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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ffffff,#1f2023><bgcolor=#ffffff,#1f2023><(>토론 - 본 문서에서 '왕조'의 기준은 '3연속 우승'으로 정한다.
토론 - 2연속 우승팀에 한해 3연속 우승에 실패한 경위 등을 왕조가 아님을 명시하는 조건으로 하위 문단 '3연속 우승에 실패한 팀'을 통해 소개할 수 있으며 제도권 언론에 의해 왕조라고 호칭된 경우가 존재할 경우에는 왕조라고 불리게 된 이유 및 그럼에도 왕조가 아닌 이유를 서술하는 조건 하에 그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토론 - '왕조'에 해당하는 팀 사이 또는 '3연속 우승에 실패한 팀' 사이에 특정 팀을 강조 또는 평가 절하하는 등 서열을 나누는 서술을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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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ynasty스포츠에서 오랜 기간 디펜딩 챔피언 성적을 유지한 팀.
농구의 NBA 등에선 3-peat을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2. 농구
2.1. 미국
-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NBA): 1949~1950, 1952~1954
13년 동안 한 번의 8-peat을 포함해 총 11회 우승.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11회 우승), 샘 존스(10회 우승), 밥 쿠지(6회 우승), 존 하블리첵(6회 우승)[2] 등이 군림했다. 이 당시 감독으로는 8-peat을 차지할 당시에는 레드 아워백이였으며, 빌 러셀이 선수 겸 감독으로 1966-67 시즌부터 부임하여 1968년, 1969년에 리핏을 차지하게 된다.
샐러리 캡 도입 이후의 최초의 왕조라고 볼 수 있으며, 8년 동안 두 번의 3-peat으로 총 6회 우승. 이 당시 감독으로는 필 잭슨이였으며,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등이 군림했던 NBA의 세계화를 연 왕조이다. 특히 1995-96 시즌은 당시 기준 정규 시즌 역대 최다승(72승)[3]에 파이널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농구 역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4]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또한 조던의 자발적인 퇴장으로 우승이 끊어져 불패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NBA): 2000~2002
- 휴스턴 코메츠(WNBA): 1997~2000
2.1.1. 3연속 우승에 실패한 구단
다음의 구단은 특정 기간 동안[8]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많이 차지해서 다수의 농구 팬들, 미국 언론으로부터 왕조로 인정받고 있지만, 통상적인 왕조의 기준인 3-peat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논란이 있다. 다만 근래에 들어서 샐러리 캡 제도로 인해 슈퍼팀을 만들어도 3-peat이 어렵다는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다. 따라서 현지 팬들은 일반적으로 단기간 동안 우승을 많이 차지한 팀, 또는 이례적으로 긴 기간 동안 별도의 침체기 없이 꾸준한 성적과 우승을 동반한 팀의 경우도 왕조로 간주한다.[9]-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NBA): 1980~1988
저 바로 위에 있는 쇼타임 레이커스의 최대 대항마이자, 80년대에 5번의 파이널 진출, 3번의 우승(1981년, 1984년, 1986년)을 거두었으며 특히 1985-86 시즌은농구 역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 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1983년까지 빌 피치가 지휘하다가 물러나자 당시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K.C.존스가 감독자리를 이어받아 지휘를 하게 되었으며,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시, 세드릭 맥스웰 등이 군림하였다. 논란거리라고 한다면 쇼타임 레이커스와 마찬가지로 우선 1984~1987년에는 4연속 파이널 진출을 하긴 했지만 3-peat이 없다는 점과 거기에 리핏마저 없다는 점인데, 80년대 셀틱스는 연속 우승을 한적이 없다. 실제로 1982년에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에게 3-4 패배하며 파이널 진출이 좌절되고, 1983에는 컨퍼런즈 준결승에서 밀워키 벅스에게 0-4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중간에 파이널 진출을 못한것이 오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렉 포포비치의 지휘 아래에 해당 기간 동안 5회 우승(1999년, 2003년, 2005년, 2007년, 2014년)을 차지하였는데, 주축 선수라고 한다면 팀 던컨, 데이비드 로빈슨,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 카와이 레너드[11]가 있다. 왕조로 보는 주된 의견은 같은 감독의 지휘 아래에 5회 우승 이외에도 20시즌 연속 정규 시즌 6할 이상의 승률[12] 과 18시즌 연속 정규 시즌 50승 이상[13][14]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단한 이유는 샐러리캡 체제의 특성상 슈퍼팀 혹은 왕조도 오랜 기간 동안 전력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논란거리라고 한다면 3-peat은 물론 리핏조차 없다는 점과 동시대 밀레니엄 레이커스 왕조가 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는데, 해당 시기의 서부 플레이오프에 레이커스와의 맞대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게 스퍼스이기 때문이다.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NBA): 2015~2022
2.2. 대한민국
-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KBL): 2013~2015
-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WKBL): 2007~2012
- 아산 우리은행 위비(WKBL): 2013~2018
2.2.1. 3연속 우승에 실패한 구단
한국프로농구 원년 시즌에는 이상민, 조성원의 상무 입대 등으로 인해 하위권을 기록했으나 1997-98 시즌 이상민, 조성원의 제대에 졸업한 추승균의 합류와 더불어 맥도웰이라는 센세이셜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서 우승을 차지했고, 98-99시즌에는 재키 존스라는 강력한 센터까지 합류하며 통합 2연패 달성에 성공했다. 그러다 99-00 시즌 신선우 감독은 강력한 센터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직접 점찍은 로렌조 홀을 영입하기 위해 청주 SK와의 픽앤트레이드를 강행, 재키 존스를 SK에 내주었고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며 SK에게 우승을 내주며 통합 3연패 달성에는 실패하였다.3. 배구
3.1. 대한민국
-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2008~2014
-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2021~
4. 야구
4.1. 미국
MLB 역대 왕조팀 | |||
