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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6:42:57

교인 수평이동

1. 개요2. 원인3. 현황4. 논점
4.1. 교회 선택 문제4.2. 교회의 입장
5. 해결과 노력6. 미자립교회의 방책7. 외부 시각
7.1. 통상7.2. 타 기독교 종파7.3. 불교
8. 여담9. 관련 영상10. 관련 문서

1. 개요

敎人 水平移動

개신교[1]에서 교회에 다니던 교인이 자의적으로교회로 출석교회를 옮기는 것. 쉽게 말해 연고지는 그대로 유지하며 다른 교회 다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먼 지역으로의 취업, 이직, 인사발령, 출장, 진학, 군복무 등 불가피한 이유로 옮기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

아무리 전도해도 다른 교회에서 유입된 것일 뿐 교세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교계에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2. 원인

인구 구조와 신규 목사 유입 환경상으로도 교인 수평이동이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에서 목사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고 교회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대한민국개신교 교회는 차고 넘치며, 목사들 역시 차고 넘친다.[2] 200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교회의 성장은 둔화되었고, 이미 교회 다닐 사람은 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골라 다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그런 반면 포교 대상인 무종교인들은 저출산으로 인구가 정체되어 더 이상 늘지 않는다. 그런데다 전체 인구에서 개신교 신자 비율이 줄어들기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목사들끼리 피터지는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교회 하나가 커지려면 신자들이 들어와야 하는데, 어지간히 신자가 될 사람들은 이미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새로운 교회 한 곳이 커지려면 이사가듯이 기존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이동해야 한다.

교인수평이동은 단지 사회 내 개신교 신자 숫자가 많다고 일어나는 건 아니다. 교인 수평이동은 한국과 미국처럼 1. 특정 개신교 교단이 국교회나 국민교회 등의 지위를 누리지 않으며[3] 2. 공권력과 교계가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국가[4]의 개신교에서 발생한다. 즉 교인 수평이동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영국처럼 특정 개신교 교단을 국교회(혹은 국민교회)로 지정하거나, 독일처럼 공권력과 교계의 매우 끈끈한 협력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한국이 개신교 국가도 아니거니와 당사자인 개신교 신자들의 정서도 미국식 정교분리에 매우 가깝기에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3. 현황

교회 간 본격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원인 문단에서 다룬 대로 신규 신자를 끌어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니 타 교회 교인을 빼오는 것이 만연화되어있다. 이는 자신의 신자를 늘리기 위해 남의 교회를 방해하겠다는 것으로, 종교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대개 미자립교회에서 대형교회로의 교인 수평이동이 문제시되고 있다. 대부분 등록교인의 50% 이상이 수평이동이며, 몇몇 교회는 신자의 80% 이상이 수평이동 교인이다. 보통 개척한 지 2~3년된 교회의 現 출석교인 수가 10명이라면, 누적 등록교인 수는 보통 50명을 넘기는 수준임을 생각해 보자. 등록만 하고 출석하지 않는 미출석 교인 중 절반은 그냥 교회를 그만 다닌다고 치고, 나머지 절반은? 이러다 보니 미자립교회에서 잘 길러둔 신자들을 대형교회가 다 빼앗아간다고 하는 형편이다.

대형교회는 얄짤없이 수평이동 교인을 통한 확장이라는 평을 들을 수 밖에 없다. M 교회에서는 수평이동 교인의 숫자가 60%가 넘어가지만 설문조사에서 수평이동이라고 답한 사람은 20% 미만이었다. 일반적인 설문조사에서는 수평이동 교인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과거 등록했던 교회가 있습니까?' 라고 조사하면 대부분이 응답하는 형편으로, 이는 개신교 칼럼에서도 잘 다루어지고 있다.

자가용의 보급률이 높아지자 교인 수평이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좀 멀더라도 자기가 가고 싶은 교회를 입맛대로 골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미자립교회의 경우 상가에 세들어살기에 근처에 마땅히 주차할 공간조차 없으니, 주차장 공간이 넉넉한 중견교회나 대형교회가 유리한 환경이다.

