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드래프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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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3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200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2. 1차 지명
2002년 6월 6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팀 | 1차 지명자 | 계약금 |
노경은 (성남고, 투수) | 3.5억 원 | |
김형근 (대구고, 투수) | 1.3억 원 | |
[1] | - | |
안영명 (북일고, 투수) | 1.8억 원 | |
고우석 (광주일고, 투수) | 2.5억 원 | |
박경수 (성남고, 내야수) | 4.3억 원 | |
송은범 (동산고, 투수) | 4억 원 | |
박정준 (경남고, 외야수) | 2.1억 원 |
3. 2차 지명
2002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롯데호텔 서울 벨뷰룸에서 개최되었다.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642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2]
3.1. 지명방식
전년도까지 12라운드까지 치렀던 것이 9라운드로 줄어들어, 각 팀은 최대 9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지명방식은 각 라운드마다 전년도 순위의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볼드 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 이상 되는 선수들한테 부탁드립니다.
라운드 | 롯데 | SK | LG | KIA | 한화 | 현대 | 삼성 | 두산 |
1 | 김대우 (광주일고, 투수) | 정정호 (인천고, 투수) | 이성열 (효천고, 포수) | 서동욱 (경기고, 내야수) | 장순천 (부천고-제주산업정보대, 투수) | 지석훈 (휘문고, 내야수) | 강명구 (진흥고-탐라대, 내야수) | 전병두 (부산고, 투수) |
2 | 김휘곤 (서울고, 투수) | 양승학 (북일고, 외야수) | 이대형 (광주일고, 외야수) | 임준혁 (동산고, 포수) | 윤규진 (대전고, 투수) | 류상문 (신일고, 투수) | 곽용섭 (청원고, 내야수) | 나주환 (북일고, 내야수) |
3 | 양성제 (부산고-동의대, 투수) | 김재천 (진흥고, 외야수) | 우규민 (휘문고, 투수) | 김주호 (광주일고, 내야수) | 맹진국 (영흥고, 내야수) | 노환수 (부산고, 투수) | 김문수 (경주고-계명대, 투수) | 김만윤 (서울고, 외야수) |
4 | 정형순[A] (대전고, 투수) ※ | 심장용 (성남서고, 투수) | 이경민 (마산고, 투수) | 최건호 (덕수정보고, 투수) | 최민준 (경주고, 외야수) | 김한상 (덕수정보고, 외야수) ※[4] | 김영복 (서울고, 포수) | 김영준 (부산고, 투수) ※ |
5 | 박찬혁 (공주고, 내야수) ※ | 구본원 (안산공고, 내야수) ※@ | 박우상 (배명고, 외야수) ※@ | 이정상 (인창고, 외야수) | 박성덕 (인창고, 투수) ※ | 이유섭 (휘문고, 내야수) | 이상민 (공주고, 투수) ※[5] | 김승회 (배명고-제주산업정보대-탐라대, 투수) |
6 | 박민철 (인창고, 포수) ※ | 남상준 (북일고, 외야수) ※ | 박노산 (인창고, 내야수) ※ | 최재익 (선린정보고-한양대, 투수) | 김동훈 (덕수정보고, 내야수) | 최창우 (경남상고, 내야수) | 장진석 (대구고, 투수) ※ | 김영진 (신일고, 외야수) ※@ |
7 | 김이슬 (효천고, 투수) | 이장환 (배재고, 투수) | 윤성길 (효천고, 투수) | 조동현 (경남고, 내야수) | 양승아 (배재고, 투수) ※ | 정재엽 (선린인고, 포수) | 곽동현 (대구상고, 포수) | 허도환 (서울고, 포수) |
8 | 이인구 (배재고-동아대, 외야수) | 강승훈 (부산고, 내야수) | 김성대 (마산고, 투수) | 이인철 (배명고, 내야수) | 박대원 (충암고, 외야수) | 박재완 (덕수정보고, 투수) ※ | 김형준 (대구상고, 투수) ※[6] | 최영주 (경기고, 투수) ※ |
9 | 이창석 (광주일고, 외야수) | 조권성 (제물포고, 포수) ※ | 김준호 (효천고, 외야수) | 유왕식 (군산상고-동국대, 투수) ※ | 정민혁 (대전고, 투수) | 권영석 (충암고, 내야수) | 윤석현 (신일고, 투수) | 오재원 (야탑고, 내야수) |
4. 드래프트 평가
4.1. 선수별 총평
4.1.1.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츠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박정준 (경남고 / 외야수) | |
