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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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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 87 김민호 · 72 박승민 · 74 김경문 [[틀:한화 이글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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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박재상 · 78 김남형 · 79 양상문 · 82 김재걸
· 83 김우석 · 88 양승관 · 89 정경배 · 90 김정민'''
2군
'''71 이대진 [[틀:한화 이글스 2군 감독|
]] · 75 박정진 · 80 고동진 · 86 최윤석
· 87 추승우 · 100 정현석 · # 쓰루오카'''
잔류/재활군
57 정우람 · 81 김성갑 · 85 정범모 · 91 이상훈
트레이닝파트
이지풍 · 김형욱 · 김연규 · 장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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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김형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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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강성우 김경환 강상수 문동환 차명주
(고졸)
손균환
이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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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손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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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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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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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1994 1995 1996 1997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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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 2002 2003 ~ 2004 2005 2006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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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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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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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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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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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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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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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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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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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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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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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1)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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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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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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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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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003)
<rowcolor=#fff> 10대 11대 12대 13대 14대
감독 대행
김용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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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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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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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1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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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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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감독 대행
공필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rowcolor=#fff> 19대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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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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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023)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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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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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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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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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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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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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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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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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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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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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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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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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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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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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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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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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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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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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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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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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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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정호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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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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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24대 한정 총괄 코치로 직함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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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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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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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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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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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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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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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1987)
감독 대행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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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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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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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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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천보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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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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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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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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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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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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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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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2번
이문한
(1984)
양상문
(1985~1986)
이문한
(1987~1988)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7번
오문현
(1985)
<colcolor=#fff> 양상문
(1987~1988)
홍문종
(1989)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12번
권두조
(1984~1988)
양상문
(1989~1993)
신상윤
(1996~199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9번
결번 <colbgcolor=#000000> 양상문
(1994~1997)
윤학길
(1999~200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3번
결번 양상문
(1999~2001)
성준
(2007~2009)
LG 트윈스 등번호 73번
김용달
(1997~1999)
양상문
(2002~2003)
양영재
(200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9번
윤학길
(1999~2001)
양상문
(2004~2005)
결번
LG 트윈스 등번호 79번
김은철 양상문
(2007~2008)
다카하시
(2009~201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9번
결번 양상문
(2009~2010)
윤학길
(2011~2012)
LG 트윈스 등번호 79번
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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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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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대
(2015~2018)
양상문
(2019)
오태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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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영
(2016~2024.7.8.)
양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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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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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양상문한화2024.png
<colbgcolor=#f73600><colcolor=#fff> 한화 이글스 No.79
양상문
楊相汶 | Yang Sangmoon
출생 1961년 5월 8일[조기입학][2]([age(1961-05-08)]세)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現 부산광역시 남구)[3]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연초등학교 (졸업)
부산동성중학교 (졸업)
부산고등학교 (졸업 / 32회)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 석사)[4]
신체 175cm, 82kg, O형[5]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3년 1차 지명 (롯데)
1985년 1차 지명 (롯데)
소속팀 한국화장품 야구단 (1983~1984)
롯데 자이언츠 (1985~1986)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1987~1993)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1994~1997, 1999~2001)[6]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코치 (2001)[7]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02~2003)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4~2005)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07~2008)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09)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2010)
SK 와이번스 투수 인스트럭터 (2011)
LG 트윈스 감독 (2014~2017)[8]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9)[9]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24~)[10]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1999 / 2006 / 2009)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13)
대한민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23)
프런트 LG 트윈스 단장 (2018)
경력 KBO 기술위원 (2012)
KBO 자문위원 (2021~202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14 / 2022)
해설 위원 MBC ESPN 야구 해설 위원 (2006)
MBC SPORTS+ 야구 해설 위원 (2011~2014)
SPOTV 야구 해설 위원 (2021~2024)
병역 예술체육요원[11]
본관 중화 양씨(中和 楊氏)
종교 불교(대한불교 천태종)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프런트 경력
4.1. LG 트윈스 단장
4.1.1. 황금세대 등장의 숨은 공신4.1.2. 2018년
5. 해설자 경력6. 연도별 성적
6.1. 시즌 성적6.2. 완투, 완봉 기록6.3. 감독 시절
7. 여담 및 기타8. 관련 문서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現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투수.

선수로는 한국화장품, 롯데 자이언츠,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뛰었다.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 입단하여 2년간 활약한 후 이를 바탕으로 1985년, 프로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롯데에서 2년 동안 활약한 후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되어 청보(1987)와 그 후신인 태평양 돌핀스(1988~1993)에서 7년간 활약하여 태평양 돌핀스의 간판 선수가 되었다.

