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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4:32:02

개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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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개천절까지
D[dday(2024-10-03)]
개천절
開天節 | Gaecheonjeol
[1]
파일:개천절.jpg
<colbgcolor=#cd313a><colcolor=#fff> 날짜 <colcolor=#000,#ddd>10월 3일
지위 국경일, 법정 공휴일
근거 법령 「국경일에 관한 법률」제2조 제4항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제2조 제2항

1. 개요2. 역사와 일자
2.1. 날짜에 대하여2.2. 전근대의 역사2.3. 대종교에서의 역사2.4. 근대적 기념일로 발전2.5.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역사
3. 명칭 및 건국 관련4. 연휴5. 노래6. 여담

[clearfix]

1. 개요

개천절(開天節)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의미로서 단군왕검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하여 역사를 개창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날짜는 10월 3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 법정 공휴일이면서 5대 국경일이므로 태극기를 게양한다.

과거에는 음력 10월 3일에 기념했지만, 현재는 양력 10월 3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종교에서는 여전히 음력 10월 3일에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선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2. 역사와 일자

2.1. 날짜에 대하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단군기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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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은 단군의 고조선(단군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역사학적으로 10월 3일이 고조선의 건국일인 것은 아니다. 고대 국가이기 때문에 고조선의 정확한 건국 일자는 불명이다. 일자나 월은커녕 건국 연도조차 학설마다 몇백 년씩 차이가 난다. 아마도 다른 청동기 시대 국가처럼 부족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치 크리스마스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실제 예수의 탄생일과는 관련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대종교의 관점에서는 "한배님이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에 강림하여 125년간 교화 시대를 지내고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부터 치화(治化)를 시작했다."는 문장을 근거로 하는데,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457년(갑자)에 강림했고 기원전 2333년(무진)부터 치화를 했다'는 의미가 된다.

'무진년(기원전 2333년)'이라는 일자는 1281년 편찬된 삼국유사와 1485년 편찬된 《동국통감》에도 등장하나, 그 내용은 중국 신화 임금이나 임금 같은 불안정한 기록에 연유하고 있어 일자를 신뢰하기 어렵다.[2]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단군기원 문서 및 고조선 문서, 단군 신화 문서를 각각 참고.

2.2. 전근대의 역사

전통적으로 음력 10월은 특별한 달로 여겨졌다. 음력 10월은 동짓달(음력 11월) 바로 전 달로, 12간지로 따지면 마지막 해(亥)에 해당한다.[3] 한 해의 마지막이면서, 이즈음이면 농사도 끝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느낌도 강하다. 이때는 민간에서도 상달이라 하여 집집마다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는데, 현대에도 이 풍속이 아직 살아있다.
조선 후기 일부 지방에 '음력 10월 3일에 단군에게 제사 지내는 향산제라는 풍속이 있다'는 기록이 있고, 19세기 문헌인 무당내력이 "상원갑자 10월 3일에 신인이 박달수 아래로 내려오니 단군이라 한다. 신교(神敎)를 세우고 백성들을 가르쳤다."라는 구절이 있으며, 김염백(金廉伯)이 평안도에서 1890년대에 일으킨 단군 신앙 집단에서도 음력 10월 3일을 단군의 탄생일로 여겼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조선 후기에 평안도함경도한반도 북부에서 단군과 음력 10월 3일을 연결 짓는 민간 신앙이나 의식이 존재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태조 1년(1392년)의 8월 11일 2번째 기사#에는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 "평양부(平壤府)로 하여금 때에 따라 제사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라는 언급이 있다. 조선 왕조의 제사 예법에서는 상순, 즉 1일부터 10일까지는 존귀한 제사를 드리는 날, 중순은 사대부, 하순은 그 이하가 제사를 지내는 날로 삼았다. 왕실 제사 예법에도 상순에 드리도록 정한 제사가 많다. 또한, 고구려동맹, 동예무천 등 옛 제천 행사도 10월에 열렸다.