★★★★ 1936~1939 뉴욕 양키스 | ★★★★★ 1949~1953 뉴욕 양키스 | ★★★ 1972~197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 1998~2000 뉴욕 양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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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64 시즌은 통칭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린다.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 영입을 시작으로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등의 올타임 레전드들이 팀을 이끌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초거대 야구단으로 거듭난다. 이 기간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 20회[21], 아메리칸리그 우승 29회를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1927년의 양키스는 야구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평가되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밥 뮤젤로 구성된 클린업 트리오 역시 역대 최강으로 꼽힌다. 야구에서 흔히 쓰이는 살인 타선(Murderers row)이라는 말이 이 시기 양키스의 타선 때문에 만들어졌다. 세대 교체를 서너 번씩 하면서도 성적이 떨어지질 않는 양키스 때문에 뉴욕을 박차고 나간 팀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니 말 다 한 셈이다. 범위를 좁히면 1927년부터 1962년까지 35시즌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을 19회 달성했다. 35번 중 19번을 승리하면 승률이 5할이 넘는 셈인데 이 기간 동안 월드 시리즈에서 이긴 것이 19번이니...[22]
1995~2001 시즌은 뉴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렸는데, 조 토레 감독의 지휘로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버니 윌리엄스 등 팜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 4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5회, 동부 지구 우승 5회를 차지했으며, 플레이오프를 개근했다. 특히 1998년에는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도 기록한 적 없는 정규 시즌 114승을 찍었고, 포스트시즌 11승(DS 3승, CS 4승, WS 4승)을 더해 역대 한 시즌 최다 승(125승)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도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리는 등 세계구급 강팀으로 군림하나, 플레이오프 불운이 이어지며 1990년대 말만큼의 우승을 하진 못하게 된다.[23]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72~1976[24]
4.2. 일본
1951~1953 시즌에는 자이언츠-난카이의 3연전이 치러졌었다. 난카이와의 승부를 모두 승리하면서 3연패 달성. 1호 야구단의 저력을 보여주며 1차 왕조를 세웠다.
1965~1973 시즌은 1951~1953 시즌을 왕조 따위로 만들어버린 무시무시한 시기. 과장이 아니고 해마다 10월만 되면 자이언츠 야구단 일본 제패라는 소식이 들려왔던 시절이다. 당시 퍼시픽 리그 강호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약해지며 자이언츠의 라이벌은 퍼시픽 리그에선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이다. 도에이 플라이어스나 한큐 브레이브스가 신흥 강호로 올라갔지만 자이언츠를 막긴 힘들었다. 가히 일본의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콤비라 할 만한 홈런왕 오 사다하루,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 콤비가 타선을 책임졌던 팀. 9연패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7차전까지 승부를 가져간 적이 없다. 많아야 2패만 내주는 압도적 성적. 일본시리즈 9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흔히 V9 시기라고 부른다. 이 정도면 왕조 선언을 넘어 칭제건원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때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의 국민 구단으로 자리잡았고, 일본 야구 팬들은 친요미우리 vs 반요미우리로 거의 완벽하게 쪼개졌다. 하지만 1974년 1리 차이로 주니치에게 센트럴 리그 우승을 빼앗기며 일본시리즈 진출 좌절로 9-peat 왕조는 종결된다.
- 니시테츠/세이부 라이온즈: 1956~1958, 1986~1992[26]
1986~1992 시즌은 사이타마로 옮기고 세웠으며, 리그 우승 9회에 일본 제일 클럽 자리를 8번이나 차지한 상승(매번 이긴다는 뜻) 군단의 돌풍이었다. 세이부는 강해야 관중이 많이 온다 하며[27] 어떻게든 팀 전력을 강화시켰다. 타선은 막강한 AKD[28] 클린업 트리오가 타점을 팍팍 내주었고, 중심 타선 이외에도 이시게 히로미치, 츠지 하츠히코, 히라노 켄, 타나베 노리오, 이토 츠토무 등의 선수들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투수진에선 히가시오 오사무, 쿠도 키미야스, 마츠누마 형제가 왕조 초반의 투수진을 주도했고, 중후반으로 가면서 와타나베 히사노부, 시오자키 테츠야, 궈타이위엔 등 신진 선수들이 중심에 떠오르며 리그를 썰어먹었다. 전력만 따지면 V9로 대표되는 요미우리의 최전성기보다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 한큐 브레이브스: 1975~1977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7~2020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왕조라는 표현을 애초에 사용하지 않고 정해진 표현 없이 황금기나 황금시대 등으로 표현하는 일본 기준으로는 일반적으로 2014-2020(7년간 6회 우승), 넓게 잡는 경우는 2011-2020(10년간 7회 우승)[29]까지를 황금기로 인정하는 편이다.
세이부 왕조 감독들이 요미우리 왕조 출신이라면, 이 시기 소뱅 감독들인 아키야마 코지와 쿠도 키미야스는 세이부 왕조 멤버이자 일본시리즈 MVP 출신이며, 1999년 일본 시리즈에서 호크스의 35년만의 우승에 공헌을 했다. 또 감독으로서 호크스를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오 사다하루는 구단 회장으로서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4.3. 대한민국
KBO 리그 역대 왕조팀 | |
★★★★ 1986~1989 해태 타이거즈 (해태 왕조) | ★★★★ 2011~2014 삼성 라이온즈 (삼성 왕조) |
왕조를 달성한 당시 구단명과 엠블럼으로 서술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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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 리그로 팬층 역시 두꺼워 논쟁도 자주 발생한다. 왕조는 그중에서도 관심도가 높은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인데 해당 구단간의 성적을 비교하는 민감한 주제다 보니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3-peat를 달성했는지 여부로 판단하면 되겠지만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선 응원 팀에겐 관대한 기준을 다른 팀에겐 엄격한 기준을 대는 등 팬들부터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여기에 단발성 우승만 해도 과거의 성적과 연결시키며 왕조를 언급하는 등 용어를 남발하는 언론 역시 논란이 커지는 데에 일조했다. 논란은 후술.