은퇴 후에는 롯데 자이언츠LG 트윈스에서 투수코치로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2004~2005년 당시 리그 최연소 1군 감독이라는 타이틀로 롯데 감독을 두 시즌 역임했고, 이후 LG와 롯데에서 코치를 맡았고 해설가로도 활동하다가 2014년 LG 감독으로 부임해[12] 2017년까지 팀을 두 차례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2018년에는 LG 트윈스 단장을 맡았고, 2019년에는 다시 롯데 감독으로 재부임했으나 부임 첫 시즌만에 성적 부진으로 전반기 종료 후 자진 사퇴하며 물러났다.[13]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파일:Z5iCw7l.jpg
파일:청소년대표 이상윤 양상문.jpg
파일:부산고등학교 야구부 로고.svg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시절

부산 출신의 안경잡이 에이스라는 것 때문에 최동원의 후계자로 기대를 받았다. 한국야구사에서 1977년을 부산고등학교의 해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주역이 바로 양상문이었다. 1977년 대통령배 준우승[14]을 이끌면서 이름을 알린 양상문은 1978년 정부 방침으로 출전 제한이 걸려 3개 대회만 나가게 된 상황에서 부산고가 출전한 대통령배, 청룡기, 화랑대기에서 모두 우승을 이끌면서 부산 지역 야구 팬들에게 화려한 시절을 선사했다.

화려했던 고교 시절 성적과 명성을 바탕으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려대 1학년 시절에도 최동원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는 등 크게 두각을 나타내면서 빼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부상을 당하여 2학년을 거의 통으로 쉬었다. 3학년 때 복귀했으나, 졸업반인 4학년 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2. 한국화장품 야구단

고려대를 졸업하고 1983년 실업리그 한국화장품에서 입단하여 2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실업야구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했다.

2.3. 롯데 자이언츠

1985년 1차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 첫 출발은 상당히 좋았다. 처음에는 구원으로 기용되었는데 승운도 따라주면서 4월까지 2승 무패 4세이브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후 선발로 전환되어 전반기에 4승 3패를 거두고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하지만 후반기에는 페이스가 떨어지며 전반기에 비해 신통치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인 1986시즌에는 구단 실세였던 박종환 전무에게 찍혀 많이 출장하지 못하며 단 1승에 그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시즌이 끝난 후 임호균 등과 함께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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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85롯데양상문.jp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롯데 자이언츠 선수 시절
파일:양상문 투구폼.gif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롯데 자이언츠 선수 시절 투구폼

2.4.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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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88~1993).png 태평양 돌핀스 선수 시절

1986 시즌이 끝나고 롯데와 청보간의 다대다 트레이드에 의해 청보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트레이드된 선수는 임호균, 양상문, 배경환, 이진우, 김진근(이상 롯데 자이언츠), 정구선, 정성만, 우경하(이상 청보 핀토스)였다. 트레이드 핵심은 롯데의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 활약했던 임호균 + 양상문'과 청보에서 가장 날렸던 2루수 정구선의 트레이드였다. 전반적으로는 청보가 좀 더 득을 많이 본 트레이드로 기록된다.

이적 첫 해인 1987년 청보에서 12승 13패 ERA 3.10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커리어와 팀내에서 갖는 상징성 등으로 명목상 임호균이 청보의 에이스였으나, 성적상으로는 양상문이 임호균보다 나은 활약을 보였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태평양그룹이 청보 구단을 인수하면서 태평양 돌핀스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다. 임호균의 급격한 노쇠화로 명실상부한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으면서 9승 12패 ERA 3.83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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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88~1993).png 태평양 돌핀스 선수 시절, 김성근 감독과 오대산 훈련

앞에서 두번째, 즉 김성근 바로 뒤가 양상문.[15]

1989년 김성근이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이해에 소위 태평양 3인방으로 불리는 신인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양상문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래도 선발진의 한축으로 활약해서 1989년과 1990년 160이닝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과 8승 11승을 올린다.

이후 1993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까지 4시즌간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제 역할을 했으나, 팀의 인기가 워낙 저조한데다가 3인방에 가려 별로 제대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심지어 은퇴 시즌에도 4완투나 했다. 부상이 있었는지 꽤 이르게 은퇴한 편.

투수로서의 능력만 본다면 꽤 쓸 만한 기교파였으나, 팀이 부진의 절정을 달린 청보와 태평양이다 보니 까먹은 승수가 많아 통산 기록은 63승 79패 13세이브 40완투(10완봉) 평균자책 3.59에 불과하다.

부산 출신으로 롯데에서 데뷔를 했지만 프로 시절 커리어 대부분을 인천 연고팀인 청보-태평양에서 보냈고, 청보와 태평양의 역사에서도 한 시기를 대표할만한 선수이자, 암흑기 에이스였던 선수였다. 1987년~1988년 두 시즌 동안은 성적상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고, 3인방이 등장한 이후에도 4시즌간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1990년에는 4완봉승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좌완투수 단일시즌 최다 완봉으로 남아 있다. 또 선수층이 얇은 청보-태평양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1987~1988 2년 연속 출장 경기수 2위를 할 정도로 혹사를 했고, 이러한 혹사는 김성근 재임기까지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이 취임하면서 갑툭튀한 3인방으로 인해 일순간 에이스에서 3~4선발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출장 경기수나 이닝은 1988시즌과 거의 차이 없었다. 다만 3인방이 양상문보다 더한 혹사를 당했을 뿐.

