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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17:14:09

김재박

김재박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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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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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0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3.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감독
1998 2000 2003 2004


파일: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코치)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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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수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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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1984 1985 1986
오대석
삼성 라이온즈
김재박
MBC 청룡
김재박
MBC 청룡
김재박
MBC 청룡
김재박
MBC 청룡
1987 1988 1989 1990 1991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장종훈
한화 이글스
김재박
MBC 청룡
장종훈
한화 이글스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1992 1993 1994 1995 1996
박계원
롯데 자이언츠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김민호
OB 베어스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1997 1998 1999 2000 2001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유지현
LG 트윈스
유지현
LG 트윈스
박진만
현대 유니콘스
박진만
현대 유니콘스
2002 2003 2004 2005 2006
브리또
삼성 라이온즈
홍세완
KIA 타이거즈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손시헌
두산 베어스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2007 2008 2009 2010 2011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박기혁
롯데 자이언츠
손시헌
두산 베어스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이대수
한화 이글스
2012 2013 2014 2015 2016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김재호
두산 베어스
김재호
두산 베어스
2017 2018 2019 2020 2021
김선빈
KIA 타이거즈
김하성
넥센 히어로즈
김하성
키움 히어로즈
김하성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2022 2023
오지환
LG 트윈스
오지환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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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KBO 리그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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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KBO 리그 도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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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올스타 4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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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최다 득표자 TO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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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2위 3위 4위
선동열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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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12위 24위 25위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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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위 32위 33위 35위
이상훈 박정태 니퍼트 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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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20위 28위 31위
장효조 김시진 한대화 김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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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최강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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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13위 18위 26위
이강철 정민철 정민태 조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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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성실함의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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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위 17위 23위 36위
김태균 박재홍 박경완 홍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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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위 37위 38위 39위
전준호 이순철 정근우 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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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15위 19위 22위
양준혁 박용택 이병규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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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29위 30위 40위
장종훈 김동주 심정수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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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전천후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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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8위 16위 21위
송진우 구대성 김용수 임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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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순위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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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 삼성

OF / 해태

OF / 삼성

SS / MBC

2B / 롯데

3B / 해태

P / 해태
''''''
1B / 빙그레
''''''
DH / 쌍방울
''''''
C / 삼성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타자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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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안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전준호
(1991~2009)
2008년 / 2018안타
장성호
(1996~2015)
2012년 / 2100안타
이병규
(1997~2016)
2014년 / 2043안타
홍성흔
(1999~2016)
2015년 / 2046안타
박용택
(2002~2020)
2016년 / 2504안타
정성훈
(1999~2018)
2016년 / 2159안타
이승엽
(1995~2017)
2016년 / 2156안타
박한이
(2001~2019)
2016년 / 2174안타
이진영
(1999~2018)
2017년 / 2125안타
김태균
(2001~2020)
2018년 / 2209안타
최형우
(2002~)
2021년 / 2323안타
손아섭
(2007~)
2021년 / 2416안타
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이용규
(2004~)
2022년 / 2076안타
김현수
(2006~)
2022년 / 2236안타
최정
(2005~)
2023년 / 2133안타
황재균
(2006~)
2023년 / 2040안타
강민호
(2004~)
2024년 / 2000안타
}}} ||
300홈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장종훈
(1986~2005)
2000년 / 340홈런
이승엽
(1995~2017)
2003년 / 467홈런
양준혁
(1993~2010)
2006년 / 351홈런
심정수
(1994~2008)
2007년 / 328홈런
박경완
(1991~2013)
2010년 / 314홈런
송지만
(1996~2014)
2010년 / 311홈런
박재홍
(1996~2012)
2012년 / 300홈런
이호준
(1994~2017)
2015년 / 337홈런
이범호
(2000~2019)
2017년 / 329홈런
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최정
(2005~)
2018년 / 458홈런
이대호
(2001~2022)
2019년 / 374홈런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 ||
500도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 ||
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 ||

