3번 | 패스 | |
2차 10RD 3번 | 패스 |
5.1.4.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이태일 (경주고-영남대 / 투수) | 삼성 라이온즈 최초 노히트 노런 달성 투수. 신인 중 최초이기도 하다. 삼성의 잠수함 투수 계보를 잇는 선수. 90년대 초반 3년 연속 10승을 달성하며 강렬한 전성기를 보냈지만, 병마로 인해 전성기가 짧았던 비운의 투수. |
1차 | 최현준 (대구고-한양대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1 | 황두영 (포철공고 / 외야수) | |
고졸연고 지명 2 | 박인구 (경주고 / 외야수) | |
고졸연고 지명 3 | 정경훈 (경주고 / 내야수) | |
고졸연고 지명 4 | 정태영 (성광고 / 포수) | |
고졸연고 지명 5 | 김영민 (성광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6 | 박규대 (성광고 / 내야수) | |
고졸연고 지명 7 | 이상목 (성광고 / 투수) | 포크볼의 황태자. 삼성에선 큰 활약을 못했지만 이후 한화, 롯데를 거치며 90년대 KBO를 대표하는 포크볼 투수로 활약했다. 선수 말년 다시 삼성에 와서 통산 100승을 기록하고 은퇴했다. |
고졸연고 지명 8 | 김인철 (포철공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9 | 하효근 (대구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10 | 이규창 (대구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11 | 이상훈 (경북고 / 투수) | |
2차 1RD 4번 | 김우현 (광주상고-성균관대 / 외야수) | |
2차 2RD 4번 | 장길영 (경주고-계명대 / 투수) | |
2차 3RD 4번 | 주동욱 (제물포고 / 투수) | |
2차 4RD 4번 | 박흥철 (신일고-중앙대 / 내야수) | |
2차 5RD 4번 | 패스 | |
2차 6RD 4번 | 패스 | |
2차 7RD 4번 | 패스 | |
2차 8RD 4번 | 패스 | |
2차 9RD 4번 | 패스 | |
2차 10RD 4번 | 패스 |
5.1.5. 태평양 돌핀스
태평양 돌핀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최광천 (인천고-원광대 / 투수) | |
1차 | 김경기 (인천고-고려대 / 내야수) | '인천야구의 대부' 김진영 前 감독의 장남으로서 미스터 인천이라는 별명을 얻은 인천의 슈퍼스타. 태평양에서부터 붙박이 4번타자로 활약하였다. 특히 투타의 불균형이 극심하기로 소문난 태평양과 현대의 타선에서 유일하게 밥값을 해내던 타자였던지라 집중 견제를 당한 탓에 세부 스탯에서 상당한 손해를 봤다. 그럼에도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고 팀의 핵심으로서 1994년 한국시리즈와 199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
고졸연고 지명 1 | 홍학석 (강릉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2 | 임진수 (인천고 / 내야수) | |
고졸연고 지명 3 | 김민태 (유신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4 | 가내영 (제물포고 / 투수) | 처음에는 독특한 이름과 곱상한 외모 때문에 주목을 받았고[4] 팀의 전천후 투수로서 선발, 롱릴리프, 마무리까지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현대에서 활약했다. |
2차 1RD 5번 | 이용호 (서울고-건국대 / 투수) | |
2차 2RD 5번 | 강광회 (제물포고-건국대 / 외야수) | 선수로썬 큰 활약 없이 은퇴한 뒤 심판으로 전직하였다. |
2차 3RD 5번 | 최용철 (인천고-연세대 / 내야수) | |
2차 4RD 5번 | 김력 (경남상고-동아대 / 투수) | |
2차 5RD 5번 | 조웅천 (순천상고 / 투수) | 원래 연습생으로 데리고 있던 선수로서 훗날 현대와 SK 불펜의 핵심 투수 중 한 명으로 활약하였다. |
2차 6RD 5번 | 조영상 (인천고 / 투수) | |
| (장충고-동국대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8RD 5번 | 패스 | |
2차 9RD 5번 | 패스 | |
2차 10RD 5번 | 패스 |
5.1.6. 빙그레 이글스
빙그레 이글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김성한 (북일고 / 투수) | |
1차 | 지화동 (북일고-동국대 / 내야수) | |
고졸연고 지명 1 | 박대영 (공주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2 | 반태훈 (청주고 / ) | |
고졸연고 지명 3 | 오대균 (북일고 / 투수) | |
2차 1RD 6번 | 진상봉 (마산고-경성대 / 외야수) | |