2차 1RD 1번 | 김대우 (광주일고 / 투수) | 지명 후 고려대에 진학했지만 2학년을 마친 뒤 갑작스럽게 상무에 입대했고, 전역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지만 잘 풀리지 않자 대만 리그에 진출을 시도해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롯데와 계약했으나 투수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2012년 타자로 전향. 2013년 상반기 딱 반년 반짝 후에 만년 유망주로 남는 듯 했으나 2017년 투수로 재전향했고, 2020년과 2021년 괜찮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여기까지였다. 2022 시즌 종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
2차 2RD 9번 | 김휘곤 (서울고 / 투수) | 고교 투수 탑5라고 불릴 정도였으나, 부상 여파인지 순위가 생각보다 많이 밀려 롯데가 지명할 수 있었다. 입단 이후 부상으로 제대로 던지지 못하다 2008년 부상에서 회복하여 2군을 폭격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다시 부상이 재발하며 은퇴했다. |
2차 3RD 17번 | 양성제 (부산고-동의대 / 투수) | |
2차 4RD 25번 | (대전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2007년 한화 신고선수 입단) |
2차 5RD 33번 | (공주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6RD 41번 | 박민철 (인창고 / 포수) | |
2차 7RD 49번 | 김이슬 (효천고 / 투수) | |
2차 8RD 57번 | 이인구 (배재고-동아대 / 외야수) | |
2차 9RD 65번 | 이창석 (광주일고 / 외야수) |
4.1.2. SK 와이번스
SK 와이번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송은범 (동산고 / 투수) | SK에서 스윙맨으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고 2009년에는 선발로 규정이닝을 달성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2013년 김상현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입단했으나 활약은 좋지 않았고 FA로 이적한 한화에서도 초기에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 마당쇠 노릇을 하며 부활에 성공했고 이후 재차 트레이드로 LG에 이적,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으나 말년에 구단과 연봉 협상 문제로 잡음을 일으키며 비호감으로 낙인찍혔고, 결국 2023시즌 종료 후 방출, 이후 1년 가까이 무적으로 있다가 2024시즌 하반기에 불펜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삼성에 입단했다. |
2차 1RD 2번 | 정정호 (인천고 / 투수) | 송은범과 함께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좌완투수로 기대를 모았으나 1군에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
2차 2RD 10번 | 양승학 (북일고 / 외야수) | SK에서는 2군 붙박이로 있다가 방출되었고 한화에 입단해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부상으로 1년만에 방출되었다. |
2차 3RD 18번 | 김재천 (진흥고 / 외야수) | |
2차 4RD 26번 | 심장용 (성남서고 / 투수) | |
2차 5RD 34번 | (안산공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6RD 42번 | (북일고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7RD 50번 | 이장환 (배재고 / 투수) | |
2차 8RD 58번 | 강승훈 (부산고 / 내야수) | |
2차 9RD 66번 | (제물포고 / 포수) | 지명 후, 미 입단 |
4.1.3. LG 트윈스
LG 트윈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박경수 (성남고 / 내야수) | 하단에 서술될 두산과의 스카우트 싸움에서 승리해 LG가 지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도통 터지질 않아 LG팬들의 속을 답답하게 했고, FA로 KT로 이적한 뒤에야 그 포텐이 터졌다. |
2차 1RD 3번 | 이성열 (효천고 / 포수) | 처음엔 포수로 입단하였으나 이후 외야수로 전향, LG에선 그저 그런 선수였으나 2008년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기량이 만개해 주요 타자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넥센-한화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2021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
