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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01:48:52

이덕화

이덕화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KBS_로고.png 연기대상 대상
하희라
(1993)
이덕화
(1994)
나문희
(1995)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5px-Munhwa_Broadcasting_Company.svg.png 연기대상 대상
김수미
(1986)
이덕화
(1987)
김혜자
(1988)

역대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파일:daejongawards.png
남우주연상
제26회
(1987년)
제27회
(1989년)
제28회
(1990년)
이영하
(우리 지금 제네바로 간다)
이덕화
(추억의 이름으로)
신성일
(코리안 커넥션)
제29회
(1991년)
제30회
(1992년)
제31회
(1993년)
이영하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덕화
(개벽)
이덕화
(살어리랏다)
제30회
(1992년)
제31회
(1993년)
제32회
(1994년)
이덕화
(개벽)
이덕화
(살어리랏다)
안성기, 박중훈
(투캅스)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신성일
(1987)
이덕화
(1988)
안성기
(198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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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덕화(李德華)
출생 1952년 5월 8일 ([age(1952-05-08)]세)
서울특별시 성북구
본관 전주 이씨 회안대군파
신체 174cm, 65kg
학력 서울동신초등학교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경희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1]
데뷔 1972년[2] TBC 13기 공채 탤런트
가족 부친 이예춘, 배우자 김보옥(1952년 생),[3][4][5] 아들 이태희, 딸 이지현(1984년 생)
소속 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
취미 낚시, 골프 , 축구
종교 불교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1. 소개2. 오토바이 교통사고3. 탈모4. 정치 활동5. 예능 MC 이덕화6. 여담7. 출연작8. 수상 경력9. 선거 이력

1. 소개

부탁~해요![6][7]

대한민국배우. 1952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선대 영화배우 이예춘의 아들이다.[8] 자녀로 배우 이지현(1984년생)이 있다.

현재는 주로 높으신 분들을 맡는데 군 장성, 재벌 총수, 기업 CEO, 대기업 오너, 국가정보원장, 국회의원, 대통령(전두환) 등을 맡는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 시절 비교적 어린 나이로 동양방송 13기 공채에 합격해 연기계에 입문했으며 야성적인 이미지로 큰 인기를 모은 하이틴 스타였다. <진짜 진짜 잊지마> 등 "진짜 진짜" 시리즈에서 임예진과 콤비로 찍은 작품은 장안의 화제였다. 물론 24살의 나이에 고등학생으로 나왔으며 당시 20대는 여느 개발도상국의 20대가 그렇듯이 지금 20대보다 노안이라 좀 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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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임예진은 명실상부한 국민 여동생이었고, 상대역은 당연히 이덕화 아니면 전영록이었다. 영화 <진짜 진짜 미안해>, <진짜 진짜 잊지마>, <이런 마음 처음이야>, <이 다음에 우리는>, <첫 눈이 내릴 때>, <맨발의 청춘(1979)>, 드라마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등을 이덕화와 함께 찍었다. 전영록과는 <너무 너무 좋은 거야> 등을 함께 했는데 작품의 숫자로만 봐도 이덕화와 함께 한 작품이 많다. 참고로, 제목이 비슷한, <진짜 진짜 좋아해>는 이덕화, 전영록이 아닌 김현이란 이름의 남자배우와 함께 한 작품.

악역 연기가 독보적이다. 1980년대~1990년대 초반에는 악역을 전담하던 시절까지 있었다. 특히 사랑의 종말의 남현필 회장은 인간이 어디까지 막 나갈 수 있는지를 똑똑히 알려준 배역이다[9]. 이덕화는 여기서 전무후무한 최강의 악역을 시전했다. 악역 전문 배우 지망생들에게는 사랑의 종말이 최고의 추천작이다. 그리고 제5공화국흑화되는 육군 장성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다. 외모는 박용식이 갑이지만 행동은 이덕화가 갑이라는 얘기까지 있다. 악역이라면 이 사람, 이 사람, 이 사람이 그나마 맥을 이어가지만, 카리스마는 아직도 이덕화가 엄청나다.

