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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2-22 20:09:20

테오도어 아도르노


파일:external/www.rschindler.com/theodoradorno.jpg

1. 개요2. 사상
2.1. <자연과 인류, 계몽의 변증법>2.2. <부정변증법>
3. 관련 인물4. 주요 저술

1. 개요

"Nach Auschwitz ein Gedicht zu schreiben ist barbarisch.(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야만이다.)"[1]

테오도어 베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년 9월 11일 ~ 1969년 8월 6일)는 독일철학자, 음악학자, 사회학자이다. 본명은 테오토어 루트비히 비젠그룬트(Theodor Ludwig Wiesengrund)이다. 프랑크푸르트 출신이었으며,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졸업하였다. 동 대학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창시자이자 초기 멤버이다.

2. 사상

미학,철학, 사회학, 평론에 이를정도로 방대한 사유체계를 구축했다. 더 나아가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현대문명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파시즘의 근원이 계몽과진보, 근대성 자체에 있다고 바라보았다. 또한 내용과 형식이라는 두 가지 조건의 균형을 위한 미학이론을 전개했으며 미국 비평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호르크하이머와 더불어 프랑크프루트 학파의 중심으로 정신분석, 사회학,철학 등으로 현대 문화와 파시즘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자신의 동지인 호르크하이머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꾸려나가며 연구를 하던 중에 "망할놈의 인간들은 너무도 타락해서 이제 구원받을 방법이없다." 며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떠나버리고 유대교에 귀의해버린다. 자연스레 학파 내의 지식인들 상당수가 나치즘의 발흥과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거대한 인류 역사에 대한 패배주의로 전향하였고 전쟁 통에 흩어지고 각자도생하면서 사실상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정신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계승하려던 인물이었다.

2.1. <자연과 인류, 계몽의 변증법>

아도르노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대칭적이었다. 땐석기 하나 오른손에 들고 걸레쪼가리를 입고 다닌 유인원이 생존하기 위해 태초에 자연은 상당히 열악했음은 분명하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자연은 거대하고 무자비했으며 따라서 태초의 인간은 자연이라는 공포속에서 자신을 유지하려는 자기유지본능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의 폭력성을 두려움과 동시에 내재화하고 마치 죄가 죄를 낳듯이 끊임없이 억겁의 고리가 근대성까지 이어져있다고 보았다. 태초에 인간과 자연의 상태를 아도르노는 필연적인 '저주'의 상태로 규정했다.

'희생제의'를 통해 인간은 거대한 자연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불안을 해소하고 자기유지 상태를 지속하고자 하였다. 아도르노는 마야의 인신공양, 고대 종교에서 보여지는 소와 양 가축들의 제사, 제의 등에서 인간이 자연과의 소통성이 어느정도 남아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히려 계몽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자기유지본능의 원칙 아래에 두고 자기유지본능에 따라서 자연을 폭력적으로 재배치하기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오디세우스 신화를 분석하면서 근대적 인간의 원형을 오디세우스로 상정하고 신화적 사건을 재해석함으로써 근대적 인간에 대한 조망을 하려했다. 과거 희생제의를 통해 자기유지를 하려던 인간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책략'을 사용하면서 자연을 속이고 거짓과 기민성을 바탕으로 한 자기유지와 동일화원칙으로 인류가 철저하게 위기에 봉착했음을 지적해낸다.
아도르노는 헤겔주의에 영향을 받아 일종의 부정성에 대한 사유로 인해 역설적인 사유전개가 돋보인다. 예를들어 근대가 신화로부터 해방된 것같이 보였지만, 그 근대라고 부르는 것 역시 과거의 신화적인 것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 그리고 계몽은 오히려 더 철저한 야만으로 귀결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2.2. <부정변증법>

스피노자가 "규정은 부정이다"라고 주장했듯이 사유체계가 형성되면 그 사유체계 밖의 부정성이 형성된다. 아도르노가 보기엔 현대 인류문명은 이미 자연과의 소통성을 상실했고 인류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징과 동일화원칙으로 인해 사실상 쌍라이트를 눈뽕 맞은 것처럼 현대 문명 밖의 자연을 볼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철저하게 마지막 희망으로 아도르노는 인류가 쌍라이트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통을 되살릴 수 있는 일종의 기획으로 부정변증법을 집필했다라고 볼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은 알레고리를 통한 구원에 대해 말한 것처럼 아도르노 역시 벤야민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처럼 보인다. 부정변증법에서 그는 계속 문맥에 대한 의미화가 아니라 계속 새로운 지점들을 부정성으로 그려나가다보면 구원이 도래할수도 있다는 망상에 가까운 희망에 대한 방법론이다. 자신도 이를 망상이라고 인정했다.

3. 관련 인물

4. 주요 저술


[1] 이후 파울 첼란의 시집을 읽고 "고문당한 자가 비명 지를 권한을 지니듯이, 끊임없는 괴로움은 표현의 권리를 지닌다. 따라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를 쓸 수 없으리라고 한 말은 잘못이었을 것이다."라고 정정한다. 파울 첼란은 나치 강제 수용소 생존자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