보유 기록
통산 최다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1] 5개
}}} ||
김재박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30452>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LG 트윈스
역대 주장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0> 1982~1983 1984 1985~1986 1987 1988
이종도
이해창 김재박 이광은 신언호
1989 <rowcolor=#fff> 1990~1991 1992~1993 1994~1995 1996
이광은 김상훈
김동재 노찬엽
최훈재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노찬엽
김동수
송유석 김선진 김정민
양준혁 (오프시즌 기간 주장)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서용빈유지현
이상훈 이병규 조인성 서용빈
<rowcolor=#fff> 2007~2008 2009 2010~2011 2012~2013 2014~2015
이종열 조인성 박용택 이병규 이진영
<rowcolor=#fff> 2016~2017 2018 2019~2021 2022~2023 2024~
류제국 박용택 김현수 오지환
김민성 (임시 주장)
오지환김현수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007f55><tablebgcolor=#007f55>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현대 유니콘스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 0 -10px"
{{{#fab93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1982년 ~ 2007년
<rowcolor=#b21528> 초대 (삼미 초대)
2대 (삼미 2대, 청보 초대)
박현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
감독 대행
이선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
김진영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1984~1985)
감독 대행
이재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rowcolor=#b21528> 2대 (삼미 2대, 청보 초대) 3대 (청보 2대)
감독 대행
이선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감독 대행
박현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감독 대행
신용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
허구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
<rowcolor=#fff> 3대 (청보 2대)
4대 (청보 2대, 태평양 초대)
5대 (태평양 2대)
감독 대행
강태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
강태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88)
감독 대행
임신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0)
<rowcolor=#ff9933> 6대 (태평양 3대)
7대 (태평양4대)
8대 (현대 초대) 9대 (현대 2대)
박영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
정동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1995)
김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2006)
김시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
윗첨자1 : 김진영 감독이 1983년 중반 폭행 사건으로 인해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고 이재환, 이선덕 코치, 박현식 고문이 감독 대행직을 맡았다.
1985년에는 18연패로 인해 신용균 코치가 임시로 대행을 맡았고 모기업이 청보로 넘어가자 다시 복귀했다.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30452>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LG 트윈스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0> 초대 2대 3대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감독 대행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감독 대행
한동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김동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어우홍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1985)
<rowcolor=#ff0> 4대 5대 6대 7대
김동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1987)
감독 대행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88)
배성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1991)
<rowcolor=#fff> 8대 9대 10대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1996)
감독 대행
천보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
천보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1999)
이광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2001)
감독 대행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
<rowcolor=#fff> 11대 12대 13대 14대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이순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2006)
감독 대행
양승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
김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2009)
<rowcolor=#fff>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박종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2011)
김기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2014)
양상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4~2017)
류중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2020)
류지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2022)
<rowcolor=#fff> 20대 파일:LG 트윈스 워드마크.svg
염경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fff,#191919><tablebgcolor=#ffffff,#191919>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 2.svg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81818,#e5e5e5
1998년~
초대
주성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대
김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대
김인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4대
김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5대
김인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6대
김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대
김경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대
김인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대
조범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0대
류중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1대
김인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2대
선동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3대
김경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4대
이강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5대
류중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MBC 청룡 / LG 트윈스 등번호 7번
팀 창단 <colbgcolor=#000><colcolor=#fff> 김재박
(1982~1991)
김재현
(1994~2004)
{{{#ff9933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7번}}}
송재박
(1991)
김재박
(1992)
유영환
(1993~1995)
{{{#fab93d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0번}}}
박용진
(1988~1990)
김재박
(1993~2006)
결번
LG 트윈스 등번호 70번
김인식
(2006)
김재박
(2007~2009)
염경엽
(2010~2011)
}}} ||
}}} ||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99r74102.jpg
김재박
金在博 | Kim Jae-Bak
출생 1954년 5월 23일 ([age(1954-05-23)]세)[2]
경상북도 대구시 중부출장소
(現 대구광역시 중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초등학교 (졸업)
경북중학교 (졸업)
대광고등학교 (졸업)
영남대학교 (체육학 73 / 학사)
신체 174cm, 75kg[3], B형[4]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MBC 청룡 창단멤버[5]
소속팀 한국화장품 야구단 (1977~1981)
MBC 청룡-LG 트윈스 (1982~1991)
태평양 돌핀스 (1992)
지도자 MBC 청룡-LG 트윈스 플레잉코치 (1987~1989)
태평양 돌핀스 플레잉코치 (1992)
태평양 돌핀스 1군 수석·주루코치 (1993~1995)
현대 유니콘스 감독 (1996~2006)
LG 트윈스 감독 (2007~2009)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비코치 (200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주루코치 (200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3 / 2006)
경력 KBO 상벌위원 (2010~2011)
KBO 경기운영위원 (2010~2015)
KBO 규칙위원 (2010~2016)
KBO 경기운영위원장 (201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14~2015)
프런트 연천 미라클 자문위원 (2015~)
상훈 체육훈장 거상장
가족 아내 정복희[6], 슬하 1남 2녀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대표팀과의 악연
4. KBO 경기운영위원
4.1. 2016 시즌
5. 여담
5.1. 만능 스포츠맨
6. 논란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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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야구인.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및 前 감독이자 前 KBO의 경기감독관. 2015년부터 새로운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의 자문위원도 겸임하고 있다.

