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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01:41:03

미키 맨틀

미키 맨틀의 주요 수훈 /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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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미국 스포팅뉴스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 선수 목록으로 약 25년 전 기록이기 때문에 21세기 스타들이 없는 것을 감안하며 보아야 한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타이 콥 월터 존슨 행크 애런
6위 7위 8위 9위 10위
루 게릭 크리스티 매튜슨 테드 윌리엄스 로저스 혼스비 스탠 뮤지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조 디마지오 피트 알렉산더 호너스 와그너 사이 영 지미 폭스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자니 벤치 미키 맨틀 조시 깁슨 사첼 페이지 로베르토 클레멘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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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SPN 로고.svg 올타임 MLB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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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ESPN의 패널들이 선정한 역대 메이저 리거 랭킹. 금지 약물 복용자들이 버젓이 선정됐고 기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와는 다른 부분들이 있으므로 참고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타이 콥 테드 윌리엄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루 게릭 미키 맨틀 배리 본즈 월터 존슨 스탠 뮤지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페드로 마르티네즈 호너스 와그너 켄 그리피 주니어 그렉 매덕스 마이크 트라웃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조 디마지오 로저 클레멘스 마이크 슈미트 프랭크 로빈슨 로저스 혼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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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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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미키 맨틀
Mickey Mantle
포지션외야수
득표수988,168}}}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51 1952 1953 1956 1958 1961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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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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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빌리 마틴.jpg 파일:데릭 지터.jpg 파일:베이브 루스.jpg 파일:루 게릭.jpg 파일:조 디마지오.jpg 파일:조 토레.jpg 파일:미키 맨틀.jpg 파일:빌 디키&요기 베라.jpg
빌리 마틴 데릭 지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조 토레 미키 맨틀 빌 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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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 베라 로저 매리스 필 리주토 서먼 먼슨 화이티 포드 호르헤 포사다 폴 오닐 돈 매팅리
파일:엘스턴 하워드.jpg 파일:케이시 스탱겔 감독.jpg 파일:마리아노 리베라.jpg 파일:재키 로빈슨.jpg 파일:래지 잭슨.jpg 파일:앤디 패팃.jpg 파일:론 기드리.jpg 파일:버니 윌리엄스.jpg
엘스턴 하워드 케이시 스텡겔 마리아노 리베라 재키 로빈슨 레지 잭슨 앤디 페티트 론 기드리 버니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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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트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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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 허긴스 루 게릭 제이콥 루퍼트 베이브 루스 에드 바로우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조 맥카시 케이시 스텡겔 서먼 먼슨
엘스턴 하워드 로저 매리스 필 리주토 빌리 마틴 레프티 고메즈
화이티 포드 빌 디키 요기 베라 앨리 레이놀즈 돈 매팅리
멜 앨런 밥 셰퍼드 레지 잭슨 론 기드리 레드 러핑
재키 로빈슨 조지 스타인브레너 마리아노 리베라 티노 마르티네스 구스 고시지
폴 오닐 조 토레 버니 윌리엄스 윌리 랜돌프 멜 스토틀마이어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데릭 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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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Mantle%20Mickey%20Plaque_NBL.png
미키 맨틀
헌액 연도 1974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8.2% (1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56 ~ 1957년 아메리칸 리그 MVP
요기 베라
(뉴욕 양키스)
미키 맨틀
(뉴욕 양키스)
재키 젠슨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2년 아메리칸 리그 MVP
로저 매리스
(뉴욕 양키스)
미키 맨틀
(뉴욕 양키스)
엘스턴 하워드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2년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짐 피어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짐 랜디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알 칼라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미키 맨틀
(뉴욕 양키스)

짐 랜디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알 칼라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칼 야스트렘스키
(보스턴 레드삭스)
짐 랜디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알 칼라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타자 트리플 크라운
테드 윌리엄스
(보스턴 레드삭스, 1947년)
미키 맨틀
(뉴욕 양키스, 1956년)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1966년)

