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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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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에큐메니컬 성향 교단에서는 정통의 일원으로, 구원론 및 계시론에 민감한 교단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한다.
국내 개신교계는 조직신학(교의학)에 민감하기에 대체로 이단으로 받아들인다.
같이 보기: 기독교의 종파 }}}}}}}}}

1. 개요2. 유래3. 누가 복음주의자인가?4. 근본주의와의 관계5. 복음주의와 관련된 세계 교회 연합체들6. 북미 복음주의 사도교회7. 관련 내용
7.1. 관련 문서7.2. 관련 인물 및 서적7.3. 관련 단체
8. 복음주의 관련 선언

1. 개요


Evangelicalism / Evangelical[1] Movement

복음은 기쁜 소식 혹은 예수의 가르침을 뜻한다. 종교적 의미에서 복음주의는 예수의 가르침을 받들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주의를 말한다. 특히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강조한다.

영어권을 제외한 유럽 언어에선 프로테스탄트와 동의어로 쓰이는 단어이지만, 영어권 용례에선 (그리고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 개신교의 용례에선) 이보다 더 좁은 범위의 특정한 신학적 경향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항목에서 주로 설명하는 복음주의도 영어권 개신교 용례로서의 의미다.

2. 유래

'복음주의'라는 말 자체는 무슨 엄격한 정의가 존재하는 건 아니다. 따라서 15-16세기 가톨릭 내부에서도 '복음주의' 같은 표현들은 쓰였다. 그러다가 16세기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유럽 각 지역에서[2] 중세 가톨릭 신학이 성경과 모순된다고 여긴 개신교 신자들은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 자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영어권에선 후술된 특유의 좁은 뉘앙스로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가톨릭개신교가 혼재되어 있던 잉글랜드에서 왕의 권위로 양자를 찍어누른 잉글랜드 성공회의 특성상 '친가톨릭적이지도 않고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은' 특정 개신교 신학 조류를 구분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후 이들은 영어권에선 '복음주의'를 자처하거나 혹은 성공회 내부 한정으론 '저교회주의'라 불리기도 한다.

현대 서양권에서는 복음주의라는 단어는 19세기 20세기에 미국 개신교 교계에서 발생한 한 경향으로 보수적인 경향을 가진 여러 개신교 교파 부류를 통칭한 말이다.(근본주의 vs 이보다 유연한 중도적 사상인 신복음주의를 통칭) 복음주의 교회(Evangelical church)의 반대개념은 주류 (개신교) 교회 (main line protestant church) 라고 부른다. 따라서 장로교나 감리교 같은 별도의 통일된 교파라기 보다는 마치 보수주의 진보주의 같은 하나의 경향이라고 보면 되고 실제로 복음주의 장로교 교단이나 복음주의 감리교 교단도 있다.

복음주의= 근본주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짐 윌리스, 로날두 사이더, 톰 라이트, 릭 워렌(번영신학에 가깝다는 비판도 듣지만 의외로 가톨릭, 정교회에 호의적이고 사회참여, 빈곤 퇴치, 환경운동에도 열려있다.) 같은 신학자, 목사들은 성경을 중시하나 신학적, 사회적으로 진보적이다. 이러한 복음주의에 해당되는 사상들이 '신복음주의', '이머징 처치'다. 이와 반대로 극도로 보수적인 복음주의도 있다. 이것이 근본주의다. 미국에서 근본주의가 흥한 이유는 원래 모든 근본주의는 대중에게 돈과 인기를 얻기 쉬우므로 미국에서 교파간 자본주의적 경쟁이 이런 근본주의를 흥하게 했다.오늘날 미국에서는 앞서 언급한 신복음주의, 이머징 처치도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며 근본주의, 자유주의와 경쟁하고 있다.

3. 누가 복음주의자인가?

사실 복음주의라는 정의 자체가 기독교 신자들 내에서도 서로 다른 부분이 있어 명확히 정의하긴 어렵지만, 영어권에서 스스로를 '복음주의'로 정의하는 경우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조류 중에서 최소한,

ㄱ. 성공회의 고교회주의와[3] 로마 가톨릭 신학[4]
ㄴ. 정교회 신학
ㄷ. 자유주의 신학[5]

위의 세 해석 중 1개라도 성경의 참된 메시지와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1차적으로는 이해하기 편하다. 다만 앞의 두 가지, 즉 가톨릭 신학과 정교회 신학을 긍정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복음주의자도 많다. 빌 하이벨스, 필립 얀시 같은 저명한 기독교계 인사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자유주의는 이에 비해 호불호가 더 갈린다.(한국에서는 특히 훨씬 더 심하게 갈린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개념이 복잡하다 보니, 복음주의자의 정체성을 판단하려는 시도로 영국 복음주의 역사가 데이비드 베빙턴(David Bebbington)은 다음 분류를 사용하기도 했다.

