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레이 본'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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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이름 | 스티비 레이 본 앤 더블 트러블 STEVIE RAY VAUGHAN AND DOUBLE TROUBLE | |||||||||||||||||||||||||||||||||||||||||||||||||||||||||||||||||||||||||||||||||||||||||||||||||||
헌액 부문 | 공연자 (Performers) | ||||||||||||||||||||||||||||||||||||||||||||||||||||||||||||||||||||||||||||||||||||||||||||||||||||
멤버 | 스티비 레이 본, 토미 샤넌, 크리스 레이턴, 리스 와이넌스 | ||||||||||||||||||||||||||||||||||||||||||||||||||||||||||||||||||||||||||||||||||||||||||||||||||||
입성 연도 | 2015년 | ||||||||||||||||||||||||||||||||||||||||||||||||||||||||||||||||||||||||||||||||||||||||||||||||||||
후보자격 연도 | 2009년 | ||||||||||||||||||||||||||||||||||||||||||||||||||||||||||||||||||||||||||||||||||||||||||||||||||||
후보선정 연도 | 2015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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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 척 베리 | 지미 페이지 | 에디 밴 헤일런 | 제프 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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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로제타 사프 | 나일 로저스 | 비비 킹 | 조니 미첼 | 듀언 올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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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산타나 | 지미 노렌 | 토니 아이오미 | 프린스 | 키스 리처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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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존슨 | 메이벨 카터 | 톰 모렐로 | 프레디 킹 | 스티비 레이 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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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로즈 | 앨버트 킹 | 커크 해밋 & 제임스 헷필드 | 제임스 버튼 | 존 프루시안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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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 | 버디 가이 | 데이비드 길모어 | 에디 헤이즐 | 닐 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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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 잭 화이트 | 브라이언 메이 | 제리 가르시아 | 에릭 클랩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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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코튼 | 피트 타운젠드 | 앵거스 영 & 말콤 영 | 쳇 앳킨스 | 존 페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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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디들리 | 버논 레이드 | 조니 그린우드 & 에드 오브라이언 | 조니 라몬 | 스티브 크루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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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자파 | 디 에지 | 커티스 메이필드 | PJ 하비 | 엘모어 제임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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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베를렌 | 존 리 후커 | 트레이 아나스타시오 | 보니 래잇 | 믹 테일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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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마 | 서스턴 무어 & 리 라날도 | 알렉스 라이프슨 | 로버트 프립 | 스코티 무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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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어 | 피터 그린 | 리처드 톰슨 | 스티브 크루퍼 | 캐리 브라운스타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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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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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 에릭 클랩튼 | 지미 페이지 | 키스 리처즈 | 제프 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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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 스티비 레이 본 | 앨버트 킹 | 데이비드 길모어 | 프레디 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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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트럭스 | 닐 영 | 레스 폴 | 제임스 버턴 | 카를로스 산타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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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메이 | 보 디들리 | 조니 라몬 | 스코티 모어 | 엘모어 제임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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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로즈 | 믹 테일러 | 디 에지 | 스티브 크로퍼 | 톰 모렐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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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 론슨 | 마이크 블룸필드 | 휴버트 서믈린 | 마크 노플러 | 링크 레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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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가르시아 | 스티븐 스틸스 | 조니 그린우드 | 머디 워터스 | 리치 블랙모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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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마 | 클라렌스 화이트 | 오티스 러쉬 | 조 월시 | 존 레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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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콜린스 | 로리 갤러거 | 피터 그린 | 로비 로버트슨 | 론 애시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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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키 베츠 | 로버트 프립 | 조니 윈터 | 듀언 에디 | 슬래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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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웨스트 | T-본 워커 | 존 맥로플린 | 리처드 톰슨 | 잭 화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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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존슨 | 존 프루시안테 | 커트 코베인 | 딕 데일 | 조니 미첼 | |||||
76위부터는 문서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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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스티비 레이 본 Stevie Ray Vaughan | |
본명 | 스티븐 레이 본 Stephen Ray Vaughan |
이명 | 스티비 본 Stevie Vaughan |
출생 | 1954년 10월 3일 |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 |
사망 | 1990년 8월 27일 (향년 35세) |
미국 위스콘신 주 이스트 트로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음반 프로듀서 |
장르 | 블루스, 블루스 록, 텍사스 블루스, 일렉트릭 블루스, 재즈 블루스 |
악기 | 보컬, 기타 |
소속 | 스티비 레이 본 앤 더블 트러블 |
활동 | 1965년 ~ 1990년 |
신체 | 165cm |
배우자 | 레노라 베일리 (1979년 ~ 1988년, 이혼) |
파트너 | 린디 베델 (1973년 ~ 1979년) 잔나 라피두스 (1986년 ~ 1990년) |
링크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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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루스계에 한 획을 그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다. 블루스 기타리스트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펜타토닉 블루스 스케일 위주의 속주를 보여줬고, 흡사 펑크(Funk) 기타리스트를 보는 것 같은 화려한 커팅 주법의 대가였다. 또, 당시에 그의 스트라토캐스터가 들려준 톤은 그야말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지금도 스트라토캐스터로 낼 수 있는 소리의 극한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다. 요약하자면 능히 블루스, 록 음악계의 전설이라 표현될 수 있는 기타리스트다.