보유 기록
월드 시리즈 통산 최다 홈런 18홈런
월드 시리즈 통산 최다 득점 42득점
월드 시리즈 통산 최다 타점 40타점
월드 시리즈 통산 최다 볼넷/삼진 43BB/54K
월드 시리즈 통산 최다 총루타 123루타
}}} ||
파일:맨틀1.jpg
<colbgcolor=#132448> 뉴욕 양키스 No. 7
미키 찰스 맨틀
Mickey Charles Mantle
출생 1931년 10월 20일
사망 1995년 8월 13일 (향년 63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오클라호마 주 스파비노
포지션 중견수1루수[1]
투타 우투양타
신체 180cm / 88kg
프로 입단 1949년 자유계약 (NYY)
소속팀 뉴욕 양키스 (1951~1968)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2.2. 역사상 최고 타격의 중견수2.3. 잦은 부상2.4. 쿠퍼스타운 입성, 그리고 은퇴 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3. 대중 문화에서4. 여성 편력5. 연도별 성적6.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양키스가 매번 우승하는 이유가 뭐겠니?"
"미키 맨틀 때문에요?"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中[2]
훗날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되는 강타자 알 칼라인[3]을 한 꼬마팬이 조롱했다.
"아저씨는 미키 맨틀의 반만큼도 못해요."
칼라인이 대답했다.
"얘야, 세상에 미키 맨틀의 반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단다."[4][5]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전 야구선수. 스위치 히터뉴욕 양키스에서만 선수생활 모두를 해낸 1950~60년대의 대표적 간판 스타였고, MVP를 3회 수상했다. 선수생활 내내 여러가지 잔부상에 시달리면서도[6][7] 후술한 기록들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 대표적인 5툴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8]

월드 시리즈에 자주 진출하고 대단한 성적을 내면서 월드 시리즈 통산 홈런ㆍ타점ㆍ득점ㆍBB/Kㆍ총루타 기록을 차지했다.

통산 성적은 18시즌 동안 타율 .298, 2415안타, 536홈런, 출루율 .421, 장타율 .557, OPS .977[A], 순장타율 .259, BB/K 1.01, wRC+ 170[A], 1509타점을 기록했다.

2. 생애

2.1. 유년기

태어날 때 아버지 엘빈 찰스 맨틀(Elvin Charles Mantle)는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 활동한 MLB 명예의 전당 포수 미키 코크런의 이름을 본따 이 아들을 미키라고 붙였다고 한다.[11] 아버지는 이후 성장한 아들이 야구를 하려고 하자 왼손잡이었던 미키의 할아버지와 함께 좌우로 배팅 볼을 던져주는 지극정성으로 스위치 히팅 타법을 익히게 했다. 훗날 이는 플래툰 시스템을 극도로 신봉했던 케이시 스텡겔 감독을 만나게 되며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아버지의 이런 플래툰 교육은 선견지명이었던 셈이다. 또한 풍족한 것은 아니었던 형편상 미키도 나름대로 집안 형편을 위해 광산부터 농부까지 갖가지 잡일을 맡아 했는데, 그때 단련된 무지막지한 손목과 어깨 힘은 훗날 대성할 홈런 타자의 큰 자산이 되었다.

그렇게 고교 시절에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세미프로 팀에서 뛰었으며, 우연히 양키스 스카우트가 펜스 뒤 강에 빠지는 홈런(...)을 지켜보고는 루 게릭의 후계자를 발견했다는 확신을 하였고, 졸업식까지 기다렸다 졸업 당일 사인하는 정성을 다한 끝에 양키스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2.2. 역사상 최고 타격의 중견수

파일:external/www.vintagecardprices.com/164237.jpg

맨틀은 마이너 시절 유격수로 뛰었지만, 필 리주토에게 막힌 데다 유격수로서 딱히 수비가 좋은 편도 아니어서 중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하지만, 양키스에는 이미 중견수 자리를 차지한 괴수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조 디마지오였다. 그래도 맨틀은 강견을 앞세워 우익수로 뛰었지만, 디마지오는 맨틀이 자신을 향후 밀어낼 것임을 직감하고 일부러 쌀쌀맞게 대했다고 한다.