다만 이 분류는 복음주의자들의 정체성은 드러내지만 객관적 의미에서 누가 복음주의자인지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ㄱ. 성경의 진리성 ㄴ. 회심의 중요성 ㄷ. 선교의 절박성 3가지에 동의하지 않는 개신교 교단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예 개신교조차 아닌 가톨릭의 경우도 근대적 성서주석학은 수용했으되 성경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진리라는 명제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6] 전통이 성경보다 위에 있다는 주장도 하지 않는다. 단지 가톨릭 전통이 성경과 충돌하지 않거나 혹은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성경에 근거한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된 사람들도 회심, 행동주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 세 항목은 웬만한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보다 더 강했고 성경도 다만 가톨릭 테두리 내에서 성경 해석에 있어서 전통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지 그 누구보다도 성경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했고 웬만한 성인들은 성경을 매번 반복해서 읽고 공부하고 반추했다. 예를 들면 복음주의 진영에서 혐오하는 예수회 초대 총장 이냐시오도 정확히 저 과정으로 회심했고 교육 전도에 열성이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믿었다. 이 분류대로면 가톨릭 정교회 성인들은 모두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것이다.

더 나아가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에서 모두 이단으로 간주하는 아리우스와 네스토리우스 역시도 모두 저 네가지 항목에 해당된다. 이들은 성경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했을 뿐이지 그 누구보다도 성경 근본주의에 가까웠으며, 아리우스는 아예 니케아 공의회 전 활동을 시작했기에 (현대 개신교가 가톨릭-정교회를 비판하는 주된 논쟁인) 전통과 교도권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7] 곧 "가톨릭정교회와는 달리 그 누구라도 자유롭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복음주의의 분류에 따르면 현대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가 믿는 방식의 '삼위일체'를 부정한 아리우스는 사실 현대 복음주의 기독교인보다도 더욱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기독교인이 되어버리고, '성경'이 아니라 '교회 권위' 항의하다 이단이 된 네스토리우스는 그야말로 열혈 복음주의자가 되어버린다. 존 헨리 뉴먼이 말했듯 아리우스와 네스토리우스를 포함한 모든 역사적 이단 종파는 성경을 기반으로 하고 성경에 그럴듯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그 어느 것보다도 권위가 있다는 사실은 확고하게 믿지만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그릇된 길로 나아가지 않게 하기 위한 교부들의 전통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 개신교 역시도 그들 나름대로는 성경의 '진짜' 의미를 추구하며, 퀴어 신학 등 외부인의 눈에는 정말 막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신학 조류들도 나름대로는 성경 구절들과 그리스도의 행적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이렇게 나열된 각 교단들의 개별 신학 및 교리 중 어떤 것은 타 교단에게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여겨질 것이다. 아리우스주의는 가톨릭/개신교에게 '성경에 근거하지 않게' 보일 것이고, 개신교 신학이 가톨릭 신학에게, 그리고 가톨릭 신학이 개신교 신학에게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성경은 하느님/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는 회심한 그리스도인이고, 선교가 중요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 받았다"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교단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교단들의 차이는 성경 해석의 차이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성경이 A라고 말해도 우리는 B를 믿겠다"고 말하는 교단은 그리스도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교단의 모든 교리가 다 옳다는 것이 아니라, "누가 복음주의인가"를 구별하는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성체성사/성만찬의 경우,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츠빙글리의 설명이 동시에 3개 모두 옳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이 셋 중 무엇이 옳은지 판별하는 건 극도로 난해한 작업이고, 실제로 이는 초기 개신교 운동에서 '자유로운' 셩경 해석이 오직 급진파의 전유물이 된 원인이 되었다.
성찬에 대한 개혁자들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는 관주도적 종교개혁[8]을 항구적으로 두 개의 운동으로 분리시키는 일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루터가 아주 단순하다고 여겼던 그런 성경구절들의 해석에서도 일치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널리 증명해보였다. 1510년대 말과 1520년대 초에는 낙관적인 성경주석관이 일반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나 1530년대 말에는 일반 그리스도인이 오직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능숙하며, 복잡한 언어학적 이론들에 익숙한 경우에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성경독자들은 성경해석의 수단으로서 어떤 '필터'를 제공받았다. 이러한 '필터'의 한 예로, 루터의 『소요리문답』(Lesser Catechism, 1529)은 독자들에게 성경을 이해하는 한 틀을 제공했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성경 안내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ㅡ 특히 1529년의 최종판 ㅡ 였다. 이 책은 처음에 칼빈이 루터의 요리문답을 모델로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41년도 불어판 서문에서 칼빈은 『기독교강요』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참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열쇠나 입구와 같게 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달리 말해서 독자들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성경해석의 수단으로 사용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쯔빙글리에게 쮜리히 시와 쮜리히 교회는 사실상 하나였고 동체였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처럼, 이것은 그의 교회론 및 성례론과 관련하여 특별히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 시의회는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들에 개입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쮜리히의 종교개혁은 더 이상 올바른 성경해석에 관한 문제로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시의회는 사실상으로 그들이 ㅡ 교황이나 공의회가 아닌 시의회가 ㅡ 쮜리히 시민들을 위해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 의도가 있음을 알렸다. 성경에는 실로 해석하기 애매한 경우들이 있는데, 시의회가 성경 해석자로 활동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쮜리히 종교개혁의 정치적 성공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었다. 바젤과 베른에서도 쮜리히의 모델에 근거한 비슷한 결정이 내려져 스위스 종교개혁을 강화시켰으며, 1530년대 중엽에 제네바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칼빈의 종교개혁의 성공을 이끌었다.