그러나 이덕화의 커리어 내내 기본은 반항적이고 거칠지만 여성에겐 목숨걸고 사랑할 줄 아는 남성이었다. 청춘스타로서 혹은 주연급 남자배우로서 주로 활약했다

나이가 들면서 나이 지긋한 아버지 역이나 사장님, 회장님, 혹은 조선시대 왕, 역사 유명인물 등으로 많이 출연해서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며 거물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웃기면서 카리스마 있는 인물(대조영설인귀), (샐러리맨 초한지진시황)이라든가, 마냥 웃긴 인물(최근 드라마에서 그의 역할)을 맡기도 하면서 희극적인 방향으로 연기 변신을 꾀하고 있다. 물론 천추태후강감찬이나 근초고왕의 주몽 역처럼 고전적인 카리스마 역할도 여전하다.

준수한 외모로 패션 모델, 광고 모델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쌍방울트라이 광고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음악은 요사이나 큰 차이가 없다.

MC계에서도 대활약했으며 MBC의 <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거의 10년 동안 MC를 본 경력이 있다. 지금으로 치면 장동건유재석을 합쳐놓은 수준의 인물이었다. 당시 킨사이다 광고 #로얄디 # 광고를 보라!(...) 금성 캐논 카메라# 광고에서는 손도 안대고 플래시를 터트린다 오오.

연기에 집중하느라 예능계에선 한동안 볼 기회가 없었지만 2008년부터 다시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 녹슬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덕화가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 출연하면 시청률이 5~7% 정도 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3개의 고비가 있었다. 그것은 젊은 나이에 찾아온 탈모와 오토바이로 인한 교통 사고, 총선 출마였다.

2. 오토바이 교통사고

이렇게 청춘스타로 잘 나가다가 그만 1977년 4월 7일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현재의 한남동 타워호텔 앞 고가차도 부근에서 시내버스 범퍼와 부딪히는 큰 사고였다. 이 때 정말 크게 다쳐서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 각 일간지 사회면에 (기사가 실릴 정도였으며, 당대에도 재기하지 못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3년 넘게 투병해야 했는데 이덕화 본인 말로는 처음 10달 정도는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아침에 비명으로 깨서 저녁에 비명에 잠든다고 표현했을 정도. 그도 그럴것이 그 10개월 동안 이덕화는 툭하면 생명이 위독해져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덕화 때문에 긴급호출 되는 일이 빈번했다.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명이 위독할 때마다 이덕화는 '아, 이제 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어찌해서 버텨냈고 살아남아서 일반병실로 옮겨져 2년 정도 더 치료를 받았다. 당시 영화 상대역으로 자주 호흡을 맞추었던 임예진이 문병을 갔는데, 사고를 당한 몰골이 너무 처참한지라(사람이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온몸이 너덜너덜해져 있어서 마치 시트와 매트리스 사이에 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너무 무서워서 가까이 못 가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어야 했다고 술회할 정도.[10]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고였냐 하면 이덕화는 엉덩이살이 아예 없어져서 다른 부위의 살을 이어붙여 엉덩이를 새로 만들어야 했으며 1,500바늘이나 꿰매는 초대형 수술을 받았다.

이 당시 이덕화의 아버지인 원로배우 이예춘은 투병 중이었는데,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그만 병세가 급악화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덕화의 아내인 한국무용가 김보옥 씨의 말에 따르면 병실 앞에서 이예춘 옹이 선 채로 의식을 잃어 실금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최불암 등 MBC 소속 탤런트들이 이덕화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이덕화에게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이덕화 본인은 훗날 방송에서 여러 번 아버지를 언급하였는데, 위독해진 아버지를 자신(이덕화 본인도 부상이 심각하니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과 어머니 등 주변 사람들이 병원의 다른 층으로 침대를 밀며 이동시키는 중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덕화 본인의 손을 잡고 운명하였다고 한다. 자신이 사고를 당한 충격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한 것에 부채감을 느낀다고도 언급하였다. 이예춘은 죽기 직전까지도 아들을 생각했다고.. 묵념.

그리고 이 사고의 여파로 지체 3급 장애인이 되었다.[11] 사고 당시에 난 흉터가 워낙 흉악하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대중목욕탕을 갈 수 없다고 한다.