1952년, 디마지오의 예상대로 중견수로 자리잡은 맨틀은 3할 타율을 찍으며 스무 살짜리 치고는 매우 뛰어난 시즌을 보냈지만, 리그 최다 삼진의 불명예 또한 얻으며 양키스 팬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절치부심한 맨틀은 1955년부터 본색을 발휘하기 시작한다.[12] 23세 시즌인 1955년부터, 1962년까지 그는 비율 스탯 .315 .445 .616에 320홈런을 날렸다.

특히 주목할 점은 1956~1957년에 각각 기록한 11.5/11.4fWAR과 MVP 3회 수상 (1956, 1957, 1962). 1956년에 맨틀은 MLB 최후의 통합 트리플 크라운(양대 리그에서 타율, 홈런, 타점 1위)을 달성했으며, (0.353, 52홈런, 130타점), 1957년에는 홈런 수가 34개로 줄었지만 0.512라는 어마어마한 출루율[13]을 기록하며 1956년과 최소 동등하거나 어쩌면 능가하는 못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다.[14]

이를 KBO 기준으로 대입해 본다면, 메이저리그 진출 2년 전인 2022년의 이정후가 52홈런, 0.353, 130타점의 트리플 트라운을 찍고, 메이저리그 진출 전 해인 2023년의 이정후가 0.512의 출루율을 동반한 1.177의 OPS를 찍은 격이다. 각각 WAR과 wRC+는 11.5/11.4과 202/217. 현실의 이정후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감안했을때, 만약 이정후가 실제로 저 성적을 찍었다면...

MVP 3회 수상은 도핑의 힘을 빌린 본즈에 이은 메이저리그 최다 수상 타이 기록으로, 이보다 많이 수상한 선수는 약의 힘으로 7회를 수상한 배리 본즈, 맨틀 외 통산 3회 MVP 수상자들은 지미 폭스, 조 디마지오, 알렉스 로드리게스, 스탠 뮤지얼, 로이 캄파넬라, 요기 베라, 마이크 슈미트, 알버트 푸홀스, 마이크 트라웃뿐이다. 단일 리그 타격 트리플 크라운도 맨틀 이후 1967년 칼 야스트렘스키, 2012년 미겔 카브레라 단 둘뿐이다. 게다가 이 시기 무시무시한 홈런 세례를 퍼부으며 과거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이 이끌었던 영광스런 시대를 다시 되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양키스 타선은 한동안 맨틀 혼자만 이끌어야 했고, 그가 받은 무수한 견제는 역대 8위에 랭크된 볼넷 수로 남아 있다. 역대 1700볼넷 선수 중 20시즌을 뛰지 않은 선수는 맨틀이 유일하다. 2012년에 짐 토미가 최종 1747개를 기록, 1733개를 기록한 맨틀을 제쳤지만, 토미는 이 기록을 달성하기까지 21시즌이 걸렸고 올타임 2위에 해당하는 많은 삼진을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동시대 뉴욕의 3대 중견수라 함은 뉴욕 자이언츠윌리 메이스, 브루클린 다저스듀크 스나이더와 함께 미키 맨틀을 일컫는 것이었고, 베이브 루스와 조 디마지오의 후계자라는 프리미엄까지 겹쳐진 맨틀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부상으로 도루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5툴 플레이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심지어 좌타석에서 번트를 대고 1루로 냅다 뛰면서 상대를 농락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맨틀에 대해서도 'Mickey could do everything'을 말해야 할 듯하다.