2.3. 대종교에서의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종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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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에서 나철이 1909년 처음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를 발표할 때 음력 10월 3일을 경절(慶節)이라고 부르며, "단군 대황조께서 나라를 세우고 참도를 세우신 지 4237년, 광무(光武) 8년(1904)에 백두산에서 백봉(白峰)이라는 인물에게 단군교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1910년에 나철은 "환인이나 환웅, 환검이라 함은 전부 단군 한 분을 나누어 불렀을 뿐"이라고 하여, 단군을 적극적으로 천신(天神)과 일체화하고, 환웅/환인과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대종교에서는 나철이 삼일신고를 짓지 않고, 백봉신사라는 이인으로부터 받았다고 설명한다. 백봉신사와의 관련 인물들은 대종교 문헌을 제외하면 기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백봉신사을 허구의 인물로 판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실제로 백두산 근처에 백봉신사를 중심으로 소규모 단군계 종교 단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추정일 뿐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아마도 삼일신고나 단군교포명서는 나철이 저술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나철이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한 이유도 윗 문단에 나오는 것처럼 기존에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음력 10월 또는 음력 10월 3일을 특별히 여기고 제천 행사를 열어온 전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4. 근대적 기념일로 발전

1909년 11월 21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단군성절제일(檀君聖祖祭日)》란 논설은 몇 가지 논점을 제시했는데, 대략 아래와 같은 논지의 발문이 실렸다.
우리 민족의 시조를 기념함으로써 우리가 문명국의 문명 민족임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근자에 모 씨(나철로 추정)가 이번 달 15일, 음력 10월 3일에 성조 개극절(聖祖開極節)을 지냈으니 일반 대중도 이날을 기념제로 삼도록 하자. 혹자는 이 날짜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의미 없는 말이다. 우리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도 탄생/기일에 제를 올림은 옛 예법이 아니요, 길일을 잡아 지냄이 올바른 예법이다. 그러므로 우리 건국 시조를 제사하는 날도 오곡이 무르익는 좋은 시절인 음력 10월 초삼일로 정함은 예에 맞다. 우리는 단군을 기념함으로써 우리가 문명 민족임을 세상에 발표해야 한다.

10월 3일이 꼭 역사적 사실에 합치된 날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날짜가 좋은 때니 그날 단군을 기념하자는 것이다.[4]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는 자체적으로 음력 10월 3일을 기념하여 경축하였다. 다만 그 명칭은 대종교의 명칭인 '개천절', 혹은 '개천경절'이 아닌 '대황조 성탄 및 건국 기원절(大皇祖聖誕及建國紀元節)'이라고 하였고, 이날 임시 정부 국무원이 주최하는 축하식이 열린 바 있다.

2.5.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역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에 대한민국 정부는 나라가 어수선하여 아무런 국경일을 제정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49년에 비로소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법률 제정을 앞두고 당시 문교부에서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할 수 있는지 검토하였다. 하지만 심의 결과 환산할 수 없다고 나왔거니와[5] '10월 3일'이라는 날짜 자체가 중요하단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래서 1949년 10월 1일에 법률 53호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이름하여 국경일로 정했다.[6]

그런데 음력 10월로 했으면 대부분 11월에 걸려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이 때문에 10월에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1991년부터 2012년까지 공휴일에서 빠져 논란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에는 태음력이 '비과학적인 역법'이기 때문에 절대로 쓰지 말자는 것이 정부 공식 입장이었다. 이 시절에는 설날 연휴도 양력 기준으로 쇠었다. "8월 15일 + 보름달"을 양력으로 환산하자니 도무지 답이 안 나와서 마지못해 추석에만 음력 사용을 인정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민간의 음력 사용 관행을 없앨 수는 없어서 결국 정부도 포기하고 1970년대 지정된 부처님오신날은 음력을 따르게 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설날 연휴도 양력 기준에서 음력 기준으로 바꾸었다. 당시 대종교에서는 음력을 기준으로 했지만, 나라에서 양력 10월 3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자 이를 존중하여 음력 10월 3일과 양력 10월 3일 양일을 모두 기리기로 하였다.

