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베르나르 앙리 레비 Bernard-Henri Lévy | |
본명 | 베르나르앙리 레비 Bernard-Henri Lévy |
출생 | 1948년 11월 5일 ([age(1948-11-05)]세) |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파리 정치대학 파리 고등사범학교 |
경력 | 스트라스부르 대학 교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보좌관 레비나스 연구소 연구원 |
직업 | 철학자, 기업가, 방송인 |
사상 | 대륙철학, 자유주의(자유사회주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프랑스 신철학파 |
소속 정당 | (19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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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철학자, 기업인, 방송인.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지만 프랑스와 서구권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중도좌파 성향 지식인으로 꼽힌다. 7개가 넘는 기업들을 소유하며 프랑스 언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언론 재벌이기도 하다. 약자를 따 BHL로 불린다.
2. 생애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1948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오랑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 그는 파리 정치대학과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루이 알튀세르의 지도 하에 철학을 공부하며[2]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었다. 이후 68운동 당시 다니엘 콩-방디트와 함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프라하의 봄을 비롯한 동시대 소련의 삽질, 마오주의에 현혹된 학생운동권 등에 환멸을 느끼고 루이 알튀세르와 결별한 후 반공주의로 전향한다.1971년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이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의 특파원으로 파견된 것을 계기로 레비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로 거듭났으며,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철학교수직을 따내 자신의 정치 사상을 전개하였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련 추방 사건과 68혁명에서의 교훈을 계기로 하여 레비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라는 책을 출간해 마르크스주의를 최전선에서 비판하고 자유사회주의를 옹호했는데,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 셀러가 되며 프랑스 철학계에서 격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970년대 레비는 비슷한 성향의 철학자 앙드레 글뤽스만과 함께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고 자유주의와 자유사회주의를 옹호하는 "프랑스 신철학파"(nouveaux philosophes)라는 정치철학의 학파를 구성하였다. 여담으로 이때 레비와 글뤽스만의 행보가 미셸 푸코와 질 들뢰즈가 결별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푸코는 글뤽스만과 레비를 옹호한 반면 들뢰즈는 비판하면서 서로 결별했다.
1974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프랑수아 미테랑을 지지한 그는 1976년 사회당(프랑스)에 입당하고 미셸 로카르, 로랑 파비위스와 함께 미테랑을 보좌하는 젊은 아이디어 집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정치계에 진출했으며,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언론 회사들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2022년부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우크라이나를 옹호하고 러시아를 비난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데 조금 과하다며 비판받기도 한다.
3. 사상
3.1. 마르크스주의 비판
3.2.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4. 비판
저는 이러한 반전, 권력에 의한 지식인들의 길들여짐, 혹은 저널리즘의 형식이 재난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쓰기를 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지식인의 도구에서 벗어나 있는 순간, 창작물이 작가의 생각을 거치지 않는 순간 그것들은 라디오나 텔레비전 저널리즘에 의해 포섭되게 됩니다. 저널리스트는 작가의 새로운 형태가 되었고 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는 저널리스트를 거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저널리스트를 거쳐야했습니다.[3] 이런 불신에 빠진 기능은 위치와 대상을 변화시키면서 근대성과 새로운 순응성을 개발해냈고, 이것이 베르나르-앙리 레비의 지적인 벤처 마케팅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질 들뢰즈, 신철학파와 보다 일반적인 문제에 관하여, 1977년 5월
질 들뢰즈, 신철학파와 보다 일반적인 문제에 관하여, 1977년 5월
5. 여담
- 그와는 상극의 성향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의해 시도때도 없이 미친듯이 비판을 받는 학자로, 르디플로 독자라면 한번쯤 들어봤을만한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서로 극과 극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민족볼셰비키주의자이자 반자유주의 사상가인 알렉산드르 두긴[4]과 논쟁, 토론하는 영상이 있다. 둘 다 논리적으로 자신들이 옮다고 생각하는 철학과 사상을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 2024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에 대해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하지 않았고, 해방시키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모든 도덕적, 정치적 나침반이 사라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1] 1976년 미테랑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입당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도 당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2] 여담으로 그때 알튀세르의 조교수가 자크 데리다였다.[3] 이는 질 들뢰즈가 꾸준히 비판해온, 자유주의적 질서에 충성하는 철학자, 즉 "지식 공무원"에 대한 비판으로 보여진다.[4] 블라디미르 푸틴의 사상적 스승이다.