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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2-12 17:08:40

실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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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1.1. 실존주의의 근원1.2. 실존주의란?
2. 신정통주의 신학3. 대표적인 인물
3.1. 작가3.2. 철학자3.3. 심리학자
4. 대표적인 작품
4.1. 문학4.2. 철학4.3. 애니메이션
5. 대한민국의 실존주의
5.1. 대표적인 작품5.2. 대표적인 인물
6. 심리치료 기법 중 하나: 실존상담

1. 정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장 폴 사르트르

existentialism

20세기문학철학 사조. 전후 프랑스독일에서 발달했다. 보통 쇠렌 키르케고르를 시조로 보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장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알베르 카뮈가 있다.

단, 이는 사르트르에 따른 분류일 뿐이며, 실제 여기 분류되는 철학자들은 사실 서로 매우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존주의로 분류된다고 하여 같은 사상을 공유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동양 철학으로 치면 제자백가유가, 도가, 병가로 임의적으로 나누는 식의, 편의적인 분류기준에 따라 같은 도가에 들어간 노자장자, 같은 병가에 들어간 손자와 오자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는 오류와 같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들은 모두 개별 학자로써 접근해야만 한다. 심지어 사르트르는 사상 차이로 친우였던 퐁티, 카뮈와 각각 대판 싸우고 죽을 때까지 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실존주의에 대한 보편적인 정의는 현재 전무하며, 실존주의자로 분류되는 인물들 개개인들의 성향도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인다. 확실한 건, 여기로 분류될 수 있는 사상가들은 대개 철학에 보편적, 본질적 관념을 설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는 것. 즉, "실존주의가 뭐다"하고 정의하는 것도 별로 실존주의적이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란 단어의 대강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본질주의(essentialism)와 보통 대비되는 주의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이나 본질의 개념을 초월하고자 시작된 존재, 감성, 행동, 책임, 특이성(uniqueness)을 탐구하는 철학적 흐름을 실존주의라고 칭하는 편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다 라는 것보다 그것의 존재 자체에 중심을 둔 사상.

부조리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애초에 여기에서 연결되는 상황주의 등의 후기 사회주의, 또는 부조리 문학 등은 아예 실존주의자로 분류될 만한 인물들의 영역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도 밀접하게 이어진다. 모더니즘의 기계론적, 본질론적 관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해체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아나키즘으로 귀결되기 쉬운데, 보편적 원리보다 개별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특성 때문이다. 국가나 정당, 자본 등이 "본질적 진리"라고 선전하는 것을 의심, 해체하고 인간 개인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내재적 가치를 긍정하는 것이 결국 실존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의 연결고리를 완성한다.

실존주의는 그 자체가 보편적 정의나 관념의 고착을 거부하지만, 사후적으로나마 이 사상적 조류의 특성을 정리하자면 대부분 보편성보다 개별성을, 초월적 가치보다 내재적 가치를 긍정하는 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앞의 볼드처리된 문장 역시 실존주의에 대한 그다지 실존주의적이지 않은, 독선적인 보편화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게(...) 실존주의의 특성 중 하나이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형이상학과는 상극이다. 종래의 형이상학적 가치 체계 및 관념론을 비판하면서 자라난 사조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실존주의'라는 명칭은 원래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치안과 정치가 불안정했던 프랑스 파리에서, 일정한 직업도 없이 그냥저냥 하루를 보내며 카페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모여드는 젊은이들을 인생의 목적도 없이 사는 놈팽이들이라는 경멸하는 말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르트르도 초기에는 이런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1.1. 실존주의의 근원

실존주의의 확실한 근원은 역사적으로 불분명한데, 실존주의란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등 철학자들의 유일성, 신과 인간의 관계 등에 관련한 연구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난 실존주의적 주제들을 2차 대전을 겪었던 전후 유럽의 문학가들이 각각의 작품에서 논의함으로써 사회적 움직임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가브리엘 마르셀에 의해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 그 근본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실존주의자임을 거부하거나 혹은 실존주의 자체를 몰랐음에도 실존주의자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었음을 보았을 때 실존주의의 등장은 의도되었기보다는 시대상에 관련하여 산발적으로 일어난 문학/철학적 움직임이 보이던 특이한 집합이 실존주의란 이름하에 통합됨으로써 정립된 것이 실존주의인 듯하다.