2차 2RD 11번 | 이대형 (광주일고 / 외야수) | 여러 면으로 KBO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타자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던만큼 발 하나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타자였다. 2013년 종료 후 KIA로 FA를 통해 이적, 그리고 2014년 종료 후 KT로 20인 외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하는 두 번의 이적 과정에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으며, 특유의 독특한 타격 폼이 유명하기도 했다. 2017년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선수생활 기로에 놓일 만한 큰 부상을 당한 뒤에 반등하지 못해 2019 시즌 종료 후 방출됐고, 2020년 은퇴했다. |
2차 3RD 19번 | 우규민 (휘문고 / 투수) | 마무리 투수를 맡기도 하며 팀의 핵심 투수로 자리잡았지만 2008년, 2009년에는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두며 불규민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경찰청 전역 후 반등에 성공해 5년 연속으로 LG의 선발을 꿰찼다. 2016 시즌 종료 후 삼성으로 이적했지만 삼성이 기대했던 선발 기대치에 전혀 부응하지 못해 먹튀 오명을 뒤집어 썼고, 불펜으로 전향한 뒤 어느 정도 먹튀 행각을 날리는 데 성공했다. 2023 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로 kt로 이적했다. |
2차 4RD 27번 | 이경민 (마산고 / 투수) | |
2차 5RD 35번 | (배명고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6RD 43번 | (인창고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7RD 51번 | (효천고 / 투수) | |
2차 8RD 59번 | 김성대 (마산고 / 투수) | |
2차 9RD 67번 | 김준호 (효천고 / 외야수) | LG 시절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고, 한화로 이적한 후 전설의 꽈당사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2011 시즌 후 한화에서 방출되었고,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체육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
4.1.4. KIA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고우석 (광주일고 / 투수) | 입단 첫 해 활약한 걸 빼면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그다지 좋지 못했고 방출 후 광주 소재의 조직폭력배가 되며 기아의 1차지명 잔혹사에 이름을 올렸다. |
2차 1RD 4번 | 서동욱 (경기고 / 내야수) | 당해 유격수 4대 천왕으로 꼽힐 만큼 큰 기대를 받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LG와 넥센을 거치며 오히려 대수비 전문 요원으로 1군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2016년에 친정팀인 KIA로 돌아와 입단 초기의 기대했던 포텐을 뒤늦게서야 터뜨리는데 성공했다. 2017년 마지막 불꽃을 태운 후 부상으로 2019년 종료 후 은퇴. |
2차 2RD 12번 | 임준혁 (동산고 / 포수) | 투수로 전향 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15 시즌 선발진에 합류해 터지는듯 했으나 다음 시즌에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고 고향팀 SK로 트레이드 되었다. 트레이드 이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8 시즌 후 팀에서 방출된 후 은퇴했다. |
2차 3RD 20번 | 김주호 (광주일고 / 내야수) | |
2차 4RD 28번 | 최건호 (덕수정보고 / 투수) | |
2차 5RD 36번 | 이정상 (인창고 / 외야수) | |
2차 6RD 44번 | 최재익 (선린정보고-한양대 / 투수) | |
2차 7RD 52번 | 조동현 (경남고 / 내야수) | |
2차 8RD 60번 | 이인철 (배명고 / 내야수) | 고려대 졸업 후 2007년 1월에 투수로 입단했으나 2008년 10월에 방출되었고, 2009년 1월 신변 비관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
2차 9RD 68번 | 유왕식 (군산상고-동국대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4.1.5. 한화 이글스
한화 이글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안영명 (북일고 / 투수) | 2003년부터 2020년까지 한화 선수였고 중간 2010년도 6월에 KIA를 잠시 다녀왔다. (6월8일 트레이드, 시즌 후 FA 보상선수 지명) 2020시즌 종료 후 웨이버 공시되었으나 kt에서 데려갔고, 2022시즌 6월 경 은퇴하였다. 한화에서만 거의 900~1000이닝 가까이 소화하였다. |