특히 맨틀의 홈런에 대해 더 자세히 언급하면, 기존의 담장 살짝 넘어가는 홈런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이었다. 그의 홈런은 요새 야구장들이 외야 거리 360피트(110m)만 되어도 펜스 멀다고 징징대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450피트(137m), 500피트(152m)급 홈런이 대부분이었다. 양키스 선수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날린 유일한 장외 홈런도 그의 기록이며, 다른 팀 선수까지 포함해도 니그로 리거 조시 깁슨의 2개를 제외하면 유일한 기록이다. 그의 홈런 기록에 대해서는 기하학적인 계산까지 동원되며 야빠 수학자들의 단골 떡밥이 되었다. 비공식적이지만 기하학적 계산을 동원하면 650피트(198m)급 홈런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1960sbaseball.com/mickey-mantle--roger-maris.jpg

또한 1961년에는 그 유명한 M&M포가 결성, 베이브 루스의 단일 시즌 홈런 기록에 나란히 도전하는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로저 매리스의 61홈런으로 끝났지만, 뉴욕 팬들은 양키스 프랜차이즈 스타인 맨틀이 54홈런에서 멈춘 것을 전설적인 밤비노에 대한 예우라 여겼다. 실제로는 돌팔이 의사가 스테로이드 주사 바늘로 오염된 것을 쓰는 바람에 엉덩이에 종기가 나서였다고(당시 스테로이드는 메이저리그가 금지한 약물이 아니었다).#[15][16]

하지만 이런 위대한 업적들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이 있었으니...

2.3. 잦은 부상

고교 시절 풋볼 경기 도중 당한 무릎 골수염 부상으로부터 맨틀의 파란만장한 부상 수난사는 시작되었다. 당시 심하게는 다리 절단까지 염려될 정도로 부상은 심각했고,[17] 이후 야구를 그만둘 때까지 이 부상은 끝끝내 맨틀을 괴롭혔다.

또한 선수 생활 내내 수 차례나 대형 부상으로 병원 입원을 반복하는 등 그의 선수 생활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또한 맨틀의 집안에는 호지킨 림프종 환자가 많았는데, 이 병으로 인해 선조들 대부분이 40대 이전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것 때문에 맨틀은 늘 자신이 요절할 것이라 여겨 내일이 없는 이처럼 미친 듯이 뛰었고 이렇게 과도한 허슬 플레이들은 결국 맨틀의 부상을 더 악화시키기만 했다. 그에게 야구 외 몇 안되는 낙은 화이티 포드와의 술자리였다.

결국 이 잦은 부상은 루스를 뛰어넘을 대타자로 촉망받던 맨틀이 끝내 루스의 기록을 넘지 못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버렸다.

사실 알려진 악명에 비해 미키 맨틀은 내구성이 심각하게 나쁜 선수는 아니었다는 여론도 있다. 본 문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유리몸'이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리몸이라고 알려져 있는 선수들과는 비교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출전기록이 넘사벽이다.[18] 개요에서도 서술되어있듯이 18년의 커리어 중 3시즌을 제외하고는 전부 120경기 이상을 출전했다. 1962년 이전까지의 기록은 154경기 체제여서 사실상 매시즌 전경기 출전에 가까웠고, 특히 마지막 2년은 둘 다 정규시즌 전체의 90%에 육박하는 경기를 뛰었다. 즉 유리몸치고는 출장 경기가 지나치게 많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원래부터 여러 잔부상을 달고 선수 생활을 한 것은 사실이고 미키 맨틀이 뛰던 시기는 1950-60년대로 선수 보호와 스포츠 과학의 개념이 없어서 부상 선수고 뭐고 그냥 굴리던 시기라 몸이 아파도 그냥 근성으로 참고 뛰었을 가능성이 높다. 부상이 많았다고 알려졌는데도 출장 경기가 많이 나온 것은 그냥 본인이 부상을 참고 경기에 나온 것이고, 이로 인하여 37세의 다른 명전급 선수들에 비해 다소 빠른 나이에 은퇴하기는 했으나 몸이 따르는 한 최대한 많은 경기에 출장하며 결국 500홈런 등의 중요한 마일스톤을 쌓는데 성공했다.

2.4. 쿠퍼스타운 입성, 그리고 은퇴 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1968년을 마치고 맨틀은 비교적 젊은 37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고,[19] 1974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88.2%의 지지율로 절친한 친구 화이티 포드와 함께 헌액됨과 동시에 뉴욕 양키스의 모뉴먼트 파크에 그의 7번이 내걸렸다.