| (중앙고-단국대-한국전력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3RD 6번 | 패스 | |
2차 4RD 6번 | 패스 | |
2차 5RD 6번 | 패스 | |
2차 6RD 6번 | 패스 | |
2차 7RD 6번 | 패스 | |
2차 8RD 6번 | 패스 | |
2차 9RD 6번 | 패스 | |
2차 10RD 6번 | 패스 |
5.1.7. 해태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정회열 (광주일고-연세대 / 포수) | 장채근의 뒤를 이어 1990년대 중반까지 타이거즈의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김무종-장채근에 이은 타이거즈 포수 프랜차이즈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다만 주전으로 활약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데 1994년 부상을 당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결국 쌍방울에서 넘어온 동기생 최해식에게 주전 마스크를 넘겼고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그의 아들인 정해영도 대를 이어 같은 팀의 1차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
1차 | (광주일고-연세대 / 외야수) | 90년대 호타준족 외야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
고졸연고 지명 1 | 최향남 (영흥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2 | 최재훈 (영흥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3 | 권철 (광주일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4 | 정성훈 (영흥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5 | 장창기 (영흥고 / 내야수) | |
고졸연고 지명 6 | 이수원 (영흥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7 | 문재성 (영흥고 / 포수) | |
고졸연고 지명 8 | 홍현우 (광주상고 / 내야수) | 1990년대 최고의 3루수로 활약하며 해태 후기 왕조를 이끌었다. FA로 LG에 이적한 후에는 먹튀의 대명사로 남으며 부진하였다. |
고졸연고 지명 9 | 김형택 (광주일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10 | 서정필 (광주일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11 | 강대성 (광주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12 | 박현수 (진흥고 / 외야수) | |
고졸연고 지명 13 | 김병두 (진흥고 / 내야수) | |
고졸연고 지명 14 | 이동열 (광주일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15 | 이군 (광주일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16 | 박녹성 (광주상고 / 외야수) | |
고졸연고 지명 17 | 양민석 (광주일고 / 외야수) | |
고졸연고 지명 18 | 임현수 (광주상고 / 외야수) | |
고졸연고 지명 19 | 최태영 (광주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20 | 김도선 (광주상고 / 내야수) | |
2차 1RD 7번 | 기영록 (광주상고-연세대 / 포수) | |
2차 2RD 7번 | 패스 | |
2차 3RD 7번 | 패스 | |
2차 4RD 7번 | 패스 | |
2차 5RD 7번 | 패스 | |
2차 6RD 7번 | 패스 | |
2차 7RD 7번 | 패스 | |
2차 8RD 7번 | 패스 | |
2차 9RD 7번 | 패스 | |
2차 10RD 7번 | 패스 |
5.1.8. 쌍방울 레이더스
쌍방울 레이더스 | ||
RD | 지명자 | 평가 |
| (군산상고-원광대 / 투수) | 지명 후 미입단 |
1차 | 최해식 (군산상고-건국대 / 포수) | 쌍방울 최초의 1차지명 신인이었으나 정작 쌍방울에서의 활약상은 미미했다. 김호근, 전종화 등 선배들은 물론 연습생으로 들어온 후배 박경완에게도 밀렸을 정도. 결국 1994년 해태로 트레이드됐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되면서 최해식의 야구 인생이 비로소 꽃피게 된다. 최해식은 동기생 정회열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타이거즈의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찼고 김상훈이 등장하기 전까지 타이거즈의 안방을 책임졌다. |