2차 1RD 5번 | 장순천 (부천고-제주산업정보대 / 투수) | 지명 이후 호주 마무리캠프 참가, 귀국 후 4차례에 걸친 무단 이탈 등으로 말썽을 일으켜 시즌 시작 전 임의탈퇴 처리되었다. |
2차 2RD 13번 | 윤규진 (대전고 / 투수) | 고졸 루키로서 원클럽맨, 당해부터 경기에 투입되어 2020시즌 은퇴하기까지 한화 마운드를 지켜낸 선수이다. 지금은 투수코치를 맡고있다. |
2차 3RD 21번 | 맹진국 (영흥고 / 내야수) | 2004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
2차 4RD 29번 | 최민준 (경주고 / 외야수) | |
2차 5RD 37번 | (인창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6RD 45번 | 김동훈 (덕수정보고 / 내야수) | |
2차 7RD 53번 | (배재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단국대 진학. |
2차 8RD 61번 | 박대원 (충암고 / 외야수) | |
2차 9RD 69번 | 정민혁 (대전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연세대 진학, 졸업 후 2007시즌 입단, 2015시즌 중 방출되었으며, 2018시즌부터 스카우트팀에 재직중이다. |
4.1.6.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연고지 이전 문제로 인한 1차 지명 불가(2003~2008) | |
2차 1RD 6번 | 지석훈 (휘문고 / 내야수) | 서동욱과 마찬가지로 당해 유격수 4대 천왕으로 꼽힐 만큼 큰 기대를 받았으나, 프로 입단 후 2003시즌 1군 경기 없이 다음 해인 2004년 1군 승격 후, 타격 부진으로 헤메는 동안 강정호, 황재균 등에 밀렸고 상무에 다녀온 뒤에도 타격은 개선되지 않아 결국 NC에 트레이드되었다. NC에서는 내야 유틸리티로 자리를 잡았고, 2021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
2차 2RD 14번 | 류상문 (신일고 / 투수) | |
2차 3RD 22번 | 노환수 (부산고 / 투수) | |
2차 4RD 30번 | (덕수정보고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5RD 38번 | 이유섭 (휘문고 / 내야수) | |
2차 6RD 46번 | 최창우 (경남상고 / 내야수) | |
2차 7RD 54번 | 정재엽 (선린인고 / 포수) | |
2차 8RD 62번 | (덕수정보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9RD 70번 | 권영석 (충암고 / 내야수) |
4.1.7.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김형근 (대구고 / 투수) | |
2차 1RD 7번 | 강명구 (진흥고-탐라대 / 내야수) | 일명 "전설의 대주자". 2군에서 준수한 성적을 낸 것에 비해 1군에서는 대주자로만 기용되었다. 하지만 한 점을 내야하는 상황에서 믿고 맡길 수 있었기에 대주자로만 뛰며 연봉 1억원 달성과 우승반지 5개를 끼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은퇴, 삼성의 1루 주루코치로 부임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상 이 해의 유일한 성공픽. |
2차 2RD 15번 | 곽용섭 (청원고 / 내야수) | |
2차 3RD 23번 | 김문수 (경주고-계명대 / 투수) | |
2차 4RD 31번 | 김영복 (서울고 / 포수) | |
2차 5RD 39번 | (공주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6RD 47번 | (대구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7RD 55번 | 곽동현 (대구상고 / 포수) | |
2차 8RD 63번 | (대구상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9RD 71번 | 윤석현 (신일고 / 투수) |
4.1.8.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노경은 (성남고 / 투수) | 2012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며 2년 연속 10승을 기록했으나 2014 시즌부터 심각한 부진에 빠졌다. 부진하던 중 2015 시즌 가을에 활약으로 우승도 경험했지만 그 활약을 다음 시즌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롯데에 트레이드 되었다. 롯데에서는 그럭저럭 활약을 했으나 2021 시즌 후 방출되었으며 이후 SSG에 입단 후 화려하게 부활했고 다시 한번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
2차 1RD 8번 | 전병두 (부산고 / 투수) | 별다른 활약 없이 KIA로 트레이드되었다. KIA 시절에 2006 WBC 대표에 뽑히기도 했으나 소속팀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SK로 트레이드되었다. SK에서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으나 동시에 엄청난 혹사로 인해 어깨 부상을 당하며 2011년부터 기나긴 재활에 들어갔다. 무려 5년간 재활에 매진했으나 다시 마운드로 돌아오지 못하고 2016 시즌 최종전에서 은퇴경기를 가지고 은퇴했다. |