하지만 사업 실패, 술로 인해 가산을 탕진했고 건강까지 악화되어 이식을 받기도 했으며, 가족들마저 알코올 의존증으로 이끌었으며,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와중에 맨틀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생존하였으며, 메이저리그의 천재 강타자는 1995년 63세를 일기로 댈러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이가 들고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기 관리에 신경쓸 걸 그랬다"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20]

그 외 자세한 이야기들은 미키 맨틀, 레전드 스토리 참조 바람.

3. 대중 문화에서

영화 머니볼의 첫머리에 그가 남긴 명언이 나온다.[21]
It's unbelievable how much you don't know about the game you've been playing all your life.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린 놀랄 만큼 무지하다.

파일:external/thedroidyourelookingfor.files.wordpress.com/mantle_jane_61.jpg
파일:external/espn.go.com/h_61_i.jpg

로저 매리스의 1961년 홈런 기록을 다룬 2001년작 영화 61*에도 등장한다. 토머스 제인이 맨틀 역으로 출연했다. 매리스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지만, 양키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홈팬들과 구단 관계자, 기자들의 편애를 받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그들의 야유에 시달리는 매리스의 모습이 교차된다. 또한 "우리 집안은 다들 오래 못살았다"면서 몸을 돌보지 않는 모습도 묘사되었다.

명 기타리스트인 스티비 레이 본의 lenny라는 모델에 싸인을 해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52년에 나온 콜렉팅 카드인 1952 Topps Mantle #311은 많은 카드 수집가들의 기준과도 같으며, 2021년 초에는 더 희귀한 호너스 와그너 카드를 제치고 역사상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하였다. 아무리 보관 상태가 나쁜 카드라도 만 달러가 넘는 인기 높은 카드이다.

4. 여성 편력

메이저리그 역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수많은 스타들이 존재했지만, 그 누구도 미키 맨틀의 아성을 넘볼수는 없다. 심지어 양키스의 다른 여색이 강한 레전드인 데릭 지터[22]베이브 루스도 맨틀에 한 수 접어주는 수준. 몇가지 일화를 설명하자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지? 소속팀 뉴욕 양키스도 이 정도의 낯뜨거운 맨틀의 행위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당대 최고의 거물급 스타였던 그를 구단에서조차 함부로 제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5.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미키 맨틀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wRC+ fWAR bWAR
1951 NYY 96 386 91 11 5 13 61 65 8 43 74 .267 .349 .443 .792 116 1.5 1.5
1952 142 626 171 37 7 23 94 87 4 75 111 .311 .394 .530 .924 158 6.6 6.4
1953 127 540 136 24 3 21 105 92 8 79 90 .295 .398 .497 .895 146 4.9 5.8
1954 146 649 163 17 12 27 129 102 5 102 107 .300 .408 .525 .933 160 6.7 6.9
1955 147 638 158 25 11 37 121 99 8 113 97 .306 .431 .611 1.042 179 9.8 9.5
1956 150 652 188 22 5 52 132 130 10 112 99 .353 .464 .705 1.169 202 11.5 11.2
1957 144 623 173 28 6 34 121 94 16 146 75 .365 .512 .665 1.177 217 11.4 11.3
1958 150 654 158 21 1 42 127 97 18 129 120 .303 .443 .592 1.035 187 8.8 8.7
1959 144 640 154 23 4 31 104 75 21 93 126 .285 .390 .514 .904 152 6.6 6.6
1960 153 643 145 17 6 40 119 94 14 111 125 .275 .399 .558 .957 159 6.9 6.4
1961 153 646 163 16 6 54 131 128 12 126 112 .317 .448 .687 1.135 196 10.3 10.5
1962 123 502 121 15 1 30 96 89 9 122 78 .321 .486 .605 1.091 192 6.0 6.0
1963 65 213 54 8 0 15 40 35 2 40 32 .314 .441 .622 1.063 192 3.3 2.9
1964 143 567 141 25 2 35 92 111 6 99 102 .303 .423 .591 1.015 176 5.5 4.8
1965 122 435 92 12 1 19 44 46 4 73 76 .255 .379 .452 .831 139 2.4 1.8
1966 108 393 96 12 1 23 40 56 1 57 76 .288 .389 .538 .927 166 3.4 3.6
1967 144 553 108 17 0 22 63 55 1 107 113 .245 .391 .434 .825 149 3.7 3.9
1968 144 547 103 14 1 18 57 54 6 106 97 .237 .385 .398 .782 145 2.8 2.7
MLB 통산
(18시즌)
2401 9907 2415 344 72 536 1676 1509 153 1733 1710 .298 .421 .557 .978 170 112.3 110.2