초기에는 팀에서 상징성이 컸던 임호균이 에이스로 대접받았고, 1989시즌부터는 3인방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매스컴의 폭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임호균, 박정현, 정명원, 정민태 등이 짧게 반짝한 후 부침을 겪으며 명멸하는 동안 부상없이 스테디하게 태평양의 마운드를 지킨 이는 양상문이 유일했다. 어찌보면 비인기팀의 에이스였던 불운에다가 그 비인기팀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비운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롯데에서 스테디하게 활약하며 장기적으로 팀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윤학길보다, 한 해 반짝했던 염종석이 훨씬 더 많이 기억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불운한 케이스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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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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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런트 경력

4.1. LG 트윈스 단장

2017 시즌 마지막 날인 개천절, 삼성 라이온즈 왕조 시절 감독이었던 류중일을 후임 감독으로 선임하고, 양상문 감독은 단장으로 보직을 변경한다는 기사가 떴다. 그러나 최종일 경기 시작 전이어서인지 구단의 공식 발표는 아직은 없는 상태. LG는 사직에서 열린 최종전이 끝난 후 류중일 감독과의 3년 계약 및 양상문의 단장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송구홍은 자연스레 단장에서 물러났다.

LG 팬들 사이에서는 송구홍이 물러난 것은 환영하지만 양상문이 단장을 하는 것도 영 믿음이 안 간다는 어정쩡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 세세한 선수기용을 제대로 하거나 건곤일척의 승부를 거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마운드 ERA 1위를 달성하고 팀 평균 연령대를 낮추었듯 큰 그림은 잘 그린다는 옹호의견과, 잠실 거포배제 및 번트/도루 지시를 보면 그 큰 그림도 뭔가 잘못 그리고 있던 감독이었기에 단장이 되어 봐야 나아질 것이 없다는 비판적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롯데 시절 감독에서 짤리고도 제리 로이스터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한 것처럼 LG에서도 감독에서 물러나면서도 단장을 하게 되는 독특한 인물이 되었다.

양상문이 단장이 되자마자 벌인 짓은 당시 wRC+ 121.2로 팀내에서 박용택에 이어 2위를 기록했던 정성훈을 비롯해, 손주인, 이병규, 유원상, 백창수를 날려버린 일이었다.

손주인이 스프링캠프에서 부상을 입고난 이후, 시즌 중 기량을 펴지 못했고, 정성훈이 KIA에서 88게임 타율 0.295의 성적을 거둔 이후 은퇴하였지만, 이 겨울에 팀을 떠난 다섯 명의 선수가 시즌 대부분을 1군 엔트리에서 보냈다. 반면 가뜩이나 양상문 감독 재임 말기에 야수진이 약화돼있던 팀에서 그나마 1~2년은 더 쓸 수 있던 선수까지 정리해 버리니 팀은 역대급 DTD 및 두산전 1승 15패를 하고 8위를 하게 되었다.

4.1.1. 황금세대 등장의 숨은 공신

어찌보면 양상문이 LG에 적을 두며 이룬 최대의 공헌이자 역작. 이 부분은 분명히 재평가받아야 한다.

2018년 9월 10일에 실시된 2019년도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선수들이 빠른 시일내에 1군무대에서 큰 활약을 동시다발적으로 해 나가면서 단장으로서 선수 지명과 리빌딩에 있어 재평가받고 있다. 양상문이 단장으로 있으면서 딱 한번 했던 신인 드래프트였지만 1차 지명 이정용, 2차 1라운드 이상영, 2차 2라운드 정우영, 2차 3라운드 문보경, 2차 6라운드 구본혁, 여기에 더해 2차 8라운드 임준형[16]까지 무려 6명이 불과 3년만에 1군에서 대활약[17]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황금의 드래프트[18]라고 불러도 될 정도.

게다가 2차 10라운드 한선태는 비선출 출신으로 1군 무대를 밟았고 2군에서 0점대 ERA로 콜업을 기다리고 있으며 2차 5라운드 남호함덕주를 데려올 때 트레이드 카드로 시용됐다. 망한 선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성공한 드래프트. 그 이전 신인 드래프트를 거슬러 올라가봐도 한 명이라도 1군에서 활약한 선수가 있으면 성공한 드래프트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LG의 신인드래프트 및 육성은 늘 실패였다. 당장 2015년부터 거슬러 올라가봐도 1차지명 김재성이 2021년에야 처음으로 백업포수로 1군에 올라온 정도[19]. 2016년에는 LG 최고의 성공작 홍창기[20]를 뽑긴 했으나 김대현, 김호은 등이 가능성만 보여주고 아직도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에는 마무리 고우석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있었으나 그 외에는 큰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손주영, 오석주 등이 이제 겨우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도. 2018년에는 문성주, 그나마 데뷔 시즌 1군 무대를 밟은 김영준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인물들이 없다. 먼저 뽑은 선배 선수들도 이런 상황인데 2019년의 신인들이 이정도로 활약하는 건 분명히 성공했다고[21]평할 만 하다.