대형교회 측에서는 사실상 교인 수평이동을 부추기는 듯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크고 화려한 본당 성전 건축, 노후화된 교회 건물 재건축[5], 셔틀버스 운행, 지교회 프랜차이즈 체인점 설립, 타 교회를 압도하는 내부 시설 구비, 타 교회 교인들까지 자주 초청해서 벌이는 평일 연합 집회, 부흥회, 강사 초빙, 연예인 또는 정치인 초빙[6], 기타 타 교회 교인들에게 광고하는 등의 행사, 기복신앙, 타 교회나 목사 비방, 자교회 담임 목사 우상화ㆍ신격화, 심지어는 타 교회 신자들 여러 명을 같이 데리고 오면 직분을 준다든지. 칭찬을 곁들여 이동 매개체가 되기를 적극 장려하는 행위 등등.

이러다 보니 열심히 노력하는 소형 교회에서 교세를 늘리려 해도 교인 유출이 지속되어 견디지 못한다. 개신교 특성상 아무리 연합체라도 자금을 따로 연합해서 관리하지는 않기 때문에 각 교회는 재정적인 면에선 개인 사업장과 비슷하기 때문에 목사 입장에서는 생계에 직결된 문제가 된다. 그러한 나머지 초심을 잃고 "더 이상은 당하고만 있지 말고, 우리도 하자!" 식으로 교회 건물 꾸미기, 기복신앙, 담임 목사 우상화ㆍ신격화 등 타락 테크를 타기도 한다. 즉, 소규모 교회 입장에서는 더더욱 신자 끌어모으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고 만다.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대우가 좋은 법이니, 특정 교회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메뚜기처럼 주기적으로 교회를 옮기며 대접받는 교인까지도 생겨날 형편이다.

4. 논점

4.1. 교회 선택 문제

일각에서는 특정 교회에 교인이 꼭 매여 있어야만 하냐는 주장을 한다. 교인이 교회에 등록하는 것이 무슨 노예 문서에 도장 찍는 것도 아닌데, 자기의 심경 변화로 교회를 바꾸는 것조차 비판의 대상이라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교인이 떠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시각.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서 교회를 선택하는 것도 충분히 개인의 자유이다. 가령 교회가 집과 너무 가까운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출근이나 등교, 시험기간 같은 걸로 새벽기도를 빼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사 문제로 신앙에 소홀히 하는 것은 신앙인으로 미흡하다고 할 순 있겠지만, 결국에 어떻게 믿는가는 신자의 자유이니 그런 목적에서 먼 교회를 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소형교회의 경우 신자 수가 적다 보니 개개인에 따른 부담이 크고[7], 이를 견디기 힘들어서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원래 대형교회에 다니다가 시간에 쫒겨서 급히 가까운 교회를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은 차분하고 경건한 스타일의 전례적인 예배[8]를 원하는데 자신이 다니던 교회가 열린 예배, 적극적인 예배를 강조한다거나 신사도 운동의 마수에 걸려 버린다면,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가진 교회로 옮길 필요성도 생기게 되며 또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 할 것이다.

개신교의 경우 그 특성상 사이비가 발생하기 쉬우며, 이는 많은 신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기가 처음 등록했던 교회가 사이비화, 이단화의 막장 테크를 밟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불안이 들었을 때 대형교회를 상대적으로 신뢰하게 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식의 사고가 합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큰 교회에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9]