사고가 난 오토바이는 가수 겸 배우 전영록의 오토바이였다고 한다. 전영록의 부친 황해는 아들이 오토바이를 절대로 못 타게 막았고, 이덕화가 빌려 타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고.[12]

후에 이덕화는 방송에서 이 당시에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 김보옥이 3년간 힘들게 자신을 돌봤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기 만나지 말고 다른 사람 만나라고 하는 그를 정말 헌신적으로 돌본 모습에 감동받아 결혼했으며, 자기 재산 전부를 부인 명의로 해놨다고 한다. 이덕화 본인이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2019년 2월 26일 시작한 1인방송을 가장한 KBS2의 예능 덕화티비의 1화 에피소드의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3. 탈모

탈모 때문에 현재 그의 머리는 가발이다. 사고 후유증 때문에 머리가 타버려서 그랬다는 루머도 있으나, 그의 탈모는 사고 이전부터 있었다.[13] 탈모가 시작되고도 한참을 가발을 쓰지 않아서 다들 대머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컴플렉스가 있어서 쉬쉬하지만 전부 다 알고 있는(…) 그런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뿐. 그러나 본인이 가발회사 모델이 되어 크게 기사회생에 성공한 이후로는, 대놓고 대머리와 가발을 개그 소재로 쓰고 있다(…).[14][15] 아예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도 언급이 있는데 가발을 선택하는 메뉴얼에 운도형 가발, 덕화형 가발이 있다.

처음에는 탈모가 와도 가발을 쓰지 않았기에 고뇌하는 장면에서 남들은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데, 이덕화만 하늘을 쳐다보는 등 탈모를 숨기려 노력했다. 가발을 처음 착용한 때가 19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인데, 김수현 작가가 그 머리로 어떻게 주인공을 하느냐며 가발을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 촬영 중에 땅바닥에서 구르는 장면에서 가발이 180도로 돌아가서 다시 같은 장면을 서너번 찍었단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매니저의 가장 큰 업무가 가발을 가지고 다니면서 맞춰주는것이라는데 만에 하나 기자들 앞에서 대머리가 공개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90년대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개인적인 일로 멀리 있던 매니저기자보다 빨리 다가와서 황급히 환자머리에 가발을 씌워주었다 고 한다. 당시 자료 화면에도 침대 위에서 아파하는 이덕화의 머리 부분은 카메라 화면이 잘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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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탈모 상태가 엄청나 보이지만 실제로 사진만큼 벗겨진 것은 아닐 것이고 가발 착용을 위해 뒷머리와 윗머리 상당 부분을 삭발한 걸로 보인다. 자세히보면 M자형으로 옅게 머리를 민 흔적이 있다.

2002년 5월 1일 수원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한일 연예인 친선 축구대회에서 헤딩을 선보이다 카메라 앞에서 모자가 벗겨져 실제 머리가 공개 된 이후에는 대머리를 숨기는 컨셉에서 벗어났다. 위 사진이 바로 그 사진.

파일:/image/081/2005/04/15/SSI_20050414175545.jpg
그 후 2005년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주인공역으로 출연하게 되는데, '이덕화가 가발을 벗고 TV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전두환의 그 대머리... 사실은 여기서도 대머리 가발(부분가발)을 썼다. 어쨌든 연기는 대단했는데다, 이 땐 오히려 대머리라는 점이 장점이 되어 악역으로서의 굉장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해서, 이덕화의 전두환 연기는 그야말로 전설로 남았다.[16] 외모로는 박용식이 더 닮았지만 카리스마 담긴 연기에 본방 방영 이후는 일부에서 제기하던 미스캐스팅 이야기가 쑥 들어간 것은 덤.

하여간 설운도와 함께 연예계 대머리 투톱인듯(....)하다. 이덕화와 호형호제하는 개그맨 최병서는 나중에 그의 조카딸과 결혼했는데, 신혼여행을 갔다가 수영장에서 누가 아는 척을 했다. 최병서가 누구시냐고 묻자, "나야, 나! 설운도!"라고 대답했다. 그걸 본 새색시가 깔깔 웃으면서 "어머, 우리 아저씨보다 심해!"라고 말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2012년 연말시상식에는 반백 가발(...)을 쓰고 나왔다. 이 이후로도 이제 나이가 2019년 현재 60대 중후반이라 반백 가발을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서 쓰고 있는 듯. 1999년 가발회사 '하이모'의 광고를 찍으면서 총선실패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다시 화면에 나올 수 있게 되었는데, 이후 당당한 탈모인으로써 1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하이모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하이모 회사 측에는 아예 이덕화에 대응하는 가발 전담팀이 있으며, 드라마나 영화에 이덕화가 캐스팅되면 대본부터 연구해서 극중 캐릭터에 가장 잘 맞는 가발을 맞춤 제작한다고. 하이모의 인지도도 이덕화 덕에 어마어마하게 높아진 것은 덤.