하지만 해태와 삼성만큼은 야구팬들 모두가 이견 없이 왕조를 경험했다고 인정하며 각 팀이 한국시리즈 4연패[30]를 달성한 시기를 지칭한다.
1989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
팀 | 감독 | 우승 | 시기 |
해태 타이거즈 | 김응용 | 4 | 1986~1989 |
자세한 내용은 해태 왕조 문서 참고하십시오.
김응용 감독이 이끌며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 팀으로 언론에서 가장 먼저 왕조로 불렸던 팀이다. 1983년 첫 우승 이후 김성한을 주축으로 선동열, 이순철, 한대화가 가세하고, 기존의 김종모, 김봉연, 이상윤, 문희수 등이 힘을 더하며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에 우승을 차지해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당시 해태는 정규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1위는 한 번뿐이고 2위를 세 번 기록하며 정규시즌에선 압도적인 강팀이 아니었으나 포스트시즌에선 뛰어난 응집력을 발휘하며 4연패를 달성한다. 하지만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여 5연패 달성은 실패로 끝나버린다.
연패가 끊어졌지만 해태는 이듬해부터 다시 우승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2년마다 한 번 꼴로 우승을 거두며 당대 최강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첫 우승인 1983년부터 1997년까지 15년 동안 9번의 우승을 거두었고, 이 시기를 모두 김응용 감독과 함께 하였다.
* 삼성 라이온즈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
팀 | 감독 | 우승 | 시기 |
삼성 라이온즈 | 류중일 | 4 | 2011~2014 |
자세한 내용은 삼성 왕조 문서 참고하십시오.
삼성은 원년부터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며 전통의 강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좀처럼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응용, 선동열 감독을 거치며 준우승 징크스를 어느정도 해소했으며 2011년 류중일 감독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약하게 된다. 류중일 감독은 선발 야구, 믿음의 야구, 형님 리더십 야구를 표방했고, JOKKA 라인에 신인왕 배영섭, 타격 3관왕 최형우, 김상수의 각성, 윤성환의 부활 등으로 감독 부임 첫 해인 2011년 통합 우승을 달성한다. 거기에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 구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삼성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2012년에는 이승엽의 복귀와 이지영, 심창민, 정형식 등 유망주들의 맹활약으로 통합 2연패를 차지했고 2013년에는 조동찬, 권오준의 부상과 이승엽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리그 최초로 통합 3연패를 차지하며 언론과 팬들에게 왕조로 인정받았다. 2014년에도 삼성의 질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기자들의 업셋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으며 리그 최초로 통합 4연패까지 달성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삼성의 최전성기로 4년 동안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하는 전무후무한 통합 4연패를 달성한다. 이 시기 투수진은 먹튀였던 에스마일린 카리대가 있긴 하지만 외인투수들도 평타에서 릭 밴덴헐크라는 대박까지 준수한 편이었고 윤성환, 장원삼, 배영수, 차우찬 등의 최상위권 선발진들과 안지만, 정현욱, 권혁, 권오준, 오승환, 임창용으로 이루어진 역대 최강의 불펜진이 철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선에서는 대도 유망주인 김상수, 박해민을 앞세웠고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의 3-4-5번 라인은 이승엽조차 6번 타자로 뛰게 만들 정도인 당시 최정상급 클린업중 하나였다. 여기에 2014년 영입한 야마이코 나바로는 공수주에서 흠잡을 데 없는 먼치킨급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당시 삼성은 그야말로 리그를 압도한 역대 최강팀이었다.
하지만 2015년 정규시즌 5연패 후 2015년 한국시리즈 시작 전에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지고 만다. 여기에 연루된 주축 투수들인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이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삼성은 준우승에 그쳤다. 사실 그 동안 확실한 주전들로 왕조를 유지해 왔지만, 팀 뎁스가 얇아져 가고 있는 시점[31]이었으므로 리빌딩하기 적절한 시점에 내려왔다는 평도 많다. 여기에 모기업이 스포츠단의 자립을 요구하며 갑작스럽게 자금 지원을 크게 줄였고 그 여파로 중심 타선인 야마이코 나바로와 박석민이 타팀으로 이적한다. 마지막으로 프런트 측은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 등 자신들의 삽질을 오로지 류중일 감독의 탓으로 돌리는 언플을 하였고 2016 시즌을 9위로 마무리한 류중일 감독은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만다. 7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도 실패했으며 영원할 것 같았던 삼성의 시대는 저물게 된다.
4.3.1. 3연속 우승에 실패한 구단
이 문단의 팀은 '왕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
4연패에 성공한 해태, 삼성을 3연패도 성공하지 못한 현대, SK와 같은 부류로 놓는 것이 적절한가?
현대, SK를 왕조로 인정한다면 유사한 성적을 올린 2002~2006년의 삼성은 왜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무위키를 포함하여 여러 커뮤니티에서 논쟁이 있었고 디시를 비롯한 규모있는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3연패를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32] 나무위키도 3연패를 기준으로 삼아 전술했듯 1986~1989년 해태와 2011~2014년 삼성만 확실하게 왕조로 구분하였다. 현대, SK를 왕조로 인정한다면 유사한 성적을 올린 2002~2006년의 삼성은 왜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는가?
3연패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야구는 특급 선발이 전경기의 1/5 안팎만 출전하고 홈런왕 타자가 다른 8명의 타자와 같은 기회를 받는 등 에이스 위주의 경기가 불가능한 스포츠다. 그래서 우승팀의 승률이 6할보다 낮을수도 있고 하위팀의 승률이 4할을 넘을 수도 있으며 약팀이 강팀에게 우세를 보이기도 한다. 즉 팀간의 격차가 크지 않아[33] 연속 우승이 쉽지가 않다. 실제로 2연패를 달성한 7팀 중 3연패를 이룬 팀은 1980년대 해태, 2010년대 삼성 단 2팀뿐이다.