2차 2RD 16번 | 나주환 (북일고 / 내야수) | 두산 시절에는 주전과 백업을 오갔으나 SK로 트레이드된 뒤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으며 SK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군복무 후에는 주전은 아니지만 내야 전천후 백업으로 준주전 위치로 자리잡으며 2017, 2018 두 시즌은 반등에 성공하기도 했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KIA에 무상 트레이드로 이적해 2년 동안 더 뛰다 2021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
2차 3RD 24번 | 김만윤 (서울고 / 외야수) | |
2차 4RD 32번 | (부산고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5RD 40번 | 김승회 (배명고-제주산업정보대-탐라대 / 투수) |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하다가 2012 시즌 후 홍성흔의 보상선수 지명으로 롯데로 이적했다. 롯데에서는 불펜으로 활약했다가 2015 시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시즌 종료 후 윤길현의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SK로 이적했으나, SK에서는 별다른 활약 없이 1년만에 방출되었고 다시 두산으로 돌아와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2020 시즌 후 은퇴했다. |
2차 6RD 48번 | (신일고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7RD 56번 | 허도환 (서울고 / 포수) | 지명 후 단국대 입학, 2007년 입단. 지명받은 두산에서는 대주자로서 1군 단 한 경기만 뛰고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방출됐고, 수술 및 재활과 동시에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넥센 히어로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아 다시 프로 무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히어로즈의 주전 포수가 박동원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뒤에는 저니맨 신세가 됐으나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리그 유일 통신 3사 소속 우승 경험자라는 기록까지 써 냈다. 가늘고 길게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듯 했으나 2024년 현재까지 박경수와 함께 현역인 둘 뿐인 야수로 결과적으로는 굵직하고 긴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
2차 8RD 64번 | 최영주 (경기고 / 투수) | |
2차 9RD 72번 | 오재원 (야탑고 / 내야수) | 지명 후 경희대 입학, 2007년 입단. 그야말로 전체 마지막 픽의 역대급 반란으로 한 마디 요약이 가능하며, 고영민 다음 두산의 주전 2루수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2차 FA에서의 먹튀 행각 및 은퇴 전후 좋지 않은 언행으로 이미지가 하락했다. 급기야는 2024년,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는 등 흉흉한 소리만 전해지고 있다. |
4.2. 팀별 총평
- 박경수 나비효과(?) - 일명 박경수 나비효과의 시초가 된 드래프트였다. 1차 지명에서부터 두산과 LG가 동시에 성남고등학교의 내야수 박경수를 노렸지만, 결국 계약금 싸움에서 LG가 승리했고, 두산은 차선책으로 두었던 성남고 투수 노경은을 대신 지명했다. 그리고 2차 지명에서 쏟아질 준수한 유격수 자원을 노렸지만, 여기에서도 쓸 만한 자원은 다른 팀들이 다 채갔다. 특히 드래프트 순번상 가장 노렸던 강명구를 놓치자 타임을 불렀을 정도. 그런데 정작 두산은 신고선수 손시헌이 대박이 나면서 유격수 공백을 깔끔하게 메웠다. 3년 후 손시헌은 선린인터넷고 동창이자 현대에서 방출된 자기 친구를 데려왔다.
- 두산 베어스: 경희대학교에 진학한, 전체 가장 마지막 픽인 오재원이 4년 뒤에 들어와서 골든글러브 후보, 국대 2루수로까지 성장하면서 로또를 맞았다. 박경수 대신 1차 지명으로 뽑은 노경은은 부상과 수술, 멘탈 문제 등으로 인해 잊혀지는가 싶다가 2012 시즌부터 각성했지만 2016 시즌에 은퇴 선언 후 번복사건을 일으키다 롯데로 트레이드되었다. 사실 드래프트에는 없지만 신고선수로 입단해서 그해 시즌 중 1군에 올라와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한 손시헌을 데려온 것이 가장 컸다.
