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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23:37:34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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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大韓예수敎長老會(統合)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Tongh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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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13><colcolor=#ffffff> 표어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출애굽기 15:26, 이사야 53:4-5, 데살로니가전서 5:23)
약칭 예장통합
설립연도 1884년
1912년[1]
1960년[2]
소속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총회장 김의식 목사[3]
부총회장 김영걸 목사[4], 윤택진 장로
사무총장 김보현 목사
교인 수 2,302,682명(국민일보, 2022년#)
교단 기관지 한국기독공보[5]
교단 출판사 한국장로교출판사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3길 29 (연지동)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Vimeo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2.1. 개요: 통합 적통론2.2. 구한말 선교 ~ 일제강점기2.3. 광복 이후
2.3.1. 고신의 이탈2.3.2. 기장의 분립2.3.3. 합동과 결별
3. 조직
3.1. 역대 총회3.2. 노회 목록3.3. 소속 교회3.4. 전국 분포3.5. 산하 학교3.6. 이사, 교목 파송 대학교3.7. 소속 교회가 설립한 학교
4. 특징5. 이야깃거리
5.1. 가톨릭에 대한 입장
6. 사건 사고
6.1. 2016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이단 사면 취소 사태6.2. 광주 안디옥교회 방역 조치 비협조6.3. 장로회신학대학교 무지개기 사건6.4. 명성교회 세습관련 논란
7. 파생 교단8. 분열된 교단
8.1. 최종 분열 당시의 교단들
9. 국내 타교단과의 관계10. 해외 동역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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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은 1884년 설립된 조선장로교공의회를 모태로 하는 대한민국장로회 양대 교단 중 하나이자 한국 개신교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가장 교세가 큰 교단이기도 하다.[6]

예장통합은 합동·고신 그리고 기장과 같은 '조선장로교'로서의 뿌리를 가지며, 조선장로교는 감리회와 함께 구한말 한국에 최초로 선교된 개신교이다. 조선장로교공의회에서 각 교단이 분리된 과정은 대한민국의 장로회 교단 분열사 참조.

약칭은 예장통합이며 일반적으로 (신학적) 중도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중도 성향이라는 것은 기계적, 산술적 의미의 중립이 아니라 같은 교단 내에서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포용적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7]

2. 역사

2.1. 개요: 통합 적통론

본 섹션의 역사는 예장통합을 기준점에 놓고 서술한다. 즉 예장통합을 중심에 놓고 한국 장로회 분열사를 서술하는 것이다. 예장통합 교단사의 요지는, 언더우드의 선교 이후 예장통합이 적통을 이어가고, 기장과 합동 등이 이 적통에서 이탈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장통합의 교단사는 타 장로회 교단, 특히 예장합동에서는 동의하지 않는다.[8]

예장통합의 역사관은 개별교단의 입장을 차치하고도 에큐메니컬적인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선교된 교회, 그리고 세계 장로교/개신교의 일부로서 정체성을 가장 충실히 지키는 교단이 예장통합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9] 둘째,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구한말에서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장로회 유산을 대부분 예장통합이 관리하고 있다. 우선,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설립된 미션스쿨이나 기타 장로교 기관들이 대부분 예장통합 관리 하에 있다.[10] 또한 구한말 장로회 선교사 새뮤얼 모펫과 호러스 언더우드의 추모와 묘역관리도 예장통합이 한다.[11]

이와 같이 한반도 장로회 선교 역사의 유형적 무형적 상징을 대부분 예장통합이 관리하므로 통합을 장로교의 적통을 통합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 마지막으로, 예장통합은 국내 그리고 세계적으로 장로교 대표 교단으로서의 위상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장은 한국 국내 교계에서는 장로교의 대표격으로서 타 교단 및 가톨릭대화에 참여하고, 세계적으로도 장로교/개혁교회 연합체인 WCRC의 일원으로서 세계 장로교, 그리고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12]과 대화한다.

예장통합의 교단사 서술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특징은 1940년대 초중반에 했던 친일활동을 축소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애써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존재하는 역사를 없는 셈 치는 것 또한 올바르진 않다.

예장통합의 공식적인 입장은 당시 교단 지도부 차원에서 친일활동을 하였고, 그 교단지도부의 적통은 기장이 계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단 중립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예장통합이 주장하는 적통론과 당연히 상충한다.[13]

예장통합의 교단 유지재단이 합동측의 그것보다 먼저 세워졌고, 이 때문에 통합측 유지재단의 법적인 이름은 깔쌈하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유지재단’(1973년 설립허가)이지만 합동측 유지재단의 법적 이름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유지재단’(1982년 설립허가)이다. 다만 이 사실이 ‘통합측이 본류이고, 합동측은 일종의 분당세력이다’라는 명제를 뒷받침하지는 않는다.[14] 그럼에도 예장총회 자체는 법인격 없는 사단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보아야 하는데, (1) 예장통합-예장합동 분리 등 예장통합의 분열 당시 예장통합 측이 교인이나 개교회의 1/3 이상을 지켜낸 점[15], (2) 예장통합의 재산 상당수를 예장합동 등 타 교단이 결국 가져오지 못한 점 등에 비추어보면 민법의 법리 상으로도 예장통합 측이 적통이 맞다.

2.2. 구한말 선교 ~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장로교는 188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에게서 시작되었다. 선교 이후 조선인 자립교단으로 조선장로교공의회가 설립되었다. 공의회는 독노회를 조직하였고, 이후 1912년목사 96명과 장로 125명이 총대로 모여 첫 총회를 치르었다.

이후 빠르게 교세를 확장하여 1930년대 무렵에는 조선 내 최대인원 종파가 되었는데, 일본이 종교를 탄압하고 노골적으로 천황 숭배를 강요하기 시작한 때도 그 즈음이었다. 국가신토와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종교인, 비종교인 가리지 않고 조선인들은 모조리 신사 참배를 강요받았는데,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일본과 결탁하여 이런 행위에 적극 찬동했다. 신도들에게 사실상 '우상숭배'나 다름없는 천황숭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면 교단에서 축출하기까지 했다.