또한 이덕화에게는 가발에 대한 슬픈 에피소드가 있다. 코미디언 이주일과는 살아생전에 나이를 초월해서 거의 절친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는데[17] 말년에 그만 이주일이 폐암 진단을 받고, 병세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서 그 달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라는 통보를 듣게 된다. 이 사실을 이주일 본인에게는 알릴 수 없었으나 가까운 주변인인 이덕화는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주일은 가발 모델로 활동하던 이덕화에게 맞춤 가발을 부탁했고, 이덕화는 이주일이 원하는 대로 가발을 맞춰줬다. 이주일은 이덕화가 맞춰온 가발을 써 보더니 매우 흐뭇해 하면서 "내가 완치되면 이 가발을 쓰고 미국을 다녀온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때 이덕화는 눈물이 핑 돌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주일이 2002 월드컵을 산소튜브 끼고 관람했던 게 바로 이 시기이며, 그로부터 2주일 뒤 이주일은 사망했다.

4. 정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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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당시 홍보물.

1995년 김진명 원작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대통령으로 나왔으나 흥행과 평에서 아주 쫄딱 망해서 타격을 받았던 이덕화는 오래가지않아 1996년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경기도 광명시 갑 선거구에 신한국당 후보로 나가 동교동계의 중진인 새정치국민회의 남궁진 후보와 붙어서 근소한 차로 졌다. 당시 남궁진 25,852표, 이덕화 24,405표로 불과 1,447표 차이였다. 그 이전 14대 총선에 구리시에서 출마했었던 이주일가오만 살리고 인기에만 연연하며 돌아다니는 이덕화에게 "너 그러다 진다"며 최대한 불쌍해 보이도록 도 마시지 말고 마른 입술에 다니라고 했는데 안 들었다고(...) 이때 안 그랬으면 정치인 이덕화로 나올 뻔 했을 듯.

가발 CF 이전에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고 워낙에 많은 돈을 부어서 거의 재기불능상태가 되었다.[18] 결국 이 때문에 연기활동 등을 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무인도에서 3년 동안 혼자 짱박혀 살았다. 그보다 더 먼저 있었던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 따르면 낚시하면서 물고기랑 이야기(...)하고 지냈다고 한다.

아직도 총선 출마는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회고한다고. 은둔 생활 중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몇 주년 특집 프로가 나갔다. MBC에서는 원조 MC인 이덕화를 초정하려고 했는데 무위로 돌아가고 대신에 낚시터에서 걸으면서 시청자들에게 인사하는 동영상으로 대체했다. tvN에서는 실패한 연예인 중 한 명에 꼽혔으며 멘트가 "대선은 연기로만 하면 될 껄 그랬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이덕화가 국회의원으로까지 출마한 이유는 이덕화의 절친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김영삼이였기 때문이였다. 김영삼의 장녀 김혜영은 이덕화와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어서 안면이 있었는데, 1992년 LA 폭동이 터지고나서 한인 교민의 피해가 막심했기에 이주일등과 함께 자발적으로 교민을 위한 위문공연차 LA를 방문했다 김혜영과 만났고, 이 인연으로 김영삼 대통령까지 만나 14대 대선 지원을 부탁받았다. 이덕화 자신은 단지 친구의 아버지가 잘 되라고 별 생각없이 지원유세에 참가했고 # 실제로 김영삼의 대선 후보 TV 광고의 단독 모델이 이덕화였다. 이덕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덕화에게 친근한 말투로 "너 왜 연락을 안하냐? 연락 좀 하고 살자."라고 말하고나서 생긴 인연. 그래서 그후 1996년 총선에 이덕화는 김영삼의 힘으로 공천을 받아 광명시 갑 선거구 국회의원에 도전하지만 낙선하고 이 이후로 정치에는 다시 뛰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자로 재기하고 다시 대선에서 이명박의 공식 지지에 뛰어들지만 공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19] 다만 가장 관적인 영화제라는 충무로국제영화제[20] 집행위원장을 맡은 적은 있으나 영화제가 막장이 되면서 이것도 그에게 별로 안 좋은 기억이 된 듯.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 등을 악역으로 묘사하는 데도 연기를 한 적이 있고, 이명박을 지지했음에도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책 일반에 부정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김영삼 때와 같이 정치성향은 권위주의 우파같은 확실한 스펙트럼이 아닌, 생활 보수 정도지만 친분에 따라 행동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많다.