실업 시절 타격 전관왕[8]을 달성하는 등 야구계의 슈퍼스타로 이름을 알렸으며, 대한민국 유격수 계보에 빠질 수 없는 존재이자 KBO 리그 유격수 계보의 시작점이다. 80년대 MBC 청룡을 상징하는 선수로 유격수 포지션에서 골든글러브를 5차례나 수상하였다. 또한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으로서 네 번의 우승을 이루며 왕조의 시기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9][10]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가장 임팩트 있는 장면 중 하나인 개구리 번트의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또한 스포츠계에서 다재다능함으로 유명한 선수들 중 대표격으로 소위 공으로 하는건 다 잘하는 선수 유형의 원조이다.

2. 선수 경력

김재박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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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김재박/선수 경력
아마추어 시절 실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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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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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LG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팀의 80년대를 대표하는 간판 선수로 여전히 회자되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이다. 실업 야구 스타 출신으로 30대에 접어들어 프로야구에 데뷔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였다. 다만 후에 감독으로선 아쉬웠다는 평이 많다.

3.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재박/지도자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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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sports.donga.com/5054737.1.jpg
LG 트윈스 감독 시절

영광의 현대 유니콘스 시절과 아쉬웠던 LG 트윈스 감독 시절로 요약할 수 있다.

3.1. 대표팀과의 악연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060721004008.261.0.jpg

두 번에 걸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03년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겸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표팀 감독.
2006년 제15회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대표팀 감독.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2003년에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이어 대만에게도 패함으로써 '삿포로 참사'를 겪었고[11], 2006년에도 대만에 이어서 주로 사회인리그 출신[12]으로 구성된 일본팀에게도 패함으로서 '도하 참사'이란 말을 들었다.

부임할 때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임팩트가 상당한 흑역사를 만들어 냈으니 앞으로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는 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감독이 아닌 코치로썬 실적이 나쁜 편이 아니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대표팀 공모에 지원했으나 류중일이 선임되었다.[13]

4. KBO 경기운영위원

감독 임기를 끝내고, 바로 다음 시즌인 2010 시즌부터 KBO의 경기감독관 자리에 앉았는데 팬들에게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우천취소 결정에 있어서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비가 안 와도 때려버리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해대고 있기 때문에 반발이 심하다. 오죽하면 고척 스카이돔에서 경기 열어도 관중 오기 불편하단 핑계를 대고 우천취소 때려버릴 양반이라는 말이 나올까.

쌓이고 쌓여서 2015년 6월 5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릴 경기를 비가 그쳤음에도 우천 취소를 때려버려 팬들의 원성을 샀고 급기야 SBS 스포츠에서 우천취소 메뉴얼까지 제안해가며 김재박을 깠다. 2015시즌 후반부 월요일 경기 및 더블헤더 임시 도입에 이 사람의 우천취소 남발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4.1. 2016 시즌

이런 팬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경기운영위원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팬들의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 거기에 개막 3일째인 4월 3일, 한화-LG와의 경기를 비가 그쳐가고 있는데 경기장 불량으로 취소를 해버려서 일요일 낮경기를 날려버린데다가 정작 경기시작시간인 2시에는 비가 그쳐버리면서 욕을 더 먹고있다. 결국 KBO에서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기사가 떴다.

막무가내 우천취소로 인해 이런 농담이 나올 정도.

2016년 4월 4일, KBO사무국이 김재박 감독관에게 6경기 출장 정지를 내렸지만, 야구팬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평이 대다수이다. 이전에 최동원 감독관이 비슷한 사유로 똑같은 징계를 받은 만큼, 이번에는 최소 20~30경기 출장 정지는 받았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이후 동년 4월 16일 전국에 비가 내리자 광주구장에서 열리기로 한 넥센-기아 경기를 제외하고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30분-1시간정도 후 우천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김재박 경기감독관도 이날 삼성-두산전에 배정되었다가 45분 기다려 보고 우천취소를 선언했다. 솜방망이 처벌 문제는 둘째치고, 어느정도 경각심을 가지게 된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는 듯 하다.

5월 10일에는 사직 넥센-롯데전에 배정되었으나, 부산 지역의 우천으로 인해 경기 시작 1시간 12분 전에 우천 취소를 결정하였다.

하도 여론이 안좋아서 김재박이 술을 즐겨 술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우천취소를 시켰다거나, 강제우취시키고 관계자들과 회식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야알못이 간다에서 자신은 술을 못하고 술자리 회식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런 논란 때문인지 2016 시즌을 끝으로 경기감독관 직에서 물러났다.