2.3. 광복 이후

2.3.1. 고신의 이탈

1949년 총회 명칭을 현재의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변경하였다. 교단 성립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교단에서 축출 및 투옥된 목회자들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독일 개신교가 고백교회를 중심으로 나치 협력 목회자들과의 대통합을 실시하고 하나의 교회로 다시 태어난 일에 비견할 만하다.

친일행위를 반대하거나 거부하다가 강제탈퇴를 당한 신도들은 '우상숭배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다 정치와 결탁한 지도부에게 쫓겨났기에, 이들에게 친일 문제를 공개적으로 회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친일행위와 천황숭배라는 부끄러운 역사로 얼룩진 당시 장로회 지도부는 반성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다 장로들과 목사들 손으로 대표로 선출된 교단지도부를 저항파 목사들이 불신임하는 상황이 초래되었고, 급기야 1951년 총회에서 이 문제로 갈등이 터져나왔다.

결국 지도부는 강제 탈퇴 신도들과 합의를 거부하고 이들을 모조리 제명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최종적으로 1952년 제 37회 총회에서 고려신학교와 그 관계자(경남노회)는 총회와 하등 관련이 없는 집단이라는 언명과 엄주신 장로의 고별선언을 계기로 고신파와 기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완전히 결별했다.

예장통합은 고신과 교단 차원으로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예장통합과 예장합동 계통의 교회들은 지금도 한국 정치권과 유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고신은 자신의 정통성을 국가신토를 거부하다 친일 장로회 지도부에게 강제로 탈퇴당한 신도들에게서 찾기 때문에 친일 정치권 세력과 결탁하는 일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한편 교단 지도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났던 독일 개신교에 비한다면, 당시 교단 지도부가 회개 없이 신사참배 결의 취소로 책임을 피하려 했고 이후 고려신학교(고신)를 폐쇄하는 등의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때 유일한 신학교 위치이던 조선신학교의 김재준이 지도부를 옹호하며 출옥한 성도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그들의 감옥 투쟁이 성령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집권 욕심이었다는 글을 투고했다. 그후 이 당시 지도부는 회개운동을 제안한 박형룡과도 충돌했고, 조선신학교의 고등비평학을 거부하던 한경직도 미련 없이 조선신학교를 떠나 새로운 총회신학교 설립지침에 따르면서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결국 그들은 북한의 공산화 이후 남쪽으로 내려온 교회들을 중심으로 하는 박형룡의 쇄신파와 충돌하여 상당수가 한국기독교장로회에 합류했다. 출옥성도 중 온건했던 혁신복구파조차 북한 정권의 탄압으로 내려와 합류했으나 존중받지 못한 점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16]

일제의 패망 이후 장로회 역시 군사분계선이던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리되었고, 북한에 있던 장로회 소속 교회들은 곧바로 조선로동당의 어용단체인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의 등장으로 탄압을 받았다.
결국 조선그리스도인련맹에 가입하지 않는 교역자는 노회에서 제명한다는 지시에 따라 의산노회가 이기선 목사를 제명했다. 이로 인해 조선그리스도인련맹에 가입하지 않고 이북5도연합노회를 이탈한 교회들이 혁신복구파의 조선예수교장로회독노회를 만들었다. 지속되는 탄압에 밀린 독노회와 상당수의 이북5도연합회 장로교회들이 남측으로 내려왔다. 북측에 남은 장로교회는 극심한 탄압을 받아 지하교회가 되거나 조선그리스도인련맹에 가입 후 변질되었고, 이기선 목사는 북한에서 한국전쟁순교했다.

2.3.2. 기장의 분립

1953년, 성서에 대한 고등비평을 수용할지를 둘러싼 문제로 기장 측의 김재준 목사가 총회에서 파문당했다. 이에 따라 김재준 목사[17]를 따르는 목회자 일부가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분립하여 나갔다.

이 사건으로 구한말 한반도에 선교사를 파견하였던 해외의 장로교회 교단 중 캐나다 연합교회[18]가 예수교장로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19]

21세기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예장통합 신학교 커리큘럼에서도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를 수용하므로 이때의 갈등과 분열은 오늘날에 회복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기장과 통합 사이에는 현재 단발적 대화가 이루어지고, NCCK나 에큐메니컬 운동 등에서 협력한다. 2016년에는 김재준 목사의 파면을 취소하는 교단결의가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장 통합 입장에서 신학적 화해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장의 신학은 민중신학의 형성, 해방신학이나 북한관 등의 문제로 온건한 장로교 신학에서부터 멀어진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20]

2.3.3. 합동과 결별

1960년 연동교회에 모인 찬성파, 이른바 연동측은 대한기독교장로회 일부 온건파를 흡수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을, 승동교회에 모인 반대파, 이른바 승동측은 1951년 독립해 나갔던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단과 합동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을 결성, 분립하였다.

합동측과 분열 당시 평안북도 출신들이 주로 통합 측에 가담하였다. 1967년에는 성결교회에서 신사참배에 반대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던 목사들이 1952년에 설립한 임마누엘 예수교 소속의 대다수 교회들을 흡수하였다.[21] 자세한 내용은 한국 장로회 분열사 문서 참고.