다른 의견으로 현대, SK의 성적을 근거로 5년간 3우승을 왕조의 조건으로 하자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생기게 된다.
왕조 기간 동안 연속 우승이 단 한 번도 없을 수 있음. (우승/우승 실패/우승/우승 실패/우승)
두 팀의 왕조 시기가 겹칠 수 있음. (예: 2000~2004 현대, 2002~2006 삼성)
34년 동안 일곱 번이나 나온 기록을 높게 평가 할 수는 없음.[34]
5년간 3우승은 성적 변동이 크지 않은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과 계단식 포스트시즌을 사용하는 KBO 리그 환경 때문에 심심치않게 나올 수 밖에 없다. 과거에는 리그 역사가 짧아 이러한 사실이 주목받지 못했으나 더 많은 시즌이 진행되고 순위 데이터가 쌓인 결과 이러한 기준에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생기게 된 것이다.두 팀의 왕조 시기가 겹칠 수 있음. (예: 2000~2004 현대, 2002~2006 삼성)
34년 동안 일곱 번이나 나온 기록을 높게 평가 할 수는 없음.[34]
팀 | 감독 | 우승 | 시기 | 순위 |
해태 타이거즈 | 김응용 | 4 | 1991~1997 | 1-3-1-4-4-1-1 |
하지만 1997 시즌 종료 후 IMF가 닥쳐오면서 한국시리즈 우승 일주일 만에 해태그룹이 부도를 선언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이종범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진출시키고, 임창용, 이순철, 조계현을 삼성에 팔아넘기며, FA였던 이강철, 홍현우를 놓쳐 버린다. 결국 1998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기아자동차가 구단을 인수하기 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팀 | 감독 | 우승 | 시기 | 순위 |
현대 유니콘스 | 김재박 | 4 | 1998~2004 | 1-5-1-3-4-1-1 |
현대는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까지 3회의 통합 우승과 양대 리그 당시 1회 우승[37]으로 통산 네 번 우승했다. 하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과 하이닉스의 자금난 등이 겹치면서 많은 주축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팔려나갔고 2007 시즌 이후 팀이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에게 법인 해체 후 권리 이관을 통해 인수되며 최종 4회 우승으로 우승 기록을 마감한다.
팀 | 감독 | 우승 | 시기 | 순위 |
삼성 라이온즈 | 김응용 선동열 | 3 | 2002~2006 | 1-4-2-1-1 |
이 시기 삼성은 현대, SK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과 팬들로부터 왕조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 원인으로는 FA를 싹쓸이하면서 돈성이라는 안 좋은 이미지를 구축한 점,[39] 2000년대 초중반은 한국 야구의 암흑기여서 인기가 저조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던 점, 선동열의 지키는 야구가 삼성 팬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던 점[40] 등이 있다.
팀 | 감독 | 우승 | 시기 | 순위 |
SK 와이번스 | 김성근 | 3 | 2007~2010 | 1-1-2-1 |
하지만 2011년 시즌 중 프런트는 지나치게 전권을 요구하는 김성근을 중도 경질시키고[42] 이만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긴다. 사실 성적 때문에 부각이 덜 되었지 당시 SK는 내부적으로 잡음이 많았었다. 김성근과 이만수의 갈등,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 등 코칭스태프들이 따로 움직였고 팀 분위기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2011년, 2012년 연속 준우승 이후 2013년에는 6위로 추락하며 전성기를 마감하게 된다.
팀 | 감독 | 우승 | 시기 | 순위 |
두산 베어스 | 김태형 | 3 | 2015~2019 | 1-1-2-2-1 |
2020년에는 3위로 정규시즌을 마치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준우승에 그친다. 이후 두산의 행보는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모기업의 상황이 좋지가 않고 그 여파로 라울 알칸타라, 오재일, 최주환, 크리스 플렉센이 타팀으로 이적을 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정규시즌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거두며 KBO 리그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22년에는 계속되는 선수 유출로 인해 결국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국시리즈 연속 진출도 종지부를 찍었으며 김태형 감독은 계약만료로 물러났다.