5. 여담

넓을 전할

두 글자를 확대해서 봐도 많이 비슷해 보인다. 여기서는 글씨체가 정자체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지만 아마도 흘려서 쓴 것을 보고 착각했던 듯 하다. 여담으로, 하카타역의 한자도 博을 쓰는데, 가끔 가다 傳多역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보일 지경. 사실상 국한혼용체가 사장된 이유다. 결국 이날 이후 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수상자 명단은 철저히 한글로 표기되고 있다.# 유명한 해프닝이었기에 20년도 더 지나 김재박 본인도 이 김재전 드립을 써먹기도 했다.

5.1. 만능 스포츠맨

파일:attachment/김재박/만능스포츠맨.jpg

이제는 한국야구사에 7관왕은 2명이다. 실업리그의 김재박과 KBO리그에서 이대호가 각 1번씩 기록했다.[23]

그래서 그런지 야구계 인물치고는 특이하게 축빠라 카더라...[24][25]

김재박 감독 ‘축구도 전문가’
김재박 감독 비시즌엔 축구선수로 둔갑?
김재박 감독, 상암구장 찾아 '축구사랑'
김재박 감독의 '축구 강의'
농구·축구도 김재박 눈에는 야구로 보여
(2006 투혼) 김재박, "태극마크 달았으니 무조건 이겨라"

사실 대부분의 프로 운동선수들은 어지간하면 타 종목도 꽤 잘한다. 종목은 달라도 신체능력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라 몸 쓰는 재능은 타고난 사람들이기 때문. 타 종목도 야구 룰도 모르는 타 종목 선수가 공 잡는 법만 좀 배우더니 야구공을 두어번만에 100km을 넘게 던진다던가[26] 하는 일화들이 흔한 편.

6. 논란

2006년 경 네이버 뉴스의 댓글이 개편된 이후 '위대한 김재박 감독님의 화려한 업적들'이라는 비아냥성 제목으로 뉴스 댓글란에 꾸준히 게시되면서 퍼지기 시작한 글이 옛 리그베다 위키 시절 본 항목에 게시되었고, 이후 아래와 같이 정리된 상태이다.
극적으로 기회가 온 한화 장종훈(37)의 마지막 타석이었다. 올스타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장종훈은 16일 올스타전 6회부터 계속 헬멧을 쓴 채 덕아웃에 앉아있었다. 서군 김재박 감독으로부터 6회에 “9회에 나갈 준비를 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최근 몇년동안 언제 나갈지 모르는 대타 습관 때문에 헬멧을 벗지 않았다. 그러나 9회 투아웃까지 그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서군이 6-5로 뒤진 9회 2사 1·2루에서 조인성이 그대로 출장했다. 조인성이 아웃이 되면 장종훈에게는 더이상 기회가 없는 상황. 그런데 그 순간 덕아웃에서 의사결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또 다른 서군 포수 한화 신경현은 이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기로 하고 조인성이 1회부터 8회까지 포수 마스크를 썼다. 조인성 타석에서 대타를 내면 동점이 됐을 경우 9회말에 뛸 포수가 없다는 것과 경기가 여기서 끝나면 장종훈에게 타석이 돌아오지 않는 것 사이에 고심하던 김 감독은 신경현에게 “뛸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신경현이 'OK'를 하자 볼카운트 1-0에서 재빨리 대타 장종훈을 외쳤다.(후략)

이 기사에 나온 내용이라면 원래 김재박은 9회에 장종훈을 넣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1사 1·2루였던 상황에서 병살타를 치면 그냥 경기가 끝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못 잡은 것은 사실.