3. 조직

2021년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통계
<rowcolor=#ffffff> 구분 내용
노회 69개
교회 9,421개
교역자 목사 21,423명
전도사 2,420명
교육전도사 3,288명
총계 27,131명
교인 장로 33,626명
안수집사 80,273명
권사 190,590명
서리집사 561,899명
세례교인 1,617,335명
전체교인 2,358,914명[22]
제106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조직
자문 위원회
총회장 임원회 사무총장
상임부
국내선교부 군경교정선거부 세계선교부 교육자원부
신학교육부 사회봉사부 농어촌선교부 정치부
규칙부 재정부 재판국
상임위원회
고시위원회 평신도위원회 훈련원운영위원회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
감사위원회 헌법위원회 이단·사이비 대책위원회
정기위원회
통계위원회 공천위원회 절차위원회 안내위원회
질서관리위원회 총대등록심사위원회 헌의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특별위원회
총회 5개 처
국내와군·특수선교처 해외·다문화선교처 교육·훈련처 도농·사회처
행정·재무처

3.1. 역대 총회

3.2. 노회 목록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노회 현황 (가나다순)
강원 노회 강원동 노회 경기 노회 경남 노회 경동 노회 경북 노회 경서 노회 경안 노회
광주 노회 광주동 노회 군산 노회 김제 노회 남원 노회 대구동 노회 대구동남 노회 대구서남 노회
대전 노회 대전서 노회 땅끝 노회[23] 목포 노회 부산 노회 부산남 노회 부산동 노회 부천 노회
서울 노회 서울강남 노회 서울강동 노회 서울강북 노회 서울강서 노회 서울관악 노회 서울남 노회 서울동 노회
서울동남 노회 서울동북 노회 서울북 노회 서울서 노회 서울서남 노회 서울서북 노회 순서 노회[24] 순천 노회
순천남 노회 안양 노회 여수 노회[25] 영등포 노회 영주 노회 용천 노회 울산 노회 익산 노회
인천 노회 인천동 노회 전남 노회 전북 노회 전북동 노회 전서 노회 전주 노회 제주 노회
진주 노회 진주남 노회 천안아산 노회 충남 노회 충북 노회 충주 노회 충청 노회 평남 노회
평북 노회 평양 노회 포항 노회 포항남 노회 함해 노회

3.3. 소속 교회

장로회/교단 목록 문서 참조

3.4. 전국 분포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수도권[26], 호남권, 경상북도 북부 내륙 지역[27]동해안 지역[28], 충청북도 남부[29], 제주 지역에 상대적으로 교세가 크며 대전을 제외한 충남권[30][31]강원도[32][33], 경상남도 동부 지역[34]은 상대적으로 교세가 약한 편이다.

3.5. 산하 학교

국내 개신교단 중에서 가장 미션스쿨이 많다. 그리고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를 모두 신학대학으로 승급시킨 유일한 교단이다. 게다가 통합 소속이 아니더라도 평택대학교와 같은 다른 장로회 교단의 미션스쿨이나 부산외국어대학교, 아신대학교, 한동대학교 등 초교파 성향 미션스쿨의 설립과정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러나 미션스쿨을 많이 설립한 만큼 계명대학교, 예수대학교 등 미션스쿨 경영권 분쟁이나 교단 탈주[35] 같은 아픈 기억도 많아서 요즘은 시큰둥한 편이다. 서해대학도 폐교하기 전에 한일장신대학교와 통합을 시도하다가 안 되자 그냥 포기해버렸을 정도.

3.6. 이사, 교목 파송 대학교

3.7. 소속 교회가 설립한 학교

예장 통합 소속 교회에게 설립되었지만 예장 통합과 분리되어 있는 학교이다.

4. 특징

5. 이야깃거리

5.1. 가톨릭에 대한 입장

예장통합은 교회 일치 운동을 지지하므로, 가톨릭을 반드시 정죄하지는 말자는 입장을 갖고 있다. 2014년 제99회 총회에서 예장통합은 가톨릭에 대해 "이단적인 요소는 있으나 반사회적이라거나 반윤리적인 다른 이단집단과 같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장로회)와 다른 전통을 고수하는 교회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정리하자면, 예장합동, 침례회 등 비에큐메니컬 보수 교단과 다르게 가톨릭을 이단 내지 이단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하지는 않고, 가톨릭에 중도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다.

6. 사건 사고

예장통합의 사건 사고를 서술.

6.1. 2016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이단 사면 취소 사태

과거 이단으로 규정된 몇몇 기독교계 신흥종교 교단들을 2016년 통합 교단이 사면했다가 불과 며칠 만에 철회한 사건. 교단 내부의 신학적, 신앙적 스펙트럼이 넓은 상황에서 교단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취합하지 않은 상태로 성급하게 사면을 진행하는 바람에 발생한 사태로 교단 내부나 타 교단, 그리고 사면 대상 교파들로부터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6.2. 광주 안디옥교회[62] 방역 조치 비협조

교인들이 IM선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이 원인이 되어 코로나에 감염되었음에도 검사를 거부하며 의료진과 문재인 대통령이 교회를 죽이려고 한다고 남탓으로 돌리기만 해 논란이 일고 있다. # 특히 한 교인이 '나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어쩌라고'라는 자세로 자기 때문에 코로나가 퍼지든 말든 배째라는 태도로 버티고 있다. 이후 1월 29일 안디옥 관련 확진자가 30명이나 나와 광주광역시의 총 일일 확진자가 54명으로 늘어났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안디옥교회는 벌금형이 나왔음에도 대면예배를 강경하게 고집하였다. # 광주 안디옥교회 박영우 담임목사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탈락한 황교안미래통합당 대표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는 등 논란스러운 행보를 보인 바 있으며, 그 발언을 한 '국가비상긴급기도대성회 전국 목회자 세미나'에서는 WCC 반대 등 교단 총회에 반하는 주장이 넘쳐났다.#

6.3. 장로회신학대학교 무지개기 사건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학생들이 학교 공식 채플 시간에 소위 '무지개 깃발'을 몸에 두른 채 예배를 드려 논란이 되었다. 채플이 끝난 직후에는 무지개색 깃발까지 든 채 단체사진을 촬영해 SNS에 게시했다. 동성애자와 동성애 지지자는 신학대에 입학할 수 없다고 결의하였었고 또 헌법개정을 통해 동성애자가 교회 항존직과 임시직, 유급종사자가 될 수 없도록 하며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성명도 발표했던 102회 총회의 입장을 무시하는 행위를 하여 논란이 되었다.