크고 화려한 건물이나 시설이 마음에 들었건, 집회나 행사가 마음에 들었건, 셔틀버스가 마음에 들었건, 심지어 교회 옮기면 밥 사주니까 그걸 얻어 먹으러 다니는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교회에 다니는 것은 해당 신자의 정당한 권리이고, 이 권리는 아무도 제약하거나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출석 교회를 옮기는 행동이 강요나 억압, 기만 등의 부당한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다는 것이다. 타 교회나 목사를 헐뜯거나 교인 빼오기를 직접적으로 장려하는 행태 같은 경우는 종교에 관련된 경우가 아니라도 도덕적으로, 심하면 법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행태이니 논외로 하고 크고 화려한 시설이나 다양한 행사, 강사나 연예인 초청, 셔틀버스 운행 같은 행위들은 결국 교인들의 종교적 만족감과 편리함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행사일 텐데, 교회가 교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교인들이 기왕이면 좀 더 큰 만족과 편리함을 주는 교회에 다니고 싶어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신자가 취업, 직장이나 학교 등의 문제로 연고지를 어쩔 수 없이 바꾸는 경우는 불가항력적으로 교인 수평이동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서울로 인사발령이 나기라도 하면 기존 교회에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문제는 교단 측에서 가톨릭에서처럼 타 지역의 동일 교단 회당에서 예배를 볼 수 있게 하는 식으로 해결을 해야지, 개인에게 먼 거리를 부담하라고 할 수는 없다.

굳이 이 점을 짚어봐야 하는 이유는 '교인 빼가기' 라는 개념 자체가 어떤 면에서 보면 교인이 특정 교회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착각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가 자주 받는 비판 중 하나가 지나친 폐쇄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막대한 시간을 소모하면서까지 굳이 다니던 교회에 계속 다니려고 하는 것이, 또는 자신의 상황에 따라 교회를 옮기는 것을 '교인으로서' 좋지 못한 행위라고 보는 것이 그러한 폐쇄성의 한 측면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양적 팽창을 위한 대형교회의 패권주의적 행태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교인의 교회 이동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석 교회를 바꾸는 행위를 좋지 않게 보고, 심하면 일종의 배신행위로까지 간주하고 매도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교인을 인격적 주체가 아니라 교회에 종속된 도구적 객체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보기 어렵다.

4.2. 교회의 입장

이렇듯 본인이 이동하는 것은 뭐라고 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교인 수평이동을 부추기는 행동, 가령 멀쩡히 교회 다니는 사람 꼬드겨서 자기네 교회로 데려가려는 사람이나 그걸 시키는 교회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거기에 화려한 건축이나 연예인 초빙, 각종 여흥 및 행사는 도덕적 문제는 없는[10] 종교의 컨텐츠(?)이기는 하나, 종교 시설이라는 교회가 이러한 세속적인 옵션을 제공한다는 것은 신앙심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타 교회, 타 종파 헐뜯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러한 것들도 성경에서 강하게 비판하여 금하는 내용으로 오직 '성경과 믿음'으로를 앞세우는 하는 개신교로서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한편 신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교회의 행태 역시 도덕적으로 크게 낫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순수한 신앙의 측면에서 따진다면 위험한 사이비 교회가 아닌 한 어떤 교회에 다니건 스스로의 신앙에 충실하기만 하면 상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굳이 특정한 교회로 다니라고 신자들을 유인하는 행위가 종교적으로 그릇된 행동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다. 다만, '지금 다니던 교회를 떠나서 새로운 교회로 오라'는 것이든, '새로운 교회로 가지 말고 지금 다니는 교회에 있으라'는 것이든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굳이 다른 교회 말고 특정한 교회에 다니라고 신자들을 유도하는 행태라는 점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한국의 개신교나 교회 지도자들이 과도한 양적 추구[11]를 지향하며 같은 종파끼리, 심지어는 같은 교회 내부에서도 파벌이 나누어져서 교회가 찢어지는 모습은 공통적으로 비판받을 만하다. 다만 현실적으로 대형교회 쪽으로의 쏠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는 소형교회에서 저항하는 것까지 비판하는 것은 다소 무리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5. 해결과 노력

교계 내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대형교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김동호 목사가 시무하고 있던[12] 높은뜻숭의교회는 교인 수가 5천명이 되자 2009년 아예 교회를 1,000명 규모의 교회 4개[13]로 쪼개버렸다.[14] 김동호 목사 본인은 어느 한 곳의 담임목사를 맡지 않고[15] 4개의 교회를 순회하면서 설교하다 완전히 은퇴했다.