슬하의 1남 1녀 가운데 딸 이지현은 배우로 활동한 바 있고(2016년 결혼) 아들은 현재 이덕화의 매니저를 맡고 있다. 1995년 당시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았고, 현재 이사장이다.

5. 예능 MC 이덕화

취미는 낚시다. 앞서 말했듯이 낙선 뒤에 무인도에 가서 낚시를 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로도 알 수 있다. 또한, 낚시 이야기 하나로 1시간 짜리 예능 프로그램을 꽉 채울 수 있는 괴인이다. 게다가 전부 뒤로 자지러질 수준으로 재미있는데 지금까지 한 방송에서 똑같은 소재의 낚시 얘기를 겹쳐서 한 적이 거의 없다.

한 예시로 무릎팍도사(2008년 8월 27일)에 출연했을 때는 방송 분량의 상당량을 그냥 낚시 이야기로 채웠다. 진행자인 강호동과 유세윤, 올밴이 다른 이야기도 넣어서 진행해야 되는데, 낚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MC들이 빵터지고 당황하며 중간에 끊지도 못하고 계속 이덕화의 얘기에 끌려다녔다. 실제 내용은 낚시 이야기라기보단, 낚시하러 갔다가 갑툭튀해서 생포한 다른 야생동물들 이야기라 월척은 커녕 물고기도 아닌(...) 이야기들이 많았다. 유명하고 인증샷도 있는 상어 낚시 말고도, 낚시하다 야생 오리, 갈매기, 노루, 거북이, 고슴도치를 우연히 생포했던 이야기를 무릎팍도사에서 털었다. 여기에 낚시 이야기에 맞는 장면을 합성하다가 포기했는지 제작진들이 '이젠 어떻게 합성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자막을 올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하늘도 낚시와 대머리를 소재로 하여 접근하자 금방 친해졌다고...

유행어는 그의 리즈시절에 "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MC시절 선보인
"부,타아악~ 해요~"
특히 이 멘트는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들을 소개하면서 곁들인 최고의 멘트였다. 당시 무대에서 최고의 카리스마로 인기를 얻었던 전영록이나 김완선을 소개하는 순서에서는 이 멘트가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아니, 이 멘트가 붙여지지 않으면 인기가수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멘트였다.

그리고 하이모 광고에서 나온[21]
~야~
모발~ 모발~
[22]타악이 키 포인트. "해요~"는 말미에 살짝 붙이듯 하면 된다. 최대한 느끼하고 목소리를 최대한 깔면서 허스키하게 해야한다.[23] 이 느끼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붙어서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을 때도 자신을 돕던 행인이 "어? 이덕화 아니야?"라고 하자 "맞~아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사극활동이 가장 적절한 인물이 됐다. 언제부터인가 장군 역할을 자주 맡게 되었다.

1992년에 SBS 쇼 서울서울을 마지막으로 MC를 은퇴한 이후 2009년 KBS 연기대상의 MC를 맡은데 이어서 2010년 추석, SBS 추석특집으로 '추석특집 스토리쇼 부탁해요'를 했다. 이덕화쇼에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선보였던 마이크 뜯어먹기 같은 것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보조MC들로 신봉선, 아이유, 이홍기, 이수근, 주현미..

2011년 설날에는, 설날특집으로 MBC '아이돌 7080'을 호란과 진행한다고 한다. MBC 쇼프로 MC를 맡는 것은 거의 20년 만에 맡았다.

2011년 6월 MBC 위대한 탄생 후속으로 정규 프로그램인 댄싱 위드 더 스타의 진행을 맡았다. 파트너는 이소라(모델). MC를 그만둔지 20년이 지났지만, 20년만에 녹화방송이 아닌 생방송 진행을 잘 소화했다.

반응은 극과 극인 듯. 어떤 이는 그의 진행을 반기는 이도 있고, 신선하다는 평이 있지만, 촌스럽다는 평도 있다.

6. 여담

7. 출연작

굴곡이 좀 있다.