다음 해인 2020년 드래프트도 이민호김윤식, 이영빈 등 좋은 선수들이 들어와서 LG 드래프트는 2년 연속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단연 최근 10년간 최고의 드래프트는 양상문이 단장으로 있던 2019년 드래프트라고 하겠다. 물론 스카우트 팀의 역량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단장의 허락 없이 뽑을수는 없다. 특히 이정용, 정우영, 이상영 등 걸출한 투수들이 많았다는 점은 양상문 단장의 시각이 포함되었을 가능성[22]이 매우 높다.

4.1.2. 2018년

11월 22일 정성훈에게 방출을 면담을 통해 통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정성훈이 완전히 기량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2017 시즌에 wRC+ 121.2를 기록하는 등 아직 팀내 상위권의 공격력을 지닌 타자였기에 LG 팬들은 단체로 멘붕중. 이진영에 이어 아무 대책 없이 팀 레전드를 내친 것을 보고 이순철이 떠오른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 그러나 정성훈은 2017년에도 주전이 아닌 대타, 로테이션 멤버로 시즌을 소화한 38살 체력이 떨어진 노장이었다. 다음 해 기아에 가서도 대타,로테이션 멤버로 전반기에 나와서 잘했고 후반기엔 수직낙하해 뛰지도 못했다.[23] [24]

2차 드래프트로 손주인, 백창수, 유원상, 이병규가 이적했다는 소식이 드러났다. 2017년에 되도 않는 리빌딩이랍시고 강승호를 밀어주었더니 2016년에 커리어하이 찍은 주전 2루수를 드랲으로 풀어버린 것. 위의 정성훈 소식과 맞물려서 LG팬들은 분노를 넘어서 해탈할 정도이다. 점점 LG의 신금지어로 가고있다. 물론 기회를 줄만큼 줬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나이만 먹은 이병규을 내보낸 것은 LG 팬덤에서도 수긍할 만했지만, 정성훈과 손주인을 내보낸 것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작뱅 풀어준 것은 의미가 없다. 급기야 단장 퇴출 시위[25]가 있었고, 직구와 조크볼에서도 를 깠을 정도.

이후론 안익훈, 이형종, 채은성을 키워야 해서 FA 데려오기 힘들다는 언플을 하고 있다. 안익훈이야 96년생이고 24세 이하로 이뤄진 선동렬호 1기에도 뽑혀간 선수지만 채은성, 이형종은 각각 빠른 90, 89년생인데 낼 모레 서른인 이 둘이 과연 안익훈과 같은 유망주 패키지로 묶여야 할 선수들일까? 김현수와 손아섭이 88년생으로 양상문이 유망주 딱지붙여서 애지중지하는 이 둘과 한 살 차이 밖에 안난다. 언플의 제왕답다.

12월 초 휴대폰 전화번호를 바꿨다. 누군가 양상문의 휴대폰 번호를 입수하자 이를 양상문 반대 측에 퍼트렸고, 온갖 욕설 문자와 전화에 시달린 양상문은 결국 전화번호를 바꿔야 했다.[26]

선수 키운다고 무작정 고참 내치다가(김재현, 이상훈) 팀 암흑기를 열어버린 이순철과 계속 비교가 되고 있다. LG 팬들은 보통 정말 웬만한 일 아니면 저 금지어 이름을 안 꺼내기 때문에 팀과 팬들 사이의 갈등이 보통 깊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건 개인 팬들의 과장된 의견인게, 2018년 기준 체력 관리 안 되고 수비 못하는 38살 1루수, 수비력 크게 떨어지고 생산력 부족한 35살 2루수를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김재현,이상훈과 비교할 수 없다. 실제로 손주인과 정성훈은 다음해 이적한 팀에서 부진하며 바로 은퇴했다.

그 와중에 데이비드 허프까지 놓쳤다는 기사가 떴다.기사 FA는 전부 놓치고 베테랑들은 찬밥으로 풀어버리고 잘 던지는 외국인 선수도 다른 팀 보내고.. 이 쯤 되면 단장으로서 뭘 협상한 건지 알 수 없을 지경. 현재 양상문이 이끄는 프런트 측은 2017시즌 연봉과 비슷한 금액을 제시했지만 허프가 200만 달러 이상을 요구하며 헥터 노에시급을 요구하였다 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결국 리즈-허프 체제로 가려는 것이 실패하여 버리려고 했던 헨리 소사에게 재계약 콜을 부랴부랴 넣는 상황 + 새 외인을 찾는 상황이 되었고 모든 구단 중 유일하게 외인 계약 성사를 하지 않자 LG 팬들은 헨리 소사에게 차갑게 대해놓고 잘도 계약하겠다며 양상문을 비판하고 있다. 결국 소사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이번엔 지나치게 비싸게 계약했다며 비판받고 있다.