분당우리교회의 이찬수 목사도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분당우리교회는 아예 교칙 상 교인 수평이동을 금지했다. 즉 과거에 다니던 교회가 있으면 절대로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다. 분당우리교회 교인과 결혼했거나, 교회를 처음 다니는 새 신자와 함께 등록하는 경우, 등록(시도)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등록을 받아준다. 그런데 교회에 등록하지 않은 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예배에 참석하는 것까지 강제로 막을 수는 없는지라, 실제로 이찬수 목사의 이러한 마인드에 반한 타 교회 신자들이 등록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는 경우가 매우 많아서[16], 매주 교회 출석 인원을 보면 등록교인보다 예배인원이 더 많다.

6. 미자립교회의 방책

미자립교회를 한 곳에 너무 많이 세우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 아무리 전도를 해봤자 내가 전도한 교인들을 옆 교회 목사가 재전도를 해서 가져가는 일이 발생하며,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교인을 재전도로 되찾아오거나 만만한 다른 소형교회의 교인들을 전도로 빼오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를 꿈꾸고 있다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렇듯 교회 개척하려면 자본이 넉넉해야 한다. 이쯤되면 눈치챘겠지만, 신앙이라는 명목을 제하고 보면 세속의 자영업과 하등 차이가 없다. 대한민국 교회가 "주일에는 반드시 예배 드리러 나와야 한다"는 주일 성수에 그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교인 수 = 교회의 상권 개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18]

사회에서 같은 뜻을 따라 다수가 모인다는 것은, 그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그 영향력이 커진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주일예배와 수요예배, 각종 기도회, 부흥회등 여러 모임을 통해 사람을 모으면 그 자체로 목사는 세를 과시할 수 있고, 그게 곧 권력이 된다. 그렇다고 교인 등록이 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세를 유지하기 위해 목사도 필사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괜히 (주)예수 드립을 치는 게 아닌 부분이, 출석 교인 수가 곧 교회의 핵심 자산이다 보니 기업처럼 교회 M&A가 이루어지고, 분식회계도 난립하는 마당에 목사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교인들이 교인 수평이동에 분노하는 것. 특히 보수교단일수록 이것이 심한데, 교단 내부에서도 주일성수에 대한 소수의 비판이 존재하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한참 교세가 늘어나던 시점엔 새벽기도, 기도원 같은 곳에 교인들이 몰려들었지만, 젊은 세대 성도들에겐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새벽 기도회나 기도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목사들이 더 강하게 주일성수를 강조하는 것.

좀더 노골적인 상황은 바로, 교회 세습으로 대형교회 목사들이 후계자를 지목하면서 후계자 구도로 인해 분열이 발생하고, 봉합되지 않으면 결국 갈라져 나가 따로 교회를 차리고, 교인들도 후계자 지지 파벌이 갈리면서 자연스럽게 수평이동이 발생하는 것.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 세습 구도는 재벌들의 후계자 승계 전쟁 뺨치는 지독한 내부 전쟁이다.

7. 외부 시각

7.1. 통상

기본적으로 교인 수평이동은 어디까지나 개신교 내부에서만 심각하게 간주하는 문제이며, 대다수의 비개신교인들은 '애초에 교회가 다 똑같은 교회니까 아무데나 다니면 되지, 이 동네 교회 다니다가 저 동네 교회 다니는 게 무슨 문제냐'라는 이해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즉, 처음부터 이들에게는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을 아무 편의점에서 물건 사는 것 정도로 인식하는 정도다.