두산 화수분 전설의 시작거기에 손시헌은 나중에 친구도 데려와 두산의 중견수와 톱타자 고민을 동시에 해결해줬다. 김승회는 두산에서 5선발과 불펜을 오가다가 롯데에서 마무리로 활약했으나, 성적하락을 겪은 뒤 SK를 거쳐 두산에 돌아온 뒤갓성비필승조로 다시 활약했다. 정작 상위 라운드에 지명된 전병두와 나주환은 두산에서는 빛을 못 봤고 SK 와이번스에서 우승반지를 꼈다.
- LG 트윈스: 우규민은 초창기에 방화신기의 일원이 되기도 했으나 이후 선발로 3년 연속 10승을 찍어주는 등 쏠쏠하게 활약하다 FA로 삼성으로 떠났다. 이대형도 4연속 도루왕 등 쏠쏠히 써먹었지만 고질적인 삼단분리 타격폼(...)을 못 고쳤고
그래도 FA 대박(?)은 터뜨렸다, 두산과의 머니 게임 끝에 계약금 더 주고 1차지명으로 데려온 고졸 유격수 최대어 박경수는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다가 결국 FA로 LG를 떠났다. 이성열은 거포 유망주로 출전 기회를 줬으나 끝내 터지지 않았고, 결국 타팀 가서 터졌다.
- SK 와이번스: 1차 지명으로 뽑은 청소년 대표 출신 송은범이 왕조 시절 전천후 투수로 활약해준 것이 사실상 유일한 성공 사례. 이 해에 지명된 선수는 2012년까지 송은범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았으나 송은범도 결국 2013 시즌 중에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고 이후
이유를 알 수 없는 근자감으로FA 기회를 얻어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외 선수 중에는 양승학만 고향팀 한화 이글스에서 반짝했고 나머지는 존재감이 없이 사라졌다. 2차 1라운드에 뽑은 좌완투수 정정호도 송은범과 비슷한 수준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방출됐다. 대신 두산의 1차, 1라운드, 2라운드, 5라운드, 7라운드의 선수들이 SK/SSG를 거쳤고, 그중 1, 2라운드 선수들은 SK의 왕조를 이끌었다.믿고 쓰는 곰표 - 삼성 라이온즈: 역시 만만찮은 망픽. 일단 당시 대구-경북 지역 팜이[8] 역대급 흉작이었고, 덕분에 1차 지명으로 뽑은 김형근은 병역비리 사건에도 연루되었다가 재검에서 면제 판정을 받았는데 이후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008년 소리없이 방출되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선수는 2차 1순위로 지명했던, 대주자 전문 요원인 내야수 강명구가 유일하다. 그래도 강명구는 2014 시즌 후 전력 외 통보를 받고 은퇴할 때까지 승부처에서 상대 배터리를 강하게 흔들어 놓는 대주자로 쏠쏠하게 활약해 주었다.
- 현대 유니콘스: 이 해부터 구단의 연고지 문제로 인해 1차 지명권이 박탈되어[9] 해체할 때까지 1차 지명을 할 수가 없었고, 선수 개별 문서가 대부분 없었을 정도로 망픽이다. 그나마 성공한 선수는 2005년과 2007년에 중간계투로 활약한 좌완투수 노환수밖에 없다. 지석훈은 끝내 포텐을 못 터뜨리고 NC로 트레이드된 데다가, 이 둘이 그나마 1군에서 눈도장 찍은 선수이다. 나머지는 전부 버로우...
- 한화 이글스: 1차 안영명, 2차 2라운드 윤규진을 건졌다. 대학무대에서 파이어볼러로 주목받았던 2차 1라운더 장순천은 프로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2군 코칭스탭과 대판 싸우는 등 막장인 멘탈만 보여 준 채 임의탈퇴 공시되고 잊혀졌다. 정민혁은 잠깐 동안 1군 경기에 등판하다 2015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었다.
- KIA 타이거즈: 임준혁 외에는 터뜨린 선수가 별로 없다. 그러나 임준혁마저 고효준을 상대로 맞트레이드되어 SK로 이적했다. 고우석도 별 볼일 없었고, 서동욱은 얼마 안 가 LG로 트레이드되었는데, 넥센을 거쳐 2016년 KIA로 돌아와 쏠쏠하게 활약해주었다.