그리고 15일 엠스플에서 LG와 같은 조건으로 일본행? 이라는 기사를 통해 실제 데이비드 허프와 계약 협상 테이블을 차린 일본 구단 스카우트가 귀띔해 준 내용으로는 LG구단이 제안한 금액과 일본 구단이 제안한 금액이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는 말과 허프도 한국 생활에 만족하며 잔류하고 싶어했다는 말에 가뜩이나 이번 겨울 양상문의 행동에 불만이 엄청 쌓인 LG팬 일부는 이 기사를 보고 사실이라면 양상문이 엄청 일을 못 하는 것이라며 비난했고 신중론은 어쩌면 금액은 똑같지만 보장금액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라는 반응도 보였다.

4일 후 19일 김현수를 우여곡절 끝에 4년 115억원(계약금 65억, 연봉 50억)에 영입했다. 이로서 정성훈 방출 등으로 그를 보는 눈이 비우호적이었던 LG 팬덤의 마음을 돌릴 계기가 마련되었다.
당시 LG행으로 점쳐졌던 후보는 손아섭황재균이었다. 김현수와 손아섭 투 트랙 전략으로 갔었는데,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명단이 결정나는 윈터미팅 때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기 때문에 손아섭과 먼저 계약을 하려고 했다. 손아섭과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틀어졌고 김현수에게 삼고초려의 노력을 하며 김현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김현수의 에이전트 이예랑에 따르면 두산에 애착이 있는 상황에서 라이벌팀 엘지로 이적하는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라 고민을 많이 했고 양상문이 김현수를 영입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현수를 영입하며 "중심 타선이 약했는데, 김현수가 중심타자로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실력 외에도 우리 팀을 이끌어가는 부분에서 중심 선수가 적었다. 그런 부분도 기대한다. 젊은 선수들과 어울려서 팀을 이끌어가면 좋겠다.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선수이기이 기대가 크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김현수의 영입은 LG가 기대했던 타격을 보여주는 것 뿐만 아니라 김현수가 리더십을 발휘해 선수단의 체질을 바꾸고 채은성유강남 등 야수들이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성공한 영입으로 평가받는다. 엘지에는 팀보다 개인성적, 연봉을 위한 개인플레이를 하던 고참들이 대부분이었고 후배들이 그대로 따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김현수가 처음 온 해에 한 인터뷰에서 엘지는 지고 있을때 덕아웃이 조용하고 팀플레이보다 개인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었다.

그리고 2018 시즌 새로운 외국인 선수 영입을 타일러 윌슨, 아도니스 가르시아로 마무리지으며 깔끔한 일처리를 보여주면서 스토브리그 한정이지만 논란을 가라앉히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전임자 송구홍이 운영팀장과 단장으로서 4년이나 외국인 스카웃과 FA 영입을 망친 것을 생각해본다면, 양상문의 일처리는 송구홍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됐다는 평. 더불어 앞서 노장들의 정리와 정성훈 방출건도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가지 측면에서 납득이 간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는데, 5월 중순에 들어서도 LG는 불펜이 심각하게 약화된 모습을 보이며 온갖 팀에 두들겨맞고 있다. 30년 내내 육성에 답이 없던 팀을 젊은 선수 키우겠다고 그나마 사온 선수들도 다 내보내니 팀이 될 리가 있나.

5월 24일 기준으로 2016년 밀어주던 정주현이 안정적으로 2루에서 손주인을 완벽히 대체하며 공백을 지워버렸고 양아들로 입적된 양은성은 사실 그 양이 양상문이 아니라 양준혁이라는 말을 들으며 LG타선을 이형종, 김현수와 함께 이끌며 자신을 폄하하던 LG 팬들에게 무력시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채은성은 KBO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성적으로 타율 11위, 최다안타 4위, 득점 9위, WAR 7위, 타점은 이대호에 이은 공동 2위를 기록하며 김현수에게 묻혔지만 KBO를 폭격하고 있다. 팀 내에서는 모든 타격지표가 김현수와 함께 선두권을 달릴 정도. 정주현도 비록 지표는 적지만 안정적인 수비와 더불어 LG팬들이 강승호에게 기대하던 타격쇼마저 보여주며 3할 1푼의 고타율을 기록 중이다.

