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2-03-30 01:27:11

한스 큉

근현대 신학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81818,#e5e5e5
중세 철학 근현대 신학
살라망카 학파 <colbgcolor=#fafafa,#191919>프란시스코 비토리아,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루이스 데 몰리나,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도밍고 바녜스 <colbgcolor=#fafafa,#191919> 가톨릭 신학
가르멜 신비신학 예수의 테레사, 십자가의 요한, 에디트 슈타인
튀빙겐 가톨릭 학파 요한 세바스티안 드라이, 요한 아담 묄러, 요한 에방겔리스트 폰 쿤
신스콜라학 조반니 페로네, 카를로 파살리아, 요한 밥티스트 프란첼린, 토마스 칠리아라, 레지날드 가리구-라그랑즈
Nouvelle théologie 앙리 드 뤼박,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이브 콩가르, 카를 라너, 한스 큉, 에두아르드 스킬레벡스, 마리-도미니크 셰뉘, 장 다니엘루, 요제프 라칭거
가톨릭 해방신학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우고 아스만, 레오나르도 보프, 혼 소브리노
가톨릭 여성신학 로즈메리 래드포드 류터
흑인신학 제임스 H. 콘
재신론 리처드 카니
종교 개혁 마르틴 루터,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하인리히 불링거 개신교 신학
청교도주의 윌리엄 퍼킨스
급진 종교개혁 토마스 뮌처
칼뱅주의 테오도르 베자, W. 퍼킨스, 존 오웬, 하이퍼 칼빈주의, 찰스 호지, 콜린 건튼
아르미니우스주의 아르미니우스
정통주의 개신교 스콜라신학
경건주의 필립 스페너
뉴잉글랜드 신학 조나단 에드워즈
웨슬리주의 존 웨슬리
고전적 자유주의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알브레히트 리츨, 찰스 어거스터스 브릭스, 아돌프 폰 하르낙, 월터 라우션부시, 에른스트 트뢸치
낭만주의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신칼뱅주의 아브라함 카이퍼
실존주의 쇠렌 키르케고르
근본주의
은사주의 존 윔버, 윌리암 시무어, 데니스 바네, 피터 와그너, 오순절주의
무교회주의 우치무라 간조
과정신학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정치신학
신정통주의 루돌프 불트만, 칼 바르트 (바르트주의), 폴 틸리히 (틸리히주의), 에밀 브루너, 라인홀드 니버 (현실주의),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 디트리히 본회퍼, H. 리처드 니버
신자유주의 존 힉, 존 셸비 스퐁, 마커스 보그
신복음주의 빌리 그레이엄, 칼 헨리, 존 스토트
개신교 해방신학 민중신학, 퀴어신학
희망의 신학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위르겐 몰트만
세속화 신학 하비 콕스
후기자유주의 조지 린드벡, 한스 프라이, 스탠리 하우어워스
바울에 대한 새 관점 E. P. 샌더스, 제임스 D. G. 던, N. T. 라이트
고전정통주의 토마스 C. 오든
급진 정통주의 존 밀뱅크, 제임스 K. A. 스미스
기독교 이신론 존 톨런드 기독교 세속주의
사신신학 윌리엄 해밀턴, 토마스 J. J. 알타이저, 폴 반 뷰렌, 가브리엘 바하니안, 기독교 무신론
기독교 불가지론 레슬리 웨더헤드
약한 신학 존 D. 카푸토
Pyrotheology 피터 롤린스 }}}}}}}}}}}}


1. 개요2. 활동3. 성향

1. 개요

파일:external/www.ncronline.org/20090226cnsph00188_0.jpg
Hans Küng
20세기판 마르틴 루터가 될 것인가?
영국 인디펜던트

1928년 3월 19일 스위스 출생의 가톨릭 사제. 대표적인 반교리적 진보파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스위스 중부지역이자 가톨릭 강세 지역인 루체른 주 출신이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가톨릭 신앙을 가졌다고 한다. 2021년 4월 6일 독일의 튀빙겐에서 93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2. 활동

교황청 소속 그레고리오 대학을 졸업했고 사제서품을 받은 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스 큉의 박사 논문 주제는 의화론으로 개신교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신학과 가톨릭의 의화론이 충돌하지 않고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1]였다. 칼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의 뿌리를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에 두었기 때문에[2] 필연적으로 교회일치운동을 지향했다.

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된 요제프 라칭거의 절친으로 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신학적 연구를 제공했으나, 나중에 라칭거 신부가 정통 교리 수호와 연구에 집중함에 따라 관계가 소원해졌고, 교황무류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교수권을 박탈당하기도 하였다. 이는 요한 바오로 2세 시기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라칭거 추기경이 건의한 바였다.