4.4. 대만
대만프로야구 역대 왕조팀 | |||
★★★ 1992~1994 슝디 엘리펀츠 | ★★★ 1997~1999 웨이취안 드래곤스 | ★★★ 2002~2004 슝디 엘리펀츠 | |
★★★ 2007~2009 퉁이 라이온스 | ★★★ 2017~2019 라미고 몽키스 |
- 슝디 엘리펀츠: 1992~1994, 2002~2004
4.5. 호주
- 브리즈번 밴디츠: 2015~2019
5. 아이스하키
5.1. 북미
- 舊 오타와 세너터스: 1919~1928
-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1946~1951, 1962~1967
-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1949~1955
-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 1953~1979
- 뉴욕 아일런더스: 1980~1984
- 에드먼턴 오일러스: 1984~1990
6. 축구
후술된 사례 대부분은 리그 기준이고, UCL 기준 왕조[45]는 레알 마드리드(55-56~59-60), 아약스(70-71~72-73), 바이언(73-74~75-76), 리버풀(76-77~83-84), 밀란(87-88~93-94), 바르사(08-09~14-15), 레알 마드리드(15-16~17-18) 6팀이 주로 언급된다.[46]6.1.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역대 왕조팀 | |||
★★★ 1923-24~1925-26 허더즈필드 타운 AFC | ★★★ 1932-33~1934-35 아스날 FC | ★★★ 1981-82~1983-84 리버풀 FC | ★★★ 1998-99~2000-0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 2006-07~2008-0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 2020-21~2023-24 맨체스터 시티 FC | ||
풋볼 리그 디비전 1(1888~1992) 시절 기록도 서술하며, 왕조를 달성한 당시 구단명과 엠블럼으로 서술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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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 FC: 1976~1990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3~2003, 2007~2013
- 맨체스터 시티 FC: 2018~진행 중
6.2. 스페인
- 레알 마드리드 CF: 1954~1965, 1986~1990, 2014~2018
1960년대 저승사자 군단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 이번에는 스페인 국내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구성했다. 이 정책은 1980년대까지 이어져 이른바 '독수리 5형제'가 결성되었고 울리 슈틸리케, 첸도, 우고 산체스,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호르헤 발다노 등 뛰어난 실력의 선수들을 필두로 라리가 5연패, UEFA컵 2연패, 그리고 유러피언컵 우승도 1회 추가하며 5연패 시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0년대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중심으로 세르히오 라모스, 루카 모드리치, 마르셀루, 토니 크로스, 카세미루, 가레스 베일, 카림 벤제마 등과 함께 또 한번의 왕조를 구축하였다. 2013-14 시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지휘 하에 구단 역사상 10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지네딘 지단이 지휘하기 시작한 2016년 1월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 라리가 1회 우승, UEFA 슈퍼컵 2회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2회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특히 2015-16 시즌부터 2017-18 시즌까지의 3연패를 포함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챔피언스 리그에서 5년간 4차례 우승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챔피언스 리그가 현행 체제로 개편된 이후 그동안 2연패를 달성한 팀이 전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레알 마드리드의 이러한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팀의 주축 멤버인 루카 모드리치는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NBA 시카고 불스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쓰리핏과 비교하며 레알 마드리드가 축구의 왕조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지단이 자진 사임하고 호날두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 떠나며 레알 마드리드의 두 번째 왕조이자 전성기는 마감한다.[49]
- FC 바르셀로나: 1991~1994, 2009~2015
바르셀로나의 두 번째 왕조는 역대 최고의 팀에 가장 근접하다고 평가받는 팀이다. 이 기간 동안 사상 최초의 시즌 6관왕을 포함해 2번의 트레블과 1번의 더블을 해냈다. 2008년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후 라 마시아의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하며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카를레스 푸욜, 세르히오 부스케츠, 제라르 피케, 다니 알베스, 빅토르 발데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페드로 로드리게스가 팀을 구성하며 축구계의 헤게모니를 바꾼 전술인 티키타카를 사용하며 사상 최강의 경기력으로 축구계를 휩쓸었다. 2012년 펩이 떠난 이후 약간의 부침을 겪었지만 2014년 루이스 엔리케가 부임하고 네이마르, 루이스 수아레스가 영입되며 세기의 공격진 MSN을 구축하였고 2014-15 시즌 역사상 최초로 두 번의 트레블에 성공했다. 또한 라리가에서 08-09 시즌~18-19 시즌까지 11시즌 동안 8번 우승을 하며 리그 패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 기간 동안 바르셀로나는 무려 23개의 우승컵을 가져갔다.
- 세비야 FC: 2014~2016
6.3. 이탈리아
- 유벤투스 FC: 1931~1935, 1977~1986, 2012~2020
- 토리노 FC: 1942, 1945~1949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60~1967, 2006~2010
- AC 밀란: 1987~1994, 2002~2007
밀란 제네레이션 이후 한동안 부침을 겪다가 카카, 안드리 셰브첸코, 필리포 인자기, 안드레아 피를로, 클라렌스 세도르프, 젠나로 가투소,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네스타 등으로 대표되는 뉴 밀란 제네레이션으로 또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비록 리그에서의 지배력이 아쉬웠고[55] 때문에 간신히 챔스 티켓을 얻을때가 있는 등 원조 밀란 제네레이션 만큼의 압도적인 포스는 발휘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5년간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 1회 준우승을 기록하여 현재까지 밀란의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룬 시기가 바로 이 시기.
6.4. 독일
- FC 바이에른 뮌헨: 1972~1976, 2013~2023
2차 전성기는 2010년대의 일명 레바뮌[57]의 시대였다. 시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2010년에 홈에서 열린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패배해 깊은 상처를 남기고 2012년에는 컵-리그-챔스를 모조리 준우승 해버리는 일명 콩레블의 비극을 겪었으나, 바로 다음 시즌인 2013년에 팬들이 흘린 눈물을 보상이라도 하듯 분데스리가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하고 이 시즌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유럽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리그 11연패를 달성했으며, 특히 2020년에는 2번째 트레블까지 달성해 본래 바르샤만이 보유하고 있던 2트레블과 6관왕의 기록을 뮌헨 역시 가지게 되었다. 2020년 2번째 트레블을 기록한 이후 리그 3연속 우승을 추가했으나 현존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라는 해리 케인을 영입하며 야심차게 새출발한 2023-24 시즌에 하필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창단 최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뮌헨의 리그 우승 기록은 11연패에 그치게 되었다.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5~1977
6.5. 네덜란드
- AFC 아약스: 1966~1973, 1994~1996
팀의 두 번째 전성기는 1990년대로 루이 판할 감독이 이끌던 시절이다. 용 아약스 출신의 유스들을 대거 기용하여 1993-94 시즌~1995-96 시즌 리그 3연패 및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준우승을 한 차례씩 기록했다. 특히 1994-95 시즌에는 리그에서 27승 7무, 챔피언스 리그에서 7승 4무를 거두며 리그+챔스 무패 더블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 PSV 에인트호번: 1986~1989
6.6. 프랑스
- 올랭피크 리옹: 2002~2008
- 파리 생제르맹 FC: 2013~진행 중
6.6.1. 논란 사례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89~1993
그러나, 마르세유의 영광은 승부 조작과 약물 의혹 등의 스캔들로 심각하게 얼룩지게 된다.