단장으로서 실수는 지금까지는 아도니스 가르시아. 4월에 드러눕더니 월드컵 다 보고 올 기세로 먹튀짓을 실시 중이다. SNS 관종짓까지 더해 팬들의 분노를 끌어올리는 것은 덤. LG에서 타자 용병이 이런 적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양상문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주목이 모이고 있다. 그러나 결국 복귀 이후에도 실책남발을 하다가 또 허벅지가 터진 놈을 교체하지 않고 지켜보겠다고 발표하면서 양구홍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류중일이 영상을 보고 영입해달라고 한 선수고 류중일이 기다려보겠다고 했었다.
여름에 들어서면서 방화신기를 재탄생시킨 강상수의 억제기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은근한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류중일, 류지현 감독 체제에서도 후반기 DTD, 두산전 열세, 포스트시즌 첫 라운드 광탈 등 영 신통찮은 결과들이 나오자 양상문의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재평가되었다. 타격코치로 10년 팀킬 중이던 서용빈을 데리고서도 플옵에 2번 갔기 때문. 거기에 양상문이 있던 시즌에는 김현수도 없었고 외국인 타자도 16년 전반기 히메네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었다.

10월 19일, 성적 부진 책임을 이유로 자진사퇴 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구단에서 재계약을 안한 것이라고 한다.[27] 그리고 이틀 뒤인 10월 21일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선임된다는 공식 발표가 났다.[28] 그리고 LG 트윈스 신임 단장에는 LG 트윈스 투수 코치, 해설위원 경력이 있던 차명석이 부임한다.[29]

5. 해설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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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연도별 성적

6.1. 시즌 성적

<rowcolor=#ed1c2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5 롯데 33 101 6 3 4 0.667 3.83 120 7 30 58 57 43 1.436
1986 21 37⅓ 1 2 0 0.333 1.93 27 2 14 21 8 8 0.964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7 청보-태평양 36
(2위)
209⅓
(3위)
12 13 0 0.480 3.10 188 18 71 84 87 72 1.213
1988 38
(2위)
169⅓
(5위)
9 12 3 0.429 3.83 185 12 56 68 89 72 1.411
1989 35 161⅔ 8 11 4 0.421 3.28 131 12 77 91 60 59 1.249
1990 34 162⅓
(5위)
11 9 1 0.550 3.22 151 10 57 68 72 58 1.269
1991 25 123⅓ 6 9 1 0.400 3.50 122 6 46 80 54 48 1.354
1992 28 144⅓ 7 8 0 0.467 4.55 134 22 78 83 78 73 1.455
1993 22 101 3 12 0 0.200 4.46 110 9 50 46 62 50 1.545
KBO 통산
(9시즌)
272 1209⅔ 63 79 13 0.444 3.59 1168 98 479 599 567 483 1.335

6.2. 완투, 완봉 기록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5년 1완투 1완봉
(9위)
1986년 0완투 0완봉
1987년 13완투
(4위)
3완봉
(3위)
1988년 8완투
(4위)
0완봉
1989년 0완투 0완봉
1990년 6완투
(6위)
4완봉
(3위)
1991년 3완투 1완봉
1992년 1완투 0완봉
1993년 4완투 0완봉
KBO 통산 40완투 10완봉

6.3. 감독 시절

역대 감독 전적
<rowcolor=#000>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4 롯데 자이언츠 133 50 72 11 8위 -
2005 126 58 67 1 5위 -
<rowcolor=#373a3c> 통산 259 108 139 12
<rowcolor=#fff>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4 LG 트윈스 94 52 41 1 4위 4위[30]
2015 144 64 78 2 9위 -
2016 144 71 71 2 4위 4위[31]
2017 144 69 72 3 6위 -
<rowcolor=#373a3c> 통산 526 256 262 8 ­
<rowcolor=#fff>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9 롯데 자이언츠 94 34 58 2 10위[32]
<rowcolor=#373a3c> 통산 94 34 58 2
<rowcolor=#373a3c> 총계 879 398 459 22