6.4. 명성교회 세습관련 논란

교계 내 영향력이 매우 큰 명성교회 세습관련 논란이다. 해당항목참조

7. 파생 교단

분가한 순서 순으로 서술. 예장 합동이 분가한 이후로 별다른 분열의 역사가 없다는 관점도 있지만, 통합도 이런저런 이유로 꾸준히 목사들이 이탈하여 파생교단이 생기고 있는 중이다.[63]

8. 분열된 교단

각자 총회의 결정에 불복하여 호헌총회임을 주장한 교단들이며 시간 순으로 정리.

8.1. 최종 분열 당시의 교단들

9. 국내 타교단과의 관계

10. 해외 동역교단

[주요출처]

[1] 조선예수교장로회(現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설립연도.[2] 예장합동의 분립으로 인한 "통합" 명칭 사용 시점.[3] 서울 치유하는교회 위임목사.[4] 포항동부교회 위임목사.[5] 정식 교단 기관지가 아닌 예장통합 계열 신문으로는 비교적 진보적인 예장뉴스(PC 버전/모바일 버전)와 기독교 우파 성향의 예장통합뉴스(PC 버전/모바일 버전)가 있다. 두 신문사 모두 교단 총회와는 관련이 없고 신문의 논조는 교단의 공식 입장과 상관이 없음에 주의할 것.[6] 교세의 기준을 신자 수가 아닌 등록교회 수로 한다면 예장합동을 가장 교세가 큰 교단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도 종합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가장 큰 교단임은 분명하다. 이 또한 장신대에서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7] 예장통합 교단은 미국에서 가장 큰 장로회 교단이자 진보적인 교단인 미국 장로회(PCUSA)캐나다 장로교회(PCC)랑 교류하고 있다.[8] 참고로 예장합동은 자신들이 적통이고 통합이 분립해 나갔다는 관점을 고수하는 것을 제외하면 분립 이전의 역사에 대해 크게 상고하지 않고, 기장은 개별교단사 서술을 꺼리는 편이다.[9] 예장통합이 언더우드 및 기타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씨를 뿌린 '선교된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과 달리 기장은 '민족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 실제로 예장통합과는 달리 기장 교단의 기틀을 다진 김재준 등의 신학자는 국내에 온 선교사에게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라 해외 신학교에서 유학하고 국내로 돌아온 사람이다.[10] 물론 예장합동이 관리하는 광주숭일고등학교기장이 관리하는 세광고등학교처럼 분립 과정에서 타 교단의 몫으로 돌아간 기관들도 있다.[11] 모펫의 무덤은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정 내, 언더우드의 무덤은 '양화진묘역'에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예장통합의 총회신학교(통합교단의 대표 신학교)이고 양화진묘역은 2005년 100주년기념교회로 관리권한이 이전되기 이전까지 예장통합이 관리하였다.[12] 기독교회라고 부를 수도 없는 조그련과 대화한다고 해서 적통이라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다만 한국 기독교회의 대표자 역할을 한다는 의미 정도는 부여할 수 있다.[13] 정치에 비유하면, 전두환민주정의당의 법적 후신은 그 재산상 권리와 의무를 모두 승계한 국민의힘임에도 국힘 지도부에서 ‘민정당의 적통은 모 극우정당이 계승했다’는 논리를 펴는 격이다.[14] 두 교단이 갈라선 건 그보다도 더 이전인 1960년이기 때문.[15] 민법 제42조에 따른 사단법인의 정관변경 요건을 준용한다. 교회의 중대 결정(소속교단 변경 등)의 유효성을 따질 때 대법원은 일관되게 이 조항에 근거해 판단을 내렸으며, 총사원 2/3 동의를 요구하는 정족수는 1958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그대로이다. 법인 정관에 특칙이 규정되어 있다면 그 특칙이 우선하나, 당시 예장총회 교단헌법에 해당 내용이 명시되었는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16] 당시 출옥 성도 중 강경파는 진작에 재건교회로 나가 교류를 단절했다.[17] 위에서 지도부를 옹호하고 출옥한 성도들에게 비판을 한 목사다.[18] 캐나다 장로교회의 다수가 캐나다 회중교회, 캐나다 감리교회와 연합교회를 형성했을 때 기존 캐나다 장로교회 선교부도 연합교회로 넘어갔다. 연합교회 합류를 거부하고 잔류한 캐나다 장로교회는 선교부가 넘어간 이후 한반도의 장로교회와 교류가 끊겼다. 그러나 현재는 당연히 독자적 선교부가 존재하며 통합 교단과 동역교단 관계이다.[19] 그러한 와중에도 미국 장로회(Presbyterian Church USA)는 여전히 대한예수교장로회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였기 때문에, 예장통합에서는 PCUSA를 '모교단', '선교사교단'으로 모시는 경향이 여전히 남았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의 소속 교단인 미국 북장로회를 중심으로 현재의 PCUSA가 설립된다. 미국에서 1960-70년대 사회복음화 운동 이후 PCUSA가 예장통합에 비해 매우 진보화된 이후에도 예장통합과 PCUSA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20] 구약성경의 정경성을 옹호하던 조선신학교장 송창근 목사가 기독교장로회의 분립 전 한국전쟁 시기에 납북되었다. 그 전에 한경직 역시 신설된 총회신학교로 떠난지 오래였기에 조선신학교의 절대적인 리더가 된 김재준은 성서를 다른 인문자료와 다를 바 없이 취급하는 고등비평학을 심화시켰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분립 이후 김재준은 기장 내 온건파와 대립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송창근 목사가 조선신학교 1회 졸업생으로 구성하고 온건한 기조를 유지하던 교수 일부도 이탈하는 등의 파장이 있었다. 이미 통합측에 합류할 만한 온건파는 통합교단 초창기에 거의 합류했다. 불트만조차도 기독교 교리가 아니라고 비판한 민중신학을 창시한 안병무의 영향력이 자연스레 한신대학교 내에서 커지면서 신학적인 이질화는 더 심해진 상황이다. 민중신학의 내용이, 성서에 나오는 '무리'를 민중으로 보고 극단적으로 재해석하여 다수 민중에 따르는 것이 구원의 요체인 회개로 보는 것임을 본다면..