평소에 개신교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종교문제가 아니라 이권 문제라는 것을 여러 비판적인 기사를 통해 접했고 일반적으로 개신교의 확장주의에 거부감을 가지기 때문에 교인 수평이동에 대해서도 곱게 보여질 리가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교인 수평이동 문제는, 어떻게 건드리든 간에 무조건 손해밖에 안 나는 떡밥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7.2. 타 기독교 종파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신자들에게는 비개신교인들이 이 문제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교리상 당연하게 같은 교회라고 받아들여진다.[19] 중앙에서 통제하는 이러한 교파에서는, 일정 수 이상 신자들이 모여야만 새 본당을 설립하고[20], 이사를 가면 집 근처 다른 본당으로 교적을 옮김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 본당이 너무 커지면 아예 별도의 지교회를 새로 만들어 기존 본당의 일부 신자들을 그쪽으로 편입시켜 분리하기도 한다. 한 도시에서 어느 성당의 신자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늘어나면, 그 도시의 다른 지역[21]에 다른 성당을 하나 더 세운다. 일반 주거지의 경우 한 본당의 신자가 일정 이상으로 늘어나면, 동네 일부를 새 본당 관할지역으로 떼어낸다.[22] 이 교파들에 소속된 신자들에게는 해당 교구, 해당 관구좀 더 크게 말하자면 지구상의 모든 그 교파 교회들이 모두 큰 한 교회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리고 이들 주교제 교단에서 교구장 주교 그 자체로 하나의 지역교회(=교구)로 여겨지며, 산하의 동네 본당들은 교구장 주교를 대리하여 사목하는 하부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보편교회를 지향하는 교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예를 들어 캔터베리 대성당 또는 서울주교좌성당같이 큰 성당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성공회 교인이나, 중소도시의 작은 성당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성공회 교인이나, 전혀 다를 게 없는 똑같은 교인이다. 그래서 여행 중이거나 기타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때 세계 어디에 있든 그 지역의 성공회 성당을 찾아가서 거기서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교회도 이와 비슷한 시스템이다.

가톨릭성공회/정교회보다 더 엄격한 중앙집권형 체계를 갖추고 있다. 성공회/정교회는 각 관구/총대주교구로 나뉘어져서 치리를 하는데 비해, 가톨릭은 지구상의 모든 성당이 바티칸의 치리를 받는다.[23] 한국의 평범한 동네 성당들도 예외 없이 교황의 사진을 걸어둔다. 그리고 보통은 그 옆에 교구장 주교 사진을 걸어 놓는다. 본당 사목구 신부의 사진은 거는 곳도 있고 걸지 않는 곳도 있다.

그래서 가톨릭/정교회/성공회의 성당은 관할 교구의 주교좌성당[24]이 아닌 이상에는[25]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 수가 보통 100명 내외이다. 미사 참례 신자 수가 200~300명이 넘어가면 꽤 큰 성당이며,[26] 5백 명을 넘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보면 된다.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교회들이 조금만 커져도 500~1,000명을 훌쩍 넘어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이러한 종파들은 각 지역의 교회 조직을 묶어 통제하는 상위의 교단 조직이 있고, 모든 신자들은 일단 교구에 소속된 상태로 적당한 지역 교회조직[27]에 적을 두는 중앙집권적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구조 상 교인 수평이동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성당의 설립 자체도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교구에서 결정하여 신설한다.[28] 그러니 교회 유지 및 교세 확장의 목적으로 신자 수를 늘려야 하는 동기가 크게 없다.

오히려 옆 동네 성당의 신자들이 천재지변같은 피치못할 사정같은 게 아니라 아무런 이유 없이 자기 본당으로 몰려온다면, 그 성당에 무언가 심각한 내부 문제[29]가 생긴 상황으로 인식해서 자기 일처럼 오히려 이를 해결하려고 하지, 우리 성당의 신자가 늘었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헌금, 신자 현황, 미사 참례율 모두 교구에 보고되고 관리되며, 헌금이 들어온 것도 각 성당 맘대로 쓸 수 없다. 또한 신자 수를 자랑하면서 우리 성당이 이렇게 잘 나가고 있다고 외부에 알리는 자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신앙 자세로 생각한다.

게다가 각 성당에서는 신자들의 집 주소를 낱낱이 파악해두고 있으며, 너무 멀리서 성당을 다닐 경우[30], 되려 신부가 그 신자에게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으로 다닐 것을 권유한다. 애당초 교적상으로는 거주지 근처 성당에 이미 강제 배정되어 있으며, 거주지 근처에 다닌다고 해도 더 가까운 곳에 새로운 성당이 생긴다면 그쪽으로 재배치한다.