- 롯데 자이언츠: 박정준은 1년 반짝 후 넥센으로 트레이드, 이인구는 그저 그랬다.김대우는 고려대에 입학해 군복무 까지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했지만 결국 안되자 대만 진출까지 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고 결국 2008년 롯데에 입단해 투수로서 완전히 말아먹으며 결국 2011년 말 타자로 전향했다.그러나 기회는 많이 받았지만 초반에 좀 잘하다가 결국 망했으며 2018년 다시 투수로 전향했고 2020년 직구를 버리고 투심과 커터를 장착하며 마당쇠 역할을 하며 드디어 빛을 보게 된다. 정형순은 지명후 대학에 입학했으나 코칭스태프와의 불화로 제대로 뛰지 못하자 롯데가 지명권을 포기했고 이후 타자로 전향해 고향팀인 한화 이글스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신고선수로 입단한 정보명이 그나마 이름을 알렸다.
5. 이모저모
- 2003 신인지명까지 지명한 선수에 대한 권리가 4년이었다. 그래서인지 각 팀마다 이 해 지명된 선수들 중 반 정도는 대학에 진학했다. 또 이들 중 절반 정도만 지명한 팀에 입단했다.
- 광주일고 에이스이자 4번 타자였던 김대우는 연고 팀 KIA의 1차 지명을 받지 못하고 2차 지명으로 나와 2차 1라운드 1번으로 롯데에 지명됐다. 하지만 계약금 액수 차이로 협상이 결렬됐고, 2년 재학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지원해준다는 조건으로 고려대 진학을 결정했다.[10] 그러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병역을 해결하겠다며 돌연 휴학한 후 상무에 입대한다. 전역 후에도 규정까지 어기며 대만 리그까지 진출했으나[11] 결국 고려대 자퇴 후 2008년 롯데에 입단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끝에 김대우가 받은 계약금은 1억원. 그래도 2022년까지 종종 1군에 모습을 보이면서 뛰었다.
- 롯데에 4라운드 지명된 정형순은 경희대로 진학했으나 대학에서 코칭스태프와의 불화로 경기에 제대로 출장하지 못하였다. 결국 롯데가 지명권을 포기하여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이 과정에서 타자로 전향했고, 입단 이후 정현석으로 개명했다.
- 현대에 3라운드 지명된 노환수는 계약을 앞두고 어깨 수술을 받으며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 삼성에 4라운드 지명된 김영복과 두산에 7라운드 지명된 허도환은 고교 동기로 둘 다 포지션도 포수로 같다. 고교 시절에 주전 포수는 허도환이었고 김영복은 1루수나 3루수로 출장했지만, 정작 김영복이 포수로 더 빨리 지명되었다.
- SK에 5라운드 지명된 구본원은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고려대 숙소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선배들의 구타에 시달려 결국 입학식을 갖기도 전에 자살하고 말았다. 참고로 안산공고 출신[12] 선수 중 최초로 프로 지명을 받았다.
- 한화에 8라운드 지명된 박대원은 입단한 지 1년만에 방출된 뒤 세계사이버대(2년제)에 진학해 3년 동안 뛰고(1년 유급) 성균관대에 편입해 선수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졸업 후 해병대 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다음 2013년 고양 원더스에 합류해 1년 동안 몸 담은 뒤 2014년 3월 퇴단했다. 이후 대한야구협회에서는 선수 등록 규정을 개정해 프로 팀에 몸담았던 선수들(상무, 경찰청 복무자 제외)은 대학야구에서 뛸 수 없도록 했다. 뒤에 프로에서 일찌감치 방출된 고졸 선수들의 구제 방안으로 이들을 대학야구에서 받아들이도록 하자는 방안이 논의되었으나 이해관계가 엇갈려 실행에 이르지 못했다.
- 삼성에 8라운드 지명된 김형준은 영남대 2학년 재학 중이던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결국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3학년으로 복학해 야구를 재개했지만, 삼성은 이미 그의 지명권을 포기한 상황이었다. 영남대 졸업 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조용히 유니폼을 벗었다.