6.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미키 맨틀 62 272 300 65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career WAR7yr-peak WARJAWS
미키 맨틀 109.7 64.7 87.2
중견수 HOF 입성자 평균 71.2 44.6 57.9

7. 관련 문서



[1] 18년의 선수 생활 중 첫 시즌은 우익수로 뛰고 14년간 중견수로 출장하고 마지막 2년만 1루수로서 각각 131경기씩 출장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좌익수와 우익수로도 조금 나왔다. 특히 1965년엔 좌익수로만 108경기 나왔다. 또 투수/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으로 출장해봤다.[2] 영화 초반에 디카프리오가 분한 주인공 프랭크 주니어의 대사. 질문을 던진 아버지 프랭크의 답은 "유니폼 때문이야. 핀 스트라이프 무늬가 상대 선수들의 기를 꺾어 버리거든." 인간관계에 있어 복장의 중요성을 설명해준 셈. 영화 후반에는 프랭크가 자신을 잡으러 온 FBI 수사요원 칼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아버지와 달리 미키 맨틀이 있어 양키스가 이긴다는 (즉 복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복장을 입은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뜻) 반대취지의 답변을 한다.[3] 맨틀과 동시대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만 22년을 뛰며 통산 399홈런 3,007안타를 기록한 '미스터 타이거'. 올스타에 18회나 선정됐고, 골드글러브를 10회나 수상했다.[4] 정작 이 말을 한 알 칼라인의 WAR은 90정도로, 미키 맨틀의 WAR 110과 비교하면 낮긴 하지만 절반은 충분히 넘고도 남는다. 물론 미키 맨틀의 반만큼, 즉 WAR 55를 넘게 기록한 선수들은 꽤 많기는 하다. 물론 그정도만 되어도 명예의 전당을 들어갈 가늘성이 높긴 하다.[5] 다만 이 시대, 당대 사람들이 미키 맨틀을 가장 잘하는 야구선수로 여겼다 보긴 어렵다. 왜냐하면 맨틀의 라이벌 중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윌리 메이스가 있었기 때문. 그렇지만 단순히 야구 전체가 아닌 타격이라는 면에 한정하여 보자면 진짜 당대에 맨틀을 넘는 선수는 양키즈의 선배 스타 조 디마지오의 라이벌이었던 테드 윌리엄스를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했고, 중견수로 한정하면 이견의 여지가 없는 원탑이다.[6] 맨틀은 베이브 루스의 기록들을 갈아치울 재능이 있던 선수라고 평가를 늘 받아왔던 선수였고 실제로도 그럴 기세였으나 그 놈의 부상으로 여러 번 골골대는 바람에 고작 500홈런(…)을 넘긴 것에 그쳤다.[7] 하지만 최악의 유리몸이라고 하기엔 18년 동안의 선수생활 중 3시즌을 제외하고는 전부 12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투철한 근성을 보여줬다. 그 무수한 잔부상들의 고통을 20년 가까이 버틸 정도로 정신력이 대단한 선수였던 셈이다. 다만 이러한 무리는 그가 재능을 온전히 발현하지 못하게 하는 주 요인이 되었다.[8] 21세기에 마이크 트라웃이 있다면 20세기에는 맨틀이 있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유리몸이었어서 라이벌 윌리 메이스보다는 WAR이나 누적 성적은 다소 낮지만, 비율 스탯과 공격력에서는 우위를 점한다. (통산 wRC+ 170 vs 154, OPS 0.977 vs 0.940, OPS+ 172 vs 155 ) 이렇게 된 이유는 아무라도 출루율 차이(0.421 vs 0.384)가 결정적이다. 