물론 천주교에서도 새 신자를 늘리는 일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관할 지역의 인구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늘릴 수 있는 새 신자 수도 한계가 있고, 입교 후 예비신자 교리 교육 기간도 반 년 정도로 길기 때문에 새 신자를 영입하려는 노력뿐 아니라 세례성사만 받은 냉담자의 출석률을 높이는 데 신경을 쓴다.

이에 비해 개신교의 교단들은 각 소속교회의 연합체로써 통제력과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교회의 설립에 대해서도 통제 권한이 거의 없어서, 활동 영역이 겹치는 교회가 자주 나타난다. 무엇보다 교단 자체가 모든 교인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목회자들의 모임에 가깝기 때문에, 교인 수평이동 문제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물론, 중앙집권적 교회조직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개혁주의 계통인 개신교의 특징이니 무조건 잘못이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분쟁이 자꾸 터져나오는 것이 결코 보기 좋은 일이 아닌 것 역시 사실이다.

7.3. 불교

천주교·개신교와 함께 한국의 또 다른 주요 종교인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개신교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 조계종의 경우 개신교의 교회처럼 신도 명단관리[31]를 철저하게 하지도 않기 때문에[32] 이런 문제가 존재할 수 없다. 집 근처의 사찰에 다니는 사람이 설악산 신흥사에 가건, 경남 합천군 해인사를 가건,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를 가건, 거기 가서 시주를 몇 푼을 하건, 사찰 측도 신도 본인도 신경쓰지 않는다.[33] 따라서 이쪽은 전국구 운영에 가깝다. 불교도 교파에 따라, 그리고 한 교파 내에서도 이권을 가지고 다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신교 교회들처럼 개교회들이 전반적으로 교인 수평이동이라는 문제를 놓고 서로 긴장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사실 불교는 에 가는 것이 필수적인 수양의 근본이라 여기지 않으므로, 절에 자주 안 가는 불자가 많다.

8. 여담

특이한 케이스로 개신교마다 교단(교파)이 다르듯이 다른 교단 소속의 교회로 옮겨가버리는 경우 또한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감리회성결교회, 침례회 등에서 장로회 소속 교회로 옮겨온다던지 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장로회에서도 소속 분파가 많듯이 예장통합이나 예장합동, 예장고신, 한국기장 등등의 분파가 다른 교회로 옮겨오는 경우도 있다.[34]
유럽에서 급격히 쇠락한 기독교미국에서는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고의 답은 미국 미주리 스프링필드에서 찾을 수 있다. … 한 세기 전 베버가 이곳을 지나면서 신교 종파의 다양성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오늘날 이곳을 지났다면 대경실색했을 것이다. 스프링필드에는 인구 약 1,000명당 교회가 하나씩 있다. 침례교회 122곳, 감리교회 36곳, 그리스도의 교회 25곳, 하나님의 교회 15곳을 포함해 총 400개의 기독교회가 있다. ...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교회가 신자를 모으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베버가 다녀간 과거에 미국의 침례교, 감리교, 그리고 다른 파들은 누가 진정으로 신을 공경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지역의 종교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스프링필드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교파 간이 아니라 개별 ‘교회’ 간이고, 자동차 판매상이나 패스트푸드 식당들 사이의 경쟁만큼이나 불꽃이 튄다. 신자들을 모으고 유지하기 위해 거의 상업적인 마인드를 지녀야 할 정도다. 그런 면에서 누가 보아도 명백한 승자는 바로 제임스 리버 하나님의 성회(James River Assembly) 교회다. 유럽인이 보기에 이 교회는 쇼핑몰이나 오피스 지구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실은 스프링필드에서 가장 큰 교회이자 미국을 통틀어 규모가 큰 교회 중 하나로 꼽힌다. ... 제임스 리버에 가보면 유럽과 미국 신교의 가장 큰 차이점을 뚜렷이 알 수 있다. 영국 국교회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처럼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이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반면 미국에서는 언제나 종교와 국가가 엄격하게 분리되어 다양한 신교 종파끼리 개방된 경쟁이 가능했다. 이것이야말로 유럽 내 종교의 기이한 죽음과 미국에서 계속되는 활기를 설명할 최고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사업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국가가 독점하면 효율이 떨어지는 법이다. 정부가 보조금을 넉넉히 지급하고 성직자 임명에 최소한으로 간섭하여 국가 종교의 존재가 종교적 참여를 증가시킨다 해도 말이다. 또 자유 종교 시장에서 종파 간 경쟁은 신을 섬기고 교회에 나가는 일을 더욱 즐겁게 만들 수 있다. 미국에서 종교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니얼 퍼거슨. "문명". 구세희 김정희 번역
그나마 개신교 신자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니얼 퍼거슨의 분석대로라면 유럽과 비교되는 한미 개신교의 활력은 이러한 자유 경쟁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미국 조차도 기독교인 자체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으며, 한국 대형교회의 롤모델이었던 로버트 H. 슐러 목사의 초대형 복음주의 교회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가 파산하는 등의 일이 늘어나고 있다.