- 두산에 지명받은 허도환은 결국 계약하지 못하고 단국대학교로 갔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두산이 지명권을 포기해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007년 5월 1군에 올라오기도 했으나 팔꿈치 인대 부상으로 방출, 공익 복무 이후 넥센 히어로즈에 2011년 신고선수로 입단한다.
- 이 해 드래프트의 가장 핫 이슈는 고졸 유격수 4대 천왕이었다. 공수주 가장 이름을 날리던 박경수, 거포 유격수로 기대되던 서동욱, 빠르고 수비가 좋다는 평을 받던 지석훈, 건실하고 깔끔한 수비를 한다는 평을 받던 나주환이 4명으로, 여기에 대학 최고의 유격수였던 강명구도 상당히 기대받던 유망주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역대급 내야수 드래프트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13] 이 중 가장 유명한 선수는 박경수로, 박경수를 영입하기 위해 물밑에서 LG와 두산의 암투가 벌어진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자세한 내용은 박경수 항목 참조.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가장 처진다는 평을 듣던 나주환이 SK에서 우승반지를 세 개나 끼는 등 황금기를 보냈고[14], 나머지 셋은 드래프트 당시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였다. 이후 유격수 4대천왕으로 유명해진 2009년 드래프트에 비하면 활약이 아쉬운 상황.
하지만 유격수 승자는 대졸 신고선수 손시헌이었다. 결론은 두산 승[15]
[1] 연고지 문제로 이 해부터 2008년 드래프트까지 1차 지명에서 제외되었다.[2]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A] 정현석으로 개명[4] 경희대 진학 후 지명권 포기, 경찰청 전역 후 넥센 히어로즈에 신고선수로 입단. 現 KBO 심판.[5] 대학 중퇴 후 2006년 신고선수 입단.[6] 아래 설명 참조.[A] 정현석으로 개명[8] 사실 2000년대 들어 대구-경북 지역 팜이 전반적으로 흉작이었다. 대성공 사례인 2002년 권혁, 2004년 박석민, 2009년 김상수가 있긴 한데, 나머지는 아예 1군에서 제대로 뛴 적조차 없는 실패사례들 뿐이다. 대구팜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2007년 2차 1라운드에서 지명된 백정현도 있긴 하다.[9] 2000년 시즌 초 현대는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 연고권을 버리고 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인천 연고권을 구입한 SK 와이번스로부터 보상금 54억원을 받았고 원래 이 돈을 27억원씩 갈라서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에 나눠줬어야 하지만 유니콘스 구단 모기업인 현대전자가 이 돈을 중간에 가로채서 회사 운영비로 써먹는 바람에 서울에 들어가지 못하고 수원 야구장을 임차해서 눌러앉게 됐다. 결국 서울 입성 비용을 내지 못했기에 서울팀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됐고 인천 연고권은 이미 SK에게 팔았기 때문에 현대의 실질적 연고지는 없는 상태였다. 2001년과 2002년까지는 한시적으로 SK와 인천-경기-강원팜을 공유했으나 이 해부터는 서울팜, 인천팜 어디에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기에 1차 지명권을 박탈당했다.[10] 당시 롯데는 계약금으로 4억 5000만원을 제시했지만 김대우 측은 무려 5억+@를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이 일찌감치 결렬됐다. 참고로 김대우의 고교 동기이자 KIA의 1차 지명을 받은 고우석이 받은 계약금은 2억 5000만원으로 김대우가 롯데에서 제의받은 액수보다 무려 2억이나 적었는데, 이 말은 즉슨 애초에 김대우가 당시 롯데에 입단할 마음이 1도 없었다는 뜻이다.[11] 이 당시 상무에서 전역한 김대우는 고려대 감독이었넌 양승호에게 복학할 때니 미국 진출을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양승호 감독은 미국 진출은 졸업 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면서 김대우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한다.[12] 엄밀히 말하면 공주고에서 전학한 선수다.[13] 광주일고의 김주호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14] 그나마도 14시즌부터는 2루수로 전향했다.[15] 손시헌은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나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FA로 4년 30억 계약까지 이루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