이 사건 후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는 큉 교수와 논의 끝에 에큐메니컬 신학부를 신설하였다. 가톨릭 교계에서도 교수 자격만 박탈하고 사제직은 박탈(파문)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3][4]

큉 스스로는 20세기판 종교 재판을 당했다며 매우 아쉬워한다. 그는 바티칸의 교수직 박탈 조치가 시대 착오적인 교황무류성 교의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조치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세계 신학자 수백 명 이상이 교황무류성 교의를 비판했지만 교회의 압력으로 입을 다물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한두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3. 성향

가톨릭 사제로서도 신학적으로 반(反)정통 교리적 진보파이다. 가톨릭 내 신학적 반정통 교리적 진보파[5]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6]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행보는 학문적인 면에서 주제가 다양한 편이고, 저서는 가톨릭만을 다루지 않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 문학, 윤리 등 다양한 영역까지 다루었다.《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 시리즈는 이름이 알려져 있다. 당연히 가톨릭 내 정통 교리를 준수하는 사람들은 그의 저서가 반교리적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었다고 평가한다. 교황무류성뿐만 아니라 여성 사제 서품[7], 사제 독신제 폐지에도 찬성하는 입장이며 피임, 낙태, 이혼 등 가정과 생명 문제나 동성애 문제에도 반가톨릭 교리적 입장이다. 그리고 교계에서 존경받는 요한 바오로 2세를 매우 정통 교리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비판했고, 여러 차례 순방으로 많은 교구를 파산시켰고 낙태나 이혼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가톨릭 정통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에게 부정적이며, 특히 그의 교회론이나 여성 사제 찬성론을 매우 비판한다.

그러나 한스 큉은 교황제도 자체는 존중하며 적어도 '형식상' 가톨릭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교회론, 교회일치운동, 일부 사회교리에서는 반정통 교리적인 입장을 피력했지만, 교황수위권의 근간 및 7성사, 주교제를 완전 부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 한스 큉의 사제 서품은 여전히 유효하며[8] 강의 자격이 중지된 이후에도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만나 대화를 나누었으며, 2016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교황무류성 토론을 제한하지 않겠다." 하는 개인적인 답변을 받았다 한다.출처: 가톨릭 평화신문 (2016. 05. 08)

사실 큉이 파문 처분을 받지 않는 데는 큉 개인의 태도와도 관련 있다는 얘기도 있다. 교도권에 의해 전격 파문된 다른 이들과는 달리 큉은 '교도권의 공식 입장이 오류의 가능성이 높아서, 교회는 이를 당장 시정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교회를 공격하진 않았고, 교회의 경고에 대해 '일단은 시정의 노력은 해보겠다'는 식의 답변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큉은 정치적으로는 우파 자유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서유럽 주류의 이민(다문화) 정책[9]과 (급진적) 복지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며, 자유주의자답게 사회주의도 부정적으로 본다. 따라서 큉을 개신교의 후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적 반정통 교리 진보파(정치적 진보파가 아닌) 신학자로 볼지언정 해방신학 계열로 보기는 어렵다. 가톨릭 및 개신교 내 신학적 진보파 중에 정작 정치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 다문화주의(강경 문화상대주의), 급진적 복지정책,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에 부정적인 스탠스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딱 그런 스탠스라고 보면 된다.


[1] 바르트 역시 큉의 연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71941&path=201309[2] 바르트는 자신이 직접 배운 스승들 당시 자유주의 신학과 완전히 학연 단절을 선언했다. 그 대신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개혁 1세대 신학자들이 연구로 돌아섰고, 루터의 로마서 강의는 바르트의 명작으로 꼽히는 (1920년 발표한) 로마서 연구로 이어졌다.[3] 아무래도 큉을 파문했다가 자칫 그와 같은 반교리파의 반발이 교회의 분열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 분열 소지도 소지이지만 큉을 바로 파문했다가는 세속 사회나 에큐메니컬 진영으로부터 현대 신학계의 거물을 가톨릭 교회가 함부로 단죄했다는 따가운 비판을 피하기 위한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4] 베네딕토 16세와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 교회개혁운동을 주도한 옛 동지라는 옛 정 때문에 파문이 아닌 교수권 박탈로 봐줬다는 설도 있긴 하다.[5] 여기서 말하는 신학적 진보파는 이혼, 동성애와 같은 사회교리 문제에 반정통 교리적 스탠스를 보이고, 반정통 교리파들의 에큐메니즘 관점에서 폐쇄주의적이라 여겨지는 가톨릭 교회론에 회의적 시각을 보이는 그런 입장을 말한다. 경제적 정의에 관심을 보이는 정치적 진보파와는 다르다. 물론 양성평등,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이다가 신학적 反정통 교리적 진보파로 전향하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도(단, 이혼, 동성애 등은 제외) 신학적으로는 정통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가능하다.[6] 특히 성공회루터교[7]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는 성공회에서도 여성 사제 서품에 반발하여, 고교회파 내 보수파 다수가 성공회를 탈퇴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독자적인 교단을 창설하는 대분열이 일어났을 정도로 파괴력이 큰 사안이다. 성공회에서도 논란이 된 사항에 긍정적이라는 것은 가톨릭 내에서 상당히 반정통 교리적인 입장이라 할 수 있다.[8] 사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한 번 유효하게 서품을 받은 사람은 결코 그 서품이 취소되지 않는다. 만약 취소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오직 하느님뿐. 교회가 파문하고 면직한다 할지라도 서품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서품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면, 해당 인물이 파문이 풀린 뒤 다시 서품을 받도록 해야 하겠지만 가톨릭 교회는 그러지 않는다. 가톨릭의 정통적인 교리 해석을 굳게 믿는 사람일수록, 서품은 취소될 수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제 서품 관련 교리는 초기 교회 때 치열한 논쟁(세례의 유효성 취소 논쟁과도 연결됨)을 거쳐서 교도권에 의해 정식 교리로 못박아놓은 것이다.[9] 특히 이민자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시민교육까지 문화제국주의라며 부정하는 강경 문화상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