9. 관련 영상


영상 촬영이 이루어진 주 장소는 광명시 소하동과 바로 옆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 금하마을 일대다. 즉, 행정구역만 다르지 사실상 한 동네. 또한 51초쯤에 교회 수와 비교하기 위해 나온 슈퍼, 편의점의 위치가 실제로는 대부분 잘못되어 있다.



10. 관련 문서


[1] 단, 교구제를 실시하는 성공회는 제외.[2] 2012년 기준 한국 개신교 교회의 수는 7만 5천여 곳으로 동년 편의점 수인 2만 5천여 곳보다 3배가 많다.[3] 반대 사례로는 영국과 북유럽이 있다.[4] 반대 사례로는 독일이 있다.[5] 다만 건물이 지어진 지 낡고 오래돼 재난안전위험시설로 분류된 경우일 수도 있으니 이는 반드시 교인 수평이동을 노리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6] 정치인 중에서는 엄청 거물 장로님이 이쪽에서 매우 유명하다.[7] 이른바 텃세오지랖질 그리고 교인들에 대한 봉사 명목의 노동 착취.[8] 루터교, 성공회, 경동교회 등[9] 단, 신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도 대형교회 측에서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기는 어렵다. 사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사이비로 변질될 위험은 대동소이하다.[10] 불교나 천주교도 종종 하는 일이다.[11] 교인의 수나 교회 건물의 크기 등이 클래스를 좌우하는 시각.[12] 왜 과거형이냐 하면 김동호 목사는 초창기부터 본인이 은퇴할 나이를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공표하다가, 그 때가 되자 지체없이 은퇴해버렸기 때문이다.[13] 높은뜻하늘/높은뜻광성/높은뜻정의/높은뜻푸른[14] 사실 예배 공간으로 사용하던 숭의여자대학교 강당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분립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15] 분립된 교회들이 상호 독립적이고 대등한 관계가 되길 원했고, 신도들이 김동호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로 쏠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16] 이렇게 등록 안 하고 교회 모임 안 하고 대예배만 슬쩍 드리고 나가는 현상은, "사회에서 사람 만나고 스트레스 받는 것도 지치는데 교회에서까지 겪을 것까진 없다"는 시험에 든 마인드의 일부 개신교인들이 "예배만은 빠지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양심으로 행하는 형태이기도 하다.[17] 애초에 선발 인원도 적고, 진급 상한선대령이다.[18] 코로나19 판데믹 당시 극단적인 보수우익 성향으로 문재인 정부와 대척점에 서있던 대형교회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영업시간 제한, 거리두기 등)에 순응하면서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오히려 중소교회들이 노골적으로 주일예배를 강행하면서 이차감염의 진원지가 되는 등의 병크를 터트린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대형교회들은 자본력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예배, 온라인헌금 시스템으로 손쉽게 전환해서 교세를 그대로 유지했지만 동네의 중소교회들은 대부분 이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대기업과 외국계가 주도하는 이커머스 시장은 폭발했지만, 오프라인의 소상공인들은 박살난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19] 성공회 신자라면, 다른 개신교 교단 교인들과 접촉이 많으니 잘 알기는 한다. 