1.2. 실존주의란?

"실존은 반드시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혹은 "주관성이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라고 생각한다(Si vous voulez, qu'il faut partir de la subjectivité)"는 것이다.[1] 관련 글 참고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맥락이다.(사르트르의 해석) 예컨대 의자가 있다고 하자. 의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다. 즉 의자는 누군가가 앉기 위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의자의 본질은 '앉기'에 있고, 앉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진다. 만약 어떤 의자의 형태가 앉을 수 없게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의자가 아닌 것이다. 반대로 일반적인 의자의 형태를 벗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앉을 수 있고, 그렇게 사용된다면 그것은 의자인 것이다. 이 경우 의자의 본질은 실존에 앞선다. 즉 원래의 목적(본질)과 상관없이 이미 존재하는 것들(실존)이 그 목적을 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은 의자와는 다르다. 인간의 본질은 결정되지 않은데다 고정된 것도 아니다. 어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즉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따라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는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이 아니라, 일단 "신이 없음을 가정"하고 전개되는 것이므로 무신론적 실존주의라고 부른다.[2]

다만 위의 정의는 오직 사르트르의 실존과 존재에 대한 것이지, 다른 실존주의자들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실존주의의 창시자로 지목되는 니체나 쇠렌 키르케고르의 사상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키르케고르의 경우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가지고 있어서 괴롭지만 신의 의지로 회귀하여 그것을 극복하여야 한다고 말한다.[3] 니체는 힘의 의지를 발현하여 초인이 되어서 삶의 고통과 무의미한 세계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뻥카를 치는 (종교 등의) 기존 도덕을 초월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키르케고르와 니체만 비교해봐도 상당한 차이가 느껴지지만, 어쨌든 간단한 교양서나 개론서 등에서는 둘 다 실존주의의 시조로 쳐준다(...).[4]

전후 실존주의 학자인 알베르 카뮈는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5] 부조리주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카뮈는 부조리한 이 현실과 인간조건에 반항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학적 사조는 국내의 근대 문학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6.25 전쟁과 그 이후 사회의 부조리함, 비참함을 다룬 전후 소설에서.

하이데거는 자신을 실존주의자가 아니라 존재론자(Ontologist)라고 주장했다. 존재와 시간에서 그의 사상은 실존주의자로 오인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긴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일반적인 실존주의와는 궤를 달리한다. 간단히 말해 그를 실존주의자라고 이해하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지만, 공교롭게도 고등학교 과정의 윤리와 사상 교과서뿐만이 아니라 수능연계교재인 수능특강의 윤리와 사상 교재까지도 하이데거를 실존주의자와 묶어 다루고 있다! 근현대의 실존주의자로 분류되는 사상가들이 하이데거에게서 기반 이론을 많이 빚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형이상학 문서도 참고하길 바란다.

장폴 사르트르는 실존주의가 마르크스주의의 한 분파라고 보았다. 근데 정작 공산주의자들은 사르트르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 지가 무슨 연금술사마냥 전혀 다른 두 사상을 합치려고 한다면서.[6]

2. 신정통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문서 참조.

3. 대표적인 인물

3.1. 작가

3.2. 철학자

3.3. 심리학자

4. 대표적인 작품

4.1. 문학

4.2. 철학

4.3. 애니메이션

5. 대한민국의 실존주의

6.25 전쟁 전후 한국에는 기존 도덕관념 등 수많은 사회통념이 전쟁으로 파괴당하고 남은 것은 인간의 본성과 기회주의 등 부정적인 면이 남았다. 지식인은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인간의 휴머니즘과 본성 회복을 외쳤으며 그때 문예지/교양지에서 소개한 실존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이 사조에서 영향을 받은 문학 작품이 많이 발표되었다.