고졸연고 지명 1 | 박종철 (군산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2 | 최한림 (전주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3 | 임상규 (군산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4 | 신대형 (군산상고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5 | 김성곤 (군산상고 / 투수) | |
특별지명 1 | 구대진 (대전고-경남대 / 투수) | 이글스의 레전드 구대성의 친형. 하지만 정작 쌍방울에서 이뤄낸 성과는 없다. |
특별지명 2 | 김기완 (동대문상고-한양대 / 투수) | |
특별지명 3 | 정윤원 (동대문상고-한양대 / 투수) | |
특별지명 4 | 최태곤 (동래고-동아대 / 투수) | |
특별지명 5 | 김석기 (광주일고-연세대 / 투수) | |
특별지명 6 | 공봉구 (영흥고-영남대 / 포수) | |
특별지명 7 | 김경수 (서울고-연세대 / 내야수) | |
특별지명 8 | 김호 (마산고-경성대 / 내야수) | 쌍방울 구단 역사의 산 증인. 창단 당시부터 구단의 해체까지 경험했던 유일한 선수였다.[5] 타격은 신통치 않았지만 탄탄한 수비와 작전 수행 능력을 앞세워 쌍방울 내야의 핵심 선수 역할을 했다. |
특별지명 9 | 장희현 (대구고-한양대 / 외야수) | |
특별지명 10 | 윤혁 (배재고-고려대 / 외야수) | |
2차 1RD 8번 | 정인조 (광주상고-건국대-상무 / 투수) | |
2차 2RD 8번 | 임기정 (전주고-고려대 / 포수) | |
2차 3RD 8번 | 전성호 (오산고-중앙대 / 투수) | |
2차 4RD 8번 | 김종수 (대구상고-경남대 / 투수) | |
2차 5RD 8번 | 김영운 (경북고-계명대 / 내야수) | |
| (마산고-경성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입단 |
2차 7RD 8번 | 패스 | |
2차 8RD 8번 | 패스 | |
2차 9RD 8번 | 패스 | |
2차 10RD 8번 | 패스 |
5.2. 팀별 총평
- 쌍방울 레이더스 : 시작부터 잘못 꿰인 단추. 유래없는 흉작 드래프트였던 한 해에 창단하기로 한 죄로, 10명이나 되는 우선 지명자 중에 1군 주전급으로 성장한 것은 김호 단 하나뿐이었다. 1차 지명조차 뽑을 선수가 없어 박찬홍은 지명 포기했고, 최해식은 전종화, 박경완에 밀려 백업을 전전하는데 머물렀다. 그나마 해태가서 실적을 올렸으니... 다행인가?
- 롯데 자이언츠 : 좋지 않은 시기의 꼴찌. 꼴찌 팀에게 2차 지명 1라운더 지명권을 두 장 주는 제도가 남아있었으나, 쌍방울이 1차 지명 이후 10명의 특별지명을 뽑아가는 바람에 그대로 망했다. 그래도 공필성이라는 허슬플레이어를 얻은 점으로 만족해야할까. 물론 공필성의 수비력은... 박동희가 왜 1차 지명에 없나 생각할 수 있는데, 박동희는 이미 4년 전 부산고 졸업 당시 1차 지명을 받은 상태였다.(당시 1차 지명은 10명)
- MBC 청룡 : 다이스 갓은 실재한다. 1차 지명에서 동시에 지명한 선수가 또 한 번 등장한다. 거물 포수 김동수는 OB와 MBC의 지명을 동시에 받게 된다. 그러나 MBC는 OB와의 동전 던지기에서 또 승리했다.(...) 1차 1순위에서 김동수를 뽑은 MBC는 1차 4순위에서 외야수 이병훈을 지명하며 쏠쏠한 드래프트 성과를 얻었다. 4순위 김성재는 전년도 드래프트에서 빙그레의 지명을 받았으나 입단하지 않고 다시 지명받은 선수.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2차 지명의 모든 순번에서 지명권을 쓰며 10명의 선수를 뽑았지만 대부분 폭망하고 말았다. 그나마 3순위로 뽑은 김선진은 팀의 두 번째 우승에 일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 OB 베어스 : 미래를 대비한 지명. 앞서 썼듯, 더럽게 운이 없는 OB 구단답게 결국 동전던지기에 패배, 1차 2,3순위 지명을 획득한 OB는 내야수 임형석을 지명한다. 임형석은 이후 1992년에 대폭발, 26개의 홈런을 기록한 뒤 장렬히 산화,[6] OB 베어스 반짝 전설 중 한 명으로 남게 된다. 3순위 지명자인 김경원은 연고지 내 고졸 선수의 경우 지명없이 뽑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명한 케이스로, 김경원이 대학을 목표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지명권이 보존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미리 지명한 것이다. 다음 해부터는 1차 지명이 1장으로 줄어든다는 점도 고려한 것이다. 김경원은 이후 중앙대학교를 중퇴하고 입단해 1990년대 OB 베어스의 수호신으로 활동한다.
- 삼성 라이온즈 : 1990년대 삼성 암흑기의 전조. 연고지 내에 전국구 선수가 없어진지는 좀 됐지만, 이 해에는 영남대 에이스 이태일을 제외하면 썩 좋은 선수가 없었다. 결국 한양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던 최현준을 지명했지만, 최현준은 이렇다 할 성적을 기록하지 못한다.