[21] 이때 교단 소속 신학교였던 대구신학교는 예장합동으로 넘어가 오늘날 대신대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예장통합 합류에 반대하였던 대구 칠성동교회 등 소수의 교회들이 지금까지도 임마누엘 예수교 교단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22] 유아·아동 세례 포함.[23] 1997년 10월 21일 목포 노회에서 분립.[24] 1985년 11월 13일 서울남노회와 자매결연으로 자립대상교회는 지금까지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2016년 5월 3일 평양남노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도움을 받고 있다.[25] 순천 노회에서 분립.[26]인천강화군을 포함하여 감리회성공회의 교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 물론 인천에는 인천을 대표하는 대형 장로교회인 주안장로교회가 있긴 하다. 주안과 부평에 예배당을 두고 있다.[27] 안동, 영주, 예천군, 영양, 봉화, 청송 등. 이 지역을 관할하는 영주노회와 경안노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경안노회는 통합 교단 내에서도 상당히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예천의 경우 통합 교단과 더불어 침례회(기침)의 교세 또한 강하다. 경북 북부 지역 내에서도 군위의성의 경우 예장합동의 영향이 강하다.[28] 특히 포항영덕의 경우 관내 교회 중 절반 이상이 통합 교단 소속이고 노회가 2개 있을 정도로 통합측의 교세가 압도적이며, 경주도 고신측 교회가 다소 있기는 하지만 관내 장로회 계열 교회 중 통합측의 비중이 가장 높다. 영천과 합하여 노회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경북 남부 지역 중에서도 포항, 경주, 영천이나 경북 북부지만 포항 생활권에 가까운 영덕은 통합 교단의 교세가 센 편이다. 영천의 경우 대구, 경산, 청도, 성주와 달리 통합 교단이 주를 이룬다. 고령 역시 경북 남부의 대구 생활권이면서도 통합 교단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단 과거 강원도 관할이었던 울진감리회침례회의 교세가 강하고 통합 교단의 교세는 매우 약한 편이다. 울릉에서는 기독교한국침례회 다음으로 큰 교단이 예장통합이다.[29] 특히 청주의 경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통합 교단이 양대 교단을 형성할 정도로 통합 교단의 교세가 강하다. 보은은 충북 남부 3군 중 개신교 교세는 가장 약하지만, 관내 전체 개신교 교회 중 통합 교단이 압도적으로 많다.[30] 2016년 기준 통합 교단의 충청+강원권 전체 교인 수는 20만명 정도(충청권만으로는 약 17만명)로 각각 46만명의 호남권, 43만명의 영남권에 비해 인구수로 비교해도 적은 편인 것은 사실이다.출처 특히 충청남도 지역은 감리회, 구세군, 성결교회 등 타 교단에 소속된 개신교인들이 많아, 약 3만여명의 통합 교인에 비해 약 13만명(대전을 포함한 충남권 전체는 약 20만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감리회가 뚜렷한 강세를 보인다. 참고로 전국적인 교인 수는 통합 교단이 감리회보다 2배 이상이다.출처1출처2 다만 부여, 서천, 금산 등과 같이 충남권 내에서도 장로회가 감리회보다 우세한 지역이 존재하며, 충북은 충남과 달리 관내 개신교 인구 중 통합 교단 신자가 약 9만명으로 약 4만명에 불과한 감리회 신자의 2배를 넘어 오히려 장로회가 감리회보다 교세가 우위이다.[31] 대전의 경우 평양노회 등 이북지역 노회 소속 교회를 합친 교인수가 약 7만명, 교회수 262개로 충남권의 다른 지역과 달리 통합 교단이 감리회(교인수 약 7만명, 교회수 341개)나 성결교회(교인수 약 2만5천명, 교회수 138개)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교세가 강한 편이다.출처 이는 한국 선교 초기 대전 지역이 감리회와 장로회의 선교 구역 경계였으며,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충남권 최초의 장로교회(현 대전제일교회. 현재도 통합 교단 대전노회에 속해 있다.)가 대전에 세워진데다 해방 후 38선 이북 지역 장로회 신자들의 대거 유입과 한남대학교, 대전신학대학교의 설립, 1949년 기독교연합봉사회 및 1952년 대전시기독교연합회 발족 당시 회원 교단으로 참여하는 등 대전에서 통합 교단의 활동이 활발한 영향도 있고, 타지역 출신 주민이 많고 특정 교파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대전 지역 개신교인들의 특성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대전 5개 자치구 지역자활센터 중 대덕구, 유성구 등 2개 구의 지역자활센터, 서구 월평동정림동의 사회복지관을 통합 교단 대전노회 유지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32] 장로교 교단 중 강원도에서는 그나마 통합 측 교회가 압도적으로 가장 많다. 한편, 강원도는 보수 교단인 예장합동예장고신 측 교회를 상당히 찾아보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예외적으로 수도권과의 교류가 활발한 춘천과 원주는 강원도에서 이전부터 예장합동이 그나마 선전하는 편에 속하며, 2020년 기준으로 예장합동 교회는 영동 남부권(영월, 평창, 정선)이나 강릉, 속초 쪽에 그나마 약간씩 생기고 있다. 강원도의 예장통합은 예장합동 측 교회가 생겨났다 해도 기존의 예장통합에 다니고 있는 교회 신도 수가 예장합동보다 압도적으로 훨씬 많은 편에 속한다. 특히 동해, 삼척, 태백 등지의 장로교회는 지금도 예장통합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경기도에 속해 있지만 춘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서 북부 지방에 있는 가평군 또한 예장통합 교회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교세가 이 지역에서 가장 강한 편이다. 가평읍 읍내리에 있는 가평교회 또한 지역 사회에서 청평장로교회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지닌 교회로 알려져 있다.[33] 다만, 2021년 기준으로 원주시의 경우 개운동에 있는 원주제일장로교회 오인근 목사 사태, 문막벧엘교회 사태, 태장감리교회 사태로 인하여 개교회가 늘어나기는커녕 감소세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도 수도 계속해서 감소하여 불교로 이탈하고 있어 복음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지역으로 보고 있다고 원주시의 한 통합 측 장로교회 성도가 언급해 주었다.