2. 그의 일대기
회사에서 비서로 근무하던 어머니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 출신의 석면 노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티비 레이 본은 어렸을때 부터 형인 지미 본[1]이 기타를 연주하는 걸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자신도 어린 나이인 7세부터 기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이런 음악에 대한 스티비의 관심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줬는데, 두 형제의 실력이 점점 좋아지자 이를 신기하게 여겨 손님들을 불러 즐겁게 연주할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고 훗날 스티비가 회상한다. 어렸을 때부터 선배격인 기타리스트인 버디 가이, 머디 워터스, 비비 킹, 케니 버렐과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듣고 블루스에 심취하여 이들의 음악을 틀어놓고 즉흥연주를 하며 연주자의 감각을 키워 나간다.고등학교에는 적응을 전혀 못하고 매일 정학을 당할 위기였던데다가, 음악 이론 수업에서는 낙제를 먹었지만, 10세 때부터 블랙버드란 이름의 밴드를 이끌어오며 기타 실력은 오히려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더 이상 학교에 다니는 게 무의미하다 생각해 중퇴하고, 태어날 때부터 쭉 살고 있었던 댈러스 시를 떠나 밴드와 함께 지금도 텍사스 주의 문화 중심지로 불리고 있는 오스틴 시로 이주하게 된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커리어를 시작하며 인지도와 명망을 얻게 된다. 이 때는 수많은 멤버 교체와 밴드명까지 개명이 있었고, 해체까지 겪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건 블랙버드 시절부터 함께 했던 베이시스트 토미 섀넌과 신규 멤버인 드러머 크리스 레이튼이었다. 이 셋은 지금도 널리 기억되는 더블 트러블(Double Trouble)이라는 트리오 밴드를 이루게 된다.
결성 후 꾸준히 소규모 투어를 다니며 인지도를 차차 쌓아가고 있던 더블 트러블이었지만, 아직도 전국구급 인기를 얻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었다. 성공의 시발점과 돌파구가 필요하던 순간에 의외의 인물이 그 기회를 제공해 주었는데, 다름 아닌 데이빗 보위 였다. 보위는 스티비의 기가 막힌 기타 솜씨를 보고 경탄해 마지 않으며 자신의 앨범인 Let's Dance에 세션 기타리스트로 고용했는데, 이 앨범이 무려 플래티넘 히트까지 칠 정도로 대박이 나버렸다.
이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인기를 등에 업은 스티비는 에픽 음반사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하고, 데뷔 앨범인 Texas Flood를 내놓았다. 이 앨범은 그야말로 대박이 나, 앨범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인 Rude Mood는 그래미 어워드 상을 받을 정도로 평단의 호평과 대중들의 높은 인기를 동시에 달성하게 된다. 이후 라이브 실황 비디오인 Austin City Limits를 내놓는데 여기서 스티비의 절륜한 연주 실력을 감상할수 있다. 본인은 이 때 아직은 갑작스러운 성공에 익숙해지지 않았기에 죽을 정도로 떨렸던 공연이라고 회상했으나, 이 영상에 나오는 밴드의 연주력은 완벽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명연 그 자체였다.