5.1. 대표적인 작품

5.2. 대표적인 인물

6. 심리치료 기법 중 하나: 실존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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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무엇을 하고 있지? 삶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 스누피
여기서는 실존주의 치료, 혹은 실존상담이라고 부른다. 구체적인 개관은 해당 문서 참고.

실존주의 철학, 현상학, 해석학 등의 철학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심리상담 기법으로, 주요 인물로는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 칼 야스퍼스, 장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마르틴 부버,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의 인물들이 관계가 있으며, 상담가로는 루트비히 빈스방거, 에미 반 두르젠, 어빈 얄롬, 커크 슈나이더, 빅토르 프랑클, 알프리드 랭글 등이 있다.

어빈 얄롬의 실존주의 심리치료에서 중요하게 취급하는 5가지가 있는데, 간혹 이를 실존주의의 Big5라고도 한다. 정확하게 아는 분은 수정바람.
유명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V.Frankl)의 로고테라피(의미치료) 역시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후로는 S.R.Maddi 같은 인물들의 주도로 생의 의미, 강인함(hardness), 역경과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등의 분야에 공헌하는 중이라고.

특히 인본주의적 흐름에서는 내담자 상담가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고, 너나 나나 똑같이 실존적 문제들로 인해 괴로워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저항할 수 없는 가혹한 시련과 운명에 마주하며, 죽음과 고독, 무의미함과 자유를 놓고 그 상황을 초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흐름은 특히나 "극도의 시련을 겪고 있을 때에조차 인간은 어떻게 대처하고 바라볼지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있다" 는 프랭클의 어록으로써 그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한때 심리학계에 몰아쳤던 실존주의 신드롬(?)과도 관계가 있는 분야이다. 이 분야는 실증적인 부분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논리적으로는 꽤나 그럴듯해서, 예컨대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이라든지 죽음 현저성(mortality salience)이라든지 하는 이론과 개념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오늘날에도 이 분야는 여전히 실험실존심리학(XXP; experimental existential psychology)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상태.

여담이지만 이 분야의 서적 중에 제목이 《멘탈붕괴》인 것이 있는데(…) 원제가 《The Fear of Insignificance》인 걸로 보자면[10] 국내 출판사 측에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렇게 제목을 정한 모양. # 그런데 실존주의에서 가정하는 인간의 고통과 공포, 역경은 멘탈붕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근본적이고 심원한 것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의미가 그럭저럭 통하긴 한다. 초월번역?

[1]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中[2] 종교에서는 신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주장"에 따라 이미 인간의 목적이 생겨버린다. 그렇기에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의 본질이 없다고 역설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3] 일단 키르케고르는 신학자였고, "신을 단순히 믿고 따르는 건 맹종이며 신에 대해 의심을 하는 것도 신을 믿는 것이다"라고 했다.[4] 관점에 따라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등을 무신론적 실존주의, 키르케고르, 마르셀, 야스퍼스 등을 유신론적 실존주의로 분류하기도 한다.[5] 카뮈는 '실존주의가 끝나는 곳에서 나는 출발한다'고 말한 바 있다.[6] 실제로 사르트르는 공산당을 지지했다가(6.25 전쟁에 대해 평가하면서 북한의 남침을 옹호한 흑역사가 있다.) 우익 쪽으로 가는 등 변동이 심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양측 모두에게 까인 셈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박쥐(...)고, 좋게 보자면 실존주의자답게 사상이 유연했다고도 볼 수 있다. 예컨대 6.25 전쟁 때는 공산권을 옹호하다가 아나키즘적 성향을 가진 알베르 카뮈 등에게 까인 적이 있고, 반대로 카뮈가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를 비판하기도 하는 식.[7] 해석에 따라서는 실존주의보다는 형이상학, 존재론 계통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실존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된다.[8] 정작 이 작품을 쓴 카뮈는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로 자처하지 않았다고. 항목 참고.[9] 실존적 허무주의의 메세지를 담고있다.[10] significance 역시 실존주의 상담에서 자주 다루는 단어다. 물론 통계학의 그 유의성(significance)과는 번역은 같을지언정 의미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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