[34] 경남 동부 지역은 예장합동과 예장고신의 영향력이 강하다. 단 울산은 예장통합이 강하다.[35] 특히 정관 변경으로 경북노회의 감찰 권한을 무력화시키고 사실상 교파를 변경해버린 계명대학교의 사례는 전례가 없던 사례라서 종교계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다른 개신교 교단들이나 타종교 교단들도 산하 미션스쿨 단속에 경각심을 높였을 정도이다. 이때 계명대가 사용했던 방식(이사 과반수의 찬성을 통한 학교법인 변경)을 훗날 안양대학교 김광태 17대 이사장이 벤치마킹하여 아예 다른 종교에게 안양대학교 매각을 시도하다가 종교계에 큰 파장을 몰고온다.[36] 이는 예장통합 적통론에 따른 것으로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장로교 교단사를 살펴보았을 때 1901년 평양신학교의 적통을 장로회신학대학교와 한신대학교 중 누가 이어받는지에 대해서 다툼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1년 선교사에 의해 평양에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속칭 평양신학교 혹은 대한야소교장로회신학교)가 개교된다. 이 신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폐쇄되었고, 이에 따라 1939년 3월, 이 학교의 적통을 잇는 조선신학교가 서울에 개교한다. 여기까지는 기장 측과 예장 측 사이에 역사가 동일하다. 그러나 조선신학교가 오늘날 장신대로 이어지는지 한신대로 이어지는지가 문제의 요점이다. 광복 후 1940년대에 조선신학교에서 김재준 교수 등 일부 신학자들이 고등비평(바르트의 신정통주의)을 가르치는 것을 문제삼아 교단 내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본 문서의 교단 분열사에서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교단내 보수파는 1953년 궁극적으로 김재준 교수의 파문을 이끌어내지만, 그 전에 보수파는 이미 조선신학교와 독립적인 보수신학교의 설립을 추진해왔고, 서울 남산에 장로회신학교라는 '정통' 신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는 1953년까지 양립하였다. 이후 김재준이 파문되면서 조선신학교가 아닌 장로회신학교가 교단신학교로 재지정되었고 이후 조선신학교는 한신대로 개명한다. 따라서 통합의 입장에서 보면 1953년 조선신학교가 자신들의 교단 신학교에서 지정해제됨에 따라 그곳은 껍데기만 남은 곳이 되었고 그게 나중에 한신이 되었건 어쨌건 안중에 없는 것이다. 한편 기장과 한신대학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조선신학교의 물리적인 학교 시설이나 교수 및 교직원들은 단절되지 않고 그곳에서 계속 이어져왔기 때문에, 특정 교단의 일방적인 파문과는 상관없이 1901년 평양신학교 역사는 조선신학교에서 이어지는 것이 옳다. 한신대 역사 항목 참조. 즉 기장의 입장에서는 예장이 평양신학교의 설립자인 선교사 마포삼열의 유해를 인질삼아 장신대가 적통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포삼열의 유해는 현재 광진구 장신대 교정에 묻혀있다.[37] 여기에 예장합동의 총신대학교와 예장고신의 고신대학교까지 끼어들면 복잡해진다. 세간의 인식상으로는 한신대는 1940년 개교한 조선신학교를 이어 받으며, 장신대와 총신대는 1901년 개교한 평양신학교와 1948년 재개교한 장로회신학교, 1951년 재개교한 총회신학교를 이어 받아 1960년 분리되었다고 인식한다. 정리하면 조선신학교-한신대, 평양신학교-중간 폐교-장로회신학교-총회신학교-장신대와 총신대로 정리 된다. 고신대의 경우 평양신학교의 정신, 전통을 이어 받는다는 표현을 사용할 뿐 1946년 개교한 학교로 인식되며 본인들도 그렇게 주장한다.[38] 연세대 이사회 정관 상 '기독교계 인사' 2인을 배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파송하는 임원을 이 4개교단에서 파견한다. 2008년 이전까지는 4개 연합교단에서 각1명 이사를 파견하였으나 정관이 개정되어 교단과 무관하게 합쳐서 2인으로 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의 교단규모를 고려하여 기감과 예장통합에서 주로 목사를 파송한다.[39] 미국의 PCUSA와 같이 간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미국의 장로회는 PCUSA가 장로회의 모교단으로 자처하며 이후 PCA가 나온 것을 이해하면 쉽다. 미국장로교가 모교단과 분리교단의 차이가 큰 반면, 한국의 정통 장로교에 해당하는 통합, 합동, 기장의 경우, 교단사 서술할 때 각자 자신의 교단이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고 타교단이 자신들로부터 분리해 나갔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회중교회로 남거나,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에 합류하여 장로교회로 갈라선 이후, 미국 장로교회도 여러번의 분열이 있었다. 뒤늦게 아르미니우스파로 변질된 컴벌랜드 장로회가 나간 이후 남장로회, 북장로회가 갈라졌다가 PCUSA로 통합된 것이다. 이미 북장로회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유행과 컴벌랜드 장로회와의 통합에 반발하여 나간 정통장로교회(OPC), 북장로회와 남장로회의 최종 통합인 PCUSA에서 합류를 거부한 남장로회 교회 중심 PCA인데, 그들이라고 PCUSA를 모교회라 보지는 않는다.[40] 개교회 수는 예장합동이 30% 가량 많으나, 교인 수는 예장통합과 예장합동이 매년 1~2위를 다퉈왔다. 2005년 예장개혁 3,425개 교회의 합동 복귀 & 흡수 이후 예장합동 교단이 교인 수에서도 앞서나가 1위를 차지했으나, 2014~16년 이래 예장통합 교단이 예장합동 교단보다 8~10만명 정도 더 많아 교인 수 1위를 차지했고 2017년에 잠깐 순위가 바뀌어 예장합동이 약 3만명 가량 더 많았으나 2017년 재차 예장통합이 3000명 이상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4:1 근래에는 예장통합이 다소 앞선 가운데 유동적이다. 그러나 예산이나 신자 비율, 목회자 비율, 신학대학원 입학생 비율로 비례해서 봐도 대한민국 장로회에서 제1의 교단, 즉 가장 최고인 것은 지극히 명약관화하고 당연한 사실이다.