과거에 다니던 교회에서 이런 문제로 실망하고 고민한 끝에 성공회로 넘어온 신자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고.[20] 가톨릭에서는 일정 수 이상 신자가 모이지 않았으며 상주하는 주임신부가 없는 신앙 공동체를 공소라고 하여 따로 분류한다. 인근의 다른 본당 소속으로 간주하는데, 학교의 분교와 비슷한 형식.[21] 예를 들면 다른 부도심 또는 다른 인구 밀집 지역[22] 특히 서울 대치동 지역이 그런 식으로 천주교 본당 분할이 많이 이루어진 동네다.[23] 군대로 비유를 들자면, 대한성공회 교인들의 최고 상관은 성공회 한국관구장이경호 베드로 주교, 한국 정교회 교인들의 최고 상관은 정교회 한국대교구장암브로시오스 조성암 대주교인데 반해,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최고 상관은 천주교 로마교구장프란치스코 교황이다.[24] 한자를 그대로 풀어서 '주교가 앉아 있는 성당'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교좌'라고 불리는 주교가 앉는 의자가 있는 성당이라는 의미이다.[25] 우리가 알고 있는 큰 성당들은 주교좌성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이라든지, 성공회 서울교구 서울주교좌성당이라든지. 해외의 유명 성당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천주교의 경우 주교좌 근처에 살지 않는 한 주교좌 성당에 갈 일은 없으며, 지역 성당에 교적이 등록된 신자들은 혼인 미사장례 미사 같은 큰 일이 아니면 갈 일이 없다.[26] 정확한 기준이 있지는 않겠지만, 한 성당의 신자 규모가 이쯤 되면 주위에 다른 성당을 하나 더 세울 계획을 세운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본당 교적 인원 수가 5천 명을 넘어가면 새 본당 신설 계획을 잡아서 분당 헌금 등으로 새 본당 부지 매입비용 및 건설비용을 충당하기 시작한다.[27] 가톨릭, 성공회 - 천주교/성공회 ‘ㅇㅇ(지역명)교구’[28] 그나마 몇몇 깨어 있는 목회자들이 있는 개신교회들의 경우엔, 실제로 가톨릭이나 성공회와 비슷한 방식으로 치리하는 경우도 있다. 일정 인원이 되면 노회나 교회를 나눠버리거나, 지역 미자립교회로 "파송" 처리 하는 식으로 이적 시켜 버리기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사할 경우 일정 거리 권역이 아니면 교단 및 노회 협의 하에 거주지 인근 교회로 이적 처리해 버리는 아주 화끈한 교회도 있는데 이게 정상이다.[29] 그 본당 신부의 성추문이나 비리, 혹은 말 못할 내부 갈등 등.[30] 같은 서울이라도 집이 상계동인데 다니는 성당이 구로동 같은 경우.[31] 존재하는 경우도 있는데 'ㅇㅇ불사 시주 명단' 등 일시적인 목적의 기록이 대다수다.[32] 만에 하나 특정 신도가 제대로 신도 등록을 하려고 한다면 아예 종단 소속 신도가 되어버린다. 대한불교 조계종에 신도 등록을 할 경우 기본적으로는 신도 등록한 ㅇㅇ사 신도지만 불국사 신도도 되고, 해인사 신도도 되는 식이다.[33] 그래서 나무위키에 등재된 유명한 불교 신도들의 경우 조계종 소속 사찰에 다닐 경우 어느 절에 다니든 상관없이 대한불교 조계종까지만 적는다. 박지성 선수를 예로 든다면, 그가 주로 출석하는 법당과 그의 은사스님이 있는 법당이 모두 수원 용주사인데도 해당 내용이 프로필에 적혀있지 않다.[34] 주로 장로교 성도 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예장통합예장합동 간 이동이 많은 편이다. 다만 연고지가 바뀌는 등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찾았는데 그 교회가 교단이 달라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교단 소속 교회로 옮겨가버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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