1992-93 시즌 마지막 경기 상대인 발랑시엔과의 경기에서 발랑시엔 선수들이 자수하는 바람에 마르세유의 승부 조작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발랑시엔 선수인 자크 글리스만이 감독인 보로 프리모락에게 마르세유 선수인 장자크 에들리에게 자신이 매수 당했다고 고백한 게 계기가 되어 드러났다. 이후 호르헤 부루차가, 크리스토프 로베르도 마르세유에 매수당했다고 고백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들은 에들리가 발랑시엔 선수들에게 경기에서 져줄 것과 부상 위험을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마르세유는 5월 20일에 발랑시엔과 경기를 치르고 엿새 뒤에 챔스 결승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마르세유는 챔스 결승전 이전의 마지막 경기를 매수로 쉽게 넘겨 일찍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럽 정상을 노리겠다며 검은 돈을 사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처벌로서 마르세유는 1994년 2부 리그로 강등되고 1992-93 리그 우승 타이틀을 박탈당했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등의 각종 국제 대회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또한 2006년에는 당시 마르세유 선수였던 장자크 에들리가 자서전에서 당시 루디 푈러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금지 약물을 도핑 후 경기에 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UEFA는 공소 시효인 10년이 지났다는 것을 근거로 무혐의 처분하였다. 또한 당시 도핑 테스트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왔고 해당 자서전 발간 이후 마르셀 드사이를 비롯하여 동료 선수들 또한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약물 의혹은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199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고, 리그 우승은 승부 조작으로 1992-93 시즌만 박탈된 것이다.
한편 밀란 팬들은 이러한 마르세유의 승부 조작 이력, 도핑 폭로 때문에 '그렇다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도 도핑을 썼던 게 아니냐?' 의심하며 훔쳐간 빅이어를 돌려달라 아우성을 쳤는데, 상술됐듯 엄연히 당시 실시된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고 경기를 치른 것이며, 결국 마르세유가 챔스 결승에서 도핑했다는 근거는 한참 후대에 나온 장자크 에들리의 개인 주장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게다가 또 한 가지 문제는, 마르세유 챔스 우승 멤버 상당수가 승부 조작 징계 이후 세리에로 탈출했고, 그들이 밀란과 유베로 이적해 챔스 우승에도 기여했다는 것이다. 만약 마르세유가 도핑을 한게 맞다면 이는 곧 밀란과 유베 역시 챔스 우승 과정에서 그때 그 도핑 선수들이 참여 했다는 뜻인지라 이야기가 엄청 복잡해진다.
아무튼 리그앙에서의 강력한 헤게모니와 리그앙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 성과로 따지면 오히려 위의 리옹과 파리보다도 더 왕조에 걸맞지만, 승부 조작과 도핑 의혹 때문에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도핑 의혹은 말 그대로 증거없는 의혹일 뿐이지만 승부 조작은 빼박이기 때문에... 다만 유벤투스 역시 유럽 축구계 역대급 흑역사인 칼초폴리로 국내에선 아예 주작투스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인데 정작 위의 유벤투스 항목에는 왕조로서 서술되어 있는지라 문서의 일관성과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긴 하다.
6.7. 대한민국
K리그 역대 왕조팀 | |||
★★★ 1993~1995 일화 천마 (일화 왕조) | ★★★ 2001~2003 성남 일화 천마 (일화 왕조) | ★★★★★ 2017~2021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왕조) | ★★★ 2022~2024 울산 HD FC (울산 왕조) |
K리그1 기록만 서술하며, 왕조를 달성한 당시 구단명과 엠블럼으로 서술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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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WK리그): 2013~2023
자세한 내용은 전북 왕조 문서 참고하십시오.
2014년과 2015년 연속해서 K리그 정상에 오르면서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66] 하지만, 2016년 심판매수 사건으로 승점 9점을 삭감 당하는 징계를 받으며 리그를 2위로 마감했고, 왕조 달성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최초의 왕조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강력한 전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하며 결국 2017~2021년 리그 5연패를 달성했고, 왕조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대미문의 K리그1 통산 9회 우승을 이루며 K리그1, K리그2 역대 최다 우승이라는 족적을 남겼다.[67] 더불어 2016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다시 한 번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했다. 2018년에는 스플릿 라운드 시작 전 유일하게 우승을 이뤘고 2020년에는 K리그1과 FA컵에서 동시에 우승하면서 한국 프로 축구 사상 세 번째 더블을 달성했다. 2022년에는 감독이라는 거대한 마이너스 요인[68]과 더불어 경기 내외적으로 악재가 겹쳤고 끝내 리그 2위 성적을 거두며 리그 연속 우승 행진을 마감한다.[69] 그래도 FA컵에서는 우승 컵을 들어올리며 2014년 이후 공식 대회 9연속 우승을 이뤘다.
자세한 내용은 울산 왕조 문서 참고하십시오.
만년 콩라인 준우승 10회의 울산 HD FC가 홍명보를 선임한 2022년 부터 k리그1 3연패를 달성했다.
22년과 23년은 리그 내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을 확정했으나 24년에 들어서 초반부터 첫5경기에서 2승2무1패로 시작하는 등 전전시즌과 전시즌과의 기량과는 다른 안좋은 페이스로 리그를 시작했다. 이에 울산팬들은 홍명보감독의 기량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울산의 22, 23시즌 우승은 홍명보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아닌 선수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게되었다. 겨울부터 이어진 국가대표팀의 차기 감독선임논란과 그후보로 있던 홍명보가 여름 팀을 떠나게되고 남아있었더라면 2번의 우승을 안겨준 감독을 좋지않은 모습으로 안좋게 떠나보냈다. 후임감독으로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으로있던 김판곤을 선임한다. 김판곤 감독체제로 전환후 다시 반등에 성공하여 2024년 36R 강원FC와의 홈경기에서 2대1로 우승을 확정지으며 울산 HD FC는 K리그 3연패를 달성, K리그 3번째 왕조팀을 달성한다.