한편 20세기 이후 전산의 발달로 달력 계산이 간편해지면서, 기원전 2333년의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자는 주장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적용시키기에는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태음력 자체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된 음력은 단 한 가지가 만세불변 쓰인 것이 아니고[7], 청나라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천문학 지식을 더하여 만든 시헌력을 기준으로 조정된 것이다. 문헌 자료로 상고되는 중국의 옛 역법만 보더라도 시헌력과는 또 기준이 다르고, 옛 역법으로 올라갈수록 이 차이가 커진다. 하물며 문헌 자료도 없는 기원전 2333년의, 그것도 중국이 아닌 고조선에서 사용했을 역법은 고증이 불가능하다. 기원전 2333년이라는 일자 자체도 부정확한 마당에 음력 날짜도 17세기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시헌력을 따라 계산해야 한다면, 사실상 아무 가공의 일자를 하나 고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두 번째는 기원전 수천 년쯤 되면 산술적 역법과 천문학적 역법 사이의 오차가 너무 커져,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달력 프로그램은 거의 의미가 없고 천문대에서 해와 달의 움직임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천문연구원도 음양력 변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조선 건국 직전인 1391년까지로 상한을 정하였다. 계산 시점에서 멀어질수록 해와 달의 정확한 움직임을 계산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실제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계산을 보정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현실에서 대충 구할 수 있는 전자 달력은 이런 천문학 보정을 무시하고 하루를 더하거나 빼면서 세는 것으로, 미래로 갈수록, 혹은 과거로 갈수록 천문학적 오차가 커진다.

이러한 문제점에 덧붙여 역사적으로는 필연적인 의미가 없는 일자 때문에 공연히 인력과 비용을 지출하느니, 어차피 개천절이 반드시 음력 10월 3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없기 때문에 당시 문교부의 심의에서는 숫자 자체에 초점을 맞추자는 결론을 낸 것이다.

3. 명칭 및 건국 관련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건국절 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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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건국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현재 사용되는 개천절은 '하늘을 연 날'이라는 표현이나, 대종교적 의미를 감안하더라도 다소 모호해 보일 수 있다. 이를 '건국절'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영어로 'National Foundation Day'라 번역하는 사례도 많지만 건국절 논란 문서에서 알 수 있듯 건국 일자, 또는 건국이라는 정의 자체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간단히 생각할 일은 아니다.

개천절 건국절론의 경우 실제로 임정도 건국 기념절이란 호칭을 썼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개천절이라는 명칭에는, 홍암 나철이 단군을 '역사적 위인, 민족의 시조'로서만이 아니라 천신(天神)으로도 이해한다는 의식이 반영되었다. 개천절에는 다른 국경일처럼 정부(행정안전부) 주도의 기념식이 열리는데 참여정부까지는 대통령이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였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국무총리만 참석하고 있다.[8] 때문에 민족의 건국 기념일을 정부가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9]

4. 연휴

5. 노래

1.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2. 백두산 높은 터의 부자요 부부
성인의 자취 따라 하늘이 텄다
이날이 시월상달의 초사흘이니
이날이 시월상달의 초사흘이니

3. 오래다 멀다 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필 단쪽잎에 삼천리 곱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개천절 노래》[18]