초기 개신교 내부의 세력 갈등은 성경해석의 권위가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권위를 갖고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누구나 종교개혁의 다양한 갈래들의 이데올로기 ㅡ 곧 사회적, 정치적인 견해 ㅡ 에 사실상으로(de facto) 통제를 받고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교황의 세속적 권위는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권위 있는 성경해석자로서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었다.

.... 관주도적 종교개혁이 초기에는 각 사람이 성경해석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에는 사회적, 정치적 결과를 염려하게 되었다. 1525년의 농민반란은 루터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에게 솔직히 개별 신자들(특별히 독일 농민들)은 성경을 해석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중요성을 그처럼 강조했다가 나중에 덜 교육받은 멤버들이 동일한 성경을 해석하게 될 것을(달리 말해서 관주도적 종교개혁자들과 다른 해석에 도달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성경으로 직행하는 일를 거부했던 것은 루터파 종교개혁의 아이러니의 하나이다. 예를 들면, 뷔르템베르트 공국의 학교규칙은 가장 유능한 학생들에게만 최종 학년에 신약성경을 배우는 일 ㅡ 라틴어헬라어로 배워야 했다 ㅡ 을 허락하도록 규정했다. 어쩌면 훨씬 다수였을 나머지 보통 학생들은 그 대신에 루터의 『소요리문답』을 읽도록 규정되었다. 직접적인 성경해석은 사실상 이렇게 소수의 특권을 지닌 집단의 몫이 되었다. 거칠게 표현해서 그것은 성경 해석자로 교황을 지목하는가, 루터나 혹은 칼빈을 지목하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성경의 명료성'의 원칙은 종교개혁 내부의 보다 급진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했던 용례에 비추어 조용히 무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모든 사람이 신실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권리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념은 결국 오직 급진파들만의 소유가 되었다.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씀, 최재건 번역, 『종교개혁사상』(Reformation Thoughts: An Introduction) 제3증보판 255-259쪽

그러므로 실제론 자기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는 정체성으로 인식하면, 그냥 '복음주의자'라고 불러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여기엔 대체로 '성공회 고교회주의와 가톨릭 신학의 몇몇 교리들(중도적 복음주의는 가톨릭의 일부 교리만을 수용하지 않을 뿐 가톨릭도 형제로 대한다.) 혹은 모든 교리(근본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 등은 성경과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몰려있기에, 누가 자기를 '복음주의자'라고 여긴다면 이런 신학 조류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여기서 은사주의[9] 와 근본주의 등을 제외하기도 한다.

철저히 미국의 용례에 맞춰서 말하자면, 실질적으론 개신교 교단 중 메인라인에 속하지 않는 교단을 싸잡아 말할 때 '복음주의'라 칭하기도 한다. 예시1, 예시2. 물론 그럼에도 미국의 용례를 한국 개신교계에 일괄 적용하기는 어려우므로 기독교 내의 다른 용어에 대한 정의를 통해 보완 및 보정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존 스토트가 정의한 4대 복음주의적 특징과 앨리스터 맥그래스가 정의한 4대 복음주의적 특징을 자신의 신앙 생활에 적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성도 및 교인들을 복음주의자로 보는 것이다.