7. 관련 문서
[1] 사실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NBA 최초의 슈퍼스타였던 마이칸이 어느 팀에서도 영구 결번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이칸은 위태로웠던 신생 NBA를 자리잡게 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고 농구의 여러 규칙 (3초룰, 24초 샷클락, 골텐딩 등)을 바꾼 장본인이었다.. 결국 조지 마이칸의 영구 결번은 재지정되었다.[2] 러셀이 은퇴하고 1974년과 1976년에 2번의 우승을 더했다. 총 8회 우승.[3] 이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2015-16 시즌에 73승으로 기록을 갱신한다.[4] 후술할 2016-17 시즌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비교가 많이 이루어진다.[5] 이후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여 2006년에 우승을 추가하였다.[6] 이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2017년 플레이오프 16승 1패로 우승하며 기록을 갱신한다.[7] 후술할 2016-17 시즌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비교가 많이 이루어진다.[8] 10년 정도로 잡는 경우가 많다.[9]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별도의 침체기없이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플레이오프를 개근하고 그 사이 6번의 파이널 진출, 5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또 연속 우승은 없지만 밀레니엄 레이커스가 주춤한 사이 03, 05, 07 징검다리로 5년에 걸쳐 3차례 우승을 차지했기에 99년 우승까지 포함해 9년동안 4번의 우승이라는 단기간 동안 우승을 많이 차지한 팀에도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10] 물론 80년대에 서부에 레이커스 이외에 2번이나 파이널에 진출한 휴스턴 로키츠도 있었지만, 2번의 파이널 진출은 상대적으로 쉬운 서부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이지 실질적으로 동부에 있었으면 정규 시즌 성적으로는 중위권 정도의 팀이였다. 보스턴,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이외에 밀워키 벅스랑 비교해도 실질적인 전력이 아래라고 보는게 더 타당했다. 그리고 로키츠는 래리 버드를 앞세운 셀틱스와 파이널에서 2번 붙어 모두 졌다.(81, 86)[11] 이후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하여 2019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12] 해당 기간의 정규 시즌에 1133승 459패로 승률 71.2%[13] 우승을 차지한 1998-99 시즌에는 50경기의 단축시즌 체제였으며 이때 스퍼스는 정규 시즌에 37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2011-12 시즌은 66경기의 단축시즌이지만 정규 시즌에 50승을 거두었다.[14] 그리고 포포비치 체제하에서 스퍼스는 2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15] 2005-06 시즌부터 다섯 시즌 동안 정규 리그에서 네 번, 챔피언 결정전에서 두 번 우승한다.[16] 2015-16 시즌 정규 리그는 압도적 1위 우리은행과 연패로 6위가 된 KDB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4구단이 2, 3위를 놓고 플레이오프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되었다.[17] 슈퍼리그 시절부터 포함하면 9연속 우승.[18] 7연속 우승은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장 연속 우승 기록이다.[19] 1936~1939 시즌에 4연패, 1949~1953 시즌에 5연패[20] 1998~2000 시즌에 3연패[21] 20회 우승은 양키스를 제외하면 메이저 리그에서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인데 양키스는 이 기간 동안에만 20회 우승을 달성했다.[22] 이 엄청난 성적은 드래프트 도입 전 엄청난 인기로 얻은 자금으로 좋은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쓸어모아 이뤄낸 것으로, 1965년 이후 드래프트 도입으로 자금력으로 유망주 독식이 불가능해진 것이 양키스의 독주를 끊는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23] 한가지 실예로 2001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만 7차전 혈투 끝에 마무리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가 애리조나의 루이스 곤잘레스한테 끝내기안타를 내주며 패했다.[24] 1972~1974 시즌에 3연패[25] 단일 리그 시절, 현재 센트럴 리그 우승과 동급.[26] 1986~1988 시즌에 3연패, 1990~1992 시즌에 3연패[27] 세이부 홈 구장은 도쿄에서도 열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고, 사이타마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거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성적이 안 나오면 관중 수익이 폭망한다는 것.[28] 아키야마 코지, 기요하라 카즈히로,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29] 소프트뱅크는 2003년 우승 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 중 6회나 A클래스에 들었으며 그 중 3번은 페넌트 레이스 1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탈락해 단 한 번도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며 타 팀 팬들로부터 가을의 풍물시라는 조롱이나 받는 신세였는데, 2011년 그 징크스를 깨고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30] 삼성은 통합 4연패[31] 예전에는 2군 팜이 두터웠다고 평가 받았으나 4연패로 인해 신인 지명 순위가 계속 밀렸고 우수한 유망주를 픽할 수 없었다. 2015년 2차 드래프트가 그 증거로 삼성 2군은 타팀에 비해 유출이 적었다. 타팀도 삼성 2군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32] 다만, 이 기준이 나무위키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은 지지를 받는 기준이긴 하지만, 야구계 전체의 의견을 수렴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기에 기존 언론, 야구계 인사는 여전히 기존의 현대, SK, 두산도 포함하여 왕조로 지칭한다.[33] 다른 프로 종목은 승률 차이가 훨씬 크다. 농구와 배구는 피지컬로 학살하기 쉬운 특성 때문에, 축구는 1류 선수 싹쓸이가 가능한 개방형 리그 특성 때문에 극단적인 경우 무패 우승팀이 나오기도 한다.[34] 1986년부터 2019년까지 해태, 삼성이 2번, 현대, SK, 두산이 1번씩으로 해체된 팀을 포함 12팀 중 5팀이나 달성했다.[35] 사실 실업 팀 현대 피닉스를 통해 미국의 양대 리그처럼 한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리그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렇게 되진 못했고, 대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자세한 건 현대 피닉스 참고.