계속해서 성공가도를 질주하고 있던 더블 트러블은 이후에 내놓은 두 번째 앨범 Couldn't Stand The Weather도 1집에 비견될 정도의 대단한 히트를 쳐서 단독 콘서트가 매진이 될 정도로 규모와 인지도가 커져버렸다. 연이어 Soul to Soul과 Live Alive 앨범을 내놓고, 존경하는 스티비 원더,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커버도 하고 자신의 영웅격인 앨버트 킹과 협연하는 영광스러운 시절을 살고 있는듯한 그였지만, 갑작스러운 성공에 적응을 하지 못한 건지 약물과 음주의 유혹에 지나치게 탐닉해 몸을 망치고 말고, 심지어 이게 점점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 응급실에 실려가기까지 한다. 그는 이 사건을 이를 계기로 중요한건 무엇보다 음악이란 걸 깨닫고 약물과 담배를 끊고 술도 절제하며 살게 된다.
재활센터에서 성공적으로 약물과 음주를 끊어내고 부활한 스티비는 더더욱 음악에 매진해 블루스 뿐만이 아닌 다른 장르에도 손을 대며 각종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한다. In Steps가 바로 그 앨범인데, 마지막 트랙인 Riviera Paradise는 그가 재즈에 조예도 깊으며, 관심 또한 가지고 있었다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준 증거로 취급된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가 생전에 내놓은 유작이 되고 만다.
이후 1990년 8월 27일, 친형 지미 본과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든 Family Style 앨범 녹음을 마치고 에릭 클랩튼 콘서트에 오프닝 액트로 나선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 다음날 헬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스키 슬로프를 미처 보지 못한 불의의 헬기 추락 사고로 안타깝게 명을 달리한다. 향년 35세. 음악적 행보가 기대되던 젊은 뮤지션에겐 너무나도 안타까운 최후였다.[2][3]
3. 음악성
3.1. 연주 스타일
스티비 레이 본의 대표곡 Pride And Joy (1982년 연주) | 1집의 대표곡 Texas Flood (1983년 연주) |
스티비 레이 본의 재즈 블루스곡 Riviera Paradise (1989년 연주) | 지미 헨드릭스의 Voodoo Child 커버 (1989년 연주) |
특히나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을 지향하는 이들을 좌절케 하는 인물이 바로 스티비 레이 본인데, 우선 노트가 매우 많아 비록 한 음 한 음 카피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스타일을 흉내내긴 굉장히 어려우며, 또 그 스타일을 유지하며 리듬감을 살리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 전반적인 연주의 난이도가 아주 높다. 웬만한 속주 기타리스트들도 Scuttle Buttin' 이나[5] Rude Mood는 어렵게 여기며, 또 스티비만의 리듬감을 살리는 것은 별도이기에 속주 기타리스트들 중에도 연주는 용케도 해내더라도 이 리듬감을 살리기는 매우 어려워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속주도 속주지만 그를 빛나게 했던건 그 속주 안에서 빛나는 환상적인 리듬감이었다. 특히 셔플 리듬과 커팅 주법의 대가였는데, 그의 커리어 초창기부터 함께 했던 베이시스트 토미 섀넌은 스티비 레이본은 블루스 기타리스트보다는 펑크(Funk)쪽에 가깝다고 평할 정도. 그만큼 그루브를 잡는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의 벤딩 주법이나 비브라토는 앨버트 킹에게 심히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벤딩할 때의 다이내믹과 비브라토 스타일이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라이브 연주를 보면 트레몰로 암을 잘 사용하는 편이며 매우 과격하게 아밍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밴딩의 상하 무브먼트가 와일드한 편인데, 이는 어떤 부분에서는 리치 블랙모어의 스타일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손가락 힘 또한 워낙 좋아서 굵은 현도 거리낌 없이 큰 움직임으로 비브라토를 할 수 있었는데, 혹자는 이런 와일드한 무브먼트의 비법이 이 손 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피킹도 상당히 강하게 하는 편인데, 리듬에 맞게 커팅을 하면서도 또렷함 또한 살리는, 굉장히 정확하고 철저한 연주를 하는 편이었다. 생전 인터뷰에서도 앨버트 킹과 협연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는데 실제 협연이 이루어졌으며, 그 영상 또한 후대에 남겨져 귀중한 블루스 기타의 사료로 여겨진다.