7. 여담 및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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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양상문과 아들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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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신인 지명 회의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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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지명 후 미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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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신인 지명 회의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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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입학] [2] 음력 1961년 3월 24일. 그런데 실제 나이보다 학교를 1년 빨리 입학하는 바람에, 1960년생들과 동기고, 생년월일이 1년이나 차이나는 김용수와도 친구로 지내고, 겨우 20여일 늦게 태어난 이순철은 유급까지 했기에 2년 후배다.[3] 출생 당시엔 직할시 승격 이전이자 자치구가 아닌 일반구였기에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출신이다.[4] 석사 학위 논문 : 危機狀況의 遂行能力과 不安과의 關係에 관한 硏究(위기상황의 수행능력과 불안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 1987년)[5]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5/07/01/2005070170220.html[6] ~6월 9일[7] 6월 10일~[8] 5월 11일~[9] ~7월 18일[10] 7월 5일~[11] 197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준우승#[12] 시즌 도중 5월 11일 부터 제 11대 감독으로 부임했다.[13] 명목상으로는 자진 사퇴지만 실제로는 수뇌부의 의중에 의한 경질로 알려졌다.[14] 결승전에서원1년 선배 김경문공주고와 대결했다. 김경문은 대회 최우수선수상 및 타격상을 수상했다. 공주고는 36년후인 2013년에 대통령배를 다시 품에 안았다.[15] 물론 저 사진은 1990년에 촬영한 광고용 컨셉 사진이었다. 실제로 오대산 극기훈련 당시 김성근은 숙소에 있었고 산악 구보 훈련에는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16] 2021 시즌 막판에 첫 선발승을 따냈다. 버리는 게임이 아니라 긴박한 순위쟁탈전 중에 귀중한 1승을 따낸 것.[17] 심지어 정우영은 신인왕[18] 이대호, 이정후 등의 슈퍼스타가 없는 LG답게 미미해보일 수 있으나, 내실 있는 세대가 아닐 수 없다. 1차 지명부터 2차 10라운드까지 11명을 뽑는 중에 6명이 1군, 1명이 1군급, 또 다른 한명이 타 팀 1군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불과 2~3년만에 이루어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 2023년 정규 우승에도 공헌했다.[19] 2차 1라운드 안익훈이 반짝 활약을 하긴 했다. 백승현은 투수로 전향했다[20] 2차 3라운드[21] LG 트윈스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는 당연히 신인 4인방으로 단숨에 우승을 차지한 1994 드래프트이다. 신인들이 1군을 밟는 것도 모자라 전반기에만 10승을 찍어낸 괴물 투수(인현배, 다들 알다시피 후반기에는 뭘 못 했다.), 신인왕(유지현), 고졸 20-20(김재현), 3할, 시즌 최다 안타(서용빈)로 활약하며 팀을 우승시켰다. KBO 전체로 봐도 탑을 다툴만한 드래프트.[22] 양상문이 해설위원으로 돌아온 이후 해설을 들어보면 선수 스카웃을 위해 선수들을 많이 보러 다니고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단순히 스카우트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선수들을 직접 챙긴 것.[23] 이에 대한 불만 및 비판을 가진 쪽에서는 노장이 되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정성훈도 예외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수를 떠나보낼 때는 떠나보내더라도 저렇게 선수에게 모멸감을 들게 떠나보내면 안 된다는 것이 중론으로 나오고 있다. 정성훈은 김기태가 같이 하자고 해서 두번째 FA에서 본인의 가치보다 LG 측에 훨씬 싸게 사인해주었다는 이야기도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반 분위기에 비해 비교적 영입 시장을 차분히 마무리 했지만 선수 대우에 대한 태도 만큼은 아직도 큰 비판거리.[24] 그러나 방출 통보를 할 때 전화로 한 것도 아니고 면담을 통해 정식적으로 진행했다. 10분만에 면담이 끝났기때문에 선수에 대한 태도가 문제라고 하는데, 방출할때 면담으로 오랜 시간 이야기 해주는게 더 이상하다.[25] 많은 LG 팬들이 극성 개인팬들의 시위를 부끄러워하고 있다.[26] LG 트윈스에서도 2010년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며, 이듬해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한 양승호 전 감독 역시 부임 초반 기대 이하의 성적에 비슷한 일을 겪은 바 있다.[27] 정황상 감독 계약기간이 1년 남은 것을 단장으로 승진시켜 채우게 한 것으로 보인다.[28] 양상문 본인이 야구부장 채널에 나와서 밝힌 이야기에 의하면 사실 LG 트윈스에서 단장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는데, 하필이면 이때가 퇴근시간. 기분도 안 좋은 상황에서 하필 통보를 받은 당일 저녁에 롯데 단장하고 약속이 잡힌 상태, 양상문 입장에서는 '단순히 조언이나 받자고 하는 거겠지.'하는 생각으로 갔는데, 거기서 감독 제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 참조.[29] 차명석 또한 MBC SPORTS+ 해설위원이었다는 것이 같다.