[36] 이후 경기수가 144경기로 늘어나면서 두산이 2016년 93승으로 경신했다. 2000년 현대는 133경기에서 91승.[37] 2000년도에는 양대 리그여서 통합 우승 개념이 모호하나 자리그와 인터리그 경기수가 동일했으며 현대는 그런 상황에서 최고 승률을 기록했으므로 통합 우승으로 칭해도 무리가 없다.[38] V1 자체는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달성했지만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39] 당시 최강팀이던 현대에서 박종호, 심정수, 박진만을 차례로 빼온 게 컸다. 하지만 삼성은 정당한 권리로 FA 선수를 영입했으며 현재 시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애초에 돈질의 시작은 1990년대 현대가 원조다.[40] 기존 삼성의 공격적인 팀컬러에 익숙해져 있던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식 불펜 야구는 생소했을 뿐더러 그 과정에서 배영수, 권오준, 권혁 등 많은 투수들이 혹사당했고 초반 2연패 이후 4위, 4위, 5위라는 저조한 성적, 그리고 결정적으로 양준혁에게 은퇴를 강요하는 등 삼성 팬덤에게 선동열은 좋은 감독이 아니었다.[41] SK는 이후 2011년, 2012년에도 한국시리즈에 오르며 최초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을 달성한다.[42] 이 자체만 놓고 보면 김성근 감독의 잘못이 큰데, 프런트의 많은 배려와 투자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은 프런트를 비난하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고 그 결과 프런트와의 갈등이 자주 일어났다.[43] 2위 SK와 14.5게임차가 났는데 이는 85년 삼성의 18.5게임차, 00년 현대의 16게임차에 이어 역대 최다 게임차 정규시즌 우승 3위에 해당한다. 단일 리그 기준으로는 역대 1위.[44] 14.5게임차 업셋은 역대 최다 게임차 업셋이다.[45]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리그 기준 왕조는 63-64 시즌까지지만 UCL 기준 왕조는 59-60 시즌까지고 아약스의 경우 리그 기준 왕조는 65-66 시즌부터지만 UCL 기준 왕조는 70-71 시즌부터다.[46] 1234[47] 이건 당시 아스널 감독과 첼시 감독이 아르센 벵거 그리고 주제 무리뉴라서 그런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위 미만의 성적을 기록한 적은 없다.[48] 2위는 세르비아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96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다.[49] 하지만 이후에도 다시 벤제마가 역대급 퍼포먼스로 팀을 멱살 캐리하고 크카모 역시 노쇠화에도 불구하고 클래스를 보여주며 21-22 시즌 리그-챔스 더블과 발롱도르를 배출하며 전성기의 끝자락에서 화려하게 잔불을 태웠으며,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23-24 시즌 또 다시 리그 우승과 빅 이어를 들어올리며 레알의 전성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수많은 축구 팬들이 페레즈를 축구 클럽 회장 GOAT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50] 주요 대회가 아닌, 인터토토컵 같은 정말 마이너한 대회까지 우승해본 팀은 유벤투스가 유일하다. 애초에 챔피언스 리그나 UEFA컵 같은 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강팀이라면 리그 성적이 너무 좋아서 다른 대회에는 참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51] 더군다나 당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한, 월드컵 2연패를 차지한 최초이자 1958, 1962 브라질과 함께 유이한 팀이다.[52] 2005-06 시즌 칼초폴리로 인해 얻은 스쿠데토 포함.[53] 사실 1960년대 1964-65 시즌에 3개 대회 결승에 오르며 이탈리아 클럽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 기회를 잡았으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준우승하며 실패.[54] 반 바스텐, 굴리트, 레이가르트[55] 당시 세리에의 헤게모니는 유벤투스와 인테르가 번갈아 쥐었고 밀란은 사이에 껴있는 신세였다. 때문에 00년대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번 밖에 리그 우승을 못했다.[56] 사실 1970년대부터는 바이에른이 독일 원탑 클럽이라 바이에른 왕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다른 클럽들의 도전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형국이라, 바이에른의 시대를 저 시기로만 국한하는 것이 적절한가 싶기도 하나, 분데스리가를 넘어 유럽 대륙 전역을 제패한 시기가 이 시기라는 점이 중요하다.[57] 2010년대에 빅클럽 중에서도 유달리 강하고 무적 포스를 풍기는 어나더 레벨의 세 클럽 레알, 바르사, 뮌헨을 일컫는 국내 축구팬들의 용어.[58] 미헬스가 팀을 떠나고 코바치가 맡은 시즌이었다.[59] 뮌헨의 경우 3연패는 1970년대에, 트레블은 2010년대에 각각 다른 시대에 했다.[60] 원래 5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후술할 이유로서 1992-93 시즌 우승을 박탈 당했다.[61] 결승 상대는 유고슬라비아의 츠르베나 즈베즈다인데 마르세유는 승부차기에서 3:5로 졌다.[62] 현재까지 프랑스 리그 유일한 챔스 우승팀이다.[63] 정규 리그 및 챔피언 결정전[64] 적어도 리그 출범 이후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절반 이상이 현대제철 전, 현 소속 선수다.[65] WK리그 플레이오프조차 진출하지 못한 것으로 10년 넘게 1위만 하다가 4위가 됐으니 엄청난 이변이다. 그나마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거뒀고 AFC 여자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순항 중이다.[66] 당시 아시아 축구 연맹에서 AFC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까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따로 치른다는 규칙을 신설했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참가 구단의 원정 부담을 완화하며 전력 손실을 줄여 주었다.[67] 2022년 기준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최다 우승은 KBO 리그 KIA 타이거즈와 한국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의 11회다.[68] 대표와 함께 2021-2022 전북 축구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특히 2022년에는 노골적인 선수 저격, 팬 무시 등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길 경기는 비기고 비길 경기는 지고 질 경기는 완전히 져버리는 등 울산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에도 승점을 많이 쌓지 못했다.[69] 최종 우승은 현대가 라이벌인 울산 현대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