6. 여담



[1] 영어로 표기할 때 '건국 기념일(National Foundation Day)'로 의역되기도 하나, 이에 관해서는 하기 '명칭 및 건국 관련' 문단 참조.[2] 과거 국정 국사 교과서 등에서 채택한 바 있으나 당시에도 '동국통감에 의하면' 등의 단서를 달아 제한적으로 서술되었고, 오늘날에는 전설로 판단하여 아예 거론하지 않는 추세이다.[3] 즉 동짓달이 자월(子月)이다.[4]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에서 부활절과 함께 양대 축일로 기리는 크리스마스(12월 25일)가 예수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12월 25일 당일에 실제 예수가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5] 당장 기준을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음력1645년청나라 순치제예수회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반포한 시헌력이다. 아울러 천문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것도 큰 문제였다.[6] 1949년에 지정된 국경일은 4대 국경일(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신정, 식목일, 한글날, 추석, 기독 탄신일, 국제 연합일이다.[7] 양력조차 현재 널리 쓰이는 그레고리력이 정립된 때가 1582년이다.[8] 5대 국경일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3·1절광복절에는 대통령이 반드시 참석하고 제헌절, 개천절, 한글날은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 추세다. 제헌절은 국회의장이 기념사를 하며 개천절과 한글날은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낭독한다.[9] 하필이면 이명박 자신이 개신교 신자로 교회 장로였던 점도 한몫했다는 지적도 있다.[10] 주 5일제 실시 이전에는 당일만 휴무였으며 10월 4일이 근무일이라 징검다리 연휴였다.[11] 국군의 날도 공휴일이었으므로 3일 연휴가 존재했다.[12] 주 5일제 실시 이전에는 토요일이 근무일이었으므로 2일 연휴. 당시에는 개천절이 토요일이라도 10월 3일(토)~10월 4일(일)의 2일 연휴가 존재했다.[13] 10월 2일은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10일 연휴.[14] 10월 10일(금)에도 쉴 경우 10일 연휴가 생긴다.[15] 개천절과 추석 당일이 겹치고 10월 5일 대체 휴일 적용된다. 10월 6일(금)에도 쉴 경우 2017년처럼 10일 연휴가 생긴다.[16] 9월 29일(월)에도 쉴 경우 9일 연휴가 생긴다.[17] 10월 7일(금)에도 쉴 경우 최대 10일 간의 연휴가 발생한다.[18] 정인보 작사, 김성태 작곡.[19] 10월 3일 개천절(화) + 10월 4-5-6일 추석연휴(수목금) + 10월 7-8일 주말(토일) + 10월 9일 한글날(월). 여기에 10월 2일 월요일에 쉰다면 9월 30일(토)-10월 9일(월)이 연휴가 된다.[20] 2017년이 거의 근접했다. 10월 5일 목요일은 추석 다음 날이었고 전날이 개천절과 겹쳐 10월 6일 대체 공휴일 적용.[21] 10월 3일 개천절(금) + 10월 4-5일 주말(토일) + 10월 6-7-8 추석연휴(월화수) + 10월 9일 한글날(목). 여기에 10월 10일 금요일에 쉰다면 10월 3일(금)-10월 12일(일)이 연휴가 된다.[22] 결국 이해 10월 상순 평균 기온은 전국 95개 모든 관측소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23] 그런데 이 기록마저 1년 뒤에 재경신되었다.[24] 비슷한 이치로 성탄절도 가을로 편입될 수도 있다.[25] 실제로 몇몇 해들은 한글날 혹은 넘어서까지 여름이었는데 1998년, 2006년, 2013년, 2021년이 해당한다. 개천절의 경우 1975년, 2016년, 2019년, 2022년도 해당. 물론 2013년 개천절 당일은 가을 날씨가 나타났긴 했다.[26] 목요일이나 금요일로 시작하는 윤년 또는 금요일이나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 이에 해당한다.[27] 실제 개최는 2023년[28] 태권도 김태훈, 복싱 신종훈, 함상명,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29] 근대 5종 정진화, 복싱 임현철, 김현규, 세팍타크로 남녀 레구.[30]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근대 5종 남자 단체전, 다이빙 우하람, 가라테 이지환.[31] 실제로 1988 서울 올림픽 폐회식 다음 날이 개천절이었고,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세 번의 하계 아시안 게임 모두 개천절을 끼고 열렸다.[32] 사실 대한민국은 7, 8월에 폭염과 태풍과 집중 호우가 심해 이 기간에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기가 어렵다.[33]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도중에 열린 경기.[34]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도중에 열린 경기이며, 그것도 연장전에서 1골을 먹히고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