4. 근본주의와의 관계

복음주의(Evangelical)라는 용어는 사용과 번역 시 상당한 주의가 요구된다. 복음주의라는 용어 특유의 모호성 때문인데, "자유주의(Liberal theology)도 친가톨릭(Pro-Catholic)도 아닌 개신교"에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전술했듯 엄격한 정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음주의와 근본주의가 동일한 개념인지 다른 개념인지, 혹은 둘 중 하나가 나머지의 하위 개념인지에 대한 합의된 의견은 없다. 때문에 다마스커스TV 등처럼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신학을 둘 다 까면서 복음주의를 내세우는 케이스도 있고, 후술된 그레셈 메이첸 등처럼 근본주의를 좀 더 변호하는 쪽에 가까운 케이스도 있다.

5. 복음주의와 관련된 세계 교회 연합체들

전세계 복음주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세계적 조직으로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 국제기독교협의회(ICCC)가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복음주의 단체인지 아닌지 견해가 매우 확연히 갈리고 있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자유주의보다는 보수적이고 근본주의보다는 진보적인 신복음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기독교 단체다. 전세계 기독교인 중 약 6억명 정도를 관할한다. 천주교, 정교회를 형제 기독교로 인식하여 긍적적으로 교류하고 있고 현대신학은 조심스럽게 일부만 수용하는 단체다. 교리적 측면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주교, 정교회의 교리를 별로 수용하지 않는다.

또 다른 복음주의 기독교 조직인 ICCC는 현대신학과 기독교 타종파(천주교, 정교회)에 대해 극도로 배타적인 교회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나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에 동의하는 천주교, 정교회 교회들도 일부 회원으로 받고 있다. 대체적으로는 두 종파에 부정적인 편이다.

이외에 중도~진보적인 신학을 가진 개혁교회들이 모이는 WCRC와 보수적인 개혁교회들이 모이는 ICRC 같은 단체들도 있다.

복음주의 단체로 보기도 하고 신정통주의~자유주의단체로 보기도 하는 세계교회협의회는 천주교, 정교회와 교리적 측면에서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으며 천주교를 옵저버로 참여시키고 있다.(정회원은 아니다.) 동성애나 자유주의에 대해 호의적인 교단과 그렇지 않은 교단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 단체의 신앙고백문은 매우 중도적인 편이다. 여기서 활동하던 신학자가 무속 의식을 했을 때(초혼제 사건) 회원 교단들이 반발했다. 따라서 세간의 오해와 달리 무조건 진보적인 단체도, 무조건 보수적인 단체도 아니다.

6. 북미 복음주의 사도교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북미 복음주의 사도교회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관련 내용