[41]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장로회 제2교단인 예장합동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예산 비율이 가장 많은 편이다. 전체 예산은 약 130억 정도이며, 교인 수 1위, 장로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생 및 신학대학원 학생 수도 총신대에 비해서 제법 많다. 참고로 예장합동의 경우에는 2020년 기준으로 예산이 약 110억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42] 미국 장로교(PCUSA)바르트주의적 신학 변화에 맞춰 198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과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을 작성하였다. 현재 통합 교단은 크게 칼뱅의 '이중예정론'을 따르는 제한속죄론에서 벗어나 바르트의 '초월론적 변증신학'을 따르는 통전적이며 성서적, 복음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신학자·교회들과 기존의 칼뱅주의 이중예정론에 충실한 신학자·교회들이 공존하고 있다.[43] 지금도 총회 홈페이지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공식적으로 등재할 만큼 중요시하고 있다. 아울러 새로운 신정통주의 신앙고백들이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자들을 통해 유입되었으나 어디까지나 기존 신앙고백과의 병립을 전제로 들어온 것이며, 통합측은 특정 신학이 아닌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포용, 존중하는 입장을 고수한다.[44] 물론 모든 신학자가 성서비평학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성서비평학에 부정적인 보수 성향 신학자들이 통합 교단에도 존재한다.[45] 이것 때문에 예장이 통합 측과 합동 측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교회 일부는 WCC와 교회일치운동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특히 광주 안디옥교회.[46] 그러나 근래 몇 년간 총회에서 동성애자 문제 관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행보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는 실정이다.[47] 교단 지도층 인사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교회일치운동에 관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48] 부산 WCC 총회 개최 문제라든지, 가톨릭과의 직제 일치 합의 문제 등에서 예장통합 내 일부 보수파들에 의한 잡음이 일어난 적 있다.[49] 다만, 예장통합의 경우 복음주의 교회라 해도 예장합동의 영미 복음주의보다 유럽(광의적) 복음주의와 신정통주의 성향을 띠고 있는 교회들이 상당수이며, 이들은 같은 복음주의 성향이라 해도 예장합동 교회들보다는 훨씬 유연하고 리버럴하다. 물론 예장합동과 비슷한 수준의 영미 복음주의 성향을 가진 교회나 목사들도 있다.[50] 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에 대해서 교단 산하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도 이 사안을 두고 교수들과 학생들이 의견이 양쪽으로 갈렸다. 신학교인만큼 교단보다는 진보적이지만 기감이나 성공회와는 다르게 보수측이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51] 아무래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교단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고, 장로회신학대학교도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52] 과거에는 예장통합 역시 예장합동처럼 강단 십자가를 교단헌법으로 금지하였으나, 1980년 정기 총회에서 새로운 보고서를 채택하면서 강단 십자가 거치를 권장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변경하였다. 물론 강제적인 의무사항은 아니다. 지금도 부산 대지교회 등과 같이 통합 교단 소속이면서도 강단에 십자가를 거치하지 않는 교회들이 일부 존재한다.[53] 오르간이나 성직자의 예복에 관한 것은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도 동일하다.[54] 물론 어디까지나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달고 있는 교단 중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독교대한감리회에 비하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며, 상술한 바와 같이 교단 내부적으로도 보수적인 목사나 교인들이 결코 적지 않다.[55] 국내 장로회 계열 미션스쿨 중 기장 계열(서울 정의여자고등학교, 청주 세광고등학교, 수원 영생고등학교 등), 예장합동 계열(서울 영훈고등학교, 부산 이사벨고등학교, 대구 성광고등학교, 광주 숭일고등학교, 대전 동방고등학교 등) 장로회 계열 초교파 (부산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브니엘예술고등학교)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예장통합 계열 미션스쿨이다.[56] 1960~70년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지역에서 산업 노동자 운동을 주도했던 '영등포산업선교회'가 바로 통합 교단 소속이며, 지금도 서울 성문밖교회, 대전 빈들교회 등 영등포산업선교회의 맥을 이어가는 진보성향 교회들이 통합측에 여러 곳이 존재한다. 2019년 9월 통합측 총회장으로 선출된 부산 백양로교회 김태영 목사는 독도지킴이 활동으로 꽤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57] 한국 교회 신도 수 기준 5대 교회 중 유일한 예장 소속이다.[58] 신명기 18:10-16; 레위기 19:26, 31, 20:27; 사도행전 13:8-10[59] 당연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이 금지한 흑마술과 단지 눈속임으로 재미를 이끌어내는 현대의 마술은 다르다는 전제를 확실히 한다.