7.1. 영화

7.2. 드라마

7.2.1. MBC

7.2.2. KBS

7.2.3. SBS

7.2.4. tvN

7.2.5. JTBC


잘 보면 01~02년 윤원형 이래 03~04년 이의민 - 05년 전두환 - 06~07년 설인귀 - 09년 강감찬 - 10년 전우 사단장자이언트 황태섭 회장 - 11년 마이더스 김태성 - 12년 샐러리맨 초한지 진시황메이퀸 장도현 - 13년 야왕 백창학과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인조 테크를 밟으며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2010년 이후부터는 두개 이상 동시에 하고 있다.
그리고, 강감찬민회빈 강씨 항목을 참조하면 기이한 역사 개그를 펼칠 수 있다. 진짜...[42]

7.2.6. 기타

OCN 38사기동대 - 왕회장역(특별출연)

7.3. 예능

7.4. 진행자

7.5. CF

2017년 드라마 최고의 한방에서까지 본인 배역에 의해 패러디될 정도.

8. 수상 경력

9. 선거 이력

연도 선거명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락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광명 갑) 신한국당 24,405(33.3%) 낙선(2위)

[1] 성우배우장광과는 대학 동기. 이 때 장광과 같이 다른 학교 무용과 여학생들과의 집단 미팅을 주선했다고 한다.[2] 2015년 인터뷰에서 본인이 정정을 요청했다.[3] 무용가. 배우 김진규부인 김보애의 동생. 따라서 김진규와는 동서-형님간의 사이지만 둘의 나이차이는 무려 29세로 김진규가 이덕화의 아버지 뻘이다(...).[4] KBS 공채 1기 출신이다[5]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알고 지낸 소꿉친구다. 결혼생활은 30년이지만, 알고 지낸 건 무려 50년이라고 한다.[6] 80년대 최대의 인기를 누렸던 '쇼 토요 2000'의 MC를 맡으면서 그야말로 최고의 진행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당시 인기가수로 이름을 날리던 '전영록', '김완선'과 같은 스타들을 소개할때 냈던 이 멘트는 그야말로 명MC의 표본을 보여주는 최고의 멘트였다.[7] 이 멘트를 만든 사람은 이덕화가 아니라 조카사위인 최병서다.[8] 참고로 대를 이어 배우로 활동한 사람들은 전영록, 독고영재, 박준규, 허준호, 하정우가 대표적 케이스.[9] 그리고 이때 이덕화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원미경 역시 최고의 악녀역으로 맹위를 떨쳤다.[10] 덕화티비 1화 참조(2019.2.26 방영분)[11] 본인이 장애가 있음에도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식 석상에서 상대 후보였던 김대중과 정주영을 장애인에 빗대 비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이로 인해 비판받았지만 본인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12] 사실 이덕화는 당대 기아(기아-혼다)에서 판매하던 오토바이 광고 모델도 하는등 오토바이를 매우 좋아하였다.[13] 80년대 초반에 찍었던 킨사이다 광고들을 보면 이미 탈모증세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14] 힐링캠프에 나온 바에 의하면, 처음에는 가발 CF가 들어온 것은 그가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나서 일이 뚝 끊긴 뒤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꾹꾹 눌러참으면서 거절한 뒤 부인과 자신의 심경을 위로받고자 상담했으나 부인 왈. 그게 어때서 그래?!?! 이라고 한심하다는듯이 일갈(...). 그래서 하게 된 CF 덕분에 이후 재기에 성공하였으며, 16년 째 같은 회사 모델을 하고 있다. 참고로 이쯤되니 가발회사에서 이덕화를 반쯤 명예 이사급(...)으로 챙겨준다는 농담이 있다. 실제로 자기가 어떤 배역을 하게 되면 아예 그 회사에서 TF팀을 짜서 그 배역에 어울릴 가발을 만들어 보낸다고.[15] 따지고보면 가발회사와 상부상조하게 되고나서 이덕화 본인도 배우로써도 상당히 이득인데 배역에 어울릴 헤어스타일을 미리 준비만 해뒀다면 즉석에서 교체가 가능하고 흐트러지거나 손상의 걱정도 다른 배우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한다.[16] 정작 전두환 역의 아랫사람들중 두 명이 유명한 가발인이다. 허화평역의 이진우, 이학봉역의 이재용. 두 사람은 정상적으로 가발을 쓰고 연기.[17] 이 술꾼 멤버가 이덕화, 이주일, 조용필, 최병서[18] 지금은 득표율 15% 이상이면 법정선거비용의 전액, 10% 이상이면 반액을 돌려주지만, 이때는 이 환급 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었다.