얼핏 다른 장르의 기타리스트인 지미 헨드릭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가 구사하는 코드 보이싱은 헨드릭스가 사용하는 그것들과 굉장히 유사한 편. 또 스티비의 헨드릭스 커버 중 Voodoo Child (Slight Return)과 Little Wing은 뛰어난 재해석과 퀄리티로 유명하다. 기타의 운용법도 헨드릭스와 비슷하게 했었는데, 지미 헨드릭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했던 넘버 원 기타의 브릿지를 왼손잡이용으로 교체하여 사용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또 쇼맨쉽과 무대 퍼포먼스가 헨드릭스와 비슷한 면이 매우 많다. 이러한 스티비의 연주 스타일은 후대로 내려가기도 하였다. 왼팔에 스티비 레이 본의 이니셜인 SRV를 타투로 새길 정도로 그를 영웅으로 삼는 존 메이어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3.2. 그의 전설적인 톤의 비결
스티비 레이 본의 앰프, 이펙터 세팅 |
4. 사용 장비
자세한 내용은 스티비 레이 본/사용 장비 문서 참고하십시오.5. 디스코그래피
자세한 내용은 스티비 레이 본/디스코그래피 문서 참고하십시오.6. 여담
- 키가 165cm로 작은 편이다. 하지만 록 음악계에는 그보다도 키가 작은 말콤/앵거스 영 형제[6], 프린스[7] 등이 있기도 하고, 스티비의 경우 체격이 다부진 편이고 손 또한 매우 크기 때문에 키가 작다는 것이 엄청나게 부각되지는 않는 편이다.
- 사후에 그를 기리기 위해 스티비 레이 본 상이 만들어졌다. 이 상은 약물, 알코올 의존증으로 고생하는 뮤지션들을 돕는 MusiCares MAP Fund라는 재단에서 만든 것으로, 중독에서 벗어나느라 고생하는 동료 뮤지션들을 돕기 위해 헌신한 뮤지션을 인증하는 상이다. 다만,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그렇다고 마약사범만 있지는 않으며, 앨리스 쿠퍼처럼 음주 문제만 있었던 사람들도 있다. 또한 이 상을 받은 뮤지션 명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같이 망가지기 전에도, 힘든 재활을 거친 후에도 명성을 떨친 후덜덜한 뮤지션들이다.
[1] 그 역시도 위대한 블루스 기타리스트이다.[2]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스티비가 탑승했던 헬기는 원래 에릭 클랩튼이 타려고 했던 것을 클랩튼이 양보한 것이다. 설령 그가 탑승했어도 방향이 달랐기에 사고가 날 가능성은 낮았겠지만, 스티비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에릭 클랩튼은 당시 기분이 어떠했을지...[3] 에릭 클랩튼의 자서전에 이 당시 상황을 회고하는 부분이 있는데, 처음에는 다음 행사에서 다시 다 같이 공연을 하려고 했음에도 스티비가 탄 헬리콥터가 도착하지 않아서 내심 의아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스티비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서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고, 그러는 동시에 그 소식을 들은 형 지미 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라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에릭 클랩튼은 스티비의 죽음을 추모하며 그에게 바칠 노래 또한 작사, 작곡하고 있었는데, 몇 달 안가서 4살 난 어린 아들 코너 클랩튼이 가정부가 청소하려고 열어둔 창문에서 추락하여 무려 53층에서 떨어져 죽는 끔찍한 비극을 겪고 만다. 이렇게 친우의 죽음과 어린 아들의 죽음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탄생한 노래가 바로 Tears in Heaven이다.[4] 리스너나 초보자뿐만 아니라, 블루스 기반이 아닌 하드 록,메탈, 심지어 잉베이 같은 클래식 기반에서 기타를 배운 속주 고수들조차 그의 스킬과 스타일을 배우고 영향받았다며 존경하는 후배들이 많다.[5] 이 곡을 폴 길버트가 자기 스타일에 맞춰 연주한 동영상이 있긴 하다.[6] 각각 160cm, 157cm이다.[7] 이쪽도 157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