[60] 그래서 마술사들은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합신 계열의 교회나 감리회 등 아예 다른 교파에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의외로 보수 교단들이 마술을 공식적으로 금지하지 않았다.[61] 여담으로 이 대회에서 개최 교회인 통합 소속 광주무등교회에 주차 공간이 부족하여 건너편의 합동 소속 사랑의섬김교회가 주차장을 빌려주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하였다.[62] 박영우 목사 시무.[63] 다만 합동 탈퇴 이후의 교단들은 대부분 분열이 아니라 탈퇴 후 창설로 세워졌고 예장 통합과 교류가 활발한 경우가 많아 통합 계열 교단이 아닌 독자적인 교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우세하다. 하지만 다른 장로회 계파도 합신, 합동보수, 브니엘처럼 파생 교단들이 탈퇴 후 창설로 세워진 경우도 더러 있으며, 탈퇴 후 창설이라도 어쨌든 예장 통합 출신 목사들이 세웠기에 예장 통합에서 분가한 것은 마찬가지라 이들 교단의 창설 과정에서 통합에 대한 언급이 필수적이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서술한다.[64]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었다.[65] 다만, 출범 당시부터 박조준 등 통합측 목사들뿐 아니라 합동측 목사인 김준곤 등도 함께 참여하였으며, 현재의 KAICAM은 통합측 뿐만 아니라 기장, 합동, 고신, 기감, 기성, 예성, 기침 등 다양한 교파와 교단 출신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66] 고신의 의미는 고려신학대학교를 교단 대학교로 하는 예장교단이라는 뜻[67] 물론 한때 WCC 반대를 내걸고 연합했던 예장 합동 역시 이 당시 김길창 등 수뇌부의 다수 인물들이 저항파 목회자들의 퇴출에 가담한데다 연합 후 신학교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고려신학교부산신학교에 흡수, 소멸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예장 고신이 갖는 원한과 증오에서 자유롭지는 않다.[68] 원래 예장 소속이었고, 캐나다 장로교회 영재형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믿었으며, 그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영재형 선교사가 캐나다 연합교회에 합류하지 않고, 연합교회의 고등비평학을 당연시하는 선교사들과 대립하며 한반도를 떠났기에 예장 소속이 아니라는 오해에서인지, 광복 후 예장에 가입했다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한신학교도 엄연히 분열 전 예장총회의 야간 신학교였으며 당시 주간 신학교가 조선신학교였다.[69] 이때의 흔적으로 부산장신대학교가 대한신학교의 부산분교로 설립되었다.[70] 고신은 한국 장로교 중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반대하고 여성 목사 안수 등이 불가하지만 통합은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하는 중도 교단으로 여성 목사 안수, 성서비평학 등을 허용한다.[71] 합동은 통합이 허용/지지하는 성서비평학, 교회 일치 운동, 여성 목사 안수, 종교세, 세습금지법을 모두 반대한다.[72] 기장 교단은 장로교 교단들 중 가장 진보적인 교단이고 통합은 기장 다음으로 진보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중도적인 입장이다.[73] 통합 교단보다 소폭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총회도 WCC의 부산 총회 개최를 지지하기는 했지만 WCC에 가입하지는 않았다.[주요출처] 총회 홈페이지[75] 남부 인도의 개신교 연합교회. 교회 체제로는 주교제를 택하며 세계성공회공동체, 세계감리교협의회, WCRC, 세계 교회 협의회(WCC) 회원 교단이다.[76] 북부 인도의 개신교 연합교회. 교회 체제로는 주교제를 택하며 세계성공회공동체, 세계감리교협의회, WCRC, 세계 교회 협의회(WCC) 회원 교단이다. 성공회, 감리회, 장로회 교회가 공존한다.[77] 세계개혁교류회, WCRC 회원 교단으로 웨일스 장로회에서 분리되었다.[78] 주교제 루터교회 교단이다.[79] 개혁주의(칼뱅주의) 개혁교회 교단이다.[80] WCRC 회원 교단이다.[81] 한국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WCRC 회원 교단이다.[82] 태국 최대의 개신교 교단으로 여겨지는 교단으로 모든 개신교 교파를 아우르는 에큐메니컬 교단으로 설립되었다. 교단 설립 이전 대부분의 교회는 미국 장로회(PCUSA) 선교부에서 설립한 장로교회였다. 소수의 미국 침례회, 영국 그리스도의 교회, 독일 루터교회에서 설립한 교회도 존재했다.[83] 회중제, 장로제, 감리교 요소가 혼합된 체제로 내부에 감리교, 복음주의, 개혁교회 교회가 있다.[84] 루터교회, 개혁교회 교단이다.[85] 영문명칭으로 보아 네덜란드 개신교회 내의 화란 개혁교회 총회파 출신 파벌과 교류하는 듯하다.[86] 2019년 까지 사용된 스위스 개신교회의 영문명칭으로 현 명칭은 Protestant Church in Switzerland.[87] 장로제, 회중제 체제의 개혁교회 교단이다.[88] 체코에서 가톨릭 다음으로 큰 기독교 교단으로서 체코슬로바키아 시기에 루터교회개혁교회의 통합으로 형성된 교단이며 연합교회, 루터교회, 개혁교회, 후스파 교회가 공존한다. 체제는 장로제. 세계 교회 협의회(WCC), 루터교세계연맹, WCRC 회원 교단이다.[89] 프랑스 개혁교회, 프랑스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통합으로 형성된 교단이며 프랑스 최대의 개신교 교단. 세계 교회 협의회(WCC) 회원교단이다.[90] 장로제 개혁교회 교단. 헝가리에서 가톨릭에 이어 2번째로 큰 기독교 교단이다. 세계 교회 협의회(WCC), WCRC 회원 교단이다.[91] 출처에서는 약칭은 PCUSA로 바르지만 전체 교단명은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로 잘못 기재되어 있다. 해당 교단명은 예장합동 교단과 교류하는 PCA 교단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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