링크: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위키백과(한국어) 복음주의

7.1. 관련 문서

7.2. 관련 인물 및 서적

7.3. 관련 단체

8. 복음주의 관련 선언



[1] 비슷하지만 다른 용어로 독일어 Evangelisch가 있는데, 이는 (가톨릭과 대비되는) 개신교의 동의어이며 영어 Evangelical과는 다른 뜻이다. 영어 Evangelical이 독일어로 번역될 때는 Evangelikal로 옮겨지는데, 철자를 보면 알겠지만 영어發 외래어다. 독일어뿐만 아니라 여타 유럽 언어들에서도 영어의 'Evangelical'에 해당하는 용어들은 본연의 의미처럼 개신교 그 자체와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2] 독일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16세기 종교개혁의 파급력은 스칸디나비아, 프랑스, 헝가리, 폴란드는 물론 이탈리아스페인까지 파급된다.[3] 반대로 말하면 성공회 내에선 복음주의는 저교회주의에 해당한다.[4] 상당수 극보수 개신교 세력은 천주교를 마리아 숭배, 성인 숭배 등으로 다신교적이라고 비판한다. 다만 중도적 복음주의, 신복음주의, 이머징 처치 운동 등 개방적인 복음주의를 내세우는 경우에는 가톨릭에도 구원이 있다며 이단시하지 않는 케이스도 꽤 있다. 단지 개신교 안에서 좀 더 올바른 신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편.[5] 자유주의 기독교의 스펙트럼은 넓다. 좁게 보면 자유주의 신학을 다루는 진보적인 개신교 교파들을 들 수 있고, 넓게 보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같이, 복음주의자들로부터 '기독교인이 아니고 이신교인'이라고 공격당했던 사람들도 자유주의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례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프리메이슨 회원이었지만, 언제나 자신을 성공회 교인으로 생각했다. 대통령 취임식 직후 첫 일정으로 성공회 교회에 들러 감사성찬례에 참석했을 정도. 이후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이나 제임스 매디슨, 제임스 먼로 또한 이신론자로 평가받는다.[6] "성서 저자가 비록 물질계의 사물에 대해 언급할 때라도 오류가 없다 ... 어떤 사람들은 거룩한 저자들이 사실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 오류나 부정확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이 경우 좀더 자세히 조사해보면 저자의 이런 약점은 당시의 사회 생활에서 늘 사용하던, 그리고 실제로 통상적인 것으로 고정되어버린 고대인들의 일반적 표현양식과 그들 고유의 설화 구사법에 기인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교황 비오 12세 〈성경의 영감〉)[7] 네스토리우스의 경우는 사정이 복잡한데 요지만 말하자면, 교부학에서는 네스토리우스가 '말하고자 한 의도'는 에페소 공의회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가 '말하고자 한 의도'와 조화될 수 있거나 '큰' 모순은 없다고 본다. 다만 '말하고자 한 의도'를 드러내는 '신학 정식'을 합의하는 데 양자가 충돌하였고, '신학 정식' 합의에서 (키릴루스 역시 현대적 관점에선 고집스러운 면이 있지만 네스토리우스가 키릴루스보다 한층 더 완고하고 태도가 좋지 못한 토론자였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네스토리우스가 문제가 되었던 건 '그리스도론에 대한 근본적으로 잘못된 이해'라는 성서학적 문제라기보다는 '공동의 신학 정식을 도출해내고 일치를 확인'하는 교회론적/교회법적 문제에 있었다.[8] (발췌자 주석) 공권력 주도적 종교개혁. 곧, 잉글랜드 성공회, 독일 루터주의, 스위스 개혁주의처럼 공권력(국왕, 영주, 시의회)이 주도한 종교개혁을 말한다.[9] 오순절교회가 제일 강하게 이 은사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파이다. 그러나 넓게 생각해서 하느님께서 현재도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주장은 보편교회주의자·복음주의자·자유주의자 할 것 없이 모두 긍정하는 바이다. 물론 은사중지론까지 말하는 정말 깐깐한 칼뱅주의자들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쪽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쪽이 오순절교회와 같은 은사주의 교단이라 할 수 있다.[10] 가톨릭 예수회의 신부이자 심리학자. 스스로의 성적 지향 때문에 평생 고뇌했고, 상담자이자 영성가로 이름을 날린다. 상처입은 치유자는 그것을 담은 역작으로 카운셀링 분야에 관심이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필독할 만하다.[11] 제100대 성공회 더럼교구장이자 신약학자로서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거장으로 불린다. 신자유주의 비판 등 사회 비판에도 적극적이다.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에 대해서 기존의 편견과 오해를 짚어낸 역작.[12]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논쟁 사이에서 근본주의를 변호하며, 기독교 근본주의를 말하고자 한다면 이 사람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13] 무신론자였다가 전향하여 성공회 신자가 된 후 여러 기독교 관련 작품들을 저술했다.[14] 무신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분자생물물리학(Molecular biophysics))에서 회심한 후 성공회 신부가 된 독특한 케이스. 기독교 복음주의 계열의 신학자/저술가로서 리처드 도킨스 등과의 논쟁으로 유명하다. 유신론적 진화론자.[15] 미국의 유명 목사.[16]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와 같이 20세기 3대 복음주의 신학자로 불렸다.[17] 성공회 신부로, 한 때 개신교의 교황이라고 불릴 정도의 권위가 있었다. 이 글을 캔터베리 대주교가 싫어합니다.[18] 기독교 작가.[19] 옥한흠, 홍정길, 이동원, 그리고 하용조 목사. 이 4명을 한국의 복음주의 4인방이라고 부른다.[20] 미국 풀러 신학교의 교수로 세계적인 바울신학의 권위자 중 한 명이다.[21] 구약학자.[22]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재세례파(중 진보파) 성향의 복음주의자. 진보에서 보수까지 여러 관점을 폭넓게 받아들이며 정치참여, 교회개혁, 평화주의에 관심이 많다. 문장력으로 나름 이름이 있으며 현재는 기독교인 글쓰기 학교를 운영중이다.[23] 복음주의권보다는 신사도 운동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지만, 일단 출발은 이쪽이다. 신사도 운동도 은사주의 기독교에서 파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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