- 태평양 돌핀스 : 미스터 인천과 인천야구의 허리. 김경기의 태평양 입단은 인천 야구 팬들의 오매불망의 숙원이었다.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의 아들이었던 그는 인천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인천의 슈퍼스타였다. 이외에 특기할 선수로 순천상고를 졸업하고 연습생으로 활동하다가 지명받은 조웅천이 있다. 조웅천은 이후 20년 가까이 인천에서만 활동하며 인천야구의 허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 빙그레 이글스 : 유능한 백업요원 장착.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갖고 있던 당시의 강력했던 빙그레 이글스였기 때문에 이 해에 좋은 선수를 많이 뽑지는 못했지만 성적은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1차 지명자 지화동과 2차 1라운더 진상봉은 둘 다 좋은 백업 선수였고, 한 시즌 정도는 주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명에 매우 인색한 빙그레는 고작 이 해에 1차 지명자 두 명과 진상봉만을 영입하는데 그쳐 1990년대 중반 암흑기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화로 바뀐 이후에도 신인 지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같은 실수를 한 번 더 반복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5886899678이다.
- 해태 타이거즈 : 2차 지명 따위 버려도 선수는 들어온다. 1차 지명으로 정회열과 이호성이라는 걸출한 신인을 지명한 해태는 운영상의 이유로 2차 1라운드만 지명하고 모조리 패스하는 패기를 보인다. 그리고 정회열과 이호성은 1990년대 중반 해태 타이거스의 전성기를 이끌어 나가게 된다.[7]
그런데 한 선수가 은퇴 후 최악의 흑역사를 쓴다.사실 이 해 해태가 거둔 최고의 수확은 고졸 우선지명으로 입단하여 해태의 90년대 우승에 기여가 매우 큰 홍현우이다.
6. 이모저모
- 드래프트 풀이 상당히 좋지 않았던 해이다. 1차 지명에서 쓸만한 선수가 나가고 난 뒤에 뽑은 특별지명에서조차 1군 주전 급 선수가 한 명, 2차 지명에서 5년 이상 1군에서 활동한 선수는 조웅천뿐이었다. 이것은 연고 지역 고졸 선수 우선 영입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이는데, 싹수가 보이는 고졸생들이 장종훈, 박정현 등의 성공에 힘입어 대거 프로로 진출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 쌍방울 레이더스의 1차 지명자 박찬홍은 지명 포기되었고, 다른 1차 지명자인 최해식은 박경완에 밀려 백업을 전전하다가 장채근과 트레이드 되면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해태 타이거스 90년대 중반의 전성기의 1등 공신이 된다.
- 태평양 돌핀스의 2라운더 강광회는 후일 심판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 OB 베어스의 3라운더 김상진은 원래 연습생 신분으로 마산 연고지의 선수였으나, 롯데 자이언츠의 양해를 구하여 3라운드에 지명하면서 소유권을 확정지었다. 이러한 연습생 지명과 양해 시스템은 당시로써는 일반적인 것으로써, 이 해에 지명된 다른 연습생의 대표적인 사례가 순천상고 출신으로 해태 타이거스의 양해를 받아 지명된 태평양 돌핀스의 5라운더 조웅천을 들 수 있다.
- 삼성 라이온스의 1차 지명자 이태일은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유일한 신인 투수가 되었다.
- OB 베어스의 1차 지명자 임형석은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으며 1992년 홈런 레이스에 뛰어들 정도로 반짝했으나 이후 시즌에서는 부진하며 한 해 반짝 스타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1] 현 KBO심판[2] 1989년 연습생 입단[3] 1989년 연습생 입단.[4] 유독 삼청태현에는 독특한 이름의 선수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감사용, 금광옥, 인호봉, 김바위, 정구왕, 김신부, 여태구, 원원근 등.[5] 김호와 비슷하게 김원형과 박진석도 쌍방울의 역사를 함께 했지만 김호는 이들보다 1년 먼저 들어와서 2군 시즌부터 뛰었다.[6] 항명파동에도 연루되어 있던것이 방출에 한몫했다.[7] 정회열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주전포수로, 이호성은 1990-2000 시즌까지 주전외야수로 활약하다가 2001 시즌 후 은퇴한다.[8] 최초는 삼성의 원민구-원태인 부자, 다만 이쪽은 삼성이 원민구의 지명을 철회하며 입단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