[19] 하지만 이 때문인지 아들이 이명박 대통령 임기 기간동안 청와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대졸 첫직장이 9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청와대라니...[20] 이 영화제는 묻혀졌다(...) 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영화제치곤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만 준다면 된다고?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 바르셀로나 항목에 나오는 바르셀로나 국제영화제를 참조할 것. 그리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관이나 정치인이 주도하려다가 말아먹을뻔 한 바 있다.[21] 광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탈모의 신성(?) 배우 이진우가 가발이 얼마나 좋은지 만지자 (또는 잡아당기는) 그에 반응하면서 친 대사다.[22] 최대한 짧게 발음한다.[23] 일부에서는 "부탁해여~"라고도 한다.[24] 드라마 수상한 파트너에서 함께 일한 배우 지창욱의 말에 따르면 이덕화가 촬영장에서 낚시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25] 가 만광이라고 한다
파일:이덕화.full.jpg
[26] 종류에 상관 없이 낚시란 낚시는 다 좋아한다. 차이점이라면 마츠카타가 매년 남태평양 한 가운데로 어선 타고 가서 첨단장비를 동원한 참치 낚시 기록을 갱신하는 등 좀 더 스케일이 크다는 점이다.[27] 실제로 마츠카타는 여성편력과 별개로 화끈한 큰형님 스타일에다 씀씀이가 크고 배포가 넓어서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던 선배였다. 이건 이덕화에 대한 후배 연예인들의 평가도 거의 일치한다.[28] 일례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국민여동생 임예진과 작품을 함께 하며 서로 호감을 갖기도 했지만, 이 씨가 감정을 절제한 덕분에 관계가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29] 남궁연이 쓴 표현. 물론 신해철을 두고 한 말이지만...[30] 물론 최수종이 형님이라고 부르며 예를 갖춘다.[31] 하희라가 임신했을 때, 지인들을 동원해 월척 붕어를 잡아다 약으로 달여 줬을 정도.[32] 하희라가 여주인공으로 나온 MBC 드라마 <까치 며느리>의 연출자였던 정문수 전 MBC 드라마국 제작위원(2005년 별세)은 이덕화의 첫 MBC 드라마 출연작인 <포옹> 담당 연출자였다.[33] 그런데 정작 딸을 부를때는 그냥 이름 부르거나 지지배라고 부른다고 한다.[34] 오로라 블랙 펄 색상에 9인승 노블레스 트림[35] 황당하게도 이 장면의 목소리는 최병서의 성대모사가 쓰였다고 한다. 대부분 눈치채는 사람이 없이 자연스러웠다고(...) 그 사연은 최병서 항목에 나온다.[36] 당시 김수현 각본으로 방송. 가난한 집 두 형제가 처절한 노력끝에 모두 재벌 회장이 된다는 고도성장기를 배경으로 한 성공스토리. 형은 고 남성훈, 동생이 이덕화로 당시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6년 SBS에서 역시 김수현 각본으로 리메이크. 이때는 이덕화 역할을 이훈이 했는데, 원작에 비해 카리스마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37] 40대 초반(당시 만 42세)의 역대 가장 젊은 한명회다. (참고로 계유정난 당시의 한명회는 서른 아홉이었다.)[38] 음? 할 수 있는데 소서노역의 정애리백제 건국을 다루는 프롤로그에서 함께 출연했다.[39] 이덕화 曰: 본인이 인정한 실패작은 이것뿐이다.[40] 이 작품 이후 한동안 SBS에서 떠나있기도 했다.[41] KBS 2TV 한명회 이후 총선에 따른 공백기 때문에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던 이덕화의 안방극장 복귀작[42] 참고로 현재 강감찬 묘는 실전되었는데 그 이유가 18대손 민회빈 강씨가 인조에 의해 죽음을 맞았고 그 형제들도 수난을 당했기 때문에 강빈의 일가들이 멸문지화를 모면하기 위해 성을 바꾸거나 조상의 묘에 성묘도 안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 것이다.(...)[43] 유튜브 채널을 새롭게 만든만큼 1인 방송에 적응하는 내용[44] 그리고 이대사는 2017년 7월 13일에 원스토어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벨로나스:전장의 여신의 서황 입수대사로도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