7. 관련 문서


[1] 박진만과 타이 기록이다[2] 양력 생일은 6월 23일[3] 네이버 프로필 기준[4]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5/07/01/2005070170220.html[5]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출전 관계로 프로 입단이 늦어지긴 했으나, 1982년 시즌 막바지에 합류해서 3경기를 소화한 만큼 입단 시기는 1982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6] 1979년 2월 10일 결혼.[7] 현대 유니콘스 감독 시절 어떤 기자가 초반 롯데의 기세가 대단하다고 한 말에 대답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8] 타격,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의 타격 전관왕을 하였고, 최우수 선수상, 신인왕, 타격삼관왕상을 포함한 8관왕으로 알려졌다.[9] KBO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선수와 감독으로서 우승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기도 하다.[10] 현역 말년이던 1990년 한국시리즈LG 트윈스 선수로 우승을 경험했고 1998년 한국시리즈현대 유니콘스 감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김재박 이후 선수와 감독으로 우승을 모두 경험한 사람은 조범현, 선동열, 김태형, 이강철, 김원형염경엽. 이 중에서 조범현과 이강철은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해 본 유이한 사례다.[11] 덕분에 아테네올림픽은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듬해에 야구계를 뒤흔든 큰 사건이 터졌다.[12] 일본의 사회인 야구는 우리나라의 실업야구 수준에 해당하여 프로에 준하는 선수들이었다고 쉴드를 치기도 하나, 선수단 22명 중 프로에 진출한 선수는 8명이고, 프로에서 제몫을 한건 초노 히사요시 한 명 뿐이다. 1명 빼고 전원 프로였던 한국이 10점 주고 박살날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13] 실제 한국시리즈 우승으로는 류중일과 김재박 모두 4회 우승의 대기록을 가졌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유사하지만 결정적으로 김재박은 2009 시즌을 끝으로 감독으로서 물러나 야인으로서 상당히 오랜 공백을 가졌지만, 류중일은 2020 시즌까지 팀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현장 공백이 그렇게 길지 않았었기 때문에 밀렸다는 평이 지배적이다.[14] 현 시점 기준으로 김태형, 염경엽, 이강철 등과 비슷할 나이다(...).[15] 사실 한미일 통틀어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오면 규정상 세이프다. 김재박 외에도 이 규정을 모르는 관계자 및 팬이 많은 편.[16] 이 5위 때문에 삼성의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물거품이 되었다. 만일 이 때 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2016년 삼성은 2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야만없(...)[17] 그래서 당시 골든글러브 사회를 맡았던 이덕화도 이름을 정정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분이 글씨를 상당히 흘려 쓴 것 같네요...[18] 당시 한화 프런트는 김재박을 감독 단수 후보로 상부에 보고했지만, 수감중이던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서 그룹 경영 총괄하던 장남이 무조건 최고를 데려오라면서 김재박 대신 김응용을 찍어서 지시했다는 카더라가 인터넷에 퍼졌다.[19] 풋케위키에 검색하면 심판 홍진호가 먼저 나오지만 동명이인에 들어가면 나온다. 참고로 심판 홍진호가 나중에 등록된 것이며,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1년 먼저 등록되어 있었다. 등록날짜가 2012220일이다! 풋케위키 홍진호 링크[20] 이는 그럴만한 게 박재홍이 신인 시절부터 김재박 감독이 엄청나게 힘을 실어주며 주전 1번타자로 키웠기 때문이다.[21] 물론 박경완의 경우는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조범현을 호명했다.박재홍의 경우는 김재박을 제일 처음 호명.[22] 프로 초년기에는 유격수로 나왔다. 그러나 무수한 실책을 범하자 5년차 때 김인식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3루수로 고정되었다.[23] 다른 점이라면 이대호는 공격 8개 부문 중에 7관왕이다.[24] 사실 김재박은 2005년 상암 야구장 개조 드립 때문에 다른 축빠들에게 평판이 안좋다.[25] 야구선수들은 물론 운동선수들 중에도 축빠가 많다.[26] 사회인야구 에이스급 구속으로 일반인은 보통 아카데미 등에서 돈 내고 배우면서 몇 년 해야 도달하는 경지고 재능없으면 평생 해도 못 던지는 구속이다.[27] 8월 26일 당시에는 이승엽 36홈런, 우즈 29홈런이었다. 이후 우즈는 9월에만 11홈런을 치며 역전하게 된다.[28] 논외로 기사를 닫고 정면에 사진을 보면 깨알같은 옛 된 재일교포 출신 추성훈의 사진과 인터뷰가 있다.[29] 푸시번트로 살아나가려고 하지 않는 이상 유격수 땅볼 아웃이 나오는건 상상하기 힘들다.[30] 15년 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데, 2015년 5월 26일 마산 대 두산전에서 에릭 테임즈가 3연타석 홈런, 그것도 투런 홈런만 한번 더 치면 되는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는데, 한 타석만 남겨둔 상황에서 7회 대수비 조평호로 교체된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어차피 이긴 게임이었으니 이참에 후보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교체했다고 밝혔으며, 에릭 테임즈에게 2번을 물어봤는데 테임즈가 쿨하게 승낙해서 교체했다고 한다.[31] 조인성이 빠지면 감독추천이었던 신경현이 포수 마스크를 썼어야 했는데, 당시 신경현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기로 되어있었다.[32] 기존본엔 이대형사건도 있었는데 편집됨.[33] 고글 착용은 규정상으로 위반이나, 어쩔 수 없거나 별 이상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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