[30]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게 승리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넥센 히어로즈에게 패배하여 3위가 아니라 4위[31]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 히어로즈에게 승리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게 패배하여 3위가 아니라 4위[32] 중도 사퇴[33] 나머지 한 사람은 농구 선수 한만성으로 허재용산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아농구단(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 입단했다. 당시 기아 농구단 선수 전체가 출연할 때 나왔다.[34] 양상문의 지도자 커리어 중 손에 꼽히는 시즌인 2005 롯데나 2016 LG의 경우, 성적도, 리빌딩도 모두 성공했다.[35] 7월 14일 하루 제외.[36] 비슷한 사례로 해설위원을 처음 시작한 2015년부터 매년 한화 이글스를 5강 후보로 줄기차게 꼽으며 고향팀 사랑을 뽐냈던 정민철이 있다. 물론 정민철의 예상은 2018년을 빼고는 모두 빗나갔다.[37] 44년 4억이라는 말을 양상문이 언급한 시점은 FA 협상 기간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공식적으로는 무적이긴 했다. 고유라 기자가 LG가 아닌 넥센 히어로즈 담당 기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식적인 인터뷰가 아닌 사석에서 던진 농담일 가능성이 높다.[38] 이 때 김경문은 감독 3회차였고, 양상문은 단장 1회, 감독 3회를 거친 둘 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 되었다.[39] 양상문 감독이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장면도 많이 보인다. 대개 선배에게 후배가 먼저 인사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예의를 갖추는 면이 양상문 감독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40] 04학번, 부산고 시절 장원준박근홍의 뒤를 받치는 우완 사이드암 투수였다.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은퇴했다.[41] 저 둘은 충암고가 아님에도 성격이 충암고 출신들과 비슷하다는 게 팩트인지라...[42] 박명환의 방송인 박명환야구TV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북한을 남한으로 바꾸려던 감독'이었다고 한다. 다만 정수근은 강병철과 매우 사이가 나쁜만큼 어느 정도는 걸러서 들어야 한다.[43] 가끔씩 걸그룹 멤버들이 시구할 때 걸그룹에 대해 설명하기도 한다![44] 하지만 시범경기 3연속 폭투가 임팩트가 강해서 그렇지 2011년 고효준의 성적을 보면 충분히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45] 그리고 아프리카 TV에서 LG 편파를 하고 있는 BJ 캐스터안이 검은 선글라스를 경기장에서 많이 쓴다는 이유로 '까만 안경'이라는 별명도 만들었다.[46] LG 트윈스 구단 공식 캐스터였던 안준모도 운영 관련해선 양상문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 정수근도 은퇴 후 인터넷 방송을 통해 양상문 감독 시절 썰을 푼 적 있었는데 롯데를 북한에서 남한으로 바꾸려 했던 사람이었다고 평가했지만 그거 말고는 썩 좋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47] 롯데 1기 시절에는 박정태를 은퇴시켰고, LG 시절에는 이병규를 은퇴시켰다.[48] 문광은은 2019시즌에서 폭발적으로 잘하고 있다. 고척돔에서 무사 만루에서 막아낸 적이 있다.[49] 해설위원 3기 시절 들어 특정팀을 편파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대표적으로 LG 트윈스 경기를 해설할땐 봄햇살 같은 따뜻함을 보여줬던 반면, 롯데 자이언츠나 한화 이글스 경기를 해설할땐 비판만 잔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NC 다이노스에 대해서도 그다지 좋은 소리를 안하는 편. 그런데 또 2022년부터는 롯데 응원가를 들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말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24년에는 또한 LG와 NC 전에서 NC에 편파스러운 해설로 LG 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그러나 특정팀을 편파하는 일은 없으며 지고 있거나 양상문을 싫어하는 팀 팬들이 편파한다고 느끼는 것이다.[50] 오지환이 우승 이후 가장 먼저 생각났고 존경한다고 말한 감독이다. 야구가 재밌을 수 있다는걸 처음 알게 해줬다고 하고 오지환은 양상문 감독때 수비, 공격에서 큰 폭으로 성장해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이대호는 백인천 감독 밑에서 살 때문에 기회를 많이 받지 못하고 무릎 부상까지 당해서 매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양상문이 감독으로 돌아오고 이대호는 주전 4번타자로 기회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이대호,강민호,박기혁을 왜 쓰냐는 무수히 많은 비난도 1년 넘게 들었다. 통도사 등산을 통해 살을 빼라는 권유를 양상문으로부터 받고 등산을 통해 살을 대폭 감량했다.[51] 이대호, 강민호, 장원준, 이원석, 채은성[52] 양상문 이후 강병철, 로이스터 감독과 트러블이 있었다.[53] 저는 동원이 형이 특별한 것이, 지금 인터뷰에서 계속 말씀드리는 라이벌 관계, 이렇게 이야기 하는 데, 그러면 동원이 형도 저를 어리고 부족하지만 라이벌로 생각했을 거고, 사실 동원이 형 부친께서는 저를 우습게 봤겠죠. 저 놈이 우리 아들하고 라이벌이 돼? 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않으셨어요. 그 당시 부친께서 일본 야구책을 번역해가지고 와서 저를 불러서 야구 이론을 공부를 시켰어요. 동원이 형하고 저하고 앉혀서 야, 요즘 일본 야구의 이론은 이렇다, 투수들은 이렇다. 그 때 공부가 참 많이 됐거든요. 저도 대학 때 일본 야구, 투수에 대한 야구 공부도 많이 했지만, 그 당시 들었던 동원이 형 아버님의 야구 이론, 일본에 대한 야구 이론, 진짜 공부 많이 했거든요. 저는 동원이 형 하고의 추억이나 옛날 그게, 그냥 선배, 동료, 이런 게 아니고, 저는 똑같은 부친이 스승님이고 아버님처럼, 그렇게 정말 제 야구 인생에 참 변화를 많이 줬던 퍼센테이지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특별해요. 이런 이야기는 처음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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