물론 맨틀도 메이스만큼은 아니었어도 역사에 남을 정도의 대선수였지만, 메이스에 비해 맨틀이 2,500타석이나 덜 뛴 것이 맨틀의 WAR이 더 낮은 결정적인 이유다.[A] 중견수 역대 1위[A] [11] 그러나 실제로는 코크레인의 본명은 고든 스탠리 코크레인이었으며 미키는 애칭이었다.[12] 그렇다고 부족했던 건 절대 아니다. 그때까지의 커리어 로우 OPS가 21세 시즌 .895였으니 이건 뭐...[13]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가하면, 20세기 이후로 5할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한 선수는 맨틀을 포함에 3명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둘은 알다시피 뉴욕 양키스보스턴 레드삭스 각 팀의 역사상 최고의 타자들이다. 21세기까지 포함하면 배리 본즈*도 있지만 그는 약쟁이임으로 사실상 20세기 이후에는 이 셋뿐이다.[14] 이 덕분에 그의 1957년 OPS(1.177)와 wRC+(217)가 오히려 1956년 OPS(1.169)와 wRC+(202)보다 높다! 다만 트리플 크라운의 임팩트 덕에 일반적으로 미키 맨틀의 커리어 하이 시즌은 1956년으로 여겨진다. 물론 1957 시즌이 굉장히 저평가 받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15] 이 기사에서는 스테로이드가 아닌 암페타민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2013년 SI의 기사는 스테로이드와 암페타민을 동시에 맞았다고 기술하고 있다.[16] 1938년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에서는 처방약은 의사 처방 없이는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했고,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처방약에 포함되었다. 의사가 아닌 돌팔이에게 스테로이드를 맞았으면 불법으로 스테로이드를 맞은 것이다. 여기에 대한 비난은 가능해 보인다. 물론 당시에도 금지 규정만 있었지 처벌 규정은 없었고, 1988년에야 생기게 된다. 처방 없이 처방약을 사용하면 연방법 위반이다. 리그 규정 이전의 문제이다.[17] 이 부상으로 한국전쟁 징집 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18] 당장 현대야구판 미키 맨틀인 마이크 트라웃은 유리몸화된 이후로는 맨틀보다 경기에 못 나오고 있고, 이건 원래부터 유리몸이었던 애런 저지도 마찬가지이다.[19] 마지막 경기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원정 경기였는데 상대 선발 투수는 당대 최강의 투수이자 메이저리그 마지막 30승 투수인 데니 매클레인이었다. 디트로이트가 앞서 가던 중 7회초 맨틀이 타석에 들어서자 매클레인은 맨틀에게 가운데 직구를 던질 것이니 홈런을 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맨틀은 처음에는 이 말을 믿지 않았으나 공은 정말 가운데로 들어왔고, 맨틀은 타임을 걸고 좀만 높게 던져줄 것을 요구했다고. 결국 맨틀은 홈런을 만들어냈는데 재밌는 일은 다음 타자인 조 페피톤의 타석에서 일어났다. 페피톤은 매클레인에게 똑같은 코스로 공을 던져줄 것을 요구했는데, 매클레인은 공을 머리 쪽으로 던지는 것으로 화답했다고 한다.[20] 정작 맨틀의 가족들이 걸린 질병인 호지킨 림프종은 되려 팀 동료이자 M&M포로 유명한 로저 매리스가 걸렸고, 매리스는 1985년에 사망했다.[21] 원작인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에는 나오지 않는다.[22] 전여친들의 이름값들은 맨틀을 능가할지도 모르나, 지터는 한번에 한명씩 사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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